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답을 알고 있다 - 길을 잃었을 때,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
석정훈 지음 / 알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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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 중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의식의 영역이‘10’이라면,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은 ‘90’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여러 사건 사이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행동과 생각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납니다.

이 책은 우리의 무의식에 내 인생의 행복과 성공의 열쇠가 숨어 있다고 강조하면서 무의식을 100퍼센트 활용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왜 무의식인가?’에서는 우리가 왜 무의식의 영역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고, 2장 ‘무의식이 움직이는 원리’에서는 무의식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알려줍니다. 3장 ‘무의식의 오작동’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불편한 동거와 어쩌다 무의식이 잘못 작동하게 되는지를 다루고, 4장 ‘무의식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하는 법’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의식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만드는 법을 7가지 단계로 설명합니다.

1. 분리하기: 무의식을 나와 분리시켜서 상상으로나마 실체화 해보는 것이다. 무의식을 나와 분리시켜서 느껴보는 연습인 셈이다.

2. 관찰하기: 나의 무의식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충동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미세한 순간을 감지하는 것으로,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 놓아야 가능하다. 충동적으로 반응하려고 하는 무의식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연습이다. 우리가 내리는 대부분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은 무의식이며, 의식은 단지 그 결정을 합리화한다고 한다.

3. 느껴보기: 무의식은 감정이라는 수단으로 의식과 소통하며, 무의식의 동작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다.

4. 지시하기: 자신이 믿고 원하는 상황을 분명하게 생각하여 무의식이 이를 알도록 만드는 단계이다.

5. 시도하기: 무의식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프로그래밍된다. 실패하더라도 해봤던 일에 대해서는 미련이 남지 않지만, 시도도 해보지 못한 일은 평생 미련으로 남는다며 저자는 먼저 ‘시도하기’를 권유한다.

6. 조율하기: 과도하게 흥분할 수 있는 무의식을 잘 다스려 의식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무의식의 갈등은 극렬한 감정의 분출로 나타나며, 대부분의 경우 의식은 통제권을 상실한다. 이럴 경우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한 발짝 뒤에서 관찰하는 마음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무의식은 기본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피하는 쪽으로 반응한다.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경우 피하기보다는 의식적으로 변화를 생각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한다.

7. 몰입하기: 눈앞에 놓인 그것에만 집중함으로써 무의식을 의식화 시키는 단계이다.

우리의 의식은 변수를 고려하고 예측하는 등 많은 사고과정을 거쳐 각 신경으로 행동의 지침을 내리는데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그러한 의식적인 작용으로 이룬다면 우리의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 그리고 의식의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으로 인해 더딘 행동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무의식은 일종의 자동화된 프로그램으로 의식의 도움없이 프로그램 된 행위들을 자연스럽게 수행하도록 지시를 내림으로써 에너지의 효율과 의식의 휴식을 가져다 주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통제해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무의식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행하지 않은 무의식의 결과물들이 우리를 좀 더 만족스런 삶으로

자연스럽게 이끄는 만큼 무의식과 의식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양한 사례나 어느 정도 검증된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최면과 무의식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였고, 무의식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접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의식에 귀를 기울여 남은 삶을 좀더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겠습니다.

바로 우리가 길에서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무의식이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스스로 찾아가게 될 거라는 겁니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청년의 집은 우리들이 추구하는 삶의 여러 가지 해답을, 말은 우리의 마음 또는 무의식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탄 노인은 우리의 의식, 길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 길옆의 풀은 우리를 길 밖으로 유인하는 유혹 등을 뜻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사사로운 욕심에 흔들리지 않고 길에서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가야 할 어딘가에 다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 P7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자각한 만큼만 참된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체험하느냐에 따라 제대로 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의식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이해하고 이를 활용한다면, 지금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놀라운 변화가 시작될 겁니다.
- P27

