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정신의학자는 대개 정신질환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이해하고자 했다. 정신질환이라고 알려진 것은 가족 내부 또는/그리고 외부에서 사회적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일부 저자는 바로 이 특징을 반정신의학의 본질로 보았다. - P50
이런 사회적 분석은 정신보건 서비스를 관장하는 체제 전체로 확장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권력구조와 ‘일탈 억제‘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 방향의 급진적 정신의학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예컨대 서양판 문화혁명인 권력구조 쟁론에서 나타난 여러 형태의 마오쩌둥주의, 그리고 1968년 운동에서 생겨난 새로운 반권위주의관념을 하나로 아울렀다. 이처럼 반정신의학은 비판적인(또한 자기비판적인) 동시에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이었다. - P51
이 용어 내지 꼬리표를 좀더 깊이 살펴보면 유용하다. D. B. 더블은 정신의학의 다양한 ‘지도자‘가 취했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여러 갈래로 세분한다.²⁴ - P51
24 D. B. Double ed., Critical Psychiatry. The Limits of Madness, London:Palgrave, 2006, p.31D. B. Double, ‘Historical Perspectiveson Anti-psychiatry‘. - P503
우리는 또 반정신의학이 무엇에 반대했는지에 따라 그것을 이해할수 있다. 더블을 다시 인용하면 "반정신의학의 본질은 정신의학 자체를 문제의 일부로 간주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한다."²⁶ - P52
26 D. B. Double, The History of Anti-psychiatry: An Essay Review‘, History of Psychiatry 13, 2002, p.235. 콜린 존스는 "[반정신의학] 운동의 핵심에 있는 거부하고 뒤엎는 행동", 다시 말해 "반정신의학 안에 있는 ‘반(反)‘이라는 요소"에 강조점을 두었다. Gijswijt-Hofstra and Porter, Cultures of Psychiatry, p.285에 수록된 Colin Jones, Raising the Anti. Jan Foudraine, Ronald Laing and Anti-psychiatry‘. - P503
반정신의학은 좀더 일반적인 형태의 방법론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당시에는 기존 지식의 권력구조 (그리고 이 경우 의료의 권력구조)를 뒤엎고 부정하려는 전반적인 시도가 있었다. 이 ‘반(反)‘이라는 요소가 이 운동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했다.²⁹ - P53
29 Jones, ‘Raising the Anti‘, p.285. - P503
오늘날 이탈리아에서는 대체로 바잘리아 자신은 반정신의학자가 아니었다고 본다.³⁷ 종종 되풀이되는 이 진술은 ‘반정신의학‘을 정신질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평이 나쁘거나 극단적인) 운동이나 사조로 비꼬고단순화하는 관점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어쩌면 뜻밖에도 극소수의 반정신의학자는 실제로 정신질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P55
37 역으로, 이탈리아 밖에서는 (특히 영어권에서는) 그를 반정신의학자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 P505
반정신의학을 실천한 사람들은 (기자나 이 운동의 추종자들과는 별개로)대개 정신질환의 존재를 부정하기는커녕 정신질환을 대단히 심각하게받아들였으며 그 근원과 그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려 했다.³⁸ - P56
38 토머스 사스는 이와는 다른 입장을 취했는데, 본인이 이를 거부하고 그래서반정신의학 이면에 있는 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그의 연구를 널리 읽었다. 사스가 쓴 글 한 편이 프랑코 및 프랑카 바잘리아가 1975년에 엮은 문집에 다음과 같이 포함돼 있다. Crimini di pace. Ricerche sugli intellettuali e sui tecnici come addettiall oppressione, Milan: Baldini Castoldi Dalai, 2009 (원래의 판본은Einaudi, 1975), PP.385-98에 수록된 ‘La psichiatria a chi giova?" - P505
반정신의학의 근원이자 거기에 대중적 기반을 부여한 저 운동이 종언을 고하면서 전통적 정신의학자는 권력의 고삐를 다시 쥐고자 했고(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반정신의학을 생각에서 떨쳐내거나 아예 무시하고자 했다. 그 결과 반정신의학은 오늘날 대단히 단순하게 ‘정신질환의 부정‘으로 묘사되는 때가 많고 아예 언급조차 안 되기도 한다. 급진적 정신의학자(또는 그 지지자)와 반(反)반정신의학자가 사용했던 담론이 하나로 수렴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정신보건 체제 전반에 나타난 일련의 실패를 모두 반정신의학 탓으로 돌리는 전술도 가능하다. 이런 방향에서 전개된 것이 ‘반(反)반정신의학 운동 이론이다.⁴³ - P57
43 Crossley, Contesting Psychiatry, p.241. - P506
반정신의학은 오늘날의 세계에선 이해하기도 연구하기도 어려운 대상이다. 전성기일 때 그것은 시대 분위기와 매우 잘 맞는 절충주의적 운동이자 시대정신이었다. 그것은 또 파악하기 어려운 대상이자 구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어구였으며, 한계를 넓혀가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 P58
반정신의학은 오늘날의 세계에선 이해하기도 연구하기도 어려운 대상이다. 전성기일 때 그것은 시대 분위기와 매우 잘 맞는 절충주의적 운동이자 시대정신이었다. 그것은 또 파악하기 어려운 대상이자 구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어구였으며, 한계를 넓혀가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한편으로는 끔찍한 체제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기도 했다. - P58
