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킨스의 저서들을 읽다보면 우선 그의 깊은 노력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전개시키는 정말로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되기 때문이다. 다수의 독자들은 도킨스의 이러한 노력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또한 일부의 독자들은 도킨스가 심오한 연구와 과학적 논거들을 내놓는 만큼, 상대적으로 그를 저주할지도 모른다.
흔히 그를 진화 생물학자라고 칭한다. 물론 저술활동을 왕성하게하는 그를 작가라고도 한다. 그 중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 저술된 책이다. 우리나라의 학생들과 성인들에게 그토록 회자되던 바로 그 책이다.





이상의 책들을 보면 과연 도킨스가 우리 한국의 서점가를 그 얼마나 장악했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당시 이 책을 읽지 않은 학생들이 있다면 정말 독서를 싫어하는 학생들 뿐이었을 것이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그야말로 서점가를 강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전자에대한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점도 그러하겠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도킨스라는 사람의 철저한 연구정신에 있을 것이다.
도킨스의 저서에서 공통적으로 느끼게되는 점이 바로 그의 성실성이다. 자신의 주장에 완벽함을 기하기 위한 그의 부단한 노력, 아마도 이러한 도킨스의 장점이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을 것이다. 한가지 주제에대한 도킨스의 완벽주의, 아니 지신의 주장을 위해서 그 누구도 쉽게하기 힘든 연구와 자료의 수집을 총제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물론 독자는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인간및 생명체의 다윈주의에 흠뻑 빠져들었을 것이다.
다음의 대표작은 '만들어진 신' 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그의 노력이 그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된다. 만들어진 신의 서론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다. 창조론에 반박하는 주장들을 일일이 기록하며 설명하다보니 길어졌던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단지 도입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입부만으로도 왼만한 독자들을 반쯤은 설득하고도 남음이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도킨스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서 있는 힘껏 자신이 할 수 있는 힘을 모두 쏟아내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정렬과 의지의 에너지가 독자인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온다. 아...도킨스라는 저자의 용솟음치며 뜨거운 혈기가 전해온다. 물론 절대적인 다수가 읽어줄 책은 아니다. 다만...도킨스의 연구와 집념이 그 얼마나 가상하며 노력의 결실인지를 느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접근이 어려운 일일 것이다. 또한 도킨스는 다수의 독자들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존재가 되기도한다. 왜냐면, 그는 신성한 창조론을 철처히 파헤쳐버린 독종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도킨스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정말 끈질진 사람이다. 
눈먼 시계공이라는 저서는 또한 번 도킨스의 독자들을 놀라게한다. 도킨스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시종일관 같은 내용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렇게도 같은 내용을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전개시킬 수가 있는 것일까...이점은 정녕 도킨스를 읽어본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의문이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하나의 저서만으로 부족했다고 느낀 것일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저서 중 위에서 언급한 어느 한권만이라도 읽어본다면 도킨스의 주장에 설득되기에 충분하다. 그만큰 그의 저서들은 자체로 완성도가 매우 높으며 질적으로 우수한 저술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이라는 저술을 새롭게 내놓는다. 그렇다고 우려먹기식이냐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논제의 핵심은 같을지라도 방법론적 접근이 전혀다른 저술들이다. 눈먼시계공은 이기적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철저란 과학적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연구의 깊이는 우리들의 상식을 훨씬 뛰어넘어 깊이 깊이 파고들어간다. 적지 않은 분량의 저술을 이토록 깊숙히 파고든 다위니즘을 새로운 형식으로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도킨스는 여기에서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끈임없이 새로운 저술들을 내놓는다. 이런 사람 참 지독한 사람이다. 자신의 의지를 절대로 꺽을 줄을 모른다. 일생동안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분명한 것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도킨스와 같은 학자, 혹은 저자를 발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신념은 일생을 두고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생물학적 진화의 이론 뿐만이 아니다. 설계되지 않는 누적된 진화와 우주론 뿐만이 아닌 것이다.

오죽했으면 왼쪽과 같는 책들이 등장하게된다. 책에 의하면 도킨스는 도전자이다. 신에 대해 도전장을 들이 민 망상에 사로잡힌 인간이라는 것이다. 감히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도전장을 내밀다니...도킨스는 있을 수 없는 불경죄를 저지르고 진리를 외면한 망상자인 것이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인 갈등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다고 본다.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 무신론자이거나 범신론자일 것이다. 아니면 도킨스의 죄가 적잖은 관계로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 읽어주는 신학자 혹은 신자이거나...이다.
신의 존재를 단순히 종교적인 갈등으로 이해하기에는 시대 정신으로보아 부족함이 있다고 여기는 바는 다음과 같은 논거를 갖는다. 과거부터 신 중심의 기독교적 사상이 서구를 지배해왔다. 신 중심의 성스러운 종교가 겪어온 역사는 대부분 피로 얼룩져있는 것을 또 누가 부인 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도 종교적 갈등은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엄중하게 되돌아 보아야 할 때가 이미 지나버렸다. 기독교 중심의 서구인들은 자신들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인간을 지배하게된다. 대 항해 시대라 불리는 식민지 약탈의 시대가 그것이었다. 과연 지구상의 그 어떤 대륙이 서구 열강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가. 아프리카의 빈곤은 수탈과 잔인함으로 얼룩져 그 흔적들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어떠했던가. 신의 이름으로 서구인들이 빼앗은 목숨이 식민시 시대 원주민들의 90%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약탈의 선봉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있었고 신의 이름이 함께하고 있었다. 과연 이것이 신이 원하는 바였던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믿고있는 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공포스러운 존재이며 절대로 인간과 함께해서는 안될 존재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신의 존재가 오히려 지옥처럼 느껴졌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라...누구에게 천당이고 누구에게 지옥이겠는가..
그리고 그 후예들의 삶은 또 얼마나 고단하던가....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우리가 신을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이유들이다. 역사는 현대를 낳은 아버지이다. 그리고 현대는 그렇게 미래를 생산할 것이다. 제대로 반성되지 않은 과거, 은폐된 과거는 불행한 미래를 낳을 뿐이다. 우리가 역사를 재인식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우리는 도킨스가 일생을 두고 하나의 주제에 그토록 연연해하는지 이해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또한 그를 진정한 인류애를 가진 진화 생물학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충분한 것아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