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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관 안을 둘러보았다. 새벽에 비가 그쳤지만, 아직 비에젖은 숲 냄새가 가득했다. 약간 눅눅한 바닥 위로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질서 없이 놓여 있었다. 서너 명의 여자들이 입구 근처의 테이블 위에 바구니를 올려둔 채 회관에 들르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던 중이었다. - P152

"갑작스럽겠지만,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왔어. 리더와 합의된 사항이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야. 마을 회의에서 다시 자세히 설명하지."
대니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라는 어제 얘기한 것처럼, 작물 재배 일을 맡게 될 거다. 오늘부터 일을 배우도록." - P153

"나오미라고 했지. 너는 다른 일을 하게 될 거다. 마침 너랑 짝지어줄 만한 딱 좋은 아이가 있다. 미리 와 있으라고 했는데…왜 이렇게 늦었지? 하루, 이쪽으로 와라." - P153

하루는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가 역력했지만 대니때문에 티를 덜 내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대니가 다른 여자들에게 가버리자 하루와 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하루는 기분 상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첫 만남부터 나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또래 아이는 오랜만이어서 당혹스러웠다.
"왜 꾸물거리는 거야? 빨리 따라와." - P154

"여긴 학교와 도서관이야. 열여섯 살이 안 된 아이들은 사흘에 한 번씩 수업을 들어야 해. 그날은 각자의 임무가 면제되니까,
제때 참석하는 게 좋아. 수업을 듣지 않고 놀러가면 다른 일을 추가로 더 해야 해."
"그 임무라는 건, 아까 대니가 말한∙∙∙∙∙∙ 숲을 정찰하는 일이야?"
"그것 말고도 할 일은 많아. 지금 다 설명해줄 순 없어." - P155

하루는 어떤 사람들의 이름은 알려주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넘어갔다. 건물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성의가없었다. 조금이라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면 쏟아지는 정보들을 머릿속에 집어넣기 쉬웠겠지만, 하루는 정말로 마지못해 하는 것 같았다.  - P156

"너 말이야. 도대체 대니를 어떻게 구워삶았어?"
(중략).
"정찰은 중요한 일이야. 기밀을 다룬다고 아무한테나 시킬 일이 아니야.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너 같은 외부인에게 이걸 맡기는데?" - P156

 나는 하루를 마주보다가 약간 체념한 기분으로 말했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난 대니를 구워삶은 게 아니야. 오히려 고문을 당했으면 당했지."
"거짓말하지 마. 대니가 왜 널 고문해?" - P157

"아마라랑 넌 어떻게 여길 찾았어? 그전에는 어디에 있었는데?"
(중략).
"꼭 그렇지는 않아. 진짜 기밀이야. 어른들 몇 명에게만 말해주기로 했어. 우리가 바깥 어디에서 이 마을에 대한 정보를 얻었는지, 어떻게 찾아왔는지 알고 싶어하더라고." - P158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나무들을 베어내고 이런 땅을 만든 걸까. 한쪽에는 실내 재배를 하는 플라스틱 하우스들이 모여 있었다. 토란과 고구마, 바나나, 율무, 얌, 허브가 재배되고 있었다.
더스트 폴 이후로, 돔 바깥에서 식물들이 그렇게 잘 자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그 풍경은 마치 자료 사진이나 오래된 풍경화를 보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않았다. - P159

"전부 레이첼이 온실에서 만들었어. 온실에서 가져온 식물들은 더스트가 있는 바깥에서도 잘 자라거든."
"만들었다고? 이 식물들을 모두?"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 나도 궁금해. 우리 중엔 레이첼의 얼굴을 본 사람도 거의 없어. 나도 숲 정찰을 하다가 몇 번 온실유리 너머로 마주쳤던 게 다야. 레이첼은 언제나 온실 안에서실험을 해. 그것 말고는 아는 게 없지. 그냥 레이첼이 이 모든 걸만들었다는 지수 씨의 말을 믿을 수밖에." - P160

