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미생 김파전의 파전행전 - 파트타임 전도사의 리얼 행복 일기
김정주.정새나 지음, 이현숙 그림 / 선율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노력과 노오력 사이에서 분투하는 삶.

 

단 신선하고 정답다. 멀리 강대상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바로 옆에서 나누는 신앙은 오히려 더 새롭고 다정하다.


  40킬로그램이나 되는 쌀자루를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예수님은 어디로 가셨단 말인가?(15)

 

성도들의 신앙생활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성도들을 신앙이 없다 비난하기 쉬운 상황에 있는 목회자들을 영적 부르주아라 평하거나,

 

설교가 현실적이어야 사람들이 듣는다고 하면서 한껏 시대정신의 흐름에 합류한 설교들을 현실적인 메시지라 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성도들의 현실 속 사정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함께 느끼면서 많은 눈물을 머금고 외치는 설교가 진정한 현실적 설교라고 생각한다.(18)

 

과 같이 일상과 분리되어있는 듯한 교회에 대한 지적도 날카롭다.

 

하지만 무엇보다, 슬프고도 웃기지만 눈물 나는 모습들, 예를들면 8미터 상공에서 하는 걸레질, 캔 공장의 소음을 경험할 직장인들에 대한 공감과, 보통은 교회에서 무시당하기 쉬운 평신도들의 일요일, 그 하루의 헌신을 높이 봐주고 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 입장에서 참 감사했다. ^^)

 

아무래도 고생을 해본 사람이라 그런지, ‘긍정의 힘이나, 뻔한 조언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데.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긍정의 배신 비슷하게 보면서 비판하고, (그러고 보니 '긍정의 배신'이라는 제목의 책도 있는데 읽어봐야겠다.)

 

 

얼마 전, 멈춰서 보기를 좋아하는 한 스님이 쉬는 날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지 말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보세요. 봉사 활동을 하시든가 외국어나 미술, 악기를 배우거나 뮤지컬을 보거나 전시회나 여행을 가세요. 삶의 내용이 알차면 남의 일에 거품 물지 않습니다.”

(중략) 하루종일 노농을 하고 숙소에 들어오니 책은 개뿔!! (중략) 멈춰서 보면 많은 것들이 보이는 걸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멈출 수 있을 만큼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구조 속에 있으니 도저히 못 멈추는 거다. (39)

 

이렇듯 일반적인 에세이와는 조금 느낌이 다른데, 일상의 감상보다는(물론 그 일상에서 느끼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가득하다.) 어찌 보면 소박하다 못해, 부족하다 못해, 뭐 하나 빠진 듯한 내 모습을 타인을 통해 보는 느낌이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고백과 노래가 많이 나온다.

오호라, 나는 찌질한 사람이로다. 이 솔로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거나


빚 되신 주

이자 가운데 비추사

원금 갚게 하소서”  (63)

 

처럼 친숙하고 힘든 삶에 녹아있는 하나님을 이야기 한다. 그 삶은 분노, 원망, 욕설까지도 하나님께 퍼붓고 나서야 다가오는 회복....

  

우리 삶을 생각하거나 주변을 둘러봐도

믿음”-> “걱정이 사라짐”-> “모든 문제 해결“-> “축복”-> “잘되는 나

연결 되지 않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생활이다.

 

저자, 가진 걸 털어서 단기 선교를 다녀왔으나 학자금 대출은 더 커 커지고, 직장에서 더 욕을 먹게 되, 긍정의 힘과는 반대 상황, 언제나 은혜롭고 싶으나,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욕하고 원망하고, 그러다 다시 회개..... 이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나는 성인이나 성자가 아니니까 말이다. (아니? 다윗도 나를 버리시냐면서 불평했는데? ^^;;)

 

아무튼 부패한 교회에 대한 분노와, 성도들의 삶을 느껴가며,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조금 더 이해하는 이야기. 현실적인 삶에 기초해 꾸밈이나, 억지로 만들어낸 착한 모습을 지워버린 영성이 더 은혜롭고 교회에서는 듣기 어려운 다정한 한 마디를 듣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이 나오는 그 때까지도, 저자의 집은 옥탑방이고, 저자는 아직 대출금도 다 갚지 못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고, 목회자들이 진정으로 이해해야할 모습이다.

