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5장
아티스트

현대미설 작품에 레퍼런스란?

현대미술과 ‘세계 표준‘

2016년 여름에 도쿄에서 개최된 아이다 마코토의 개인전 「덧없는 것을 꿈꿔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사물의 아름다운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⁰¹에서는 다소 흔치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 P292

도발적인 작업을 하는 현대미술 아티스트, 아이다 마코토의 우려

★마르셀 뒤샹 → 일회용 도시락 상자라는 전제, 레디메이드로서의 대량생산 공업제품. ★게르하르트 리히터 → 구상화와 추상화의 분리. ★잭슨 폴록→ 중력과 우연에 상당히 의존한 드리핑이분리.★잭슨라는 기법. ★가와라 온 → 작품 사이즈, 전시 스타일, 방법의 한정. ★게르하르트 리히터, 시라가 카즈오 드 쿠닝, 나카무라 카즈미 등→ 안티로서의 대형 화면, 물감의 대량 소비, ★오카자키 켄지로, 히코사카 나오요시 등→ 회화의 분석 그 자체의 제시. ★무라카미 다카시,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 진짜 붓놀림이 아니라는 의미로 인조적인 회화 제작법.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등→키치 감각, 아트 마켓을 바보로 여기는 듯한 자세 등.⁰² - P294

5장 아티스트

01 ミヅマアートギャラリー 7월 6일 ~8월 20일 http://mizuma-art.co.jp/exhibition/16_07_aida.php

02 「はかないことを夢もうではないか、そうして、事物のうつくしい愚かさについて思いめぐらそうではないか」(전시보도) - P578

그럼 왜 아이다는 굳이 이런 항목까지 만들어가며 아티스트의 이름을 몇 명씩이나 거론한 것일까? 텍스트 자체가 작품의 일부이거나 관객이나 미디어를 의도적으로 교란시키기 위함? 혹은 그저 장난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을 품을 바에는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빠를 것 같다. - P294

‘장난친 작품으로 오해받을 우려

아이다는 폭력, 에로, 사회 풍자등을 주제로 다루는 경우가 많고,
또 그 작풍 때문에, 협잡꾼 혹은 이슈메이커 작가로 간주되기도 한다(나도 아이다를 잘 몰랐던 시기에 그런 인상을 받았었다. 지금은 그러한 선입견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 P295

도쿄도 현대미술관에서 벌어진 작품 철거 요청 문제‘는 앞서 밝힌 대로 억지 트집에 휘말린 격이었다. 그러나 모리미술관의 회고전에서는
‘성폭력적이고 성차별로 가득 찬 작품이 다수 전시되었다‘며, ‘포르노 피해와 성폭력을 생각하는 모임‘에서 미술관을 상대로 항의문을 보냈고,
작품에 원자력 발전 사고와 관련된 트위터 화면을 ‘무단 게재했다는 오해를 사며 소셜미디어에서 뭇매를 맞기도 했다.  - P297

아이다에게는 <아사다 아키라는, 미술에 관한 한, 하찮은 것을 칭찬하고, 소중한 것을 폄하해, 일본 미술계를 몹시 정체시킨 책임을 언제.
어떤 형태로 질 것인가>라고 제목 붙인 회화가 있다. 제목을 길게 붙이기로 유명한 오카자키 켄지로의 두꺼운 질감의 추상회화 시리즈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오카자키의 절친이기도 한 비평가의 이름을 제목에 넣은 점이 왠지 야유로 느껴진다(본인은 『아트 잇』 2008년 10월 호에 수록된우치다 신이치의 인터뷰⁰³에서 ‘도발인지 러브콜인지는 알기 어려운 것‘이라 말하고 있다). - P299

03 「アンビバレンスの中にいるから、挑発なのかラブコールなのかわかりづらいものが生「まれる」 http://www.shinichiuchida.com/2008/10/art-it.html - P578

‘장난친 작품으로 오해받을‘ 우려는 과거에도 있었고, 도록에 수록될때까지는 자작 해설을 붙일 수 없었던 작품도 많다. 이메일에 적은 ‘이 작품의 아트월드 안에서의 위상과도 같은 것을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로부터 특정하고 싶었다‘라는 대목도 현재 상황에 대한 아이다의 염려를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P299

무라카미 다카시의 절망

그로이스나 솔츠 등은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비평가지만, 일본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아이다보다도 더 깊이 일본의 아트 저널리즘에 절망하고 있는 듯하다. - P300

정확하게는 ‘현대미술의 감상에 있어서는, 그 작품이 현대미술사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자리매김 되었는지를 추측하는 것이 중요하다‘이다. 이 해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그의발언을 더 인용하자면, 2006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예술기업론」에는
"(일본인은) 유럽과 미국의 예술 세계의 룰을 근거로 삼지 않는다."라고했고, 2010년에 펴낸 『예술투쟁론』에 쓴 글에서는 "(일본의 젊은이가) 작가가 되고 싶다면. (…) 예술=서구식 ART의 룰을 알아야 합니다." 등의 발언을 찾을 수 있다. - P300

비평 자체에 흥미가 없는, 혹은 그렇게 우기는 작가도 있다. 잘 알려진 예로는, "자신에 대해 쓰인 글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지면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만 세보면 된다."는 앤디 워홀의 발언이 있다. - P301

아이 웨이웨이와 아브라모비치

아이 웨이웨이는 자신의 아티스트로서의 활동과 액티비스트로서의 활동에는 차이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고, 비평가보다는 체제와의 싸움으로 바쁘다. - P302

티나리에 따르면, 이때 이후, 아이 웨이웨이는 "뒤에서 요셉 보이스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⁰⁶고 한다. 『가디언』의 에이드리언 설도, 2015년 후반 런던의 RCA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에 대한 리뷰⁰⁷에 뒤샹의 이름을 언급한 후, ‘지금까지 본 아이 웨이웨이의 전시 중 베스트‘라고 격찬했다. - P303

06 「A Kind of True Living: The Art of Ai Wei-wei」, "Artforum, 2007년 여름호. https://artforum.com/inprint/issue-200706&cid=15365

07 「Ai Weiwei reviewmomentous and moving」, 『The Guardian』, 2015년 9월 14일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15/sep/14/ai-weiwei-royal-academy-review-momentous-and-moving - P578

아브라모비치는 최근 호주 원주민(아보리진)을 대상으로 한 과거의 차별적 발언으로 규탄을 받는다거나, 공동 제작한 작품의 저작권을 둘러싼 옛 파트너 울라이와의 소송에서도 패소, 거기에 퍼포먼스 아트 단체를 설립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금한 자금을 바닥내기도 하면서 매스컴을 시끄럽게 달구고 있지만, 아티스트로서의 평가는 거의 정해졌다고 할 수 있다. - P303

틸만스와 쿤스

틸만스는 어쩌면 다소 불만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2000년 그가 터너상을 수상했을 때, 저널리즘의 반응은 혹독했다. 「페이스」나 「D」등의 잡지에서 일하는 ‘포토 저널리스트‘에게, 어째서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미술상을 수여해야만 했냐는 것이다. - P304

