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저 자식, 무슨 기사라도 된 양 깝치기는." 쓰루오카는 선남선녀가 나간 방향을 보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식당에 남은사이다이지 가문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려 약간 혀가 꼬인 어조로갑자기 묘한 말을 꺼냈다. "잘 들어, 날 너무 무시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당신들도 잘 알잖아. 내가 그 비밀을 까발리면 어떻게 될지 정도는." - P101
4
만찬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도중에 물러간 사이다이지유코와 유코를 뒤쫓아간 다카자와 나오토가 그 후 어떻게 됐는지는 사야카도 모른다. 쓰루오카는 혼자 식당에 남아 공짜 술을 실컷 마시려는 모양이다. - P102
문밖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사야카는 놀란 나머지 뻗은 손을 뒤로 뺐다. 방금 뭐지? 여자의 비명인가? 사야카는 흘러내린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물론 답은 나오지 않는다. 사야카는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머뭇머뭇 고개를 내밀고 어두운 복도를 확인했다. "누, 누구 있어요......?" - P103
"뭔데? 무서운 일? 언니한테 말해 봐." 다정하게 말을 걸자 미사키는 그제야 이불 속에서 얼굴을 절반쯤내밀었다. 그리고 한쪽 눈만으로 사야카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 저 봤어요." 심상치 않은 말에 사야카는 침을 꿀꺽 삼켰다. 벌벌 떨며 꺼낸 말이니, 아름다운 풍경을 본 것은 아니리라. 사야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봐, 봤다니. 설마 귀신이라든가?" - P104
"빨간도깨비가 서 있었어?" "아니요. 빨간 도깨비가…………… 둥실 떠 있었어요!" 미사키는 공포에 찬 눈으로 사야카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얼굴이 새빨간 남자도깨비였어요. 두 발이 땅에서 몇십 센티 떠 있더라고요!" "공중에 떠 있었다고?" "네." "공중에 떠 있었다면 역시 귀신 아닐까?" - P105
"오두막 앞이요. 아니, 오두막이랄까, 작은 집이랄까. 창고인지도모르지만, 어쨌든 작은 건물 앞에 빨간도깨비가 둥실둥실 떠서"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미사키?!" "네" "네는 무슨 미사키, 복도를 걸어왔지?" "맞아요." "도중에 창문으로 밖을 봤고." "네." "그럼 창문 너머로 중정이 보였겠네." "네. 그런데요. 어,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이상하지. 중정에 오두막이니 창고니, 그런 건물은 없는걸." 중정은 헬기 착륙장으로 이용된다. 방해되는 건물이 있을 리 없다. 사야카는 미사키의 두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미사키, 꿈이라도 꾼 것 아니니?" - P106
사야카는 무의식중에 소리 지를 뻔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확인해 볼게. 내가 알아서 갈 테니 좀 있어 봐!" "와, 고마워요. 언니." 미사키는 순수하게 고마워하며 등을 떠밀던 손을 멈췄다. - P107
낮에 보았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중정의 풍경이 시야에 펼쳐졌다. 지금은 한밤중이라 어둡지만, 중정 여기저기에 상야 등을 켜 놓아서 결코 캄캄하지는 않다. 그런 중정에 미사키가 말한 오두막이니 창고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 P108
"저기, 오늘 밤은 언니 방에서 재워 줘요. 부탁할게요!" 미사키는 한쪽 눈을 귀엽게 찡긋하며 애원했다. 뜻밖의 부탁에 사야카는 한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휴" 하고 작게 한숨을 쉰 후 살짝 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특별히 오늘 밤만이야." "앗, 언니, 진짜요?! 와, 고마워요." 드디어 미사키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번졌다. 미사키는 통통 튀는 듯한 발걸음으로 사야카의 방에 들어갔다. - P109
