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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뒷조사 - 한국교회에 던져진 엄중한 질문에 요한복음이 답하다 복음서 뒷조사
김민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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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런 책은 (깊이 있는 책일 경우) 만화 형식이라도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형태로 나오거나, 아니면 너무 얕아 성경 내용을 그저 만화로 이야기 해주는 수준이나 조금 더 나가서 묵상에 도움 줄만한 내용 제시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기대 별로 안 하고 읽었습니다.. ^^;;)

 

그러나, 만화의 흐름을 통해 요한복음이 현대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과 함께,

 

(이 대목은 얼마 전에 정리한 그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다만 여기서는, 전체 교회가 아니라 각 성도가 불의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는 우리 각자가 슬퍼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처럼 조금 더 개별 성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요한복음의 저자문제나 배경 설명에 대해서는 어지간한 신학 서적보다 더 깊게 다루고 있어 보는 동안 지루하지 않았다.(책은 근거를 들어 장로 요한과 사도 요한을 구분하고, 요한복음 저자는 장로 요한이라 가정하고 내용을 진행하는데, 이에 대해선 학자마다 이견이 갈리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반대편 의견을 갖는 학자의 책도 읽어보고 그 중 설득력 있는 입방을 선택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예를들어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요한이 같은 요한인가?에 대해서도


1) 같은 요한이라는 일반 의견[주로 이레니우스 등 초기 교부의 이야기에 기반한다.]외에


2) 전혀 다른 요한이라는 의견[하워드 마샬 등이 해당하며 학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3) 두 의견을 절충해 계시록과 서신서의 저술시기를 조금 바꿔보는 관점

[표현상 요한복의 헬라어는 비신학과에서도 코이네 헬라어를 가르칠 때 예문으로 사용할 만큼 비교적 정확하고 다듬어진 헬라어이나 계시록의 헬라어는 히브리 풍의 헬라어로,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을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계시록이 이른 시기에 나왔다면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기에 이런 절충안이 나왔다. ]


 이에 대해 회상과 목격, 증언 등에 기반해 서술하는 복음서와는 다른 계시록의 묵시 문학적 특성(환상 중 보는 것을 쓰는 것과 회상과 증언에 기반해 서술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다. ) 차이로 인한 문체의 변화로 설명하는 입장까지 더하면 공부할 내용이 정말 많아진다.] 등 여러 이견이 있다.)>

 

따라서 이 책이 요한복음의 저자를 12제자가 아닌 요한으로 보고 내용을 진행하는 데에 너무 큰 무게를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요한복음의 독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상황(유대공동체인 회당에서 출교당하고 지역 사회에서 배제와 차별받는 상황)과 교회의 불의에 정의를 가지고 항거 했으나,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등장인물의 상황을 교차시키며, 독자가 (개인을 강조하는)요한복음을 읽으며 생각해야 할 점들까지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요한복음의 저자 문제 같이 지식적인 부분 외에, 개인 묵상에도 간접적으로 도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배경과 논점, 등을 이야기로 풀어 설명하는 책의 특성상 요한복음 자체의 구조나, 각 장별 특징 등은 거의 없는데, 이런 내용은 널리 알려진 간단한 주석이나 메시지 성경 등에서 접할 수 있으니, 이 책은 다른 부분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여기서 바라본 요한이 말하는 인간으로 오신(성육신) 하나님은 우리 고통을 지켜보는 분이 아니라 우리 고통 속에 함께 고통당하시며, 함께 우시는 하나님이시다.


일단 이 하나만 가지고도 평생 묵상하고 생각해야 할 문제이리라. 생각할 거리를 얻었다는 데에 만족한다.

 

