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티브 잡스의 번역서를 기폭제로 발전해가는 두 번역전문가의 논쟁이 뜨겁기만 하다. 이를 지켜보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두 전문 번역가의 이러한 자세에 우선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사실 번역서에 대한 논란이 이슈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알라딘 상품의 하나로 게시된 '괴델, 에셔, 바흐'라는 번역서 또한 당시 대단히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충분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고 금새 잊혀져 지금처럼 사회적인 이슈가 되지는 못했다.  

왼쪽의 번역서는 번역의 문제점들을 지적받으며 당시 이슈가 되었던 두 권의 책이다. 번역의 문제점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한 덕분인지 번역을 맡았던 장본인이 이 책의 번역이 가지는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영어판의 원문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문제점을 지적해준 분들께 보다 훌륭한 개정판을 약속한 적이 있다. 이러한 일이 있었던 것은 2003년의 일로 아직 위의 책은 개정판이 출시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이덕하씨의 논평은 매우 구체적이다. 클릭해보면 당시 이덕하씨가 이 책의 번역이 가지는 문제점을 어떻게 지적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특히 오역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다.  

또 다른 분께서는 이 책을 불량번역이라 강렬하게 비판하면서 오역의 종합판인 이 책을 개정하지 않고 계속 팔아먹는다며 호통을 치는 장면이 있다. 그 독자는 정상적인 독서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이 책을 지속적으로 판매하는 행위는 비양심적이며 반지식적 행위로서 용납할 수 없다고 분개하고 있다. 이 책에 관한 비판은 번역이 가지는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단적 증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지 못한 이유는 책과 독자층과의 관계속에 내재해있다. 책이 가지는 내용과 주제는 독차증의 종횡을 결정하게 마련이다. 대중성을 가진 책이라면 수평적으로 확장하여 수평선인 횡선을 그을 것이고, 대중성을 띄지 못하고 일부 탐독자들에게만 어필하는 도서라면 깊게 파고드는 수직적 종선을 긋게 마련이다. 책과 독자가 가지는 긴밀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괴델, 에셔, 바흐는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기 어려운 주제를 다룬 책이다. 깊은 관심과 많은 관련 독서량을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상의 책이 아닌 것이다. 한마디로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책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역의 문제는 사회적인 다수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고 결과적으로 그리 심각한 양상을 띄는 공적 부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워낙 지명도가 있는 명사이다. 인지도가 높은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대단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 도서의 대중성을 애써 확보하기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도서라는 점에서 괴델, 에셔, 바흐와는 크게 다른 입장의 도서인 셈이다.   

이렇듯 폭 넓은 대중성을 가진 이 책에 다수의 오역이 발견된 것이다. 이를 전문 번역가 이덕하씨가 역시 날카롭게 지적하게 되었고 번역을 맡았던 장본인과 출판사에서는 이러한 지적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은 입장이었다. 탈 오자이거나 제본의 문제라면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겠지만 도서 번역의 질적 문제가 제기된 이상,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크게 훼손시키는 일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문 번역가에 대한 대중적인 신뢰를 다시 한 번 재고하게 만든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오역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구입하지 않기로 결정한 독자들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스티브잡스는 죽어서도 대한민국의 번역사에 한 획을 긋는 좋은 일을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번역에 관한 서로 다른 입장들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논쟁이란 지극히 발전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 순기능이 이만저만 좋은 것이 아니다. 물론 논쟁을 하다가는 언쟁으로 돌변하게되면 그 역기능 또한 만만하지 않은 관계로 부정적 뇌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부인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않을 수는 없다. 

현재 두 사람의 전문 번역가들이 매우 긍정적이며 발전적인 번역의 논쟁에 돌입하고 있는 듯 하다. 이 두 번역가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작동하는 원리를 아는 바는 없다. 그러나 나름대로 번역가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번역은 제 2의 창조라는 말은 흔한 말이다. 이는 번역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단적으로 표현해준 말이라고 생각한다. 번역가는 원서가 가지는 문화, 정치, 경제, 역사적 배경을 통섭해야 하는 것은 물론 언어가 가지는 뉘앙스마저도 적절하게 읽어내야 한다. 원저자와 번역가의 교감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이 전에 번역가로서의 자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책임성과 목적성이 그것이다. 책임감 없는 번역은 그 자체가 범죄 일 수 있다. 독자들에 대한 기만이기 때문이다. 상술과 접목된 목적성 을 가진 번역 또한 범죄이다. 마찬가지로 독자에대한 기만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몇몇 특정인이 아닌 대중을 상대로 한 기만이다.    

좋은 자질을 갖춘 번역가는 새로운 창조의식을 또한 가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번역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예술행위이기 때문이다. 원서가 가지는 창조성을 더욱 빛내줄 수 있는 번역이어야 한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의 교환 수단이라는 개념을 넘어 창의력과 관계하는 도구이다. 언어가 아름답고 감동을 주며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전달 과정에서 이 창의성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오역 비판은 그러므로 당위성을 확보하게된다. 고뇌하지 않는 번역가, 책임성이 없는 번역가, 상업적 목적성을 우선하는 번역가, 능력이 없는 번역가등의 번역 행위는 모두 독자와 사회에 대한 기만행위를 저지르게 된다. 그런 번역서들은 작품이 가지는 가치도 정신을 모두 상실해버린, 휴지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번역서에 따끔한 일갈은 결코 정도가 심할 수가 없는 사안이다. 오역의 피해자는 모든 독자이며 출판 관계자들에게도 독소로 작용헐 것이기 때문이다. 신뢰를 상실한 출판사는 서서히 힘을 잃어갈 것이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덕하씨의 문제제기는 자성의 목소리로 들려온다. 또한 출판계에 경종을 울려주는 파동의 효과를 기대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가진 규모이다. 이덕하씨는 전문 번역가이고 전문 번역가가 번역의 문제점을 제기했다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외부의 비판은 무시할 수 있는 여지도 있는 것이지만 내부의 목소리는 거부할 수 없는 자성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역가의 논쟁은그 결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논쟁은 일반적으로 결과가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번역에 대한 두 사람의 논쟁은 매우 발전 지향적인 성질을 가진 논쟁이다. 누구의 견해가 옳으냐보다 발전의 계기와 자성의 기회를 주는 일은 독자들에게 그만큼 유익한 일이다. 

이제 대한 민국의 번역가와 독자들이 번역정신을 지각할 때이다. 스티브 잡스라는 번역서가 엉터리 번역정신의 결과물인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번역사에 획을 긋는 계기가 된다면 꼭 허망한 일만은 아닌 것이다. 지금보다는 양질의 번역으로 발전하는 사회를 기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진 번역서이니 말이다.  

번역가가 지녀야  할 자세를 일깨우는 일화를 간단하게 소개하면서 글을 마칠까한다. 어느 작가의 작품을 다른 번역가가 번역서로 출간했다. 츨간 기념회에 원저자가 참석했다. 원저자가 번역가에게 한미디 했다. "자네는 내 작품을 어찌 그리도 자네 맘대로 번역을 했단 말인가?" 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번역가가 당당하게 이에 대답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제 번역이 선생님의 원작만큼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번역가의 이 말에 원저자가 대답했다 "자네 말이 맞네, 정말 훌륭한 번역을 해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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