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당은 은(訔)의 직계 후손으로 반남을 빛낸 최고의 인물이며, 
정쟁으로인해 두 아들을 앞세운 비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관직생활을 했으나 세당에 관해서라면 큰 의미는 없다 하겠다. 
그가 얼마나 된사람이었고 
의기가 있었으며 
훌륭한 인물이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당의 학문은 깊고 드높아서 당대 최고봉 중의 하나였다. 
깊고 드높기만 한것이 아니라 폭도 넓었다. 

당시의 학문은 주희에 매몰되어있었고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전진했다. 
그 길은 퇴로도 없고 갈래길도 없었다. 
주희에게로 난 돌아올 수 없는 외길,
그 외통수의 길을 걸었던 것이 조선의 선비들이었고, 
늘 막다른 골목에서 서성이던 것이 조선의 학문이었다. (이런 미친...)

마치 눈가리개를 한 당나귀를 똑 닮은 조선의 유학자들에 비하면 
반남 가문의 빛나는 세당은 차원이 달랐다.
세당은 노자를 공부했고 주를 달았다.
장자도 공부했다. 남화경주해산보, 를 썼다. 
이는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금기였다.

나아가 사서에 관해서는 사변록을 저술했다. 
사변록은 교조화된 조선의 분위기에 염증을 느낀 세당의 반항과도 같은 것이었다. 
백성의 아픔은 외면하고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먹는 
조선의 실권자들에게 태클을 거는 바른 학자로서의 시위였다.

사변록은 대입 수능의 본문으로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 
왜냐? 사변록은 형이상학에 매몰된 관념론을 벗어나지 못했던 조선의 학문을 
실학이라는 현질적 도구로 승화시키려는 깊은 의도가 숨어 있는, 
그야말로 그 뜻이 갸륵한 세당의 저술이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 중 하나는 세당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아주 잘 반영하고 있는데, 
그 이름은 색경(穡經)이다. 
색경은 농사의 기법은 물론 물고기 기르는 법, 축산, 원예  등 농사 짖는 백성들에게 정말 도움되는 저술인 것이다.
 
무릇 선비라면 백성을 이렇게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조선의 냥반들이 손에 호미 한번 들지 않고, 
또한 물한방울 대지 않으면서 가만히 앉아 잘먹고 잘살았던 것은 
오로지 남의 힘을 빌린 탓이 아니던가?

그러니 백성을 귀하게 여겨야 마땅하거늘 되려 냥반들은 백성을 무시하고 학대하고 심지어 죽이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조선 정부는 이를 방관했던 것이다.

조선의 유학이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고 서성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세당은 
자신의 학문으로 뜻있는 식자들을 일깨웠다. 
결과적으로 편고한 학문의 최고봉이자 조선의 주희였던 송시열과 뜻을 달리할 수 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미워죽겠는 세당을 송시열이 가만 둘리가 없다. 
세당에게 사문난적, 이라는 혐의를 씌우고는 끝내 세당을 죽여버렸다. 
송시열은 숙종에게 사약을 받고 죽기 전까지 셀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는 저술을 남겼지만 
이 모든 것들은 세당의 '색경' 하나와도 견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왜냐? 그토록 입바른 소리를 하면 뭣하나, 
백성들이 환대하는 대동법 시행을 목숨걸고 반대한 장본인이 송시열이 아니던가.
송시열은 대동법 시행을 왜 반대했던가? 
냥반들의 이익을 해치고 백성들의 이익을 늘려주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열은
임금이 자신에게 대동법에관해 묻자
'백성들이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라며 현종에게 거짓을 고했다.
(왕에게까지 거짓말을 고하다니!!!! 
송시열, 정녕 네가 죽고싶은것이더냐? )


색경은 오로지 백성들의 이익을 위해 지은 저술이다. 
뛰어난 아들 둘이 눈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세당,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경을 지어 죽는 그 순간까지도 백성을 위해 글을 남겼다. 


이에 감동했던 것일까?
색경은 또한 한국사 시험에서도 제시되는 자료이다. 
아, 이런 세당의 신념을 이어받은 후세들을 교과서는 실학자 혹은 경세치용학파 라고 칭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청송심씨 온이 죽으면서, 반남 박씨와는 절대로 혼인하지 말라, 며
반남 박씨에대한 적대감 혹은 깊은 원한을 토로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송심씨 노승은 '소론 선배 중 박세당을 가장 좋아한다, 고 고백했다. 
심노승은 노론이면서도 소론의 영수였던 세당의 문장과 절의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당쟁을 초월하고 원한이 깊은 가문의 후손에게마저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 박세당이었던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숙연해오며, 안타깝고 안타까운 사람, 
그리고 사랑스러운 사람, 박세당이다. 
그 이름 만고에 빛나고 또 빛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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