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을 조금 더 읽었다. ‘3장 물기둥 여인숙’ 부분이다. 주인공 이슈마엘은 포경선을 타기로 하고 토요일 밤 뉴베드퍼드에 도착했으나 그의 목적지인 낸터킷으로 가는 배는 이미 끊어지고 월요일까지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싸구려 여관을 찾다가 들어간 곳이 ‘물기둥 여인숙’. 여기도 빈 방은 없지만 주인장은 침대를 둘이서 쓰라고 제안한다. 별 대안이 없는 이슈마엘은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한 침대를 써야하는 작살잡이가 못내 미덥지 않다. 주인장은 작살잡이가 머리를 팔러 나갔다고 한다. 원주민 머리를 기념품으로 판다는 것이다. 작살잡이 또한 폴리네시아 원주민이다(이이가 퀴퀘그이다). 기겁한 이슈마엘은 그냥 나무의자에서 자려고 하지만, 너무 불편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주인장이 침대가 아주 크니까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방을 보러가자고 한다. 다음은 해당 부분의 국문판이다. 


  「듣자 하니, 주인장. 이 작살잡이는 위험한 사람이군요.」 

  그러자 〈돈은 꼬박꼬박 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너무 늦었으니 자네는 가서 몸을 눕히는 게 좋겠네. 좋은 침대야. 마누라랑 결혼한 날 그 침대에서 잤지. 둘이 실컷 뒹굴어도 될 만큼 넉넉하네. 무진장 큰 침대라고. 왜 아니게, 그걸 손님용으로 내놓기 전까지 마누라는 샘이랑 어린 조니를 발치에서 재우곤 했다네. 그런데 하루는 내가 꿈을 꾸다 버둥거렸는지 샘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팔이 부러질 뻔했어. 그때부터 마누라는 저 침대가 싫다는 거야. 따라오게. 초를 줄 테니.」 그러면서 초에 불을 붙여 내게 건네주고는 앞장서 걸어갔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주인은 구석에 걸린 시계를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벌써 일요일이군. 오늘 밤에는 작살잡이를 보지 못할 거야. 어디 다른 곳에 닻을 내린 모양이니. 자, 따라오게. 어서. 안 올 텐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계단을 올라갔고, 주인장이 이끄는 대로 작은 방에 들어갔더니 조개처럼 싸늘한 그곳에는 아니나 다를까, 작살잡이 넷이 나란히 누워도 될 만큼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침대가 있었다.

  「자.」 주인은 세면대와 탁자를 겸하는 대단히 낡은 궤짝 위에 초를 내려놓았다. 「그럼 편히 쉬고 잘 주무시게.」 침대를 바라보던 눈길을 돌렸을 때 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60~61 페이지, 밑줄 추가)


이 장면을 상상하는데 있어 이상한 부분이 있다. 초를 누가 들고 갔느냐이다. 위의 번역문에서는 주인장이 “초에 불을 붙여 내게 건네주고는 앞장서 걸어갔다.”고 한다. 그러고는 나중에 “주인은 세면대와 탁자를 겸하는 대단히 낡은 궤짝 위에 초를 내려놓았다.”고 나온다. 앞 문장을 보면 초를 들고 간 사람은 ‘나’인데, 나중에는 주인장이 내려놓았다고 한다. 길을 모르는 사람에게 초를 들라고 시키고 자기는 앞장서 걸어갔다는, 부자연스러운 앞 문장의 번역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원문을 찾아보면 잘못 번역한 것이 맞음을 알게 된다. 해당 부분의 원문이다. 


 "Depend upon it, landlord, that harpooneer is a dangerous man."

  "He pays reg'lar," was the rejoinder. "But come, it's getting dreadful late, you had better be turning flukes—it's a nice bed: Sal and me slept in that ere bed the night we were spliced. There's plenty room for two to kick about in that bed; it's an almighty big bed that. Why, afore we give it up, Sal used to put our Sam and little Johnny in the foot of it. But I got a dreaming and sprawling about one night, and somehow, Sam got pitched on the floor, and came near breaking his arm. Arter that, Sal said it wouldn't do. Come along here, I'll give ye a glim in a jiffy;" and so saying he lighted a candle and held it towards me, offering to lead the way. But I stood irresolute; when looking at a clock in the corner, he exclaimed "I vum it's Sunday—you won't see that harpooneer to-night; he's come to anchor somewhere—come along then; do come; won't ye come?"

  I considered the matter a moment, and then up stairs we went, and I was ushered into a small room, cold as a clam, and furnished, sure enough, with a prodigious bed, almost big enough indeed for any four harpooneers to sleep abreast.