"그럼 여긴 끔찍한 영양 캡슐이 필요 없는 거야?"
내가 묻자, 하루가 키득 웃었다.
"우리도 주로 영양 캡슐을 먹어. 게다가 향신료나 기름 같은건 구하기도 힘들어. 여기서 모든 식재료를 다 만들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점점 작물 수확량이 늘고 있어 어른들은 텃밭의 규모를 늘리려고 해. 온실 옆 연구소도 지금은 다 망가졌지만 고쳐서 재배실로 쓰려는 것 같고, 그러면 나중에는 영양 캡슐을 그만 먹어도 될지도 몰라." - P161

하루와 나는 일주일에 네 번 숲을 정찰했다. 하루는 정찰이 마을의 기밀을 다루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했지만, 내 생각에는 그냥 심부름꾼의 일에 가까웠다. - P162

드론이 할 수 없는 임무들도 있었는데, 주로 숲을 돌아다니면서 식물들의 변화를 관찰하는 일이 그랬다. 하루는 종종 지수 씨에게 전달받았다는 체크리스트를 가져왔다. 숲의 특정한 지역에지표 역할을 하는 나무들이 있다고 했다. - P162

정찰을 하지 않는 날에는 사람들에게 분해제를 나누어주는일을 도왔다. 프림 빌리지에 처음 온 날 야닌이 내게 주었던 그 음료가 바로 체내로 들어온 더스트를 분해하는 약이었다. - P163

 분해제는 이 마을을 유지하는 마법 중 하나로, 어른들 중 극소수만이 그 제조법을 알고 있으며 바깥으로 유출하는 것은 당연히 금기 사항이었다. - P163

마을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모두 볼 일은 의외로 흔치 않았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마을 회의가 공식적인 일정의 전부였고 그밖에는 수시로 모여 각자의 일을 하는 정도였다. - P164

사흘에 한 번씩은 학교에 나갔다. 아마라는 열여섯 살이 넘었으므로 마음대로 해도 됐지만, 텃밭 일을 하는 것보단 수업을 듣는 게 좋다며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 P164

하루는 수업을 듣고 나면 늘 투덜거렸다.
"세상이 망해가는데, 어른들은 항상 쓸데없는 걸 우리한테 가르치려고 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왜 망해가는 세상에서 어른들은 굳이 학교 같은 것을 만든걸까 생각해보았다. - P165

지수 씨를 처음으로 가까이서 만난 것도 학교 수업 때였다. 아마라는 어른들과 같이 재배일을 하면서 리더인 지수 씨를 가끔 만났다고 이야기해주었지만, 나는 두 달이 다 지나도록 그를 본 적이 없었다. - P165

"그런데 이 드론들은 무기가 없네요?"
"이건 비살상용이거든. 지하 창고에는 살상용 로봇도 많이 쌓여 있지."
그렇게 말하는 지수 씨의 표정에서 나는 당당함과 씁쓸함을동시에 보았다. 그런 모순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관심이 생겼다. - P166

사람들은 모두 리더인 그를 ‘지수 씨‘라고 불렀다. 아이들에게듣기로는, 같은 한국 출신인 하루가 지수 씨를 그렇게 부른 이후로 유행처럼 퍼졌다고 했다. - P166

나는 더스트 폴이 터진 직후에 아버지를 따라 지하 대피소로 향했던 일과, 어느 날 갑자기 랑카위 섬의 연구소로 수송당했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연구소로 끌려갈 뻔한 내성종 아이들은 많았지만 그곳에서 탈출한 사람은 처음 본다면서, 아이들은 특히 내 탈출기를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여가며 들었다. - P167

나는 하루와 정찰하는 일을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하루도 그런 티는 안 냈지만, 점차 나를 편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 P168

아마라는 잠들기 전에 가끔 나에게 속삭였다.
"나오미, 우리 죽어도 여기서 죽자. 여길 떠나지 말자."
나는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만 하는 날을 자주 상상했지만, 아마라를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 P168

"나오미, 저길 좀 봐. 저 나무 위에."
(중략).
며칠 전 이곳을 지나갈 때까지만 해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하루는 나를 보며 말했다.
"대니가 숲에서 열매를 발견하면 가져오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저렇게 높은 곳에 매달린 열매를 직접 따 오라는 뜻인지는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하루는 열의가 넘쳐 보였다. - P169

