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혹하다

1

엄숙하다고 해야 할지 우스꽝스럽다고 해야 할지, 사토야마나미는 금방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의 감성을믿는다면 수상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어두컴컴하고 길쭉한방에서 벽을 등지고 서로 마주하듯 나란히 정좌한 남녀 열명은 표정으로만 봐서는 자신들의 행위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 P9

자, 하고 입을 연 사람은 상좌 한가운데 앉아 있는 남자다.
이름은 렌자키 시코. 물론 본명이 아니다. 팸플릿에는 어느밤 머리맡에 성인이 나타나 이름을 내려 주었다고 되어 있다. - P9

고개를 끄덕이는 렌자키의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실은 외부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교단의 수치니까요. 하지만 좋은 면만 보여서는 우리의본모습을 알릴 수 없겠죠.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중요한 건 잘못을 회개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단에 자정 작용이 있다는 점을 오늘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P10

렌자키가 등을 쭉 폈다. 표정도 한결 엄숙해졌다.
"오늘 이렇게 모이시라고 한 것은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회‘가 똘똘 뭉쳐 있다고믿었습니다.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쉽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중 한명이 구아이회의 보호를 받으면서 마음속으로는 우리를 배반했어요." - P11

(전략).
렌자키가 말을 이었다.
"우리 목표는 마음의 정화입니다. 병이나 인간관계로 고통받는 사람들 중 다수가 자신의 마음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갖가지 더러움이 축적된 결과 재앙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래서 그 더러움을 씻어 내고 행복해지자는 것이 우리 교단의 이념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마음의 정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이 간부 중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 교단이 아직 미숙하고 더 나아가 저 자신이 미숙하다는 뜻입니다." - P11

"설령 그렇게 괘씸한 자가 있다 해도 그건 그자가 타락한 것이지 결코 대사 때문은……………."
(중략).
제자의 물음에 렌자키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범인이라는 표현은 쓰지 맙시다. 우리는 가족이에요. 그자는 그저 마음을 충분히 정화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불쌍한 사람이지요." - P12

‘구아이회‘에는 열 명의 간부가 있고, 그들이 렌자키 휘하에서 모임을 운영해 나간다고 들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열 명이다. 모두들 놀란 표정으로 제5부장을 바라보았다. 그가 지명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제5부장, 하고 렌자키가 운을 떼었다. 그 표정은 온화하고,
목소리도 부드러웠다.
"이곳은 혼을 정화하는 곳입니다. 정화라 함은 모든 일을고백하는 것이기도 해요. 숨기는 일이 있다면 부디 솔직하게 털어놓으세요. 당신 안에 있는 검은 것들을 토해 내세요." - P13

제5부장은 바닥을 손으로 짚은 채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에는 공포와 놀라움의 기색이 가득했다.
어떻습니까, 하고 렌자키가 재차 물었다.
제5부장은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히 느끼긴 했지만, 저는 아닙니다. 저는 대사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 P14

연기력 한번 대단하네, 하고 나미는 냉소적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도 이건 렌자키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이있다는 걸 선전하려는 퍼포먼스겠지. 주간지에서 취재하러온다니까 부랴부랴 준비했을 거야. 제5부장의 박진감 넘치는 연기는 인정하지만, 이런 짓거리를 사실 그대로 기사화했다가는 독자에게 바보 취급을 당할 것이다. 아니, 그러기 전에 편집장에게 호통을 듣겠지. - P15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하고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다들 놀라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제5부장과 렌자키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모두가 배우라는 말인가. 설마 싶긴 하지만 그럴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편이 좋을 듯했다. - P15

렌자키가 말했다.
"죄를 인정합니까?"
그러나 제5부장은 등을 구부린 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중략).
누구도 막을 틈이 없었다. 제5부장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창밖으로 뛰어내렸다. 지상 5층이었다. - P16

2

구사나기는 마미야의 설명만으로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리저리 질문한 끝에 겨우 내용을 파악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점이 있었다.
"계장님, 이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P16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우리가 담당해야 할 사건이지사람이 죽은 데다, 자신이 죽였다고 자수한 사람까지 있으니 말이야. 5층 건물에서 떨어뜨렸다더군."
"기합으로…………… 말입니까?"
"기합이 아니라 염, 이라고 하나 봐. 염력, 할 때 염 말이야."
구사나기는 오른쪽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 P17

종교 법인 ‘구아이회‘의 신자 하나가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고 경시청으로 신고가 들어온 것은 오늘 오전 10시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그 신자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사인은 뇌 좌상. 5층 창문에서 주차장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졌으니 애초에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했다. - P18

그런데 맨 먼저 입을 연 교조 렌자키 시코가 뜻밖의 말을 했다. 자신이 신자를 추락시켰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염력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도쿄 서쪽 변두리의 작은 경찰서가 우왕좌왕하게 된 것은 당연했다. - P19

이런 종류의 단체에는 탈퇴한 신자가 자신이 속았다고 주장하고 나서는 일이 반드시 있기 마련인데 ‘구아이회‘는 여태까지 이렇다 할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듯했다. 지역 주민과 다툼이 일어난 사례도 없었다. 이번 사건이 교단으로서는 처음 있는 불상사인 셈이다. - P19

구사나기가 맞은편에 앉자 남자는 그때껏 감고 있던 눈을뜨고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경시청 수사 1과의 구사나기입니다.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후지오카에게 건네받은 자료에 따르면 본명은 이시모토가즈오 직업은 ‘구아이회 교조‘였다.
"렌자키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예전 이름은 버렸으니까요."
남자가 차분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럼 렌자키 씨, 당신이 한 일을 가능한 한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그러니까, 간부 회의 중에 사건이 일어났다고요?" - P21

