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5월의 독서 계획을 결정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별로 한 것도 없이 앞 다투어 꽃피는 4월을 흐지부지 흘려보냈다. 아깝다. 고민을 하느라 4월의 절반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애초의 계획과는 전혀 무관한 쪽으로 흘러가버렸다. 계획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몸은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5월의 독서 계획만큼 결정하기 힘든 때도 없지 싶다. 피로감을 느낄 정도이다. 어째거나 「동학1, 2」와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 3권이다.

 

 

이 책들을 계획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얼마 전에 읽은 경전 7첩 반상」이다. 경전 7첩 반상」에는 동학의 경전이 등장한다. ‘동경대전’이 그것인데,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나는 ‘동경대전’에 너무나 무지했다. 사실은 그뿐만 아니라 동학과 그 운동에 너무나 무지했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경전 7첩 반상」을 기다리며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을 구입해서 읽고 있었다. 그리고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동학 1.2」와 함께 이 세권의 책을 5월의 독서 계획에 본격 영입시킨 것이다. 동학을 더 이상 외면하며 살아갈 자신이 나에게는 없다. 「동학1, 2」의 리뷰를 검색해보았다. 상대적으로 리뷰가 적거나 아예 없다. 동학 1에는 리뷰가 하나, 동학2에는 하나의 리뷰도 찾아 볼 수 없다. 동학 1에서 한 분의 알라디너가 쓴 리뷰가 인상적이다. 그분의 말씀대로라면 나의 정예 멤버가 되기에 충분한 책이다.       

 

 

 

한권의 책은 이렇게 애초의 계획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당초의 계획은 이

런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러하듯 자신만의 독서계획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 그렇다고 대단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독가도 아니요 속독가도 아니다. 한 달에 겨우 몇 권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손가락 두 세 개가 부담스러운 지경이니 말이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앞세우고 나 자신은 그 뒤로 숨고 싶지만 사실은 원래 읽는 속도가 느린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나의 생각과 몸이 굼뜨니 독서의 속도 또한 굼뜨더라는 말이다.

 

 

 

나에게 독서 계획이란 특별할 것이 전혀 없다. 그저 관심 분야의 관련 도서를 몇 권 선택하여 특정 범위의 책들을 차례로 읽어가는 정도이다. 대략 그 기간은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수개월, 그 범주는 2-3개 정도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계획을 거의 제대로 해낼 수 없다는데 있다. 나름 기분 좋은 계획이 얼마 안가서 어그러지기 일쑤인 것이다. 이번에도 당초 계획은 ‘니체’의 저술을 읽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만 틀어지고 만 것이다.

 

 

 

학생 때 책을 읽어가며 생긴 버릇이 있는데, 하나는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버릇이고 다른 하나는 읽을 도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다. 밑줄을 그으며 때로는 지저분하게 나의 생각도 여백에 적어가면서 말이다. 책이 얼마나 지저분해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름의 독서 계획인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읽을거리가 덤으로 발생 수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수첩에 제목과 저자를 적어 가지고 다녔다. 서점에 들러 개인용 전화번호부 정도의 크기인 이 수첩을 꺼내어 책을 찾곤 했다.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버릇은 책이 지저분해지는 커다란 단점이 있다. 하여 다른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마땅치 않다. 그럼에도 지금껏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이유는 반복하여 읽을 경우를 대비한 나름의 방편인 것이다. 같은 책을 다시 읽게 될 경우 그 부분을 중심으로 읽을 수 있다. 시간을 훨씬 더 절약할 수가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물론 밑줄 친 부분만 읽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밑줄과 더불어 그 주변을 좀 더 읽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년마다 책장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는데 첫째 이유는 공간의 부족이고, 둘째로는 정예 부대를 구축하는 나름의 목표이다. 밑줄을 그었으나 수년간 손을 대지 않은 책들은 정리의 대상이 된다. 최근 이러한 정리의 시간이 있었다. 책을 내다 버리고나서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소유’가 그랬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내다버린 것은 스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다. 돌아가시고 나니 매체에서는 난리도 아니다. 그때 나는 한탄했다. 아, 나의 이 지지리도 짧은 안목이여....

 

 

 

