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잘 아시다시피 근대까지 거의 필독 항목이었다. 과거 시험이라는 점은 제쳐두고라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학문과 지혜의 근간을 이루는 필독서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에 있는 8조목은 대학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조차도 널리 알려진 자기 발전의 단계로 유명한 문구이다. 학문에 뜻을 둔 사람치고 대학을 읽지 않는 선조들은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대학의 소중한 가르침은 그 어느 현대의 학문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늘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주자라는 인물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다는 점이다. 대학과 중용에 대한 주자의 해설은 그 어떤 인물의 주석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했고 조선의 학문은 결국 공자의 학문이라기보다는 주자의 학문으로 통했다. 특히 조선 중 후기로 오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더욱 뚜렷해진다. 

 

 

 

 조선의 성리학을 읽으면서 빠트릴 수 없는 항목은 양명학이 아닌가 한다. 깉은 뿌리를 가진 학문이면서도 기존 유학에게 철저하게 배타당하고 짖밟힌 학문이기 때문이다. 왕양명은 학지행합일을 강조하면서 실천의 중요성을 설파한 명나라의 왕수인은 국가의 재정이 흔들리자 불안해진 정권에 국가와 백성이 모두 함께 공생하는 실천적 제도를 주창한다. 그의 주장은 매우 현실적이었으면서도 국가와 백성을 위하는 위정자들이라면 기꺼이 박수를 보냈어야 했다. 그러나 기득권의 유학자들이자 정부의 관료들에 의하여 그의 구제책들은 철저히 묵살되고 그를 반대하는 기득권세력에 의하여 작위와 세습봉록마저 박탈당했지만 사후 신원되어 공자의 묘에 배향되는 영광을 안았다.


 조선에서처럼 유학을 지배의 철저한 도구로 활용하지 않았던 중국에서조차 그런 홀대를 받았던 양명학은 조선에서는 여지없이 사문난적으로 간주된다. 정치세력과 지배세력은 물론  왕권마저도 위협하는 신권을 획득한 조선의 선비들은 왕수인을 철저히 배격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왕수인의 양명학이 전파된다면 조선의 지배 근본이념에 혼란을 가져올 곳것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것이 그토록 두려웠던 이유는 무엇 이었을까...


백성을 위한 정치란 백성의 굶주림을 해소시키는 등, 현대적인 용어로 풀이하자면 복지정책을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노비를 가지고 막대한 토지를 이용하여 권력과 부를 이루고 있던 조선의 선비들에게 백성의 복지정책이란 곧 자신들의 손해를 뜻했다. 백성들이 글자를 알고 지식을 획득한다면 자신들의 부조리를 파헤칠 것이고 이는 백성들의 반란, 즉 선비양반들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불안감을 뜻하기도 했다. 자신들은 막대한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담시키고 있다는 부조리에 대한 반발은 절대로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조선의 노비는 대략 30%였다고 한다. 보수를 줄 필요가 없는 노비들의 노동력이야말로 노동을 하지 않던 조선 선비들에게는 부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군역 또한 마찬가지였다. 양반들은 군역의 의무를 지지 않았다. 노비와 천민등도 물론 군역의 의무는 없었다. 국가가 노비와 천민등은 국가의 보호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노비에게 군역을 지울 경우 자신들의 노비를 군역으로 내보내야 했는데 이 또한 선비들의 입장에서는 막대한 재산의 손실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양민이라고 부르는 농민들만이 등골이 휘어지곤 했는데 이를 견디다 못해 도망을 가곤했던 것으로 보아 그들의 설움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이러한 정치적 부조리를 개선하고자 설파하는 학문이 바로 양명학이었으니... 과연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 양명학이 그들에게 어떻게 다루어주어야 하는지 잘 알 수 있을 수밖에... 까딱 잘못하다가는 조선의 신분 질서는 물론이고 사회의 대 혼란을 예고할 수도 있는 학문이 아니던가... 이는 조선에 사문난적이라는 용어가 왜 탄생하게 되었으며 조선의 선비들이 그 사문난적을 사사하여 죽음에 이르르게 하면서 까지 그들 유일한 가치로서의 골수유학을 고집했는지의 이유가 된다. 이러한 이유들은 百家의 학문에 능했던 조선의 학자 정제두선생이 교과서나 교양서에서 언급되지 않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정제두선생께서 지은 논어해, 맹자설, 대학설, 중용해들을 연구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제두선생에 관한 연구는 활발하지 않으며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도서는 두어 종 뿐이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주자는 마치 막시즘의 마르크스와 같은 존재였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주자는 마치 한 종교 일파의 교주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조선의 신비들 대부분은 주자에 죽고 주자에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조선 사회의 현상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사문난적의 출현이다. 주자의 해석과 다른 견해를 주장하는 기타의 모든 이론들은 사문난적이 되어 처결해야하는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퇴계 이황과 경대승의 관계 그리고 송시열과 윤휴의 학문적 대립각이다. 