내부 조사를 한 결과 거액의 돈이 사용처가 불분명한 채 사라졌기 때문이다. 경리 담당자인 제5부장 나카가미 마사카즈가 의심스러워 그에게서 진실을 듣고자 했다. 그 방법은 렌자키가 나카가미의 마음에 염을 보내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 P21

(전략).
"물론입니다. 아니, 그런 적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매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번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저를 찾아오거든요. 그런 분들의 마음에 염을 보내서 마음을 정화하고 번민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저의 책무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 의식을 행하다가......."
"의식이 아니라 송념이라고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염을보낸다는 뜻입니다."
렌자키가 송구스러운 듯이 말했다. - P23

"부탁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구사나기가 물었다.
"제게 그 송념이라는 것을 한번 해 보세요."
그 말에 렌자키가 눈을 번쩍 떴다.
"여기서 말입니까?"
"네. 안 되겠습니까?"
잠시 침묵하던 렌자키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해보죠." - P24

"별다른 느낌이 없는데요."
"그럴 겁니다. 염을 보내고서 알았습니다. 당신은 제게 구원을 바라지 않아요. 다만 저를 시험할 뿐이죠. 그런 사람에게는 염이 통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강한 사람입니다."
그러고서 렌자키는 빙긋이 웃었다. - P25

3

"그 일은 물리학과 관계가 전혀 없는 것 같은데."
유가와 의자 팔걸이에 턱을 괸 채 흥미가 일지 않는다는듯이 말하고는 책상 위에 놓인 머그잔을 집어 들었다. - P25

"무슨 수로 체포하겠어, 상대방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않있는걸. 그가 한 일이라고는 양손을 상대방에게 향한 채 눈을 감은 것뿐이야. 그걸로는 살인죄를 적용하기는커녕 구류할 근거조차 없단 말이지. 결국 그대로 돌려보내고 말았어."
"목격자라고 해 봐야 신자들뿐이잖아. 정말로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을까? 교조를 지키자고 다들 입을 맞춘 거 아니야?" - P26

구사나기를 안내한 사람은 마지마라는 초로의 남자였다.
‘제1부장‘이라는 직함으로 보아 렌자키의 수제자인 듯하다.
"대사가 금방 석방되어 안심입니다. 자수하겠다고 하셨을때 저희는 말렸습니다. 대사가 염을 보낸 결과라고는 하나, 제5부장이 창에서 뛰어내린 것은 마음의 고통에서 해방되기위해서였지요. 다시 말해서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자살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대사는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분노한 나머지 힘을 통제하지 못했으니 자신이 죽인 것과 다름없다는거예요. 정말이지 훌륭한 분입니다. 만일 대사가 이대로 감옥에라도 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경찰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 주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P27

마지마를 포함해서 사건 발생 당시 방에 함께 있었던 간부 9명을 모두 만나 보았지만, 그들의 진술에 모순점이나 미심쩍은 부분은 없었다. 피해자가 날뛰던 모습에 관해서는 각자의 표현이 조금씩 달랐지만, 그 점은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볼수 있었다.
사건에 대해서는 그들도 놀란 눈치였다. - P28

"이런 일이 벌어져 면목이 없습니다. 저는 어려운 내용은잘 모르지만, 대사가 자수하겠다고 결정한 이상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여겼습니다. 돌아와서 안심입니다."
부인이 알아듣기 힘들 만큼 조그만 소리로 말하면서 버릇처럼 몇 번이나 고개를 꾸벅거렸다. - P29

(전략).
"그 증언을 그대로 믿는 거야? 그런 식이면 자네들에게 잡힐 범인이 하나도 없겠군."
"얘기를 끝까지 들어 봐. 사건 현장에는 신자가 아닌 사람도 있었어. 그들에게도 얘기를 들어봤단 말이야."
"신자가 아닌 사람이 있었어?"
"그래. 주간지 취재 기자랑 사진 기자. 우연히 취재하러 와있었던 모양이야." - P29

기자는 『주간 트라이』의 사토야마 나미라고 했다. 나이는서른 전후, 보이시한 헤어스타일에 화장기가 없는 여자였다.
(중략).
"우리 잡지사 편집부로 익명의 투서가 날아들었거든요. 최근 들어 신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구아이‘라는 종교 단체를 아느냐고요. 자신의 가족이 줄줄이 신자가 되어 재산을 갖다 바치는 바람에 결국 가정이 붕괴되고 말았다는 거예요. 수소문해 보니까 아닌 게 아니라 수상쩍은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후략)." - P30

사토야마 나미에 따르면 처음에는 취재를 거절당했다고한다. 송념의 자리에는 신자만이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얼마 후, ‘구아이회‘ 쪽에서 먼저, 신자들이 수행하는 모습이라면 취재하러 와도 좋다고 연락을 했다. 렌자키가 염을 보내는 장면을 볼 수 없다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들여다보기나 하자 싶어서 사진 기자와 함께찾아갔다. 그런데 도량에는 신자가 거의 없었다. - P31

"진짜더라고요. 렌자키 시코가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는데, 제5부장이 비명을 지르면서 날뛰기 시작했어요.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확실해요. 렌자키 시코는 단 위에 앉은채 엉덩이조차 들지 않았어요. 그러니 제5부장을 창에서 떠밀기란 불가능한 일이죠."
헤어지면서 사토야마 나미는 이번 사건을 최신호에서 상세히 다룰 예정이니 기대해 달라고 사뭇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사진 기자에게도 얘기를 들어봤지만 대체로 내용이 일치하더군. 그때 찍은 사진도 봤는데, 취재 기자의 말이 거짓이나 과장은 아닌 것 같았어." - P32