의지력은 의식이 관할합니다. 반면 습관은 무의식의 영역에 속합니다. 의식이 의지력을 사용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좋은 습관을 만들어 무의식이 이를 관할하게 하면 큰 에너지 없이도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 P95

우리의 무의식은 조각가가 거친 돌을 다듬어 매끈하고 유려한 조각을 만들어내듯, 무언가를 배우고 익혀나갈 때 새로운 것을 쌓아가는 것과 동시에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는 방식으로 성장해나갑니다. 그렇게 어느 수준에 이르게 되면 별다른 의식의 간섭 없이도 무의식 스스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 P122

완벽한 준비를 갖춰야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완벽한 정답이 없는 것처럼 완벽한 실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세상의 ‘모든 실패는 성공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라는 말도 있습니다.
- P191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모든 변화는 정말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당신의 무의식이 언젠가는 길을 찾아줄 거라고 믿고, 당신은 단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 최선을 다해서 당신답게 살며 즐기세요
- P231

무언가가 자꾸 마음에 떠오른다면, 그것은 한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처음부터 큰 결단으로 일을 저지르기보다는 시험 삼아 이것저것 시도해보길 권합니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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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op 10 Distinctions Between Millionaires and the Middle Class (Hardcover)
Smith, Keith Cameron / Ballantine Books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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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고 싶어도 실제로 어떻게 부자가 되는지 그 방법을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목적은 각자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보다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이 책은 부자가 되는 방법이나 하룻밤에 수백만 달러를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아닙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돈이 더 많을까요?

저자는 전 세계 1%의 백만장자에게 부와 성공의 비결을 묻고, 그들에게 받은 가르침을 밑거름 삼아 성장하고 부를 이루며 얻은 깨달음을 10가지 ‘부의 연금술’로 정리했습니다.

10. 길게 생각하고 미래를 설계하라

장기적으로 생각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고 인내심은 자산입니다

9. 아이디어를 자주 이야기하라

우리의 말의 힘은 우리 삶의 경험을 만듭니다. 어휘를 바꾸고 불평을 멈추고 학습을 시작하십시오. 감사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인생의 교훈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 보도록 가르쳐줍니다. 이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어집니다.

8.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즐겨라

자신감은 준비, 노력, 스스로 일한 결과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부를 선택하거나 원할 수 있지만 선택은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믿음에 의해 뒷받침되고 두려움은 우리를 기회에 눈을 멀게 합니다. 따라서 자신감을 개발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십시오

7. 위험을 미리 계산하고 감수하라

계산된 위험은 먼저 지식을 얻고 조치를 취하기 전에 실패의 결과를 고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실패는 성공의 길의 일부입니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더 현명 해집니다.

6.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라

재무 지식에 더 많은 돈을 쓸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백만장자는 자신이 원하는 성공을 거둔 사람들과 지식에 투자합니다

5. 수익을 높이는 법을 배워라

임금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받는 임금입니다. 이익은 한 가지 가격으로 무언가를 사고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 한 결과입니다

4. 항상 감사하며 베풀어라

관대하게 사는 것이 행복 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3. 다양한 수입원을 확보하라

우리가 개발할 수 있는 소득원이 많을수록 우리는 백만장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 수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라

소득을 창출하는 자산을 얻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순 가치를 높이려면 인내, 지식 및 지혜가 필요합니다