한편, 어느 한 비평가에게 "너는 아무것도 몰라. 난 엄청난 천재야."
라고 몇 번이나 반복해 말했다는 제프 쿤스¹¹는 현대미술사를 참조해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상위 4명 중 단연 으뜸이다. 당연히 그에 관한 평론 등에도 현대미술사적인 문맥으로 이어지는 것이 많다. - P306

쿤스는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작가인지라 신문이나 현대미술 관련매체에 게재되는 리뷰 중에는 유별난 것이 많기는 하다. 포르노 배우치치올리나와의 관계 등 작가의 추문을 새삼 언급하는 기사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단토의 견해를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 P306

‘이론가로서의 작가, 작가로서의 이론가‘
슈타이얼은 쿤스보다 더욱 명시적으로 현대미술사의 인용을 실천하고있다. 일본에서 개최된 「도지마 리버 비엔날레 2015」¹⁵에서도 전시된 바있는 그녀의 작품 <유동식 주식회사>(2014)에는 디지털 가공을 거친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나 파울 클레의<새로운 천사>가 화면에 등장한다. - P308

15 http://biennale.dojimariver.com/ - P579

(전략). 하지만 슈타이얼은 지금까지 다룬 5명의 작가중에서는 예외적인 존재다.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쓴 자신의 글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아트 리뷰 리스트의 작가 이름 옆에 붙은설명문은 간결하고 명료하다. "이론가로서의 아티스트, 아티스트로서의 이론가. 대체 이 ‘아티스트‘는, 왜, 어떻게 ‘이론가일까?" - P308

히토 슈타이얼과 한스 하케의 투쟁

히도 슈타이얼은 1966년 뮌헨에서 태어났다. 에세이 다큐멘터리‘라 불리는 필름이나 비디오 작품을 제작하는 한편, 주로 『e-flux』¹⁸나 『eipcp』(유럽 집단문화정책 연구소) 등의 웹 매거진에 비평이나 이론에 관하여 집필한다. 작품은 영화와 순수미술의 경계면에 자리매김 된다."
(『eipcp』, 「Hito Steyer」¹⁹)라고 평가되곤 하는데, 제작에 있어서나 비평 활동에 있어서도, 이미지나 현대미술과 사회적 현실의 관계라는 주제를 일괄되게 추구하고 있다. - P310

18 http://www.e-flux.com/

19 http://eipcp.net/bio/steyerlr - P579

앞서 언급한 <유동식 주식회사>는 30분가량의 영상을 중심으로 한비디오 설치작품이다. (중략).
여기서 유동성(Liquidity)이란 금융에 있어서는 유동성 자산을 의미한다. 서퍼나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파도 영상이 몇 번이나 등장하며 작품의 주제를 시각적이고도 은유적으로 보강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점은, 영상(시청각) 미디어가 지배적인 현대의 온갖 문제들을다름 아닌 영상을 통해, 게다가 다양한 디지털 영상미디어 기술을 이용해 가면서, 기존의 특정 사건이 담긴 장면을 편집해 넣어 중층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 P312

프란츠 파농과 고다르의 계보를 잇겠다는 슈타이얼

『아트 리뷰』는 슈타이얼을 ‘이론가로서의 아티스트, 아티스트로서의 이론가‘라 칭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이론‘은 미술이나 미술사라기보다는 미디어 이론을 가리킨다. 그 중심에 영상이 있다는 것은 그녀의 작품활동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슈타이얼은 1980년대에 일본영화학교(현 일본영화대학)에서 이마무라 쇼헤이와 하라 카즈오의 가르침을 받았다. - P312

첫 번째 저서의 제목 『스크린의 저주받은 자들』은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을 오마주한 것이다. 1925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난 파농은 프랑스에서 정신과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알제리로 건너가, 알제리 독립전쟁에 참가한다. 이저작물은 포스트 콜로니얼* 이론의 선구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슈타이얼은 자신이 파농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는 것이확실하다.

*포스트 콜로니얼 과거의 식민 상황이 독립 이후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_역자주 - P313

선배 작가와 후배 작가의 공통점

물론 슈타이얼의 선배나 친구는 현대미술계에도 존재한다. - P314

공통점을 비교했을 때, 재미있는 선배가 있다. 바로 한스 하케다.
1936년 쾰른에서 태어난 하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백남준과 함께 독일관 대표를 맡아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초기에는 생태계나 자연에서 소재를 가져왔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자본주의 사회의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 P315

맨 먼저 화제가 되었던 작품은 1970년에 발표한 <MoMA Poll>로 제목을 직역하면 ‘현대미술관 투표‘가 되는데, 투표함과 투표용지로 이루어진 설치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하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내걸고 실제로 관객에게 투표를 독려했다. "뉴욕주의 넬슨 록펠러 주지사가 닉슨대통령의 인도차이나 정책을 비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11월에 치를선거에서, 당신이 그에게 투표하지 않을 이유가 될까요? 만약 ‘예스‘라면 왼쪽 상자에 ‘노‘라면 오른쪽 상자에 표를 던져 주세요." - P316

이어 1971년에는 <샤폴스키 맨해튼 부동산 회사. 1971년 5월 1일 현재의 실시간 사회체제>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기로 예정되어 있던 개인전을 위해 제작되었지만, 미술관으로부터 거부당하면서 개인전 자체가 취소되고 만다. 투기 의혹이 제기되는 맨해튼 최대의 부동산 회사에 관한 건물 142동과 그 데이터를 정리한 차트와 설명문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 P316

하케는 1930년대에 건설된 독일관의 바닥에 잘게 부순 대리석 덩어리들을 깔아놓았다. 현관에서 바라본 전시장 안의 정면 상부에는
‘GERMANIA‘라는 문자가 내걸렸는데, 이것은 고대 게르만인의 이주지를 가리키는 고어인 동시에, 아돌프 히틀러가 구상한 베를린 세계수도의 명칭이기도 하다. - P317

사진을 걸어둔 배경이 되는 벽은 진홍색으로 칠해져 있다. (중략) 하케는, 60여 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촬영된 사진을 통해, 베니스 비엔날레가 가진 국민국가의 국위선양이라는 본래의 성격을 상기시킨 뒤, 바로 이어. 전후 유럽 경제에서 최강의 힘을 지니게 된 통화를 고도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제시한 것이다. - P318

현대미술계와 글로벌 자본주의를 향한 비판

위의 예들로 알 수 있겠지만, 하케 작품의 표적은 자본주의 사회만이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거의 그대로 구현하는 아트계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 P318

슈타이얼의 관심과 행동은 하케의 그것과 크게 겹쳐진다. - P318

현대미술계는 글로벌 금융자본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안에는 ‘죽음의 상인‘도 있다. 자신은 그 안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 관객도 그 안에서 글로벌 금융자본주의와 연결된 작품을 감상하며, 구매하고 있다. 하케의 문제의식과 겹치는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슈타이얼은 작품만이 아닌 글로도 표현한다. - P319

현대미술의 중요 중심지는 더 이상 서양의 대도시에만 위치하지 않는다. 오늘날, 탈구축주의 건축의 형태를 갖춘 컨템퍼러리아트 뮤지엄은 그 어떤 철통 독재국가라 할지라도 선보이고 있다.
어딘가에 인권침해 국가가 있다면, 자 이제, 프랭크 게리 미술관이 생길 차례다.²²

이러한 발언은 하게의 주장과 거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 P320

21~22 Hito Steyerl (저) 大森俊克(역) 「アートの政治学 コンテンポラリー・アートとポス民主主義への変遷」, 『美鈴手帖』FREE OF 2016년 6월호.