구사나기는 방해해서 미안하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만, 그 교조인가 뭔가하는사람 말이야, 운이 좋긴 했어."
"무슨뜻이지?"
"그렇잖아. 방금 우리도 말했다시피, 그 자리에 신자들만있었다면 경찰이 그 얘기를 믿었겠어? 사실은 누군가 밀어서 떨어뜨린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게 보통이지. 그랬다면 그 교단에 대한 평판에도 흠집이 났을 거야. 자칫 억울하게 체포되었을지도 모르고." - P33

4

같은 방인데도 한가운데 앉아 있으려니 기분이 영 달랐다. 혼자라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그때는 간부 열명이 양쪽 벽을 등지고 마주 앉아 있었다.
사토야마 나미는 ‘구아이회‘ 본부를 다시 찾았다. 목적은물론 취재를 보충하는 것이다. - P34

나미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했다.
"혹시 거슬리시는 내용이라도…………?"
아닙니다, 하며 렌자키가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그렇게 글을 잘 쓰시는지, 감탄했습니다. 현장감이 넘치더군요. 다만, 앞으로는 제 예전 이름을 거론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경력에 관해서도 저희 구아이회 팸플릿에 적혀 있는 내용 외에는 기재하지 마시고요."
"아,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 P35

나미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해산한다고요?"
"생각은 그런데, 제자들이 울며불며 말리더군요. 아직 자신들의 마음을 정화하지 못했으니 저의 염이 필요하다고 하는데는 반박할 말이 없었어요. 경찰에 출두해도 결국 돌려보내고, 대체 어찌해야 좋을지……………."
렌자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를 보고 있자니, 큰 힘을 가진 자의 고뇌가 느껴졌다. 나미는 그 힘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 P36

렌자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토록 신성한 행위를 취조실 같은 곳에서 할 수는 없지요. 게다가 상대는 단지 재미 삼아 그런 말을 했을 뿐이고요. 거절하기도 뭐해서 시늉만 해 보였습니다. 형사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불만스러워하더군요."
"저는 재미 삼아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 힘을 느끼고싶다는 순수한 마음이에요. 결과적으로 저 자신도 뭔가 변할지 모르죠. 부탁드립니다." - P37

나미가 시키는 대로 하자 렌자키는 진지한 표정으로 양손을 그녀 쪽으로 향한 뒤 눈을 감았다. 그런데 몇 초 뒤 그가 다시 눈을 뜨고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번뇌가 많으신가 봅니다. 거짓과 비밀도 상당히 많이 품었고요."
"아......, 다 알아내셨군요."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공기 정화기는 깨끗한 공기를 공급하지만 대신 내부에 있는 필터가 점점 더러워지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마음의 필터에 더러움이 쌓입니다. 그걸 조금씩 깨끗이 하는 것이 우리 교단의 목표입니다." - P38

"느 느꼈어요. 분명히 느꼈습니다. 뭐랄까, 몸이 조금 따뜻해지면서......."
렌자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염을 느낀 겁니다. 당신의 마음은 비록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정화되었습니다."
다음 순간, 형언하기 힘든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 P39

5

마미야가 주간지를 읽어 보고 싶다고 해서 주간지를 들고그의 자리로 갔다. 어제 발매된 『주간 트라이』이다. (중략).
"렌자키 시코를 꽤나 치켜세웠군. 마치 초능력자라도 된다는 듯이 말이야."
"이 소재를 당분간 우려먹을 속셈인 거죠." - P39

"쳇, 나오든지 말든지. 그건 그런데 말이지."
마미야가 기사에 게재된 사진을 가리켰다.
"용케 사진을 찍었단 말이야. 이 사진으로 봐서는 아무도피해자에게 손을 대지 않은 게 확실하잖아. 스스로 창에서 뛰어내렸다고 볼 수밖에 없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마미야의 말대로였다. 사진에서 나카가미 마사카즈는 무언가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고개를 돌린 채 양손으로는 몸을보호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창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진 기자 다나카에게 진술을 들을 때도 봤던 사진이다. - P40

마미야가 자리에 앉은 채로 구사나기를 힐끔 올려다보았다.
"혹시 주간지도 한통속이라는 얘긴가? 아니면 교단이 선전을 목적으로 사건을 일으켰다는 거야? 일부러 신자를 자살하게끔 해서 말이야." - P41

"아닙니다. 그건 괜찮은데, 긴히 할 얘기라는 게 뭡니까?"
그러자 후지오카는 네, 하며 구사나기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실은 밀고가 있었습니다."
"밀고요?"
"네. 과거에 ‘구아이회‘ 신자였다는 남자한테 전화가 걸려왔어요. 그 사람 말에 따르면 교단의 돈을 착복한 사람은 나카가미가 아니라 다른 간부들이라는 거예요. 물론 경리 담당이었던 나카가미가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으니 얼마간 떡고물이야 얻어먹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이용당했을 뿐이고 주범은 따로 있다더군요." - P42

"그런데 밀고자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답니까?"
"나카가미 본인에게 들었대요. 나카가미가 마지마나 모리야에게 불만이 많았는지, 그 두 사람을 거드는 일이 어리석게 느껴진다는 말을 흘리고 다녔답니다."
"그랬으면 그런 사실을 렌자키 교조에게 털어놓으면 되지않았을까요?" - P43

그때 주문한 음식이 나와 또 대화가 잠시 중단되었다.
『주간 트라이』에 실린 기사는 보셨습니까?"
종업원이 물러간 후 후지오카가 물었다.
"네, 봤습니다. 증언한 내용 그대로더군요."
"그런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요? 기사에 따르면 렌자키는 횡령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다만 배신에 관해 나카가미를 꾸짖었을 뿐이고요." - P44

