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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09년 1월
평점 :
저자는 이 책을 모두 7개의 파트로 구분하여 제목을 붙였다. 첫 번째 글은 저자의 기철학에 대한 시론을, 두 번째 글부터 5번째 글은 저자의 논고들이고 나머지 하나는 일본어의 표기법에 관한 글이다. 첫 번째 글의 기철학 시론에서 저자는 동양사상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자 하는 사상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의 기철학은 모든 것의 유기적인 관계의 통합, 즉 몸이라는 것의 일원화이다. 세계 질서와 문화의 다원화를 인정하는 시대적 흐름으로 본다면 다원화 속에서의 일원화라는 개념이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무질서 속에서의 질서라는 명제로 이해한다면 소통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는 기독교적 사고를 저변에 깔고 진화해온 서양철학과 대조되는 사상이며 새로운 개념으로서 김용옥의 기철학이다.
2번째 글부터는 자신의 논고를 수록한 글들이다. 하버드대학교의 박사과정에서 발표한 논문 뿐 아니라 각 대학에서의 연구과 언론사의 학술지에 게재한 글들이다. 이 글들은 일관된 방향성과 목적성을 분명하게 밝힌 글들로서 제목이 주는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의 성과물들이다.
결과적으로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의 내용과 전문성을 고려하여 판단한다면 첫 번 째 글은 기철학에 대한 시론을 소개한 글이라 볼 수 있고 2번 째 글(저자의 첫째 글)부터는 동양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논고들이라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깊지 않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 읽어나가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장을 만나게 된다. 그 장은 바로 논고의 세 번 째 글인 ‘中央學界에 있어서의 中國哲學史記述의 轉換’이다.
氣哲學 試論을 이끈 장에서는 기철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章이라고한다면 나머지의 논고들은 동서양의 철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광범위하면서도 뿌리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저술된 논고들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특히 225쪽에서 262쪽에 이르는 ‘中央學界에 있어서의 中國哲學史記述의 轉換’은 우선 한자를 상당히 사용한 글이며 그 내용도 중국 철학과 서양철학의 유물론과 관계하는 부분이면서도 상당한 이해도를 요구하는 장이기에 일반 독자인 나에게는 읽어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의 장들은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본다. 저자는 글을 읽는 순서를 약간 재조정해주고 있다. 이점을 참고한다면 이해를 돕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 같다. 논고들의 목적은 동양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후학들에게 주는 일종의 조언이라 할 수 있다. 후학들이 고전을 어떠한 자세로 번역에 임해야하고 연구해야 할지를 자신의 주장을 실은 글들이다.
철학과 사상의 중요성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양의 고전은 4書 5經을 일컬으며 그 고전들은 철학사상을 담고 있다. 철학 사상을 어떻게 하느냐는 저자에게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면서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요체이다. 사상은 시대를 거쳐가면서 세계의 역사에 그 흔적들을 남긴다. 저자는 한국의 철학 연구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동시에 서양의 칸트, 헤겔, 니체 그리고 괴테에게 히틀러의 죄악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철학사상은 주변 사회에 영향을 끼칠 뿐만아니라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는 무기와 다름이 없다. 나아가 철학적 사상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하는 이유로 저자가 밝혀두고 있는 점은 ‘새로운 혁명적 인간학’을 향한 방향점이다. ‘무엇을 하느냐’는 사실 중요한 목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즉 누구를 위해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의 방법론에 대한 올바른 방향설정이 없는 연구가 그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경고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동양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의지가 담긴 매우 귀중한 책이라 하겠다. 고전에 대한 이해의 방법론, 인용의 방법론 즉 연구의 전반적인 방법론을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해가는 이 책은 비단 철학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동양철학이 가지는 함의의 포괄성은 저자가 강력하게 지적하는 부분인데 포괄적이고 입체적이며 다각적인 고전의 함의를 대중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제시하는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는 본질적으로 학계에만 국한되는 한계성을 넘어선다. 연구는 학자들이 하는 것이지만 그 연구를 일반 대중들에게 적절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합목적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 책은 그러므로 우리 모두를 위한, 인류를 위해 학계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를 제시해주는 논고들이라 할 수 있다.
잘못된 인식이 끼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잘못된 인식이 전파되어 사회로 흡수될 때 뒤따라오는 현상들은 해당 사회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부정적 결과물을 내놓게 마련이다. 편견과 오류는 개인을 파괴하고 심지어 사회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무기와 같다. 그러므로 사회와 문화가 발전할수록 철학과 사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 동서양 철학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수 전제이다.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바른 연구의 지향점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이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싶다.
독자들에게 이 책이 주는 의미
동양의 고전에서 드러나는 철학은 서양의 그것 과는 매우 다르다. 인간이 존재하는 우주관이 특히 그것이다. 동양 사상의 우주관은 실체와 현상을 이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현상을 초월한 실체에 독립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체의 초월성을 바탕으로하는 이데아론적 기하학적 사유나 절대적인 도그마에 집착하지 않는다. 서양의 찰학적 사조가 헤겔 그리고 막스에 이르기까지 플라톤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본체와 현상의 이원론적 구조가 서양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적 도그마가 그 배후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의 철학은 기하학적 사유가 자리잡을 여지가 없다. 동양은 공간조차도 시간적으로 파악하는 특이성을 가진 철학이기에 그러하다. 공간적 개념의 절대성을 맹신하지 않는 탓이다. 이러한 동서양의 철학적 구조를 일반 독자들에게 파악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고를 전개시키는 과정에서 저자는 매우 깊고 폭넓은 동서양 철학을 끌어와 논고안으로 개입시키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한자들은 한자와 자주 접하지 않는 젊은 독자에게 독서의 어려움을 줄 수고 서양 철학적 배경을 상당히 요구하는 문제도 이 책의 단점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동서양의 철학적 배경 지식의 유무를 떠나 매우 유익한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배경지식이 밝은 독자들이라면 가독성이 높다는 이점이 있고, 그렇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자신의 독서 방향을 이끌어가는 안내서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어보신 독자들이라면 이미 알 고 있듯이 눈에 띄는 고전들과 서양철학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을 놓치지 않으면 된다. 책을 읽어가면서 포착한 고전과 철학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 책을 읽는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자신의 시각과 통찰력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독서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기철학의 이해를 돕고 나아가 ‘동양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는 논고들이 후학들에게 유익하고도 큰 도움이 되어줄 수 있듯이, 이 책을 읽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독서의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는 매우 유익한 도서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저자의 후학들은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에 매우 깊은 경지에 이른 저자의 견해를 상당부문 수용한다 한다면 올바르게 고전을 연구하고 발전시켜가는데 도움이 크리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