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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승리자들 - 콜럼버스에서 마릴린 먼로까지 거꾸로 보는 인간 승리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8월
평점 :
역사를 참 어렵게 여겼던 적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유행하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은 팩션 장르는 은근한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역사의 사실이라는 소재와 그 위에 덧붙여진 창의적인 전개 덕분에 역사를 어렵게 부분도 재미와 흥미로 새롭게 알게 되는 부분도 있다. 이런 계기로 나 역시 역사에 대해 좀 더 관심을 둔 경우라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역사라는 것이 참 매력적이기도 하다. 물론 역사를 두루두루 제대로 알기는 꾸준히 공부하고, 책을 접해야 하는 지속성이 우선이어야 하지만 사건과 인물에 대한 관심을두다 보면 그에 연관된 또 다른 역사까지 궁금해질수도 있다. 그렇게 그렇게 연관성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사실을 배우게 되고, 또 흐릿하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짚어보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마 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전에 역사에 대해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이런 역사의 또다른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 역시 아주 짭쪼롬한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승리자들>에 대한 책 소개를 읽으면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바로 역사의 이면을 볼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유발되었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공식 때문에 독자들이 접하는 역사란 대부분 승자의 긍정적인 면만 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역사의 기록을 남기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고통도 승리자의 웃음 뒤에 숨겨졌을 테고, 역사의 승리자들이 행했던 추악한 면이나 독재적인 면 역시 잠시 승리의 뒤에 숨겨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런 승리자들이 만들어졌댄다. 이게 무슨 도발적인 표현인고? 승리자가 기록한것이 역사인데 이 승리자들이 만들어졌댄다. 호기심이 생긴다.
'콜럼버스에서 마릴린 먼로까지 거꾸로 보는 인간 승리의 역사' 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승리자들이 남긴 위대한 사건이나 결과보다는 그것을 위해 희생된 또 다른 부분에 대한 이야기, 그것을 위해 숨겨졌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승리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저자 볼프 슈나이더는 '독일어의 교황'으로 불리는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언론인이다. 2차 세계대전 참전, AP 통신사 기자, 워싱턴 특파원, 그리고 편집장과 편집국장, 언론사의 사장까지 역임한 그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가 풀어놓는 이 책의 전개는 어느 정도 신뢰를 하고 싶어진다. 특히 그의 주요 저술 분야가 '언어'와 '문화사'라고 하니, 7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 깊이 있는 내용을 전하지 않을까?
이 책은 "역사를 비틀어 버린 천재와 공상가, 범죄자들은 무엇으로 유명해졌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모차르트 같은 천재, 히틀러 같은 범죄자, 마르크스 같은 공상가, 콜럼버스 같은 모험가까지 문학과 예술, 정치와 전쟁, 과학과 사상 등에서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받는 인류사의 거인들의 면면을 뒤집어 본 환상적인 파노라마이자 좀 더 솔직한 승리자의 문화사이다. 칭기즈 칸이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환경과 우연으로 극히 운이 좋았던 '위대하지 않은 유명인'에서 넬슨이나 니체처럼 질병과 광기로 혹독한 대가를 치른 '위대한 유명인'까지 추적하며, 명성 뒤에 가려진 인물의 이중성을 고발하고 그 역사적 명암을 재구성했다.
이 책은 세 종류의 인간을 다룬다. 위대한 유명인과 위대하지 않은 유명인, 그리고 유명하지는 않지만 위대한 인물이 그들이다.
역사적 사건을 두고 역사에 남을 만한 인물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위대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 유명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로 구분한다?
어떤 인물이 위대한 인물로 분류되고, 어떤 인물이 유명하지만 위대하지 않다는 것일까? 위대하지 않으면서 유명하다? 어떤 기준일까?
사실 대부분의 독자는 역사의 기록에 남은 인물은 당연히 위대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위대한 그 무엇을 남겨주었기 때문에,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어떤 형식으로든 입지를 굳혔기 때문에 그들은 수많은 역사 속에서 하나의 포인트로 남는 것 아닐까라는 단순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그들이 진짜로 위대한가?, 역사에 남은 그 포인트를 제대로 찾아낸 사람들인가? 역사의 한 선을 그을만한 배포가 있는 사람들인가? 진짜로 그들 혼자서 그 위대한 역사의 사건을 만들어냈을까? 이렇게 되물어볼 수도 있다.