  "There," said the landlord, placing the candle on a crazy old sea chest that did double duty as a wash-stand and centre table; "there, make yourself comfortable now, and good night to ye." I turned round from eyeing the bed, but he had disappeared. (p. 21, 밑줄 추가)


“초에 불을 붙여 내게 건네주고는 앞장서 걸어갔다.”의 원문은 “he lighted a candle and held it towards me, offering to lead the way.”이다. 직역하면 “그는 초에 불을 붙여 내 쪽으로 들더니 앞장서 가겠다고 했다.”이다. 자연스럽다. 길을 아는 주인장이 초에 불을 붙인 후 자기가 들고 가는 것이다. 건네준 것은 아니다. 


번역본을 읽다보면 아마 이상한지 모르고 지나가는 부분도 꽤 있으리라 생각된다. 원문의 뜻을 왜곡하지 않는다면—문맥이 어긋나지 않는다면—어느 정도는 역자의 재량으로 남겨둘 수도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경우는 오역이라고 본다. 이런 부분들은 편집자가 걸러주면 좋겠다. 


원문에는 요즘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이 눈에 띈다. 이 기회에 원문에서 어려운 말들을 찾아 적어 놓는다. 


- turn flukes: 1. Of a whale: to go under, dive. 2. (nautical slang) To turn in, go to bed. 


- splice: 1. To unite, as two ropes, or parts of a rope, by a particular manner of interweaving the strands, the union being between two ends, or between an end and the body of a rope. 2. To unite, as spars, timbers, rails, etc., by lapping the two ends together, or by applying a piece which laps upon the two ends, and then binding, or in any way making fast. 3. (slang) To unite in marriage. 


- afore: In advance of the time when; before. 


- arter: Pronunciation spelling of after.


- jiffy: (colloquial) A very short, unspecified length of time. 

원문에서는 “I'll give ye a glim in a jiffy.”라고 나온다. glim은 glimpse를 줄인 말인 듯 보인다. 뜻은 “곧 보게 해줄게.”이겠다. 국문판은 이것을 “초를 줄 테니.”로 잘못 번역했다. 여기서부터 번역이 이상해진 듯싶다. 사전을 찾아보니 glim에 초candle의 뜻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look, glimpse의 뜻도 있다.


- vum: (US, colloquial) To vow, swear. 


출처: Wiktionary (https://en.wiktiona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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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로버트 패틴슨, 마크 러팔로 주연의 <미키 17> 영화를 보고 기록해 놓는다. 위의 <미키 7>을 원작으로 한 것인데, 영화를 위해 당연히 각색해서, 큰 줄거리는 모르겠지만, 디테일은 좀 다른 듯 보인다. 그래서 7과 17의 차이가 있는지도. 


영화에 대한 평을 살펴보면 호불호가 갈리는 듯 싶은데, 난 매우 재밌게 봤다. 영화는 SF라기보다는 세상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풍자처럼 보인다. 한 마디로 블랙코미디이다. 


극중에서 미키는 자원한 익스펜더블(소모품)이며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다 죽으면 그는 복제-재생된다. 그때마다 이름 뒤의 숫자가 늘어난다. 미키의 기억은 주기적으로 백업되어 재생시킬 때마다 계속 업데이트된다. 미키는 영생하는가?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니다. 다만 주변인들은 그가 계속 산다고 여길 것이다. 


영화를 보면 자꾸 이런 정치인, 저런 정치인을 떠올리게 된다. 종교와 자본주의도, 정규직/비정규직도... 원래 코미디를 썩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 영화의 이런저런 풍자 코드는 매우 통쾌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아주 좋았다. 패틴슨이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지 몰랐다. 보면서, 와 봉준호 감독은 천재, 이런 생각도 했다. 


원작과의 차이는 무언지, 시간이 나면 원작도 한번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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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3-17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i-fi 즐겨보지 않는 저도 이 영화 개봉하는 날 가서 재미있게 보고 왔답니다. 진심으로 영화 내용이 먼 미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 같아요.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 못한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고 있어요.

blueyonder 2025-03-17 19:12   좋아요 1 | URL
사실 영화 보기 전까지 뭐를 기대해야 할지 잘 몰랐어요. 그냥 SF에 봉준호 감독 영화구나 했는데, 보면서 여러모로 매우 좋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페넬로페 2025-03-17 1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었어요.
봉준호 감독의 메시지가 그대로 들어 있더라고요.
근데 저는 기생충이 조금 더 좋았어요^^

blueyonder 2025-03-17 19:25   좋아요 2 | URL
<기생충>은 유머 코드가 있어도 좀 더 처연하고 반전이 있다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조금 가볍게 볼 수 있게 어깨에 힘을 빼고 만든 것 같아요. 외계인의 생김새부터 그렇지 않나요? ^^

감은빛 2025-03-17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다만 봉준호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아쉽기는 하더라구요. 더 압축적이고 더 날카로운 영화를 기대했는데 그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고 나름 봉준호 다운 디테일도 찾을 수 있었죠. 저는 헐리우드 라는 완전히 다른 틀에서 만든, 제작비 규모가 큰 영화라서 생긴 어쩔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이해하기로 했어요.

blueyonder 2025-03-17 21:40   좋아요 0 | URL
저는 어찌 보면 봉준호에 대한 기대가 그리 크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네요. 기대를 크게 하지 않고 봤다가 꽤 재미있어서 더 좋았는지도요. ^^

Jeremy 2025-03-18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제가 사는 곳 캘리포니아 산호세,
진짜 저희집 코 앞이라 할 수 있는 (물론 차 타고)
근처 극장에서 상영중인데
원래 지난 주말에 보러가려던 계획이
남편이 감기로 몸져 눕는 바람에 무산되었답니다.

