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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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것은 파시즘이다 ]]]


우선, 높은 순도에 취약함이 있어 버무려 잡탕 (파시즘도 알고보니 잡탕이었다)만드는 것을 선호하고, 리뷰에 관해서는 '거창하게 절필'하려는 내게 리뷰를 쓰도록 용기를 준 어느 알라디너께 두고 두고 감사드릴 것이다.

또한 고백하자면 '파시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알라딘 서재의 리뷰를 통해서이다. 기연미연하던 차에 어느 리뷰를 읽고는 올커니 했던 것이다. 그 리뷰가 이 책 '파시즘'을 읽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주었다. 아주 좋은 글 솜씨로 리뷰를 써주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덕분에 불투명했던 파시즘을 제대로 파악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알라딘의 여러분들께 알게모르게 신세를 지는 것은 반파시즘 사회 존재의 일원이기 가능한 일이라 여기며, 꽃 보다 더 아름다운 민주주의여, 화이팅!!


이 책의 좋은 점은 파시즘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아니라는 점이다. 파시즘을 철학적으로 접근했더라면 대중성이 떨어졌을 것이고 더불어 나의 이해도는 현저히 낮아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누구나 파시즘에 접근하기 좋은 대중적 조건을 갖춘 책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또한 아주 익숙한 이름,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거의 주인공인 책인지라 더욱 그러하다. 행여 기연미연하는 분들이라면 마음 놓으셔도 좋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는 파시즘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조명하는데 더 중점을 두었다. 파시즘 해부라고 해도 좋을만큼 세부적이면서 명료하다. 마치 파시즘에 현미경을 들이대어 독자에게 보여주는 느낌, 의문을 남기지 않고 읽을 수 있게한다. 파시즘의 정체를 보여주는 방식은 그 형성 과정을 귀납의 형식으로 서술했고, 파시즘의 정의를 미괄식 처리했다. 목차의 내용으로 판단하건대 저자는 파시즘을 유기적인 생명체로 다루었다. 저자는 책을 8장으로 구성했고 각 목차에서 파시즘의 에너지 작용(태동 혹은 운동), 탄생, 착근, 성장, 권력 장악, 소멸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상술했음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마치 유기적인 생명체의 궤도, 즉 탄생 및 소멸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마지막 8장에 가서야 비로소 '파시즘이란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다. 


귀납법의 한계로 알려진 '확증 편향', '일반화의 오류' 또는 '논리의 비약'등, 우려할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일단락된 파시즘의 조명이라면 큰 문제가 될것 같지는 않다. 더우기 자료는 너무나도 방대하여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파시즘에 대한 귀납적 접근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인가. 일련의 파시즘 성장 과정을 알면 현재 자생하는 크고 작은 파시즘의 정체을 파악하기가 쉽다. 파시즘의 어린 싹수부터 알아보는 혜안을 주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공산주의, 제국주의, 사회주의, 모든 군사 독재, 왕정, 세습군주제등 권위주의가  실제로 파시즘은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주로 혼란을 주던 내용 아니겠는가. 이 책은 그러므로 미성년을 자녀로 둔 주민들에게 성 범죄자의 신상을 고지하여 조심하라고 이르는 공문서 같은 성격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성범죄자가 주변에 거주하고는 있지만 얼굴을 모르면 경계를 할 수가 없다. 이 책은 바로 파시즘은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 놈이오 라고 신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인간의 얼굴과 다른 점이 있다면 파시즘의 얼굴은 여러 개의 가면을 바꾸어 쓰면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래봤자 포착되지만 말이다. 