1. 잠재력을 깨우는 질문을 하라

현재 경험 수준을 넘어서는 질문을 스스로 배우십시오. 질문은 마음을 통제하고 성공을 만들기 위해 조건을 정합니다. ‘해야 할 것’ 이라는 개념은 명확성을 제공합니다. "내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백만장자는 백만장자가 될 올바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목표를 갖고 그곳에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희생했지만 올바른 질문을 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아이디어를 개발하면서 올바른 장소에 마음의 틀을 유지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장애물을 가지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책에서 말한 것을 익히고, 사용한다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와 성공은 가장 작은 생각에서부터 시작하여 큰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잠재력을 깨우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자문해보아야 겠습니다. 현재의 내가 아닌 앞으로의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얻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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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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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택배를 자주 이용하지는 않지만 코로나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택배를 자주 주문하게 됩니다. 제가 사는 곳은 고층아파트인데, 종종 택배를 배달하시는 기사님을 보면 힘겨워보입니다. 택배가 가득 쌓인 카트를 끌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간 뒤 한 층 한 층 타고 내려오면서 차례로 배달을 하십니다. 가끔 뉴스에 택배기사님들을 상대로 갑질 아닌 갑질을 해서 논란이 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미스테리한 과거를 갖고 있는듯한 느낌을 물씬 주는 45살의 중년 남성인 주인공은 집도 절도 가족도 없이 행운동에서 택배기사 일을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독특한 관점을 가진 주인공은 나름 자신만의 철학과 소신으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등장합니다. 매일 담배 한가치를 빌려가지 않는 여자는 우울증에 걸려 있다며 대화를 청하기도 하고, 경제철학을 배우러 오라는 할아버지는 이상하게 그를 잘 따릅니다. 보디가드를 달고 다니는 동네 바보, 미모를 자랑하는 손녀, 자신을 유혹하는 게이바 직원들 등 심지어 자신의 개인사를 털어놓으며 들어달라고 하는 사람까지 정말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또, 택배업이 서비스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네 사람들은 당연하게 요구하길 멈추지 않습니다. 원하는 곳까지 놔주고 가라는 명령부터 친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건의를 넣겠다는 둥 택배기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적나라한 모습들과 진상 고객들은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 ‘행운동’ 기사는 택배를 전달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사의 일상에 무례하게 침범하거나, 반대로 너무 무심합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따뜻한 위로뿐인데요

작가는 평온한 하루 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연을 가지고 마주치고 새로운 사연을 만들어 가는지,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관계에서 벗어나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을 하고 그들의 일상을 묘사했습니다. 택배기사의 현실을 씁쓸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주인공의 정체에 대한 미스터리소설이었습니다.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소재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요즘 그런 책들에 비해, 신선하고 자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상의 소재들과 평범하지만은 않은 인물들의 평탄한 이야기가 작가 특유의 유머가 잘 스며들어있었습니다. 실제로 작가가 택배 일을 하면서 느끼고 경험했을 생생한 현장감과 자신의 삶을 흔들림 없이 걷고 있는 당당한 모습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읽으면서 그가 뭘 하던 사람인지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더 좋았습니다. 마지막에 그에 대한 베일이 벗겨지면서 구구절절 설명했다면 실망감이 엄청 컸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모두 ‘침입자들’입니다. 주인공이 인간관계를 피해 살려고 하지만 어떻게든,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의 얽힘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처럼, 폐쇄적으로 살던 그들에게 역시 주인공 또한 ‘침입자’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한 단면을 보는 듯, 어쩌면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듯, 그렇게 이 소설을 읽었습니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택배기사의 삶에 깊은 공감을 느낀 건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 있었다.12시 정각이었고 막 서울에 도착한 참이었다. 여벌의 옷이 든 가방,9만 8천원이 든 지갑,마흔 다섯의 나이와 텅 빈 시간만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거리는 여름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고, 간혹 한 줌의 행인들이 힘없이 지나곤 했다. 길면 일주일,짧으면 이틀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를 돈을 들고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네개비째를 피운 후 핸드폰을 꺼냈다. 그제야 구직사이트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사람을 상대하거나 어울릴 필요가 없는 일이라면 종류는 상관없었다. 남는 것은 육체노동 뿐이었다
- P12

연민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지지 못하면 동정으로 전락하고. 누구에게도 누군가를 동정할 권리가 없다. 그게 내 생각이었다
- P60

