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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사회 - 순 자산 10억이 목표가 된 사회는 어떻게 붕괴되는가
임의진 지음 / 웨일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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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의 핵심만을 이야기 하면 결국 한국의 평균 올려치기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출산 등 한국의 많은 문제가 여기서 비롯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나는 남들과 다른 차별적 존재지만, 평균 미달은 아니다.”는 사회 전반의 인식이며, 이 때문에 모든 면에서 중간 이상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리라.



날카로운 지적

저자가 지적하는 평균 올려치기 현상은 날카롭다.

간단히 말해 재산의 소유 정도가 딱 중간 정도 되는 계층이라는 뜻이다. OECD 분류법에 의하면 중위소득 75~200퍼센트까지의 소득을 가진 집단을 의미2하는데, 2022년 우리나라 4인 가구 중위소득인 월 512만 원3에 이 기준을 적용하면 중산층의 소득 범위는 월 385만~1020만 원으로 나온다. 월 소득 686만 원 미만 가구 중 상당수(385~685만 원)도 중산층에 포함된다는 뜻이니 설문 결과가 보여주는 시각과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의 〈2022 중산층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사람들은 4인 가구 기준 월 소득이 686만 원은 되어야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응답자들은 4인 가구 기준 중산층의 월 소비 규모는 427만 원, 순 자산은 9억 4000만 원 수준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월 소득은 한국 전체 가구 중 소득 상위 24퍼센트 수준이며, 월 소비 규모는 상위 9.4퍼센트, 순 자산은 상위 11퍼센트에 해당한다. 이 정도면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고, 특히 소비와 자산 규모 측면에서는 상류층이라고 해야 알맞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 정도를 ‘중산층’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참고로 2024 대한민국 상위층과 서민을 가르는 기준인 중위소득 200%는 1인 가구 기준 4,456,890원이다.>

사실 블라인드 등 직장인들이 모인 곳을 들어가보면, 초봉 기본급이 2024년 기준 연 5300 이 넘어서, 1인가구 중산층 마지막 선인 월4,456,890(중위소득200%)원을 가볍게 압도하는 삼성전자나, 역시 초봉 기본급 5000이상으로 성과, 상여 포함시, 서민은커녕 도저히 중산층조차 될 수 없는 현대차 등 고소득층들이 “정부는 서민을 지원해야 한다.” “중산층을 수탈한다.” 고 말하는 게 현실이다. 그만큼 평균 올려치기가 심하다.


[물론 자녀가 둘 이상인 외벌이 가구일 수 있으나, 만약 대기업 직원 전부 자녀가 둘 이상이라면 저출산 문제가 이리 심각하진 않을 것이다. ^^;;;]



모호할 수밖에 없는 대안

저자가 지적하는 이런 올려치기 관련 문제점들이 결국, 각종 격차나 부동산, 저출산 문제 등의 원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바람직한 사회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잘릴 걱정 없이 직장에 다니고, 일을 하며 얻는 대가가 자신의 노력에 맞게 주어지며, 먹고사니즘에 매여 인생을 낭비하기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중략)...

그렇지 않더라도 내 가족의 보금자리 정도는 있었으면 한다. 다음에는 또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하나, 이번 계약은 연장이 될까, 전세금은 얼마나 올려줘야 하나 같은 걱정 좀 덜 하고 살기를 원한다. 이것이 양질의 일자리, 공정한 보상, 소득 불평등 완화와 주거 안정이라는 딱딱한 단어에 숨겨진 진짜 모습이자 사람들의 진정한 욕구이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2장 내용 중 어쨋든 공정하면 된 거 아냐? 단원에서 발췌- 

결국 저자는 성공의 다각화를 해결책으로 이야기 하는데, 좀 추상적이다.


비교는 주로 자신과 비슷한 상황이나 처지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 본서 다양성의 싹을 자르다 단원-

이 문장도 SNS의 발전으로 더 이상 옳지 않다. SNS의 비교는 해외 유명인 (SNS로 연결된 처음보는 외국인이 알고보니 연소득만 수억씩 되는 인물인 경우가 적지 않다. ^^;;)

일단 3장에 이르러 저자는 이런 현대 한국인의 비교문화의 근원을 조선시대 농업사회에서 찾는다.

