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무의 방랑벽
(전략). 장강은 그대로 한 바다였다. 그 바다에 저녁놀 빛이 포근히 와 닿는다. - P75
(전략). 뱃사공은 편의에 따라 그 지역 고기잡이로 매일매일품삯을 주고 사서 부렸다. 그는 주의 깊게 산과 언덕을살피다가 작은 붓으로 뭔가를 열심히 적는가 하면, 때로는 배를 언덕에 붙이고 둑으로 기어 올라가 둘레를 살펴보고는 급히 필기장에 그림을 그려가며 써넣기도 했다. - P76
손무는 본래 제나라 전田씨 집안 사람으로, 전씨 집안은 명문세가였다. - P76
같은 집안사람들끼리 오나라로 옮겨와 조정의 허가를 받고 질퍽한 숲 지대를 얻어 산기슭에 마을을 세우고 도랑을 내어 10년 동안 열심히 땀 흘려 훌륭한 전답을 가꾸어 손가둔(손씨 마을)이라고 불렀다. - P77
때는 춘추전국시대. 그 시절의 중국 정세는 참으로 복잡하였다. - P77
깊은 밤, 손무는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이 남는 사건은 제나라에서 험준하기로 이름난 천주산에서의 일이었다. - P78
당시는 2백 년 동안이나 전쟁이 계속된 관계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첩자들이 많았다. 유언비어를 퍼뜨려 민심을 소란하게 만드는 것도 첩자들의 소행이었고, 군사들의 동태를 염탐하여 유리한 전투를 벌이는 것도 첩자들의 소행이았다. - P80
손무가 노인장에게 손을 들어 숲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러자 노인은 그쪽을 눈여겨 바라보다가 머리를 돌렸다. "저건 여자가 아닌가. 여자가 무슨 첩자이겠나? 바구니를 끼고 있는 것을 보니, 나물 캐러 왔나 보군." 노인장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으나 손무는 강력히 부인하였다. "아닙니다. 분명 첩자입니다. 가을철에 무슨 나물을 캡니까? 나물 바구니는 위장일 것입니다." - P81
여인이 아주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 초나라에서 온 첩자지?" 한마디로 단언하듯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여인은 초나라 말씨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P82
그러나 손무는 그런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와락 덤벼들어 여인의 가슴 속에 숨겨두었던 천주산의 지형도를 끄집어내었다. "이처럼 증거가 뚜렷한데도 첩자가 아니라고?" - P82
"그런 게 아닐 것입니다. 당신을 첩자로 보낸 사람은오사가 아니라, 그의 둘째 아들 오자서라는 사람이죠?" - P84
손무는 남모를 감탄을 했다. "초나라에 돌아가거든 오자서한테 이르시오. 제나라에는 손무라는 천리안 거사가 있어서, 첩자 따위는 도저히 발을 붙일 수가 없더라고 말이오. 이 지도는 내가 보관할 터이니 어서 돌아가시오." 손무는 첩자를 역이용하여 오자서라는 친구의 간담을서늘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그런 말을 일러 보냈다. - P84
"현재까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첩자는 남자만 써왔는데 여자를 첩자로 이용한 것은 초나라가 처음일 것이고 획기적인 수법이네요. 이런 새로운 수법을 창안해 낸다는 것은 지혜로운 젊은이의 머리에서 나왔을 거라 생각하여 오자서일 것이라고 단언을 내렸던 것이 들어맞았네요." - P85
손무는 십 년이 지났건만 그때의 일이 엊그제 일처럼생생히 살아났다. 지난 한 달 동안 장강을 오르내리며 천문산을 드나들며 제나라 천주산과 연계시켜 격전장을 살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 P86
손무는 여러 조각의 베를 한데 매어 만든 필기첩에 기록해 온 지도를 큰 비단에 옮겨 그리고, 군사와 병선의배치도를 적어놓고 다시 그 이동상황을 그렸다. 전쟁이일어나게 된 원인과 경과, 그리고 결과까지 새겨 넣고 평하는 말도 덧붙여두었다. - P88
손무는 자신이 전쟁할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다만 전쟁사를 연구하는 것을 좋아할 따름이었다. - P88
손무의 병법 연구 과제는, 전쟁 당시의 주변국 상황과 기후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싸움이 맞닥뜨리게 되는 곳의 지형과 지세에 따라 싸우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즉 <상황 판단이 승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 P90
3년을 날지 않는 대붕
이야기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춘추시대 초楚나라는호북과 호남과 안휘등 여러 성을 차지하고있었다. 즉 양자강 유역을 거의 전부 차지하여 막대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 P92
"왕께서 정사를 돌보지 않으니 장차 초나라의 운명이걱정이구려." 대신들이 초장왕에게 조정에 나올 것을 날마다 상주하였다. 이에 초장왕은 일일이 물리치기가 귀찮아 아예 조문에 표찰을 써서 걸어두었다. "앞으로 과인에게 상주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목을 칠 것이다." - P93
그러던 어느 날 오거라는 사람이 술판에 나타났다. (중략). "그렇다면 직간하러 온 것은 아닐 테고, 허면 술을 마시러 왔는가?" - P93
"신은 술을 마시거나 직간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수수께끼를 들려드리려고 왔는데, 알아맞혀보시겠습니까?" "수수께끼라, 그것 참 재미있겠구나!" - P94
"오색영롱한 큰 새 한 마리가 초나라 언덕에 날아와 높이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새는 3년이 지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세상을 둘러보지도 않은 채 그저 앉아만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그 새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 P94
초장왕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임을 알면서도 못 알아들은 척 여전히 술타령만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대부 소종이 죽기를 작정하고 나섰다. (중략). "보다 뿐입니까. 신이 죽더라도 대왕께서 바른 마음으로 돌아오시게만 된다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소종이 왕의 잘못을 지적하자 장왕이 벌떡 일어나 칼을 뽑았다. "좋다!" - P95
왕은 그길로 천천히 정당으로 나아가 정무를 보기시작했다. 오거와 소종을 끌어올려 나라 정사를 맡기고, 수백 명의 간신배를 벌하고, 전국에 있는 현자 수백 명을도성으로 불러들여 등용시켰다. - P95
초장왕이 3년 동안 놀자판 먹자판을 벌인 것은 신하들의 올바름과 주변의 상황을 엿보기 위한 연극이었던 것이다. - P95
초의 장왕이 진晋을 대파하고 천하의 패권을 잡은 듯한 형세였으나 10여 년 사이에 장왕과 명재상 손숙오와 오거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연달아 죽자, 초의 세력은 갑자기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 P99
"손무? 그자는 어떤 사람이냐?" 오자서는 손무라는 인물에 대해, 자기가 겪고 들은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했다. - P100
오자서가 아버지 대부 오사에게 들려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였다. "손무라는 자가 현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인奇人임에는 틀림없구나. 병법에도 밝겠구나. 나이도 너와 비슷하다니, 꼭 만나보도록 하거라. 많은 도움이 될 듯하구나. 장래에 큰 인물이 되려면 그런 사람들을 알아둬야 한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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