3장
죽음과 폭풍우
1
갑자기 ‘쿠웅!‘ 하고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강렬한 통증이 엉덩이에서 등으로 퍼졌다. 놀라서 눈을 뜨자 정면에 본 적 있는 천장이 있었다. 어째선지 몸은 딱딱한 바닥에 누워 있었다. - P110
당연하다. 침대 하나에 서너 명이 잘 수 있을까. 안 그래도 댁의 따님은 공간을 두사람 몫이나 차지할 만큼 잠버릇이 나쁜데. 속으로 불평을 중얼거리던 사야카는 에이코의 말에서 석연치 않은 뭔가를 느꼈다. "에이코 씨? 혹시 미사키 말고 다른사람도 찾으시나요..?? 에이코는 고개를 똑바로 끄덕였다. "맞아요. 제 사촌 오빠 쓰루오카 가즈야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것같아서요. 어디로 간걸까?" - P112
식당으로 들어가자 ‘화강장‘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대부분 모여있었다. 휠체어를 탄 가나에 부인. 그 옆에는 주치의 다카자와 나오토가있었다. 에이코와 게이스케, 그리고 유코 3남매는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다. 에이코 옆에는 남편 아쓰히코가 자리 잡았다. 아쓰히코는 사랑하는 딸을 보자마자 "잘 잤니, 미사키" 하고 기쁘게 손을 들었다. 한편 미사키는 그 나이대의 소녀답게 "네, 네, 그럼요"라면서 쌀쌀맞게 대꾸했다. - P114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것보다 아까 그건 무슨 울음소리를 흉내 낸 건가요?" "내가 울음소리를 냈다고?! 난 그저 ‘굿모닝‘ 하고 인사했을 뿐이야. 혹시 귀가 안좋아?" "....." 내 귀가 아니라 당신 발음이 너무 안 좋은 거지! - P115
그러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도라쿠 스님이 갑자기 이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태풍이 시코쿠 지방으로 진로를 바꾸면서 이쪽으로 접근하는 중이랍니다. 이거, 어쩌면 오카야마를 직격할 수도 있겠는데요. 이야, 참 곤란하게 됐습니다. 후후후!" 이 스님은 뭘 기뻐하는 거지? 사야카는 무심코 고개를 갸웃했다. - P116
"어쩌면 가즈야 군은 이렇게 궂은 날씨인데도 밖에 나갔을지 몰라. 바다가 얼마나 거칠어졌는지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고. 성격상그런 어린애 같은 짓을 할 것 같지 않아?"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게이스케가 끼어들었다. "확실히 바다의상태가 어떨지 걱정되기는 하네요. 하지만 그 양반이 그렇게까지괴짜는 아닐 것 같은데..." - P116
"어쩌면 가즈야 군은 이렇게 궂은 날씨인데도 밖에 나갔을지 몰라. 바다가 얼마나 거칠어졌는지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고. 성격상 그런 어린애 같은 짓을 할 것 같지 않아?"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게이스케가 끼어들었다. "확실히 바다의 상태가 어떨지 걱정되기는 하네요. 하지만 그 양반이 그렇게까지 괴짜는 아닐 것 같은데…………… " - P116
2
아침을 다 먹은 후에도 쓰루오카 가즈야는 식당에 나타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제각각 식당을 나섰다. 쓰루오카가 없어졌는데도 다들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 와중에 마사에가 탐정 고바야카와 다카오에게 의뢰했다. "......이렇게 됐으니, 미안하지만 부탁 좀 할게." - P118
"뭐, 이런 호텔 같은 별장에 머물며 공짜 밥을 얻어먹었으니, 숙박비 대신에 무료 봉사하겠습니다. 어디부터 찾으면 좋을까요?" "그건 탐정님한테 일임할게." 마사에는 모조리 떠맡기는 태도를 보였다. - P118
이윽고 세 사람은 계단을 다 내려가서 지하에 다다랐다. 사야카는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는 미지의 공간이다. 1, 2층과는 달리 그리넓지는 않았다. 계단에서 이어지는 짧은 복도에 문이 몇 개 보였다. 제일 앞쪽 방이 쓰루오카 가즈야의 방이라는 건 마사에에게 미리 확인했다. 다카오는 망설임 없이 그 방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았다. 잠기지 않은 문은 아무 저항 없이 열렸다 - P119