여하튼 정리에 들어가면 우선대상이 되는 책들을 일단 빼놓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거리낌이 없다. 나름 용감해지는 것이다. 물론 아깝다고 생각하는 책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시 읽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책들이 우선대상이다. 그리고 정리의 대상들을 며칠 동안 관찰한다. 사실은 최종 결정을 내리느라 고민을 하는 것이다. 과연 지금 내다 버려도 나중에 후회를 하지 않을까... 이 며칠의 정리기간에는 다른 책을 거의 읽지 못한다. 정리 대상들을 재점검하는데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쌓아 놓은 100여권을 서로 의자 삼아 이리저리 걸터앉는다. 그리곤 한권씩 책장을 넘겨가며 점검한다. 이 순간 나는 수전증에 걸린 사람처럼 여러 차례 손을 부르르 떨기도 한다. 이번 달에는 독서의 계획과 맞물려 더더욱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하나 둘씩 마음의 정리가 된다. 책을 정리할 때의 심정은 비장하다.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은 ‘정예 멤버 500’이라는 나름의 목표이다. 기존의 책들을 하나 둘씩 정리하고 정예 멤버로 교체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정리하며 책장에서 끌어내린 책 중 몇 권이 ‘니체’의 저술들이다. 니체는 정예 멤버로 나름의 가치부여를 했지만 책이 낡았다. 낡은 책도 정리의 대상이다. 물론 정예 멤버의 자격을 부여한 헌책은 새로운 선수로 교체한다. 헌책은 정리의 대상자와 함께 분리수거의 대상이다. 문제는 정예 멤버를 새 책으로 교체하면서 반드시 다시 읽는다는 것이 나름의 원칙이다. 하여 이번에 재도전의 기회로 삼으려 했고 니체는 이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헤세의 문장론」을 읽던 중 헤세도 책을 필터링했다는 내용과 마주했다. 헤세의 분야별 정예 멤버 선별방식에 해당하는 소제목은 <책 정리하기>에 잘 드러나 있다. 매우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최근에 나는 또 다른 책을 검사해야 했다. ...나는 서가 앞에 서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책의 열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서 곰곰 생각에 잠겼다. “이 책이 필요한가? 이 책을 사랑하는가? 이 책을 꼭 다시 읽을 것인가? 그것을 분실하면 정말 마음이 아플 것인가? ....

 

 

 

철학자들이 다가왔다. 마우트너의 사전을 자니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아니다. 언젠가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을 다시 읽을 날이 오겠는가? 아, 아니다. 하지만 칸트는? 나는 망설였다.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칸트는 그냥 놓아두기로 했다. 니체는? 서간과 함께 꼭 필요하다. ...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벨기에와 영국의 회화를 다룬 바자리의 깔끔한 득별작품, 예술가 한 모음집, 이런 것은 없어도 그리 마음이 아프지 않다. 그런 것은 치워버리자! ....헤르더는 중요하게 대우해야 할 사람이다. 발자크는 어떨지 몰라 그냥 놓아두었다. 아나톨 프랑스는 생각해봐야 할 사안이었다. ....전쟁문학은 누가 수집하겠는가? 몇 백 파운드에 책을 싸게 넘겨줄 수 있다. 1915년과 1916년도에 무슨 질 좋은 종이가 있었겠는가!

 

 

괴테와 훨더린,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책은 남겨둔다. 뫼리케는 미소 짓고 있고, 아르님은 대담하게 빛을 발한다. 아이슬란드의 전설은 온갖 걱정을 견디고 살아남는다. ..... 그런 책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알단 살아남게 된다. 159-163 쪽

 

 

 

위 글은 헤세가 1919년에 쓴 글이다. 헤세는 장서가였다. 하여 서가 정리가 필요 했던 모양이다. 물론 나는 장서가도 아니요 다독가도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필터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는 헤세와 다르게도 나만의 정예 멤버를 갖춘다는 것일 뿐이다. 헤세만큼 책을 보는 안목을 가진 독자도 아니요. 각각의 책에 가치를 부여할만한 능력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내 맘대로 일 뿐이다. 그러나 책을 선별해내는 순간 찾아오는 벌벌 떨리는 수전증도 나름 기분이 그럴 듯 하고, 정말 마음에 꼭 드는 책으로 책장을 채운다는 것이 그저 좋을 뿐이다.

 

 

 

 

헤세가 그의 서간까지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니체의 저술들. 학생때 그의 저술들을 의미도 모르면서 전집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그후 여러 차례의 정리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니체의 저술들은 늘 목숨을 보전해왔다. 그의 사고는 거의 충격적으로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난이도는 나를 진짜 충격에 빠트렸다. 당시 니체의 저술을 독해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물론 그 신선한 충격을 감당할 능력이 나에겐 여전히 없다. 그럼에도 다시 니체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싶은 충동을 늘 느낀다. 아마도 자존심, 나의 알량한 자존심 덕분일 것이다. 때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책들을 종종 만난 적이 있었고 포기의 수준이 아니면 반드시 재도전을 해왔다. 니체, 반가운 재도전의 의지를 불러 일으키는 저자이다.

 

 

 

이렇게 니체를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었건만, 얼마 전 무료로 받아본 한 권의 책이 나를 한동안 부끄럽게 했고 고민하게 했다. 「경전 7첩 반상」이 소개하고 있는 낯선 경전 중에는 도마복음도 들어있었다. 도마복음을 읽어볼 기회가 없었던 것에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책이 도착하기 전에 도마복음을 찾아 읽는 것으로 족했다. 나름 도마복음에 대한 예의를 갖춘 행위이다. 그러나 동경대전은 찔러도 아주 깊이 나의 양심을 찔러왔다. 견뎌낼 재간이 없다.

 

결국 수운과 해월, 두 분과 동학운동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께 항복하고 말았다. 이번 일을 통해 다시한 번 독서의 계획을 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한다. 그러나 한동안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만한 보람도 있는 것이라 믿으며 계획한 세권의 책과 더불어 나의 푸르디푸른 5월을 보내게 될 것이다. 헤세의 말처럼 중요하게 대우해야 할 「동학」을 읽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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