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쓰기가 상당히 어렵다. 내용이 어렵기도 하고, 또 한편 완전히 새로운 시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그의 주장은 현재 우주론이 당면한 문제--양자역학과 중력을 통합하는 이론이라 일컬어지는 초끈이론의 실패[1]--를 새로운 시각으로 타개해 보자는 것이다. 왜 우주가 현재의 모습인지, 왜 지금 우리가 발견한 법칙들이 성립하는지, 왜 물리상수들이 이렇게 생명이 살기에 적합하게 맞추어져 있는지 등에 대해 현대 우주론은 답을 주지 못한다. 이러한 조합으로 우주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엄청나게 작다. 많은 우주론자들이 믿는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는, 단지 우리가 이러한 우주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이런 우주를 관측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주장에 반해, 다음과 같이 가정해 보자고 한다. 우주는 블랙홀에서 탄생한다[2]. 자연법칙은 블랙홀 안에서 새로운 우주가 탄생할 때마다 조금씩 바뀐다. 블랙홀이 많이 생기는 우주일수록 자손 우주를 많이 만들므로 더 흔히 존재할 것이다. 이는 블랙홀을 많이 만드는 자연법칙, 초기조건, 우주상수가 드문 경우가 아니라 흔한 경우일 것임을 시사한다. (마치 자손을 많이 퍼뜨리는 종을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블랙홀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우주가 크고 그 안에 많은 은하가 존재해야 한다. 이것은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과도 일치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우주가 생명이 살기에 적합한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왜 이런 법칙, 초기조건, 물리상수의 조합인지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 우주는 이러한 우주적 자연선택(cosmological natural selection)에 따라 존재하는 아주 흔한 우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주적 자연선택이 반증가능한 예측을 내놓으며, 분명한 과학의 영역이라고 얘기한다. 새로운 관점, 새로운 전망, 새로운 주장이다. 


여기에는 자연법칙이 고정된 것, 우주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내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한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법칙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선례에 따라 확립된다[선례의 원리(principle of precedence)]. 상대성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의 상대성, 양자역학에서 얘기하는 확률적 해석을 그는 부인한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이러한 이론들이 이를 포함한, 좀 더 깊은 이론들로 대체되리라 생각한다. 우주적 절대 시간이 있으며(국소적으로는 상대성 이론이 맞다), 측정 전에 물리계의 실제 상태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못하는 현재의 양자역학이 아니라 드브로이-봄의 숨은 변수 이론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주장이 워낙 많아, 그냥 최신 물리 이론을 해설해 주는 수준을 완벽히 넘어선다. 그의 정신적 편력을 보는 것은 현기증이 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다. 


팽창하며 진화하는 우주와, 우주 속 물질의 진화에 따라 변화하는 우주 법칙: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랑만 변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3]. 이러한 변화는 시간이 절대적임을 의미한다. 시간은 환상이 아니다. 그의 주장이다. 


---

[1] '실패'라는 말에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초끈 이론은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어떤 예측도 내놓지 못했다. 

[2] 꼭 스몰린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나오는 얘기이다. 로벨리도 이런 얘기를 했다. 

[3] 사랑의 변화와 우주의 변화는 그 시간 스케일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The Life of the Cosmos>: 우주적 자연선택이란 생각을 이 책에서 처음 피력했다.

<Time Reborn>: 시간은 환상이 아니며, 자연의 이해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함을 주장.

<Einstein's Unfinished Revolution>: 스몰린의 최신작(2019년 출간). 기존의 양자역학을 대체하는 숨은변수 이론에 대한 그의 견해를 제시하리라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통념으로부터 완벽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서 소화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중요한 논점을 하나 정리해 놓는다.


저자는 유효이론(effective theory)이란 개념을 제시하고 유용하게 활용한다. 유효이론이란 '상자 속에서 물리하기'를 통해 얻은 이론으로서, '상자 속에서 물리하기'가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무시하므로 이렇게 얻은 이론도 근사적일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뉴턴역학, 일반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이론이 그렇다. 각각의 이론은 그 이론을 얻은 상자 속에서는 잘 성립하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영역을 벗어나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상자 속에서 물리를 하여 얻는 이론을 그 상자를 넘어서서 적용한다. 물리학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보존 법칙들이 그렇다. 보존 법칙들은 그 물리계의 대칭성으로부터 얻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대칭성은 그 물리계의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무시하고 얻은 근사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보존 법칙들도 근사적으로 성립한다는 얘기가 된다. 잠깐, 에너지 보존, 선운동량 보존, 각운동량 보존이 근사적으로 성립한다고? 지금은, 작은 물리계에서는 성립해도 향후에는 이러한 양이 변할 수 있다고? 물리학의 근간을 흔드는 얘기이다. 이러한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저자의 말에 딱히 논박하기도 쉽지 않다. 전 우주의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것을 누가 증명했는가? 그냥 상자 속에서 물리한 것을 바탕으로 확장한 것이다. 우주의 구석 중의 구석, 하찮은 부스러기 위에서일지라도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던 자부심은 단지 순진함의 발로일 뿐인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20-06-20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이론도 단지 믿음일 뿐인 것 같습니다. ^^ 현재에는 혹은 현재에만 무시할 수 없는 믿음인 갓 같습니다. ^^

blueyonder 2020-06-20 18:0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모든 이론은 한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결론입니다. 이론이 한시적이 아니라면 과학이 끝난 것이겠지요. ^^
 

출처: New Scientist


자연에 대한 우리 생각의 변화. 좀 더 정확히는 자연을 기술하는 우리 관점(방법, 도구, 개념, ...)의 변화. 중력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아직 성공적이지 못하다.


