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의 메뉴 중, '새 로 나 올 책’을 우연히 클릭하게 되었다. 월별 혹은 분기별로 새로 출간 예정인 책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살펴본다. 관심을 가질 만한 예정 도서들이 적지 않다. 그 중 내 눈을 번쩍 하게하는 출간 예정작들이 레이다 망에 들어온다.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예정작에 기대감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은, 제목만 보고 책을 구입하던 과거의 순간들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미 출간 이라고 해도 은근 기대감을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러 권의 책들 중 가장 인상적이고 구입할 확률 또한 가장 높은 몇 권의 책은 아래와 같다.    

 

 

 

 

1. 자성록(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부북스

 

 

 

명상록」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워낙 잘 알려진 책이므로 알라디너들이라면 수많은 분들께서 이미 읽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럼에도 기대하고 싶은 이유는 기존의 「명상록 冥想錄」과는 달리 「자성록自省錄」이라는 약간의 다른 제목으로 출간되기 때문이다. 제목이 다르다고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닌데 ㅠ.ㅠ

 

명상록과 자성록, 이 두 용어가 주는 뉘앙스는 내게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좋은 느낌이기는 하지만 ‘명상록’이라는 말은 아우렐리우스가 우리에게 지우는 일종의 의무와도 같은 부담감이 살짝 든다. 그러나 ‘자성록’이라는 용어는 아우렐리우스가 일기의 형식을 빌려 쓴 그의 글을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생각하게 한다. 아,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랄까. 일종의 심리적 구속력을 벗어나는 느낌말이다.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간발의 차이이겠지만, 어째 거나 나에겐 체감 온도가 적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이 책 역시 낡아 새 책으로 바꾸어야겠다 싶은 때에 훨씬 더 마음에 드는 「자성록」이 출간된다니 사뭇 기대감이 크다.

 

 

 

 

 

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메타포로 읽기 ― 최상욱, 서광사

 

 

 

 

니체는 인연이 깊다면 깊고 아니라면 아닌 사람이다. 알고 지낸 시간을 기준하여 보면 깊은 인연이지만, 상대방의 속사정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로 따진다면 깊은 인연은 분명 아니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도 수십 년을 알고 지낸 사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과거 학생 때 니체의 전집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소득은 별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니체는 출간 예정의 제목처럼 메.타.포.로. 읽어주어야 하는 사상가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차라투스트라’의 절친인 독.수.리. 와 뱀. 만이라도 사전에 제대로 알고 읽었더라면,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안타까운 시절이 떠오른다. 이제 메타포와 함께 니체를 전반적으로 다시 읽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이 출간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설렘으로 나의 심장은 더욱 박동한다. 그러니 덩달아 나의 허파에도 바람이 한껏 들어갈 수밖에.... 내심 가장 기대가 큰 책이다. 설레는 나의 기다림이 부디 헛되지 않기를....

 

 

 

 

3. 주자평전 ― 슈징난, 역사비평사

 

 

 

 

나는 평전을 어쩌면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해당 인물에 대해 호의적 관점이 평전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단점이라면 단점이랄 수 있다. 평전(評傳)이라는 말을 우리말 사전은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필자의 논평을 겸한 전기(傳記)’라 설명하고 있는 반면, 영어는 ‘a critical biography’라 적고 있다. 우리말은 서양보다 평전의 저술가에게 훨씬 더 관대한 편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영어의 critical은 ‘비평의, 평론의, 비판적인, 정밀한, 혹평적인, 결정적인, 중대한’ 등의 다양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방대한 평전을 내 놓으려면 대상 인물을 연구하는 노고가 매우 클 것이다. 작가의 자존심은 둘째 치고라도 연구를 거듭할수록 작가는 인물이 가지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호의적일 가능성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궁금한 것은 출간 예정도서의 쪽수다. 특히 평전은 책의 쪽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읽어보고 싶지만 평전이 500쪽 이하라면 구입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평전으로서의 무게감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쉬움 속에 망설이다 결국 구입하지 않은 평전이 더러 있다. 이 경우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특히 평전은 쪽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더 환영하는 편이다. 이 책 역시 기대가 크다. 어째 거나 주희의 평전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다.

 

 

4. 이병도의 식민사관을 해부한다 ― 황순종, 만권당

 

 

 

 

사실 이런 제목의 책은 오래전에 이미 나왔어야 했다. 아니, 이병도와 동시대에 나왔어야 가장 바람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끈임 없는 주목을 받아왔어야 했고 현재도 미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늦어도 한참 늦어버린 듯 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한사군의 위치 비정과 단군 조선에 대한 역사 인식은 심각한 문제의 수준이다. 이병도는 한반도의 역사 왜곡을 주도했던 일제 강점기 '조선사편수회'의 일원이었다. 일제 역사가들을 보좌하며 모국의 역사를 왜곡, 말살하는데 앞장섰던 것이다. 일제 패망 후 이병도는 서울대학교의 사학자로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으며 문교부 장관에 이르기도 했다. 이병도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직접적인 개입을 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사의 왜곡에 적극적인 저서활동으로 그 제자들마저 식민사관으로 물들게 한 장본인이다. 결국 그는 죽어가던 병원의 침상에서 양심선언을 하고야 말았다.

 

현재도 서울대 출신의 사학자들이 의심을 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공적인 장소에서 말했다. "서울대에서 한명기와 같은 인물이 나오다니!" 라고. 어쩌면 이 발언을 들어보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물론 이는 서울대 국사학 출신이며 현재는 명지대 교수인 한명기의 역사 인식에 대한 찬사였다. 서울대 국사학과에 대한 이러한 말이 나오는 것은 우리의 비극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가 개정될 때 마다 한국사 왜곡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는 것은 외국의 학자들이다. 이병도의 영향을 받은 외국의 학자들이 한국사를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박노자이다. 우리는 박노자의 정체를 잘 알지 못하는 듯하다. 아마도 그의 일제 식민사관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박노자는 "이병도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역사학자"라고 칭할 정도로 이병도에 경도된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이병도의 한국사의 관점, 즉 일제 식민사관으로 자신의 한국사를 무장했다.박노자가 한겨레에 기고한 「민족 ‘신화’ 넘어 국경 없는 ‘계급연대’로 가자」라는 논평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개탄을 금할 길이 없으며 박노자의 한국사 왜곡의 절정을 보여주는 글이다. 더구나 그는 일제 식민 사관을 탑재하고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박노자의 한국사에 대한 무지함을 이병도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지만 말이다.

 

이렇게 한국사는 안밖으로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까지 이병도의 그림자가 너무나 짙게 드리워진 탓이다. 우리 역사의 이 불행한 그림자를 걷어내는데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출간 예정도서들 중 기대가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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