송시열은 주자 맹신자라고 해도 과언아 아니었다. 윤휴는 이치를 주자만 알고 나는 모른단 말이냐 라고 설파했다고 한다. 그러자 송시열은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치부했고 결국 서인들은 윤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단초가 되고 만다.

 주자이론의 교조적 현상이 왜 위험한 것이었는지 명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생각이 다르다하여 생각이 다른 타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시대적 비극은 주자라는 인물에 대한 교조적 맹신에서 오는 편협함이다. 


학문의 절정에 다다랐다고 해도 과언아 아닌 조선의 신비들이 생각이 다른 타자를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죽음으로 몰아 넣어야만 자신들의 강건한 사상적 배경을 이룰 수 있었다는 점은 그 사상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들어내는 역사적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마치 현대의 정치적 형태로 본다면 일당 독재의 공산당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주자의 사상이 지배계급이 하위계급을 통제하고 다스리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여 조선 중 후기로 접어들면서 중국에서는 이미 그 힘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여전히 주자학을 신봉하는 사회적 현상이 지속된다. 이는 권력의 중심에 있는 자들이 백성을 통치하고 다스리며 기득권을 더욱 튼튼히 하기위한 결정적인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좋은 학문이라도 그 학문은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여전히 미제로 남는다.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그 힘의 방향을 어떻게 지향하느냐는 사회적 비극이 될 수 도 있고 복지가 될 수도 있다. 대학을 읽으며 주의할 점은 바로 이러한 점들이라 생각한다. 대학의 문구인 친민(親民)을 신민(新民)으로 바꾸어가면서 사상적 바탕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정자와 주자의 학문은 동기 자체가 매우 불순하다하지 않을 수 없다. 제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 해도 편견과 오만에 사로잡히고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사상은 사상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며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왕부지의 대학이 주자의 주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아쉬움을 많이 남긴다. 그러나 기타의 견해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견해란 사회의 활력이다. 그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의식에 입각한 학문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주희가 전력을 기울여 경서들을 연구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할 수 있다. 

 특이 한 점은 기존의 유학적 관점과는 달리 그는 기(氣)를 구체적인 사물이라고 보고, 이(理)를 기(氣)에 종속하는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즉, 구체적인 사물인 氣를 벗어난 理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는 김용옥선생의 기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기와 이를 하나의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이유로 왕부지는 중국 유물론의 정점을 차지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중국의 ‘氣思想’은 1600여년에 걸쳐 중국의 유물주의 철학사를 완성하게 된다고 하는데 왕윤에서 출발하여 왕안석 그리고 왕부지를 거치면서 그 절정에 다다른다고 한다. 이는 중국의 氣論이 왕윤에서 싹이 터 왕부지에서 완성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의 사상은 모택동에게 커다란 사상적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러한 왕부지의 중화사상은 중국 공산당의 사상적 기반을 이룬다고 하는데, 이러한 왕부지의 중화사상을 이용, 중국은 주변 민족들을 중국의 속국 혹은 변방국으로 강제 편입시키거나 소수민족을 중국으로 강제 편입시키는 등 부작용을 낳은 것도 사실이다.


이 역시 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불쾌한 일임에 분명하다. 과연 학문은 정치의 시녀노릇을 언제까지 계속해야하는 것인가 라는 회의감을 떨쳐버리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사정은 이러하지만 대학을 순수한 학문을 위해 일독하려하시는 독자들께는 왕부지의 해석이 주자의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으나 독자들에게 대학의 또 다른 이해를 돕는데 일조하리라 믿는다. 공산당 선언도 그 순수한 의미에서 공부한다면 그 공산당 선언이 과연 어떻게 정치적로 이용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권력자들에게 부적절하게 이용당하는 사상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그 순수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사상의 순수성은 존재하지만 그 사상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자 한 엘리트들에게 그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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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7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야는 거의 지식이 없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주되시기 바랍니다.

차트랑 2012-02-28 08:19   좋아요 0 | URL
저도 아는 바가 많지 않습니다.
기 철학분야는 이제 막 관심을 가진 정도에 불과하구요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뇨고양이님

마립간 2012-02-27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철학 연구'가 마음에 드는데, 목차를 보니 내용이 방대하군요. (아니면 소개 정도로 끝나려나.)