하지만 이 일에서 배운 게 있다면 버나드 쇼의 말이 맞다는 거다. 돼지와 뒹굴어서는 안 된다는 것. 함께 더러워질 뿐이고, 심지어 돼지가 그걸 좋아한다는 사실
- P70

종종 있다. 아니 너무 많다. 택배기사를 자기 집 하인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일일이 싸울 수 없으니 보통은 그냥 넘어가지만 오늘처럼 비가 오고 배송이 늦어지는 날은 사소한 일에도 전투태세가 된다. 사람인 이상 어쩔 수가 없다. 혹은 미성숙해서 그렇거나. 부탁이라면 좀 짜증이 나더라도 해주지만 명령조에는 경기를 일으키는 나는 이런 날에는 신경이 더 곤두선다
- P74

고객님 자본주의 논리를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 자본주의 논리로 해보죠. 이 택배 배송비가 천백원이에요. 아침에 분류하는 노동비, 배송 노동비, 차량유지비, 유류대, 보험료, 전화비, 클레임과 분실 비용, 제 이윤 등을 빼고 나면 여유분은 아예 없거나 많으면 일 원이나 이 원이 남을지 몰라요. 택배 하나당 말이죠. 그럼 설명 좀 해주세요. 도대체 일 원이나 이 원의 서비스가 어떤 것인지. 케인즈 관점의 거시경제학으로? 아님, 하이에크의 영향을 받은 신자유주의의 논리로?
- P79

육체노동의 장점이 있다면 적어도 퇴근 후에 집까지 일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거다. 하지만 서비스란 개념이 도입되면서 이마저도 사라졌다. 감정노동이 추가된 것이다. 그 감정의 쓰레기통이 내가 될 이유도 없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받아쳐야 한다면 받아쳐야 한다.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나라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 P81

일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결국 아무도 만나지 않는 일이라는 게 유일한 매력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쓸데없는 인간들과 엮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 P87

"같은 보폭과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지. 말은 쉽게 들리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게 무척 힘들어. 얘기를 나눌 상대도 일상의 변화도 없어. 매일 똑같은 택배와 고독만 있지. 뭐, 성격만 맞는다면야 구도 행위로 볼 수도 있겠지만."
- P150

다음에 말을 섞은 건 건물 경비와 마스크가 싸울 때였다. 흔한 광경이었다. 갑도 을도 아닌, 병이 정에게 갑질을 하는 건물 안으로 배송을 하러 들어가려는데 환갑이 넘어 보이는 경비가 마스크를 보며 흥분하고 있었다
- P170

끼니를 걱정해야 하면 빈곤, 끼니는 해결되면 가난이겠죠. 가난은 그런대로 견딜 수 있어요. 하지만 빈곤이 되면 죽음이라는 공포와 싸워야 해요.
- P186

사회는 집념, 포기하지 않는 노력, 뭐 그런 걸 강요하지만 글쎄요, 제 생각엔 희망이란 게 사람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괴롭히기만 할 뿐인 것 같아요. 그럴 땐 포기하면 편하죠. 정말 그래야 할 일은 살면서 한두 가지정도인 것 같아요. 대개의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도망갈 수 있다면 도망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는 뜻이니까요
- P189

사람이란 한계치에 다다르면 나뭇잎 한 장이 얹혀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법이다. 한계치는 사람마다 다르며 죽는 것보다 사는 게 힘들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다. 타인이 그 무게를 어찌 알겠는가? 설명 부부라고 해도 말이다
- P204

