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영원함의 매력’을 보면, 우주 전체—과거, 현재, 미래—를 개관한 그린은 결국 생명이 아름답게 번성하는 지금, 현재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스타벅스에서. 그는 말한다.


... 생명과 정신은 우주의 시간표에서 볼 때 극히 작은 오아시스만에서만 존재한다. 우주는 다양한 종류의 경이로운 물리적 과정을 허용하는 우아한 수학 법칙에 지배 받지만, 단지 일시적으로만 생명과 정신의 집주인 역할을 할 것이다. 별과 행성과 생각하는 것들이 사라진 미래를 상상하며 이 사실을 곱씹어 보라. 지금 우리 시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될 것이다.


여러 방향에서 도달하게 되는 '지금, 여기'의 소중함이, 어찌 보면 '진리'라고 얘기할만한 가장 중요한 사실인 듯 싶다.


다음은 좀 더 길게 인용한 원문이다.

... Life and thought likely populate a minute oasis on the cosmic timeline. Though governed by elegant mathematical laws that allow for all manner of wondrous physical processes, the universe will play host to life and mind only temporarily. If you take that in fully, envisioning a future bereft of stars and planets and things that think, your regard for our era can appreciate toward reverence.

  And that is the feeling I had experienced at Starbucks. The calm and connection marked a shift from grasping for a receding future to the feeling of inhabiting a breathtaking if transient present. It was a shift, for me, compelled by a cosmological counterpart to the guidance offered thorough the ages by poets and philosophers, writers and artists, spiritual sages and mindfulness teachers, among countless others who tell us the simple but surprisingly subtle truth that life is in the here and now... We see it in Emily Dickinson’s “Forever—is composed of Nows” and Thoreau’s “eternity in each moment.” It is a perspective, I’ve found, that becomes all the more palpable when we immense ourselves in the full expanse of time—beginning to end—a cosmological backdrop that provides unmatched clarity on how singular and fleeting the here and now actually is. (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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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1-05-16 1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읽다가 리얼리티 버블 잠시 흝어보다가 리얼리티 버블 너무너무너무 잘 써서 어제 다 읽고 이제 이 책 다시 시작하려고요. 저도 저 대목 읽었는데.. 스벅에서 공부가 되나?? 이러면서 읽었네요^^

blueyonder 2021-05-16 20:31   좋아요 1 | URL
아직 못 읽어봤지만 <리얼리티 버블>도 좋은 책인 것 같네요. ^^ 저널리스트가 쓴 좋은 과학책도 종종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쓴 대중과학서와는 다르게 또 좋습니다.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변하지 않는 패턴을 찾아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세우는 것은 과학이 맞다. 하지만 공리로부터 시작하여 논리만으로 정리를 도출해 내는 수학은 과학이 아니다. 그 공리가 자연 속에 성립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학자는 머리 속에서 자신만의 '가상' 체계를 만들어 낼 뿐, 그 체계가 세상에 대응할지 미리 결정할 수 없다. 그 많은 체계 중 실제 세계에 대응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때때로 놀랍지만, 수학의 체계는 일반적으로 실제 세계에 대응하지 않는다.


초끈이론을 설명하는 <엘러건트 유니버스>의 저자로 유명한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은 머리말에서, 대학시절 그가 어떻게 수학의 세계--그에 말에 따르면 변화하지 않는 진리의 체계--에 매혹되었는지 기술한다. 그는 당연히 플라톤주의자이다. 그는 말한다.


산을 오르거나 사막을 헤맬 필요도 없고,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 동굴을 탐험할 필요도 없다. 그저 책상 앞에 편안히 앉아 종이 위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것만으로도 영원불멸의 결과물을 창조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직업인가? (9 페이지)


수학자는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과학을 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하면 안된다. 그는 이런 매력에 빠져 수학과 물리학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하는 물리학--초끈이론--이 어떤 성격을 가질지 당연히 짐작이 된다.


그는 삶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영원한 진리를 찾는다고 말한다. 인류의 "모든 종교와 과학, 그리고 철학은 죽음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에서 탄생"했다는 슈펭글러의 글귀가 '폐부를 찔렀다'고 말한다. 누구나 젊었을 때는 '진리'라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진리는 그 정의상 시간에 따라 바뀌지 않으며 영원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진리란 과연 있을까? 과학 법칙은 시간에 불변하는 진리라고 정말 얘기할 수 있을까?


"이 여행길에서 우리의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는 다름 아닌 '과학적 탐구 방법'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과연 그럴까? 브라이언 그린이 여기서 갈릴레이의 과학적 탐구 방법을 의미했다고? 나를 필요 이상으로 비판적으로 만든 사람은 역자이다. 원문은 "We will be guided in the exploration by insights from a variety of scientific disciplines."이다. 제대로 번역하자면 '다양한 과학 분야로부터 얻는 통찰'이 우리를 안내한다고 해야 한다.


1장의 제목은 "영원함의 매력The Lure of Eternity"이다. 영원함에 매력을 느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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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5-14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과학 분야로부터 얻는 통찰˝이라면...Interdisciplinarity와 맥락이 깉은 말인 것 같아요..비슷한 말인데, 저는 진리에 이르는 길.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은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blueyonder 2021-05-14 08:47   좋아요 1 | URL
네, 세상을 한 눈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겠지요.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성의 고리라는 SF적인 제목과 어느 소설가의 추천사 때문에 읽을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10년이 지난 이제야 다 읽었다. 10년의 세월 동안 나는 해체에 좀 더 가까워졌고, 그래서 해체와 몰락의 이야기인 이 글을 좀 더 읽을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독일인인 화자는 영국 동부를 도보여행 하며, 만나는 장소에 얽힌 현실인지 소설인지 모를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죽은 이들, 그리고 퇴락하는 것들도시, 건물, 가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온갖 이야기가 다 나온다. 2차 세계대전부터 서태후, 양잠까지... 영국으로 이민 와서 사는 한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본 느낌이 든다.

