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양측의 의견 대립이 극에 다다르다 못해 송사에 이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바로 국내의 사학자들인 원고 김현구선생과 피고 이덕일 선생의 이야기다.

 

 

피고 이덕일 선생은 김현구 선생이 저술한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를 읽고 일본 극우파의 역사관과 다르지 않다고 판단,「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라는 자신의 저술을 통해 김현구 선생을 일제식민사학자라며 날카롭게 비판했다고 한다.

 

김현구 선생은 법에 의지했다. 1심 담당 판사는 이덕일 선생이 김현구 선생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고 그 죄질이 나쁘다하여 이덕일 선생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 2월에 있었던 일이다. 피고 측은, 이는 학문을 죽이는 처사라 하여 항소했고 바로 오늘 2심의 결과가 나왔다. 무죄였다.

 

 

 

 

1심 재판부의 견해: "피고인은 피해자가 주장하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전제로 피해자를 식민사학자로 규정했다. 피고인의 학력과 경력 등을 보면 피해자가 임나일본부설을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하지 않았음을 충분히 알았을 것", 고로 유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2심 재판부의 견해: "책 머리말을 보면 피고인은 한국 사회가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해 큰 해악을 초래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려면 식민사관 카르텔을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이 타당한지는 차치하고 주요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고로 무죄

 

 

 

이를 개인적으로 초유의 사태라 칭하는 것은 소송의 본질이 우리 역사에 관한 것이며 학자들 간의 견해 차이가 소송에 이르렀기에 하는 말이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일개 독자에 불과하지만 나로서는 심각한 상황 전개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양 당사자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어~! 라고 할 수도 있겠다.

 

 

피고 학자가 원고 학자에게 어떤 식으로 무지막지한 욕을 어떻게 했는지는 쟁점이 된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으니 알 길은 없다 (이덕일 선생의 저술은 품절이라고 한다. 아마 소송중이라 일시 판매가 중지되지 않았을까 생각할 뿐). 딴에는 오죽했으면 학자가 학자를 상대로 법에 의존하기로 결정했을까 싶기도 하다. (두 책은 읽어볼 예정이다)

 

다른 한 편으로 매우 우려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소송에서 피고를 실형에 처하며 사건을 종료시킬 경우, 필연적으로 국내 모든 학자들의 학문 활동을 심각하게 구속하는 새로운 법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판례는 모든 학계를 줄 소송의 대열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 원피고가 떠날 날이 없는 학계를 상상해보시라. 한 판사가 결정하는 판례의 위엄이 그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던가. '분묘기지권'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사정이 이러할 경우, 연구 결과물에 기인한 학문적 대립이라기 보다는 감정 대립으로 변질되어 어느 학자의 발언이든 여차하면 소송감이 될 여지가 다분하다. 각 분야에서 연구에 매진하여야 할 학자들이 피고가 되어 소송을 준비하거나 심리를 받으러 법원으로 출퇴근하는 사태는, 말 그대로 초유의 사태인 것이다.이러한 분위기는 학자들에게 학자 본연의 성질을 거세하는 형벌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소송 무서워서 어디 입이나 뻥끗할 수 있으랴... 인문 학계의 소송은 기타의 소송과 판이하게 다른 성질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논쟁이 핵심 원료인 인문 학계에 찬물을 끼얹을 뻔 한 송사를 그간 심히 우려하는 마음으로 지켜본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학계에서 의견 대립이라는 알맹이를 빠트린다면 과연 학문의 성장이 가능키나 한 일일까. 감옥에 가기로 작정하지 않은 다음 에야 그 어느 학자가 다른 학자의 논리에 반박을 해줄 것인가. 학문은 상호 반론을 자양분으로 더 크게 자라나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독보적인 해석 혹은 독보적인 저술이란 자신이 아닌 타자들이 인정할 때 학자가 얻을 수 있는 지고한 업적이 된다. 사마천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어찌 보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상반된 해석과 주장은 사학의 본질 일 수가 있고 견해가 각기 다른 데에는 그만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해석의 차이가 꼭 사학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닐 것이지만 말이다. 다양한 사료와 고고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해석 차이가 어찌 꼭 같아야 한단 말인가. 

 

사학자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른 프리즘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기에 말 그대로 <사관>이라 하는 것이다. 학자의 펜 끝은 전장에 나아가는 전사의 검 만큼이나 날을 잘 세워야한다. 무딘 검으로는 전장에 나아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죽기로 작정하고 전장에 나아갔던  백제의 결사대도 자신들의 칼 날은 시퍼렇게 갈았을 것이다. 하여 학자는 자신의 검을 벼리고 또 벼려 날카롭게 하지 않을 수 없고, 상대의 그 것 또한 못지 않게 날이 잘 서 있을 것이라는 점도 각오를 해야한다. 날이 서지 않은 검은 검이 아니다. 그리하여 예리하게 날 선 두 검이 서로 마주할 때 불꽃이 튀어 오르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무사가 상대방의 검이 너무 날서있다고 비난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사학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검은 바로 연구의 결과이며 그에 따른 사관이다.

 

또한 누군가가 자신의 학문에 이의를 제기할 때 그 이의를 압도할 수 있는 더 깊고도 탄탄한 학문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진정 빛나는 학자의 길이라 믿는 바이다. 상대가 있기에 나의 학문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는 학계가 건강하다는 방증이라 믿는 바이다.

 

건강을 잃으면 사람이나 학문이나 매한가지로 병이 드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치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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