"아무튼...... 난 반대야. 너무 높잖아."
하루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러면 혼자서 열매를 따겠다고했다. 계속 말렸지만 도저히 들을 기세가 아니었다. - P170

순식간에 하루는 추락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하루에게 달려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천만다행으로 하루는 단단한 땅이 아니라 푹신하게 쌓아둔 낙엽 위에 떨어졌다. - P170

대니는 하루가 다친 이유를 듣더니 아주 화를 냈다.
"이 마을에는 의사가 없다. 너는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멍청한짓을 한 거냐?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면서 무사하리라 생각하다니. 이건 네 잘못이다."
하루는 대니가 걱정하는 기색도 없이 그렇게 말해서 더욱 화가 났다. - P171

"대니도 참, 평소에는 제일 대장인 것처럼 굴면서 정작 어른스럽지 못할 때가 있단 말이야. 하루가 그렇게 무모한 일을 한 것도 결국 다 대니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 때문인데."
그러더니 아마라는 나에게 말했다.
"나오미, 네가 가서 하루를 좀 돌봐주는 게 어때?"
나는 마지못해 아마라의 제안을 수락했다. - P171

하루와 대니가 사는 집은 자그마한 거실에 방 두 개와 화장실이 딸린 통나무집이었다. (중략).
"저 방은 대니 방이야. 다른 사람들은 절대 못 들어오게 하지그림과 미술 도구들로 꽉 차서 대니는 거실 침대를 써. 나한테 화낸 이후로는 자기 방구석에 몸을 구겨넣고 자는 것 같지만." - P172

"열매는 어떻게 됐어?"
"네가 딴 건 완전히 엉망이 됐고, 정찰 드론들이 올라가서 다른 열매를 따 왔어. 혹시나 해서 속을 갈라봤는데 다 썩어 있었대. 하지만 최근에 새로 열린 건 확실해. 예전엔 없던 현상이라 어른들이 분석을 해볼 거라고 했어." - P173

하루는 그애답지않게 약간 풀죽은 태도로 대답했다.
"쿠알라룸푸르에 살 때, 뮤지컬을 하고 싶었거든. 극장에 맨날찾아가다 대니를 알게 됐지. 그땐 무서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 P174

극장의 스태프들로부터 대니의 개인 회화 전시가 곧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쭈뼛거리며 가볼까 고민하던 중에 더스트 폴이 터졌다고 했다. 공연도, 전시회도 순식간에 모두 취소되었다.
활기차던 쿠알라룸푸르의 거리는 떠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로가득하다가, 다시 정적이 그 자리를 채웠다. - P174

"극장은 수색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고 다들 모인 거였는데,
오래 버티진 못했어. 군인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고 했거든.
그때 대니의 여동생도 잡혀갔대. 패닉 상태에 빠져서 굳어 있는나를 대니가 붙잡아서 밖으로 도망쳤지. 우린 쿠알라룸푸르 밖으로 나와서 또다른 내성종들을 만났어." - P175

나는 하루의 방에 방치되어 있던 찢어진 바지와 티셔츠를 바늘로 꿰매어주었다. 하루는 손재주가 없어서 바느질은 전혀 할줄 모른다고 했다. 하긴 더스트 폴이 터지기 전에는 다들 간단한 수선도 로봇에게 맡겼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 P176

"대니는 자기 그림을 남들이 보면 엄청 화를 내 그림을 볼 수있는 건 나뿐이야."
대니가 회관 앞에서 무언가 종이에 스케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일 때문에 약도 같은 걸 그리는 줄 알았는데, 혹시 그림이었을까. 하루는 대니가 폐허에서 구해 온 미술 재료들로 마을의 풍경이나 사람들의 얼굴을 종종 그린다고 했다. - P177

혼자 다니기 시작하면서, 예전에는 잘 가지 않았던 마을의 위쪽 언덕에 관심이 생겼다. 언덕에는 레이첼의 온실이 있었고, 나는 온실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 하루는 그 근처에 갔다간무시무시한 식물들이 내뿜는 독에 중독되어 죽을 수도 있다는어른들의 말을 믿어서 온실을 무서워했다. - P178

