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ew from Saturday (Paperback) - 『퀴즈왕들의 비밀』원서, 1997 Newbery
E. L. 코닉스버그 지음 / Aladdin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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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이라고 가볍게 읽기엔 뭔가 읽고 난 뒤에 느끼는 깨달음이 있는 성장소설이었습니다. '퀴즈'라는 재미있는 형식을 통해 아이들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구성 또한 신선했습니다. 퀴즈질문에 대한 정답을 맞추는 이야기는 어디에선가 본 듯한데 '슬럼덕밀리어네어'라는 인도영화와도 사뭇 닮아있는 듯해요.

모두 다른 곳에서 와서 모인 네명의 6학년 아이들, 각각의 아픔이 있는 이 아이들이 한팀을 이루어 퀴즈대회에 나가서 우승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서로 다르면서도 얽혀 있는 아이들,‘The Souls’이라는 모임의 그룹을 만들고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 차를 마시며 함께 모여, 얘기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친구들이죠. 퀴즈에 관련된 책이라 해서 크게 기대는 안했는데, 굉장히 재밌게 읽었어요

퀴즈의 정답은 머리 속에 외워 저장된 지식이 아닌 4명의 아이들 각자가 겪은 '산 지식'과 지혜로, 결국 퀴즈대회를 우승하게 됩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책 속에 있는 지식이 아니라 경험하고 스스로 깨닫는 지식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4명의 아이들에게서 톡톡 튀는 개성과 따뜻한 인간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한쪽으로 극화시키지도 않고 심하게 변형시키지도 않은 평범한 우리 아이들의 모습 그 자체가 섬세하게 그려졌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이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속엔 갈등을 겪고 있을 아이들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처음엔 ‘The Souls' 네명이 모두 주인공이고 이 아이들의 성장기내지는 치유소설인가보다 했는데 오히려 올린스키 선생님이 많이 치유되고 위로 받은 느낌이었던것 같네요.

작은 친절함, 잠깐의 상냥함, 한 번의 미소.

우리 삶을,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활짝 펴게 만드는 것들은 거창하고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훈훈하고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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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egetarian : A Novel (Paperback) - 『채식주의자』영문판
Han Kang / Granta Books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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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주는 신선함과 호기심 그리고 맨부커 작품상 수상작이라는 기대감으로 읽었습니다.

익숙한 제목만 듣고 내용은 전혀 예상 하지 못한 내용이라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내용이기괴하고 은근히 파괴적이지만 작가의 필력에 반해서인지 흡인력이 대단하네요

세 편의 스토리가 연결되어 있고 영혜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는데, 각각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꾼 후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는 고기를 먹지 않으면 꿈을 꾸지 않을 줄 알았는데, 사실 얼굴은 자신의 뱃속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동물인 걸 거부하고 물과 햇빛이면 족한 나무가 되기 위해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단지 음식에 대한 선호가 다른 것 뿐인데,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녀를 이해하려들지 않습니다. 폭력적으로 고기를 입에 들이밀던 아버지, 다름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불편해하고 자신처럼 행동하라고 위해를 가하는 모습이 그녀를 더욱 더 극단으로 몰아간 것 같아 마음이 내내 불편했어요. 예술이란 미명아래 보듬어야할 가족을 더욱 취약한 상태에 두고, 아내의 헌신을 배신한 형부가 가장 씁쓸했고요. 자신은 늘 뒷전이고 남을 위해 배려하고 희생했던 언니 인혜의 삶도 마음 아팠습니다.

‘고기’가 단순히 고기 이외에도 육신의 욕망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이미지도 떠올려지고 읽으면서도 상당히 글도 에로틱한 책 이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한글로 읽을 때보다 더 느리게 읽을 수 밖에 없어 더 오래 잔영이 남을 것 같아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전개, 뭔가 선명하게 설명하지 않는 불친절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육식을 거부하는 독특하고 단순한 출발로 시작하지만, 폭력, 타인에 대한 이해, 인간의 존재 등의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사람들인데, 내면의 무의식, 꿈 속에 들어나는 잔혹함, 폭력적인 부분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한국정서가 깔려있어서 영어로 씌여진 것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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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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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교련이란 걸 학교 다니면서 교육을 받은 세대입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교련이 우리에게 뭘 가르치려고 했던 건지 참 납득이 안 되더군요

