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anesian Choirs: The Blessed Islands의 찬송을 들을 때마다 "spiritual"이란 말이 생각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간의 모든 염원이 모여있는 소리, 정말 하늘에 가서 닿을 것만 같다. 


전쟁은 그 염원이 극대화 되는 장소이다. 인간이 만든 비극의 현장에서 인간은 염원한다. "The Thin Red Line", 내게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삶과 죽음을, 그리고 영원을 생각하게 한다. 


"Jisas Yu Holem Hand Blong Mi"의 영어 번역은 "Jesus, You Hold My Han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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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유명한 통사들이 몇 권 출간됐다. 예전에 출간된 책들에 더해, 그만큼 선택의 여지가 늘어났다. 최근 번역된 유명한 2권은 제러드 와인버그의 <2차 세계대전사 1, 2, 3 A World at Arms>와 앤터니 비버의 <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이다.










































제러드 와인버그의 책은 상당히 딱딱하다. 지도도 별로 없고, 긴 문장도 많다(원문도 그렇다). 하지만 와인버그의 책은 전쟁의 배경, 최상층 지휘부의 생각, 세계 전쟁의 상호 연관성 등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일면, 이 책은 '역사가의 역사책'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전문적인 느낌이 강하고 일반 독자에 대한 배려가 적다. 번역된 책은 1208 페이지의 원서를 3권으로 나누어 번역했다. 1권 432 페이지, 2권 456 페이지, 3권 384 페이지이다. 읽다 보면 직역이 많아 좀 아쉽다. 개인적으로, 예전에는 직역을 선호했는데 요즘에는 가독성 좋은 의역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원문이 길면 문장을 나누어 번역해도 좋다. 번역자인 홍희범 선생은 월간 플래툰의 편집자 겸 필자라고 하니, 군사사 분야에서 전문성이 문제될 일은 없겠다. 하지만 번역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탈자도 가끔 눈에 띈다.  


이에 반해 앤터니 비버의 책은 잘 읽히고 친절하다. 지도도 필요한 만큼 있다. 비버의 강점인, 전쟁에 참여한 개인들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들어가 있어서 전쟁의 참상을 실감할 수 있다. 번역서는 863 페이지의 원서를 1288 페이지의 한 권으로 옮겼다. 


두 저자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는 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이 과연 언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느냐이다. 와인버그는 3개 이상의 나라, 여러 대륙에서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의 책도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기 전에도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중일전쟁, 일본측 표현을 따르면 지나사변). 와인버그는 이 전쟁이 양국 간의 분쟁일 뿐이며 아시아에서만 일어났으니 세계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비버는 그의 책을 소련과 일본이 맞붙은 노몬한(할힌골) 전투부터 시작한다. 중일전쟁이 일어나는 과정도 기술한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전쟁(분쟁)의 전모를 파악하기에는 비버의 책이 더 낫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예전에 출간된 다른 2권의 제2차 세계대전 통사도 있다.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사The Second World War>와 제프리 주크스 등 여러 저자가 쓴 글을 모은 <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이다. 



























키건의 책은 비교적 짧고 핵심을 잘 짚은 기술이지만, 태평양전쟁 부분의 기술이 매우 빈약하다. 최근에는 보급판도 나왔던데, 초판에서 지적되었던 여러 오탈자가 얼마나 수정되었는지 궁금하다. 주크스 등의 책은 비교적 친절하고 컬러 지도 등을 포함해 독자를 좀 더 배려한 느낌이 있다. '바다에서의 전쟁' 등 주제별로 기술한 장도 있다. 여러 저자가 쓴 글이니 아무래도 통일성은 좀 떨어져 보이지만, 비교적 간결하게 기술된 내용을 통해 전쟁의 상황을 파악하기에 수월한 측면도 있다. 


보통 영미권의 제2차 세계대전 통사가 지적 당하는 부분이 독소전과 태평양전쟁이 큰 관심을 못 받는다는 것인데, 와인버그나 비버의 책은 그래도 예전의 책보다는 훨씬 낫다. 그에 반해 키건의 책은 비난 받는 옛날 책에 가깝다. 