혼자 다니기 시작한 지 이 주쯤 지났을 때 나는 온실이 올려다보이는 언덕으로 갔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버려진 드론이었는데, 하루와 내가 종종 숲에서 줍던 것과는 생긴 모습이 달랐다.
살짝 건드렸더니 전원이 들어오는 것 같다가 다시 픽 하고 꺼졌다.  - P178

하루에게 드론을 가져갔더니 곧장 별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보면 삼각형 두 개가 그려져 있잖아. 그게 있으면 우리마을 소유의 드론이래. 고장난 게 아니라면 그냥 있던 그 자리에 다시 놔둬도 돼. 원래 정찰 드론들은 내버려두면 알아서 태양광으로 충전을 하니까." - P179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온실에 이렇게나 가까이 오다니더 가까이 접근했다간 혼이 날지도 몰랐다. 나는 뒷걸음질로 물러나다가 발에 무언가 부딪히는 것을 느꼈다. 자그마한 기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강아지 모양의 장난감 로봇을 주워들었다.
"너는 왜 여기 있니?"
어차피 로봇인데다 실수라고는 해도, 강아지를 발로 찼다는게 좀 미안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강아지는 다리를 버둥거리며 어디론가 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 P180

고개를 돌린 지수 씨가 로봇 강아지와 나, 내 손에 들린 드론을 차례로 보고는 다시 나를 보았다.
"안녕, 나오미. 여기서 보는 건 처음이네."
나는 인사하려다가 낯선 모습을 한 지수 씨를 보고 말문이 막혀 입을 벙긋거렸다. 지수 씨는 키득 웃었다.
"그 드론, 안으로 좀 가져와줄래?"
오두막 안으로 한 걸음씩 들어서자 짙은 기름 냄새가 났다. - P181

나는 지수 씨의 로봇 강아지에 대해서도, 다리를 다친 강아지를 내가 간단히 고쳐주었다는 것도, 지수 씨가 그 솜씨를 칭찬해주었다는 것도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게다가 지수 씨가 원한다면 정찰을 다니다 얼마든지 오두막에 놀러와도 좋다고, 대신 작업용 기계 부품들을 함부로 건드리면 손이 잘릴 수 있다며 경고했다는 것까지 말해주었다. - P182

"그건 네가 어린애라서 그래. 지수 씨는 어른들을 대하는 것과아이들을 대하는 게 달라. 대니랑은 자주 싸우는데다가, 특히 온실 설비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거나 하면 아주 날카롭게 굴지 대니 말로는, 리더는 좀처럼 속을 알 수가 없다. 무던하고 친절한 사람인 것 같다가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지나칠 정도로 냉정하다는 거야." - P182

내가 오두막에 가면 지수 씨는 대개 작업중이었는데, 의자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을 때도 많았다. 무엇을 하건 나를 발견하면 손을 흔들어주었다. 지수 씨는 나에게 마을 사람들의 안부를 묻거나, 폐허에서 가져온 부품으로 조립한 기계를 보여주거나, 재미있는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하고는 금속 표면을 줄로 다듬으면서 내가 지난 일주일 동안 했던 사소한 일들을 들었다. - P184

"온실 안은 더스트 농도가 아주 높아. 웬만한 내성으로도 버티기 힘들 만큼 유출되지 않도록 조심하고는 있는데………… 모르지. 안 들어가는 게 상책이야."
나는 무심코 내게는 완전 내성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P185

지수 씨는 종종 사람들과 그룹을 꾸려서 인근 폐허로 다녀왔다. 마을을 돌아다니는 정찰 드론들은 전부 폐허에서 가져온 고장난 로봇이나 폐기계를 개조한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건 떠돌이들이 이미 건져가고 폐품만 남은 곳을 목적지로 삼지. 프럼 빌리지에 대해 누군가 눈치채면 곤란하니까. 그런 폐허를 걷다보면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들어. 타인의 무덤을 파헤쳐서 이곳의 삶을 쌓아올리고 있다는 생각. 더스트 폴 이후로 세상은 예전보다도 더 모순으로 가득해진 것 같아." - P186

