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사이언티스트> 특별기사(2016.09.03)의 첫 번째 주제는 '내가 존재하는지 어떻게 아는가?How do I know I exist?'이다. 내가 '정말로' 존재하는지, 누군가의 시뮬레이션 속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마치 매트릭스 영화처럼, 내 경험을 누군가 만들어서 그냥 넣어주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동양식으로 말하면 이게 다 꿈이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가 되겠다. 이것은 너무 어려운 질문이므로 기사는 질문의 의미를 바꾸어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누가(어디서) 만드는가'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결론을 바로 말하자면 우리의 뇌가 주변의 정보를 종합해서 우리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실마리로 언급되는 것은 코타드 증후군Cotard's syndrome이다. 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는다고 한다.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브레인 스캔을 통해 밝혀낸 바로는 이러한 증후군을 갖는 사람들은 뇌의 특정 부분에 이상을 보이는데, 이 부분은 보통 우리 몸과 감정 상태를 인식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존재한다는 느낌은 뇌가 만들어낸다는 것인데, 뇌란 일종의 예측기계prediction machine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뇌는 우리 몸과 주변의 신호들을 종합해서 무엇이 이 신호들을 야기시키는가를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예로, 우리가 만약 절벽 위를 걷고 있다면, 뇌는 이대로 계속 걸어갈 경우 절벽에서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인지(예측)해야만 한다. 정확한 예측을 위해 뇌는 사전지식을 가지고 자기 모델의 정확성을 계속 테스트해야만 한다. 독일 마인츠 대학의 메칭어Metzinger 교수는 "뇌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시스템이다"라고 말한다.


어려운 질문에 대한 실제적 대답이다. 과학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바는 우리 존재란 뇌가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나'는 뇌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이 모든 것, 이 모든 연구, 이 모든 세상, 내가 얻는 모든 경험이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누군가'는 하나님일 수도, 기사에 따르면 '악마'일 수도 있다. 데카르트는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선하시므로 우리를 속일 리가 없다'는 결론을 얻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확실히)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이를 현대과학적 표현으로 바꾼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 같다: '나는 뇌가 있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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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과학잡지인 <뉴 사이언티스트> 2016년 9월 3일호에 '과학이 철학의 가장 깊은 질문들에 어떻게 답하는가'에 관한 특별 기사가 실렸다. 


표지를 보면 '형이상학 문제'라고 쓰여 있고 다음과 같은 '깊은' 질문들이 나열되어 있다.

- 나는 존재하는가?

- 왜 사물은 존재하는가?

- 실재란 무엇인가?

- 의식은 무엇인가?

- 나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 선과 악은 어디서 오는가?

- 신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는가?

- 시간이란 무엇인가?

-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상당수는 현대물리학의 발전으로 인해 무언가 답할 수 있게 된 것이고, 나머지는 신경과학, 진화론 등 생물학의 발전으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한때 형이상학은 언어의 잘못된 사용으로 인한 '말장난'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제 과학이 우리 삶의 가장 깊은 질문에 대해 무언가 실마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반갑다. 물리학physics은 물질세계에 대한 학문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물질세계를 넘어선 형이상학metaphysics적 질문에 무언가를 얻게 됐다. 물론 과학의 대답이 절대적 해답은 아니고 단지 실마리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마리가 무언가 진실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그 통찰을 한 번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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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ury 2. Winter of the World (Mass Market Paperback)
켄 폴릿 지음 / Penguin Group (USA) Inc.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1세대들의 이야기인 1편에 이어, 이제 2세대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 가족들의 내력을 알고 나니 좀 더 이야기에 흡인력이 있는 것 같다. 읽으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한다. 러시아 혁명을 지지했던 영국(또는 세계)의 진보세력들이 어떻게 스페인 내전에서 소련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는지를 읽으며, 인간의 역사는 이상과 오류로 점철되어 왔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한다. 