불안의 핵심은 예측불가능성에 있다는 저자의 말은 앞서 말한,

대부분의 사람은 잘릴 걱정 없이 직장에 다니고, 일을 하며 얻는 대가가 자신의 노력에 맞게 주어지며, 먹고사니즘에 매여 인생을 낭비하기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와 연결되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을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 사회라 말하는 느낌이다.


서열화, 계급화와 부동산시장 우상향에 대한 믿음, 이런 특징을 지적하며 나온 해결책은 결국 그 너머에 있는 불안,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가지면 현 상태를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당장 떠오르는 건 역시 북유럽 복지 국가이다.


저자의 최종적 해결방법은 전통 공동체도, 서양의 시민사회도 아닌 “현대 한국만의 공동체 정립”과 “시험-합격-자산소유-소득창출의 선을 끊는 것인데, 만족메커니즘을 변화시키는 기 위해 간판 취득을 쉽게, 유지는 어렵게 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면 저자는 “7급이나 9급 출신도 능력을 증명한다면 빠른 승진을 통해 장관도 될 수 있다면 어떨까?” 라고 하는데, 이미 장·차관은 임명직으로, 비공무원도 역임하는 자리이다. 

그 아래? 아주 드물지만(한 명 있었나?) 이미 7~9급으로 시작해 1~3급인 고위공무원단으로 퇴임한 공무원도 있다. 

그러니까 이건 지금 제도 그대로인데?


게다가 7,9급의 업무에 ‘능력을 증명하라’말한다면,

“그 공무의 성과지표는 무엇이 되는가?”

를 정의해야 하는데, 이거 수많은 행정학 전문가들이(해외 석학)도전했으나, 결국 행정학 교과서들은 ‘행정의 성과평가는 어렵다’로 끝내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예를들면 공무원의 친절 평가는 준법 여부와 상반된다. 법대로만 하면 도장 없는 서류 반려로 불친절 민원 접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약간 눈감아 주면 친절 공무원 / 개다가 예산 절감 대 주민 복지 증가 등 양립하기 어려운 면이 많아 지금보다 더 나은 성과 기준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ㅠ_ㅠ]

차라리 “팀/과장 이상 자리의 사람에게도 실무를 하도록 하자!”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게다가 저자는

“더 얻고 싶은 사람은 많이 노력해서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열어 두되, 그렇지 않은 사람들 역시 각자 원하는 만큼 노력하고 추구해도 바라는 삶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

고 하지만, 결국 스웨덴 같은 모습으로 귀결될 것 같아 수긍하기 어렵다.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대다수 국민이 평등한 대신 최상위층은 대대로 부를 물려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참고]

(스웨덴은 OECD에 따르면 조세에 대한 스웨덴의 국민 부담률은 40%대이며 소득세 최저세율은 32% (한국 6.6%).

연봉 6800만원은 스웨덴 근로자 평균 연봉의 1.5배 기준선이나 소득세 최고세율(평균 52%)로 진입하는 기준 연봉이다. 적용 대상은 전일제 근로자 3명 중 1명꼴이다.

근로자 중 세금을 내지 않는 비율은 6.6%에 불과하다. 그러나 재산이 있는 곳에는 세금이 없을 수도 있다. 스웨덴 총 조세액 중 재산 관련 세금인 부동산 보유세와 취득세, 상속·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2%에 그친다. 한국은 12%다. 스웨덴은 2004년 상속세 및 증여세 폐지를 선언했다. 가족 기업이 많은데 높은 상속세 때문에 기업들의 해외 이전 러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2008년엔 자산 총액이 2억원을 넘을 경우 기준액 초과분에 1.5%만큼 부과되던 부유세마저 폐지됐다. 부자들이 세금을 피해 재산을 은닉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결과 10억달러 이상 자산을 가진 스웨덴 부자들 중 상속받아 부를 축적한 비율은 63.2%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book/2022/01/15/Q2LZ4SQY7NB7HIHDEIM5A4K6AY/

[그리고 스웨덴도 정규직의 보호는 강하지만 비정규직의 보호는 한국보다 약하다. ]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 P. 54

스웨덴 근로자들이 이처럼 별도의 고용보험까지 가입하는 이유는 스웨덴의 고용시장이 유연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에 가까운 체제라 알려진 스웨덴에서 노동자 해고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선입견에 가깝다. OECD에서 발표하는 고용보호지수에 따르면 스웨덴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고용보호지수는 2.45로 OECD 평균(2.06)보다 조금 높다. 지수가 높을수록 노동자 보호가 강하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0.09)보다는 훨씬 높고 네덜란드(3.61)보다는 낮으며 한국(2.42)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스웨덴의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고용보호지수는 0.81로 OECD 평균인 1.74와 한국의 2.13을 크게 하회한다.



