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비발디 : 사계
안토니오 비발디 (Antonio Vivaldi) 작곡, 이무지치 (I Musici) 외 연 / PHILIPS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비발디 사계야 말로 대한민국 제일 애청곡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광고용 음악으로는 가장 많은 횟수를 자랑 할 듯 하기도 하다. 빨강머리 신부 비발디의 사계는 대한민국 국민들에서 알게 모르게 그렇게 다가왔다. 

비발디 선생께서 음악사에 끼친 그 영향력은 두말하면 잔소리일테니 생략하고...이 음반에 대한 추억에 잠시 젖어보는 정도면.... 

오래 전 학생 때는 용돈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고전음악을 경험할 수 있는 여건은 지금에 비하면 정말 열악한 상태였다. (요즘은 중학교 교과 과정에 '음악 감상'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음악 선생님께서 시디로 음악을 들려주시고, 관련 내용을 설명한 후, 그 음악을 다시 실기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음악의 선곡은 전적으로 지도 선생님의 취향에 따라 결정 되겠지만, 그 범주는 어느 정도 공통된 범위를 가지고 있어보인다. ) 

 하여 당시에 레코드 가게에가서 이런 저런 곡을 지정해주면, 음반가게 아저씨께서 테이프에 녹음을 해주는 경로를 선호했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여러 개의 테이프를 사서 들어야 하는 금전적인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같으면 불법 복제!!! 당장에....^  하지만 그때에는 저작권 뭐 이런 법이 없었던 때다...  

 그렇게 이런 저런 곡을 주문하고 돌아서는데....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음반 가게의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나는 순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자리에서 얼어붙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그리고는 그 강렬하게 팽창하고 있는 긴장된 현의 떨림에서 전해오는 불안감.... 그것이 나를 불안에 떨게했다.

왜 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나를 불안 했을까...그것은 너무나도 팽팽하게 당겨진 바이올린의 울림이 조만간 끊어져 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저러다 줄이라도 끊어지고 말지...' 손에서는 땀이 배어 나왔다. 현이 끊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물론 그것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나의 기우였다. 녹음반에서 울려나오는 악기의 현이 끊어질리가 있겠는가...말도 안되는 소리...라이브도 아니고 말이다... 현장 공연때 가끔 현이 끊어지는 일이 발생하는 사고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녹음반이야.... 

그 곡이 끝날 때까지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현악기가 주는 전율은 나의 전신을 마비시키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 곡이 몇 분밖에 안되는 길이였지만 당시의 내게는 너무나도 길고 긴 시간이었다. 비로소 그 곡의 연주가 끝이 났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무슨 곡이길래 저렇게 혈압을 높이며 가슴을 졸이게 하나요...단골 주인이 대답했다. '아...그런 비발디 4계란다..' 4계라뇨?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르냐?? 이런.... 

그랬다. 나중에 그 테이프를 사고 나서야 알게되었지만 그 곡은 여름 3악장 이었던 것이다. 흔히 광고에는 봄 1악장을 되풀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여름 3악장은 비발디의 음반을 사서 듣지 않으면 잘 모르는 수가 있다.  펠릭스 아요와 이무지치의 연주는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당시만해도, 이무지치가 무슨 사람 이름인줄 알고있었고, 펠릭스아요가 협연자라는 것도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그야말로 대책없던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펠릭스아요와 이무지치는 4계에 빛을 밝혀주었다. 여름 3악장과 겨울 1악장이 주는 그 강렬하고도 피를 끌어오르게 하는 긴장감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주체 할 수 없는 에너지를 주었던 것이다. 그 선율이 머리속에서 뱅뱅돌아 도대체가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수업시간에 멍때리다가 선생님께 혼났다. 너 반한 여자라도 생겼냐?? 선생님은 그리 생각하신 모양이다. 아뇨~ 

결국 나는 용돈을 모아 그 가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테이프를 손이 쥐는 순간...형용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설레게했다. 얼른 가서 틀어봐야지...그런데 이상한 전율이 새롭게 밀려왔다. 테이프를 뜯어내는 순간의 그 미묘하고도 야릇한 전율이 그것이었다...이건 뭐...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그런 스릴이었다..마치 도둑질이라도 하는 순간의 그런 느낌?? 혈압 오르고...떨리고...얼굴도 상기된다는.... 돈주고 산물건인데 이거참...   

그렇게 이 녹음을 만난 것이다... 

그  후로 돈이 없이 다른 테이프는 살 생각도 못하고 4계만 듣고 들었다... 고등 학생시절을 그렇게 보냈다고나 할까... 

그러고 다른 녹음들이 나왔다. 매우 인상적인 음반은 비욘디의 것이었다. 에우로파 갈란테와 비욘디는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연주해내다니...비욘디와 그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는 혁명적인 4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연주라고나 할까... 처음 느낌이 그랬다. 비욘디의 보잉은 듣는 나를 그렇게 미혹시켜버렸다.

다음은 디복스에서 출시한 까르미뇰라였다. 녹음이 당대 최고였다. 물론 녹음 좋다고 음반 좋은 것은 아니다. 더불어 까르미뇰라의 해석은 비욘디 못지 않은 충격을 준다. 그러나 여름 3악장 마무리에서 비욘디에게 한 표를  더 준다. 물론 이 둘의 우열을 가린 다는 것은 어리섞은 일일 것이다. 다만 개인의 기호에 따라 그 가치를 매길 수는 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까르미뇰라가 방한 했을 때 사인받으러 달려갔었을까... 

그렇게 혁명적인 두 음반 외에도 들어본 녹음들이 여럿있다. 위의 비욘디와 까르미뇰라는 특히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매우 인상적인.... 

그러나 나에겐 처음 만났던 펠릭스아요와 이무지치가 있다. 비욘디와 까르미뇰라의 연주를 듣고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받지만, 내게는 펠릭스 아요의 보잉이 주는 감동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펠릭스 아요가 밀고 당겨내는 현이 주는 질감은 완벽하게 다듬어진 질감이 아니다. 비욘디는 완벽한 질감을 전해 준다. 그런데도 나는 완벽하지 않는 질감이 좋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그냥 더 좋을 뿐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펠릭스 아요의 몸짖이 그려진다. 비욘디의 지극히 세련된 몸짖이 아니라 영혼으로 불사르는 그만의 몸짖이 나를 감동시키고 있을 뿐이다...  

비욘디와 까르미뇰라의 얼굴을 알아버려서일까.. 그것은 절대 아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혼신의 정렬...영혼을 불사르는 그의 뜨거운 몸짖은 나를 영원히 감동시키며 살아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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