영국작가인 켄 폴릿은 역시 영국사회의 구조와 갈등을 그려내는데 탁월하다. 1편에 이어 2편을 읽으며, 왠만한 역사책 읽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소설인만큼 주인공들의 삶을 따라가며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2편의 주인공은 데이지와 로이드가 아닌가 한다. 그들의 삶을 보며 마음대로 안되는 인생, 하지만 열심히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 인생에 대해 배운다. 


마음에 들었던 아름다운 구절 하나 다음에 적는다. 때는 1940년, 2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고, 로이드가 전장에 가기 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교회에 간 장면이다. 

The extempore prayers were eloquent, knitting biblical phrases seamlessly into colloquial language. The sermon was a bit tedious. But the singing thrilled Lloyd. Welsh chapelgoers automatically sang in four-part harmony, and when they were in the mood, they could raise the roof. - p.312

As he joined in, Lloyd felt this was the beating heart of Britain, here in this whitewashed chapel. The people around him was poorly dressed and ill-educated, and they lived lives of unending hard work, the men winning the coal underground, the women raising the next generation of miners. But they had strong backs and sharp minds, and all on their own they had created a culture that made life worth living. They gained hope from nonconformist Christianity and left-wing politics, they found joy in rugby football and male voice choirs, and they were bonded together by generosity in good times and solidarity in bad. This was what he would be fighting for, these people, this town. And if he had to give his life for them, it would be well spent. - p. 313

Granda gave the closing prayer, standing up with his eyes shut, leaning on a walking stick. "You see among us, O Lord, your young servant Lloyd Williams, sitting by here in his uniform. We ask you, in your wisdom and grace, to spare his life in the conflict to come. Please, Lord, send him back home to us safe and whole. If it be your will, O Lord."
The congregation gave a heartfelt amen, and Lloyd wiped away a tear.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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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과 전체> 새 번역이 나왔다. 김용준 교수님이 번역한 지식산업사 판은 이제 절판되었으니, 좋으나 싫으나 새 번역을 읽어야 한다. 옛 번역이 안 좋다는 의견이 많다는 데에 사실 놀랐다. 오래 전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으면서 10대, 20대 젊은이들이 이렇게 수준 높은 과학과 철학 논쟁을 하는 것을 보고 경탄과 함께 그들의 학문적 전통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새 책의 깔끔한 표지와 고급 인쇄용 종이가, 김용준 역이 나온 이후에 흐른 30년 가까운 세월을 실감하게 한다. 다른 리뷰가 지적했듯이, 예전 번역은 당시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딱딱한 문체에 대화도 문어체에 가깝다. 새 번역을 한 챕터 읽고 예전 번역을 읽어보니 옛날 문체이긴 하지만 잘못 번역되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없고, 오히려 더 정확하거나 읽는 맛이 있기도 했다. 이건 내가 그만큼 옛날 사람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적확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책도 예전 말투 번역(개역한글)과 요즘 말투로 한 번역(현대인의 성경)이 있지 않나? 읽기에는 현대인의 성경이 편하지만 그래도 개역한글판을 읽는 사람들은 뭔가 옛스러운 맛과 전통을 느끼는 것처럼... 


<부분과 전체>가 과연 고전의 반열에 들어가는가에 대한 얘기도 있던데, 이건 고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과학의 고전을 따진다면 꼭 들어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마찬가지로 <부분과 전체>도 그 반열에 들어가리라 나는 생각한다. 과학이 단순히 경험의 총화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철학적, 종교적, 언어적 함의가 있다는 것을 <부분과 전체>만큼 생생히 보여주는 책도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양자역학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원자의 세계에 대한 것인 만큼, 우리의 일상생활의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성질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해, 심지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해'가 무엇인지에 대해 당시의 물리학자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아직도 완벽히 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양자역학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이런 고민을 거쳐 탄생했다. 영역본이 없다는, 그래서 정말 고전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 나는 이 책이 우리 사회에서 고전의 반열에 들어간 것은 정말 행운이며, 김용준 교수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겠다. 