 

그래서 나와는 너무 먼 듯한 설교에 지친 성도들, 또는 요즘 쏟아지는 대책 없는 힐링서적들에 지친 사람들에게 오히려 같이 울어주는 듯한 이 책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멀고 거룩한 자리에서 조금 더 삶의 자리로 내려온 신학, 일상에 발을 디딘 영성....

 

!>

저자가 직장에서, 학교에서 너무나 바쁘고 가난한 가운데서, 주일이면 봉사하는 성도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그게 사무직이든, 밖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든, 이런 일들을 체험 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저자도 이 시간을 통해 성도들은 교회에서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진행하기보다 말씀을 알려주길 원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며 성도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신학지식이나 유창성보다 성도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역자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고 하니, 예비 신학도들의 노동 경험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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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의 시 149
허연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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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집에 대한 서평을 슬 때면 조심스러워 진다. 차라리 시 몇 편에 대한 서평만을 쓴다면 내 느낌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한 권의 시집에 대한서평은 쓰기가 조심스럽다. 여기 나온 모든 시가 내가 시집을 읽으며 느낀 감정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한 작품만 뽑기에는 다른 작품이 아쉽다. 그래서 그냥 주관적으로 정리 하고자 한다.

 

먼저 이 시집에 나온 시 대부분은 연 구분이 없다. 그래서 마치 혼자 읊조리는 듯이 느껴진다.

 

 

세상의 냉혹함과 차가움을 충분히 느낀 소년

이미 세상의 모든 일을 원래 일어날 일들이었습니다.”(커피를 쏟다 중)라며 거리를 두거나,

빛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나를 지나쳤을 뿐 어차피 내 손목이나 내 사랑은 안중에도 없었다. (빛이 나를 지나가다)

 먹고 먹히는 데 이유는 없다

 

신념이 필요 없는 이유는 충분하다(태평성대 중)

 

이렇듯 차가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과, 그런 세상 속에서 결국은 일어나는 일들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못 차갑다.

 

 신성한 모든 것이 세속적이 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회사에서 시말서를 쓰는 일상적 모습, 인생에 그 이상의 것은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새로움이 사라지고, 기대도 사라지고, 사랑에도 아프지 않고, 비굴할 만큼 비굴해지고 오만할 만큼 오만해진 저자가, 아무 것도 아닌 시를 위해, 아무 것도 아니길 바라며(휴면기 중) 다시 시로 나아오는 노래는 그래서 슬프다.


하지만 그런 세상속에서도 여전히 푸른 소년이기를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버린 저자가, 허무하다 외치는 시인이 자신을 나쁜 소년으로 표현한 것처럼, 우리 속에 있는 아직 세상에 발 담그지 않은 소년, 세속에 물들지 않아 세상에서 배척받는 나쁜 소년으로서의 모습이 그러한 아무 것도 아닌, 세월 속에서, 시간의 흐름 안에서 고독함 속에서 푸르게 남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빌헬름 스테켈이라는 정신분석 학자가 쓴 것이야. 이렇게 말했구나…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빌헬름 스테켈[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재인용])

 

고결하게 죽지 못했으나 죽을 수 있었던 시절을 그리며, 이제는 세속에 물들고 아무 것도 아니게 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 그게 삶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시의 시인은 그러한 성숙함에 이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어떤 고결함에 머물고자 울부짖고 있다. 그런 모습은 좋게 보면 각박한 삶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으나 다른 면에서 보면 다른 면을 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조금 아쉽고 괴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세상과 타협한 것은 삶에서 충분히 느끼고 있으니 이렇게 타협하지 않으려 애쓰는 작품을 보는 것에 더 신선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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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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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품에 대해>

 

일단 이 책은 기독교 소설임을 분명히 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낮은 평점 대부분이 무신론자라면~’이라는말이 들어가거나, ‘왜 용서를 강요하느냐?’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소설의 장르를 너무 넓게 잡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용서를 강요하는 듯한 하나님이나 독립성을 죄로 보는 것은 다

 독자가 기독교인이라는 가정하에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는 이야기나 죄의 근원이 잘못된 독립성으로 인함이다.”는 내용은 사실 기독교 교리 등에서 기본적으로 다루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이번 서평은 위 내용들에 대해 이야기 하며 아쉬운 점과 좋은 점을 조금 더 살펴보려 한다.

 

 1.용서에 대한 강요?

