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 중 어느 것을 볼까 들쳐보던 와중에 갑자기 마음이 꽂힌 책이다. 머리말만 읽었는데, 원래 단순히 생각했던, 과학자들이 어떻게 히틀러와 그의 전쟁 노력에 '복무'했는가에만 관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은 독일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연합군의 전쟁 노력에 종사했던 과학자들까지 아울러서, '과학자들은 과학만 하고, 과학의 결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정치가에게 맡겨 놓으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에 파문을 던져 놓는 듯이 보인다.


표지에 <이코노미스트>지에 실렸던 평인 "충격을 야기하며 중요한disturbing and important"이란 말이 있는데, 과학자들이 꼭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찾아보니, 2008년 출간됐던 번역판은 이미 절판됐고 현재는 중고서점이나 도서관에서만 찾을 수 있다. 중요한 책이 별 관심을 못 받고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최근 출간된 <폭격기의 달이 뜨면The Splendid and the Vile>이란 책도 읽어보고 싶은데, 신간과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영원한 숙제이다. 올해는 <히틀러의 과학자들>과 같은, 구간舊刊이지만 중요한 책들을 좀 더 읽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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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2-03 1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폭격기의 달이 뜨면The Splendid and the Vile>은 번역이 독창적이란 느낌이 들어서 그런가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히틀러의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나 다른 책에서 종종 봤지만,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읽은 적이 없어서 그런가 흥미가 생기네요. 절판이라니 영문본을 봐야겠지만.^^;;

blueyonder 2022-02-03 18:29   좋아요 0 | URL
<폭격기의 달이 뜨면>은 번안한 영화제목처럼 사람의 마음을 끄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잘 지었다고 해야겠지요? ^^ <히틀러의 과학자들>이 별 관심을 못 받고 사라진 것을 보면 역시 마케팅이 중요하네요.
 
Unbroken (Movie Tie-In Edition): A World War II Story of Survival, Resilience, and Redemption (Paperback)
Hillenbrand, Laura / Random House Trade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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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미국 대표 육상 선수로 베를린 올림픽에 참석했던 루이 잠페리니의 태평양 전쟁 참전기와 그 후유증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안젤리나 졸리의 감독으로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2014년 말 개봉). 잠페리니의 삶은 그만큼 극적이다. 


1943년 5월, 그의 폭격기는 다른 실종 폭격기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기체 결함으로 태평양 한 가운데서 추락한다. 그는 추락에서 살아남지만 4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하다 결국 마셜 제도의 일본군에게 발견되어 포로가 된다. 이후, 그는 일본 본토의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어,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는다. 저자는 담담하게, 그러나 준엄하게 일본군들의 학대를 고발하고 있다.


1945년, 2발의 원폭 투하 후, 일본은 결국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이고, 포로들은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저자는 전쟁의 상흔이 이들의 정신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잠페리니는 전쟁이 끝나고 수 년 후에야 종교적 깨달음으로 결국 상흔을 극복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전쟁이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는지, 일본군이 당시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포로를 대했는지 알 수 있다. 일본군이 티니안 섬에서 조선인 노무자 5,000명을 학살한 얘기도 나온다. 본토의 전쟁포로들도 1945년 8월 22일 모두 학살될 예정이었다. 전쟁은 8월 15일 끝났다.


방대한 증언과 기록을 종합하여 흥미진진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얘기를 만들어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책은 2010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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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1-31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강제로 끌려가 많이 죽었음에도 아니라고 우기는 일본과 국힘당놈들!! 대단하죠

blueyonder 2022-02-01 10:5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일본에 양심을 지키는 국민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갖습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그나마 있던 양심적 소수가 더 줄어드는 것 같네요. ㅠ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Munich – The Edge of War>를 넷플릭스에서 봤다. 로버트 해리스의 역사소설 <Munich>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 <1917>에서 영국군의 공격취소 소식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병사 역할을 맡았던 조지 맥카이가 주인공으로 다시 나와 반갑다. 또 다른 주인공인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의 역할은 제레미 아이언스가 맡았다.
















뮌헨은 독일 남부의 도시로서 1930년대 당시 독일 나치당의 본거지였다. 1938년, 히틀러를 비롯하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영국의 체임벌린, 프랑스의 달라디에 총리는 뮌헨에 모여 체코의 주데텐란트 지역을 독일에게 할양하는 협정을 맺었다. 히틀러의 체코 침공을 막기 위해서였다. 사실 히틀러는 전쟁을 원하고 있었지만, 이 협정에 따라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고 1년 후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협정으로 평화가 단 1년 정도만 지속되었으며 양보가 히틀러의 야욕을 오히려 북돋아준 것으로 치부되어, 이후 ‘뮌헨’이란 단어는 유화주의자들을 비난하는 의미로 종종 사용되었다. 또한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는 나약한 지도자의 전형으로 언급되곤 한다. 


