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 빈처 올 에이지 클래식
현진건 지음 / 보물창고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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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감과 러브레터'란 소설로 유명한 현진건은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라고 일컫습니다. 사실주의를 글 속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실주의에 충실한 표현으로 획기적인 소설의 한 획을 긋고 있습니다. 개인의 성향을 그려낸다거나, 시민계급의 자아의식을 표출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현진건의 작품 10편을 모아 <운수 좋은 날 빈처>로 청소년이 읽기 쉽게 다시 나왔습니다.

현진건의 단편소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가 배경입니다. 자유를 꿈꾸는 의식의 발전을 하는 동시에 나라를 잃고 주권을 빼앗기는 속이 비어버린 껍질만 조선인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시대의 암울함과 그 속에 사는 삶의 암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시대의 변화속에 서서히 나타나는 개인주의와 자유연애 평등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현진건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내포된 소설이 '빈처'입니다. 1인칭 주인공 나를 통해 독서와 습작을 통해 작가로 거듭나고 싶은 주인공의 심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나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가난이 아내에게 큰 짐이 되지만 그래도 물질보다는 부부간의 정이 더 돈독함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내면에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질을 무시할 수 없다는 감정을 보이고 있어 예술인과 생활인과의 갈등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은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슬픔을 알기 때문에 움직여보고 싶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대의 가장, 남성들의 울분이 결국 술로 세월을 보내는 자괴감에 빠지게 합니다.

당시 백성의 삶을 표현했고, 조선의 삶을 표현한 작품이 '운수 좋은 날'입니다. 지식인은 나라를 빼앗겼다고 술을 마시고 자괴감이 빠지고 있지만 그 지식마저 없는 백성은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갑니다. 인력거를 끌고 살아가던 김천지는 웬일로 아침부터 손님이 줄을 잇습니다. 너무나 술술 풀리던 하루를 잘 마무리하면 좋았으련만 아파 누워있는 아내를 떠올리면서도 술 한 잔 걸치고 그 술 한 잔이 두 잔이 됩니다. 술주정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 아내가 좋아하는 설렁탕을 사가지만 아내는 이미 주검이 되었습니다.

 

'희생화'와 'B 사감과 레브 레터' '까막잡기'는 자유연애에 대한 작품입니다. 사랑하는 남녀는 자유연애를 시도하지만 오래된 관습에는 지고 맙니다. 남자는 정해진 운명대로 움직이고 남은 여자는 죽음을 맞이하는 다소 신파적인 소설입니다. 자유연애와 개인주의를 내세우고 싶었던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이 '희생화'는 상당한 동감을 얻어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유연애를 꿈꾸지만, 자신의 감정조차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이상 행동을 하는 B 사감의 이야기는 섬뜩하기도 한 소설입니다. 자유연애와 정해진 관습,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갈등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까막잡기'는 지금으로 말하면 꽃미남 상춘의 부탁에 억지로 음악회에 끌려간 추남 학수의 이야기입니다. 자신 있는 외모 때문에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고 추파를 던지고 싶은 상춘과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아름다움만을 내세우는 여자들을 혐오하는 학수의 이야기입니다.

미의 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참 고민스러운 부분입니다.

 

'사립정신병원장'은 물질의 빈곤이 사람의 정신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시대적 상황으로 살기 어려운 주인공은 정신병 걸린 부잣집 아들을 돌보게 됩니다.

'불'은 시집와서 온갖 궂은일을 하고 남편에게 성적으로 억압당하는 한 어린 며느리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며느리를 들여 알콩달콩 살아가는 인생보다는 공짜로 밥 먹여 주니까 온갖 궂은 일은 다 해야 하는 어린 소녀가 표현되고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자라지 못한 소녀는 그저 시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남편이 하라는 대로 구박받고, 성적 억압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남편에게 대항하는 방법이 바로 불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생활상을 반영한 '고향'이라든지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심리를 표현한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운수 좋은 날 빈처>는 인간의 양면성을, 삶의 양면성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부유하고, 많이 배우고, 계급의 상위권에 있는 자들과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지배를 받는 자들의 비교를 통해 양면의 삶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대가 변한 지금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지금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지만 설사 목표를 향해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비교 대상이 있고, 또 다른 동경의  대상이 있습니다.

또한, 삶이라는 것은 반전을 거듭하기도 합니다. 죽음 앞에서 삶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반전과 나의 편안함을 위해 죽음을 재촉하는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가족 앞에서 나의 달콤한 일탈이 더 우선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운수 좋은 날 빈처>를 교과서로 처음 접했던 학창 시절에는 그저 어렵게만 느껴지고, 매끄럽지 못한 표현기법 때문에 어렵게 읽었던 기억이 남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눈으로 이 작품을 읽어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만 가지의 감정에 대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됩니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은 어느 하나를 꼭 짚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수백만 가지의 감정을 가지고,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하고 표현하고 숨기고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운수 좋은 날 빈처>를 지금 이 시대에 읽어보더라도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암울한 시대에 살았던 삶에 대해 공감할 수 있습니다. 장면의 세세한 표현을 읽고 그것을 떠올리면서 당시의 상황을 눈앞에 상상하며 책을 읽었으면 합니다.

내가 현진건이 되어 시대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내가 주인공이 되어 인생의 흐름 위에 서보는 독서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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