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같은 내용의 그림으로는 ‘Selene and Endymion’이 있는데, ‘세바스티아노 리치’라는 분의 작품이라고 했다. 이 분의 작품에서는 여신이 직접 등장을 하고 있다. 셀레네는 자신의 자태를 유감없이 뽐내고 있는 것이다.   

  

 

 

 

 

 

 

 

 (좌) Sebastiano Ricci 作  Selene and Endymion    

(상) Nicolas Pussin  作  Diana and Endymion   

[위의 두 그림 각각 셀레네와 동일 인물인 다이아나를 모두 그려 넣고 있으며, 대부분의 그림들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트리오종의 그림을 다시 한 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큐피드는  달빛이 잘 비추어 들어오도록 나뭇 가지를 한쪽 옆으로 걷어 내고 있고, 양치기의 오른 쪽 가슴으로 내리 비치는 달빛은 햇빛이라 착각할 정도로 눈이 부신 광채를 뽐내고 있다.  물론 큐피드 발치 아래에서 누워있는 한 마리의 개는 엔디미온이 양치기 임을 상징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다음과 같은 추측에 다다르게 된다.

 트리오종 역시 무척 고민했을 것이다. 달의 여신을 그려 넣을 것인가...아니면 생략한 상징적 표현을 자신의 미술적 기법으로 되살려 낼 것인가... 트리오종이 낭만주의 화풍을 살려 빛의 극적 효과를 살려내는데만 신경을 썼더라면 셀레네를 생략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빛의 극적인 효과는 셀레네를 생략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화가 트리오종은 과감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바로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주인공인 그녀, 셀레네를 그려 넣는 대신, 자신의 미술적인 기법을 이용하여 달빛을 상징화시킨다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트리오종은 눈이 부시도록 신비스러운 달빛의 질감으로 그녀를 대신 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트리오종이 당시의 화풍을 살려 그려내는 것 이상의 큰 이미를 담고있다고 할 수 있다. 달빛의 극적 효과로 셀레네를 상징하기로 결정한 트리오종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양치기를 내리 비추고 있는 월광의 눈부시고 아름다운 질감을 다시한 번 더 느껴보시기 바란다. 바로 이 빛이야말로 셀레네와 동일한 것이다.

그 어떤 아름다움이 트리오종의 이 월광에 견 줄 수 있을까...
그리고는 더없는 감동이 밀려들어 온다.
트리오종은 자신만의 기법을 사용하여 아름다움을 빛으로 상징화 시키는 모험적인 선택을 했지만 충분히 전달하고도 남음이 있는 감동을 내개 주었다...
 
물론 이러한 나의 추측은 전혀 작가의 의도와 다를 수도 있지만 충분히 미스터리한 요소를 감추고 있는 트리오종의 생각을 이리저리 추측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여지를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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