(다만! 분명히 요한이 사랑을 강조하고, 하나님은 사랑이신 건 맞는, 그리고 책의 흐름과 주제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문제는 없는, 마지막장 러브라인은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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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뒷조사 - 한국교회에 던져진 엄중한 질문에 요한복음이 답하다 복음서 뒷조사
김민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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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 숨어있는 논쟁점과 그 대답. 그리고 현 교회와 신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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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작은 교회
루스 A. 터커 지음, 최요한 옮김 / 스텝스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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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고 읽은 책이었지만, ‘작은 교회를 위한 안내서라기보다, ‘작은 교회의 가치에 관한 에세이정도로 생각하고 읽으면 만족스러운 책이다. 그러나 절박한 작은 교회들이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우리가 작은 교회에 관심두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비록 작은 교회에 흠이 더 많고 중구난방이며, 체계적인 대형교회보다 어지럽고, 작은 교회라 오히려 서로 간 간섭도 심하더라도, 그 공동체가 온전히 얽히는 건 그런 작은 교회에서나 가능할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은 교회의 성장에 모든 것을 걸고 달리다 탈진하는 이들에게, 그런 성장 없이 그냥 작은 교회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영적, 신학적 가치가 있음을 이야기 한다. 성장과 밝음으로 칠해진 대형교회보다, 슬픔과 실패, 더러움과 낙심이 가득한 작은 교회가 각 성도의 영혼에 더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으며, 작은 추억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작은 교회들의 가치는 그로서 충분하다.

 

그러나

추억이 서려있는 작은 교회의 가치는 잘 알겠다. 그렇다면 작은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해 이 책은 거의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낮은 위치에 처한 사란들에게 다가간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작은 교회는 보통 300명 이하의 교회들을 말하지만, 정말 대가족 인원을 가까스로 넘을 듯 말 듯 한 개척교회를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정도 규모라면 우리나라에선 소형 교회가 아니라 중형 교회 정도이다.) 

그러니 100명이 안 되는 작은 교회는 이 책에서 가치를 얻을 순 있으나, ‘도움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작은 교회에 실망하는 사람이 읽고 마음을 잡을 수는 있겠으나, 교회 월세나, 유지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작은 교회는? 결국 더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규모 등에서)성장하지 않는 교회에 지쳐있는 목회자가 다시금 소명을 발견하고,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를 조금 더 다루고, 주변 사회에 다가가는 방법을 더 자세히 설명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런 내용은 거의 없어, 생존의 위기에 처한 작은 교회에 이 책을 통해 살아날 길을 발견하진 못할 것이다.

 

대형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작은 교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 하도록 하지만, 책의 역할은 거기까지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을 읽고, 대형교회 성도가, 목회자가 작은 교회로 찾아가거나, 목회자나 성도가 용기를 얻어 작은 교회가 살아나는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아 왠지 아쉽다. 그리고 책에서 그리는 작은 교회의 모습이 정말 작은 교회들에 남아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람이 없어 비어가는 교외의 교회들에는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사모님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여성 목회자가 필요함을 역설 하는 과정에 (물론 뒤에 사탄은 목회자의 성별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너무나 여성 목회자가 미화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감리교, 성결교, 장로회 통합측과 백석측 등 여성 목사 안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교단이 못 해도 반은 되는 우리나라에서 이 부분도 그다지 다가오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책의 마지막 장은 작은 교회 목회자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1)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고’(뻔하지만 이게 가장 중요할 것이다.),

2) 한 가지 이상의 사역에 참여하게 하거나,

3) 집중 제자훈련처럼 제자도의 기준을 오히려 높이라거나,

4) 나이트 클럽 등 교회가 멀리하는 곳에서도 무료 세차를 한다거나,

5) 불신자가 진행하는 사회운동을 도와 봉사하면서, 그리스도를 전한다. (사랑의 집짓기 등)

(청소년 사역에 대한 아이디어도 있으나 우리나라와는 문화가 조금 다른 듯 하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조언도, (안 그래도 작은 책의) 마지막 부분 몇개 장에 몰려 있고 책의 전반적인 내용에 자연스럽게 들어있지 않아 조금 아쉽다. 작은 교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을 수 있도록 모든 성도가 읽고 생각할 가치가 충분하지만, 이미 생존이 흔들리는 작은 교회가 살아나기에는 너무 작은 외침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주 대형 교회가 셀 등의 방식을 이용해 작은 교회의 결합인 것처럼 활동한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작은 교회의 가치는 추억말고는 없는 것일까?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문제이리라. 

 

그저 기도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다가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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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하나님과 함께
야누쉬 코르착 지음, 송순재.김신애 옮김 / 내일을여는책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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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코르착이 지었다고 적혀 있으나 정말 코르착이 지었는지, 아니면 엮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기도들은 어떤 거룩한 자들이 남긴 기도가 아니라 우리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남긴 기도로 마음을 울린다.