23 Nicholas Law, 「Horseplay: What Hans Haacke‘s fourth plinth tells us about art andthe City」, 『The Guardians』, 2015년  2월 27일. https://www.theguardian.com/attanddesign/2015/feb/27/hans-haaacke-horseplay-city - P579

 예를 들어한 저널리스트에게 했던 아래와 같은 이야기와.


우리 세대가 어른이 되었을 무렵, 컬렉터들이 작품을 샀던 이유는 그들이 현대미술과 연관되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지금은 엄청난 수의 컬렉터가 현대미술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있어 기분이 언짢아진다. 그들은 재무 고문을 고용하듯이 아트어드바이저를 고용하고 있다.²³ - P320

‘제4대좌‘에 설치된 말의 해골

하케는 자신과 관계하는 모든 갤러리에게 자신의 작품을 아트 페어에 출품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1970년대 이후부터는 작품이 되팔려 가격이 오를 경우, 그 차익에 대한 15%를 작가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약 거래가 무산되기도 해요. - P321

글로벌 자본주의와 결탁한 현대미술계를 비판하고, 미술관으로부터따돌림 당하며, 아트 마켓의 관행에는 따르지 않는다. 1994년에는 좌익적 분석으로 유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 함께 문화 제도를 비판하는 대담집25을 간행하기도 했다. 이런 작가는 아트월드에서 추방당하고 말지..라는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 P321

2015년에는 런던시의 요청으로 트래펄가 광장의 ‘제4대좌‘에 <선물로 받은 말>이라는 제목의 조각을 전시했다. 런던에는 수많은 기마상이 즐비하지만, 하케의 브론즈 말은 눈에 띄게 이채롭다. 말은 뼈대만으로 이뤄져 있고, 왼쪽 앞다리에 묶인 리본 모양의 전광게시판에는 런던 증권거래소의 주가를 표시하고 있다.²⁶ - P321

일찍이 하게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정치적인 아티스트‘로 간주되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이런 꼬리표가 붙은 작가의 작품은 일원적으로밖에 이해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 모든 아트 작품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예외 없이 정치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대중들 사이에는, 그리고 때로는아트 전문가들 사이에도, 현대미술은 정치와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정치는 현대미술 작품을 불순하게 만들 뿐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누군가가 ‘정치적인 구석으로 몰이 당하고, 실질적으로 제명당하는 것이다. 사회학적으로는, 지극히 흥미로운 현상이다.²⁷ - P322

27 "Für eine Kunst mit Folgen>, "Neue Zürcher Zeitung (z), 2004년 3월 13일 자*.
http://www.nzz.ch/article9 FP30-1.226930 - P5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UNDER THE HOOD

I.

내가 살고 있는 블록의 모퉁이에 위치한 슈퍼마켓에 드니즈라는 여자가 일하고 있는데,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미국 최고의 소설가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여러 해에 걸쳐 마흔두 권의 로맨스 소설을 썼으나 단 한 권도 서점에 진열된 적은 없었다. - P1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슬픈 것은 발퀴레의 기행 (The Ride of the Valkyries)‘이다. 그 곡을 들을 때마다 난우울해지고 인류와 인생의 불공평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며, 소화가 안 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 새벽 세 시 정도에나 떠올릴 법한 온갖 잡생각들이 난다.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그 감동적인 후렴을 들으면서 눈물을 훔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건 그들이 모 버논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

어쨌거나 우리가 몬태나를 떠났을 때 난 겨우 열두 살이었기에 그 후 몇 해 동안은 아버지의 일터에 함께 나가는것을 즐길 만한 나이였는데, 그때 아버지의 고용주인 모 버논을 처음 보았다.
모 버논은 쉰다섯 살 정도의 남자였고 지금은 볼 수 없는 그 옛날 뉴욕인의 얼굴 중 한 가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어떤 얼굴들은 유행을 타기도 하고 유행에 뒤쳐지기도 한다. - P1

어쨌거나 나의 열일곱 번째 생일이 조금 지난 1933년의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버논의 자동차 정비소에 가서 기름범의 망가진 포드 자동차 내부를 이리저리 찔러 보고 있을 때였다. 모는 집무실에 있었는데 한참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때 그는 아침에 편지를 가져다줄 우체부를 웃기려고 고무로 된 모조 여성유방을 착용한 채 바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우체부는 예정된 시간에 왔고, 이른 아침에 배달된 공문을 꺼내 읽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기 전, 모의 풍성한가슴골은 우체부에게 웃음을 주어 본분을 다했다. 배달된 편지들 중(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나중에 알아낸 것이다.) 하나는 모의 아내인 비아트리스한테서 온 것이었는데, 그녀가 거의 2년 동안 정비소에서 가장 오래 일했고 모가 가장 신뢰하고 있던, 그러나 그날 아침 평소와 달리 출근하지 않은 프레드 모츠와 잠자리를 계속해왔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편지였다. - P3

그리고 모두 웃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가 울고 있는 건봤지만, 여성유방을 걸치고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음조도 억양도 없이 내뱉은 말투의 그 무언가 때문이었다. 모두 웃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나와 아버지는 몸을 굽히며웃었고 각자 맡은 차에 붙어 노예처럼 일하던 주변 사람들도 웃다가 흘린 눈물을 훔치며 얼굴에 기름때를 묻히고 있었다. - P3

그날 밤 모는 다들 일찍 퇴근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그 정비소에 남은 차들 중 그나마 작동하는 차의 머플러에튜브를 연결해 자동차 창문에 끼워 넣고 시동을 걸어 일산화탄소 속에서 마지막으로 비통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 뒤 동생이 사업을 물려받았지만 결국엔 프레드 모츠를 다시 정비소장으로 고용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내가 아닌 남의 불행임에도 불구하고 ‘발퀴레의 기행‘은 내가 아는 가장 슬픈 것이 되었다. 난 그곳에있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기까지 했으니 부분적으로 내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 P4

II.
1939년 난 스물세 살이 되었고 뉴욕경찰로 취직해 있었다. 왜 그 직업을 골랐는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짐작컨대 몇 가지 이유가 있기는 하다. 그 이유들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나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쏟아 부었던 죄책감과 압박, 그리고 서로에 대한 비난을 싫어했지만 인생에서 첫 12년을그의 근처에서 보냈다는 단순한 사실이 나에게 어떤 지울 수 없는 도덕적 가치와 조건을 새겨 주었다. - P4

기둥서방들, 포르노 제작자들, 마피아들, 더 비싼 세를 들이기 위해 기르던 개를 풀어 오랜 세입자를 내쫓는 집주인들, 어린아이들을 만지는 늙은이와 겨우 수염을 깎을 정도의 나이에 불과한 무감각한 젊은 강간마들, 난 이런 사람들이 내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걸 보았고 세상과 그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속이 메스꺼워지곤 했다.  - P4

(전략).
그 질문에 답을 한다는 것. 생각해 보면 그것이 나를 경찰의 길로 이끌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이 훗날 내가 경찰 이상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걸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이야기의 나머지를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내가 한 일에 대해남의 이해를 구하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 나 이외의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답을 해줄 수도 없거니와 모두의 대답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꽤나 간단하다. - P31