2012-02-28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2-02-28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작하신대로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매우 만족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의철학, 이의철학을 역사적으로 발생과정을 밝힌 책으로는
장입문의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철학이라는 것이...
한번 시작을 하면 대책이 없을 정도로 확산되는 성질을^^

낭만인생 2012-02-2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의 기철학을 잘은 모르지만 제가 알기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쟁이 아닌 듯 생각이 됩니다. 앞으로 좀더 많은 기철학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차트랑 2012-02-29 00:37   좋아요 0 | URL
어구 낭만인생님
저도 기철학에대해서 관심을 가진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잘 아는 바가 없답니다.
그러나 좀더 공부하게되면 페이페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낭만인생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0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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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이 책을 모두 7개의 파트로 구분하여 제목을 붙였다. 첫 번째 글은 저자의 기철학에 대한 시론을, 두 번째 글부터 5번째 글은 저자의 논고들이고 나머지 하나는 일본어의 표기법에 관한 글이다. 첫 번째 글의 기철학 시론에서 저자는 동양사상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자 하는 사상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의 기철학은 모든 것의 유기적인 관계의 통합, 즉 몸이라는 것의 일원화이다. 세계 질서와 문화의 다원화를 인정하는 시대적 흐름으로 본다면 다원화 속에서의 일원화라는 개념이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무질서 속에서의 질서라는 명제로 이해한다면 소통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는 기독교적 사고를 저변에 깔고 진화해온 서양철학과 대조되는 사상이며 새로운 개념으로서 김용옥의 기철학이다.

 

2번째 글부터는 자신의 논고를 수록한 글들이다. 하버드대학교의 박사과정에서 발표한 논문 뿐 아니라 각 대학에서의 연구과 언론사의 학술지에 게재한 글들이다. 이 글들은 일관된 방향성과 목적성을 분명하게 밝힌 글들로서 제목이 주는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의 성과물들이다.


결과적으로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의 내용과 전문성을 고려하여 판단한다면 첫 번 째 글은 기철학에 대한 시론을 소개한 글이라 볼 수 있고 2번 째 글(저자의 첫째 글)부터는 동양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논고들이라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깊지 않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 읽어나가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장을 만나게 된다. 그 장은 바로 논고의 세 번 째 글인 ‘中央學界에 있어서의 中國哲學史記述의 轉換’이다.


氣哲學 試論을 이끈 장에서는 기철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章이라고한다면 나머지의 논고들은 동서양의 철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광범위하면서도 뿌리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저술된 논고들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특히 225쪽에서 262쪽에 이르는 ‘中央學界에 있어서의 中國哲學史記述의 轉換’은 우선 한자를 상당히 사용한 글이며 그 내용도 중국 철학과 서양철학의 유물론과 관계하는 부분이면서도 상당한 이해도를 요구하는 장이기에 일반 독자인 나에게는 읽어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의 장들은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본다. 저자는 글을 읽는 순서를 약간 재조정해주고 있다. 이점을 참고한다면 이해를 돕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 같다. 논고들의 목적은 동양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후학들에게 주는 일종의 조언이라 할 수 있다. 후학들이 고전을 어떠한 자세로 번역에 임해야하고 연구해야 할지를 자신의 주장을 실은 글들이다.


철학과 사상의 중요성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양의 고전은 4書 5經을 일컬으며 그 고전들은 철학사상을 담고 있다. 철학 사상을 어떻게 하느냐는 저자에게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면서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요체이다. 사상은 시대를 거쳐가면서 세계의 역사에 그 흔적들을 남긴다. 저자는 한국의 철학 연구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동시에 서양의 칸트, 헤겔, 니체 그리고 괴테에게 히틀러의 죄악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철학사상은 주변 사회에 영향을 끼칠 뿐만아니라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는 무기와 다름이 없다. 나아가 철학적 사상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하는 이유로 저자가 밝혀두고 있는 점은 ‘새로운 혁명적 인간학’을  향한 방향점이다. ‘무엇을 하느냐’는 사실 중요한 목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즉 누구를 위해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의 방법론에 대한 올바른 방향설정이 없는 연구가 그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경고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동양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의지가 담긴 매우 귀중한 책이라 하겠다. 고전에 대한 이해의 방법론, 인용의 방법론 즉 연구의 전반적인 방법론을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해가는 이 책은 비단 철학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동양철학이 가지는 함의의 포괄성은 저자가 강력하게 지적하는 부분인데 포괄적이고 입체적이며 다각적인 고전의 함의를 대중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제시하는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는 본질적으로 학계에만 국한되는 한계성을 넘어선다. 연구는 학자들이 하는 것이지만 그 연구를 일반 대중들에게 적절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합목적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 책은 그러므로 우리 모두를 위한, 인류를 위해 학계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를 제시해주는 논고들이라 할 수 있다.

 

 잘못된 인식이 끼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잘못된 인식이 전파되어 사회로 흡수될 때 뒤따라오는 현상들은 해당 사회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부정적 결과물을 내놓게 마련이다. 편견과 오류는 개인을 파괴하고 심지어 사회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무기와 같다. 그러므로 사회와 문화가 발전할수록 철학과 사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 동서양 철학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수 전제이다.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바른 연구의 지향점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이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싶다.



