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속해있는 공동체에는 어떤 체보다도 촘촘한 망이 겹겹이 걸쳐 있고, 모든 구성원은 그 망을 통과하여 걸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망을 통과할 수는 있지만 다음 망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어떤 망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걸러진 사람들의 삶은 손쉽게 간추려지고 미래는 예측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실격당했다’고 말합니다.

저자인 김원영 변호사는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을 받은 장애인입니다. 골형성부전증은 특별한 원인이 없이도 뼈가 쉽게 부러지는 선천성 유전질환입니다. 한국에서 이 병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가 200명 안팎에 불과한 희귀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만 했던 저자는 비장애인과는 확연하게 다른 삶을 경험하며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과, 법률적 지식을 토대로 소위 우리 사회에서 ‘실격당한 사람’ 으로 낙인 찍힌 이들의 삶을 변론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입니다.

‘실격당한 사람’이란 비단 장애인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장애, 질병, 가난, 볼품없는 외모 등 여러 이유로 사회로부터 부당하게 다른 대우를 받게 되는 사람들을 통칭합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명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 그것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 하면 그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약자, 소수자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뤄져야 하고, 단순히 논의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단계로까지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총 9장에 걸쳐서 ‘실격’ 취급을 받아온 사람들의 입장을 차근차근 대변해 나갑니다.

책을 읽으며 많이 감탄했습니다. 막연하게만 느꼈던 불편한 감정들이 명료한 언어로 정리되어 있거나,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담론들이 각 장마다 펼쳐지고 있어서 그야말로 생각이 트였기 때문입니다.

장애 문제에 대해 잘 몰랐던 분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해요. 각종 실제 사례와 판례, 그리고 여러 가지 가정 상황 등을 통해서 이해하기 쉽게 논지를 전개해 나갑니다. 그렇게 1장부터 9장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주장들은 마침내 마지막에 이르러서 이 변론을 완성하게 됩니다.

저는 이 중에서도 8장의 내용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름다울 기회의 평등’이라는 제목의 8장에서는 아름다움, 즉 미(美)의 관점에서 장애인의 삶과 몸을 바라보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변론의 형태로 말하고 있지만, 실은 우리 사회에서 ‘실격’ 당한 모든 이들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에는 몇 겹이나 되는 거름망이 놓여있습니다. 이 거름망이 너무 많고 촘촘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실격당한 자’가 될 운명에 놓여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실격당한 자’를 배제할 때 그는 기호가 되지만, 같은 위치에 우리를 놓고 사회의 거름망을 조망하게 될 때 우리는 상대의 개별성을 인지할 눈을 갖게 됩니다. 이제는 이 눈으로 지금보다 더 넓게 세계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속물과 품격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자들의 경계는 그래서 모호하다. 차이가 있다면, 속물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끔씩은 자신의 품격까지 짓밟는다는 것이다. ‘쇼하지 마!‘라고 외치던,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의 참가자가 그렇다.
- P62

누군가에게 연극적인 삶은 위선이겠지만 누군가는 연극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가면을 쓰지 않은 얼굴은 너무나 투명해서 실제로 얼굴이 있는지도 알아볼 수 없다. 아무리 거울에 비추어 보아도, 즉 반성해도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얼굴이 없는 인간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나체로 죽겠다는 결정은 결국 자신의 죽음조차도 퍼포먼스로 만든다. 자신이 장애를 비관하여 죽는 게 아니라는 ‘진실‘을 위해 연극적으로 죽어야 하는 삶. 이런 죽음은 정반대로 장애가 없는 ‘완벽한‘ 인간에게도 있다.
- P83

모든 것을 부정하는 시선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 그 가능성은 이제 ‘수용‘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고 오로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결국 나의 몸, 운명, 삶, 실존에 대한 수용을 전제로 한다.
- P91

자신의 장애를 단지 극복해야 하고 없애야 할 요소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으로 진지하게 숙고하고자 하는 이들은 장애에 대한 전적인 부정의 언어와 태도를 만날 때 매우 심란해진다
- P113

유전자진단기술을 통해 장애아를 ‘걸러낼‘ 수 있는 사회는 해당 장애에 대한 의료, 사회복지 지출에 둔감해지기 쉽다. 그냥 ‘걸러내면‘ 될 것을 굳이 낳아서 치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개인은 사회에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죄책감은 타당할까? 위 프로그램의 의미를 소개하면서 연구자 황지성은 첨단기술을 활용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은 사회적 차별과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모순을 지적한다. 유전자진단이나 임신중절은 일정 범위 안에서는 당신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다만 그 자유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 장애아가 태어나면, 그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결국 모든 기술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 P115

질병과 장애에는 각각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는 질병과 장애를 안은 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시 해석되고 기록된다. 며칠 아팠다가 낫는 감기나 한 달 정도 입원했다가 치료를 받고 끝나는 일시적인 질병은 우리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계기가 되고, 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뿐이다. 하지만 만성적인 질병, 늘 약을 먹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고, 때로는 빨리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 질병이나 우발적인 사고로 갖게 된 ‘장애’라는 몸 상태는 한 사람에게 고유한 이야기가 된다. 내 몸이 가진 이 속성, 흔적, 경험으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정제성이란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P129

우리가 무엇인가를 ‘수용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철저히 자발적인 선택을 의미한다. 믿음은 나의 의지에 따라 믿거나 믿지 않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수용은 오로지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물론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면 좀 더 수월하게 수용할 수 있지만, 근거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당신이 장애가 있는 아이를 진정 가치있고 반짝거리는 존재로 수용하고자 한다면, 그아이에게 다른 아이에게는 없는 천재적인 수학 능력이 있는가 혹은 예술가로서의 빛나는 재능이 보이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 P139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장애가 있는 몸, 미적 기준에서 벗어난다고 여겨지는 신체를 수용했다고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혐오나 피해의식에 기초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이 세상이 구축해놓은 외모의 위계질서에 종속되지 않으며, 앞으로의 삶을 외모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나 억압, 혹은 피억압자로서의 의식과 트라우마에 짓눌리지 않은 채 살아가겠다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입장)‘를 수용한 것이다.
- P144

어떤 사람을 존엄한 존재로 대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자기 인생의 자율적인 주체, 말하자면 작가/저자author로서 존중함을 의미한다는 견해가 있다.
- P185

람들이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계기로 어떤 이야기를 구성하고, 그 이야기가 그 사람이 앞으로 할 행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그는 자기 삶의 저자로서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 P194

장애인들은 장애가 개인의 비극이나 극복해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라고 믿는다
- P294

존엄의 순환은 그렇게 시작되고, 그 순환 속에서 존엄은 더 구체화되고, 더 강해지고,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을 보고 그를 더 사랑하게 되듯이, 우리는 나를 존중하는 상대방을 보고 그를 더 존중하게 되고, 나를 존중하는 법률을 보고 그러한 법의 지배를 기꺼이 감내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나를 더 깊이 사랑하고 관용하게 된다
- P3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