내게 모든 것은 1938년에 시작되었다. 슈퍼 히어로라는 것이 탄생한 해이다. 첫 액션 코믹스가 발행되었을 때 난만화책을 읽기엔 너무 나이가 많았지만 아니, 최소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읽기엔 그랬지만, 많은 동네 꼬마들이 그걸 읽고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참지 못하고 한번 훑어봐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만일 누군가 날 본다고 해도 단지 동네 아이들과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변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P5

그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많은 기억을 되살려 주었고 그로 인해 내가 열셋, 열네 살 때 꿈꿨던 상상들이 다시금 기지개를 켰다. - P5

그 후부터 순진한 꼬마를 꼬여 가끔 보고 싶은 만화책을 빌리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빌딩 사이를 넘나들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나는 그 해 가을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슈퍼 히어로들이 그들만의 올컬러 세계를 벗어나, 흑백의 현실로 이루어진 세계로 침공해 들어왔다는 소식을 접하고야 말았다.
첫 번째 뉴스는 단순하고 신빙성이 떨어지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픽션의 요소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나중에 참고할 요량으로 기억해 두었다. - P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흥, 저 자식, 무슨 기사라도 된 양 깝치기는." 쓰루오카는 선남선녀가 나간 방향을 보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식당에 남은사이다이지 가문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려 약간 혀가 꼬인 어조로갑자기 묘한 말을 꺼냈다.
"잘 들어, 날 너무 무시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당신들도 잘 알잖아. 내가 그 비밀을 까발리면 어떻게 될지 정도는." - P101

4

만찬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도중에 물러간 사이다이지유코와 유코를 뒤쫓아간 다카자와 나오토가 그 후 어떻게 됐는지는 사야카도 모른다. 쓰루오카는 혼자 식당에 남아 공짜 술을 실컷 마시려는 모양이다. - P102

문밖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사야카는 놀란 나머지 뻗은 손을 뒤로 뺐다.
방금 뭐지? 여자의 비명인가?
사야카는 흘러내린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물론 답은 나오지 않는다. 사야카는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머뭇머뭇 고개를 내밀고 어두운 복도를 확인했다.
"누, 누구 있어요......?" - P103

"뭔데? 무서운 일? 언니한테 말해 봐."
다정하게 말을 걸자 미사키는 그제야 이불 속에서 얼굴을 절반쯤내밀었다. 그리고 한쪽 눈만으로 사야카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
저 봤어요."
심상치 않은 말에 사야카는 침을 꿀꺽 삼켰다. 벌벌 떨며 꺼낸 말이니, 아름다운 풍경을 본 것은 아니리라. 사야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봐, 봤다니. 설마 귀신이라든가?" - P104

"빨간도깨비가 서 있었어?"
"아니요. 빨간 도깨비가…………… 둥실 떠 있었어요!" 미사키는 공포에 찬 눈으로 사야카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얼굴이 새빨간 남자도깨비였어요. 두 발이 땅에서 몇십 센티 떠 있더라고요!"
"공중에 떠 있었다고?"
"네."
"공중에 떠 있었다면 역시 귀신 아닐까?" - P105

"오두막 앞이요. 아니, 오두막이랄까, 작은 집이랄까. 창고인지도모르지만, 어쨌든 작은 건물 앞에 빨간도깨비가 둥실둥실 떠서"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미사키?!"
"네"
"네는 무슨 미사키, 복도를 걸어왔지?"
"맞아요."
"도중에 창문으로 밖을 봤고."
"네."
"그럼 창문 너머로 중정이 보였겠네."
"네. 그런데요. 어,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이상하지. 중정에 오두막이니 창고니, 그런 건물은 없는걸."
중정은 헬기 착륙장으로 이용된다. 방해되는 건물이 있을 리 없다. 사야카는 미사키의 두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미사키, 꿈이라도 꾼 것 아니니?" - P106

사야카는 무의식중에 소리 지를 뻔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확인해 볼게. 내가 알아서 갈 테니 좀 있어 봐!"
"와, 고마워요. 언니."
미사키는 순수하게 고마워하며 등을 떠밀던 손을 멈췄다. - P107

낮에 보았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중정의 풍경이 시야에 펼쳐졌다. 지금은 한밤중이라 어둡지만, 중정 여기저기에 상야 등을 켜 놓아서 결코 캄캄하지는 않다. 그런 중정에 미사키가 말한 오두막이니 창고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 P108

"저기, 오늘 밤은 언니 방에서 재워 줘요. 부탁할게요!"
미사키는 한쪽 눈을 귀엽게 찡긋하며 애원했다. 뜻밖의 부탁에 사야카는 한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휴" 하고 작게 한숨을 쉰 후 살짝 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특별히 오늘 밤만이야."
"앗, 언니, 진짜요?! 와, 고마워요." 드디어 미사키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번졌다.
미사키는 통통 튀는 듯한 발걸음으로 사야카의 방에 들어갔다. - P109

 3장

 죽음과 폭풍우

1

갑자기 ‘쿠웅!‘ 하고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강렬한 통증이 엉덩이에서 등으로 퍼졌다. 놀라서 눈을 뜨자 정면에 본 적 있는 천장이 있었다. 어째선지 몸은 딱딱한 바닥에 누워 있었다. - P110

당연하다. 침대 하나에 서너 명이 잘 수 있을까. 안 그래도 댁의 따님은 공간을 두사람 몫이나 차지할 만큼 잠버릇이 나쁜데. 속으로 불평을 중얼거리던 사야카는 에이코의 말에서 석연치 않은 뭔가를 느꼈다.
"에이코 씨? 혹시 미사키 말고 다른사람도 찾으시나요..??
에이코는 고개를 똑바로 끄덕였다.
"맞아요. 제 사촌 오빠 쓰루오카 가즈야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것같아서요. 어디로 간걸까?" - P112

식당으로 들어가자 ‘화강장‘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대부분 모여있었다.
휠체어를 탄 가나에 부인. 그 옆에는 주치의 다카자와 나오토가있었다. 에이코와 게이스케, 그리고 유코 3남매는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다. 에이코 옆에는 남편 아쓰히코가 자리 잡았다. 아쓰히코는 사랑하는 딸을 보자마자 "잘 잤니, 미사키" 하고 기쁘게 손을 들었다. 한편 미사키는 그 나이대의 소녀답게 "네, 네, 그럼요"라면서 쌀쌀맞게 대꾸했다. - P114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것보다 아까 그건 무슨 울음소리를 흉내 낸 건가요?"
"내가 울음소리를 냈다고?! 난 그저 ‘굿모닝‘ 하고 인사했을 뿐이야. 혹시 귀가 안좋아?"
"....." 내 귀가 아니라 당신 발음이 너무 안 좋은 거지! - P115

그러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도라쿠 스님이 갑자기 이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태풍이 시코쿠 지방으로 진로를 바꾸면서 이쪽으로 접근하는 중이랍니다. 이거, 어쩌면 오카야마를 직격할 수도 있겠는데요. 이야, 참 곤란하게 됐습니다. 후후후!"
이 스님은 뭘 기뻐하는 거지? 사야카는 무심코 고개를 갸웃했다. - P116