"렌자키가 말한 배신이란 횡령이 아니라 ‘수호의 광명‘ 쪽으로 돌아서는 것을 말하는 거였어요. 그와 같은 배신은 용서할 수 없다는 걸 다른 간부와 신자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말하자면 본보기로 그런 일을 벌인 게 아닐까요? 하지만 나카가미가 ‘수호의 광명‘에 가려고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교단의 이미지가 실추될 테니 나카가미에게 횡령죄를 덮어씌운 거죠. 어떻습니까, 제 추리가?"
구사나기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P45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경찰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어요. 애초에 그 사건을 살인 사건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으니 말이죠."
"바로 그 점 때문에 의논을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다시 뵙자고 한 겁니다. 구사나기 씨는 이런 종류의 사건에 강하시잖아요.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까요?" - P45

6


오늘 다섯 번째 상담자는 예순이 넘은 남자였다. 신청서에는 자영업자라고 적혀 있었다. 명품을 걸친 건 아니지만 차림새가 그런대로 괜찮았다. 모은 돈이 꽤 있을 거라고 마지마는짐작했다.
남자를 ‘정화의 방으로 안내했다. 창은 열려 있는 상태고,
방 한가운데에 방석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정좌하고 기다리십시오. 잠시 후에 대사가 오실 겁니다." - P46

"얼굴을 드시지요."
렌자키가 상좌에 앉고 나서 말했다.
"번민이 상당히 깊어 보이는군요."
네, 하고 남자가 대답했다.
"도무지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남들의 권유로 주식에 손을 대기도 하고 장사도 해 보았지만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얼마 남지 않은 퇴직금마저 몽땅 날릴 판이어서 답답한 나머지 이렇게 상담을 청하러 왔습니다." - P47

"바로 그 점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만 부당하게 고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요. 실은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다거나 하는 좋은 일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현재의 괴로운 상황 탓으로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그런 상태를 우리는 마음에 더러움이 쌓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더러움 때문에 지금의 사태가 벌어진것입니다. 먼저 그 더러움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마지마는 렌자키의 여전한 말솜씨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얼마간 좋은 일도 있었을 거라고 찔러봐서 만일 상대가 대뜸 수긍할 경우에는 그런 탓에 방심한 나머지 마음에 더러움이 쌓였다고 할 것이다. - P48

"그럴 겁니다. 마음의 더러움이 아주 조금이나마 정화된거예요. 이걸 계속하다 보면 반드시 옛날처럼 좋은 일들이 일어날겁니다."
남자가 눈을 빛내며 다다미에 이마가 닿을 만큼 머리를 조아렸다.
한건 했네, 하고 마지마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입회금과수행료를 합해 120만 엔 이 남자에게는 좀 더 우려낼 수 있을 듯하다. ‘구아이의 별‘ 무늬가 새겨진 50만 엔짜리 항아리도 권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P49

모리야는 자신의 잔에 위스키를 콸콸 따랐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나카가미가 죽었을 때는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끝나나보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끝나기는커녕 전부 렌자키가 말한 대로 됐어요."
"정말 대단한 친구야."
마지마가 감탄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던데 그 친구는 오히려 반색하는 거야. 이렇게 효과적인 선전은 없을 거라면서 말이지. 그 친구를 적으로 돌리면 안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 - P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4편 권태와 인간의 본질적 특성


157-(152) 자존심. 호기심은 허영일 뿐이다. 대개의 경우알려고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다를 건너 여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여행에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나눌 희망도 없이 단지 보는 즐거움만을 위해서라면, - P92

160-(131) 권태. 열정도 할 일도, 오락도, 집착하는 일도없이 전적인 휴식 상태에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 참기 어려운일은 없다. 이때 인간은 자신의 허무, 버림받음, 부족함, 예속, 무력, 공허를 느낀다. 이윽고 그의 마음 밑바닥에서 권태, 우울, 비애, 고뇌, 원망, 절망이 떠오른다. - P93

162-(94) 인간의 본성은 전적으로 자연이다. omne animal.¹
인간이 자연적인 것²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없애지 못하는 자연적인 것도 없다.

1) <모든 짐승들> 창세기 7: 14와 『구약 외전』. <벤시락의 지혜> 13:18을 참조
2) 여기서는 <천성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자연>도 인간을 비롯한모든 피조물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천성(적인 것)>이라는뜻으로 쓰인다. - P93

167-(323) 나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행인들을 보기 위해 창가에 서 있는데 내가그곳을 지나간다면 그는 나를 보기 위해 창가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는 유독 나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그 사람의 미모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다. 만약 천연두가 그를 죽이지는 않고 그 사람의 아름다움만을 죽인다면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테니까.
만약 나의 판단력, 나의 기억력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나자신을 잃지 않고도 이 특성들은 잃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육체 안에도 정신 안에도 있지 않은 이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 특성들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므로 그것들이 나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특성들에 의하지 않고 어떻게 육체나 정신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한 인간의 영혼의 실체를 추상적으로, 그 안에 있는 특성과는 상관없이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있을 수도 없고 또 옳지도않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특성만을 사랑한다.
그렇다면 지위나 직책으로 인해 존경받는 사람들을 경멸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단지 빌려온 특성들로 인해 사랑하므로 - P94

168-(118) 다른 모든 재능들을 규제하는 주된 재능. - P95

169-(147) 우리는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고유의 존재 안에 지니고 있는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관념속에서 하나의 상상적 삶을 살기를 바라고 이것을 위해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상상적 존재를 아름답게 꾸미고 보존하기에 힘쓰며 실제의 존재는 소홀히 하는 것이다. (후략). - P95