'실재의 본질'이라고 쓰고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라고 읽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년 출간된 위의 책(원저는 2009년 출간)은 현재 알라딘에서 검색이 안된다. 절판된 지 오래된 모양으로, 온라인 중고샵에서만 찾을 수 있다. 


예전부터, 기술이 뛰어난 일본 전자산업(특히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밀려나게 됐는지 궁금했다. 비교적 큰 내수시장으로 인한 갈라파고스 현상이니 말이 많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결국 '혁신의 덫'에 걸렸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저자인 유노가미 다카시湯之上隆는 1987년부터 2002년까지 약 15년 6개월 동안 히타치 제작소에서 반도체 미세가공기술 개발에 참여했다. 퇴사 후, 도시샤 대학에서 일본 반도체 산업의 쇠퇴 이유에 대해 사회과학적 연구를 진행했다. 


그에 따르면 DRAM은 1971년 인텔이 1 KB DRAM을 발명한 이래 시작되었는데, 일본 반도체 산업은 혁신을 거듭하여 1980년 중반에 미국을 제치고 DRAM 시장 점유율 세계 1위가 되었다. 당시는 대형 컴퓨터인 메인 프레임이 주류였는데, DRAM 회사에 25년 품질 보증을 요구했다고 한다.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새로운 공정기술을 개발할 뿐만 아니라 마스크 및 공정의 수를 늘려 시장의 성능 및 신뢰성 요구에 맞추었다. 이러한 극한기술의 추구는 장인정신으로 유명한 일본인들의 구미에 잘 맞았을 것 같다.


문제는 세월이 흐르며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이 급속히 커지지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PC는 아무리 오래 써봐야 10년이다. 그러니 일본이 만드는 고품질, 고신뢰성의 DRAM보다 성능 및 신뢰성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싼 DARM이 요구된다. 이 시장을 삼성 등 한국 회사와 미국의 마이크론 등이 잘 대응했다. PC용 DRAM은 3년 보증(!)을 요구했다고 한다. 25년 보증용 고가의 DRAM을 만들다가 3년 보증용 저가의 DRAM을 만들기가 쉬울까. 뭐 고성능 제품 만들다가 저성능 제품 만들기는 누워서 떡먹기일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마스크 및 공정의 수를 줄여야 하는데 사실 이것이 더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은 일본 DRAM 회사가 아예 없어져 버렸다[1]. 엘피다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회사인데[2] 엔지니어들은 일본이 여전히 기술은 최고이지만 경영 전략의 실패와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고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여기에 교훈이 있다: 싸게 만들지 못하면서 기술이 최고라는 생각이 잘못됐다. 싸게 만들 수 있는 것이 기술력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예전처럼 하는데 왜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을까 고민하는 것, 이것이 혁신의 덫이다. 


혁신을 하여 성공한 후, 동일한 방법을 지속하면 다시 성공할 수 없다. 동일한 방법으로 계속 성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은 변한다. 그 틈을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 치고 들어온다. 이러한 기술은 세상과 시장을 완전히 재편한다. 이전의 혁신기업들은 이러한 기술에 대응이 느리다. 특히 자신의 기술에 자부심이 강할수록.


혁신의 덫은 개인에게도 교훈을 준다. 나의 노력과 성품과 직관이 먹혀서 성공했다고 하자. 그 경우 나는 그 성공전략을 계속 밀어부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운좋게 먹힌 그 성공전략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먹히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과학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천재적 직관으로 특수상대성 이론과 더 나아가 일반상대성 이론이라는 거대한 히트를 쳤다. 하지만 그의 물리적 직관은 거기까지였다. 이후 미시세계를 연구하며 나온 양자역학이라는 도도한 흐름에 그는 완벽히 소외됐다. 그의 물리적 직관이 양자역학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우물을 파는 개인은 아름답다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이 필요로 하지 않을 경우 그의 아이디어는 그와 함께 사라지면 된다. 혹시 또 모른다. 언젠가 그의 아이디어가 다시 인정 받을지. 