"어쩌면 가즈야 군은 이렇게 궂은 날씨인데도 밖에 나갔을지 몰라. 바다가 얼마나 거칠어졌는지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고. 성격상그런 어린애 같은 짓을 할 것 같지 않아?"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게이스케가 끼어들었다. "확실히 바다의상태가 어떨지 걱정되기는 하네요. 하지만 그 양반이 그렇게까지괴짜는 아닐 것 같은데..." - P116

"어쩌면 가즈야 군은 이렇게 궂은 날씨인데도 밖에 나갔을지 몰라. 바다가 얼마나 거칠어졌는지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고. 성격상 그런 어린애 같은 짓을 할 것 같지 않아?"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게이스케가 끼어들었다. "확실히 바다의 상태가 어떨지 걱정되기는 하네요. 하지만 그 양반이 그렇게까지 괴짜는 아닐 것 같은데…………… " - P116

2

아침을 다 먹은 후에도 쓰루오카 가즈야는 식당에 나타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제각각 식당을 나섰다. 쓰루오카가 없어졌는데도 다들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 와중에 마사에가 탐정 고바야카와 다카오에게 의뢰했다.
"......이렇게 됐으니, 미안하지만 부탁 좀 할게." - P118

"뭐, 이런 호텔 같은 별장에 머물며 공짜 밥을 얻어먹었으니, 숙박비 대신에 무료 봉사하겠습니다. 어디부터 찾으면 좋을까요?"
"그건 탐정님한테 일임할게." 마사에는 모조리 떠맡기는 태도를 보였다. - P118

이윽고 세 사람은 계단을 다 내려가서 지하에 다다랐다. 사야카는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는 미지의 공간이다. 1, 2층과는 달리 그리넓지는 않았다. 계단에서 이어지는 짧은 복도에 문이 몇 개 보였다.
제일 앞쪽 방이 쓰루오카 가즈야의 방이라는 건 마사에에게 미리 확인했다.
다카오는 망설임 없이 그 방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았다. 잠기지 않은 문은 아무 저항 없이 열렸다 - P119

다카오는 그렇게 말하며 벽 앞에 놓인 침대로 다가갔다. 혹시 누군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듯 침대 밑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이 침대는 다리가 없는 유형이라 밑에 사람이 숨을 만한 공간은 없다. 다카오는 납득한 표정으로 이불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카오의 표정이 바로 어둡게 흐려졌다.
"이상한데. 어쩐지 잠자리가 너무 깨끗하지 않아?" - P120

"그런데 미사키, 우리한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거 아니야?"
탐정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이, 사야카도 그건 눈치챘다. 다카오와 사야카를 지하의 이 방으로 데려온 건 다름 아닌 미사키다. 뭔가 비밀리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사야카는 미사키의 속을 떠보기 위해 슬쩍 미끼를 던졌다. 혹시 어젯밤 봤다는 빨간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 P121

"그 빨간도깨비는 남자였구나 싶어서……………
"그야 보통 도깨비 하면 남성의 이미지지."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로 남자였다고요. 즉, 저는 그 빨간도깨비의 얼굴을 본 거죠. 생김새에 관해서는 솔직히 말해 어렴풋한 인상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엄마 이야기를 듣자 어쩐지 갑자기 기억이 났어요. 그 빨간 도깨비…………… 그 남자의 얼굴은...... 어쩌면.... 그......." - P122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미사키. 네가 본 건 남자 빨간도깨비. 즉,
얼굴이 시뻘게진 남자라는 뜻이지. 그렇다면 그건 빨간도깨비가아니라 얼굴이 피로 물든 쓰루오카였을지도 몰라. 아니, 그 시점에숨이 붙어 있었는지, 끊어졌는지도 불확실해. 어쩌면 쓰루오카는그때 이미......." - P123

"뭐라고 정확하게는 말을 못 하겠지만, 실내는 아닐 것 같아. 얼굴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을 실내에 들여놓으면 뭔가 흔적이 남을테니까. 그렇다면 바깥을 찾아봐야겠지. 일단 중정부터 살펴볼까.
뭔가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
다카오의 말에 사야카와 미사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의 방을 나서서 1층으로 돌아온 그 길로 세 사람은 중정으로 향했다. - P124

コ 모양 건물에 둘러싸인 중정은 변함없이 넓기만 하고 살풍경한 인상이었다. 헬기 착륙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부분 콘크리트로 포장해 놓았다. 어제는 희읍스름해 보인 콘크리트가 지금은 비에 젖어 회색으로 색깔이 변했다. 그 주변에 명색뿐인 화단과 관목을 배치하기는 했지만 딱히 정취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야카는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뒤지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 P125

"미사키가 본 빨간도깨비는 이쯤 떠 있었어. 그렇다면 그 이야기에 나온 오두막도 이 부근에 있었다는 뜻이야?"
다카오의 질문에 미사키는 또 자신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사야카 씨가 창문으로 중정을 확인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고?" - P126

"당최 모르겠네. 오두막이라니 그게 뭔데? 그런 게 중정에 있을리 없잖아."
"하지만 미사키는 확실히 봤다고 하고, 실제로 쓰루오카 가즈야는 행방불명됐잖아요."
"맞아. 그러고 보니 녀석을 찾는 중이었지. 건물 소실은 뒤로 미루자, 쓰루오카를 찾는 게 급선무야. 일단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빙돌아 볼까." - P127

그런 생각을 하며 나아가는 동안 일행은 건물 뒤편에 다다랐다.
흙바닥이 넓게 펼쳐진 거친 들판이었다. 면적으로 따지자면 중정과 비슷한 정도일까. 관리하지 않아 황폐해진 지면은 물결치듯 울룩불룩했고, 잡초가 무성했다. 하지만 버려진 듯한 이 공간에 어째선지 건물 한 채가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사야카는 우산 아래에서 무심코 손가락을 앞으로 뻗었다. "말도 안 돼. 뭐야, 저거!" - P128

"아아, 옷이 젖었네. 응?! 왜 그래요, 고바야카와씨?"
사야카는 정자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탐정의 등에 대고 말했다. "길막지 말고 빨리 들어가요."
"어, 아니, 그게・・・・・・ " 다카오는 다리가 얼어붙은 것처럼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래요? 먼저 온 손님이라도 있어요?" - P129

한편 고바야카와 다카오는 한발 먼저 냉정함을 되찾은 듯했다.
바닥에 누운 쓰루오카 가즈야 곁으로 다가가 이마에 쩍 벌어진 상처가 있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셔츠 소맷자락 밑으로 드러난 손목을 잡고 맥박이 있는지 살폈다.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난 탐정에게사야카는 머뭇머뭇 물었다.
"주, 죽었나요. 이 사람......?"
다카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사야카에게 반쯤 명령하듯 말했다. - P130

"주, 죽었나요, 이 사람......?"
다카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사야카에게 반쯤 명령하듯 말했다.
"난 여기 있을 테니, 사야카 씨는 미사키를 데리고 건물로 돌아가. 그리고 우선 마사에 씨에게 보고해 줘. 일단 이건 마사에 씨에게 의뢰받은 일이니까. 그리고...... 그렇지, 다카자와 선생을 이리로 보내 줘."
"마사에 씨에게 보고하고, 다카자와 선생님을 불러 달라는 거죠?"
"응. 명심해, 의사를 보내라고 했어, 스님은 아직 안 불러도 돼." - P131