냉전이 끝나면서 소련의 많은 비밀문서들이 해제되었고 이에 따라 독소전의 전모를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연구의 결과로 나온 책이 데이비드 글랜츠의 <독소 전쟁사 1941~1945 When Titans Clashed>와 리처드 오버리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Russia's War>이다.




























마지막으로, 어찌 보면 우리에게 더 중요한 일본이 벌인 전쟁에 관한 책이 있다. 권성욱 선생의 책 <중일전쟁>이 있는데, 정말 노작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이런 책이 더욱 많이 출간되기를 희망한다. 관련하여 읽으면 좋은 일본 저자의 책 <쇼와 육군>도 같이 리스트한다.
















최근 존 톨랜드의 <The Rising Sun>이 <일본 제국 패망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2019.08.12). 이 책은 태평양 전쟁을 일본 내부의 사정을 자세히 살펴보며 기술하고 있어서 유용하다.
















일본역사학연구회에서 종전 후 얼마 지나지 않아(1953년) 펴냈던 <태평양전쟁사> 전 5권이, 1, 2권은 <태평양전쟁사 1>로, 3, 4권은 <태평양전쟁사 2>로 번역되어 나왔다(2020.01.09 추가). <태평양전쟁사 1>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사 2>는 그 이후의 본격 태평양 전쟁을 다룬다. "패망의 잿더미에서 토해 낸 일본 지성의 참회록"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데, 전쟁에 관한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관점과 반성을 엿볼 수 있다. 전쟁사이니 전황이 물론 나오는데, 그 외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논의도 있다. 이 책의 단점은 사회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다는 점이다. 소련과 중국 공산당에 대한 일관된 찬사가 눈에 띈다.
















그 외에는 만화책으로 다뤄진 것도 있다. 주간지 <시사인>에 시사만화를 연재하는 굽시니스트의 (매우 마니아적인)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1, 2>, 그리고 중국에서 나온 것을 번역한 <그림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12권의 시리즈이다. 




















와인버그의 짧은 책 <제2차세계대전>이 출간됐다(212페이지). 정세와 전쟁의 흐름을 파악하기에 이만한 책이 없는 것 같다. 오른쪽은 원서이다(2018.04.14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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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쓸모
김경윤 지음 / 생각의길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강연을 엮은 책이라 잘 읽힌다. 주말에 진득히 앉아 읽으면 끝낼 수 있는 철학 입문서이다. 저자는 일산 자유청소년도서관 관장이며 청소년,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동서양 철학자를 한 명씩 골라 그들의 삶과 시대를 살펴보고, 관통하는 주제를 톺아보며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성찰하고 있다. 총 5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자와 플라톤을 다루는 1강, 맹자와 루소를 살펴보는 2강은 정치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3강은 노자와 스피노자를 통해 펼치는 신론이다. 4강은 장자와 디오게네스의 삶에서 배우는 자유론,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를 다루는 5강은 군주론, 법치주의에 대한 강의이다. 


새로운 정보도 있었고 나름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저자는 공자를 평민이면서 귀족이 되고자 갈망한 사람으로 기술한다. 또한 화이부동(君子 和而不同)을 (계급적) '조화를 추구하고 평등을 거부한다'고 해석한다. 노자와 스피노자를 다루는 3강은 기대와 달리 조금 실망스러웠다. 노자와 스피노자가 이렇게 간단했던가?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장자와 디오게네스를 다루는 4강이었다. 몇몇 구절을 다음에 기록한다.