교련 수업 시간에 삼각건으로 팔이 부러졌을 때의 매는 법, 머리를 다쳤을 때 머리에 압박붕대 매는 법, 생화학 상황에서의 대처법 등을 배웠습니다. 실습도 하고, 실제로 삼각건 매기나 머리에 붕대 감기, 다리 다쳤을 때 부목대기, 출혈부위에 끈이나 벨트, 그리고 근처의 나무막대기 등을 이용해서 지혈하는 방법 등을 가지고 실제로 실기시험까지 봤었으니, 지금의 학생들이 보기에는 신기해보이겠죠

붕대감기라는 제목은 진경과 세연이라는 두 친구의 고등학교 때 경험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교련 시간에 둘씩 짝을 지어 머리에 붕대 감는 실기 시험을 봤는데 세연이 매우 긴장한 탓에 진경의 머리에 붕대를 원래 감아야 하는 것보다 한 바퀴 더 돌려 감았습니다. 붕대가 모자라자 당황한 세연은 붕대를 꽉 당겼고 진경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서로에게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그날로 인해 서로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에서는 각기 다른 세대와 성향을 가진 많은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친구이자 선생님으로, 또는 언니이자 동생으로 서로의 삶에 가까이 맞닿아 있습니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은정, 불법촬영 피해자인 미진, 그로인해 집회에 나서게 된 지현, 남편과 이혼 후 홀로 살아가는 윤슬 등. 작품에서 여성들은 각자의 삶을 짊어진 채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진경 딸 율아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녔던 서균의 엄마 은정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서균이 8개월 전 교회 수련회에 갔다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뒤 은정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할 단 한명의 친구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기도 합니다.

은정이 다니는 미용실의 미용사 지현이 있습니다. 은정이 서균을 데리고 마지막으로 미용실에 왔을 때 가게 안을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서균과 그런 아이를 방치하는 은정을 비난하는 트윗 글을 올렸던 지현은 나중에 아이의 소식을 듣고 죄책감에 사로잡힙니다. 그 죄책감은 과거 불법촬영 피해자 친구를 돕다가 지쳐서 연락을 끊었던 데 대한 미안함을 다시 불러옵니다.

다분히 페미니즘 요소가 충분히 담겨있는 소설입니다. 분명 지금 시대가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겠지만, 여전히 아닌 부분도 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그 문제를 인식하기도 하고 눈치채지 못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함께 살아가는 여성의 목소리와 그들의 속마음을 담담하게 들려줍니다. 쉽게 읽히지만 그 문제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끼리의 화합이라기보단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제시하는 듯합니다. 같은 여성이지만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기혼일 수도, 미혼일 수도 있고, 워킹맘일 수도 있고, 전업주부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다르면 함께 갈 수 없겠지만, 그래도 각자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진정한 연대는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라도, 자기가 누군지조차 잊은 채 요양원에 계신 엄마에게라도 전화를 걸어 말을 하고 싶었다. 딱 한 명만 있었으면, 은정은 종종 생각했다. 친구가, 마음을 터놓을 곳이 딱 한 군데만 있었으면.
- P20

우정이라는 적금을 필요할 때 찾아 쓰려면 평소에 조금씩이라도 적립을 해뒀어야 했다. 은정은 그런 적립을 해둬야 한다는 생각도,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할 거라는 예측도 하지 못했다. 그런 식의 적립과 인출이 너무도 부자연스럽다고, 노골적인 이해관계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친분을 쌓는 사람들을 남몰래 폄하했다.
- P23

이 거대한 산업의 어디까지가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고, 어디서부터가 여성을 아름다움에 억지로 묶어 자유를 빼앗는 일일까.
- P37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이해받을 수도 없는 그런 분열과 자괴감 때문에 지현은 다른 사람들, 말하자면 바람 같은 사람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게 되었다.
- P39