 

토성의 고리라는 문구는 본문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제일 앞의 인용구에서만 언급된다. 토성의 고리가 토성의 인력에 의해 부서진 위성의 잔해라는 구절인데, 이 글의 주제인 부서져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상징이 아닐까... 무엇이든 결국은 해체된다. 인간은 물론이고, 여러 세대에 걸친 가문도, 문명도, 그리고 심지어는 자연조차도... ‘불멸의 원자라는 표현이 있는데, 원자조차도 영원히 불멸은 아닐 것이다. 영원은... 상상할 수 없다. 수학은 논리로 무한을 다루지만.

 

모든 죽어가는 것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주어진 대로 사는 일, 그리고 때때로 제발트처럼 애도하는 일. 또는 시인의 말처럼 사랑하는 일. ‘생명이란 위대한 것이다. 사라짐으로, 또 다시 태어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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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21-05-10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을 읽었어요. 카프카 문학에 대해 말해보라면 한 마디도 못할 제가 카프카 좋아하는 것처럼 제발트의 그 단편소설집에 대해 말해보라면 한 마디도 못하겠지만 그 책이 너무 좋았어요. 토성의 고리도 곧 읽을 예정이어서 반가운 리뷰였어요. 잘 읽었습니다.

blueyonder 2021-05-10 18:1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사실 일반적 소설은 아니어서 술술 읽히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글이 뭔가 아련합니다.
 
시사IN 제712호 : 2021.05.11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모병제, 백신 권고 등 시의적절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기사를 싣는 주간지의 장점을 다시 한 번 발휘한다. 굽시니스트의 만화 등 즐겨 읽는 연재들이 풍성함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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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1-05-15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호의 굽시니스트 만화: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537
영국 항모 ‘퀸 엘리자베스‘의 아시아 태평양 순방에 맞추어, 20세기 초 미국 ‘대백색함대‘ 얘기가 나온다.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 <죽지 않는 사람들>은 불사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로마 시대의 군단장이었던 주인공 마르코 플리미니오 루포는 불사의 강 하구에 있는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곳을 찾아 나선다. 갖은 고초 끝에 드디어 그는 강물을 마시고 불사의 인간이 된다. 그리하여 그는 이집트의 불락 교외에서 <아라비안나이트>의 어떤 이야기를 필사했고, 사마르칸트 감옥 마당에서 수없이 장기를 두었으며, 보헤미아에서 점성학을 연구하며 수많은 생을 살게 된다(<알렙>, 민음사, 1996, 13~35쪽).

  불사의 삶을 찾고자 한 것은 진시황만은 아니었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미라가 되어 거대한 피라미드 속에서 사후의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것도 잘 알다시피 불사와 영생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다. 영원성에 대한 플라톤의 철학적 꿈으로부터 레닌의 방부 처리된 시신까지 모두 이 불사의 삶에 대한 욕망의 산물이다. 영생이야 불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을 향하여 생명의 길이를 늘리는 것 또한 이런 욕망과 다르지 않음을 안다면, 수명을 연장하고 노화를 방지하려는 현대 과학자들의 집요한 노력 역시 '영생'이라는 '종교적' 단어와 공명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보르헤스가 말한 루포의 불사의 삶이란, 생각해보면 '윤회'라는 관념과 거의 비슷한 것이다. 불락에서 <아라비안나이트>를 필사하다 사마르칸트에 가고, 다시 보헤미아에 가서 점성학을 연구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천 년 이상의 세월 동안 이어가는 것은 그 상이한 삶 사이에 '죽음'이라는 사건을 끼워 넣으면, 우리가 익히 아는 윤회하는 삶이 된다... 사실 윤회 안에서 죽음은 결코 삶의 중단을 뜻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죽음'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삶에서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변환의 문턱일 뿐이다... 보르헤스는 말한다. '죽음에 대한 관념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사실 불사의 존재'라고. 컴컴한 어둠 앞에서 느끼는 공포 때문에, '죽음'이란 두려운 관념 때문에 우리는 죽는 것이라고. (201~202 페이지)

... 윤회는 근본적인 죽음의 불가능성에 대한 교설이다. 거기 불사에 대한 욕망과 반대로 죽음의 불가능성 앞에서 출현하는 절망, 즉 죽어도 죽지 못하고, 죽고자 해도 죽을 수 없는 기이한 무능력에 대한 사유가 깃들어 있다. (203 페이지)

  '피안'이라는 말이 야기할 오해를 넘어서기 위해 피안 없는 차안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을 것을 가르치고, 윤회의 중단이란 말이 야기할 오해를 깨기 위해 윤회 없는 해탈이 아니라 윤회하는 삶 속에서 해탈할 것을 가르쳤던 '대승불교'의 근본적인 전환은 분명 이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깨달음이란 번뇌 안에서 얻는 것이며 번뇌와 함께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부처란 중생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 바로 중생 자신임을 설하는 것도 모두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이란 물질이 없는 세계(무색계)에서 얻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세계(색계) 그 자체 안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는 개념 또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윤회하는 삶은 떠나야 할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장으로 긍정된다. 그러나 그것은 업이란 이름으로 주어진 것을 참고 견디라는 인고의 가르침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삶을 긍정할 만한 것으로 바꾸어가라는 가르침으로써 긍정된다. (212~21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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