 

위에 이야기한 내용만 다루자면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가해자가 용서 받은 경우는 제대로 된 기독교에서는 허용 되지 않는다. 성경은 "내가 기도중이거나 예물을 드리던 중이라도 누군가에게 원망 들을 일이 생각나거나 다투었다면 그 예물은 내려놓고 가서 화해하거나 용서를 받은 뒤에 다시 와서 드려라. 그래야 그 예물을 받으실 것이다.“ 고 가르친다.

 

그러니 하나님께 용서 받았다고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그 사람에게 용서 받지 못했다면 아직 용서 받지 못한 것이다.

 

덧붙이면 지금 한국교회가 너무 하나님께 받는 용서만 강조하고 사람과의 화목은 강조하지 않아서 문제이다. 그래서 밀양같은 내용이 나오는 것이고 이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참고로 밀양 원작인 벌레이야기의 작가 이청준 선생님의 의도는 5.18 범죄자 사면에 대해 다루려 하셨다는데, 이청준 작가의 다른 작품인 낮은 데로 임하소서 등을 봐도 이 해석이 자연스럽긴 하다. 그러나 작품 해석은 독자의 몫이니 이 부분은 넘어가야겠다. ]

 

   

그러니 일단 믿는 사람은 나에게 큰 악을 행한 사람이라도 용서하거나 나아가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게 하나님의 뜻일 것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소설이라 그런지 하나님께서 용서를 강요하는 듯 한 모습으로 그려진 건 이 작품에서 좀 아쉬운 부분이긴 한데,

 

 

      이상적인 기독교인의 모습손양원목사님 같은 용서일 것이고, 주인공이 자기 딸을 살해한 자를 용서하는 과정과, 두 아들을 죽인 자를 용서하고 양자 삼으려 한 손양원 목사님의 모습은 닮아있다. 그러니까 "그런 용서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이야기는 이미 기독교인이라면 강요 되는 게 아니라 추구해야할 모습인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용서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한 평범한 기독교인이 그러한 용서에 이르는 과정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강요이야기가 나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2.죄의 문제

 

독립성 같은 경우도 기독교의 기본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행동자체를 로 규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기독교의 기본 가정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 비 기독교인이라면 처음부터 이 소설 자체가 큰 의미 없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 있다. [죄의 문제 등을] 니체처럼 '초인'을 가정하여 해결하려 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일단 이 작품은 일단 '기독교 소설'이다. 그래서 기독교 적인 방법으로 용서를 권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도 '기독교 소설'이라는 장르를 고려해 평가해야 한다.

 

 

3.신선함

 

너무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야기하는 형식을 다루다 보니 다소 강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신선한 부분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유라시아 펑크와 블루스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라거나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클래식 같은 장르만 좋아하신다는 내용은 없다.)

 

    

여인 모습으로도 나타나시는 하나님(성경에 분명히 남성형으로 나오지만 흰 수염에 하얀 옷을 입은,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 같은 모습은 분명히 화가들의 상상이다.)은 신선하다. 하나님은 어떤 모습이더라도 상관이 없으시다. 성령만 해도 여기서는 여인으로 나오지만 성경에는 비둘기처럼 나오기도 했고, 불처럼 나타나기도 했다.

    

어쨌든 하나님과의 대화를 어느 한쪽만 강조하거나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화로 그려나가는 것은 신선하다.

 

 

3.아쉬운 부분, 또는 부족한 곳

 

다만 하나님과 예수님 입을 빌어서 이야기하지만 분명히 작가라는 한 개인의 생각이기 때문에 더 위험한 부분이나 대충 넘어가는 대목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제도와 종교를 싫어하신다.“는 이야기 (290~297쪽 참고)를 보면, 십계명 같이 분명히 제도이지만 성경에서 핵심적인 부분들이나, 성경에서도 분명히 나오는 제도들(그중 일부가 신약 시대에 변했지만), 혹은 (다스리는 자들에게 복종하라거나 세금에 대한 성경 이야기 등에서 보이는) 일반은총으로써 질서를 위한 제도를 긍정하는 성경 구절들과는 대치되는 듯 보여 아쉽다.