제5편 현상의 이유

171-(299) 보편적이고 유일한 규칙은 일반적인 일에 있어서는 한 나라의 법이고, 그 외의 일에 있어서는 다수이다.
이것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다수 안에 있는 힘으로부터이다.
그리고 다른 데서 힘을 얻는 왕들이 대신들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것은 여기서 비롯된다.
아마도 재산의 평등은 옳다. 그러나 정의에 복종하는 것을힘으로 강요할 수 없었으므로 힘에 복종하는 것을 정의로운것이 되게 하였다. 정의를 힘있는 것으로 만들 수 없었으므로힘을 정의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정의와 힘이 결합하여 평화를 이루게 하였다. 이 평화야말로 최고선이다. - P96

172-(271) 지혜는 우리를 어린이로 돌아가게 한다. Nisiefficiamini sicut parvuli.¹

1) <만일 너희가 마음을 돌이켜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 18:3). - P97

175-(878) Summum jus, summa injuria.²
다수(數)는 최선의 길이다. 다수는 명백하고 복종시킬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무지한 사람들의 의견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었다면 사람들은 힘을 정의의 손에 맡겼을 것이다. 그러나 힘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분명한 특성이기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데 반해, 정의는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정신적 특성이므로 사람들은 정의를 힘의 수중에 넘겼다. 이렇듯 사람들은 따르지 않을 수없는 것을 정의라고 부른다.
(후략).

2) <극도의 권리는 극도의 불의(義)이다.) 샤롱이 테렌티우스, 자학하는 자, IV, 5에서 인용한 것을 재인용했다. - P98

176-(297) Veri juris³
우리는 이제 진정한 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그것이 있었다면 그 나라의 풍습을 따르는 것을 법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의를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힘을 발견하였다 등등.

3) <진정한 법>(키케로, 『의무론 De Officis』, III, 17). 몽테뉴, Ⅱ, 1에서 인용된 것이다. - P99

179-(315) 현상의 이유. 이것은 희한한 일이다. 비단옷을입고 일고 여덟 명의 하인을 거느린 사람을 내가 존경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내가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면 그는 나를 매질할 것이다. 저 옷차림, 이것은힘이다. 훌륭한 장구를 걸친 말이 다른 말과 비교될 때와 마찬가지이다. 몽테뉴가 거기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보지 못한 것은, 그리고 사람들이 그 차이를 발견하는 것을 이상히여기고 그 이유를 알려고 한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는 말했다. <참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 P100

181-(336) 현상의 이유. 배후의 숨은 생각을 가져야 하고, 설사 민중처럼 말은 하더라도 이 생각으로 만사를 판단해야 한다. - P100

182-(335) 현상의 이유.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환각 속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민중의 의견은 그 자체가 건전하다 해도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리가 있지 않은 곳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리는정녕 그들의 의견 안에 있지, 그들이 생각하는 곳에 있지 않다. 귀족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출생이 실제적으로 우월하다는 등등의 이유에서가 아니다. - P101

186-(329) 현상의 이유. 인간의 결함은 사람들이 수많은미(美)를 만들어내는 원인이다. 가령, 비파를 잘 연주할 줄[모르는] 것은 단지 우리의 결함 때문에 불행이 된다.

187-(334) 현상의 이유. 정욕과 힘은 우리의 모든 행위의 원천이다. 정욕은 자발적인 행위를, 힘은 타의적인 행위를하게 한다. - P102

189-(536) 인간은 바보라는 말을 되풀이해서 들으면 그렇게 믿도록 되어 있다. 또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도 스스로 그렇다고 믿는다. 오직 인간만이 내적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화를 올바르게 규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Corrumpunt mores bonos colloquia prava."우리는 될 수 있는한 침묵해야 하고 또 우리가 진리 되심을 아는 신과 대화해야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를 스스로에게 확신시킨다.

5) <악한 교제는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린도 전」, 15:33). - P103

193-(322) 귀족 신분은 큰 이득이다. 열여덟 살에 성공의길이 열리고 이름이 알려지고 존경받는다. 다른 사람 같으면쉰 살이 되어서나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수고없이 30년을 덕본다. - P105

197-(303) 세계를 지배하는 여왕은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힘이오 그러나 생각이 곧 힘을 사용하는 여왕이오 힘이야말로 생각을 만들어내오 우리의 견해로는 유연함은 좋은 것이오 왜냐고? 줄 위에서 춤을 추려는 사람은 혼자일테니까. 그런데 나는 이것을 좋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모아 더 강한 당파를 만들 것이오. - P107

200-(311) 사람들의 생각과 상상(想像) 위에 세워진 권력은 한동안 지배하며 또 이 권력은 온화하고 자발적이다. 힘으로 세워진 권력은 항상 지배한다. 이렇듯 사람들의 생각은 세계의 여왕과 같지만 힘은 세계의 폭군이다. - P108

204-(306) 공국(公國), 왕국, 행정직은 실제적이고 필연적인 것이므로(힘이 모든 것을 재배하기 때문에) 어디서나, 어느때나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사람을 그 지위에 오르게하는 것은 사람의 우연한 생각에 의한 것이므로 그것은 영속적인 것도 아니고 변하게 마련이다 등등. - P109

208-(320) 세상의 가장 불합리한 것이 인간의 착란으로인해 가장 합리적인 것이 된다. 한 나라의 통치를 위해 여왕의 장남을 선택하는 것보다 비합리적인 것이 어디 있는가. 배를 지휘할 사람으로 가장 훌륭한 가문의 사람을 선택하지는않는다. 이 법은 우스꽝스럽고도 부당하다. 그러나 사람은 지금도 그렇고 항상 그럴 것이므로 이 법은 합리적이고 정당한것이 된다. 왜냐하면 누구를 선택한단 말인가. 가장 덕 있고가장 학식 있는 사람인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즉각 난투극을 벌일 것이다. 누구나 이 덕 있고 학식 있는 사람이 바로자기라고 주장할 테니까. 그러니 이 자격을 무엇인가 이론의 여지 없는 것에 결부시키자. 그것은 왕의 장남이다. 이것은 명백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성(理性)은 이보다 더 잘할수가 없다, 내란이야말로 최대의 재난이므로. - P110

제13편 이성의 복종과 이용

352-(269) 이성의 복종과 이용, 참된 기독교는 이것으로성립된다.