다카오는 그렇게 말하며 벽 앞에 놓인 침대로 다가갔다. 혹시 누군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듯 침대 밑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이 침대는 다리가 없는 유형이라 밑에 사람이 숨을 만한 공간은 없다. 다카오는 납득한 표정으로 이불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카오의 표정이 바로 어둡게 흐려졌다. "이상한데. 어쩐지 잠자리가 너무 깨끗하지 않아?" - P120
"그런데 미사키, 우리한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거 아니야?" 탐정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이, 사야카도 그건 눈치챘다. 다카오와 사야카를 지하의 이 방으로 데려온 건 다름 아닌 미사키다. 뭔가 비밀리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사야카는 미사키의 속을 떠보기 위해 슬쩍 미끼를 던졌다. 혹시 어젯밤 봤다는 빨간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 P121
"그 빨간도깨비는 남자였구나 싶어서…………… "그야 보통 도깨비 하면 남성의 이미지지."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로 남자였다고요. 즉, 저는 그 빨간도깨비의 얼굴을 본 거죠. 생김새에 관해서는 솔직히 말해 어렴풋한 인상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엄마 이야기를 듣자 어쩐지 갑자기 기억이 났어요. 그 빨간 도깨비…………… 그 남자의 얼굴은...... 어쩌면.... 그......." - P122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미사키. 네가 본 건 남자 빨간도깨비. 즉, 얼굴이 시뻘게진 남자라는 뜻이지. 그렇다면 그건 빨간도깨비가아니라 얼굴이 피로 물든 쓰루오카였을지도 몰라. 아니, 그 시점에숨이 붙어 있었는지, 끊어졌는지도 불확실해. 어쩌면 쓰루오카는그때 이미......." - P123
"뭐라고 정확하게는 말을 못 하겠지만, 실내는 아닐 것 같아. 얼굴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을 실내에 들여놓으면 뭔가 흔적이 남을테니까. 그렇다면 바깥을 찾아봐야겠지. 일단 중정부터 살펴볼까. 뭔가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 다카오의 말에 사야카와 미사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의 방을 나서서 1층으로 돌아온 그 길로 세 사람은 중정으로 향했다. - P124
コ 모양 건물에 둘러싸인 중정은 변함없이 넓기만 하고 살풍경한 인상이었다. 헬기 착륙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부분 콘크리트로 포장해 놓았다. 어제는 희읍스름해 보인 콘크리트가 지금은 비에 젖어 회색으로 색깔이 변했다. 그 주변에 명색뿐인 화단과 관목을 배치하기는 했지만 딱히 정취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야카는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뒤지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 P125
"미사키가 본 빨간도깨비는 이쯤 떠 있었어. 그렇다면 그 이야기에 나온 오두막도 이 부근에 있었다는 뜻이야?" 다카오의 질문에 미사키는 또 자신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사야카 씨가 창문으로 중정을 확인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고?" - P126
"당최 모르겠네. 오두막이라니 그게 뭔데? 그런 게 중정에 있을리 없잖아." "하지만 미사키는 확실히 봤다고 하고, 실제로 쓰루오카 가즈야는 행방불명됐잖아요." "맞아. 그러고 보니 녀석을 찾는 중이었지. 건물 소실은 뒤로 미루자, 쓰루오카를 찾는 게 급선무야. 일단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빙돌아 볼까." - P127
그런 생각을 하며 나아가는 동안 일행은 건물 뒤편에 다다랐다. 흙바닥이 넓게 펼쳐진 거친 들판이었다. 면적으로 따지자면 중정과 비슷한 정도일까. 관리하지 않아 황폐해진 지면은 물결치듯 울룩불룩했고, 잡초가 무성했다. 하지만 버려진 듯한 이 공간에 어째선지 건물 한 채가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사야카는 우산 아래에서 무심코 손가락을 앞으로 뻗었다. "말도 안 돼. 뭐야, 저거!" - P128