한 우물을 파는 기업은 아름답지 않다. 기업의 생명은 개인의 생명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사라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겠지만, 또 새로운 기업이 나올 기반이 될 수도 있다. 한 우물을 파는 나라는? 상상하기 어렵다. 기업, 특히 국가는 새로운 생각에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기존과는 다른 혁신이 나올 토양을 배양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해 보면, 우리는 그래도 혁신의 덫에 비교적 잘 대응해 온 것 같다. 일단 사회 자체가 일본보다는 열려있는 느낌이다. 일본은 매뉴얼의 사회라 매뉴얼 없는 일에는 허둥댄다. 이건 역사가 증명한다. 78년 전 미드웨이 해전에서 그랬듯이,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서도 일본은 허둥대고 있다. 우리는 원래 쌓아 놓은 기반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빨리빨리'의 기질이 시대에 잘 부합해서 그런지 비교적 선방하고 있는 것 같다. 


기업도 그렇다. 현재 우리나라 LCD가 중국에 밀려서 올해를 기점으로 거의 접는 분위기이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LCD의 대형화를 선도해서 TV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중국이 10세대 이상 라인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가격 인하를 주도하자 우리 디스플레이 기업의 적자가 커지고 있다. 여기서 LG 디스플레이와 삼성 디스플레이는 재빨리 OLED 및 QD-OLED 등의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옮겨가려는 전략을 보여주고 있는데,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삼성전자만 해도 DRAM의 성공에만 안주하지 않고 플래시 메모리, 시스템 반도체 등을 계속해서 주력 제품으로 추가하는 역동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은 그렇다 치고, 개인인 나는 고정관념을 갖지 말고 유연한 사고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나이 먹으면서 계속해서 유연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생물학적으로도 그렇다. 그래도 마음가짐만이라도 겸손히, 유연히 하고자 노력하려고 한다.


---

[1] 현재(20년 Q1) DRAM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우리나라가 73.4%(삼성 44.1%, 하이닉스 29.3%), 미국(마이크론)이 20.8%이다.

[2] 엘피다는 2012년에 파산 신청을 했고, 그 다음 해 미국의 마이크론에게 인수 당했다. 지금은 마이크론의 자회사로 존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녹색평론 통권 168호 - 2019년 9월~10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밀린 숙제를 하고 있다. 녹색평론을 좀 읽었다. 특히 발행인 김종철 선생의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글을 관심 있게 보았다[1]. 요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생태문명’이라는 단어가 더욱 눈에 확 들어온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어디일까. 김종철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근대’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그 지속불가능성입니다. 왜냐하면 근대란 자신의 생존기반을 끊임없이 부수고 짓밟지 않으면 한순간도 유지될 수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근대문명을 뒷받침해온 것은 재생 불가능한 자원들이었습니다. 수십만 년에 걸친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기간 중 불과 200~300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 ‘근대문명’은 주로 지하에 매장된 재생 불가능한 자원들을 거의 고갈시켜버렸고, 그 자원 중 화석자원들이 근대문명의 유지와 확산을 위한 불가결한 에너지원으로 무절제하게 남용됨으로써 기후변화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대두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싫든 좋든 이 근대문명을 종식시키고, 어쨌든 생태문명을 시급히 재창조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재창조’라는 말을 쓴 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즉, 생태문명이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우리가 창안할 필요도 없는, 오랜 세월 인류가 살아온 기본적 생활양식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인간 역사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비근대적’ 삶을 누려왔습니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그 비근대적 삶이란 기본적으로 재생 가능한 자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따라서 큰 이변이 없는 한, 그것은 이 지상에서의 인간의 영속적인 삶을 보장하는 생활양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생태문명의 재창조란 ‘근대’가 이 세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기 이전의 거의 모든 토착적 혹은 전통적인 삶의 복구를 통해서 또하나의 ‘비근대적 문명’을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복구는 단순한 복원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근대’를 통과해오는 동안 불가피하게 손상된 자연적 및 사회적 질서를 수선∙치유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인류 사회에 축적되어온 갖가지 창조적인 지혜와 경험과 기술을 살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재창조’라는 용어를 강조하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9~10 페이지)


근대문명에 대한 평이 좀 거칠기는 하지만, 이제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분명한 당위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생태문명의 재창조란 ‘근대’가 이 세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기 이전의 거의 모든 토착적 혹은 전통적인 삶의 복구를 통해서 또하나의 ‘비근대적 문명’을 창출한다는 것”이라는 전망에 나는 실망한다. 이것이 현실성 있는 대안일까. 우리의 물질과 편안함에 대한 욕망을 제어해서 우리의 존재를 이 지구에서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 만 년 또는 천 년 전의 생활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생태문명인가. 과연 우리가 ‘택배’로 대변되는 삶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삼성전자의 반도체 라인’이라는 근대문명의 총아를 해체하고 “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문명”(10 페이지)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비근대’인가 ‘탈근대’인가[2]. 


---

[*]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글에만 대한 감상이다. 매우 유익해 보이는 (일본 극우파와 후쿠시마 사고 등에 대한) 그 외의 글들이 있는데, 혹시 기회가 되면 추후에 감상을 적으려고 한다.

[1] 시 전문 계간지 <신생> 창간 20주년을 기념하여 행한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2] 저자는 ‘전근대’란 단어가 근대는 발전이라는 가치평가를 내재하므로 ‘비근대’라는 용어를 쓴다고 밝힌다(8~9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