아침부터 마을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새벽에 정찰 드론이 숲근처에서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다고 했다. 다행히도 안개탄이 제때 작동해서 그 외부인은 다시 떠났지만, 애초에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든 이런 곳에 누군가가 와서 살펴보고갔다는 게 꺼림칙했다. - P188

당장 무슨일이 생긴 건 아니었지만 마을 가까운 곳까지 침입자가 생기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전투 무기들을 지금부터 배치해두어야하는 것은 아닌지 어른들이 논의하는 것을 들었고, 그래서 나도 불안해지고 말았다. - P189

온실로 가까이 갔다가 지수 씨와 레이첼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은 적도 있었다. 누군가 들어서는 안 될 대화라면 그렇게 대놓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어쩐지 엿듣는다는 느낌을주는 이야기였다. 두 사람은 식용작물들에 대한 학술적인 토론을 열띠게 벌이다가, 온도 유지 장치와 냉각기를 점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어색해지곤했다. 나는 둘 사이에 어떤 불균형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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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하고 다시 읽으려 하지만 성공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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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언어자극은 독이 된다


한편 <어휘인식 실험> 결과에서 이상한 점이 눈에 띤다. 엄마가 사용하는단어와 문장 수가 많을수록 아이의 표현어휘지수와 단어인식 속도가 빠르다는 결과는 그렇다 치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월령의 아이 중 남자아이들 모두 여자아이들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는 것이 의아하다. - P47

실제로도 딸은 아들보다 언어발달이 빠르다. 말도 빨리 시작하고 한글도 일찍 떼며 말도 잘한다. - P47

남자는 대개 좌뇌와 우뇌를 따로 쓰는 경향이 있지만, 여자는 남자의 뇌보다 뇌량이 두껍고 넓어 좌뇌와 우뇌를 함께 쓰는 경향이 있다. - P47

0~3세 시기는 좌뇌와 우뇌가 활발히 분화되는 때이다. 여자아이는 좌뇌와 우뇌를 함께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 뇌의 발달상황에 별다른 영향을받지 않는다. 측두엽의 발달이 또래 남자아이보다 빠른 언어습득을 가능케 한다. - P48

남자아이를 둔 엄마가 기억해야 할 것은, 부모가 제공하는 언어환경이 아이의 언어능력을 좌우한다고 해서 말문 트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P48

선행학습으로 한글 떼기를 하는 엄마들도 많은데, 남자아이를 여자아이와 똑같은 기준으로 생각해 일찍 시작하다간 학습 자체에 반감을 갖게할 수 있다. 그림책을 읽다가 저절로 한글을 뗀 게 아니라면, 초등학교 입학 6개월 전이나 1년 전에 천천히 시작해도 된다. - P49

초독서증

 두뇌가 미성숙한 아이에게 텍스트를 과잉주입한 결과, 의미는 전혀 모르면서 기계적으로 문자를 암기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나이에 비해 매우 어려운 말을 쓰거나문어체로 말하는 등 겉보기에는 영재처럼 보이지만,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조차 모르고 사용하며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 P49

유사자폐

유사자폐는 선천적인 자폐와 달리 방임,
스트레스, 과도한 학습 등 부모의 양육태도로 인해 서서히 증세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말이 늦고 주변 사람에게 무심하며 낯선 것을 두려워하는 정도였다가 점차어린이집, 유치원 등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질 만큼 소통이 힘들어진다. - P49

뇌과학자로 유명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서유헌 교수는 두뇌가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과도한 독서를 시키는 것은 뇌 신경회로에 과부하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전선에 과도한 전류를 흘려보냈을 때 불이 나는 것처럼아이의 정상적인 두뇌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 P50

그림책 읽기,
학습보다 아이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아이의 언어발달을 위해 많은 엄마들이 그림책을 읽어준다. 하지만 무조건 읽기만 한다고 그림책이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그림책을 읽을 때에도 요령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아이의 언어발달을 돕는 그림책읽기의 핵심을 알아보자 - P52

그림책, 교육도구가 아니다!