영화 <뮌헨>은 다른 관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전쟁을 1년 연기함으로써, 영국—그리고 연합국—이 전쟁을 준비할 시간을 벌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가들이 당시의 상황을 검토하여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실제, 체임벌린 총리 시절 승인되어 생산된 전투기들이 이후 전쟁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됨이 <영국 전투>에 언급되어 있다. 1939년에 독일이 결국 폴란드를 침공한 이후 체임벌린은 물러나고, 처칠이 총리가 되어 전쟁을 지휘하게 된다. 당시 대독일 전쟁의 분수령이었던 영국 전투(영국 항공전)에서 처칠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은 <폭격기의 달이 뜨면The Splendid and the Vile>이 최근 출간되어 관심을 끈다.
















강경파들의 주장은 겉보기에는 시원하고 듣기에 좋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요즘에도 종종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은 기분만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제 타격이라는 위험한 말을 요새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 정부를 ‘종북’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일은 듣기에만 좋은 말을 내뱉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일의 어려움을 네빌 체임벌린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알려준다. 그는 독재자와 타협했다는 오명을 썼지만, 결국 영국의 승리를 위한 초석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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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1 1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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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시사인) 제750호 : 2022.02.08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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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22년 1월 25일, 우리나라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드디어 1만 명을 넘어섰다. 이제 코로나19가 막바지로 접어드는 것 같다. 코로나19가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마지막 고비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해 깊이 있고 균형 잡힌 기사를 지속적으로 게재해 온 <시사인>에서 오미크론의 유행과 더불어 다시 한 번 묵직한 기사를 실었다. 일간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내용이다. 읽고 많이 배웠고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본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역사 속의 한 가운데에 있다. 후에, 힘들었지만 잘 이겨냈다고 (자랑스레?) 회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새벽이 오기 전에 밤이 가장 어둡다고 한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곧 동이 트기를 고대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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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9 2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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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7 15: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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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6 15: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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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0 14: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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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8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석륜 옮김 / 책세상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의 유명한 구절에 이끌려 읽고 싶어졌다. 나쓰메 소세키 본인을 나타냄이 분명한 화가가 온천장에 방문하며 느끼는 상념이 주이다. 여기에 이혼하고 다시 친정으로 온 온천장 주인집 딸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처음에는 나름 집중해서 읽었는데, 화가인지 글쟁이인지 모를 주인공의 사념에 더해지는 영시와 한시를 점점 대충 훑어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때는 바야흐로 러일전쟁이 한창인데, 주인공은 세상과는 동떨어져 본인의 사념에만 빠져있다. 전쟁에 나가는 사촌동생에게 "살아서 돌아오면 창피"하니 "죽어서 돌아"오라는 여주인공의 말에도 공감이 어렵다. 이혼한 남편을 만주로 떠나보내며 문득 보여주는 "애련"한 얼굴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는가?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유미주의적 감상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100년 전, 우리는 신소설이 유행할 시기에, 의식과 상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점은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온갖 단어에 대한 주가 뒤에 있는데, 차근차근 뜯어보며 당시와 현재 일본 사회를 공부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학 전공자가 아닌 나는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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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1-21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블루얀더님 문학 전공자가 아니시라서 그러신 것인지 모르지만, 핵심만 딱 써주시는 이런 리뷰 사모합니다.^^;; 저 시간도 없고 성급한 편이라 다른 사람의 긴 리뷰 잘 못 읽고 그러거든요. ^^;; 인용하신 유명한 구절은 정말 고개 끄덕여지네요. 인간 세상은 정말 살기 어려워요. 그냥 다 내려놓는 것이 답일까요?^^;

blueyonder 2022-01-22 00:50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느낌도 제각각, 감상도 제각각, 독후감도 제각각이지요. 길게 늘어놓을 밑천이 없어서 제 리뷰가 짧은 건지도요 ^^;;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지만, 또 한편 어차피 정답이 없는 인생, 그저 제 잘난 맛에 살면 그냥저냥 살 만한지도요... 그게 라로 님 말씀처럼 다 내려놓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22-03-11 16: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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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4 15: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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