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 개정판
토마스 불핀치 지음, 이윤기 옮김 / 창해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서적은 참으로 다양하며 여러 종이 출간되어 있다. 그 역자나 저자 중에서 그리스 로마신화에 관한한 이윤기는 좀 특별한 느낌이 든다. 처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만난 것은  "뮈토스"를 통해서 였다. '뮈토스'는 이윤기가 쓴 책으로 초판은 1988년이다. 그 책으로 이윤기의 신화를 읽기 시작했는데 이미 벌핀치의 신화를 출간한 상태였던 것 같다.   

 역자가 특별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수십년간 계속 파고든다는 점이다. 특히 이윤기 역의 벌핀치 신화는 벌핀치의 견해와 달리 생각하고 있는 이윤기만의 관점을 보여주는 대목이 종종 등장한다. 물론 이책의 가장 커다란 장점은 엄청난 신화 관련 명화들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는 점과, 몸소 방문하여 찍은 사진들도 다수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지만 더욱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이윤기의 신화를 해석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뮈토스에서 느낀 바 이기는 하지만, 저자의 필체는 기타 동종의 책들과는 구별되도록 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 뮈토스에서 느낀 신화다움의 필체는 여전히 관련 역서 전반에 녹아있다. 뮈토스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이윤기만의 독특한 필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윤기의 견해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한 대목은 판도라를 해석하는 방식에 있다. 이윤기는 판도라가 인간에게 화를 불러왔다는 일반적인 견해를 반박한다. 판도라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은 제우스로, 사실은 프로메테우스에게 잘보여야 하는 필요성에 의해서라는 것이다.  

 상당히 일리 있는 견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우스의 수많은 자식 들 중에서 어느 누가 제우스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가는 오직 선각자인 프로메테우스 만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죄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중벌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고, 헤르메스를 수 차례 보내어 그 비밀을 알려주면 죄를 사하겠노라고 프로메테우스를 회유하지만 그는 그 절대 회유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에 똥줄이 타들어 가는 이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라 바로 제우스 였던 것이다. 그래서 제우스는 인간을 무지무지 사랑하는 프로메테우스를 회유하는 방법으로 여자를 만들어 인간에게 선물함으로서 제우스도 인간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방법 뿐이었던 것이다. 즉, 프로메테우스에게 살짝 아부를 떠는 것이다. 

 판도라를 결국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아우가 차지하기는 했지만, 제우스가 판도라를 만들게된 동기로 보건데 결코 악의가 깔려 있다고 볼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우스는 여타의 올림포스 신들에게 한가지씩 선물을 상자 안에 넣어달라고 부탁하게되고, 여러 신들은 각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넣게되는 것이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이 선물의 상자를 안겨주며 '절대로 당대에는 열어보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판도라는 상자를 열어보게되고, 갖가지 신들이 준  선물들은 모두 증발해버리고 만 것이다.

  깜짝 놀란 판도라가  얼른 뚜껑을 닫았을 때는 이미 갖가지 좋은 선물들 증발해 버린 뒤였고, 오직 '희망'만이 남게 되었다는 해설이다. 만약에 판도라가 당대에 열지만 않았더라만 그의 후세들은 미의 여신이 준 아름다움과 곡물의 여신이 준 농경법 등 이롭기로는 아주 이로운 선물들을 두루 누렸을 것이다. 

 이런 정황으로보아 상자 안에 들어있던 온갖 나쁜 질병과 근심, 질투등이 빠져나와 인간이 온갖 질병과 질투,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다는 기존의 해석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보는 것이다. 그토록 나쁜 선물과 희망이라는 좋은 선물을 같이 쌈싸서 넣었다고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애초의 의도가 프로메테우스에게 점수를 따려는 의도였다는 점은 감안하면 이윤기의 이런 해석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결국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이런 행동에 마음이 움직여 그 비밀을 제우스에게 털어 놓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어느 모로보나 판도라는 결코 좋은 선물을 날려버린 것이지, 나쁜 선물을 증발시켜 버린 것이 아니다... 

이윤기의 신화에 대한 끊임없는 출판의 고집도 고집이려니와 그의 탁월한 해석은 늘 그가 쓴 여러권의 신화집을 읽게한다. 오늘도 나는 이윤기의 또다른 신화를 읽고 있다.  

단 한가지,  

 개정판이 나오면서 책값이 너무 올랐다...ㅠㅠ 이 가격이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한 번 구입해두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거의 모두 섭렵하게되어 다른 책을 다시 반복하여 살 필요가 없고, 오래도록 보고 또 보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 안에 들어있는 신화 관련 명화들은 신들이 판도라에게 선물을 담아 보내듯이, 그림을 배우는 또 다른 즐거움을 우리에게 한아름 선물로 주고 있다는 점은 다른 어느 책이 줄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와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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