봉준호 감독 좋아해서 약간씩 기대에 어긋나는 점이 있더라도
전 다 수용할 수 있는데 님 페이퍼 읽으니 더 보고 싶어집니다.

blueyonder 2025-03-18 17:40   좋아요 1 | URL
큰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내용 잘 모르고 별 기대 없이 볼 때 전 종종 재미와 감동을 느끼더라고요. ㅎㅎ 이 영화도 그랬습니다.

남편 분 감기 빨리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Jeremy 2025-03-19 13:27   좋아요 1 | URL
봉준호 감독은 무조건 밀어줘야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봉감독 영화 상영하면 웬만하면
온 가족 다 끌고 제가 쏘는 걸로 해서 극장가서 봅니다.

blueyonder 2025-03-19 13:44   좋아요 1 | URL
네 봉 감독 대단한 거 인정합니다~ ^^ 한국에서 태어나 아카데미 감독상 받은 인물인데요! 즐겁게 영화감상 하시기 바랍니다~~

잉크냄새 2025-03-18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봉준호 영화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항상 <살인의 추억>을 염두에 두고 보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아카데미 4관왕 <기생충>도 할리우드 진출작 <설국열차>도 이번 <미키17>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봉준호를 봉준호이게 놓아주고 있는 그대로 영화를 보라고요. 자꾸 자기가 생각하는 봉준호의 틀에 가두지 말고 봉준호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응원하라고요.

blueyonder 2025-03-18 21:03   좋아요 0 | URL
저는 최근작으로 올수록 더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영화를 잘 모르다 보니 어떤 방식이 봉준호인지 잘 모르겠어요. 굳이 생각나는 것을 들자면 사회적 비판의식, 기대하지 못했던 반전, 그리고 쓴웃음을 짓도록 만드는 유머코드 정도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별 생각 없이 영화를 본다는 고백인 것 같네요. ^^;

서곡 2025-03-20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보았답니다! 슬슬 극장에서 내려가는 것 같아서요 중간에 지루해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blueyonder 2025-03-20 19:47   좋아요 1 | URL
재미있게 잘 보셨다니 다행이에요. 조금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습니다.
서곡 님, 평안한 저녁 보내세요~
 















<지금 과학>의 '3장 지구 온난화' 부분을 읽다가 이상해서 원문을 검색해보았다. 다음의 부분이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의 수수께끼였던 "희미한 태양의 역설faint sun paradox"도 온실 효과와 관련된 신비스러운 현상이다. 태양의 모형에 따르면, 현재의 태양은 지구가 탄생했을 때보다 밝기가 30퍼센트나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원칙적으로 지구는 단단한 얼음덩어리로 얼어 붙었어야 한다. 그러나 지구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암석인 지르콘zircon에서 확인된 증거에 따르면, 44억 년 전에도 지구 표면에는 액체 상태의 물이 있었다." (46 페이지)


밑줄 친 부분은 지구가 탄생했을 때는 태양이 더 밝았다는 얘기이다. 그만큼 지구 온도도 높았을 것이므로 이후의 말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밑줄 친 부분의 원문은 이렇다: "Models of the sun show that it was 30 per cent less bright when the Earth was born." 즉, 지구가 탄생했을 때 태양은 30퍼센트 덜 밝았다는 것이다. 역자는 이를 완전히 반대 의미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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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시사인) 제913호 : 2025.03.18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5년 3월
평점 :
품절


엄청난 얘기들이 실려있다. 지금 우리 정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사부터 도대체 의대생, 전공의는 무슨 생각인지, 트럼프의 미국은 무슨 꿍꿍이인지까지.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어떻게 정신줄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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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은 변화하는 전기장이 자기장을 만들어내고, 변화하는 자기장이 전기장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덕분이다. 1863년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발견했듯이, 빛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장을 통해서 퍼져 나가는 전자기파이다. 연못에서 물결이 퍼져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파동에서는 전기장의 변화가 자기장을 만들어내고, 자기장의 변화가 전기장을 만들어내며, 전기장의 변화가 다시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일이 반복된다. 전자기파는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재생시킬 수 있는 자생력을 가지고 있다. (31 페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빛-전자기파를 이해했다는 것이. 맥스웰은 아인슈타인의 영웅 중 한 명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 패러데이, 뉴튼의 초상을 서재 벽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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