353-(224) 성찬 등등을 믿지 않은 이 어리석음을 나는 얼마나 혐오하는지! 복음이 진실되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신이라면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 P190

356-(696) Susceperunt verbum cum omni avididate, scrutantesScripturas, si ita se haberent.¹

1)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사도행전』17:11). - P191

359-(270) 성 아우구스티누스: 이성은 마땅히 복종해야할 경우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 한 결코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 P191

362-(384) 반론(反?)은 진리의 나쁜 표시이다.
어떤 확실한 것들이 반대되는가 하면,
어떤 허위의 것들이 반대 없이 받아들여진다.
반론이 허위의 표시가 되지 않고 또 무반론이 진리의 표시가 되지도 않는다.

363-(747, 2) 영속성의 장 속에서 두 종류의 인간을 보라. - P192

366-(255) 신앙심은 미신과 다르다.
미신에 이르도록 신앙심을 고수하는 것은 그것을 파괴하는것이다.
이단자들은 우리에게 이 미신적인 복종을 비난하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비난하는 바로 그것을 그들이 행하는 것과 같......
성체(聖體)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체를 믿지 않는rar-불신.
명제들³을 믿는 미신, 신앙 등등.


3) 얀센의 저서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추출된 5개 명제를 가리킨다. 예수회는 이것을 이단으로 규정함으로써 이들 사이의 갈등은 더욱 격화되었다. - P193

368-(253) 두 극단: 이성을 배제하는 것과 이성만을 인정하는 것. - P194

373-(267) 이성의 최후의 한걸음은 자기를 초월하는 무한한 사물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데까지 이르지 않는다면 그 이성은 허약할 뿐이다.
자연적 사물들도 이성을 초월한다면 하물며 초자연적 사물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것인가. - P1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곱수의 증명


루이스 캐럴은 어떤 제곱수 둘을 합한 값에 2를 곱한 값은 항상 다른 2개의 제곱수의 합계로 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기록한 적이 있다. 하지만곧 그는 자신이 기본적인 곱셈공식을 간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래는 루이스캐럴이 발견했다고 착각한 수학적 사실의 다

(중략).

어떤 2개의 제곱수의 합에 2를 곱한 값을 다른 2개의 제곱수의 합계로 표시할수 있다는 사실을 곱셈 공식을 이용해 입증해보라.
<베갯머리 문제>라는 책에서 루이스 캐럴은 이 아이디어를 좀 더 확장한 문제를 제시했다. 3개의 제곱수의 합계에 3을 곱한 값을 4개의 제곱수의 합으로 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라는 문제였다. - P76

추에 매달린 원숭이


1893년 루이스 캐럴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동료 교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소개했다.
건물 지붕에 고정된 수레바퀴(도르래) 위로 밧줄이 드리워져 있다. 밧줄의 한쪽 끝에는 추가 묶여 있고, 다른 한쪽에는 원숭이가 매달려 있는데, 현재 양쪽밧줄의 균형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상태이다. 이때 원숭이가 밧줄을 타고 위로올라가기 시작한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 P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차


1925년 우메하치 공장에서 만들어진 C51형 기관차는 같은시기, 같은 공장에서 제작된 3등 객차 3량과 식당차, 2등 객차, 2등 침대차 각각 1량씩. 그 외 우편물이나 짐을 싣는 화차3량, 모두 아홉 칸에 얼추 200명 남짓한 승객과 십만을 넘는통신, 이에 얽힌 숱한 가슴 아픈 사연들을 싣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오후 2시 반이면 피스톤을 흔들거리며 우에노에서 아오모리를 향해 달렸다. - P84

바로 작년 겨울, 시오타가 데쓰 씨를 고향으로 돌려보냈을 때의 일이다.
데쓰 씨와 시오타는 같은 고향에서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듯하고, 나도 시오타와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한방을 쓴 사이다 보니, 가끔씩 연애 이야기를 들었다. - P85

그럭저럭 나도 시오타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함께 도쿄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 후 삼 년이 지났다. 이 기간이 내겐 힘든 시절이었지만 시오타는 그렇지 않았던 듯, 매일 태평스레 지낸 것 같다. 내가 처음 방을 빌린 집이 대학 바로 근처였기 때문에, 시오타는 입학 당시엔 그나마 두세 번 들르기도했지만, 환경도 사상도 소리를 내며 상반되어 가는 두 사람에게 예전처럼 거리낌 없는 우정은 도저히 바랄 수 없었다. - P85

그 무렵은 나도 어떤 못 배운 시골 여자와 결혼했고 새삼시오타의 그 사건에 가슴 설레는 풋풋한 기분을 점차 상실해가던 터였으므로, 시오타의 갑작스런 방문에 얼마간 허둥거리면서도 그가 방문한 저의를 꿰뚫어 보는 걸 잊지 않았다. 한소녀의 출분을 친구들에게 퍼뜨리고 다니는 일은 얼마나 그의 자존심을 만족시켰던가.  - P86

103호 열차는 차가운 빗속에서 검은 연기를 토하며 발차시각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열차 창문을 하나하나 꼼꼼히 찾아다녔다. 데쓰 씨는 기관차 바로 옆 3등 객차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삼사 년 전 시오타의 소개로 한 번 만난 적이 있지만, 그때에 비해 낯빛이 무척 하얘지고 턱 언저리도 통통하니 살이 올랐다. - P87

