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며 - 조선을 움직인 23인, 그 진실의 기록
윤용철 엮음 / 말글빛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들어봤음직한 인물들로 책을 구성하였는데, 주로 인물의 졸기와 그에 대한 상소를 근거로 구성하였고 저자의 식견을 첨가한 방식이다. 

조선 세종때 정승으로 이름을 드 높였던 인물 황희에 대한, 어쩌면 역사에 관심이 적었던 분들에게는 새로운 내용이 들어있어 청백리요 기상 드높았던 정승 황희에 대한 환상을 깨트릴 수도 있겠다.  

고불 맹사성은 개인적으로도 지극히 존경하는 인물로, 그 청렴함과 재상으로서의 인품및 능력은 가히 조선의 그어떤 정치인에게 견주어도 단연코 으뜸인 분이다. 진정 선비란 고불 맹사성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뜻밖의 인물은 김상헌이였다. 이 책에는 "정묘호란 때 명나라에 가 구원병을 요청하고 돌아와서는 후금과의 화의를 끊을 것과 강홍립의 관직을 복구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대표적인 척화론자로 추앙받았고 저서에 야인담록등이 있다."고 써있다. 물론 이는 적절한 표현이다. 

 성공해서는 안될 쿠데타라고 생각하는 인조반정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이 안동김씨 김상헌이다. 인조의 쿠데타가 성공을 거두자 김상헌은 이조참의에 발탁되어 청서파의 영수가 된다. 당시 조선은 후금(청)의 침입으로 인조가 남한 산성에 갇힌 상황에서 화친론과 척화론으로 분열한 상황이었다. 화친론의 대표는 최명길이었고, 척화론의 대표는 김상헌이었다.  

당시 상황의 조선은 고려가 거란의 3차 침입 시기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1019년 거란은 10만 병력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였다. 물론 당시의 거란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였고 전투 요원들도 최고 정예였다. 이에 항복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으로 의견이 분열된 상태였다. 항복하자는 주장에 강력히 반발하며 감감찬 장군은 거란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즘 고구려의 군병력은 21만-30만에 가까운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란군이 특수 정예 요원들이라고는 하지만 고려로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강감찬은 거란의 10만 대군 중 2-3천여명 만이 거란으로 돌아가도록하는 완승벽한 승리를 거둔다.  더구나 2차 침입 때의 거란군 40만 병력도 잘 막아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당시 조선의 상황은 그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왕실은 남한산성으로 도피하여 추운 겨울 날을  힘겹게 지내고 있는 상황이었고, 백성들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김훈의 '남한 산성'은 당시의 참상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즉, 척화하여 전쟁으로 겨룬다면 조선은 그야말로 전국토가 쑥대밭이 될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조선은 임진왜란의 처참한 폐허속에서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이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빌게 아닌가. 7년간의 임란은 조선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 전쟁이었으므로 하루 먹고 살기도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조선의 정치는 당쟁으로 분열의 분열을 거듭하고 있었고, 실리적인 외교와 정치력으로 조선을 회복시킬 수 있었던 광해를 끌어내리고 올라선 입장인지라 백성들의 지지도 받고 있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국방의 체제는 그야말로 형편없는 상황이었는데다가, 후금이 힘을 쓰면 그대로 쓰러져 버릴 그런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김상헌은 척화를 주장한다. 과연 백성을 살리자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그래 너희는 화친을 주장 하거라. 나는 척화를 주장하여 조선의 자존심은 물론 나의 개인적인 명예를 지키련다." 뭐 이런 생각이 김상헌의 머리를 지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김상헌은 어차피 화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세라는 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중에 척화를 주장하는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기회를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는 기회로 활용하고 싶어한 것은 아니었을까... 김상헌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당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리도 없잖은가... 

덕분에 최명길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다. 화친을 하자는 신하들은 죄다 역적이요, 척화론자들만이 죄다 충신이던가...이를 김상헌은 교묘히 이용했다는 심증만을 가질 뿐이다. 

  어쨋든 눈물로 항복를 써내려간 최명길의 문서를 찢어버린다. 찢어진 항복문서를 최명길은 다시주워 조각 맞추기를 했다고 김훈은 쓰고있다... 

물론 척화론을 주장한 죄목으로 김상헌은 후금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와 그야말로 국민적인 영웅이된다. 김상헌은 조선의 기개를 끝까지 지켜낸 선비의 반열에 올라서 있었던 것이다. 시나리오 치고는 좀 멋지지 않은가? 덕분에 김상헌의 이름은 조선에 드높아졌고, 그의 손자 김수항은 할아버지의 명망을 덕분에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정승에까지 오른다. 

김상헌의 기개는 가상하나, 전국토의 안위와 국민의 목숨을 놓고 척화론을 주장한 것은 상황 파악을 못한 관료이거나 아니면 만용부린 것이라 본다. 어차피 화친하게될 상황이니 나라도 한 번 성질부려보자는 그런 의구심이 들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차라리 거란군이 쳐들어왔을 때 우습게보다가 사로잡힌 강조 장군은 비록 실수로 일을 그르치는 불충을 저질렀지만 끈질긴 회유에도 불구하고 항복하지 않아 결국 참수당하고 만다. 뭐 꼭 죽으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김상헌은 강조 장군과는 전혀 다른 경우 였다. 그래서 강조는 절개를 지킨 것이요, 김상헌은 백성을 위태롭게 했던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김상헌의 작전이 잘 맞아 떨어진건 아닐까... 

물론 화친론자였던 최명길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도 역시 쿠데타의 주역이긴 마찬가지 였으니 말이다. 쿠데타로 이미 일을 그르친 것은 그르친 것이고, 그나마 상황을 파악하고 슬프고 참담하지만 항복문서를 작성하여 삼전도의 굴욕으로 남아있는 우리 역사를 보존케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김상헌의 등장은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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