그 결과 지난 3년 대한민국은 파시즘의 시대였음을 비추어 알 수 있게한다. 지난 3년이 파시즘의 시대가 아니었다고?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과연 이 책을 읽고도 부정할 수 있는지 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파시즘이라는 생명체의 수명이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이다. 그 백성이 최악의 조건 속에서 살았다고 생각하는 조선의 세습군주제도는 지극히 비민주적인 정치 형태였지만 5백년을 이어갔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보면 파시즘이라는 괴물은 단명하는 속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수 있다. 파시즘은 다행스럽게도 스스로 자멸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수가 있으니 이런 말을 겁도없이 하는 것이다.


커버 내지의 소개 글을 통해 저자 팩스턴은 1997년부터 컬럼비아대학 사회학과에서 파시즘을 강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게했다. 초판은 2005년이라고 써있다. 이 정보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최근의 파시즘, 즉 최근의 미국, 일본, 대한민국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극우 운동과 제 3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재의 파시즘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시간의 차이로 인한 것이니 어쩔 수는 없다. 그러나 저술 이후의 현상들은 책의 내용으로 추정컨대 어렵지 않게 조명해 볼 수 있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의 파시즘으로 현재의 파시즘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째거나 도서의 귀납 방식과는 달리 리뷰는 서두에서 파시즘의 정의를 내린 후 목차의 순서에 준하여 파시즘을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머릿말을 쓴 조효제 선생은 '파시즘을 간명하게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p.6) 라고 선언 했다. 애초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파시즘의 엄격한 개념 정의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p.6)면 주관과 자의가 대세라는 뜻일 것이다.
 사실 책이 일단 독자에게 건너가면 그 책을 불쏘시개로 쓰든 맛있게 읽든 사후의 일은 독자의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불가능에 가까운, 다음과 같은 자의적이자 매우 주관적인 정의를 내보려 한다.


[[[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것은 파시즘이다! ]]]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권력을 쥔 파시즘이 민주주의 바탕위에서 꽃피운 우리의 모든 자유를 포기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최고의 제도는 아니지만 가장 덜 나쁜 제도이다, 라고 말한 사람의 이름이 오락가락 한다. 처칠이랬던가? 아니면 어쩌나... ㅠ. 어째든 우리는 민주주의 안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것을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이유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주체가 물리적인 것 이든 경제적 것 이든 정신적인 것 이든 말이다. 이는 저자의 명제가 아니라 독자인 나의 명제이자 파시즘에 대한 정의이다. 이는 저자의 파시즘보다 그 개념의 폭이 훨씬 더 넓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의 파시즘에 대한 입장과는 달리 외연의 확장을 수반하는 팽창력을 독자에게 주고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알고있을 것이라 믿는 바이다.


사적인 견해이지만 특정 시기에 파시즘이 막을 내렸다고 학자들의 주장한다면 나는 달리 해석하여 1945년 이후에는 그 어떤 파시스트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것이라고 믿는다.
파시즘이 막을 내렸다기보다는 막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니 말이다. 지난 해의 대한민국은 파시즘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소멸한 좋은 실례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파시즘을 변태하는 생명체로 바라보지 않은 다면 파시즘은 사라진 유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은 후의 파시즘은 저자가 말하는 파시즘 그 이상의 파시즘을 염두에 두도록 하고있다. 나아가 어디에선가 지금 이순간에도 태동하는 파시즘 에너지가 발아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케 한다. 또한 파시즘은 개인일 수도 있고 집단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왜냐면 그 어느 곳, 어디에서든 파시스트는 끊임없이 자라고 또 자라는 독초처럼 민주주의를 늘 위협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의 대한민국은 파시즘의 시대였다. 지난 3년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했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한겨울 한남대로의 눈내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저항했던 위대한 '키세스 시민들'과 자랑스러운 '남태령의 기적'은 파시즘의 산물이며,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저항 이었음을 과연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고로 본 도서인 파시즘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그러므로 외연의 확장은 독자에게 주는 덤이다.


흥미로운 것은 히틀러의 파시즘은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히틀러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민주적 절차인 투표로 선출된 인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것이다. 민주주를 파괴하는 힘을 가진 파시즘은 민주주의 내부에서 자유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발아한다는 점은 숙고해봐야 할 사항이다.


