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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레, 살라맛 뽀
한지수 지음 / 작가정신 / 2015년 1월
평점 :
"죄송하지만, 조금만 일찍 죽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뭐 이런 개떡 같은 경우가 있을까? 이게 범인이 하는 말이 맞나? 살다 살다 이런 경우도 있을까?
저 살아남아야겠다고, 사람을 납치하고 죽여야 하는 놈이 납치당한 사람에게 조금만 일찍 죽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어설프다, 어설프다, 이렇게 어설픈 악당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게 된다.
2014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으로 당선된 <빠레, 살라맛 뽀>는 필리핀에서 벌어진 실제 납치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납치에 관한 이야기라고 끔찍하거나 불행한 이야기라고 지레짐작할 필요가 없다. 시작부터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때문에 독자는 소설을 놓을 수가 없다. 그 속에서 나오는 어설프고 어수룩한 악당들과 그들을 좌지우지하는 한 사람의 에피소드로 소설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함을 느끼게 된다.
필리핀 엔젤레스 시티에 사는 제임스 박은 가감할 것 없이 인생 자체가 구질구질한 사람이다.
태어남부터가 그렇다. 태어나고 싶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이왕 태어난 거 금 숟가락 물고 태어나지 않더라고 기본적인 것은 갖춰지게 태어날 일이지. 제임스 박은 스스로 태어나면서부터 불법체류라고 말할 만큼 구질구질한 인생이다.
어찌어찌 살아가다 보니 인생의 모든 것에 불법 체류 같다. 남의 눈치나 실컷 먹고 자란 덕에 의심이 많은 제임스 박이지만, 아는 놈한테 전 재산을 사기당하고, 결국은 쫓기듯 한국을 떠나 이 습한, 무지하게 더운 필리핀의 한 도시에서 빌어먹게 살고 있다.
구질구질한 인생에 한 줄기 빛이라도 생겨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소설 속의 이야기이다. 적어도 제임스 박에게는 그렇다.
엔젤레스 시티에서 사는 제임스 박의 인생 역시 한국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오지랖이 넓은 탓에 먹고 살기는 한다만, 여기서도 빚잔치를 하느라 맨날 그 모양 그대로 살고 있다.
어느 날 제임스 박은 눈이 뒤집힐 정도의 제안을 받는다. 청부살인 의뢰가 들어왔다. 그것도 재벌 노인을 처리해주면 거액의 돈을 받을 수 있다. 이 어이없는 상황은 엔젤레스 시티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법보다는 돈이 우선인, 법보다는 주먹이 우선인 그런 도시, 불법, 무법, 범법의 도시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빠레, 살라맛 뽀>는 영화 속에서 보게 되는 뒷골목에서 사는, 이를테면 떳떳하게 나를 드러내지도 못하면서 그 구역에서는 나름의 인정을 받는 그런 인생을 보게 된다. 독자들이 흔히 떠올리는 소설 속에서의 선행이나, 올바른 인생관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인생이라는 것이 참 치사하고, 더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때론 제임스 박이 움직이는 동선과 그의 상황이 지금 현실의 독자와 별반 다를 것 없이 비친다.
삶이라는 것에 대해 곱고 따뜻한 얘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냐만, 실상은 징그럽게 느껴지고, 지겹게 느껴지고 우라질 욕이 나오는 그럴 때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박에게는 '삶'이라는 말보다는 '생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변화도 없고, 목적도 없고, 끝도 없는, 지루한, 뜨거운 태양과 지열로 후덥지근해서 끈적거리는 그런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 제임스 박에게 숙제가 떨어졌다. 그것을 마쳐야만 카지노의 꽁짓돈을 갚을 수 있고, 이 징그러운 엔젤레스 시티를 벗어날 수 있다.
한인들을 상대로 소소한 사기를 쳐서 연명은 했지만, 이렇게 거액을 제시받은 것도, 그리고 살인을 의뢰받은 것도 처음이다.
그런데 머 어떤가. 엔젤레스 시티가 무지막지한 동네인 것을..무지막지하게 불법이 가능한 동네인 것을..가능하겠다.
한국에서 제임스 박에게 사기를 쳤던 대니가 이번에는 같은 편이 되었다. 뭐..그렇다. 살다 보니 원수 같은 놈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이 대니가 참 웃기는 인물이다. 늘어놓는 것은 거짓말뿐이고, 게다가 대범함도 없다. 머리가 잘 돌아가냐고? 독자들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마치 덤앤더머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그런 위인이다.
(하...이런 위인한테 사기를 당한 제임스 박은 뭐라고 해야 하니?)
이 두 사람이 죽여야 하는 상대는 재벌 노인이다. 어찌어찌 노인을 잘 납치 해왔다. 그리고 죽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 노인 만만치가 않다. 뛰어난 입담은 물론이거니와 운동신경, 임기응변까지 제임스 박과 대니가 절대로 넘길 수 없는 그런 위인이다. 더구나 이 멍청한 악당들에게 "빠레 살라맛 뽀(친구, 고맙네)"라고까지 말을 하는 노인이다.
이 노인...뭔가 고수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엔젤레스 시티는 피나투보 화산 폭발 이후 미군 기지가 이주하면서 유흥 단지만 남게 된,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하게 되는 생존의 도시이다.
돈만 있으면 안되는 게 없는 그곳에서 맨몸으로 살아가는, 그리고 필요에 따라 폭력도 자행하고, 불법도 가능하고, 협박도 통하는 그런 곳에서 삶을 보는 독자들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삶'이라는 말이 얼마나 고상하고 고귀한 단어로 여기게 되는지 동감하게 된다.
'삶'이라기 보다는 '생존'을 위한 그들의 여정을 들여다보면서 독자들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될 수 있으면 눈길을 주고 싶지않는 현실의 무모함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참 묘하다. 절대적으로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듯한, 또는 상황을 벗어나고자 마음조차 안 먹었을 듯한 제임스 박과 대니의 묘한 변화를 독자들은 점점 눈치를 채게 된다.
삶을 가지기 위해, 돈을 가지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두 사람에게 노인은 횡설수설한다. 그런데 그 횡설수설 속의 말들이 의미가 있다. 즉 궁하면 통한다는 것, 이루려 하지 않고 비우는 게 더 큰 성공이라는 말을 한다.
노인의 말이 듣기는 싫지만 그래도 노인의 말을 들어가면서 계획을 변경하고 수정하는 두 사람에게는 아마도 아직 잊히지 않는 인간의 진정성이 남아 있음을 보게 된다.
느닷없는 노인의 행방과, 거짓말을 일삼던 대니의 비밀 함구, 뇌물과 결탁만 해결방법으로 알던 제임스 박의 선택은 그래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래도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결정이 아닐까?
삶이 옳다, 그르다를 말할 것이 아니다.
어떤 삶이 옳다고 말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을까?
그 상황, 그 시점에 놓인 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가장 나은 방법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물론 '올바른'에 해당하는 결론은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삶의 시작이 제각각인 것처럼 수많은 삶의 결과 역시 따로따로임을 생각해본다.
물론 아직도 사람은 선함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악함에서 시작한 이들도 결국은 선함으로 가는 것이 삶 아닐까?
생존의 치열함에서도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을 <빠레, 살라맛 뽀>에서 얻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