그렇다면 결국 현제 나와 있는 대안들은 둘 중 하나가 된다.


미국처럼 ‘완전 경쟁 + 비보호’로 가느냐, 


경쟁을 멈추고 공존하는 사회로 가되, 완전 최상위 계층과의 격차는 인정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인정하며 그 자본과 회사가 해외로 빠지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다시 말해 기업의 대표급 되는 사람들은 대대로 잘 살 수 있도록 보호하는 대신, 그 아래로는 아주 평등한. 즉 의사, 변호사, 직장인 모두 평등한 사회. 



이 대안들을 말하는 건지 궁금하다.

물론 이 책이 말하는 해결 방안은, 둘 다 아니며, 또 다른 길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결국 이 둘의 장점만을 모호하게 제시하는데 그쳐, 정책적 대안은 조금 맥이 빠지는 기분이다. 돈보다 나은 가치란 무엇인가? 그 나은 가치를 추구하도록 할 수 있는 정책은 무엇인가?

결국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일단 공동의 장소를 만들어 만남을 시작하게 하는 건 건축가 유현준님의 말처럼 공원부터 시작 할 수 있을 거고

https://www.youtube.com/watch?v=m1WUJETaI2U


나머진 더 고민해봐야 하리라.



게다가 숫자로 표현 가능한 것에만 집착하는 현 시대에 대한 비판에 너무 집착해서인지,

통계 적용 등에선 아쉬움이 많다.



소득과 행복도 자료를 예로 들면, 


 저자는 소득 75000달러까지는 소득과 행복도가 비례하지만, 그 이후에는 함께 증가하지 않는다는 카너먼과 티턴의 2010년 연구를 인용하고 있는데, (물가 고려, 2023년 연봉 1억 정도까지만 비례)

라고 인용하지만


이후 맷킬링스워스 박사가 이를 반박하는 논문을 썼고,  다니엘 카너먼과 맷킬링스워스 박사는 2023년, 공동 연구를 통해 이전 연구를 수정한다.

그리고 수정된 내용에 따르면 연소득 501만 달러(한화 약5~6억)까지는 소득과 행복도가 비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와~! 난 평생 행복해질 수 있는 건가? ^_^ b>



물론 저자가 이 연구를 인용한 이유는, 우리나라 평균 연봉이 2000~3000만 원 대이니 물가 등을 고려하면 연소득 7000로 조정 가능한 행복 상한선에 미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과 함께, 소득 이외의 다른 것을 봐야함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니 저자 논지의 핵심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다만 ‘돈’이라는 건, 저자의 생각보다는 더 큰 문제일 수 있다는 걸 지적하고 싶다.


조금 박하게 말한 것 같은데, 그래도 숫자 이면의 모습을 다룬 책으로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었던 책이다.

그래도 일단 숫자에서 벗어난 만남의 장소는 필요하며, 사람간의 교류는 필요하다. 그게 어떤 사회이든지 말이다. 여기에 덧붙여, 서로의 목표가 존중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아무래도 (교육 영상 플랫폼 등을 통한)계층별 문화에 대한 교육에 대한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내 생각에는 해외는 상류층에 대해 그냥 나와는 다른 세계 사람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이 계층 구분이 아직 공고화 되지 않아, 더 큰 박탈감을 느끼는 면도 있다고 본다. 차라리 계층 구분이 고착화 되면 갈등이 덜 할지도? ]


뭐든지 역시 하나씩 해야 할 것이다.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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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단지 잉여로운 글만 올라오는 곳, 또는 극우라고 불리는 일베에도 그 속에 가려진 진짜 배경, 또는 생각을 살펴보려는 책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모두는 우스운 인간일 뿐이다.”라거나, 

“그들은 과거의 우익과 달리 인터넷 밖에서 자신의 존재의의를 인정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라고하며 그들의 특징을 점검하고,


“너도 비하의 대상이며, 나도 비하의 대상이다.”는 평등한 혐오 문화를 일베의 핵심으로 제시한 저자는 일베 이전에도 해당 문화가 있었음을 설명하는 한편, 일베는 이를 집단적으로 이를 향유하기에 새로우며, 한편으로는 민주적이라고 평한다.