ㅡ파시즘의 탄생: 파시즘은 어떻게 탄생하는가ㅡ

저자에 따르면 파시즘은 기존 사회 현상의 모든 것에 대한 강한 부정으로 시작한다. 나 이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거부한다. 강령이나 원칙, 이론은 없다. 사회 생활과 개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내적 정합은 파시즘에서는 중요시하지 않다. 순간 순간 급조되었지만 혁명적이고 강렬한 임팩트를 전달하면 그만이다. 이는 혐오와 경멸로  확대되고 지지자들의 협조로 싹을 튀운다. 증오와 폭력을 찬양한다. 파시즘과 손을 잡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특권층, 특정 정치가, 기업가, 언론인 그리고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는다. 특히 파시즘이 자본주의의 앞잡이가 되어주는 것도 하나의 할 일이다. 기득권이 쉽게 파시즘과 타협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저자는 이를 두고 "파시즘은 보수주의자와 국가사회주의자, 극우파라는 각기 다르지만 못 어울릴것도 없는 세 성분이 자유로운 제도와 법치를 희생해서라도"( p.464 ) 연대 합성된 결정체라고 말하고 있다. 이말을 들으니 보수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진짜!!


1 차 세계 대전은 파시즘 탄생의 신호탄을 쐈다. 전후의 황폐해진 사회는 불안 그 자체였고 나아갈 방향을 잃고 있었던 시기였다. 자유, 보수, 공산주의가 서로 다투고 있었다. 사회 경제적으로 파시즘이 탄생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 즉 파시즘이 비집고 들어설 빈틈을 제공한 것이다. 파시즘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부정했고 혐오했으며 동시에 경멸했다. 가짜 뉴스로 대중을 선동했다. 대중은 이에 반응했다.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지식인들과 보수 세력이 동참했다. 파시즘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지 않게 하기위한 연대였다. 대중들은 지도자를 숭배했다. 자, 이제 남아 있는 것은 폭력 뿐이다. 바로 비극을 불러올 파시즘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저자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체제를 부정하던 학생들이 위기를 맞이했다. 모택동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모택동이 대학생들을 부추겨 홍위병을 탄생시킨 것이다. 모택동은 기득권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혐오했다. 이로써 대학생들을 선동했다. 그리고 체제를 전복시켰다. 모택동 집권시 수천만명의 중국인들이 굶어죽었다. 홍위병은 버려졌다. 중국의 과거 혹은 역사는 지워졌다. 모택동의 행동대원들인 광란의 홍위병들이 철저히 파괴했기 때문이다. 모택동의 집권 과정은 파시즘의 과정과 똑 닮아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모택동을 중국의 파시스트로 분류한다. 나아가 홍위병과 그 적들 모두 파시즘의 희생자들이었다. 중국의 역사, 문화를 대부분 사라지게 한 장본인 또한 모택동이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과거의 유산들 중 현존하는 것이 무엇인가. 겨우 자금성과 만리장성 뿐이다. 현대의 중국인들이 문화 열등감에 매몰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것 역시 모택동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나는 중국 최악의 파시스트로 모택동을 지목한다.


ㅡ파시즘의 착근ㅡ

1921년 드디어 무솔리니의 운동은 정당으로 발전해간다. 국민을 하나로 통합시키겠다며 지지를 호소한다. 동맹세력을 끌어들이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대해간다. 나아가 사회주의 사무소를 공격하고 지주들의 기부활동을 통해 소작인들에게 분배한다. 파시스트 행동대원들은 국가의 기능을 대신했다. 적을 특정하면 동지는 자연 발생하는 것이 이치이다. 적의 적은 친구이니 말이다. 이에 열광하지 않으면 소작농이 아니다. 이제 구심점이 준비되었다. 응집된 집단의 힘을 배경으로 폭력을 쓸 타이밍이 온것이다. 


