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의 유월은 붉디 붉은 꽃양귀비가 피어오르고 오디와 자두 살구 등이 익어가는 싱그러운 계절이지만, 또한 유월은 잊혀지지 않는 아픔을 간직한 달이기도 하다.
옆 집 아저씨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두고 6.25 에 참전하셨다. 얼마 후 옆 집은 어르신께서 북한군의 총에 맞아 전사했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행여나 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산자락에 가려 보일락 말락하는 집 아저씨는 사단에서 유일한 생존자라고들 했다. 전투에 참가했던 일만명의 병사 중 유일한 생존자라는 뜻이다. 그 진실 여부는 알 길이 없으나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포화속에서 셀 수도 없는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멀리 보이는 또다른 집에는 북한에서 홀홀 단신으로 남하하여 살고 있던 아저씨가 계셨다. 그렇게 홀로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나이 차이가 많아 서로 대화를 주고 받을 일이 거의 없었기에 전후 사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알고보니 다른 분들도 그 사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분은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북쪽의 어디가 그분의 고향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홀로 모든 것을 끌어않고 살다가 그렇게 돌아가신 것이다.
나는 약골이라 군 면제를 받아도 시원치 않은듯 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나는 누구처럼 부동시도 아니고 간이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또 허리 디스크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저질 건강에 운이 나뿐 사람일 뿐이었던 것이다. 나도 번듯한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면제 받았을지도 모른다. 면제 병명은 약골!! 한미한 농사꾼의 아들인 나는 흑석동 현충원에서 군 복무를 했다. 현충원에는 셀수도 없는 비석들이 서있다.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의 넋이 잠들어 있는 것이다. 그 분들의 희생을 댓가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서울시가 700억을 써야한다면 돌덩어리가 아니라 유공자분들을 위해 써야하지 않겠는가?
국립 묘지는 국가 행사 또는 외국의 정상들이 꼭 들르는 곳으로, 정문 한켠에는 이렇게 써있다.
'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름다워야할 대한민국의 5월은 잔인한 역사의 달이자 민주 항쟁의 달이다. 6월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비극의 달이자 호국의 달이다. 남과 북이 서로를 죽이고 서로의 것을 파괴했으니 말이다. 살아 남은 자들은 죽을 때까지 그 아픔을 끌어않고 살아가야 했다.
군 수색대 소대장으로 백암산 비무장지대 GP(감시초소)에서 군 복무를 하던 작사가 한명희는 어느 날 양지녁 산모퉁이에서 돌무덤을 하나를 발견한다. 이름모를 국군이 사망한 자리였고, 나무로된 비목(碑木)위에 철모가 올려져 있었다. 그 모습을 잊지 못하던 한명희는 어느 날 나라를 위해 이름 없이 산화한 무명 용사를 기리는 한편의 시를 남긴다. 그 시에 장일남 선생이 곡을 입혀 가곡 비목이 탄생했다.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초연(硝煙)은 말 그대로 화약 연기를 뜻한다. 화약 연기가 앞을 가리던 백암산 전투는 뺏기고 빼앗기를 반복하며 치열한 고지전이 있었던 전투라고 한다. 중공군과의 끝없는 전투 끝에 국군은 결국 백암 고지를 탈환한다. 그러나 그 희생은 너무나도 컷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국군의 희생을 치러야했다. 지금도 이름 모를 영령들의 유해 발굴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름 모를 용사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이웃 집 어르신도 그중 한 분이시다. 이제라도 그 용사를 아버지라 불러줄, 다 자란 아들의 품으로 돌아 오시기를 기원해본다.

[[[ 알라딘 중고 가게에서 구입한 음반이다. 알라딘 품질 판정 가이드 '최상'이라고 써있어서 상태가 좋은가보구나 하고 구매했다. 그런데 받아보니, 오 이런~!!!! SS(미개봉)였다!!! NM(Near Mint, 중고 최고등급)라해도 감사할 일인데, 친애하고 경애하는 박세원님의 음반을 미개봉으로 구입하다니!!!
정녕 아름다운 우리의 가곡을 담은 음반들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마음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