4

야노 사야카는 사이다이지 미사키와 함께 정면 현관으로 들어가서 일단 1층 거실로 뛰어들었다. - P131

"크, 큰일 났어요. 마사에 씨! 쓰루오카 씨가 발견됐어요. 그런데 그게...... 그...... 이미 죽었어요....... 건물 뒤편에 있는 정자 같은 오두막에서....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진짜예요. 고모할머니! 탐정님이 발견했어요!"
옆에서 미사키가 보충 설명을 하자 마사에의 입에서 뒤집어진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 P132

"어엇, 정말이요, 스님!" 복도에서 아쓰히코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쓰히코는 복도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상황을 전했다. "이봐 들었나. 쓰루오카가 죽었대. 그 탐정이 찾아냈어."
"앗, 그거 큰일이군요" 하고 소리친 사람은 게이스케 같았다. 게이스케는 나선계단을 쿵쿵 뛰어오르며 말했다. "얘, 얘, 유코, 탐정님이 쓰루오카가 죽은 걸・・・・・・・ - P133

"앗, 그거 큰일이군요" 하고 소리친 사람은 게이스케 같았다. 게이스케는 나선 계단을 쿵쿵 뛰어오르며 말했다. "얘, 얘, 유코, 탐정님이 쓰루오카가 죽은걸......."
"뭐라고요. 오빠!" 유코의 목소리가 2층 어딘가에서 울려 퍼졌다.
"크, 크, 큰일이야. 언니, 탐정님이…………….
"앗, 정말이니, 유코?!" 이번에는 에이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큰일났어요. 다카자와 선생님....." - P133

왜냐고 묻고 싶은 건 이쪽이다. 대체 왜 탐정이 죽었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 말 전달 게임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한 사야카는 사람들 앞에서 다시 사실을 알렸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돌아가신 건 쓰루오카 씨예요. 탐정님은 아직 쌩쌩하게 살아 있으니까. 멋대로 죽이지 말아요." - P134

바닥에 위를 보고 누워 있는 쓰루오카의 시체. 그 모습에 마사에는 깜짝 놀란 눈치였다. 옆에서는 에이코와 아쓰히코 부부가 미사키의 손을 잡은 채 굳어 버렸다. 유코는 시체를 보자마자 양손에 얼굴을 묻고 오빠에게 몸을 기댔다. 여동생의 어깨를 끌어안은 게이스케도 표정이 딱딱했다. - P134

사야카의 변명에 탐정은 "아이고" 하고 중얼거리며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뭐됐어. 어차피 사람들이 시신을 확인할 필요는 있었으니까……………." 다카오는 자신을 타이르듯 말하더니,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자, 이제 다 보셨죠. 여러분? 여기는 좁아요. 당장이라도 바닥이 꺼질 것 같군요. 마사에 씨와 다카자와 선생님 외에는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십시오. 뭔가 알아내면 나중에 보고하겠습니다."
다카오의 말에 에이코가 냉정하게 반응했다.
"맞아, 여기는 탐정님에게 맡기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 P135

"......" 그를 도와줄 의리는 없지만, 사건에 흥미를 느꼈으므로 사야카는 정자에 남기로 했다. 펼친 우산을 접고 정자 지붕 밑으로돌아갔다. "착각하지는 말아요. 딱히 당신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변호사라는 직업상 관심이 생겼을 뿐이니까!"
"응? 뭐라는 거야? 딱히 당신을, 뭐라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 P136

"아아, 이 건물. 확실히 일종의 폐허라고 할 수 있겠지. 원래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사이다이지 도시로가 뒤뜰을 정비할 때 만든거야. 뭐, 산책하다 잠깐 쉬어 가는 휴게소 같은 공간이랄까. 하지만 20여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완전히 방치됐어. 아버지에게 별장을 물려받은 오빠는 별장을 대폭 증축하고 개축해서 지금같이 거대한 저택으로 만들었지만, 그런 오빠도 뒤뜰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 그 결과, 뒤뜰은 황무지로 변했고 이 정자만 폐허 같은 모습으로 남은 거야. 철거해도 됐겠지만 철거하는 데도 수고와 돈이 들어가잖아." - P137

질문을 받자 다카자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네, 확실히 이건 평범한 죽음이 아닙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꽤 기묘한 죽음으로 보이네요."
"기묘한 죽음이라니요?"
"보시면 알겠지만, 시신의 이마 한가운데쯤이 손상됐어요. 두개골이 함몰되고, 피도 많이 났겠죠. 그게 직접적인 사인일 겁니다.
아마도 단단한 막대기 같은 물건으로 강한 타격을 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외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시신은 코뼈가 부러졌어요." - P138

"쓰루오카 씨가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예를 들어 벼랑에서 떨어졌다든가. 그런 상황이라면 이마와 뒤통수를 다치거나, 코뼈와 갈비뼈가 부러져도 그렇게 부자연스럽지 않올 것 같은데요."
"네, 확실히 그렇죠." 다카자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벼랑에서 떨어졌다면 그럴싸한 흔적이 남을 겁니다. 예를 들면 상처에모래나 흙이 묻어 있거나, 옷이 진흙투성이가 되거나, 손이나 얼굴에 찰과상이 여러 개 생기는 식으로요. 하지만 이 시신은 그렇지 않죠. 몹시 많이 다치기는 했지만, 흙이나 진흙으로 범벅이 된 건 아니에요. 그런 의미에서는 아주 깨끗합니다." - P139

사야카의 솔직한 의문에 다카자와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살펴본 바로는 거의 틀림없이 타살입니다. 아마 어젯밤에 살해당했겠죠. 사후경직이 꽤 많이 진행됐으니까요."
의사의 결정적인 말에 사야카를 비롯한 나머지 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한순간 정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 P140

5

야노 사야카와 고바야카와 다카오는 마사에와 다카자와를 데리고 일단 저택으로 돌아갔다.
쓰루오카의 시체를 정자에 남겨 두었지만, 지붕이 있으니까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무엇보다 이런 빗속에서 시체를 운반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작업이다. - P1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장

유언장과 빨간도깨비

정신을 차리니 침대 위였다. 눈을 뜨자 안경 너머로 낯선 천장이 보였다. 잠시 후에야 사야카는 여기가 ‘화장‘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몸을 던진 기억이 났다.
그렇다기보다 거기까지밖에 기억이 없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그대로 잠든 모양이다. - P74

"으엑, 3시 1분!"
법사는 오후 3시부터라고 유코가 그랬다. 탐정 말마따나 사야카는 사이다이지 가문의 혈연이 아니니까 참가 의무는 없지만, 불참할 생각은 아니었다.
"죄송해요. 당장 갈게요!"
사야카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허둥지둥 방을 뛰쳐나왔다. - P75

사야카는 사람들에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 숙여 사과한 후에 탐정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짓궂은 시선을 던지며 "이야.
좋은 아침이야"라면서 어째선지 아침 인사를 했다.
"어?!" 사야카는 한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러고 나서야 놀라서 작게 소리쳤다. "어, 어떻게? 내가 잔걸 알았어요?"
(중략).
"이제 다 모인 것 같군요." 도라쿠 스님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방정면에 위치한 작지만 훌륭한 제단에서 고인의 영정사진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P76