독자들에게 이 책이 주는 의미

동양의 고전에서 드러나는 철학은 서양의 그것 과는 매우 다르다. 인간이 존재하는 우주관이 특히 그것이다. 동양 사상의 우주관은 실체와 현상을 이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현상을 초월한 실체에 독립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체의 초월성을 바탕으로하는 이데아론적 기하학적 사유나 절대적인 도그마에 집착하지 않는다. 서양의 찰학적 사조가  헤겔 그리고 막스에 이르기까지 플라톤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본체와 현상의 이원론적 구조가 서양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적 도그마가 그 배후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의 철학은 기하학적 사유가 자리잡을 여지가 없다. 동양은 공간조차도 시간적으로 파악하는 특이성을 가진 철학이기에 그러하다. 공간적 개념의 절대성을 맹신하지 않는 탓이다. 이러한 동서양의 철학적 구조를 일반 독자들에게 파악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고를 전개시키는 과정에서 저자는 매우 깊고 폭넓은 동서양 철학을 끌어와 논고안으로 개입시키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한자들은 한자와 자주 접하지 않는 젊은 독자에게 독서의 어려움을 줄 수고 서양 철학적 배경을 상당히 요구하는 문제도 이 책의 단점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동서양의 철학적 배경 지식의 유무를 떠나 매우 유익한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배경지식이 밝은 독자들이라면 가독성이 높다는 이점이 있고, 그렇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자신의 독서 방향을 이끌어가는 안내서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어보신 독자들이라면 이미 알 고 있듯이 눈에 띄는 고전들과 서양철학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을 놓치지 않으면 된다. 책을 읽어가면서 포착한 고전과 철학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 책을 읽는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자신의 시각과 통찰력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독서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기철학의 이해를 돕고 나아가 ‘동양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는 논고들이 후학들에게 유익하고도 큰 도움이 되어줄 수 있듯이, 이 책을 읽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독서의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는 매우 유익한 도서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저자의 후학들은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에 매우 깊은 경지에 이른 저자의 견해를 상당부문 수용한다 한다면 올바르게 고전을 연구하고 발전시켜가는데 도움이 크리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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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바르톨리의 창법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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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중국의 쑹홍빈이 쓴 ‘화폐의 전쟁’은 보이지 않는 손이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화폐의 전쟁이 그 모습을 갖추게 된 출발점은 워털루 전투라고 한다.

  1813년에 있었던 라히프찌히 전투에서 패배한 보나파르트는 엘바섬으로 유배당하지만 1815년 섬을 탈출한 뒤 병력을 모아 파리에 입성, 프랑스 제국의 부활을 도모한다. 프랑스 제국을 해체시키고 그에 해당하는 이익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유럽은 보나파르트의 복귀에 급 당황하면서 즉시 연합전선을 구축, 프랑스로 진격한다.


그리하여 연합군 총 21만 명, 프랑스 주력군 13만 명이 대치하게 된다. 워털루 전투는 1815년 영국∙네덜란드∙프로이센 연합군인 7만 병력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7만 병력, 즉 7만 대 7만의 병력으로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벌인 전쟁이다. 결과는 보나파르트의 패배였고 현대유럽국들의 국경을 결정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그는 마지막 전쟁인 워털루 전투의 패배로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유배당한다. 당시 프랑스군의 사망자는 약 5만 명, 연합군은 2만 3천명이라고 한다.


쏭훙빈에 따르면 바로 이 워털루 전투는 세계의 금융역사에 한 획을 긋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워털루 전투는 유태계 독일인 로스차일드 가문을 세계 금융의 핵심으로 부상시키는 발판을 마련해준다. 당시의 뉴스 전달 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이용, 로스차일드가는 엄청난 부를 일궈낸다. 워털루 전투의 승패가 결정된 날은 1815년 6월 18일, 월링턴 장군이 승전의 소식을 공표한 시각은 21일 밤 11시 였다. 로스차일드가는 공식적인 뉴스가 전파되기 만 하루 전인 20일에 이 소식을 정보원을 이용하여 입수했다. 로스차일드가는 워털루 전투의 결과를 영국 본토보다 하루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영국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 엄청난 액수의 국공채를 발행한 상태였다. 전쟁에서 진다면 영국은 쫄딱 망하는 것이고 이긴다면 엄청난 이익을 거머쥐는 그야말로 한 판의 도박이나 다름이 없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영국은 기필코 이기고야 말겠다는 필사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영국의 증권가는 전쟁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로스차일드가는 엄청난 정쟁의 결과를 공표했다. ‘영국, 워털루 전투 패배’ 이 소식은 일 순간 증권가에서 영국 국공채의 투매현상을 일으켰다. 투자자들은 공채를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공채 값는 땅바닦에 떨어졌다. 공채값이 휴지조각이 된다 싶을 정도로 하락하자, 때를 기다린 로스차일드가는 투자자들이 투매한 공채를 전면 조용히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로스차일드가가 6월 20일 하루 만에 벌어들인 금액은 투자금의 20배에 달했다. 이는 나폴레옹과 웰링턴이 전쟁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액수였다고 한다.   


 워털루 전투를 교묘하게 투자의 기회로 이용한 로스차일드가는 이를 계기로 영국 최고의 채권자로 부상했고, 공채발행을 주도하면서 잉글랜드 은행의 실권을 장악했다. 영국의 국민들이 내는 세금은 고스란히 로스차일드의 가문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현재 세계 금융을 주도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출발점이다.