인문학의 최종 목표는 인문학을 버리는 겁니다. 지식을 버리는 것이지요. 아는 것을 자기 삶으로 증명해내는 겁니다. 딱 그만큼이 인문학입니다. (187~188 페이지)
디오게네스가 원래부터 가난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의 노예가 도망을 쳤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노예가 도망쳤는데 왜 안 잡느냐고 물었죠. 디오게네스가 가만히 생각하다가 "노예는 나 없이도 잘 사는데, 내가 노예 없이 못 산다면 누가 노예냐?"라고 되물었답니다... 그래서 노예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 '위대함'은 아무나 못하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안 하는 것을 하는 능력입니다. (201, 202 페이지)

장자의 아내가 죽자, 혜시가 조문을 갔다. 장자는 마침 두 다리를 키처럼 벌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것[삶과 죽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운행하는 것과 같지. 저 사람이 우주라는 큰 집에 누워 편안히 자고 있는데, 내가 크게 소리 내어 곡을 한다면, 그것은 명()을 모르는 것일세. 그래서 곡을 멈춘 것이라네." (203 페이지)

디오게네스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물욕에 집착이 심하면 허약해진다. 그리고 스스로 결박을 한다. 언제든지 죽음을 생각해보는 사람만이 참된 자유인이다. 이미 죽음을 예감해본 사람은 어떤 욕망도 그를 노예로 할 수 없고 그 아무 것도 그를 결박하지 못하니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을 아시나요? 죽음을 기억하라!....[이] 정신을 다르게 표현하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되겠네요. 오늘을 살아라! ...

...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은 그것 때문에 우울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라 언젠가 죽는데 그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니까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자기답게 살라는 말이지요. (204~205 페이지)


저자는 '들어가며'에서 철학의 쓸모를 '물음이고 의문'이라고 말한다.  

... 철학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물음이 끝나는 곳에서 철학의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물음이 시작되는 곳에서 철학은 발원합니다. 그리하여 철학은 물음입니다. 좋은 답을 얻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잘 묻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러면 철학의 쓸모는 무엇일까요? 너무나 당연히도 철학의 쓸모는 물음이고 의문입니다. 철학은 상식의 확인이 아닙니다. 다수가 동의하는 것을 따르는 합의도 아닙니다. 차라리 철학은 상식에 대한 반격이고, 다수결에 대한 의문이며, 진리에 대한 회의입니다. 이 물음의 대상에서 권력도, 재력도, 심지어 진리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에 질문할 수 있는 것이 철학입니다. (6 페이지)


책을 다 읽고 나니, 장자를 더 읽고 싶어졌다. 나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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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모르텔 2019-01-22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의 쓸모... 잘 읽고 갑니다.

blueyonder 2019-01-29 12:37   좋아요 0 | URL
방문과 댓글 감사합니다~^^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다. 원작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더 철학적이고 일어나는 사건은 영화와 달리 별로 없다. 묘사되는 외계인과의 조우 장면들도 좀 다르다. 소설을 각색하여 각본으로 만든 사람과 화면으로 창조한 감독이 대단하다는 생각... 소설과 영화는 참 다른 장르이구나 하는 생각도 다시 한 번 든다. 그래도 전달하는 메시지는 비슷하다. 


일생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나이를 먹고 쌓인 추억이 많다 보니 예전 일들이 종종 떠오르는데, 특히 소설에서 딸에 대해 얘기할 때 부모로서 깊은 공감... 영화 볼 때 공감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겠지. 


시간이란 무엇일까. 미래에도 결코 이해가 안되는 문제일 거다. 만약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도 헵타포드의 세계관을 갖게 될 수도... 소설에서 페르마의 원리가 중요한 모티브로 설명되는데,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비슷한 시기에 읽은 것은 무슨 우연일까...


I remember a converation we'll have when you're in your junior year of high school. It'll be Sunday morning, and I'll be scrambling some eggs while you set the table for brunch. You'll laugh as you tell me about the party you went to last night.

   "Oh man," you'll say, "they're not kidding when they say that body weight makes a difference. I didn't drink any more than the guys did, but I got so much drunker."

   I'll try to maintain a neutral, pleasant expression. I'll really try. Then you'll say, "Oh, come on, Mom."

   "What?"

   "You know you did the exact same thing when you were my age."

   I did nothing of the sort, but I know that if I were to admit that, you'd lose respect for me completely. "You know never to drive, or get into a car if--"

   "God, of course I know that. Do you think I'm an idiot?"

   "No, of course not."

