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인생 - 조지프 캠벨 선집
조지프 캠벨 지음, 다이앤 K. 오스본 엮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대들이 꼭 읽어야 하는 작가, 조셉 캠벨


필독서라는 말도 있지만 이제는 필독가라는 말도 때론 성립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은 바로 조셉 캠벨과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신화와 인생을 번역한 이윤기선생이 이 책을 번역하지 않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지만 조셉 캠벨은 참으로 멋진 생각을 가진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그 어떤 현상도 조셉 캠벨의 사고 영역에 장애가 되는 일은 없다. 그것이 종교이든 철학이든 간에 그의 영역 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모든 것들은 잘 버무려지고 융화라는 새로운 변화를 격게 된다. 그야말로 ‘化’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양성이 무시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양성을 고스란히 보존시켜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전혀 새로운 맛을 주는 사고의 소유자인 것이다. 조셉 캠벨을 우리들의 20대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열린 사고


 젊은 독자들에게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저자의 열린 사고이다. 저자는 큰 줄기의 종교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신화들을 연구해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기독교, 불교, 유학, 도학등은 물론 일반인들로는 접하기 쉽지 않은 아메리카 부족을 비롯 아프리카의 원주민에 이르는 그들의 신화를 연구해왔다. 어쩌면 전 세계의 신화란 신화는 죄다 섭렵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자신 스스로 기독교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이원론적인 기독교적 이론들에 공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때로 조셉 캠벨을 지극히 동양적 사상에 물든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게 한다. 절대자와 인간의 간극인 넘볼 수 없는 종교적 금기사항을 저자는 무참히도 무너뜨린다. 이원론적 사고 혹은 사상은 기필코 대척점을 만들 수 밖에 없고, 언젠가는 반드시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구도로 이해하는 그에게 이윈론이 자리 잡을 여지는 결단코 없다. 캠벨에게는 정신적 작용력의 한계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정말 멋진 독서법


이토록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저자가 젊은 독자들에게 주는 또 다른 유익함은 독서의 좋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캠벨이 조이스와 토마스 만 그리고 슈펭글러를 읽다보니 니체를 언급한 장면이 나오고 그렇게 니체를 읽는다. 니체를 읽으려면 쇼페펜하우어를 읽어야하고 쇼펜하우어를 읽으려면 킨트를 읽어야 한다. 칸트를 출발점으로 삼자니 매우 힘들다. 그리하여 괴테로 돌아간다. 조이스가 쇼펜하우어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조이스의 시스템에서 쇼펜하우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슈펭글러의 사고 시스템과 조이스의 것이 매우 밀접하다는 점을 칼 융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것들을 한데 버무리는 작업을 해내는 것이 캠벨의 독서방법인 것이다.


사실 동양의 고전을 읽을 때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중용을 읽다보면 대학, 논어, 주역 혹은 맹자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독서의 역량이 늘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방식이 아니던가... 젊은 20대들에게 캠벨은 결혼 혹은 인생의 의미 뿐 아니라 진정한 독서의 방식과 그 가치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왕성한 독서력을 발휘할 수 있는 20대들에게 이 책은 매우 귀중한 깨달음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캠벨, 중용과 만나다...


  동양의 사상을 약간을 신비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점인 아쉬움으로 남지만 ‘인간은 신성으로 가득 채우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그에게서 동양의 고전인 중용의 장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중용에는 ‘지성여신’이라는 문구가 있다. ‘지극한 誠은 곧 神적인이다.’라는 말이다. ‘지성여신’이라는 문구 앞에는 ‘유천하지성, 위능진기성’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오직 천하의 지성이라야만이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誠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둘을 합치면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라야만 자신의 誠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고 그 지극한 誠은 곧 神적인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얼마나 조셉 캠벨의 이야기와 흡사한 말이던가...인간은 신성으로 가득한 것을 향해 나아간다는 조셉 캠벨의 말은 동양의 대표적인 고전 중 하나인 중용의 한 장구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아파치족의 이야기는 지극히 물권을 인정하고 있다. ‘모든 사물들은 살아있고, 그 사물들은 우리의 필요를 이해하고 있다’ 내용이 그것이다. 이는 사물을 인간이라는 방향에서 출발하여 사고한 것이 아니라 사물을 주체로하여 사고한 말이다. 중용에서도 물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인권이 중요하듯이 물권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능진기성 위능물지성’이 그것이다. 천지인의 조화로움과 일원론을 주장하는 동양사상에서 물권의 중요성을 제기한다는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주장하는 서구의 사상으로는 설파하기 매우 어려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여러 가지 면에서 캠벨은 우리의 젊은 독자들에게 많은 깨달음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