아이를 위한 어머니의 기도, 그리고 그 아이의 죽음 앞에서 다시금 드리는 어머니의 애절한 기도, 아저씨가 시계 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소년의 기도나, 자기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경박한 여인의 기도,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받아 결국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되는 이들의 기도는 거룩함과 겸손함뿐 아니라 거만함과 욕심도 가득하다.

그러나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기도는 살아가면서 던지는, 거룩함과는 거리가 먼, 그래서 더 솔직하고 아름다운 기도들. 이들은 내가 느끼는 비애가 하나님 때문이라고도 이야기 하고, 하나님께 우습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는 너무나 솔직한 기도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부담스러워하고, 거룩함을 노래하면서도 하나님께 다가가지 못하는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경박하여 오히려 더 하나님과 가까운 기도이리라.

 

이들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없을 때는 분노하여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나를 창조하셨고

당신을 모독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고 믿습니다.”(반항의 기도 중)

라고 이야기 했다가도

 

“‘의 하나님

저는 당신을 찾았고 마치 길 잃은 아이가 멀리서부터

신뢰할 만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처럼 그렇게 기뻐합니다.” (화해의 기도 중)

 

라고 이야기 하는 등 오만함과 겸손함, 평화와 분노를 수시로 오가는 우리의 기도와 닮아 있다. 그래서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

 

 

소박한 일과들과 중대한 버려짐. 그 사이에서 올리는 가식 없는 기도들.

 

이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기도한다. 과학자 또는 기술자 같은 학자들도, 예술가도, 혹은 젊은이나 노인, 창부까지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가 가식적인 모습을 이기고 기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정말 거룩하고 마음을 울리는 기도문들도 좋지만 때로는 이렇게 정말 내가 처한 낮은 상황에 있는, 그리고 나와 같이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의 기도를 나누는 것이 더 큰 울림을 준다.

 



그중 독특한 기도는 교사의 기도인데 여기 나온 기도문들 중 타인을 위한 몇 안 되는 기도로, 아마도 코르착 본인이 가장 하고 싶었던 기도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도를 이루기 위해 아이들과 마지막까지 같이한 코르착을 생각하며...


 

아무튼 이런 기도를 하고 싶다. 거룩한 표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드릴 수 있는 기도.

 

기도하지 않는, 그래서 꾸밈없고 솔직한 자들의 기도...

 


 

 한 교사의 기도 (이 책 119)

 

하나님저는 길게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장탄식을 하지도 않겠습니다허리를 굽히지도 않겠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할 만큼 예물을 가져오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의 위대하신 은혜를 훔칠 생각도 없고,

내리시는 굉장한 선물도 갈망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하는 생각에는 하늘에 날아오르는 노래를 실어다 줄

날개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제가 하는 말은 색채도 없고 향기도 없고 꽃잎도 없습니다.

피곤하고 졸릴 뿐입니다.

제 눈은 침침해졌고등은 일을 하도 많이 하여 휘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게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려는 제게는 찬송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 찬송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찮게 여기고

조소할까봐 두렵습니다제가 당신의 존전에서 겸허하게

있으면서 당신께 드리는 불타는 소청이 있습니다.

 

저는 이 기도를 나지막이 속삭이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담아

말씀드립니다.

내 눈길에 명령을 내려 구름 위로 겨누어 쏘아 보냅니다.

저는 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에

똑바로 서서 간청합니다.

 

아이들에게 선한 의지를 주시고그들의 힘을 북돋워 주시고,

그들의 수고에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아이들을 편한 길로 인도하지는 마옵소서그렇지만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옵소서.

제가 드리는 간청에 대해 단 한번 드리는 불입금으로

저의 하나뿐인 찬송을 받아주시옵소서.

그것은 슬픔입니다.

저의 슬픔과 노동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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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미생 김파전의 파전행전 - 파트타임 전도사의 리얼 행복 일기
김정주.정새나 지음, 이현숙 그림 / 선율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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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력과 노오력 사이에서 분투하는 삶.

 

단 신선하고 정답다. 멀리 강대상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바로 옆에서 나누는 신앙은 오히려 더 새롭고 다정하다.


  40킬로그램이나 되는 쌀자루를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예수님은 어디로 가셨단 말인가?(15)

 

성도들의 신앙생활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성도들을 신앙이 없다 비난하기 쉬운 상황에 있는 목회자들을 영적 부르주아라 평하거나,

 

설교가 현실적이어야 사람들이 듣는다고 하면서 한껏 시대정신의 흐름에 합류한 설교들을 현실적인 메시지라 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성도들의 현실 속 사정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함께 느끼면서 많은 눈물을 머금고 외치는 설교가 진정한 현실적 설교라고 생각한다.(18)

 

과 같이 일상과 분리되어있는 듯한 교회에 대한 지적도 날카롭다.

