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모의 연주를 보고 있노라면 ‘성스러운 연주’라는 생각을 갖곤 한다. 그녀의 연주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런 그녀가 ‘특별수업’이라는 책을 냈건만 나는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진정한 팬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알라디너의 서재에서 발견한 ‘특별수업’,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다.  한 음악가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이 그 음악가가 쓴 책을 읽어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인간문화재인 만신 김금화씨는 ‘하늘과 땅을 인간에게 이어주는 것을 바로 무(巫)’라고 말하면서 그러한 무(巫)의 존재는 비단 만신만이 아니라고 했다. 만신의 성격을 가지는 존재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 중에 음악가도 포함된다고 했다. 음악가가 일종의 만신이라니...상당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그리모의 특별 수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말은 바로 ‘음악가는 만신’이라는 김금화씨의 말이었다.


 그리모는 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게되자 극도의 불안과 슬픔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리모는 모든 심리적 짐을 떨쳐버리고 그 어느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곳으로 떠나야 할지 자신도 잘 모르고 있다. 그러나 어디로든 떠나야 한다. 

 

 

 

        그리모에게는 연주로 성스러움을 느끼게하는 특별함이 있다


 

홍신자와 그리모


 이는 마치 춤꾼인 홍신자씨의 상황과 오버랩 된다. 춤의 예술을 행위하던 홍신자씨도 그리모와 같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홍신자나 그리모가 예술가로서 처해있는 상황은 ‘정신적 고갈’을 의미하는 같은 상황이다. 즉, 영적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예술인에게 영적 에너지는 절대적인 것이다. 김금자씨가 말하는 만신이라는 의미는 아마도 이러한 맥락 일 것이다. 만신이 신과 인간을 영매하는 존재이듯이 예술인도 청중과 음악을 영매하는 매체인 것이다.


 극도의 영적 에너지의 고갈을 느끼자 춤꾼 홍은 인도로 향한다. 그녀는 라즈니쉬를 만나고 그의 제자가 되어 영적에너지를 재충전한다. 그러나 영적 에너지의 재충전은 단순히 방전된 밧데리를 충전하는 것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밧데리는 같은 질의 내용물로 재충전 하여 똑같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반면, 재충전 후의 영적 에너지는 그 이전의 것과는 완연하게 다른 성격을 지니고 충전자로 하여금 전혀 다른 성질의 효과를 내게 한다. 밧데리는 성장이라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 반면, 영적 에너지의 재충전은 충전자의 질적으로 다른, 그리고 거대한 성장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모도 자신의 여정을 떠난다. 떠나기로 한 이상 어디로인가 떠나야 한다. 여정에서 그녀는 스승님과 매우 닮은 교사를 만나고 동경하던 삶을 찾아 성당의 뜰을 관리하며 사고하는 친구를 만나고 커피를 마시다가 우연히 또 다른 이상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모의 타자와의 관계

 

 그녀가 말해주는 늑대 센터에 대한 이야기도 이채롭다. 그녀는 늑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늑대에게 물려 큰 상처를 입는다.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녀는 이를 극복하고 상대방을 진정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 내면의 상처를 인내해야 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것은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나의 사랑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상처를 낼 수도 있음을... 그 상처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도 있음을.... 그러나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그리모를 통해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랑의 의미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 있다. 우연하게도 바로 이전에 읽었던 ‘산화의 힘’에서 읽었던 내용과 매우 일치하는 깨달음을 그리모의 특별수업에서 다시 읽게 되다니...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예술가, 영웅, 죽음’이다. 캠벨이 말하는 영웅은 인류에 헌신한다. 예술가는 대중과 문화에 신화를 가져다 줄 수 사람이라고 쓰고 있다. 특별수업에서도 예술가와 영웅은 위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우연의 일치인가...

 

 

그리모의 죽음

(그리모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려는 것이 아님)

 

 조셉 캠벨은 죽음으로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신화를 소개하고 있다. 어쩌면 캠벨도 이러한 신화적 재탄생의 방식에 공감하는 듯 했다. 특별수업은 말하고 있다. “인간은 오직 사랑 때문에 죽어야하고 그 죽음은 비극이 아닙니다.”라고...


특별수업이 주는 특별한 교훈이 하나 더 있다. ‘자유를 수련하라’는 것이다. 자유를 수련한다는 의미는 영혼의 활동에 자신을 내어준다는 의미라고 했다. 영혼의 활동을 인식하는 존재는 만신이다. 물론 그리모가 만신이 되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영혼의 활동인식은 만신적인 요소를 가진 점이라는 뜻일 뿐이다. 자유의 수련은 영혼의 활동을 한다는 뜻이라는 것일 뿐....