이를 발판으로 로스차일드가는 전 세계의 금융망을 구축하고 보이지 않는 여타의 금융세력들과 연합, 심지어 미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버냉키, 그린스펀등 유명한 금융인사들은 바로 RRB의 의장들이다. 또한 보이지 않는 손에 해당하는 거대 금융기업들은 로스차일드가를 비롯,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JP 모건, 모건 스탠리등이고 관련 기업들은 미국의 5대 언론사 및 카네기 재단, 록펠러 재단, 기업으로는 포드사를 비롯,  록히드, 엑슨 모빌, 쿤롭, 시티뱅크, 20세기 폭스, 파라마운트, 유니버설, 워너브러더스, 인물로는 JP모건, 버냉키, 조지 소로스, 케인즈 등등이다. 해당 기업들과 재단 및 인물들은 미국 정부와도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의 국제 단체이며 드러나지 않는 힘을 가진 인물과 기업들의 통제를 받는 단체들은 NATO, UN, IBRD, TWO, IMF등등이다. 우리는 구제금융 당시 IMF에 의하여 엄청난 요구를 들어주는 댓가를 치루어야 했다.

 

 

<김영삼정부 이전의 한국 경제 구조는 외국인이 한국기업에 개입할 수 없는 구조였고 외국기업이 개입을 하더라도 그 상한선을 분명하게 그어주고 있었으므로 한국의 기업이 외국인의 손에 경영권을 넘기는 일은 발생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금융 시장의 개방은 외국인에게 한국 기업의 주식 보유를 늘려 경영권을 박탈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준 것이다.  

그리하여 외국인들은 하나 둘씩 한국기업의 경영권을 빼앗아 갔다. 그 결과 현재 시중 은행은 물론 한국의 산업구조의 중요한 기저가 될 수 있는 기업들이 외국인의 손에 넘어간 상태이다. 외국인의 경영 방침은 한국의 경제 구조에 커다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윤을 창출하는 방식이 과거 한국 기업의 방식과는 전혀다른 것이 그것이다. 외국 기업은 투자를 최소화한다. 인건비를 줄여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근로자들은 명퇴를 하기에 이르른다. 전국의 금융기업들은 물론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국내 고용의 문제는 심각한 상태이다. 계약직 근로자들의 문제가 바로 그것인데 그 원인은 위와 같은 국내경제의 구조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한국 경제의 기반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한국은 바로 구제금융에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한국도 IMF의 조정책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IMF는 경제강국들의 시종이나 마찬가지인 국제 기구이다. IMF는 한국의 경제 정책에 적극개입했다. 구제 금융당시 한국은 한국의 예산조차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는 나라였다. 한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한 댓가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멀쩡하던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게된다. 근로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했고, 국민들의 수입구조에 커다란 변화가 몰아닥쳤다. 구제금융 당시 한국의 이혼율을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국가 경제의 변화는 가정경제 구조의 변화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가정이 뿌리채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근로자들은 실업을 하거나 계약직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는 기아자동차 사태를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얼마나 치열했던가... 물론 이는 널리 알려진 결과물의 하나에 불과하다. 금융시장의 개방이 가져온 결과는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사금융의 중심이 모여 있는 괴물 FRB


 

<이 책의 저자는 경제 저격수였다고 한다. 일종의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 손의 하수인으로서 어떻게 한 국가의 경제력을 장악했고 그 나라를 경제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는지 매우 잘 드러내주고 있다. 경제 저격수가 나서면 틀림없이 그 나라의 경제를 장악하고 만다. 만약 실패한다면 더 큰 힘을 작동시켜 그 목적을 반드시 이루어 낸다. 파나마 운하를 미국이 장악하게 되는 과정도 잘 나타나 있다. 파나마 운하를 손에 넣기 위해 미국은 콜럼비아로부터 파나마를 독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 과정은 전형적인 경제 저격수들과 배후 세력의 작전을 잘 보여준다. 결국 미국은 85년간 파나마 운하의 경영권을 장악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한다.>  

 

미국의 달러를 찍어내는 곳은 FRB 즉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다. 우리나라 돈은 한국은행에서 찍어내기 때문에 달러를 찍어내는 곳이 미국의 국영중앙은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상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인데 이는 미국 정부가 운용하는 국영은행이 아니다. 한마디로 FRB는 사채를 운용하는 사적 영리단체인 것이다. 초대 FRB의 의장이 로스차일드가의 폴 워버그였다는 점은 이를 입증하고 있다. FRB 의장직은 미국 대통령의 지명권에 해당하는 자리이지만 실상은 자체 선출된 인물을 통보하면 미대통령은 이를 따르는 것 뿐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발행되는 달러 그 자체를 채무로 떠안아야 하고 그에 대한 이자도 꼬박꼬박 지불해야 한다. 달러를 발행 할 수록 빚이 늘어가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이는 미국인의 세금이 고스란히 FRB라는 사기업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이며, 미국으로서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1920년대 경제대공황의 진실