"승려로서 한 말씀을 드리자면, ‘돈과 지위에 너무 탐욕을 부리다간 신세를 망칩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안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아무쪼록 조심 또 조심하십시오."
스님은 중얼거리듯이 말하면서 합장했다. (중략).
이로써 사십구재 법사는 대충 끝난 모양이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사는 딱 하나다. 사야카는 뜨거운 시선이 자신에게 쿡쿡 박히는 느낌을 받았다. - P78

"다행히 이 자리에 관계자 여러분이 모두 모여 계시네요. 기왕 모인 김에 아직 처리하지 못한 사안을 마무리하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여러분?"
에이코가 말하는 ‘아직 처리하지 못한 사안은 물론 유언장 개봉이다. 사람들이 한순간 술렁였지만 결국은 또 이의 없소!‘라는 분위기로 수렴됐다. - P79

"그럼 개봉에 앞서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사이다이지 가문의 친인척이 아니신 분은 방에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좋겠죠,
마사에 씨?"
"그러게. 미안하지만 나가들 줬으면 해."
마사에의 말에 다카자와 나오토, 도라쿠 스님, 고이케 부부는 얌전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큰 방에서 나갔다. 사람 수가 줄어들자 큰방은 더 조용해졌다. - P80

이리하여 큰 방에는 사이다이지 가문의 친인척만 남았다. 사야키는 문제의 갈색 봉투를 보란 듯이 새삼스레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중대한 한마디를 더 꺼냈다.
"누가 가위 좀 주세요! 가위가 없으면 개봉을 못해요!"
방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어, 가위, 가위?" 하며 허둥지둥 호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대신에 칼 한자루가 사야카 눈앞에 쑥 디밀어졌다.
칼을 내민 사람은 쓰루오카 가즈야였다. "정 없으면 이걸 사용해." - P81

 ‘유언장 PART 3‘라고 적힌 갈색 봉투가 나오지않아서 사야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 P82

나, 사이다이지 고로가 남긴 유산은 아래와 같이 분배할 것.


구체적인 내용은 여기서부터다. 사야카는 한 구절, 한 글자도 틀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읽어 나갔다.


첫째, 사이다이지 출판의 주식은 전부 첫째 딸 에이코에게 물려준다.


그 순간 에이코의 얼굴에 안도하는 표정이 번졌다. 고로 씨가 소 - P83

 사야카는 표정 변화 없이 계속 낭독했다.


둘째, 오카야마시에 있는 사이다이지 가문의 토지, 건물 및 거기 딸린 비품은 여동생 마사에에게 물려준다. 마사에는 그것들을 적절히 관리하고 활용할 것.

이건 사이다이지 가문의 본가를 가리키는 거라고 사야카는 이해했다. - P83

마사에는 미동도 없이 무표정을 유지했다. 사야카는 다음 항목을 읽었다.


셋째, 내가 소유한 그림, 골동품, 미술 공예품은 전부 셋째 딸 유코에게 물려준다. 유코는 그것들을 적절히 관리하고 활용할 것.

(중략). 객관적으로 보자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오카야마의 문학관에서 학예사로 일하는 유코는 문학은 물론 예술 전반에 정통한 재원이라고 들었다. - P84

사야카는 수긍하고서 유언장을 읽어 나갔다.


넷째, 내가 오랜 세월 수집한 모든 장서는 둘째 아들 게이스케에게 물려준다. 게이스케는 그것들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활용할 것.


자기 이름이 나오자 게이스케는 막내 유코와 비슷하게 숙이고있던 고개를 들고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 P84

현재까지 유언장의 내용에 특별히 부자연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좋아, 이 기세로 마지막까지 가자!‘ 사야카는 그렇게 기원하며 다음 부분을 읽었다.


다섯째, 비탈섬의 토지, 건물 및 그에 딸린 비품은 아내가나에게 물려준다.


(중략).
사야카는 한층 큰 목소리로 "다만!" 하고 말을 이었다.


다만 몸 상태가 좋지 못한 가나에를 대신하여 죽은 여동생 시즈에의 아들인 쓰루오카 가즈야에게 관리를 맡긴다. 그것들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활용해 주는 대가로 쓰루오카 가즈야에게 현금 3천만엔을 증여한다. - P85

사야카는 환희에 젖은 쓰루오카의 얼굴을 매섭게 노려본 후 다시유언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인의 유언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여섯째, 오랜 세월 사이다지 이 가문을 위해 일해 준 고이케 기요시, 고이케 시노부에게는 현금 1천만 엔씩 증여한다. 마찬가지로오랜 세월 주치의로서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 준 다카자와 다다나오의 아들 나오토에게 현금 1천만 엔을 증여한다. - P86

사야카는 유언장에 시선을 되돌렸다. 그리고 항목별로 작성된유언의 마지막 항목을 낭독했다.


일곱째, 이미 명기한 것 이외의 현금, 예적금, 유가증권, 부동산 등은 3등분하여 에이코, 게이스케, 유코에게 물려준다.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3남매는 일제히 영정사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유산 분배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이로써 전부 끝났다. - P87

‘아아, 아빠, 아주 안타까운 사실을 보고해야겠어. 우리 법률사무소에 떨어질 국물은 한 방울도 없나봐. 주치의와 고용인에게는 1천만 엔이나 증여했으면서, 왜 고문 변호사에게는 한 푼도 남겨 주지않는건데? 아빠, 혹시 고로 씨한테 미움받았어?‘
"뭐, 이제 와서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사야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유언장을 봉투에 넣었다. - P88

2


유언장 개봉이라는 커다란 이벤트가 끝나자 사이다이지 가문의 친인척들은 제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큰 방을 나섰다. 어떤 사람은 심각한 표정, 어떤 사람은 상쾌한 표정으로. 쓰루오카 가즈야는 콧노래라도 부를 것처럼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한편 사야카는 막중한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이 가슴에 가득했다. - P88

돔 모양의 천장이 원형 플로어를 뒤덮고 있다. 과연, 전망실이 틀림없다. 주위를 둘러보자 커다란 창문 여러 장이 띠 모양으로 줄지어 있었다. 동시에 여기는 휴게실이기도 하리라. 여기저기에 세련된 디자인의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또한 도서실이기도 한모양이다. 플로어의 절반쯤 되는 공간에 키가 큰 서가가 여러 개 늘어서 있었다. 서가는 고인이 남긴 수많은 장서로 가득했다.
"우와, 굉장하네." 사야카는 무심코 감탄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 P89

다카오는 사야카를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만에 하나 유언장에 ‘전 재산을 탐정 고바야카와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이 있었으면 어쩔 건데? 당신 때문에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맛볼 기회를 놓치는 거잖아."
"아하. 그거라면 안심해요, 고바야카와 씨. 당신은 아무것도, 맛볼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니까." - P90