ㅡ권력의 장악과 행사ㅡ

대중과 지식인 그리고 기득권들의 지지를 얻은 파시스트들은 이제 폭력을 사용한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행동 대원들은 지역 사회주의 본부와 신문사, 노동 사무소, 사회주의 지도자들의 가택 등을 약탈하고 방화를 저지르는" (p.205) 것으로 공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파괴와 약탈 방화가 시작된 것이다. 모든 기간 시설도 점령한다. 어쩌면 볼세비키 혁명의 성공이 이들을 파시즘에 취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째거나 무솔리니는 집권에 성공했다.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성공을 거두자 흥분을 감추지 못한 사람은 독일의 히틀러였다. 1930년대 대공황은 히틀러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파시즘은 불안과 공포를 주식으로 살아가는 괴물이니 말이다. 수백만의 일자리가 사라지자 파시즘이 생명을 갖기 시작했다. 쿠데타가 아닌 민주적 절차에 따라 승리를 쥘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불안과 공포가 사회에 만연해있을 때이다. 히틀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존 질서를 모두 부정했다. 새로운 질서를 약속했다. 투표에서 승리한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히틀러는 민주적인 투표제도를 없애버렸다. 독재로 가겠다 이거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절차가 하나 있다. 지식인들과 기득권의 지지를 먼저 얻는 것이다. 기득권과 언론의 지지를 얻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들이 원하는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후에 대중이 따르게 되고 맹목적이 되며 폭력적일 수 있는 것이다.


ㅡ파시즘의 소멸ㅡ

권력은 마약과 같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달콤하면서도 취하게하는 속성을 가진 것이 권력이다.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다. 그 권력이 소멸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파시즘은 태동하여 성장하고 전성기를 누리게 되면 급발진의 형태로 발전한다. 급진적인 파시즘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이다. 파시즘은 늘 어디론가 움직여야 한다. 정체하고 있으면 방향키을 잃은 배와 같다. 추종자들의 열광이 식고 미친듯한 열기가 사라진다. 맹목의 눈들이 서서히 자각을 하게된다. 그러므로 급진적이어야 한다. 더 가속시키는 길 외에는 없다. 내부의 갈등이 팽배해진다. 서로 배신하고 싸운다. 나아가 드디어 전쟁이다. 이제 파시즘이 산화할 시기에 다다른 것이다. 독일도 일본도 이와 같은 과정을 밟았다. 
전쟁은 독일과 군국주의적 팽창에 매몰된 일본을 스스로 파멸케했다. 마치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이와 닮았다. 달릴 때는 신나지만 멈출 수 없는 치명적 결함을 가진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 말이다. 종국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어설픈 파시즘이 대한 민국의 민주주의에 도전했지만 끝을 맞이한 것 처럼 말이다.


ㅡ파시즘이란?ㅡ

자 그러면 저자가 마지막 8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파시즘의 정의는 무엇인가. 저자의 견해와는 달리 나는 불가능하다는 파시즘의 정의를 초장에 먼저 내렸다. 다시 한 번 나의 파시즘 정의를 아래에 밝힌다.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모든 것은 피시즘이다.]]


사실 나의 파시즘에 대한 정의가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독자들 각자가 스스로 정의를 내리면 될것이니 말이다. 또 저자는 파시즘을 어떻게 정의 했는지 꼭 알아야겠다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강력 추천드리고 싶다. 스포일러를 포함하는 것은 물분율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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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19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시즘,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하면서도 그 정의가 모호한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 가슴에 와 닿는 의미 하나 품고 갑니다.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모든 것은 파시즘이다‘

차트랑 2026-02-19 21:17   좋아요 0 | URL
저의 건방진 견해를 너른 마음으로 받아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더불어 잉크냄새님의 ‘거창한 절필론‘에도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좋은 저녁되세요 잉크냄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