144쪽에서 일베가 팩트 중심의 담론을 펼치며 회의론으로 유도해 행동을 차단한다는 분석 역시 날카롭다. 일배의 사상이 몰이상의 사상이란 표현도 적절하다. 


(물론 난 팩트가 잘못 된 것이 아니라면 팩트 중심의 담론이 더 나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다. ^^;;) 


그러나

“진보/좌파들이 ‘너도 나도 같은 이상을 공유하고 있다’에서 출발하여 상호적이고 평등한 인정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려 한다면, 일베는 정반대로‘나도 나도 병신이다’라는 상호인정에서 출발한다.”(149쪽)

등의 표현은 비겁한 양비론자에 가까운 내 입장에서는


진보가 같은 이상을 공유하느라 모두가 평등하게 현실을 외면하는 반면, 보수는 모두가 평등하게 이상을 짓밟는, 다시 말하면, 서로 똑같은 부류로 보이는데, 아무래도 책의 주제가 일베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그 대척점인 진보에 대한 표현이 아무래도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리고 92쪽에서 인용한 엉덩국의 만화에 있는 “정말 훌륭한 병신이야”는 표현을 ‘칭찬’으로 인식하는 등 저자가 해당 틀에 너무 모든 것을 끼워 맞추는 듯 보이는 면도 없지 않다. 

("정말 훌륭한 병X이야."는 표현은 아무리 봐도 대놓고 조롱하는 거지, 칭찬이 아니다.)


저자는 인터넷은 과연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론장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정책 심의 과정은 전문가와 정치인이 진행하되, 이를 생중계하고, 일시간 채팅 등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토론의 제약조건으로 삼는 대안.” 을 소개하는데, 현제 보다 발전된 방식으로 보이며, 의미 있는 이야기이겠으나,

일단 인터넷 사용 가능 계층의 여론이 과대 반영 될 우려가 있으며, 결국은 인기 영합 정책이 더 많아지거나, 특정 계층의 목소리만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저자의 의견처럼 토론의 제약조건으로 삼기보다, 토론 영상에 함께 제시하는 정도로 제한하여, 논의에 참고 사항, 또는 후속 연구나 협의에 참고 자료가 되도록 하는 수준으로 정하는 게 더 좋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일베를 극복하기 위해, 아즈마 히로키의 주장을 인용하는데

1) 인터넷 안에서 승부를 보려는 행위의 한계를 인정하며 (설득 불가), 이를 인터넷 밖의 공론장으로 가져올 것과,

2) 공론장을 거치지 않은 사상도 인정할 것. 그리고

3) 어떤 사상이든 집단적 정념을 우회할 수 없기에 타인의 정념을 없애려하거나, 이를 인정하고 동화되러하기보다, 이 타인의 정념을 사물처럼 인정할 것을 말한다.


물론 저자는 이 이론의 한계점 역시 지적하며, 히로키의 논의 속에서 공론장은 ‘자발적인 공론장’이 아니라, 공적으로 ‘기획된 공론장’이라 밝힌다. 그러나 난 여기서도

그 공론장이 델파이 기법보다 나은점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반인의 목소리들을 조금이나마 더 담을 수 있다.”

이 이상의 이점은?

이에 대한 설명은 이후 216쪽에서 볼 볼 수 있었다.

요컨대 시민사회의 총의를 단번에 구현하는 거대한 국가적 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이성으로 처리될 수 없는 국민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관료들의 논의에만 의존할 때 국가는 이러한 감정을 무시하고 폭주될 수 있다. (216쪽 아즈마 히로키의 주장)

결론적으로 결국 일베의 사상은 촛불시위에 드러난 사상이 굴절되고, 그 실패에 실망하여,상처 입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가, 적극적으로 외부의 이상에 대한 거부와 조롱으로 드러난 것이기에, 그들의 보수성은 기존 보수들과는 다르다.


따라서 그 대처도 달라야 하리라.