<화폐 전쟁과 일맥 상통하는 책이다. 화폐전쟁의 요약본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는 책이다.>

 

이렇게 미국에서 자리를 확실하게 잡은 긍융재벌가들은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선다. 수많은 전쟁등에 깊이 관련하여 어마어마한 금액을 거머쥐었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1920년대 미국발 경제 대공황은 본격적인 돈벌이의 일환이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그 뿌리를 확실하게 내린 FRB는 1914년부터 1919년까지 달러를 아낌없이 찍어내어 시중 은행에 거의 100%에 달하는 금액을 뿌려댄다. 소규모 은행들은 저렴한 이자로 미국민들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엄청난 주식 투자에 나선다. 미국의 국민들 역시 저렴한 이자의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는가하면 주식에 투자하게 된다. 당시 소규모은행들과 미국 국민들은 저렴한 이자로 활기 좋은 주식투자로 짭짤한 이익을 내고 있었다. 경기는 살아나고 미국의 경제는 거침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1920년, FRB가 갑자기 시중은행에 뿌려댄 돈을 무자비하게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소규모 은행들은 미국의 국민들에게 대출해준 돈을 긴급하게 회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미전역은 금융 대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미국민들과 시중 은행들이 엄청난 빛더미에 올라 줄줄이 도산하고 있었다. 당시 FRB에 가입하지 않은 5,400여개의 미전역에 소재하던 은행들이 완전히 파산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파산한 전국의 인행들을 금융재벌들은 헐값에 거두어들였다. 1920년대 미국의 대공황은 금융재벌들의 작전에 불과한 것이고, 이를 모르고 있던 미국의 국민들은 그들의 덪에 걸려든 것이다. FRB는 다시 통화량을 늘려 미국을 빛 더미에 앉혀놓았다. 이렇게 해서 미전역의 금융망을 그들이 접수한 것이다.  



금융 과두들의 모임


<금융 과두들의 조직 중 하나인 빌더버그클럽을 중심으로 매우 세부적으로 파헤친 책이다. 세계의 경제를 움직이는 힘의 동력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 의하면 한국에도 20여명의 회원이 있다고 한다 ㅠ.ㅠ 도대체 누군거?>

 

300인 위원회, 미국외교협회, 삼각위원회, 로마클럽, 빌더버그클럽 등이다. 우리가 비정부기구라고 알고있는 NGO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물론 드러나지 않는 금융과두들의 모임이다. 세계의 금융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들의 결정사항은 향배 세계의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은 그 예이다. 1915년 영국은 여객선 ‘루시타니아호’를 독일군 잠수함이 있는 바다로 흘러보 낸다. 이는 고의였다고 한다. 기대했던 대로 독일은 U-보트를 이용 여객선은 침몰시킨다. 그 여객선에는 미국 민간인 128명이 타고 있었다.


 자 이쯤하면 미국의 여론을 분발시킬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되어준다. 전쟁돌입에 미지근한 윌슨을 루즈벨트는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대통령에 오르고 미국은 328,000명 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만든다. 미국은 전쟁비용으로 300만 달러를 지출했지만 록펠러는 20억 달러라는 엄청난 전쟁 수입을 벌여들였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전쟁비용은 모두 FRB에서 나오는 자금이며 이에 대한 이자를 FRB에 또 물어야 한다. 매우 흥미로운 금융구조를 가진 나라가 바로 미국이며 세계 경제의 혈관을 틀어쥐고 있는 존재가 바로 보이지 않는 그들이다. 이는 마치 일본을 자극하여 진주만을 공습하게 만들어 미국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키며 전쟁참여를 무사히 의회에 통과시키는 전략과 동일 한 수법이었다.


 그간 일본의 경제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해본 분들이 계실 것이다. 사실 일본은 약 10여년 전 부터 강력했던 경제력을 상실했고 과거의 영화에 비하면 영 시원치 않게도 비실거리고 있다. 인건비에 따른 경쟁력을 상실해왔다는 점과 부동산 버블이 일본 전역을 강타하면서 영 헤어날 줄을 모르고 있다.


 또한 그리스의 심각한 경제적 역경의 상황을 잘 아실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리스의 사회적 요인들을 그 이유로 꼽고 있지만 실상은 지하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큰 때문이다. 지하금융이란 바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경제의 흐름을 말한다. 그 보이지 않는 경제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탈리아 또한 만만하지 않은 상태의 금융문제로 심각한 상황이다.