그들이 만약 그 자리에 없었다면, 그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상황에 얽히지 않았다면 과연 역사에 좋은 쪽이던 그렇지 않던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까?
(중략)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나 잘츠부르크에서 성장하는 행운을 잡은 모차르트가 한 명 있다면, 비슷한 재능을 가졌지만, 콜레라로 죽거나, 음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태어나 그 재능을 발휘해 볼 기회도 잡지 못하고 죽어 가야 했던 미지의 모차르트는 수백 명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게오르크 뷔히너의 아내가 남편의 요절에 충격을 받고 그의 모든 작품을 없애려던 계획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다면 우리가 뷔히너라는 작가를 알 수나 있었을까? 또한 단테 알리기에리의 모국어가 불가리아어였더라면 우리가 그의 작품을 어떻게 접했을 것이고, 그레타 가르보가 만일 영화관이 생기기 전에 죽었다면 그녀의 이름이 어떻게 세상을 알려질 수 있었을까? -'1.누가 어떤 인간들에게 '천재'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일까?' 중에서-
(중략) 그러니까 기독교인이 유다를 악마에 들린 인간으로 여긴다고 하더라도 유다의 역할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신의 뜻이었다면 유다와 빌라도, 바리새인, 사두개인, 형리들 모두 예수의 순교와 구원의 역사를 위해 꼭 필요한 인물들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기독교 신의 도구가 아니었을까? -'11.유다는 배신자인가, 우군인가, 처형자인가?' 중에서-
역사를 보이는 그대로만 익혔던 독자들은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또 다른 역사의 이면을 보는 시야를 가질지도 모르겠다. '역사란 일단 믿는 것. 왜? 전해오는 것이니까'라는 무의식의 세계가 조금은 '다시 되돌아봐야 하는 과거'라는 시점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만들어진 승리자들>은 어느 정도 역사적 상식을 기반으로 가진 뒤에 다시 읽어봐야 할 듯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에는 어렵다.
독자들이 제대로 알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쏙쏙 귀에 들어오겠지만, 그 외 언급한(이를테면 독자들이 관심이 없는 인물이나, 모르는, 그리고 저자의 설득력 있는 비유를 하는데 등장하는)인물에 대해서는 상당한 지루함도 있기 때문이다.
(중략) 예를 들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는 옹졸하고 독선적이고 인색하고, 불뚝 성질을 부리는 시골 오르간 연주자였다. 심지어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은 바흐를 가리켜 "아주 나쁜 이웃"이라고까지 했다. (p15:신은 천재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았다는 역설적인 설명을 하는 부분, 이를테면 머리가 좋은 사람에게 착한 마음씨와 상냥한 성품까지 얹어 주지는 않았다고 저자가 말하는 부분이다)
요한 제바스타인 바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요한 세바스찬 바흐 맞다. (간혹 관심을 두지 않는 인물이라면 이름이 헷갈리기도 한다.) 바흐에 대해 언급했다는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이 누구인가? 바로 독일의 극작가이자 비평가라고 한다. (어느 순간 불쑥 나오는 이 인물 때문에 사전을 뒤지면 또 찾아봐야 했다.)
(중략) 미켈란젤로는 말년의 한 시에서 "나의 기쁨은 멜랑콜리"라고 썼고, 플로베르는 친구 이반 투르게네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끝없는 멜랑콜리 속에서 뒹굴고 있네." 또 "나는 너무 슬퍼서 죽어 버릴 것 같네"라고도 했다. (중략) 가우스는 30대 초반에 이렇게 썼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어." 그릴파르처가 자서전에서 가장 즐겨 쓴 말은 비참하다와 역겹다라는 말이었다. (p180:위인들 중에서 다른 어떤 인간 집단보다 조울증 환자와 우울증 환자, 괴짜들이 많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미켈란젤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그려낸 천재화가라는 점은 그나마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 플로베르는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봐리>를 쓴 프랑스 작가를 말하는건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고전 작가 가운데 가장 서구적인 작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가우스는 수학자 가우스일테고, 프란츠 그릴파르처 19세기 오스트리아의 극작가이다.