 

 

게다가 세상에 존재하는 에 대해서도 신학계 내에 여러 이견들이 있으며 아직 명확하게 결론 나지 않은 부분이라 그런지 모호하게 넘어가는 면이 없지 않은데, ‘신학에서는 성경에 명확히 나오지 않은 부분에서 멈추고 더 이상 나가지 않아야하기에 모호하게 넘어가도 좋지만,

 

하나님의 입을 통해서 이야기 하면서 모호하게 그린다면오히려 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악의 문제, 하나님의 존재 증명 등은 신학에서도, 철학에서도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

1>성경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단지 선포 할 뿐(혹은 믿으라 할 뿐), 존재를 증명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하고,

2>‘무엇이 악인가에 대해 철학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논쟁과 이견들만 봐도 이 점을 알 수 있다.(성경의 악은 일단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말씀으로써의 성경권위를 인정해야 죄란 무엇인지 이야기 할 수 있기에 신학에서 말하는 악이나 선의 문제는 모두 1>번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물론 저자가 그리는 악의 문제는 기독교적으로 상당히 건전하고 바르게 그리고 있지다. 하지만 신학계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 가운데 일부일 뿐이라 조금 아쉽기도 하다.>

[악의 기원에 대한 신학계의 여러 이야기들을 여기서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ㅜㅜ]

 

   

나가면서

조금 박하게 평가 했는데, 너무 일방적인 듯 그려지는 부분들을 제외하면 그리 나쁜 기독교 소설은 아니다. 누구나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나 실망에서 생긴, 혹은 비극으로 생긴 오두막이 있을 것이고, 그 각자의 오두막 속에서 하나님은 각자에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런 모습을 신앙으로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나간 기독교 문학작품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을 조금 더 가깝게 생각할 수 있었다면 이번 독서에서 얻을 건 다 얻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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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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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대한 이야기로 각 직종이 다르듯 각 장이 주는 느낌도 달라서 하나로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대충 낯설게 보기’, 또는 멀리서 본 일의 아름다움이과 그 속에 숨은 슬픔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자극적이거나 큰 감동을 주진 않으나 항상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는 보통의 글답게 일상적으로 보이는, 언제나 반복되는 업무’, 또는 에서 새로움을 찾거나 그 의미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책을 시작하는 물류는 일상에서 접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하나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손길이 닿았을지 그리고 그 업적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업무이고, 그 일의 결과물이 상하지 않은 채소나 통조림처럼 당연한 듯 보이는 일에도 한 사람이 다 이해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의 업적과 성취가 담겨 있음을 생각하는 건 새롭다. 특히 중세 성당의 건축적 가치에 떨어지지 않는 듯 그려지는 창고의 구조나 싱싱한 딸기와 같은 창고의 성취는 삭막해 보이는 일터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어지는 단원에서도 일의 의미에 대한 탐구는 계속된다.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것은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84)

 

그러나 진짜 문제는 비스킷을 굽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가 아니라, 그 일은 5천명의 삶과 6개 제조 현장으로 계속 확장되고 분화되어 각각의 업무가 누군가에게 미치는 영향을 볼 수 없게 된 순간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한 저자의 이야기에 수긍이 간다.

특히 제조업의 대부분은 욕구의 가장 바닥을 충족시킬 테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일에 대한 관점을 바꿔볼 것을 제안하는데

108 산업 현장의 모든 일들은 원시시대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사냥과 다르지 않은 생존 수단임을 이야기하고 (108) 이어서 비 이상적인 문명이라도 이상적인 목표를 이룰 수단이 되거나 이상을 실현할 재원마련의 수단이 된다고 위로를 던진다. (113)

 

 

그러나 그 이상의 실현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지지 않거나 아니면 이상의 실현에 필요한 사람 백만 명 정도 인데 내가 천만 번째 사람이라면 여전히 슬플 것 같아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직업 상담을 살피는 4장은 책의 주제 자체를 다루는 직업이어서인지 좀 더 직접으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예를들어

소명이라는 이 묘하고 불행한 용어는 중세에 기독교의 맥락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소명이란 예수의 가르침에 헌신라는 명령과 갑자기 마주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시먼스에 따르면 이런 개념의 세속화된 변형이 현대까지 살아남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 삶의 의미가 이미 만들어진 결정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그러면 우리에게서 혼란, 질투, 후회의 느낌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로 우리를 괴롭히는 경향이 있다125쪽 

 

라면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거나

시먼스는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메슬로가 동기와 성격에서 한 말을 좋아하여..(중략)..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심리학적 성과다.”(125쪽)

 

이렇게 직업 선택의 현실적인 면을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직업 상담의 열악한 환경과 그 한계까지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두가 일과 사랑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부르주아적 자신감에...(중략)... 잔혹성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143)



어차피 직업생활에는 아니, 삶에서 어떤 거창한 것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위대해지고자 하는 노력들은 부질없는 노력인지도 모른다. 아직 출판사를 구하지 못한 직업상담사 시먼스의 책처럼 말이다.