엄마들 역시 그림책 읽기의 효과는 잘 알고 있다. 그림책을 읽으면 아이의 상상력이 커지면서 창의력을 기르는 밑거름이 된다. 다양한 색감과 화려한 필치의그림은 아이의 예술적 감성을 길러주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 P52

이처럼 그림책 읽기의 효과는 무수히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그림책 읽어주기를 의무처럼 느끼기도 한다. 처음에는 한 문장 한 문장 정성껏 읽어주었을지 모른다. - P53

그림책 읽기, 엄마가 힘들다면 효과는 반감!

(중략).
그림책의 장점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다. 그 순간 그림책 읽기가 너무 힘들고 지친다면, 나중으로 미루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림책 읽기는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 행복한 공유여야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 P53

부모와 아이가 행복해지는 그림책 읽기 요령

부모와 아이가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그림책 읽기 요령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림책을 읽을 때는 가장 편안하고 안락감이 느껴지는 시간이 좋다.
(중략).
둘째, 아빠도 그림책 읽기에 적극 참여하라. 보통 많은 아빠들이 그림책 읽기를 엄마들에게 미루는데, 아빠 역시 아이와 소통과 교감을 나눠야 하는 것이당연하다. (중략).
셋째, 그림책 읽기에 진도는 없다. 한 권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다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내자. (중략).
넷째, 그림책을 읽는 중간에 아이가 하고픈 말을 끊지 않는다. 그림책을 읽는 시간은 아이와 소통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시간이다. 아이의 말이 틀렸다 - P55

국어력이
각광받는
시대가
왔다


국어, 기본 점수는 따놓은 과목?

2013년 5월, 일부 대학이 학과 통폐합 문제로 시끄러웠다. 학생들의 지망윤이나 취업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비인기학과를 유사학과와 통합하거나 아예 폐지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 P58

우리말을 모국어로 쓰면서 고등학교까지 정규교육을 마친 학생과 모국어를 따로 갖고 있으면서 제2언어로 한국어를 접하는 유학생들 간에는 당연히 커리큘럼 구성이나 학문적 깊이가 차이 나게 마련이다. - P59

언어생활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우리는 자국의 언어인 국어를 배우는 일을 당연시하면서도 ‘기본‘이라는 이유로 소홀히 취급할 때가있다. 입시 공부를 할 때 ‘국수‘ 위주로 한다지만, 공부 시간의 비중을 놓고 본다면 국어는 영어와 수학에 비해 덜 공부한다. - P59

이것은 국어가 쉬워서가 아닌 우리말인 한글이 쉬운 탓에 빚어진 오해이다.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0.2%에 불과할 만큼 문해율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1위이다. - P60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문으로서의 국어는 만만치 않다. 국어교육은 기본적으로 한글을 읽고 쓰는 것과 어휘력을 기본으로 한 문장의 이해에서 시작된다. 웬만큼 단어를 알고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으면, 학습능력평가에서 충분히 평균 점수를 얻을 수 있다.  - P60

공부 잘하는 비결? 언어능력에 달려 있다

2013년 봄, 교육계에는 ‘융합(Steam) 인재교육‘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통합 교과서 및 스토리텔링 수학의 도입, 서술형과 논술형 평가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 P61

교육부에서는 단편적인 암기 위주의 선택형, 단답형, 결과중심 평가가아니라 서술형, 논술형, 과정중심 평가로 개선하는 것이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창의적인 교수법과 사고력을 길러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 P61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서술형, 논술형 평가는조금씩 확대될 전망이다. 지금은 30~45%의 비중이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술형 논술형 평가가 일찍 도입된 경기도 내 일부 학교는 100% 시행 중에 있다. - P62

국어력이 학습능력이라면 우리말을 잘 활용하는, 언어능력이 뛰어난아이는 정말 학업성적이 우수할까? (중략). 평가 결과, 평소 학업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은 상황 해석력과 어휘 수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다. 상황 해석력의 평균 점수는 2.81이며, 성적이 90점 이상인 경우 3.85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했지만, 성적이 70점 이하로 내려가자 상황 해석력 점수 또한 1.28로 떨어졌다. - P63

규칙성과 유연성이 높은 언어, 한국어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서 학습능력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 P64

7개의 숫자 기억하기를 실패한 미국인과 성공한 한국인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7개의 숫자를 기억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중략). 기억용량은 개인에 따라 차이 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매직넘버 7에서 ±2개 정도로 본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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