일단 <만들어진 승리자들>은 이렇게 광범위한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모르는 인물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뒤져 대강의 인물 파악이라도 하면서 읽었다.
<만들어진 승리자들>을 읽어갈수록 역사적 사실과 인물, 사건, 그리고 그들의 생애까지 그 방대한 양의 정보와 참고문헌을 자료로 제시한 저자의 역량이 대단함은 인정하게 된다. 한 인물에 대해 비교문헌과 인물에 대한 부적정 견해를 가진 정보까지 그 많은 양을 알고 정리하였는지 감탄하게 된다.
저자는 위인, 천재, 성공, 명성에 관한 연구서와 여러 역사 인물을 동시에 다룬 역사서, 전기, 기념 논문, 공연과 박물관의 자료 등 방대한 문헌을 추적하여 역사 속에 묻여 있던 사실들을 생생하게 재발견해낸다.
현대적인 화장술과 성형수술의 성공적인 수혜자 가르보와 마릴린 먼로, 에디슨보다 25년 전에 이미 발명된 전구 이야기, 자신이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믿지 않은 아메리카의 세 번째 발견자 콜럼버스, 널리 알려진 최초의 벤츠 삼륜차보다 백여 년 전에 이미 발명된 자동차의 역사, 전기 작가들도 인정한 지독한 전쟁 애호가 처칠, 주변 사람들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마치 제 돈인 양 꺼내 쓴 뻔뻔이 마르크스, 도박 빚을 갚기 위해서 밤낮으로 작품 활동에 몰입한 도스토옙스키, 독재자들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한 보르헤스 등 인간 승리의 문화사는 상식의 궤를 벗어나 독자에게 새로운 관점을 보여 준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인물들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만들어진 승리자들>은 700페이지의 아주 두꺼운 책이다. 사실 독서력이 좋은 사람들도 한번에 읽기는 좀 부담스러운 면도 있을 법하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가 참 어려웠다. 두툼한 책 두께도 부담이거니와 등장하는 인물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글을 읽는 맥을 쉽게 놓칠 수도 있다. <만들어진 승리자들>은 내가 알지 못했던 역사 속의 인물들에 대해 인간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이 진짜로 역사에 남아야 하는 인물인지, 당시의 상황에서 역사적 인물로 지지를 받았는지 등등, 시대적 배경에 대해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는 시간도 된다.
독자로서 아쉬운 부분이라면 이 많은 인물을 간략하고 일목요연한 순서로 전개를 해줬으면 얼마나 고마웠을까 싶다. A라는 인물을 이야기하면 B와 C의 인용문까지 겹쳐지는 전개는 내 경우에는 하나하나 적어보고 정리하면서 읽어야했다.
역사적으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명성은 과연 그들의 위대함에 비례한 것일까? 이는 우리가 보고싶은, 그리고 가지고 싶은 욕망에 대한 대변인의 모습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가에 표를 던지는 것 아닐까?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수많은 목적과 결론을 하나의 인물에 쏟아붓고, 그를 보통의 인간보다 한 수 위의 사람, 때론 신격화로 만들고 숭배하려는 것은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이 아닐까?
이 책에는 정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상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존재조차 모른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가 언급하는 인물에 대한 기준에 대한 반박은 나 혼자 한다. 이 책을 쓴 저자 역시 자신의 주관에 따라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언급하는 정보과 기존에 독자들이 알고 있던 사실, 그리고 기타등등에서 접하는 정보를 취합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바로 독자의 몫이다.
<만들어진 승리자들>은 인간의 욕망에 따라 어떤 역사적 결론을 내게 되는지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시각을 변화할 수 있으면 일단은 성공한 것 아닐까? 뭐.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알던 기존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반전의 충격이 있다고 해도 또다른 사실과 또 다른 모습의 인물을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느낌이다. <만들어진 승리자들>을 읽고 남는 처음 느낌이다. 저자가 내세우는 주장에 대해 반론이나, 언급된 인물에 대한 아쉬운 이야기는 그 다음이라고 하고싶다. 일단 읽어보자. 역사위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독서이고, 그 이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독서라는 점만 우선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