"아아, 옷이 젖었네. 응?! 왜 그래요, 고바야카와씨?" 사야카는 정자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탐정의 등에 대고 말했다. "길막지 말고 빨리 들어가요." "어, 아니, 그게・・・・・・ " 다카오는 다리가 얼어붙은 것처럼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래요? 먼저 온 손님이라도 있어요?" - P129
한편 고바야카와 다카오는 한발 먼저 냉정함을 되찾은 듯했다. 바닥에 누운 쓰루오카 가즈야 곁으로 다가가 이마에 쩍 벌어진 상처가 있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셔츠 소맷자락 밑으로 드러난 손목을 잡고 맥박이 있는지 살폈다.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난 탐정에게사야카는 머뭇머뭇 물었다. "주, 죽었나요. 이 사람......?" 다카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사야카에게 반쯤 명령하듯 말했다. - P130
"주, 죽었나요, 이 사람......?" 다카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사야카에게 반쯤 명령하듯 말했다. "난 여기 있을 테니, 사야카 씨는 미사키를 데리고 건물로 돌아가. 그리고 우선 마사에 씨에게 보고해 줘. 일단 이건 마사에 씨에게 의뢰받은 일이니까. 그리고...... 그렇지, 다카자와 선생을 이리로 보내 줘." "마사에 씨에게 보고하고, 다카자와 선생님을 불러 달라는 거죠?" "응. 명심해, 의사를 보내라고 했어, 스님은 아직 안 불러도 돼." - P131
4
야노 사야카는 사이다이지 미사키와 함께 정면 현관으로 들어가서 일단 1층 거실로 뛰어들었다. - P131
"크, 큰일 났어요. 마사에 씨! 쓰루오카 씨가 발견됐어요. 그런데 그게...... 그...... 이미 죽었어요....... 건물 뒤편에 있는 정자 같은 오두막에서....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진짜예요. 고모할머니! 탐정님이 발견했어요!" 옆에서 미사키가 보충 설명을 하자 마사에의 입에서 뒤집어진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 P132
"어엇, 정말이요, 스님!" 복도에서 아쓰히코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쓰히코는 복도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상황을 전했다. "이봐 들었나. 쓰루오카가 죽었대. 그 탐정이 찾아냈어." "앗, 그거 큰일이군요" 하고 소리친 사람은 게이스케 같았다. 게이스케는 나선계단을 쿵쿵 뛰어오르며 말했다. "얘, 얘, 유코, 탐정님이 쓰루오카가 죽은 걸・・・・・・・ - P133
"앗, 그거 큰일이군요" 하고 소리친 사람은 게이스케 같았다. 게이스케는 나선 계단을 쿵쿵 뛰어오르며 말했다. "얘, 얘, 유코, 탐정님이 쓰루오카가 죽은걸......." "뭐라고요. 오빠!" 유코의 목소리가 2층 어딘가에서 울려 퍼졌다. "크, 크, 큰일이야. 언니, 탐정님이……………. "앗, 정말이니, 유코?!" 이번에는 에이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큰일났어요. 다카자와 선생님....." - P133
왜냐고 묻고 싶은 건 이쪽이다. 대체 왜 탐정이 죽었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 말 전달 게임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한 사야카는 사람들 앞에서 다시 사실을 알렸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돌아가신 건 쓰루오카 씨예요. 탐정님은 아직 쌩쌩하게 살아 있으니까. 멋대로 죽이지 말아요." - P134
바닥에 위를 보고 누워 있는 쓰루오카의 시체. 그 모습에 마사에는 깜짝 놀란 눈치였다. 옆에서는 에이코와 아쓰히코 부부가 미사키의 손을 잡은 채 굳어 버렸다. 유코는 시체를 보자마자 양손에 얼굴을 묻고 오빠에게 몸을 기댔다. 여동생의 어깨를 끌어안은 게이스케도 표정이 딱딱했다. - P134