"응. 확실히. 원래 건물 자체가 비탈섬의 높직한 곳에 있는 데다,
돔 모양의 이 공간은 건물 옥상에 있잖아. 경치가 좋을만도 하지."
다카오의 설명을 들으며 사야카는 다양한 각도에서 경치를 바라보았다. 서가가 놓인 방향-그쪽이 북쪽인 듯하다ㅡ을 제외하고,
띠 모양으로 줄지은 창문을 통해 동쪽, 서쪽, 남쪽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다. 특히 지금 시각은 서쪽 창문으로 비쳐드는 세토내해의 석양이 예뻤다. - P92

"흠, 고바야카와 씨. 혼자 이 경치를 바라보며 지질한 생각에 잠겨 있었던 거로군요."
"지질한 생각 안 했어. 그냥 고독을 곱씹고 있었을 뿐이야." - P92

"그러게. 하지만 쓰루오카 가즈야의 이야기로는, 그가 이 섬에 마지막으로 왔던 23년 전에는 이 구체가 없었대." - P92

정확하게는 책이라기보다 책 모양의 오브제라고 해야 할까. 만져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재질은 분명 종이가 아니다. 일종의 금속이다. 녹청이 쓴 듯한 독특한 색깔과 질감으로 보건대 청동이리라.
다시 말해 청동으로 만든 책인 셈이다. 크기는 보통 단행본보다 훨씬 크고, 형태도 정육면체에 가깝다. 두께도 백과사전이나 국어사전 못지않게 두껍다. - P93

3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해가 세토내해의 서쪽으로 가라앉자, 비탈섬에도 밤이 찾아왔다.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은 오후 7시.
‘화강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1층 식당에 다시 모여 앉았다. - P94

하지만 기적 같은 일품도, 식탁의 싸늘한 분위기를 깨부수지는 못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식탁을 둘러싼 사람들 대부분이 중요 인물에 대한 중요한 화제를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요 인물은 쓰루오카 가즈야다. - P95

"그건 그렇고 말이야, 쓰루오카 군." 갑자기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아쓰히코가 말을 꺼냈다. "장인어른의 아들도 아닌 처남이 설령현금만이라도 유산을 상속받다니 의외였어."
약간 커지고 높아진 목소리로 추측건대, 술에 좀 취했으리라. 그래서 무심코 본심이 튀어나온 것이다. - P95

"야, 유코! 뭐야, 이 녀석.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아까부터 다들렸어!"
쓰루오카는 의자를 박차듯이 일어섰다. 한편 유코도 겉보기와달리 겁 없는 성격인 듯했다.
"불만이 있을 리가요. 전부 아빠의 유언인데요. 뭘!" - P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2.3 쿠데타 이후
두 번째 국가 위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윤석열 탄핵심판을 담당할 헌법재판관 임명을 법적 근거 없이 거부했다. 그는 선출되지않은 권력이며, 그 자신이 내란죄 피의자이기도 하다. - P8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2024년 12월 14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통과시킴에 따라 윤석열의 직무는 정지되었다. 차분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면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진행되고 있다. 탄핵심판을 진행할 헌법재판소 구성이 늦어지면서다. - P8

(전략).
다만 6인 체제에서 ‘결론‘을 내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검토중이라고 2024년 12월26일 브리핑에서이진 헌법재판소 공보관은 밝혔다. 법규정에는 없지만, 재판관 6명이 정치적으로결단한다면 결론까지 내릴 수 있다고 보는 헌법학자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탄핵을 결정하려면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헌법 제113조 1항에따라, 적어도 재판관 6명이 ‘만장일치‘로찬성해야만 탄핵이 인용된다.  - P9

더 심각한 시나리오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퇴임이 예정된 2025년 4월18일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경우에 발생한다.
이러면 ‘4인 체제‘가 되어 헌법재판소 자체가 심리 불능에 빠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탄핵 인용도, 기각도 못한 채 남은 임기가 지속된다. - P9

"헌법기관 기능 뭉개는 것도 국헌 문란"

지금 비어 있는 3명은 국회 몫이다.
비상계엄 전인 11월29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시절, 여야는 공석인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 중 더불어민주당이 2명,
국민의힘이 1명을 추천하기로 합의했다. - P9

그런데 12월 14일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이후인 12월17 선일 권성동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는 대통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수 없다고 주장했다. - P9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국회가 헌법재판관 3명을 선출해도 한덕수 권한대행이 임명하면 안 되는 이유로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추천하는 건 검사가 판사를 고르는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논리를 편다. - P9

그러나 우리 헌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헌법 제71조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
헌법 제111조 2항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 제111조 3항 제2항의 재판관 중 3인은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대통령이 임명하며,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대행한다는 것이 헌법에 적힌 전부다. - P9

국민의힘은 과거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 사례를 들며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 탄핵 인용 뒤에야 가능하다고도 주장한다. - P9

권한대행마저 탄핵해야겠냐고 묻는다면

만약 한덕수 권한대행이 끝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해 국회가 200명 미만의 찬성으로 한덕수 총리를 탄핵했는데, 한덕수가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정족수는 151인이 아니라 200인이라며 직무정지를 거부한다면, 대통령 권한대행 후순위인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여전히 권한대행이라 주장하는 한덕수의 이중권력상태에 돌입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한덕수가 여전히 대통령 권한대행‘이라 주장할 경우, 한 나라에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둘인, 앞날을 그리기도 어려운 극심한국가 혼란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 P10

계엄법상 국방부 장관은 국무총리를거쳐 대통령에게 계엄의 선포를 건의할수 있고,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자할 때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되어 있다. - P10

그런데도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그 자신이 내란죄 피의자이기도 한 한덕수는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며 내란 상설특검 후보자 추천을 의뢰하지 않았고,
윤석열 탄핵심판을 담당할 헌법재판관임명을 법적 근거 없이 거부했다. 내란 일반 특검과 김건희 특검에 여야 합의를 요구했다. - P10

윤석열과 우리 사이
타협할 수 없는 심연

대통령의 자기 확신에 ‘검찰 출신‘이나 ‘유튜브 시청‘ 외에더 근본적 요인이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윤석열·김건희 부부가 초자연적 계시를 진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 P14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윤석열은칩거 중이다. 검찰과 고위공직자수사처의 내란죄 수사 출석 요구에 불응했다. - P14

윤석열과 대다수 국민 사이에는 심연이 있다. 우선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다르다.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에 심취해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졌다. 윤석열 스스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다고말했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병력을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 P14

일각에서는 윤석열에게 ‘결단주의적관점이 보인다고 지적한다. 결단주의는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1888~1985)의 헌법 이론이다. 슈미트는 주권자가 ‘예외상태‘에서는 헌법을 벗어난(혹은 초월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P14

정치학자인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중략).
안병진 교수의 윤석열에 대한 평가는
‘검찰주의자‘라는 세평과도 조금 다르다.
검찰 조직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자기애가 그의 본질이라고 본다. - P15

정치적 손익과 성공 가능성을 따지는 일반인과 달리 계엄이라는 거대한 조치를취하면서도, 자신의 결정을 믿는 결단주의자는 일단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자신감이다. 윤석열정부는 일찌감치 대중의 신임을 잃었다.
한국갤럽 조사 기준, 취임 80일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 P15

 카를 슈미트의 이론은 전제군주를 옹호하는 왕권신수설과 거리가 멀다. 그는
‘독재‘를 긍정하고 의회민주주의를 평가절하했으나, 어디까지나 정치 권력의 정당성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 P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