그리모, 그리고 달과 6펜스

 

 

적은 분량의 책이면서 그리모가 딜레마를 극복하는 과정의 책이라겼기 때문에 그 과정이 궁금했고 그에 대한 기대감만을 가지고 읽었다. 그런데 뜻밖의 소득 아니, 뜻밖의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다름 아닌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다시 만난 것이다. . 그리모가 머물렀던 수녀원의 베아트리스라는 등장 인물을 통해서이다.  

 베아트리스는 그리모에게 “인간에게는 원래 속한 어떤 지방, 어떤 기후가 있어 평생 그 곳을 찾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 만난 서머싯 몸은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그들은 늘 그들이 알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향수(nostalgia)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태어난 곳에서 이방인이며,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잎이 우거진 오솔 길, 그들이 놀던 사람이 많은 거리는 그저 그들이 거쳐가는 곳일 뿐이다. 그들로하여금 애착을 가질 지도 모르는 영원한 그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낮선 느낌이다.”


서머싯 몸은 태초부터 그 조상들이 떠나왔던 그 어떤 땅으로 인간을 돌아가도록 재촉하는 격 유전이 피와 함께 우리의 몸을 돌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서머싯 몸은 달과 9펜스의 주인공인 스트릭랜드가 떠나게된 배경을 독자들에게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서머싯 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달과 6펜스를 읽고 나서 그의 소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혀 절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서머싯 몸의 이런 소설속의 언어를 특별수업의 베아트리스를 통해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이는 나에게 무척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모, 그리고 매트릭스


 그리모가 만난 베아트리스는 정말 특이한 인물이 있다. 베아트리스를 통해서 달과 6펜스를 만나는가하면 영화 매트릭스를 만나기도 한다. 정말 특별한 일이다. 베이트리스는 그리모에게 이렇게 말한다. “요컨대 인간은 신의 암(癌)이 아닐까 하고 자문하게 되더군요. 통제를 벗어나 제멋 대로 번식하는 세포들이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는 사로잡힌 모피어스에게 그와 같은 말을 한다. ‘인간은 암과 같은 존재이다.’ 라고... 스미스의 이 말은 당시 충격적이었다. 왜냐면 일면에서 자연의 파괴를 일삼는 유일한 존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스미스의 이 말에 선뜻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은 인간이 그동안 그래왔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모가 만난 사람들

 

그리모는 여정을 통해 몇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그 과정에서 그리모는 자신의 슬픔, 즉 자신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여정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아닌 타자와의 만남이다. 인간의 슬픔은 인간을 통해서만이 치유될 수 있는 것을 잘 보여준 그리모의 여정이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한스는 자신의 밖에서 그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지 말고 자신 내부에서 찾으라는 조언을 해준다. 오르페우스가 뒤를 그만 돌아보아 유리디체를 잃은 것은 그녀가 부활하는지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자신의 내부로 회귀하라는 그런 조언 말이다. 그녀는 마침내 해답을 찾는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슬픔을 떨쳐보리고 자신의 피아노 앞에 새로운 사람으로 서있다. 그리고 그리모는 말한다. "길을 잘 아는 사람에게 길을 묻지 말고 그대처럼 길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라."라고...  

 

 

그리모의 특별수업


특별수업이라는 표제어가 특별 수업으로 결정된 단서를 이 책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참으로 멋진 대목이다. 그리모는 스승 바르비제가 해준 말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내가 자네에게 요구하는 것은 최고가 되라는 것이 아닐세. 내가 요구하는 것은 특별해지라는 것일세.” 아...나는 이 행간을 읽을 때, 전율을 느낀다. ‘그래, 바로 이거야!’ 하는 깨달음이 일었다. 비로소 나는 그리모의 연주에서 왜 그토록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는지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자유를 수련했고, 그 영적 활동을 통해 특별해져버린 것이다. 영적 에너지로 충만한 자신의 영혼을 피아노의 건반에 실어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영매, 아니 만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이 글은 그녀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와 똑같이 고갈을 경험하며 그 고갈을 새로운 에너지로 충족시키고자 한다. 그녀의 여정은 특별할 것이 없다. 다만 슈타인웨이에 들어가 어느때든지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우리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우리도 특별해지려고 한다면 언제든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