물리(특히 원자물리, 양자역학)가 어떤 철학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양자역학이 만들어질 당시 물리학자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 이면을 엿보고 싶은 사람에게 나는 아직도 <부분과 전체>를 권한다. 이제 새 번역이 나왔으니 좀 더 현대적 문체로 이러한 논의를 맛볼 수 있겠다. 하지만 구세대인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는 김용준 역을 때때로 펴볼 것 같다. 마치 딱딱한 독일어 원전을 읽는다는 상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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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6-09-10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번역이 나왔는가 보군요.
저는 옛 번역에서도 첫판으로 나온 책을 책상맡에 두고서
틈틈이 되읽어 보곤 합니다.
책 표지가 많이 낡는 바람에 겉에 종이를 대어 살살 다루지요.

한 번 읽었대서 다시 안 들출 만한 책이 아니라
생각을 새로 깨우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즐거운 책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직 새 번역을 보지 않아서 저로서는 무어라 하기 힘들지만,
제가 예전 김용준 님 번역을 읽을 적에는
군더더기가 없이 잘 옮겨 주어서
양자물리학으로 넘어서는 과학 흐름을 살피고,
또 하이젠베르크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 생각도
차분히 짚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새로운 번역이기에 더 낫다기보다
`과학`과 `철학`과 `삶`과 `사람`을 바라보고 읽는 마음결과 숨결에 따라
이 책 <부분과 전체> 번역이 갈리리라 생각합니다.

blueyonder 2016-09-10 14:27   좋아요 0 | URL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뒤를 들쳐보니 제 건 3판이네요~
즐거운 독서 하시기 바랍니다!
 
암흑 물질과 공룡 - 우주를 지배하는 제5의 힘
리사 랜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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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물질과 공룡의 멸종이라는 별개의 주제를 연결한 책 제목은 꽤 주의를 잡아 끈다. 책은 암흑 물질과 태양계에 대해 설명하는 2개의 부분을 거친 후, 그가 제안하는 가설로 나아간다. 하지만 태양계가 우리 은하 평면에 존재하는 암흑 원반을 주기적(아마도 3200만 년의 주기)으로 지나가며 이것이 오르트 구름을 교란시켜 대멸절을 일으킨 혜성을 유도했다는 것은 아직 가설일 뿐이다. 심지어 논문이 유명한 과학 저널에 실렸다고 해도 말이다. 과학적으로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실제 우린 아직 암흑 물질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짐작만 할 뿐이다. 


암흑 물질이라는 신비한 가설적 존재와 태양계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만 할 것 같다. 여기까지는 좀 더 확립된 사실이니까. 여기에 더해, 요즘 입자 물리학과 우주론 분야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은 마지막 부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설명된 것과 같은 연구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궁극적 지식의 탐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실험적 검증의 한계를 넘어선 영역에 대한 연구는 무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반드시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은 너무 편협하지만, 실생활과는 아무 상관 없이, 미래에도 도저히 실험적 검증이 안되는 연구도 궁극적 지식의 탐구라는 이름으로 밀고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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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8-17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물리학이 심오한 철학쪽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과학책을 읽다보니 거 과학은 철학의 또 다른 사유에서 나온 분파이긴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버거워 리사 랜달같이 현대물리학자들의 이론이 정말 이상적인 사유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실험검증이 불가능한 이론을, 리사랜들같이 숨겨진 우주나 끈이론같은, 평범한 독자인 내가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자꾸 듭니다.

blueyonder 2016-08-17 17:39   좋아요 0 | URL
요즘 대중 과학 서적들이 많이 나오는 현상은 그래도 합리적인 과학이 세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사람들이 믿는다는 증거이겠지요. 특히 물리학 중에서도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꽤나 뜨거운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신기한 현상에 대해 얘기하니까요. 하지만 요즘 최신 이론으로 많이 언급되는 끈 이론이니 다중우주 같은 내용은 물리학계 내에서도 물리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꽤 됩니다. 그동안 자연현상을 잘 설명했던 물리 이론을 계속 밀고 나가다 보니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이론이 된다는 건데, 말 그대로 이론일 뿐이지 검증된 사실은 아닙니다. 실험으로 검증될 수 없는 이론은 그럼 어떻게 진위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요즘 논의와 고민이 있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