   What I'll think is that you are clearly, maddeningly not me. It will remind me, again, that you won't be a clone of me; you can be wonderful, a daily delight, but you won't be someone I could have created by myself. (pp. 1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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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7-08-03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가 고2 때 우리가 나눌 대화를 나는 기억한단다. 그때는 일요일일 거고, 브런치를 위해 네가 테이블을 차리는 동안 나는 스크램블 에그를 하고 있을 거야. 넌 지난 밤에 갔던 파티에 대해 내게 얘기하며 웃겠지.
너는 얘기할 거야. ˝몸무게가 차이를 만든다는 말이 정말 농담이 아니라니까. 다른 사람처럼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내가 더 취한 거 있지.˝
나는 중립적이고 유쾌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거야. 난 정말 그럴 거야. 그러면 너는 얘기하겠지. ˝엄마, 제발 좀.˝
˝뭐?˝
˝엄마도 내 나이 때 똑같이 했잖아요.˝
난 그런 일은 하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그걸 인정하면 네 존경심을 잃을 거라는 걸 난 알아. ˝너 운전하면 안 된다는 거 알지, 차에 타도 안돼, 만약...˝
˝헐, 물론 알아요. 내가 바보인줄 알아요?˝
˝물론 아니지.˝
난 네가 분명히, 화가 날 정도로, 내가 아니라고 생각할 거야. 그건 네가 나의 클론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겠지. 넌 경이로우며 나날의 기쁨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넌 나 혼자 창조할 수 있는 누구는 아닐 거야.
 
가능한 최선의 세계
이바르 에클랑 지음, 박지훈 옮김 / 필로소픽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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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학은 보통 뉴턴의 운동 방정식으로 기술되고, 원칙적으로 이 미분 방정식을 풀면 물체의 미래 운동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고전역학의 세계관을 결정론적 세계관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뉴턴 역학을 천체에 적용하여 집대성한 라플라스는 나폴레옹 황제가 그럼 "우주 속에 신이 있을 자리는 어디요?"라고 물었을 때, "폐하, 그러한 가정은 전혀 불필요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전역학 속에서도 이러한 계(가적분계integrable system)는 특정한 예일 뿐이고 비가적분계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19세기 말 앙리 푸앙카레 등의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이것이 근래 관심을 끌었던 '카오스'로 가는 단초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당구공 운동의) 예를 들며 (꽤)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다음은 가적분계, 비가적분계의 특성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가적분계의 주된 특징은 무엇보다도 운동방정식을 풀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라도 모든 궤적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현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의 상태를 완벽히 예측할 수 있다. 가적분계는 예측이 가능할 뿐 아니라 안정적이다. 이는 곧 일정한 시점에 상태(위치와 속도)가 조금만 변하면, 뒤이어 그와 비슷한 작은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가적분계에서는 결과가 원인에 비례한다. 작은 변화, 에컨대 나비의 날갯짓은 열대지방에서 천둥 번개와 같은 대형 난기류로 확대되지 않는다.

...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라는 두 가지 성질은 가적분계에 특화된 성질이[다]... 고전역학이 오랜 기간 가적분계만 다뤄온 탓에 아직까지 인과관계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남아 있다. 비가적분계에서 비롯된 수학적 진리는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모든 것 이외의 원인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려면 오늘 일어나는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의 사건이 뒤이어 발생하는 사건의 유일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연속적이고 명료한 "인과관계 사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138, 139 페이지)


이 세상은  인과관계 사슬로 분해되지 않는다. 발생한 사건의 원인이 직전에 일어난 사건의 원인이 되도록 사건을 선형적으로 늘어놓지는 않는 것이다. 각 사건은 과거를 향해 뿌리다발을 뻗치며, 미래를 향해 가지 왕관을 올리고 있는 나무와도 같다. 그 어떤 사건에도 단일한 원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로 깊이 들어갈수록, 특정 사건에 대한 선행 사건이 더 많이 보이게 된다. 꼬이지 않은 실처럼 한 가지 경로를 따라 결과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더 먼 미래를 바라볼수록, 단일한 사건은 더 넓은 그물망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141 페이지)