 저자는 그 해결로

“지난 날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중략) 현실의 국가에게 불가능한 이상이나 도덕성을 국가와 정치인에게 기대하거나 설교하는 상상력 대신 일상 속의 타인들에게 먼저 자신의 이상을 작게나마 공유하고 검증받을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중략) 한국의 진보진영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이상을 유기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사회 없이 이상을 국가에 의해 곧바로 실현시키려는 기획에 그동안 과도하게 의존했다는 점이다.” (241쪽)


시민들이 국가를 향해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기 전에, 그들이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관철 가능한 집단들을 구성할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종종 무한한 대중의 한 원자가 되거나 무한한 대중을 이끄는 상상적 카리스마(상상적 국가)를 원하게 된다. 

(252쪽)


결국 저자의 주장은 “국가에서 독립하여, 자신만의 구체적 기획과 의제를 갖춘 개인이나 개별 단체가 활성화 되고, 이를통해 자신만의 이상을 작게나마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일베를 극복할 수 있다.” 정도로 요약 가능할 것이다.


사실 결론부분이 가장 아쉬웠는데, 계몽운동처럼 살짝 기운 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방향성 제시에 공감하며, 여러 관점에 대해 배울 수 있었으나, 결국은 ‘교육 + 결단’이란 너무나 당연하고 어려운 결론이다.

그래도 일단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하리라.


"진보/좌파들이 ‘너도 나도 같은 이상을 공유하고 있다’에서 출발하여 상호적이고 평등한 인정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려 한다면, 일베는 정반대로‘나도 나도 병신이다’라는 상호인정에서 출발한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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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 학교에서 배운 101가지
존 쿠프레나스 & 매튜 프레더릭 지음, 김소진 옮김 / 글램북스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이런 작은 책을 읽으며 정말로 이 책으로 공학의 틀을 잡는다거나, 공학 전공 전 기초를 잡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있으면 어쩌지.. ^^;;)

 

일단 책 자체도 작은 편이고, 책의 반은 설명을 돕기 위한 그림이다. 게다가 한쪽의 내용도 해당 쪽을 가득 채운 게 아니라 보기 편하고, 여유있게, 그리고 큰 글씨로 되어 있어서 가독성이 매우 좋다. 그 내용도 건축공학, 기계공학, 전기, 화학, 산업 공학 등을 모두 다룬다. ‘공학이 어떤 학문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가볍게 보고 공학이란 무엇인지, 공학에 맞는 사고방식을 부담 없이 맛보기 좋다.

 

정당한 분량, 그런데?

너무 적당해서일까? 뭔가 공학의 멋을 보기에는 너무 짧다. 그냥 공학이란 학문 자체를 설명하기도 벅찬 분량인데, 그 세부 내용에 얽힌 일화나, 흥미로운 공학적, 물리학적 현상들에 대한 설명으로 한 항목을 끝내는 장이 많아서 그냥 부담없이 공학에 대한 흥미를 갖도록 돕는 정도의 역할만 가능하다.

과연 공학 학교에서 이 101개를 모두 배울까? 모두 배운다고 하기는 너무 넓은 주제였고,(컴퓨터 공학, 건축공학 등 공학의 각 문야만으로 이런 책 몇권은 나올 것이다. ^^;;) 특정 분야에 집중에 생각하기엔 너무 얕은 내용들이었다.

뭔가 모호해서 너무 큰 기대를 갖고 본다면 아쉬우리라. (공학의 한 부분인 컴퓨터공학 관련해 독학학위 책만 생각해도 이 3배 정도 크기의 책이 몇 권이 필요할지 생각해보면 답이 대충 나온다.)

 

 

하지만 공학이 무엇인지 궁금한 이들은 추천~!

그러나 공학이 무엇을 하는 건지 모르는, 막연한 상상만 해오던 이들은 이 부담 없이 적당한 분량의 책을 통해 공학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 속에 어떤 원리들이 수어 있는지, 얼마나 유용한지를 모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학과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혹은 타 전공자가 공학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읽기 적당한 책이자, 공학을 충실히 소개하는 다리가 될만한 책이다.



 

공학은 인간의 궁금증을 연결해주는 연속체 역할을 맡고 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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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 학교에서 배운 101가지
존 쿠프레나스 & 매튜 프레더릭 지음, 김소진 옮김 / 글램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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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만나는 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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