데쓰 씨와 아내는 날씨에 대해 두세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대화가 끝나 버리자, 다들 한층 하릴없이 무료해졌다. 데쓰 씨는 창가에 얌전하게 올린 토실한 손가락 열 개를 괜스레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한곳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 P87

나는 전기 시계 근처에 멈춰 서서 열차를 바라보았다. 열차는 비에 흠뻑 젖은 채, 검푸르게 빛났다.
(중략).
몇 해 전 나는 어느 사상 단체에 잠시나마 관계한 적이 있고 그 후 얼마 못 가 변변찮은 변명을 내세워 그 단체와 헤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병사를 눈앞에서 지켜보고, 또한 창피를 당하고 더럽혀진 채 귀향하는 데쓰 씨를 바라보노라니, 나의 그런 변명이 서고 안 서고를 따질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 P88

(전략). 그러나 미련스러운아내는 열차 옆구리에 내걸린 파란 철판에 물방울이 그득한문자를 요즘 갓 얻은 어설픈 지식으로, FOR A-O-MO-RI, 하고 나직이 읽고 있었다. - P89

참새

이부세 마스지¹에게. 쓰가루 말로


1) 井伏鱒二(1898~1993). 소설가. 학창 시절, 이부세의 단편 「도롱뇽을 읽고 감명받은 다자이는 그를 찾아갔으며, 두 사람은 일본 문단의 대표적인 사제지간으로 남아 있다. - P112

한 무리 아이들, 드넓은 벌판에서 불장난에 푹 빠져 있었어. 봄이 되자 눈 녹아 넓디넓은 눈벌판 여기저기, 너른 들판누르스름한 잔디밭, 푸른 새싹 돋아나, 우리 고향 아이들, 누르스름하게 시든 잔디에 불 질러, 들불놀이 했어. 그리고 서로제각기 들불을 만든 아이들, 두 편으로 나뉘었어. 한쪽씩 대여섯 명, 소리 맞춰 노래했어. - P113

이렇게 노래하자, 건너편에서 구슬픈 가락으로 다시 노래했어-삼나무 불붙어 갈 수가 없어.
그러자 이쪽 편에서는 더더욱 갖고 싶어 노래했다.
-그 불 피해 날아서 오렴.
건너편에서 참새 한 마리 풀어 보내 줬어. 다키는 참새, 양쪽 팔을 날개처럼 펼쳐 팔락팔락팔락, 날갯짓 소리를 입으로 흉내 내며 뜨거운 들불 피해 날아 왔다지.
이건 우리 고향, 아이들 놀이야 - P114

다키를 갖고 싶어 했어. 가운데 참새 다키, 노랗게 타오르는들불 너머로 밉살맞은 마로사마를 째려봤어.
마로사마, 너글너글한 목소리로 다시 노래했어.
-가운데 참새 갖고 싶어.
다키는 아이들에게 뭔가 소곤소곤 이야기했어. 아이들, 그걸 듣고 키득키득 웃으며 노래했어. - P115

어느덧 밤이 되었어. 들판은 어둑해지고 추워졌어. 아이들은 제각기 집으로 돌아가고, 제각기 할머니의 고타쓰 속으로 기어들었어. 늘 밤이면 밤마다 똑같은 옛이야기를 하고, 듣는거야. - P116

여행


나비

노인은 아니었다. 스물다섯을 넘겼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노인이었다. 보통 사람의 일 년 일 년을, 이 노인은 넉넉히세 배로 살았다. 두 번, 자살에 실패했다. 그중 한 번은 정사(情死)였다. 세 번, 유치장에 들어갔다. - P197

노인은 지금, 병상에 있다. 방탕에서 얻은 병이었다. 노인에겐 생활이 궁하지 않을 정도의 재산이 있었다. 하지만 방탕하게 돌아다니기에는 부족한 재산이었다. 노인은 지금 죽는 걸억울하게 여기지 않았다. 근근이 이어 가는 생활을, 노인은 이해할 수 없다. - P198

먹고 싶은 건 뭐든지, 라고 하자, 팥죽, 하고 대답했다. 노인이 열여덟 살에 처음 소설이라는 걸 썼을 때, 임종의 노인이 팥죽을 먹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묘사를 한 적이 있다.
팥죽은 만들어졌다. 죽에 삶은 팥을 뿌리고, 소금으로 맛을 낸 거였다. 노인 고향의 맛있는 음식이었다. 눈을 감고 똑바로 누운 채 두 숟가락 후루룩 먹고는, 그만 됐어, 했다. 그 밖에 다른 건? 하고 묻자, 씩 웃으며, 바람피우고 싶어, 라고 대답했다. - P198

도적


올해 낙제가 뻔했다. 그래도 시험은 본다. 보람 없는 노력의아름다움. 나는 그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렸다. 나는 오늘 아침만큼은 일찍 일어나 참으로 일 년 만에 학생복을 걸치고,
국화 문장(紋章)이 빛나는 크고 높다란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쭈뼛쭈뼛 들어갔다. 곧장 은행나무 가로수가 있다. - P199

찌푸린 하늘 아래 연못 수면은 하얗게 빛나고, 간지러운 듯 잔물결이 일렁거렸다. 오른발을 왼발 위에 가볍게 얹고 나서, 나는 중얼거린다.
-나는 도적.
앞의 샛길을 대학생들이 한 줄로 나란히 지나간다. 끊임없이 줄줄 흐르듯 지나간다. 모두가 고향의 자랑. 선택받은 수재들, 노트의 똑같은 문장을 읽고, 그걸 너나없이 모든 대학생들이 한결같이 암기하려고 애썼다. - P200