현대 교육의 핵심은 야성의 제거에요. 노예에게 야성이 있으면 다루기 힘드니까. 집에서 기르는 개와 마찬가지죠. 먹이를 주고 쥐꼬리만 한 안정감을 쥐여주면 나머지는 원하는 대로 부려 먹을 수 있죠. 교육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아요. 경쟁을 시키고 서열을 주면 알아서 서로를 증오하며 끌어내리고 밟고 올라서기 바쁘죠. 그러면서 태연한 얼굴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건 자유라고 말하죠. 자유가 어떤 건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도 모르고 말이죠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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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딩, 턴
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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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소설 표지 제목을 보고 나서는 한동안 댄스 동호회에서 만난 두 남녀의 유쾌한 밀당 이야기가 주가 되는 로맨스 소설이라 생각했습니다. 연애 드라마가 연애의 달콤한 감정을 대리 체험하듯 담아내었다면, 이 소설은 두 남녀의 사랑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언급하자면, 30대 남녀의 결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두 남녀는 스윙댄스 동호회에서 만납니다. 첫만남에 찌릿한 감정, 혹은 호감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둘 사이를 무디게 만들어 준 '사랑'이란 감정은 어느덧 둘 사이의 만남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둘은 행복의 끝이라 일컬어지는 결혼을 하였습니다. 함께 집을 꾸미고, 대출을 갚아가고, 가끔 토라지면 사과를 하고, 화해를 하는 일상이 반복됩니다. 평범하지만 누구나 다 그럴 것이라는 결혼 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어느 한 시점이 결정타가 아니었습니다. 천천히 서로 다르다고 말하는 이혼 사유로 뻔하지만 그 뻔함을 부정할 수 없는 '성격차이'라 불리는 그 틈 사이로 균열이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스윙댄스 동작에 맞추어 추던 시냇물이 바위를 만나 나누어지듯 자연스레 두 사람은 갈라섭니다.

지원과 영진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너무나 미숙했습니다. 두 사람은 사랑의 이유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생활의 이유를 모르는 듯합니다. 결혼은 동화책의 결말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결론질 수 없습니다. 둘다 이 사실을 끝내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혼이란 사랑을 생활로 바꾸는 것입니다. ‘오래 연애하는 것 같은’생활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최종적으로 만나 이혼에 합의하면서 두 사람은 ‘생활의 실체’를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하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온 듯 합니다. 그들의 결별은 후련하다기보다는 찜찜한 기분을 남깁니다. 작가 서유미는 냉정하게 ‘쿨한’ 사랑의 종말로 산뜻하게 끝을 맺습니다. 어차피 어떤 사랑도 사소하게 시작하는데 이별이라고 반드시 원수처럼 끝낼 필요 없지 않은가? 상처 없이 깔끔하게 끝내는 결혼도 있지 않는가? 라며 묻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제 결혼생활 5년이 넘어가는 지금, 나의 춤, 우리의 무대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신혼 초에는 서로에 대해 잘 몰라서 힘들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서로의 목소리만 들어도 감으로 느껴질만큼 서로를 잘 아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나만의 어려움과 힘겨움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남편의 어려움과 짐도 보게 됩니다. 꿈같은 신혼시절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욱 안정이 되어가는 듯합니다.

남편에게 말하고 싶습니다.“서로의 반짝이는 순간을 기억하며 이 춤을, 이 무대를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과 함께, 영원히 홀딩, 턴을 반복하고 싶습니다. 내 곁에 오래 남아 함께 할 사람은 당신이니까요!”

잘 지내는 것 같던 연인이나 부부의 관계가 깨질 때 상대의 불륜이나 변심, 파산, 폭력, 중독은 선명한 파경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로 명명하게 어려운 이유들이 자잘하게 집 여기저기에 곰팡이처럼 번져버린 경우도 있다. 볼 때마다 닦고 주기적으로 꺼내서 말리는데도 은밀하고 깊숙하게 번져나간 곰팡이를 목격할 때면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며 손을 놓고 싶어진다. 곰팡이가 관계를 삼켜버리는 것이다
- P47

지원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조각으로 보이는 게 싫고 당신이 본 게 다가 아니니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이나 진심 같은 걸 봐달라고 호소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드러난 일부분만 보고 쉽게 단정 지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관계가 입체로 넘어가지 못하고 선이나 면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다
- P95

