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우리가 모르는 미국 그리고 세계 - 《뉴욕타임스》신디케이트 기고 최신 칼럼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시대의창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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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촘스키, 미국을 우방이라고 알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미국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한 책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다. 다양한 경로로 세계가 움직이는 동력을 이해하는 일은 때로 흥미로운 일이지만 때로는 절망에 가까운 낙담을 주기도한다. 

미국을 읽는다는 것 또한 독자들에게 낙담을 줄 수도 있다. 거대한 힘의 작용이 왠지 올바르지 않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담의 가능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진실에 가까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세계는 늘 변화하고 그 뒤에는 미국이 있다. 변화의 이유와 변화해야 할 당위성이 독자를 무리없이 납득시킨다면 다행한 일이지만  대부분 독자들이 그 당위성을 상실한 변화를 목도하기가 더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계 변화의 원동력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일은 앞으로 개인 혹은 사화 나아가 국가가 향해야할 미래 지향적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체에 의하여 전달되는 수많은 정보와 넘쳐나는 견해들이 개인의 가치관을 흔들 때 개인은 혼란스러운 가치관을 형성해갈 수 있으며 자신도 의식하기 전에 매체의 사고에 수긍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타자의 왜곡된 사고가 개인의 사고를 지배할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타자는 의도된 매체의 목적에 순응하도록 개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되므로 그 개인들의 통찰력을 교란시킬 수 있다. 교란된 개인의 가치관은 자발적인 사고를 불가능한다. 흔히 매체에 의하여 개인은 착시현상을 일으켜 타자의 요구를 순응하게 된다.  

타자에 의하여 왜곡되고 의도된 방향으로 개인의 사고가 흘러가도록 방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타자의 의도가 개인의 사고가 좌우한다면 직시해야할 일들을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 문제는 타자에 의하여 의도된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라도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 얼마나 타자에 의도에 따라 사고하고 판단을 내렸으며 움직여왔는지 깨달을 수 있다. 물론 자각 현상을 스스로 얻은 개인들 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다. 아직 자각하고 있지 못하다면 비로소 시작해야 할 일이다. 촘스키는 개인들에게 자각 할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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