나는 오늘 처음, 이 남자를 보았다. 몸집이 상당히 컸고, 나는 그의 미간 주름에 나도 모르게 위압감을 느꼈다. 이 남자의 제자로는, 일본 제일의 시인과 일본 제일의 평론가가 있다. 일본 제일의 소설가. 나는 그걸 생각하고, 몰래 뺨이 화끈거렸다. - P201

칠판에는 프랑스어가 대여섯 줄. 교수는 교단의 팔걸이의자에 추레하게 앉아, 자못 언짢은 듯 단언했다.
-이런 문제로는 낙제하고 싶어도 못 하겠지.
대학생들은 낮게 힘없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교수는 그러고 나서 도통 알 수 없는 프랑스어를 두세 마디 중얼거리더니, 교단의 책상 앞에서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 P201

선생님, 낙제만은 면하게, 따위는 쓰지 않는다. 두 번 되풀이해서 읽어 잘못 쓴 데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 왼손엔 외투와 모자를 들고 오른손엔 한 장의 답안을 들고 일어섰다. 내 뒤의 수재는 내가 일어선 탓에, 몹시 허둥거렸다. - P202

- 나는 도적. 희대의 반골. 일찍이 예술가는 사람을 죽이지않는다. 일찍이 예술가는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나. 하찮고 약삭빠른 동료.
대학생들을 잇달아 밀어제치고, 간신히 식당 입구에 다다랐다. 입구에 붙여 놓은 작은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오늘, 여러분의 식당도, 외람스럽습니다만 창업 3주년을맞았습니다. 이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조촐하나마 봉사해 드리고자 합니다. - P203

결투

외국 흉내를 낸 게 아니었다. 과장이 아니라, 상대를 죽이고 싶다고 소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동기는 심각하지 않았다. 나를 꼭 빼닮은 남자가 있어, 이 세상에 똑같은 건 두 개는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 서로 미워한 것도 아니고, 그 남자가내 아내의 옛 애인인 데다 만날 두 번인가 세 번 그 사실을 상세히 자연주의풍으로 이웃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니기 때문도 아니었다. - P204

나는 카페에 들어가서도 결코 기세 좋게 굴지 않았다. 방탕에 지친 척했다. 여름이면, 시원한 맥주를, 이라 했다. 겨울이면, 따끈한 술을, 이라 했다. 내가 술을 마시는 것도 단지 계절 탓이라 여기게 했다. 마지못한 듯 술을 씹어 넘기면서, 나는 미인 여급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 P203

결투의 밤, 나는 ‘해바라기‘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나는 기다란 감색 망토를 걸치고 새하얀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나는 한 카페에 연달아 두 번은 가지 않았다. 으레 오 엔짜리 지폐를 내는 걸 수상쩍게 여길까 두려웠다. ‘해바라기‘ 방문은 두 달 만이었다. - P2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

공감의 작동 원리

론 하비브 Ron Havirv와 에드 카시 Ed Kashi는 고통을 목격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이 회피하려는 대상에 끌립니다." 카시의 말이다. 포토저널리스트인 두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장례식과 폭동,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한 모든 것을 기록해왔다. - P79

(전략).
하비브와 달리 카시는 자신의 감정을 직면한다. "위대한 사진가 중에는 ‘나는 내가 할 일을 하러 온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나처럼 감정에 많이 흔들리지 않지요." 카시도 그런 사람들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나는 자주 울게 됩니다." - P81

인간의 감정은 어떻게 결정될까

(전략).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Kurt Lewin은 인간의 행동도 이런 식으로 바라보았다. 1930년대에 레빈은 물리학 법칙에 근거해 자신의 거대이론을 구축했다. 그는 사람들이 심리적 힘 또는 동인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접근 동인approach motives에 의해 특정 행동으로 다가가게 이끌리고, 회피 동인voidance motiver에 의해 특정행동에서 멀어지게 이끌린다는 것이다.¹ - P83

2장 공감의 작동 원리

1 여기서 나는 레빈의 용어를 정확히 옮기지 않고, 데일 밀러와 데브라 프렌티스가 그와 관련하여 쓴 더 단순한 용어를 쓴다. Dale Miller andDeborah Prentice, "행동 변화의 심리적 지렛대Psychological Levers of BehaviorChange", in Behavioral Foundations of Policy, ed. E. Shafir(New York: Russell Sage Foundation, 2010). - P422

레빈은 이 이론을 가지고 동료 압박, 정치적 혼란 그리고 그사이의 모든 것을 설명했다. 레빈에 따르면 모든 선택은 우리 마음속의 줄다리기를 반영한다. - P85

1908년에 심리학자 윌리엄 맥두걸 WilliamMcDougall은 감정이 아주 오래전에 프로그램된 ‘본능‘이라고 주장했다.³ 맥두걸에 따르면 우리가 나무망치로 무릎을 칠 때 무릎을 움직일지 말지 선택하지 않듯이, 언제 두려움을 느낄지 혹은 욕망이나 분노를 느낄지도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 P85

3York: Dover, 2003; first published in 1908).
William McDougall, An Introduction to Social Psychology (New - P423

맥두걸은 공감의 본능이 긍정적인 힘이자, "동물사회를 결속시켜주는 시멘트"라고 믿었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은 그보다 더 암울한 관점이 우세했다. 1785년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선한 열정은 허약하며 항상 맹목적이다"라고 썼다.⁵ - P86

5 Immanuel Kant, Groundwork of the Metaphysics of Morals (NewHaven, Conn.: Yale University Press, 2002; first published in 1785)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윤리형이상학 정초》, 아카넷, 2018. - P4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