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판:

간단히 살펴보는
게임 폭력성의 역사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톤에서 30마일 떨어진 대서양 해안가에 마쉬필드Marstfield 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중략).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어보이지만, 마쉬필드의 독특함은 주민들이 하는 일이 아닌 해서는 안 되는 최소한 공공장소에서는 금지된 일에 있다. 이 조용한 해변 마을에서 비디오게임이 30년 이상 금지되었던 것이다. - P9

1982년 마쉬필드의 정치가들과 지역 지도자들은 비디오게임이라는 전자적 오락형식을 불법화하는 것이 지역 내 청소년 범죄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았다. 이에 따라 마쉬필드의 주민들은 <마계촌Ghost‘n Goblins>에서 좀비나드래곤을 상대로 결투를 할 수도, <엘리베이터 액션 Elevator Action>에서 사악한 요원들을 처치할 수도, <모탈컴뱃 Mortal Kombat>에서 페이탈리티 fatality를 구경할 수도없게 되었다. - P10

 지난 40여년 간 미국의 전문가 및 정치가들은 학교 총기 난사, 인종주의, 비만, 나르시시즘, 골연화증, 자기 통제 문제, 음주운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회적 병폐에 대해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에 책임을 물어왔다. 비디오게임은 살인과 자동차 강도, 강간 사건뿐만 아니라, 팔다리가 망가지거나 학습장애가 생기는 데에 책임이 있고 심지어는 9.11 테러 사건에도 책임이 있다고 여겨졌다. - P10

그 시작은 작은 점과 두 개의 선이었다

앤디캡스 주점 Andy Capp‘s Tavern의 단골들은 그러한 것을 생전 처음 보았다. 물론, 1972년 즈음 은행 같은 데서 사용하는 거대한 전자두뇌 컴퓨터에 대해서 들어보긴 했지만, 13인치 흑백텔레비전으로 플레이하는 컴퓨터게임이란 것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장치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PONG(퐁)이라는 글자만 장치 전면에 진하게 쓰여있었다(챕터 끝 이스터에그 1번 참조).

(중략).

초기 비디오게임 개발사의 상당수는 논쟁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의 개발을 주저했다.
(중략).

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게임을 폭력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이유는 초창기 아케이드 게임기와 가정용 게임기의 기술적 한계였다. - P12

그러나 비디오게임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하면서, 게임사들은 조이스턱으로 투박한 캐릭터를 움직이는 한때 진기했던 경험이 더 이상 플레이어의 주목을 끌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붐비기 시작한 비디오게임 시장에서 플레이어들의관심을 붙들기 위해, 일부 개발사들은 기술이 허용하는 최고 수준의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 P13

비디오 아케이드

1970년대 초중반 상당한 성공을 거둔 비디오게임이 몇 개 있긴 했지만, 아케이드는 여전히 유아기에 머물러 있었다. 아케이드 게임은 술집과 피자가게, 롤러스케이트장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설치/운영되었지만, 아케이드라는 오락장 자체가부상한 것은 타이토가 1인용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 Space Invaders>를 미국에 출시해서 즉시 큰 히트를 친 1978년에 이르러서였다. - P17

비디오 아케이드는 우리 사회에 "나쁜 요소들을 들여왔다며 많은 이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 1981년 뉴욕주민 100여명이 아케이드의 영업을 중지하라며시위를 벌였다. 그들의 투쟁은 아케이드 내부에 설치된 게임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점차 증가하는 마약 및 공공기물 파손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⁶ - P18

6. New York Times (1981). "100 protest against L.I. pinball arcade." New York Times.
www.nytimes.com/1981/03/27/nyregion/the-region-100-protest-against-li-Retrieved frompinball-arcade.html - P252

1992년과 1993년: 가상 유혈사태의 해

<데스레이스>같은 게임과 비디오 아케이드의 위험성을 둘러싸고 쏟아지는 언론보도가 비(非)게이머 대중 사이에서 비디오게임에 대한 불안감을 생성해오긴했지만, 그 불안감을 완전히 증폭시킨 것은 1년 사이에 출시된 3편의 게임이었다. - P19

유혈 묘사가 없었던 <스트리트 파이터>와 달리 <모탈컴뱃>은 엄청나게 잔인했다. 상대방을 때리고 발로 차면서 붉은 픽셀이 화면 전체를 뒤덮었고 캐릭터들은말 그대로 서로의 머리를 뜯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논란을 야기한 것은 "페이탈리티 fatalities"라 불리는 요소였다. 다른 대전 격투 게임의 경우 승리한 플레이어가 상대방을 바닥에 때려 눕히면서 끝난다면, <모탈컴뱃>에서는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방식, 즉 살인으로 상대방을 끝장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P20

상대적으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활용된 영향도 있었다. 이전의 대전 게임에서는 손으로 그렸던 캐릭터를 실제 배우들의 디지털 이미지로 대체했는데, 이 리얼한 캐릭터들이 <모탈컴뱃>에 묘사된 폭력의 사실성을 한 차원 높였다. - P20

<모탈컴뱃>은 원래 아케이드용으로 출시되었지만, 이 불편한 디지털 리얼리즘작품은 곧 가정의 거실로 침투했다. 세가 CD(메가CD)는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한가정용 콘솔 세가 제네시스의 주변기기로, 이를 구매해서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면 CD기반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 - P21