그러면 우리는 반정신의학이라는 용어를 이런 잘못된 설명과 부정적 의미로부터 구해낼 수 있을까? 이런 시도를 한 사람이 몇몇 있다. - P60
공공시설과 제도-정신질환자 보호소와 가족
비판적 정신의학의 옹호자들은 대개 전통적 정신의학 시설과 관련하여 대단히 명확하게 급진적인 태도를 취했다. 많은 사람이 정신질환자 보호소를 모두 폐지하거나 폐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부르짖었고(바잘리아가 1960년대 초반 이후 공개적으로 취한 입장이다)그와 동시에 정신질환자 보호소 내부에서 그것을 개혁하거나 인도적으로 바꾸고자, 또는 그곳을 생지옥 아니면 ‘실용적 유토피아‘의 사례로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 P62
비판적 정신의학은 1960년대 말 전세계에서 집중포화를 받은 또 하나의 제도인 가족에 대한 급진적 비판과도 관계가 깊었다. 가족은 정신질환이 생성되는 장소, 정신질환이 설명될 수 있는 유일한 배경이라는 관점을 지닌 사람이 많았다. 랭의 연구에서는 조현병자 본인만큼이나 그 가족을 깊이 조사했다. - P63
비판적 정신의학에서는 자아의 해방이 가능하다고 보았는데, 이 또한 1968년 철학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정신질환이 있다고 묘사되는 사람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 사람들은 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자기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 P64
사회와 정치
정신질환과 자본주의가 서로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인과관계에서도 그렇고 정신질환자 보호소 체제의 존재 이유로서도 그렇다는사실이 이 운동의 여러 갈래를 통해 그 윤곽을 드러냈다. 바잘리아 자신이 정신질환자 보호소에 대한 한 가지 사회적 분석을 내놓으면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 배척되기 때문에 ‘앓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⁶⁰ - P65
60 Basaglia, L‘istituzione negata (1968), p.33 - P508
그러나 정신질환자 보호소 내 사람들에 대한 바잘리아의 사회적 분석은 어떤 직접적 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고리치아에서 (그리고 그 밖의 정신질환자 보호소에서) 그가 실제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⁶¹ - P65
61 아울러 예컨데 August Hollingshead and Fredrick Redlich, Classi socialie malattie mentali, Turin: Einaudi, 1965 (1958)E - P508
반대하는 운동인가, 지지하는 운동인가?
이것은 어떤 종류의 운동이었고,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이것은 전문가의 운동, 정신의학자와 간호사의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는 환자의 운동이었다. - P66
이것은 사회적 운동이고 정치적 운동이었을까? 어느 정도는 특히 1968년 이후에는 그랬다. 1968년 이전에는 지식인, 정신의학자, 일부행정가와 정치가, 일부 학자, 그리고 몇몇 외진 곳에서는 소수의 간호사와 환자에 국한된 운동이었다. 1968년 이후 이 운동은 크게 확장하여 학생, 노동자, 기자, 그리고 비판적 정신의학의 이념과 실제에 매력을 느낀 각양각색의 사람을 끌어들였다. - P67
한편으로 보면 이 운동은 반대하는 운동이었다. 추종자들은 정신병원에 반대했다(때로는 원칙적으로 정신병원 전반에 반대했고 때로는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구체적인 방식에 반대했다). 이 운동은 정신의학 체제에 반대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신의학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흐르는 때도 많았다. - P68
실용적 또는 실제적 유토피아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 운동에서는 일련의 ‘실용적인‘ ‘살아 있는‘, 또는 ‘실제적인‘ 유토피아를 만들어 환자를 보살피는 대안적 형태를 실험하고 세상에 급진적 변화를 알리고자 했다. - P70
비판적 정신의학에서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러 가지 생각과 구호를 중심으로 해서 어렵사리 운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은 국제적이었지만 운동이 뿌리내린 각국에서는 자국 특유의 성격뿐 아니라 지방색과 지역색을 띠고 있었다. - P71
제11장
『부정되는 공공시설』의 기원
당신의 책・・・・・・ 은 그 자체로 전개되는 책의 보기 드문 예입니다. 당신의 책은 내부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긴장 상태를 통해 생명을 이어가고, 자신의 자기파괴적 성향을 통해 자신을 지탱합니다. 줄리오 볼라티가 프랑코 바잘리아에게(1968년 1월 26일지)
조반니 제르비스와 에이나우디
『부정되는 공공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의 기원과 제작과 탄생에 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그렇지만 고리치아 사람들과 이 책의출판사인 에이나우디를 연결한 사람이 조반니 제르비스였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한다.¹ - P197
제11장 『부정되는 공공시설』의 기원
1 그렇지만 이 연결고리는 가볍게 처리되는 때가 많고 일부 설명에서는 완전히 무시되기도 하는데, 이는 필시 제르비스와 나머지 고리치아 사람들, 또 고리치아 이후의 바잘리아 사람들 사이에 오랫동안 이어진 다툼과 앙금 때문일것이다. - P537
에이나우디와 고리치아는 여러 경로를 통해 관계를 맺었는데, 처음에는 제르비스를 통해서였다. - P199