그도 아니라면 다음 장인 로캣 과학에서 우주까지도 인간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위대함을 이루었으나 너무 평범해져서 과학이 이룬 더 이상 위대하지 않은 위대함을 과학자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거나, 혹은 과학으로 기계장치의 축복을 받았으나 겸손하지 못한 세계관으로 인한 불안에 잠겨 살아야 하거나. 둘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그림

아마 이 책의 의도는 이미 보아왔던 것을 눈여겨보도록 하기 위한 것’(210)인지 모른다.

아니면 전에 한 번도 본적 없는 것처럼 제대로 보기위한 것이거나.

그런데 비록 화가는 변변치 못한 배관공 정도의 수입을 올리더라도 그 결과가 어떤 사람에게 미칠 작고 의미 있는 변화를 상상할 수 있겠지만 일반화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이를 평소의 우리 모습보다 더 우아하고 지적인 대상을 창조하기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는 인간 본성의 비실용적인 측면을 보는 듯하다. (215) 라 말하는 저자는 조금 엇나가지 않았을까

그 그림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재화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많이 찾을 수 있는 거라 이 비교 또한 어쩌면 기득권 문제, 부르주아 문제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회계

사무실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곧 로비의 이상한 은 조각품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곳이 첫날 얼마나 낯설어 보였는지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자유의 끝이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의심과 집념과 변덕스러운 욕망의 끝이라는 뜻이기도 하다.(268p)

평범한 사무직의 일상. 꿈과 현실의 괴리와 그럼에도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뉴스 신문의 사건들로 다시금 느끼게 되는 평범하고 예측 가능한 일상에 대한 안도감에 대한 만족은 다시 말하면 기쁘지 않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게 일의 진짜 슬픔이리라.

 

사무실에서 하루가 시작되면 풀잎에 막처럼 덮인 이슬이 증발하듯이 노스텔지어가 말라버린다. 이제 인생은 신비하거나, 슬프거나, 감동적이거나, 혼란스럽거나, 우울하지 않다. (여기는) 현실적인 행동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무대다.269쪽

 

 이 문장이 책의 주제일 것이다.

 

지금까지 직종들이 사무직과 거리가 있었다면 회계 파트는 거의 모든 사무직이라 일반화 해도 될 것 같다. 

 

274

(그들은)감사업무에 불멸을 위한 기회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감사업무 말고도 대부분 직장인들은 불멸을 위한 기회를 포기하고 직장을 갖게 되었으니 역설적으로 꿈을 포기하고 직업을 얻는다. 여기서 한가지 차가운 사실이 강조된다.

 

  

현대 세계의 사무실은 중세 기독교 왕국의 수도원과 같다. 겉으로는 정숙해보이지만 비길 데 없이 강한 욕망을 자극할 만한 잠재력을 갖춘 무대인 것이다.

이 두 시스템이 파계의 기미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벌을 주는 것은 그 각각이 각 사회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간직한 곳이기 때문이다. 즉 옛날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고, 지금은 돈이다. (297쪽)

지금 사무실뿐 아니라 대부분 일터의 목표는 어떤 숭고한 목표에서 '돈'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이 속에서 숭고한 일을 하고자, 좋아하는 일을 찾고자 퇴근 후의 일탈을 생각하지만 대부분 잠과 피곤에, 와인에 의해 좌절된다.

 

 

 

그리고 드디어 여러 이야기를 지나 항공산업을 통해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과 직업에 대해 다룬다.