마흔넷, 마흔다섯, 지금 진경이 지나가고 있는 그 나이가 딱 그랬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싫었다. 자신도 싫었거니와 그 싫은 자신을 조금이라도 견디며 살려면 영양제를 먹고 운동을 하고 밝고 좋은 것들을 챙기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이 듦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더더욱 싫었다
- P89

세상이 변해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흐름의 중심을 향해 헤엄쳐 갈 나이는 지났다. 뒤로 물러나 물결에 실려 간다. 퇴적된 지층의 일부가 되어. 별다른 기여를 할 수 없으니 목소리를 높여 지분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윤슬에게도 치열하던 시간이 있었고, 이제는 힘주어 살기보다는 영화처럼 삶을 볼 시간이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 P95

서른 살 때는 마흔 살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사는 걸까 생각했어. 그 칙칙함, 꾸물꾸물한 울분을 왜 우리가 떠받쳐줘야 하는 건가 싶었지.나이 든 선배들이 똑바르고 훌륭하면 그렇지 못한 내가 미워서 그 사람들을 질투했고, 서투르면 나잇값이 못 하고 저렇게 서툴다고 흉을 봤어. 그냥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이 싫었어. 지금 젊은 사람들은 안 그렇겠니?
- P115

아무튼 세상은 무서운 곳이니까 여자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연은 어째선지 조금 마음이 편했는데, 그건 ‘여자’라는 말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블라우스 밑 가슴께에도 족쇄처럼 채워져 있어서, 숨이 막히는 게 자신뿐은 아니라는 생각, 간신히 다른 아이들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P126

진경은 거울일 뿐이었다. 진경을 보며 진경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을, 27년 전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 붕대를 들고 서 있던, 단지 완전히 성숙하지 못했고,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어서 엉거주춤 서 있던 어린 자신을, 세연은 한없이 미워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도,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게
- P142

몇 번의 격렬한 논쟁 끝에 채이는 형은과 다시 일상을 같이 하게 되었다. 친구이기는 하지만 자주 싸웠고, 싸우다가 화해하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사이가 되었다. 형은은 채이의 무심함과 종종 비합리로 흘러가버리는 낙관주의를, 아무나 함부로 믿어버리는 순진함을 종종 지적했다. 채이는 형은에게, 나이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불신하는 버릇, 갑작스럽게 분로를 폭발시키며 말을 함부로 하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에둘러 타일렀다. 경혜와 서로 조심스러워 건드릴 수 없던 부분까지도 형은과는 숨김없이 건드리고 비판하고 설득하고 다투다가 풀어질 수 있었다
- P144

정직하게 말하자면, 편입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여성주의라는 이 거대한 흐름에 동참해서, 자신도 그 안에 있다고, 우리는 적이 아니고 같은 편이라고,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여성은 여성에게 너무 쉽게 엄격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 해요 서로를 그렇게 적대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없어요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건 세연의 진심이기도 했다
- P151

너는 가끔 사람들의 눈앞에서 문을 꽝꽝 소리 나게 닫아 버리잖아.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 사람들이 따르지 않기 때문에 말이야. 그럴 때마다 말하고 싶었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좀 기다려 줄 순 없는 거니? 모두가 애써서 살고 있잖아. 너와 똑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삶이 전부 다 잘못된 거야? 너는 그 사람들처럼, 나처럼 될까 봐 두려운 거지. 왜 걱정하는 거니, 너는 자유롭고, 우리처럼 되지 않을 텐데. 너는 너의 삶을 잘 살 거고 나는 너의 삶을 응원할 거고 우린 그저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인데.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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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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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TV만 틀면 타투를 가진 연예인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대중의 상징인 TV매체에 자주 노출된다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그만큼 대중에게 많이 다가왔고, 개성으로 타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니까요

아직 우리나라 정서상 문신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몸에 새기는 문신이 '패션타투‘와 같은 작품들이 노출이 많이 되고 세련화되면서 ’타투‘라는 영어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즉, 나타내는 말이 바뀐다는 것은 대하는 인식의 변화를 나타냅니다.