사야카의 변명에 탐정은 "아이고" 하고 중얼거리며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뭐됐어. 어차피 사람들이 시신을 확인할 필요는 있었으니까……………." 다카오는 자신을 타이르듯 말하더니,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자, 이제 다 보셨죠. 여러분? 여기는 좁아요. 당장이라도 바닥이 꺼질 것 같군요. 마사에 씨와 다카자와 선생님 외에는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십시오. 뭔가 알아내면 나중에 보고하겠습니다." 다카오의 말에 에이코가 냉정하게 반응했다. "맞아, 여기는 탐정님에게 맡기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 P135
"......" 그를 도와줄 의리는 없지만, 사건에 흥미를 느꼈으므로 사야카는 정자에 남기로 했다. 펼친 우산을 접고 정자 지붕 밑으로돌아갔다. "착각하지는 말아요. 딱히 당신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변호사라는 직업상 관심이 생겼을 뿐이니까!" "응? 뭐라는 거야? 딱히 당신을, 뭐라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 P136
"아아, 이 건물. 확실히 일종의 폐허라고 할 수 있겠지. 원래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사이다이지 도시로가 뒤뜰을 정비할 때 만든거야. 뭐, 산책하다 잠깐 쉬어 가는 휴게소 같은 공간이랄까. 하지만 20여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완전히 방치됐어. 아버지에게 별장을 물려받은 오빠는 별장을 대폭 증축하고 개축해서 지금같이 거대한 저택으로 만들었지만, 그런 오빠도 뒤뜰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 그 결과, 뒤뜰은 황무지로 변했고 이 정자만 폐허 같은 모습으로 남은 거야. 철거해도 됐겠지만 철거하는 데도 수고와 돈이 들어가잖아." - P137
질문을 받자 다카자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네, 확실히 이건 평범한 죽음이 아닙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꽤 기묘한 죽음으로 보이네요." "기묘한 죽음이라니요?" "보시면 알겠지만, 시신의 이마 한가운데쯤이 손상됐어요. 두개골이 함몰되고, 피도 많이 났겠죠. 그게 직접적인 사인일 겁니다. 아마도 단단한 막대기 같은 물건으로 강한 타격을 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외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시신은 코뼈가 부러졌어요." - P138
"쓰루오카 씨가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예를 들어 벼랑에서 떨어졌다든가. 그런 상황이라면 이마와 뒤통수를 다치거나, 코뼈와 갈비뼈가 부러져도 그렇게 부자연스럽지 않올 것 같은데요." "네, 확실히 그렇죠." 다카자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벼랑에서 떨어졌다면 그럴싸한 흔적이 남을 겁니다. 예를 들면 상처에모래나 흙이 묻어 있거나, 옷이 진흙투성이가 되거나, 손이나 얼굴에 찰과상이 여러 개 생기는 식으로요. 하지만 이 시신은 그렇지 않죠. 몹시 많이 다치기는 했지만, 흙이나 진흙으로 범벅이 된 건 아니에요. 그런 의미에서는 아주 깨끗합니다." - P139
사야카의 솔직한 의문에 다카자와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살펴본 바로는 거의 틀림없이 타살입니다. 아마 어젯밤에 살해당했겠죠. 사후경직이 꽤 많이 진행됐으니까요." 의사의 결정적인 말에 사야카를 비롯한 나머지 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한순간 정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 P140
5
야노 사야카와 고바야카와 다카오는 마사에와 다카자와를 데리고 일단 저택으로 돌아갔다. 쓰루오카의 시체를 정자에 남겨 두었지만, 지붕이 있으니까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무엇보다 이런 빗속에서 시체를 운반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작업이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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