가적분계는 원인과 효과[결과가 올바른 번역!]가 질서정연하게 비례하나, 비가적분계는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에 의지하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경시할 수 없다. 현실은 이 두 가지 체계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며, 대부분은 시간의 길고 짧음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길게 보면, 이 세상은 비가적분계에 해당된다. 하지만 짧게 보면 가적분계가 현실에 부합한다. 예컨대 오늘 날씨를 예측하거나, 지금으로부터 1000년 후 달의 위치를 예측하고 싶다면 가적분계를 따라야 미래의 결과를 정확히 가능할 수 있다. 이러한 정도의 시간 주기에서는 안전한 예측이 가능하며, 내일 비가 오거나 2100년에 일식이 있으리라는 것을 꽤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진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100년 후의 날씨가 어떨지, (지구 온난화 논쟁을 유념하라.) 화성이 몇 십억 년 후에 어디에 있을지(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도 있다.)를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긴 시간주기에서 예측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변수가 워낙 많다 보니, 이 가운데 어떤 변수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지를 알기 어렵다. 이는 장기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저변에 놓인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상호작용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연산 기술 또한 많이 발전했다. 따라서 의미 있는 예측이 가능한 미래의 시점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예측하기 어려운 한계치란 언제든 존재하기 마련이며, 많은 중요한 사례들에서 아슬아슬하게 예측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불편할 뿐이다. (142, 143 페이지)


이 세상은 가능한 최선(best)의 세계일까? 모페르튀나 라이프니츠의 생각과 달리, 저자는(우리는) 이 세상이 최선(최고)가 살아남는 세상이 아니라 최적이 살아남는 세상임을 안다. 가장 고매한 사람이 번성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다. 모페르튀는 최소 원리(좀 더 정확히는 정상 원리stationary principle)로 자연현상을 설명하면서 대자연의 목적에 대해 생각했지만, 사실 대자연에 목적은 없다. (목적론적 세계관은 유신론적 세계관과 연관된다.) 저자는 오히려 최악에 가까운 세상에서 인간의 역할에 주목한다. 


왜 고위직에 있던 인사들[여기서는 투키디데스와 귀차르디니]은 공직에서의 삶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 집필을 시작하는 것일까? 그러한 참사들은 피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겪었던 재난들이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리고, 미래 세대들이 교훈을 얻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투키디데스의 유명한 말을 소개한다. "이미 일어난 사건과 인간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언젠가 비슷하게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명확히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내가 기술한 역사를 유익하게 느낀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255 페이지)


두 사람이 기록한 역사는 경솔하고도 의욕만 앞선 잘못된 결정이 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또한 그들은 아테네의 페리클레스, 피렌체의 로렌조 드 메디치와 같은 위인들이 시민들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얼마나 꾸준히 영리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보여 준다. 이들의 업적을 훗날 무능하고 경솔한 후손들이 망쳐 놓았다. 이것이 바로 투키디데스와 귀차르디니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며, 역사는 무작정 진행하지 않고 개인들이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교훈을 들려준다. 이 사회는 물리적 세상과는 달리 자연법칙이나 임의성만이 주도하지 않고, 인간의 의지에 이끌린다. 우리는 역사 속의 배우들이며, 인간의 운명은 신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손에 달려 있다. (256 페이지)


저자는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인간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합리주의와 과학적 방법론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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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7-04-07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차르디니의 <회상록> 중에서: 신앙인들은 믿음이 있는 자가 큰일을 해낼 수 있고, 복음의 가르침대로 믿음만 있으면 산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믿는 대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믿음이 곧 끈덕짐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확실하지 않은 것들을 강력히 믿거나, 합리적인 것들을 이성이 허락하는 범위보다 더욱 강력히 믿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써 믿음을 지닌 자는 자신이 믿는 것에 확고한 태도로 변하고, 고난과 위험을 비웃으며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로 용감무쌍하고 결단력 있게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 세상의 사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어나는 수많은 우연과 사건에 따라 변하므로 믿음을 원천으로 끈덕지게 참아 내는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에는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기 마련이다. (25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