자신을 드러내놓고 뽐내고 싶어하는 세대들은 문신을 새기는 것으로 자신들의 개성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문신’을 소재로 한 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 시미는 결혼생활은 오래 하지 않았지만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와 새엄마의 손에서 자라게 됩니다. 간간히 소식은 전해 듣고 통화는 못하지만 메세지로 소통하지만 이마저도 나이가 들고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더이상 연락하기도 힘듭니다. 자신이 힘든 시절에 엄마가 곁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는 젊었을 때 일을 잘해서 40대 중반인데도 불구하고 취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 들어온 여직원도 들어오지만 그렇게 신경은 쓰지는 않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했지만 불가피하게 잦은 이직으로 막내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스물여덟의 화인은 손가락으로 문신을 훑으며 언제 새긴 거냐며 다그치는 상무의 호통에서 시미의 도움으로 벗어납니다. 그렇게 친해진 시미는 화인으로부터 문신하는 곳을 소개를 받습니다. 예약을 하고 찾아간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은 보지 못합니다. 그래도 주인이 이를 알고 친절하게 대해주었기에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선뜻 타투를 하는 것은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망사건이 터집니다. 화인의 집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화재로 인해 아파트 발코니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입니다. 그녀는 옷장에 가둬 두었고 결박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이상한 건 그녀가 했던 문신이 지워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그녀에게 찾아간 시미는 그녀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신이 새겨 넣은 도마뱀 문신이 살아 움직여 자신을 괴롭힌 이들에게 복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결혼 3년만에 남편으로부터 쫓겨나 오랫동안 아들의 소식은 물론 얼굴조차 모르던 시미는 어렵사리 아들과 연락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 아들이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와 취직을 할 때까지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겨우 만난 자리에서 아들의 거절에 더 이상 만날 수 없던 고통을 안고 있던 시미는 결국 문신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신을 하고 나온 순간 하늘에 처음 보는 별무리를 바라보게 됩니다. 마치 자신이 새겨넣은 문신처럼.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문신과 함께 다시 삶을 시작하는 첫 발을 디딛게 됩니다.

구병모 작가의 작품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불완전한 인간 존재를 내세워 인간성의 실존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개성이 강하고 디테일에 힘이 있으며 잘 다뤄지지 않는 나이 많은 여성의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사회구조적 모순을 소설이라는 매개체로 폭로하는 작가의 정신은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입니다.

심리적으로는 끈끈하게 묶여있는 화인과 시미의 우정과 겉으로는 어쩔 수 없이 묶여있는 사무적인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사람이란 존재는 사회적 존재일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숨 쉬듯 벌어지는 은밀한 폭력 속에서 어딘가에 나를 보호해 주고 구원해주는 것은 비록 손에 잡히지 않는 ‘별’과 같은 작은 희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결국 책에서 말하는 문신은 단순히 문양 하나를 몸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심장에 수를 놓는' 행위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문신’이라는 소재로 작가만의 판타지를 그려낸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새긴다. 고로 누군가의 몸 위에서 존재한다. 수백 년 전에도 그랬듯 나 역시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이미 몸에 새겨진 것을 굳이 언제 했는지 따지는 의도는, 입사 전이라면 어릴 때부터 좀 놀던 애로 치부하려는 것이고, 입사 후라면 회사원이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두 배로 면박을 주려는 것이리라. 어느 쪽이든 트집 잡을 거리는 차고 넘친다. 화인이 단호하면서도 윗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만큼 은근한 자세로 몸을 돌려서 마주 본 자세를 취했음에도, 상무는 자꾸만 한 발 내딛곤 목을 길게 빼어 화인의 목덜미를 넘겨다보려 했다
- P29

정말로 나를 지켜줬어요. 제일 절박했던 순간에. 이러다 죽을 것 같았을 때.
- P105

축복의 말은 입 밖으로 나온다고 하여 그것을 말한 사람의 내면에서 총량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실제의 축복이 달아나거나 가치가 감소하지도 않으니까.
- P116

자연의 어느 부족에서는 사자의 장례를 치를 때 그의 영혼이 들고나는 통로를 마련해주고자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와 구실이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거라면, 자신을 수호하는 용도의 문신이 있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P129

충동과 우연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실제로 그것들이 자연이며 우주며 만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생각 많은 것도 일관성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 P135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 P138

