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 - 호남벌에 휘날리는 창의의 깃발 항일유적 답사기 2
박도 지음 / 눈빛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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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우리나라를 넘보았다. 우리나라가 강성하면 비굴하게 굽신거렸고, 나라의 기강이 약한 때를 놓치지 않고 약탈과 노략질을 일삼거나 군선의 띄워 우리의 땅을 차지하려고 기를 써왔다. 백제와 긴밀한 역사적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은 지질이도 재수없는 이웃이다. 왜구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본격적인 왜구의 침략은 고려말과 조선 초기에 극에 달했다. 오죽했으면 고려 멸망의 여러가지 원인 중 하나가 왜구의 노략질이었으랴... 

유구한 역사를 두고 조선의 땅이 그 얼마나 기름지고 먹거리가 풍부한 나라인지 잘 알고있었던 일본은 틈만 나면 우리의 땅을 차지하려한다. 7년간에 걸친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쓰라린 역사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풍토적으로 일본은 일반적으로 척박하여 농경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는 더더욱 먹을 것이 없었다고한다. 대조적으로 조선의 땅은 대륙과의 연결로임과 동시에 그들과 비교하여 먹을거리가 훨씬 나았던 것이다. 현재도 일본은 독도를 거저 먹으려고 안달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한일병탄을 전후하여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초개와같이 던진 조선의 의병장들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녹천 고광순 의병장에서 면암 최익현선생에 이르기까지 호남의 의병장들의 활약상과 행장을 다루기위해 직접 현지답사를 하고 의병장들의 후손들을 일일이만나 인터뷰를 거치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거의 1년여에 걸친 답사와 기록물들을 모아 책을 내놓았으니 꽤나 노고가 컸으리라 짐작한다. 

책을 읽으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의병장들이 정말 많았고 국가는 너무나 그들의 희생을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의병의 후예들이 의병을 했다는 이유로 고통을 받았고 지금도 고통을 받고있는지 현실을 아시는 독자들이 많지 않을 것만 같다. 이상하리만치 우리의 역사는 호국에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한 분들에게 인색했다는 생각이 또한 든다. 

 지금도 이러하거니와 세월이 더 흐르다보면 우리의 후예들이  그들의 이름을 까맣게 영원히 잊어버릴 것만 같아 더더욱 가슴이 아프다.   

이 책을 읽은 이상 저자가 일일이 답사하며 소개한 의병들의 이름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녹천 고광순 의병장 - 1907년 구식무기에 중과부족으로 장렬히 전사: "이놈들! 너희는 내 집안과 나라의 원수다. 내 죽어 귀신이 되어서라도 반드시 너희들의 씨를 말리고 말 것이다." 

 맹인 의병장 백낙구- 포위당한 성황에서 동료들을 탈출 시키며, "백낙구가 여기에 있다!"라고 외치며 일본군을 저지하다가 장열히 전사 

의사 기산도 - 동지 구완희와 이세진과 함께 을사오적 중 군부대신(국방장관)인 이근택을 죽이려고 찾아가 10여군데를 칼로 찔렀다. 일제가 8손가락에 못을 박으며 자백하라고 고문하자, "개같은 너희에게 어찌 자백하랴"라며 스스로 혀를 잘랐다. 

 안규홍 의병장 - 비록 남의 집의 머슴이로 살고 있었으나 나라를 빼앗기자, "죽을지언정 오랑캐가 되어 살지 않겠다."며 분연히 거의하였고 33세의 꽃같은 아니로 1911년 교수형으로 순절한다.  

김태원,김율형제 의병장- 1908년 의병활동 중 포위되어 일본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순국:김태원의 부인 낙안 오씨는, "나라가 망했으니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며 자결 

오성술 의병장 - 용문산 전투에서 화력의 열세로 결사항전 끝에 체포되어 교수형. "나라 없는 백성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양여진, 양상기 부자 의병장 -  일진회 처단, 일제 헌병소 급격, 일진회원의 밀고로 체포되어 사형으로 순국. "내 한 목숨은 아깝지 않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것이 유감이다." 

심남일 의병장 - 각지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항일했으나 의병을 해산하라는 조칙이 내려져 신병을 치료하던 중 일군에게 체포. 대구 감옥에서 교수형, "한 번 전쟁에 나서니 죽음이 가벼웠네, 내 죽는 날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으랴." 

김용구 김기봉 의병장 -  흥덕 안치 전투에서 전수 순국 "충효보국" 

매천 황현 - 경술 국치의 소식을 듣고, "글을 아는 사람 구실이 어렵구나" 하며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 

기삼연 의병장 - 을미사변(명성황후의 시해)과 단발령이 내려지자 거의하여 일군과 수많은 교전후 체포, "내가 여기 있으니 집주인을 해치치 마라."  

조경환 의병장 - 을사 늑약으로 외교권을 잃게되자 분연희 의거하여 일군과 교전하여 연전연승후 동료들을 피신시키며 일군의 저격으로 순국 "섬나라 왜놈 멸망치 않으면 내 죽어 혼백이라도 돌아오지 않으리."  

김원국 김원병 의병장 - 책 표제의 주인공으로 수많은 교전 중 1909년 체포되어 총살 순국. 김원범의 병장은 스스로 혀를 끊어 순국 " 

양회순 의병장 - 의병을 훈련시키고 수많은 전투거쳐 승리했으며 광주의 일군치려다가 적의 기습으로 체포 옥중 단식 투쟁 중 순국 "내가 비록 죽는다 해도 천하의 의사들을 너희가 모조리 죽일 수 있겠느냐" 

이석용 의병장 - 3대가 모두 의거하여 일제와 싸우다 체포되어 교수로 순국 "기립은 경의를 표하는 것인데, 나는 원수에 대해 경의를 표할 수 없다. 

임병찬 의병장 - 독립의 군부를 전국적으로 조직하여 항일 중 체포 옥고중 순국  

전해산 의병장 - 수많은 전투에서 항일 1910년 교수형 "이제 다시 영산강으로 못 가리니 두견새 피눈물 흘리며 돌아갈거나"  

면암 최익현 - "내 머리는 잘라도 내 머리칼은 자룰 수 없다." 사실성 전국의 의병을 거의케 한 장본인으로 대마도 유배 중 순국 

 사실상 기록이 많이 남지않아 수많은 의병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전국 30만명이 거의하여 10면 명의 의병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모든 조국과 가족을 위해 거의하여 분연히 일어선 모든 의병들께 고개숙여 묵념을 드린다.  

일제들의 기록을 참고할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의 의병에 참여한 보다 정확한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을 것이라한다. 또한 일제에 친일했던 사람들의 명단도 정확하게 입수할 수 있다고하니....아마도 두려움이 많을 것이다. 친일의 행적이 탄로나는 것은....  

많은 의병들 중 19분의 의병 활동을 소개한 책이다. 조금 더 많은 독자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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