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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아이
정광조 그림, 김의담 글 / 작가와비평 / 2012년 3월
평점 :
어두운 마음에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니...,
하늘은 너무도 푸르게,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의 절망과는 상관없이.
나의 좌절과는 상관없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절박함과는 상관없이.
하늘은 보석처럼 너무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절망의 끝에서 하늘을 보니. 빌어먹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이라니.
나의 인생에서도 빌어먹을..., 이라는 순간은 있었다.
살아오면서 늘 가슴속에 숨기고 싶은 나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그 '빌어먹을'이란 단어.
여자의 인생이, 엄마의 인생이, 딸의 인생이. 왜 그렇게 반복되고, 똑같고, 지지리 힘들 때가 많을까?
이 빌어먹을 여자의 인생은 언제, 어디서부터 '지지리...'라는 말머리를 달고 살게 되었을까?
<빨간 아이>는 어둡고 아픈 소설이다.
딸, 아내. 엄마라는 존재로 사는 여자가 겪는 인생의 어둠이 있고, 그것을 잊고 싶어하는 여자에게 다시 떠올리게 하는 그런 아픈 소설이다. 어느 날 누구의 딸로 태어난 딸은 세상을 배운다.
그녀에게 인생이란 꽃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움이 우선이라고 한다면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소리다. 삶이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이것을 <빨간 아이>의 시선은 똑바로 보고있다. 아름답고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인생보다는 오히려 더 지독하게 아프고, 무섭고, 외롭고, 두려운 것이 더 많은 인생을 보고있다.
일상의 평온함이 그 어떤 것보다 더 값지고 풍성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아픔의 시간 속에서 잠깐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빨간 아이>는 아마도 무의식 속에 잊고 싶었던 아픔 속에서 지금의 따스함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잠시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라고 본다.
'Her,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라는 김의담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을 때 나는 그 책의 감정을 이렇게 말했었다.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책' '여자의 이야기' 라고. 여자이면서도 정작 여자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는지 여성 독자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책이라고 말했었다.
<빨간 아이>는 그런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어쩌면 세상의 지독함을 온몸에 받기에는 남자보다 강함이 적어 보이지만, 결국, 인생을 개척하는 것은, 자식의 울타리가 되는 것은, 그리고 결국 남편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는 것은 여자 아니었던가.
'Her,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라는 책에서 작가는 평범한 주부였음을 말했다. 남편과 아이와 오손도손 살고 있고, 서른이 넘어 그동안의 오손도손을 글로 표현했다고 했다.
뭔가 나와 공유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는 동지감? 그렇게 하고 싶다는 부러움? 평범함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찾아낸 그 특별함? 그래서 김의담 작가의 책이 왠지 맛깔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잊고 싶었던 그 깊은 어둠 속의 트라우마를 어쩜 이렇게 담담하게 적어 내려가는 것일까?
예전에는 그랬다.
나름 일하지만, 때론 무능하고, 평소에 자신을 표현하기를 두려워하지만, 술 한잔에 극도의 표현력을 넘나드는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였었다. 아니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나 역시 그랬다. 늘 창작의 고뇌 속에 살던 나의 아버지 역시 말 한마디 없던 양반이 술만 들어가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곤 했다.
입버릇처럼 말했다. 난 저런 남자랑 결혼 안 해. 나의 바램대로 되었다.
그렇게 됐다. 하지만 또 다른 인생의 복병이 이곳저곳에서 나온다.
<빨간 아이>를 읽으면서 잊혔던 나의 어린 시절이 망각속에서 떠오르고, 상처를 헤짚게 된다.
왜 그럴까?
잘 지내왔나?
앞으로 내가 찾아야 하는 나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절대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마음먹던 어린아이도 어른이 되면 변할까?
자신이 받았던 상처가 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도록 발버둥을 치겠지?
그럼 내 아이는 이런 나의 아픔을 알까?
<빨간 아이>는 나의 모습이고 내 엄마의 모습이고, 어쩌면 나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으면서 아픔을 주는 삶은 살지 말아야지..., 이런 덤덤한 정답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도 치유할 수 없을 것 같던 그 상처, 결국, 자신이 찾아 보듬어줘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런가 모르겠다.
하지만 말 그대로, 나의 상처는 내가 치유해야 한다는 것.
<빨간 아이>가 그 지독한 성장통을 겪으면서, 시간의 성숙 속에서 자라면서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은, 찾으려고 한 것은 무엇인가를 독자들이 기억했으면 한다.
인생의 성장이라는 것이 어느 선을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
나이 들어서 인생의 성장이 멈출 수도 있고, 나이 들어서 새로운 인생의 스타트를 끊을 수 있다.
결국, 나를 키우는 것은 '나'라는 것.
<빨간 아이>의 '문희'와 그녀의 '엄마'는 나를 키우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책에, 다소 어두운 표지에, 그리고 강렬한 색채의 이야기에 진한 커피를 연거푸 마시게 한다.
진하면서 씁쓸한, 아련하면서 안타까운, 그리고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전해지는 '문희'의 성장에 눈물이 고이는 미소를 짓게 한다.
마치 나를 보는 듯해서.
마치 이 땅의 딸들을 보는 듯해서.
마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우리 여자를 보는 듯해서.
해당 서평은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