 

어쩌면 우리도 이렇게, 특별한 드라마 없이, 방연모를 쓴 소방관이나 활주로의 거품 없이, 집단 사고라는 위안과 아나운서의 동정어린 논평 없이, 분해라는 무미건조하고 느린 과정을 통하여 죽어갈 가능성이 늘 더 높은 것인지도 모른다364쪽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367쪽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줄 것이다371족

 

진정한 일의 가치는 여기에 있는 것일까? 여러 문학작품이 여기에 반대하는 작품들을 남겨왔다. 그러나 적어도 몇몇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아니라면, 일을 취미로 할 수 있는(부자들?) 이 아니라면 직업 자체에 한정할 때 딱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더 큰 일을 이루는데 보탬이 될 수 있는 소박한 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추가하고 싶다



그러나 사랑하지만 경멸하고 싶기도 하고 자랑스러우나 징그러움과 역겨움을 느끼기도 하는 우리 직장을 의미있게 바라보기 위한 가치라면 더 찾아야 기쁠 수 있겠지. 아직은 슬픔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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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대한민국이 선택한 역사 이야기
설민석 지음, 최준석 그림 / 세계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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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쉽고 친절한 설명.

조선왕조만 다룬 책 치고는 양이 많아 보여 걱정했지만, 여백이 많고 글자 크기가 큰 편인데다가 재미있는 그림(만화)도 많아서 읽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일단 왕들 순서를 알고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 뭔가 자리 잡히는 기분이 들 것만 같다. 흩어져 있던 단편적 사건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문체는 딱딱한 서술식이 아니라 마치 학생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질문하기도 하고, ‘~한다고 본겁니다식의 어투를 사용해 읽으면서도 재미있는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해준다. 게다가 필요하다면 실록의 내용도 잘 인용해 내용 또한 알차다. 각 단원 끝에는 마인드 맵 형식의 정리도 있어서 수험에 나올만한 핵심흐름이 잘 되어 있는데다가, 수험에 나올만한 내용에 더해 세종 며느리의 동성애나 현종의 아내가 한 명 뿐이라는 점 사실, 담배를 사랑한 정조 등 재미있는 내용도 많아, 수험을 위한 독자와 교양을 위한 독자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 잡고 있다.

 

약간 모호한

단점을 꼽아보자면 모든 역사책이 그렇듯 작가의 의견이 기록을 넘어선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전문서적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고 단점이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오히려 책의 단점은 장점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 책은 수험생과 일반 독자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그러나 이 점은 동시에 단점이 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보자면 수험자와 일반인, 학생과 성인 등 여러 독자층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다보니 수험생에게는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다. 특히 경제사 부분이 그러한데, (물론 대동법, 신해통공이나 선무군관포 같은 중요 내용은 나와 있으나) 인조 때 실시한 영정법부분이 제대로 설명이 나와 있지 않거나 조선통보, 상평통보 등의 내용이 많이 빠져있다.

 

반대로 비수험생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문체에 만화, 게다가 적당한 깊이의 내용까지 담고 있어 읽을 가치가 있으며 묘호의 차이처럼 교양선에서 알아야 할 내용이 충실하다

러나 해당 정책이나 사건들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은 다른 교양서적들에 비해 강조되지 않아 살짝 아쉽다.

 (직접 판단하려면 오히려 원전을 접하거나 원전에서 특이 사건들을 따로 추린 이야기들을 읽는 게 빠를지 모른다.)

 

나가며

단점을 길게 썼는데, 두꺼운 책이란 단점은 있지만 사실 수험 등 어떤 목적을 갖고 읽는 게 아니라면 여백과 그림이 많아 부담되는 양은 아니다. 그리고 조선사만을 다루는 책으로 이정도 깊이와 재미를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고종과 순종은 제대로 된 실록이 아니라서 그런지 간략하게만 나와 근현대사까지는 준비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만 하면 만족스럽다.

 

그리고

99쪽에는

“18년 동안 호랑이()를 탔으니, 또한 이미 족하다.”

태종실록36, 18(1418) 88

 

이라 나온다. 저자는 백성이 왕을 뽑을 수 없었던 조선시대와 달리 지금은 우리가 세종을, 연산군을 선택할 수 있다면서 책을 마친다.

 

많은 업적들과 교훈들을 배울 수 있었으나, 결국 국민 입장에서 오백년이 넘는 조선시대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싶다.

 

오백년이 넘게 호랑이들을 탔으니 이미 족하다.”

 

이젠 제대로 된 민초의 시대가 오기를, 지나간 역사를 통해 배워 그러한 시대에 맞는 시민이, 제대로된 주권을 가진 국민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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