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김태환 지음 / 밥북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귀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내 손으로 된장, 고추장, 간장을 담아보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음식의 맛을 알게 되면서 장을 내 손으로 담아보고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4계절의 열매를 효소로 만들어보고 싶다. 무심결에 만들었던 매실청이 참 맛있다. 그런 매실청이며, 유자청 등등을 내 손으로 만들어서 오랫동안 익힌 좋은 먹을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나를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그 맛있음을 나눠주고 싶다.

 

고사리며, 고추며, 우엉이며, 칡을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일도 많이 겪어보니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게 삶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등바등 살아본들 결국 나는 나일 뿐이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 그동안 힘들게 달려온 나를 위해서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

 

또 하나 나의 시골 생활에서는 햇볕이 창 가득 들어오는 방향으로 서재를 만들어보고 싶다. 몇 년의 독서를 통해서 모으게 된 나만의 재산 1,000권의 책을 나만의 서재에 차곡차곡 꽂아놓고 그 따사로운 햇볕 속에서 오랫동안 읽어보고 싶다.

 

근사한 이층집을 지을까도 생각할 때가 있지만, 고즈넉한 한지를 바른 그런 한옥이 담겨있는 집을 지어보고 싶다. 어느 방송에선가 밖의 풍경을 마치 액자에 담은 듯한 그런 창문도 내어보고 싶고, 마당에 평상을 만들고 그 위에서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 시골집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담긴 소박한 글을 하나 쓰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귀촌을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가 나의 바램이던, 시골에서 자란 남편의 바램이던 어떤 것이 먼저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우리 부부는 삶을 함께 보내면서 퍽퍽한 도시를 벗어나 보자는 생각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 땅도 알아봐야 하고, 땅을 살 종잣돈도 꾸준히 모아야 하고, 아이들의 장래도 어지간히 마무리를 해야하기에 아직까지는 귀촌에 대해 명확한 계획을 세운 것은 없다. 정보를 많이 듣고, 보고, 알아보는 것부터 하는 중이다.

 

오랜 친구가 우연히 시골 생활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시골에서 뿌리를 내리기로 하고 일사천리로 옮겨간 친구는 그곳에서 **댁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물론 친구는 가서 적응하느라 힘도 들고, 얼굴도 까맣게 탔지만, 친구가 간간이 올려주는 블로그의 소식을 보면서 자연 속에서의 그 모습이 그냥 좋다. 보기만 해도 좋다. 

 

<귀촌>이라는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도시를 떠나 귀촌하는 과정을 소설로 풀어낸 이야기라는 책소개에 끌렸다. 무조건 읽고 싶었다.

 

귀촌, 귀농에 대한 정보는 수없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알고 싶은 것은 시골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어디서 부터 어떤 것을 시작했는지가 궁금하다.

그들이 시작한 1.2.3.4의 순서가 알고 싶다.

귀농을 할 건지, 귀촌을 할 건지부터 시작해서 땅을 보러 다니는 방법에는 무엇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내가 손수 집을 지어 올릴 것인지, 아니면 집이 있는 땅을 살 것인지도 궁금하다. 공사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해서 시작해야 하는지, 어떤 점을 꼭 체크해야 할지 등의 이야기에는 귀가 쫑긋대기 마련이다.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귀촌>에서는 케이라는 남자는 시골에 집을 지을 계획을 한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케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 도시에서 너무 지쳤고, 원하지 않는 나이만 먹었다고....'

그리고 이렇게도 말한다.

'시골로 가게 되면 나는 누가 무어라고 해도 기어코 소년이 되어 살아갈 것이다....'고

 

시골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언제나 맑음이다. 어린아이의 웃음이 떠오르고 파란 하늘이 떠오르는 그런 곳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눈부시고 따뜻한 햇빛이다.

 

케이의 귀촌 여정은 절대 만만하지가 않다. 케이가 땅을 알아보러 다니고 집을 올리기 위해 도면을 그리고 견적을 뽑아내고 착공을 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독자는 케이와 똑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라는 경험이 케이에게서만 끝나면 좋으련만.

책을 읽는 동안 소심한 독자의 바램을 넌지시 비춰본다.

 

그래도 케이의 일정을 눈으로 따라가면서 많은 것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도시인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시골집이라고 하면 나무도 울창하게 우거진 곳을 찾겠지만, 케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심과 인접한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과 고요한 저수지에서 낚시라도 하는 세월을 가지고 싶겠지만,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피해야 하는 물기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업자들이 개발한 땅과 내가 발품 팔아 찾아내는 땅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게 되고, 건축 허가를 위해서 꼭 알아야 하는 부분도 미리 배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땅을 알아보는 순간부터 케이는 사람에게 치댄다. 집을 세우기 위해 밑그림을 그리는 순간부터 만나게 되는 업자들은 표현하자면 눈이 뻘게서 달려드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다들 먹고 살기 척박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인 것을.... 

 

<귀촌>은 재미있다.

귀촌에 대한 정보를 딱딱하게 풀어낸 것이 아니라. 케이라는 사람의 일상을 통해 듣는 이야기이다.

우여곡절 끝에 번듯한 내 집을 만들고, 내 손으로 손수 마당을 만들고 담을 쌓고, 그것뿐인가? 시골 삶의 필수(?)인 진돌이와의 신경전도 무척 재미있다.

마치 얼마 전 시골로 내려간 내 친구의 이야기 같다.

 

막연하게 생각할 때는 귀촌이나 귀농이나 뭐 다르겠냐고 했다. 하지만 귀농이라는 것은 정말 큰 결심과 정확한 계획이 아니면 절대 안되는 일인 것 같다. 귀농에 자신 없는 이들은 귀촌을 눈여겨보게 된다. 요즘 도심은 너무 삭막하다. 사는 것도 삭막하고 정서도 삭막하다.

오죽하면 귀촌을 계획하면서 도심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을까?

 

하지만 나는 피하는 의미로 귀촌을 택하기보다는 그동안 이 삭막한 도시에서 열심히 살아온 나를 위해 쉼의 공간을 제공하는 의미로 귀촌을 택하고 싶다.

나의 <귀촌>에도 봄의 시작을 알리는 풀 내음을 느낄 것이고, 여름의 시원한 빗줄기를 그릴 것이다. 가을에는 밤도 줍고, 작은 텃밭의 수확물도 거둬들이고, 겨울에는 군고구마 향기를 맡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귀촌>에는 바쁘게 살아왔던 나처럼 바쁘게 살아갈 나의 아이들이 잠시 와서 편히 누워 쉴 수 있는 그런 곳일 것이다.

 

좋은 이야기로 귀촌의 이야기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그런 <귀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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