 

하지만 무엇보다, 슬프고도 웃기지만 눈물 나는 모습들, 예를들면 8미터 상공에서 하는 걸레질, 캔 공장의 소음을 경험할 직장인들에 대한 공감과, 보통은 교회에서 무시당하기 쉬운 평신도들의 일요일, 그 하루의 헌신을 높이 봐주고 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 입장에서 참 감사했다. ^^)

 

아무래도 고생을 해본 사람이라 그런지, ‘긍정의 힘이나, 뻔한 조언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데.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긍정의 배신 비슷하게 보면서 비판하고, (그러고 보니 '긍정의 배신'이라는 제목의 책도 있는데 읽어봐야겠다.)

 

 

얼마 전, 멈춰서 보기를 좋아하는 한 스님이 쉬는 날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지 말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보세요. 봉사 활동을 하시든가 외국어나 미술, 악기를 배우거나 뮤지컬을 보거나 전시회나 여행을 가세요. 삶의 내용이 알차면 남의 일에 거품 물지 않습니다.”

(중략) 하루종일 노농을 하고 숙소에 들어오니 책은 개뿔!! (중략) 멈춰서 보면 많은 것들이 보이는 걸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멈출 수 있을 만큼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구조 속에 있으니 도저히 못 멈추는 거다. (39)

 

이렇듯 일반적인 에세이와는 조금 느낌이 다른데, 일상의 감상보다는(물론 그 일상에서 느끼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가득하다.) 어찌 보면 소박하다 못해, 부족하다 못해, 뭐 하나 빠진 듯한 내 모습을 타인을 통해 보는 느낌이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고백과 노래가 많이 나온다.

오호라, 나는 찌질한 사람이로다. 이 솔로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거나


빚 되신 주

이자 가운데 비추사

원금 갚게 하소서”  (63)

 

처럼 친숙하고 힘든 삶에 녹아있는 하나님을 이야기 한다. 그 삶은 분노, 원망, 욕설까지도 하나님께 퍼붓고 나서야 다가오는 회복....

  

우리 삶을 생각하거나 주변을 둘러봐도

믿음”-> “걱정이 사라짐”-> “모든 문제 해결“-> “축복”-> “잘되는 나

연결 되지 않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생활이다.

 

저자, 가진 걸 털어서 단기 선교를 다녀왔으나 학자금 대출은 더 커 커지고, 직장에서 더 욕을 먹게 되, 긍정의 힘과는 반대 상황, 언제나 은혜롭고 싶으나,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욕하고 원망하고, 그러다 다시 회개..... 이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나는 성인이나 성자가 아니니까 말이다. (아니? 다윗도 나를 버리시냐면서 불평했는데? ^^;;)

 

아무튼 부패한 교회에 대한 분노와, 성도들의 삶을 느껴가며,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조금 더 이해하는 이야기. 현실적인 삶에 기초해 꾸밈이나, 억지로 만들어낸 착한 모습을 지워버린 영성이 더 은혜롭고 교회에서는 듣기 어려운 다정한 한 마디를 듣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이 나오는 그 때까지도, 저자의 집은 옥탑방이고, 저자는 아직 대출금도 다 갚지 못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고, 목회자들이 진정으로 이해해야할 모습이다.

 

그래서 나와는 너무 먼 듯한 설교에 지친 성도들, 또는 요즘 쏟아지는 대책 없는 힐링서적들에 지친 사람들에게 오히려 같이 울어주는 듯한 이 책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멀고 거룩한 자리에서 조금 더 삶의 자리로 내려온 신학, 일상에 발을 디딘 영성....

 

!>

저자가 직장에서, 학교에서 너무나 바쁘고 가난한 가운데서, 주일이면 봉사하는 성도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그게 사무직이든, 밖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든, 이런 일들을 체험 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저자도 이 시간을 통해 성도들은 교회에서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진행하기보다 말씀을 알려주길 원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며 성도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신학지식이나 유창성보다 성도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역자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고 하니, 예비 신학도들의 노동 경험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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