 <쑹홍빈도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부채가 GDP를 넘어서는 2057년 달러의 붕괴를 예측하고 있다. 새로운 화폐의 전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쑹홍빈은 새로운 화폐로 금과 탄소화폐를 들고 있다. 탄소가 어떻게 화폐로서의 역할을 하게될지에 관한 정보는 화폐 전쟁에 잘 서술되어 있다.> 

 

이들의 원인을 통찰력있게 분석한 쑹홍빈에 따르면 키워서 깍아먹는 다는 전형적인 ‘양털깍기’에 당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다음은 어느 나라 차례인가...대한민국은 좀 멀었다고 본다. 일차적으로 IMF 구제금융 당시 1차적으로 손을 본 국가이기도 하지만 아직 경제력의 규모로 보건데 털이 덜 자란 양이다. 어쩌면 다음의 타겟은 중국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지난 30여년간 엄청난 부를 창출한 국가이다. 중국 국민 전체적인 삶의 질로 판단한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국가적으로 본다면 당연 군침이 도는 나라이다. 30여년간 벌어들인 외화의 규모는 세계 최대이다.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 역시 만만찮은 량일 것이다.

 

 지난 30여년간 10억이 훨씬 넘는 인구가 열심히 벌어들인 부의 액수를 상상해보시라...전 세계의 소비제품들을 생산하는 나라가 중국이며 미국에는 중국의 저렴한 생활용품이 없으면 당장 도산 가능한 가구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생활용품이 전 세계 구석구석 휩쓸고 있다. 그렇게 벌어들인 화폐의 가치는 무려 달러로 3조 8000억에 이른다.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를 국고에 담아두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모두 달러화하여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국은 보이지 않는 금융과두들의 눈에 그 얼마나 군침이 도는 국가 이겠는가...조만간 중국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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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4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트랑공님의 이 페이퍼는 제가 현재 생각하는 것들과 너무나 비슷하여
무척 공감이 갑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준비도 없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으로 우리나라 금융을 홀랑 열어버린 것이, 첫번째 우리 몰락의 시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시장주의를 여전히 옹호하신게 그 다음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구요, 그 분들이 왜 그러셨을까 저는 좀 궁금합니다.

<화폐전쟁>은 정말 읽어보고픈 책인데, 영... 시간이 나질 않네요. ㅠ

일본이 확실하게 휘청거리는거 같습니다. 수출이 삼성이나 LG등에 밀려서 줄어들고 외국에 투자한 금융 자본도 이율이 적어지면서 형편없고, 국가 부채 장난 아니라고 하는데 거기가 무너지면, 세계 경제가 어찌될지도 무섭고... 우리나라가 꼭 10-15년 정도 일본보다 뒤떨어져서 똑같이 달려간다는 점도 우려스럽습니다. 전에 마립간님께서 페이퍼에서 언급하셨듯이, 혁명이나 전쟁이라도 날 분위기 직전 같습니다. ㅠ

차트랑 2012-02-24 21:42   좋아요 0 | URL
화폐전쟁은 정말 읽어보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력한 힘이지만 개인으로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그나마 나은지도 알 수 있구요 ㅠ.ㅠ
말씀해주신대로 미래가 좀 걱정되더라구요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계승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 부제는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이다. 책의 제목과 부제만으로 판단 할 때는 저자가 매우 격한 감정을 쏟아 부을 것만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선비정신’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조선의 지배세력이었던 선비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역사적인 증거물들을 통하여 명쾌하게 시도하고자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평가의 기준설정이다. 

 

 




올바른 평가의 기준은 왜 중요한가? 

  

 이 책은 국민들의 ‘선비’라는 용어 인식을 역사의 구조 속에서 파악하고 그 용어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바탕으로 서술함으로서 ‘선비’라는 용어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실상을 독자들에게 알리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비’라는 대상을 평가해야하고 그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의 객관적 근거를 장치해야 했다. 저자는 이 평가의 기준장치를 매우 명료하게 설정하고 있으며 그 근거는 지극히 개관적이고 합리적이며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어느 내용보다 가장 값진 소득이 바로 ‘평가 기준’이라는 바로 이 대목이라 여겨진다. 




 바른 평가의 기준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편견은 평가의 오류를 낳는다. 오류는 당사자에게만 해당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본질이 숨어있다. 단순히 개인적 범주에서 판단과 정의가 감금된 상태라면 위험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개개의 인식이 타자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고, 결과론적으로 그의 사고와 행동까지도 지배할 수 있는 동기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책을 저술하는 주체이다. 시중에 출시되어 읽히는 도서들을 저술한 주체가 역사이든 인물이든 그 어느 팩트에 대한 평가의 적절한 기준을 갖추고 있지 못할 때, 그 결과물은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독자들은 그 영향으로 바르지 못한 인식의 주체가 된다. 이러한 일련의 수많은 과정들이 세대를 거듭한다면 어떤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일까... 단순한 오류의 문제를 넘어 왜곡이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게 된다. 이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고 나라 전체에도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선비’라는 용어에 대한 올바른 평가의 부재가 가져온 결과물들을 저자는 이 책에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선비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자신이 속한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에 어느 정도 충실했으며, 보다 나은 가치의 창출을 위해 얼마나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가. 물론 이는 해당 인물의 시대적 기준에 의거한다. 

2. 인물의 삶이 시공을 초월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선의의 보편적, 표본적 의미를 지니는가. 현재와 관계하는 역사성을 관찰하는 것이다. 

