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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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TV만 틀면 타투를 가진 연예인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대중의 상징인 TV매체에 자주 노출된다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그만큼 대중에게 많이 다가왔고, 개성으로 타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니까요

아직 우리나라 정서상 문신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몸에 새기는 문신이 '패션타투‘와 같은 작품들이 노출이 많이 되고 세련화되면서 ’타투‘라는 영어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즉, 나타내는 말이 바뀐다는 것은 대하는 인식의 변화를 나타냅니다.

자신을 드러내놓고 뽐내고 싶어하는 세대들은 문신을 새기는 것으로 자신들의 개성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문신’을 소재로 한 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 시미는 결혼생활은 오래 하지 않았지만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와 새엄마의 손에서 자라게 됩니다. 간간히 소식은 전해 듣고 통화는 못하지만 메세지로 소통하지만 이마저도 나이가 들고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더이상 연락하기도 힘듭니다. 자신이 힘든 시절에 엄마가 곁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는 젊었을 때 일을 잘해서 40대 중반인데도 불구하고 취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 들어온 여직원도 들어오지만 그렇게 신경은 쓰지는 않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했지만 불가피하게 잦은 이직으로 막내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스물여덟의 화인은 손가락으로 문신을 훑으며 언제 새긴 거냐며 다그치는 상무의 호통에서 시미의 도움으로 벗어납니다. 그렇게 친해진 시미는 화인으로부터 문신하는 곳을 소개를 받습니다. 예약을 하고 찾아간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은 보지 못합니다. 그래도 주인이 이를 알고 친절하게 대해주었기에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선뜻 타투를 하는 것은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망사건이 터집니다. 화인의 집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화재로 인해 아파트 발코니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입니다. 그녀는 옷장에 가둬 두었고 결박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이상한 건 그녀가 했던 문신이 지워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그녀에게 찾아간 시미는 그녀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신이 새겨 넣은 도마뱀 문신이 살아 움직여 자신을 괴롭힌 이들에게 복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결혼 3년만에 남편으로부터 쫓겨나 오랫동안 아들의 소식은 물론 얼굴조차 모르던 시미는 어렵사리 아들과 연락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 아들이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와 취직을 할 때까지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겨우 만난 자리에서 아들의 거절에 더 이상 만날 수 없던 고통을 안고 있던 시미는 결국 문신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신을 하고 나온 순간 하늘에 처음 보는 별무리를 바라보게 됩니다. 마치 자신이 새겨넣은 문신처럼.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문신과 함께 다시 삶을 시작하는 첫 발을 디딛게 됩니다.

구병모 작가의 작품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불완전한 인간 존재를 내세워 인간성의 실존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개성이 강하고 디테일에 힘이 있으며 잘 다뤄지지 않는 나이 많은 여성의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사회구조적 모순을 소설이라는 매개체로 폭로하는 작가의 정신은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입니다.

심리적으로는 끈끈하게 묶여있는 화인과 시미의 우정과 겉으로는 어쩔 수 없이 묶여있는 사무적인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사람이란 존재는 사회적 존재일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숨 쉬듯 벌어지는 은밀한 폭력 속에서 어딘가에 나를 보호해 주고 구원해주는 것은 비록 손에 잡히지 않는 ‘별’과 같은 작은 희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결국 책에서 말하는 문신은 단순히 문양 하나를 몸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심장에 수를 놓는' 행위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문신’이라는 소재로 작가만의 판타지를 그려낸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새긴다. 고로 누군가의 몸 위에서 존재한다. 수백 년 전에도 그랬듯 나 역시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이미 몸에 새겨진 것을 굳이 언제 했는지 따지는 의도는, 입사 전이라면 어릴 때부터 좀 놀던 애로 치부하려는 것이고, 입사 후라면 회사원이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두 배로 면박을 주려는 것이리라. 어느 쪽이든 트집 잡을 거리는 차고 넘친다. 화인이 단호하면서도 윗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만큼 은근한 자세로 몸을 돌려서 마주 본 자세를 취했음에도, 상무는 자꾸만 한 발 내딛곤 목을 길게 빼어 화인의 목덜미를 넘겨다보려 했다
- P29

정말로 나를 지켜줬어요. 제일 절박했던 순간에. 이러다 죽을 것 같았을 때.
- P105

축복의 말은 입 밖으로 나온다고 하여 그것을 말한 사람의 내면에서 총량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실제의 축복이 달아나거나 가치가 감소하지도 않으니까.
- P116

자연의 어느 부족에서는 사자의 장례를 치를 때 그의 영혼이 들고나는 통로를 마련해주고자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와 구실이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거라면, 자신을 수호하는 용도의 문신이 있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P129

충동과 우연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실제로 그것들이 자연이며 우주며 만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생각 많은 것도 일관성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 P135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 P138

충동이 솟는다는 건, 태울 에너지가 생성됐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 누구보다도 빛나기를 바라는 열망이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시미는 그것들이 몸 곳곳에 오래된 흔적처럼만 존재하여 가끔씩만 자신을 가볍게 흔들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시미는 돌아서서 지나간 싸움과 현재의 공허가 앞으로의 날들에 드리울 그림자의 무게와 길이를 재어보았다
- P142

스스로가 빛나지 않는다면, 시미는 다만 몇 발자국 앞이나마 비추어줄 한 점의 빛을 보고 싶었다. 바라는 건 그 뿐이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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