충동이 솟는다는 건, 태울 에너지가 생성됐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 누구보다도 빛나기를 바라는 열망이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시미는 그것들이 몸 곳곳에 오래된 흔적처럼만 존재하여 가끔씩만 자신을 가볍게 흔들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시미는 돌아서서 지나간 싸움과 현재의 공허가 앞으로의 날들에 드리울 그림자의 무게와 길이를 재어보았다
- P142

스스로가 빛나지 않는다면, 시미는 다만 몇 발자국 앞이나마 비추어줄 한 점의 빛을 보고 싶었다. 바라는 건 그 뿐이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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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10주년 기념 특별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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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골목골목 심리상담하는 곳들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보입니다. 의료기관이 아니더라도 음악·미술·문학 등에 ‘심리’ ‘치료’라는 이름을 붙여 심리상담을 하는 곳도, 가르치는 곳도 많습니다. 현대인은 누구나 만성적 불안과 방황을 겪는데 권위가 상실되고 경쟁이 치열해진 사회에서 이를 혼자 해결하려는 노력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만큼, ‘나’를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본래 심리학은 인간의 모든 행위, 사고, 관계, 상황을 설명하는 과학적 탐구양식입니다. 이러한 심리학 전문 지식을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는 풀어쓴 책이 많이 보이는 것도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반갑게 마주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자식들 그리고 출근길을 나서며, 마주치는 아파트 경비원 등 수많은 사람들을 직장과 사회생활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만남과 인연 속에서 때론 살인, 강도나 사기 등 수많은 범죄로 부터의 피해를 입는가 하면 친하게 지내던 가족이나 지인에게 배신도 당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통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 책은 우리가 마주칠 수 있는 좌절과, 분노, 우울 시기심, 질투심 등 우리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이드와 자아 초자아에 대한 각종 스트레스와 신호불안을 미리 알아차려 그것을 치유하고 내성을 키워 건강하게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자신의 마음으로 통하는 길을 찾아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지나간 실패나 과거에 얽매여 좌절하거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이 시점에서 왜 그러한 일이 내게 생겼는지 객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현실을 직시하여,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긍정적인 생각으로 흐트러진 감정과 상처 입은 마음을 잘 보듬고 정리하여 자아의 힘을 튼튼하게 기르게 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자라온 유년기를 시작해서 청년기를 거쳐 중년기에 접어든 나의 현재 모습을 돌이켜 보며 지나간 중요한 사건과 추억을 떠올리며 과거에 대한 좌절감과 절망감, 불안감, 분노감, 공포감 등에 대한 그 때의 내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면서 내 마음의 돋보기가 되어 나를 좀 더 자세히 통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꿈은 무의식의 힘을 빌려 무엇인가를 해결할 수 있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지적 활동이다.” 라는 말에 공감이 가며 꿈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가끔 꿈을 꾸면 꿈과 실제 상황과 맞는 경우가 자주 있어 섬뜩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꿈을 통해 무의식의 지혜를 탐색하는 꿈에 대하여 자세히 공부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자신에 대한 내면의 세계를 알아가는 자기성찰의 학문이고, 정신분석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분석은 과거가 아니고 지금 현재의 공간에서 하는 상담자와 내담자가 나누는 이야기 위에 초점을 맞춰 소통을 통해 과거를 이해하고 내 마음 깊숙이 숨어있는 무의식과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살아가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행복에 이르는 첫 번째 관문은 자기 자신의 내면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고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욕동과 자아와 초자아의 갈등을 해결하여 승화시켜 내적인 단련을 통해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자존감을 높여, 진정한 마음의 자유를 통해 자신에 대한 새로운 삶을 변화시켜야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반 독자가 정통 심리학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전공서는 어려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고 대중서는 흥미와 재미 위주로 책을 꾸미다 보니 가볍게 여겨지기 십상입니다. 심리학은 사회적 존재이자 생물적 존재인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험하게 되는 일상생활을 비롯해 우리가 접하는 모든 부분이 심리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미 대중을 상대로 한 교양심리학 책은 이미 수 없이 많이 나왔고, 근래에는 다른 분야(뇌과학, 역사, 문학, 미술)와 콜라보를 하여 흥미를 주는 책들도 많이 출간되는 듯 합니다. 뭐든 ‘심리’란 말을 갖다 붙여 포장하거나 심리학이 지닌 학문적 설득력과 신뢰감을 가볍게 활용한 상술로 생각되기도 하고, 그저 얄팍한 유행으로 끝나 버릴 것 같기도 합니다.