3. 인물의 직책, 지위에 부여된 기대에 얼마나 잘 부응했는가. 저자는 이를 인간 본연의 책임감과 해당 능력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상의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면서 이는 보편적인 평가의 기준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한 이 보편적인 세 가지 기준에 의거하여 역사의 인물을 바라보고 평가하여 저술한 관련도서들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는 개인적으로 매우 회의적이다. 이 책이 수많은 교양 역사서들과 차별되어야 하며 별점 다섯을 받아 마땅한 이유는 그 평가의 기준을 명료하게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그를 근거로 이해할 수 있도록 장치했다는 점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높이 살만한 부분이라 하겠다. 




‘선비’라는 용어의 올바른 이해가 필요한 이유 

최근 미국을 위시하여 경제 열강들이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만난 대한민국은 경제력의 한계에 봉착했고, 이를 수용하는 입장에 있다. 이는 마치 청나라에게 조선의 국왕이 한 겨울 얼어붙은 땅 바닦에 피를 흘리며 머리를 찧던 사건, 즉 병자호란이라는 굴욕적인 수치를 맞본 조선이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정체성이 흔들렸던 당시의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국민들이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이유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 시대적 상황이 이러한 때에 대한민국의 출판계,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양서들의 저자들은 ‘선비정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정체성의 일환으로 삼고자 해왔다. 

 

 ‘선비정신’이라는 용어는 엄밀한 의미에서 유교의 부흥과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말이기도 하다. 유교는 조선을 지배해온 강력한 이념임을 부인 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의 전통 문화적 요소로서 배제할 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교의 부흥’이라는 공식은 과연 현대의 우리에게 적합한 성질의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조선의 유교를 현대에 부흥시키는 목적이 단순히 ‘우리 역사적 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타당성을 부여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다. 왜냐면 선비에 대한 저자의 평가기준으로 볼 때 유교는 우리 역사에서 실패작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유교라는 조선의 지배이념을 새롭게 이해해야 할 필연성의 재조명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 연유에서 유교의 가르침을 받들며 조선을 지배해왔던 조선의 선비를 보편적이면서도 엄정한 평가의 기준으로 재해석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래야만 현대의 대한민국이 유교를 어떻게 부활시킬 것 인가하는 방향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의 의미를 단순히 우리의 것이라는 미시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때 다시 한 번 국가적인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경계하고자 한다. 







저자 계승범, 재귀준거의 딜레마를 마주하면서도 조선 선비의 진면목을 드러내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좀 더 넓은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선비라는 인물을 조선이라는 영토 안에 가두어둔 채 미시적인 안목으로 서술한 수많은 교양서들과는 달리, 저자 계승범은 조선의 성리학을 거슬러 중국이라는 대륙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본다. 이 책을 읽은 후의 독자들은 분명히 조선에 한정된 미시적 역사인물로서의 선비가 아니라 조중관계 속에서 거시적 선비의 모습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의 공자, 맹자, 노자의 가르침이 중국에서의 유교와 사회와의 관계하는 방식과 대조적으로 조선에서 공맹노자의 가르침을 선비들이 이용하고 있는 방식이 얼마나 다르며 심지어 그 얼마나 통탄스러운 것이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과연 공맹노자께서 자신들의 학문을 이용, 대중을 혹은 국왕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조선의 선비들에게 과연 무어라 말했을까...마치 이 상황은 변질된 막시즘에 저항하며 칼 막스 스스로가 막스주의자이기를 거부한 상황과 그 맥락을 같이하는 것은 아닐까... 

 

 후대의 우리들은 존경해 마지않는 조선의 거룩한 선비들이 과연 그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어떤 행동을 했고 그들의 언행이 조선 사회에 끼친 결과물은 어떠한 것이었는지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막연한 개념의 선비’가 아니라 ‘분명하고도 또렷한 조선 선비’의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이 지배했던 조선의 진면목을 조목조목 따져 간다. 저자의 일목요연한 글을 읽으면서 실망을 금치 못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슬픔을 느끼는, 혹은 배신감이나 분노를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는 바로 수많은 역사관련 저자들이 밝혀내기를 꺼려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 가지, 혹은 단편적인 측면만을 부각시켜 선비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왜곡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라더라도 말이다. 하여 이제 '선비'라는 명제를 그 누군가는 다루어주어야 하며, 어쩌면 치명적인 아킬레스건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스스로의 치부를 공개하는 일에는 그만한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니 말이다. 때론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고통은 우리의 과거, 즉 현재와 분리할 수 없는 우리들의 역사를 바로보기 위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일종의 재귀준거이다. 한 나라의 역사를 다루는 학자로서 재귀준거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하는 저자의 고뇌를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조선 선비들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평가함으로서 미래를 향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문제점과 개선점을 극명하게 제시해주고자 하는 저자의 뜻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한 마디가 있다, "그대가 걸어온 발자국을 되돌아보라, 그리하면 그대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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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02-22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자격지심은 기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준에 맞게 실천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