1967년 2월에 제르비스는 『부정되는 공공시설』로 출간될 책을 "우리가 고리치아에서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⁵ 또 이때 이 책이누오보 폴리테크니코 시리즈의 한 권으로 정해진 것이 분명하다. - P199
5 1967년 2월 1일자, 편집위원회, 메모. - P137
「정신의학이란 무엇인가?』는 임시로 만든 작은 출판사를 통해 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부정되는 공공시설』은 사정이 그와는 완전히 달라질 참이었다. 고리치아는 대성공을 앞두고 있었다. - P204
흥미롭게도 이 편지는 부정되는 공공시설의 저자/편집자로 다른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보여준다. 이 책은 에퀴페의 전체 구성원과 기자, 환자,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든 집단 작업의 결과물임이 확실하다. 또 제르비스가 편집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이 분명하고, 볼라티, 바잘리아, 프랑카 옹가로를 비롯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 P205
『부정되는 공공시설』의 계약서에는 1968년 2월 제르비스와 바잘리아가 공동으로 서명했고, 저작권료는 모두 고리치아에 있는 환자들의 클럽 앞으로 돌아갔다. 책은 1968년 3월에 나왔다. 안토니오 슬라비치는 나중에 조반니 제르비스가 새로 나온 책을 한 무더기 가지고 고리치아로 돌아온 날에 대해 적었다. 책에서 잉크 냄새가 났다. - P206
바잘리아는 에퀴페와 환자들을 대신하여 그 과정에서 도움을 준 볼라티에게 직접 고마움을 표했다("저와 고리치아의 모든 사람을 위해 해주신모든 일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 책과 관련된 홍보 활동은 이탈리아 곳곳에서 청중이 가득 모이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렵고 힘든 일이기도 했다. - P207
책 자체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집필되었고, 고리치아에 있는 바잘리아의 아파트와 병원에서 논의되고 취합되었다. 에퀴페의 구성원 전원및 프랑카 옹가로, 미켈레 리소, 줄리오 볼라티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의견이 들어갔다. 이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글로 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작업은 목소리와 글, 토론으로 이루어진 그림 맞추기 퍼즐 같았다. - P209
『부정되는 공공시설』은 꼭 맞는 때에 나온 꼭 맞는 책, 시기가 딱 맞아떨어진 책이었다.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여덟 가지 판이 나왔는데 그중 두 가지가 1968년에 나왔고, 6만 권이 팔렸는데 그중 5만 권이 1968년부터 1972년까지 팔렸다."³⁵ - P209
35 Giannichedda, "Introduzione‘, p.xxv, 출판사는 1968년에 출간된 3판까지의 판매부수가 1만 2500 부라고 보고했다. 1972년 말에 이르러 이 숫자는 5판에 2만 7000부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에이나우디 기록보관소). 1975년 12월에는 2만 5000부 정도가 더 판매된 것으로 보고되어, 7년간 총 7판에 5만2000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1974년까지 8판에 걸쳐 총 6만 부가 팔렸다는 에이나우디의 공식 통계와도 비슷하다. - P541
『부정되는 공공시설』은 1968년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반영하기도 했다.³⁶ - P210
36 다음 장에서 다루는 1968년에 관한 부분과 Robert Gildea, James Mark andAnette Warring, eds, Europe‘s 1968. Voices of Revolt, Oxford: OxfordUniversity Press, 2013 - P541
『부정되는 공공시설』 이후 에이나우디에게 바잘리아는 흥행 보증수표였다. 그는 남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그곳의 반공공시설 운동에 관한 연구를 수행할 목적으로 250만 리라라는 거액의 선금을 받았다. 이 여행과 관련하여 약속된 책은 결국 출간되지 않았다.³⁷ - P210
37 다만 바잘리아가 미국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한 짤막한 글이 1969년에 에이나우디에서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Lettera da New York. Il malatoartificiale (Franco Basaglia. L‘utopia della realta, p.323에 있는 참고문헌 목록 참조). 나는 이 책의 실물을 찾아낼 수 없었다. - P541
제14장 사건
어쨌든 미클루스 사건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조르조 베르비¹ - P246
제14장 사건
1 Giorgio Verbi, ‘Superato il clima di paura rimangono gli interrogativi, Il Piccolo, 1968년 9월 30일자 - P549
바잘리아 부부는 환자와 관련하여 정신질환자 보호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과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대해 명료하면서도 독창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정신의학 시설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은 대개병 때문으로 치부되며, 환자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유일한 설명으로 병이 지목된다."⁷ - P247
7Basaglia and Ongaro, ‘Il problema dell‘incidente‘, p.363. - P549
개방된 시설에서 정신의학자는 하나의 모순에 갇혀 있었다. "현재 우리 사회 체제의 강요에 의해 질서를 보장하는 사람을 자처해야 하는 동시에 그 질서의 파괴를 꾀하고 있다"는 모순이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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