지나온 어떤 순간, 인상적인 장면을 꺼내 후후 불어 맛볼 수 있다는 건 인생이 베푼 행운임에 틀림없다. 그런 면에서 인생에는 언제든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우려먹을 수 있는 티백이 필요하다
- P99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세탁의 시간을 지나는 것 같았다. 코스의 어디쯤에서 물이 차기를 기다렸다가 그 과정을 지나면 다음코스로 넘어간다. 유쾌한 기분이라고 할 순 없지만 더 나빠질 건 없다는 생각으로 몸의 힘을 뺀다. 지금은 거품이 일지만 다음 코스, 그 다음 코스를 지나면 결국 세제가 씻겨 내려갈 거라는 사실에 몸을 맡긴다. 어떤 일이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지나가리라는 믿음이 필요한 때가 있다
- P114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단순한데 함께 살 수 없는 이유는 구질구질하게 길었다. 그래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사연들을 하나로 묶어 사람들이 성격차이라고 명명하는 것 같았다
- P122

결혼생활 내내 지원은 누군가를 이런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게 얼마나 무모한가, 생각했다. 한 사람은 수천 개의 갈래로 나뉘고 수많은 변수로 이루어진다. 그나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해도 그 앎 때문에 오히려 관계 속에서 자주 길을 잃고 좌절하게 된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보석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 P130

지원과 영진이 알면서도 자주 잊어버리고 간과하는 것이 있다. 서로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 상대의 치명적인 단점을 바꿀 수 없다는 것. 일시적으로 변하게 하거나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완전히 바꿀 순 없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우선 자신을 바꿔보려고 노력한다. 상대의 단점 때문에 화내거나 싸우는 것보다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그 단점을 외면하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것이다
- P144

결혼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행복해지려고 했던 거라면 이혼에 대한 고민도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당사자인 두 사람이 그렇게 하는게 좋겠다고 합의 하는 순간 타당한 일이 된다.
- P147

지원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눈을 꼭 감은 채 한동안 따뜻한 물줄기 아래 서 있자 몸과 마음이 물컹해지며 어떤 부분이 찬찬히 녹아내렸다. 영진이 짐을 싸서 나간 뒤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울음소리가 물소리에 내려앉았다. 딱딱하게 뭉치고 굳어 있던 감정들이 비누처럼 물러지고 풀어졌다. 다 녹아버릴 때까지 울고 싶다고 생각하며 샤워기 아래 서 있었다. 눈물과 울음소리가 배수구로 빠져나갔다
- P152

하지만 상처가 없고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외로워졌다. 그 외로움은 같은 종류의 아픔을 겪은 사람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며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과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생겨났다
- P164

1년 전인가. 출근길에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확 뛰어들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특별히 힘든 일이 있었다거나 회사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거 아니었다. 그저 좀 지쳤고 사는 게 고단했다. 전치 4주 정도만 나오면 좋겠다고 바랐다. 일을 그만두지 않고 합법적으로 쉬려면 다치거나 아파야 했다. 병실에 누워 있고 싶진 않았지만 한 달만 주민센터에 안 나가고 마음대로 살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 P227

살다보니 누군가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러서 신뢰가 깨지고 그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부수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서로 죽일 듯이 싸워야만 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같은 집에 살면서 대화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로의 뒷모습을 보며 적의가 담긴 눈길을 쏘아대는 순간 헤어짐이 시작되는 것이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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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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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단편들이 많은 부분 여자들(친구, 선배, 엄마의 친구들)간의 우정과 소원해짐, 그리고 재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감정에 대한 글들은 나름 잘 쓴 듯 하지만, 비슷한 주제가 반복하다 보니 지루했습니다. 더군다나,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우울하고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들에서 특히 좋았던 점은 바로 이들의 불안한 마음을 바라보는 태도였습니다. 꼭 고쳐야한다는 의무나 강요 없이, 이들의 불안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작품 안에서도 인물들이 서로를 무리하며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서술하는 인물 역시 이들에게 어떤 편견 없이 그들의 감정을 감정 그대로 받아들이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 같아 불편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각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불안정하고, 위태롭지만 그러면서도 단단하고 매력있습니다. 이 책에는 너무 작고 보잘것 없어 보여서 지나쳐 버리고 마는 그런 감정들을 끄집어 표현해내는 섬세함이 있는데 그 섬세함이 주인공들을 더 매력적이게 만들어줍니다.