대중서라고 하기엔 다소 부겁고, 전공서라고 하기엔 부담 없이 읽기는 했습니다. 중간중간 전문적인 용어와 단어들이 많아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니었지만, 내 자신에 대한 매뉴얼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정신분석은 소위 상담이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업입니다. 내가 내 생각을 말하면 분석가는 언어로 표현한 텍스트를 해석해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나에게 돌려주거나 스스로 의미를 알아차리도록 도와줍니다. 인간은 결국 감성적인 동물입니다.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믿는 사람일수록 마음속에 문제가 많습니다. 마음도 몸처럼 치료가 필요합니다.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아픈지를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정신분석이란 바로 그 마음을 확대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렌즈입니다
- P22

내 마음의 진실을 알려면 내가 무엇을 방어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내 행동, 태도, 성격에 묻어나오는 방어기제를 잘 살펴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분석 시간에 하는 일 중에 방어기제의 분석이 중요합니다.
- P74

완전히 검거나 완전히 흰 ‘선명한‘ 인생은 없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중간인 여러 채도의 회색들이 필요합니다. 통합되지 않고 대립된 상태로 저장된 선명한 이미지들만 마음에 지니고 있으면 세상이 온통 갈등 구조로 보여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내 마음이 언제나 싸움터라고 생각된다면 자신이 세상을 몇 가지 색으로 구분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색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정신분석이 우리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 P83

부정적인 감정은 나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행복추구 문화‘는 슬픔이라는 정상적인 감정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게 우리를 억압합니다. 슬픔과 고통을 느낄 줄 알아야 행복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 P90

망설임을 정신분석 용어로는 ‘양가감정‘ 이라고 합니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을 느끼거나 태도를 보인다는 뜻입니다
- P147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은 짐작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정신분석은 내가 말한 것에 근거해서 나에게 되돌려주는 과학입니다.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치료자는 위험합니다. 그러니 혼자 있을 때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는 연습을 꾸준히 하십시오. 그러면 길이 보입니다.
- P173

여러분 앞에 분석가가 있다고 스스로 상상해보세요. 그와 대화함으로써 내가 대상을 찾아 방황하는 현재는 내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울을 어떻게 닦아내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 P179

고독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고독을 통해서 자랍니다. 세상 일이 모두 즐겁고 남들과 어울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면 고독은 진정으로 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세계를 통합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나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정신분석가의 카우치에 누워서 하는 일도 따지고 보면 매우 고독한 작업입니다. 분석가의 작업도 오랜 기간 분석받는 사람의 내면세계와 홀로 직면해야 하니 고독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애착만으로 물든 관계는 멀리 못 갑니다. 고독이 없는 성숙은 가볍습니다.
- P190

모든 사랑은 과거로부터 온 것입니다. 모든 사랑의 근원은 첫사랑에 있습니다. 다시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옛사랑을 다시 찾는 일입니다. 사랑은 퇴행적입니다. 현재같이 보이지만 과거로 돌아간 것입니다. 정신분석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랑은 과거가 현재에 덧입혀지는 전이 현상입니다.
- P209

사랑은 자신이 잘 달래야 하는 감정입니다. 상대가 처음부터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속으로는 자꾸 나와 같은 사람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에 쉽게 속지 말고 사랑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지 마십시오. 사랑은 결국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P211

용서는 절대로 상대의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한 짓을 잊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란 내 상처의 원천이자 원한과 복수의 대상인 상대 자체를 마음에서 버림으로써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자 결과입니다
- P219

‘내가 왜 그랬지‘ 하고 반복해서 후회하게 되는 일을 찬찬히 살펴보면, 대부분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 P229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갈등의 심리학‘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들은 삶의 동반자입니다. 갈등은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 곁에 늘 있습니다. 시달리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갈등의 순환 고리를 탐색하고 의미를 이해하고 새로 다듬어야 합니다. 그러한 작업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니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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