작가는 특유의 섬세한 표현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인물들에게 공감하게 하고, 그들의 삶을 독자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듯 합니다. 또, 사람 사이에 질투, 증오 등 추한 감정과 사랑, 그리움 등 따뜻한 감정이 오가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서 ‘사람’을 생각하는 작가의 인간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글이란, 기교나 논리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글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작가가 가진 사람에 대한, 세상에 대한 진정성 때문일 것입니다.

새삼 소설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하는 일들을 마치 내 이야기처럼 경험하고 공감하게 만들어줍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각자 나름의 삶이 있다고 하면 쓰여져 있다고 해도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타인의 삶에 대한 멸시와 혐오의 감정이 좀 줄어들고 좀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냥 쇼코의 가상 친구나 일기장 정도였는데, 쇼코는 그냥 그 일기장에 일기 쓰기를 그만둔 것뿐인데, 일기장 주제에 쇼코의 삶에 개입하려고 했다니.
- P23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 P34

가끔씩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오면 받지 않거나 건성으로 받곤 했다. 할아버지는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냥 당연히, 원래 그렇게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상황이 나아지고 자리를 잡아서 떳떳해져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할아버지는 건강에 대해 가타부타하지 않았고, 되려 나이가 드니 감기도 잘 안 걸린다고 말했었다.
- P43

헤어지고 나서도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끝이 어떠했든 추억만으로도 웃음 지을 수 있는 사이가 있는 한편, 어떤 헤어짐은 긴 시간이 지나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심으로 남는다고
- P90

할머니는 일생 동안 인색하고 무정한 사람이었고, 그런 태도로 답답한 인생을 버텨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태도를 경멸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그 무정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 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그게 할머니의 방식이었다.
- P105

세상은 사람에 대한 사람의 사랑을, 제 목숨을 몇 번이고 팔아서라도 사람을 살려내고 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을 도리어 비웃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리너 너희 힘없는 인간들은 언제나 조심하고 사는 것이 좋을 거라고, 그 평범한 인간 여덟 명의 목숨 따위가 뭐가 대수냐고, 우리가 법이라고 하면 법이고 빨갱이라고 하면 빨갱이인 거라고, 꿇으라면 꿇으라고, 사람 같은 거 명분만 달아놓으면 쉽게 죽일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러니 입 다물고 말이나 잘 들으라고. 그들은 나라에 의해 살해되었다
- P108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그런 태도가 서서히 그들의 사이를 멀게 했고, 함께 살았던 시간 동안 쌓아왔던 마음들도 더이상 그 관계를 지탱해주지 못했다
- P114

두려움은 내게 생긴 대로 살아서는 안 되며 보다 나은 인간으로 변모하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었다. 달라지지 않는다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이 세계에서 소거되어 버릴 것이었다
- P129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 P164

침묵은 나의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고 싶지 않은 마음, 잊히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도 한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 P174

세상 제일 아프고 괴로운 건 나였으니까, 내 눈에는 내 고통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P203

다수의 선한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세상을 망친다고 아빠는 말했다. 아빠의 말은 맞았지만 그녀는 이런 세상과 맞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승패가 뻔한 링 위에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세상이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수그리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고,자신을 소외시키고 변형시켜서라도 맞춰 살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부딪쳐 싸우기보다는 편입되고 싶었다. 세상으로부터 초대받고 싶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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