<둠>이 윈도우95보다 더 많은 컴퓨터에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마이크로소프트는 <둠>을 윈도우95 플랫폼용으로 출시했다. 게임의 엄청난 인기에 스스로를 맞춘 것이다(이전까지 <둠>은 도스 체계에서만 작동했다). 당시 CEO였던 빌 게이츠는 윈도우용 <둠>의 출시를 홍보하는 동영상에 직접 출연하기까지 했다. - P23

<둠>이 최초의 1인칭 슈팅게임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드 소프트웨어는 그보다앞서 플레이어들이 1인칭 시점에서 아돌프 히틀러라는 이름의 로봇을 처치하기위해 그 앞을 막는 나치병사들과 전투를 벌이는 <울펜슈타인 3Dwolfenstein 3D>라는 게임을 출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둠>의 보다 정교한 그래픽 엔진은 플레이어가 진정한 3차원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 차원 발전된 것이었다. - P24

게이머들은 전국의 기숙사나 사무실 내 컴퓨터들을 연결해서 <둠>의 가상복도에서 동료나 친구들을 사냥하면서 쏴죽여댔다. 직원들이 <둠> 데스매치를플레이하느라 업무시간을 소비하면서 많은 논란을 일으킨 끝에, 여러 조직에서 업무시간 내 <둠>의 데스매치 플레이를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⁸ - P25

8.
-Nuttycombe, D. (1994). "Pac-Man, Tetris and Now It‘s Doom‘s Day." Washington Post.
Retrieved from www.gamers.org/dhs/dmpblcty/wngtpost.html - P252

<모탈컴뱃>, <나이트 트랩>, <둠>이 비디오게임의 폭력성과 사실상 동의어가되면서 대중은 그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한다. 논객들은 끔찍한 대량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 게임들을 최소한 한 번은 언급했다. - P25

폭력성을 심의하다

<모탈 컴뱃>과 <나이트 트랩>, <둠>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면서 비디오게임 산업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미디어 감시단체의 우려에 대한 응답으로 미 의회가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업계가 자율적인 규제를하지 않으면 연방차원에서 규제를 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 P26

게임 개발사의 입장에서 부여받은 등급이 부당하다고 여겨지면 재심의를 요구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그런 사례는 없다. - P28

이일화는 ESRB의 정확성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켰고, <맨헌트 2>의 할로윈 버전이 출시된 지 한 달도 안 되어 힐러리 클린턴과 조셉 리버만을 주축으로 하는 미의회의 여러 의원들이 ESRB의 등급 분류과정에 의문을 제시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 정당한 근거가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당시의 통계조사는 지속적으로 게이머와 부모 모두 ESRB가 게임에 부여한 등급을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실제로 당시 95%의 사람들이 ESRB 등급에 동의하고 있었다.¹² - P29

12. Ferguson, C. J. (2011). "Video games and youth violence: A prospective analysis inadolescents." Journal of Youth and Adolescence, 40, 377-391 - P252

게임스탑에서는 단 9%의 어린이만이 <맨헌트2>나 <그랜드테프트 오토>와 같은 게임의 구매에 성공한데 반해, 영화의 경우 76%의 아이들이<쏘우 Saw>, <킬빌Kill Bill>, <호스텔 Hostel > 같은 R등급의 폭력적인 영화의 DVD를구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부모들이 ESRB 등급체계를 모든 오락물 등급체계 중 가장 효과적이고 믿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당연해 보이는데, 실제로 약90%의 부모가 ESRB의 등급체계가 유용하다고 응답했다.¹⁴ - P30

가상의 유혈을 향한 갈망


결과적으로 ESRB 등급체계의 도입은 비디오게임의 폭력성을 우려하던 비평가들에게 양날의 검인 것으로 보인다. - P30

 M등급을 받은 이상, 논란이 되는 게임과 연계됨으로써 발생하는 홍보상의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줄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닌텐도는 분노하는 부모들에게 이 게임이 아동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님을확신시킬 수 있게 되었다. 게임의 포장 패키지에 그렇게 적혀있으니 말이다! - P31

SNES가 페이탈리티를 허용한 데 대해 쏟아졌던 대중의 우려가 사그라든 것은M등급을 받은 <그랜드 테프트 오토>가 소니의 새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출시되면서였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범죄자를 고용해서 조직을 위한 다양한범죄를 수행하는데, 실질적인 잔혹함은 땅 위에 낭자한 유혈이 작은 픽셀로 묘사되는 것이나 누군가를 차로 치면 타이어가 붉어지는 정도로 제한되어 있다. - P31

 당시 게임잡지들은 <그랜드 테프트 오토>가 혁신적이고 기술적으로 인상적이며, 극도로 독창적이라고 호평을 했다. 또한 "무정부주의에 대한 유쾌한 포용이라고 언급하면서 "소시오패스가 되고 싶은 자"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큰 즐거움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¹⁶ - P32

16. Moby Games (2014). "Grand Theft Auto Reviews." MobyGames.com. Retrieved from www.
mobygames.com/game/grand_theft_auto/mobyrank - P253

이후 이십여 년 동안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개발사 락스타게임즈는 여러 후속편을 통해 "무정부주의의 포용"을 지속한다. - P32

우리는 왜 그러한 폭력성에 매료되는 것일까?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그랜드테프트 오토>나 <맨헌트>에서 마주치는 상황들을 최대한 피하려 한다. 우리가 가상의 폭력성에 끌리는 현상은 표면적으로 보면 비합리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심오한 이유가 있다. - P33

사람들, 특히 남성들은 포르노를 무척 좋아한다. 북미에서만 1년에 1억 명이 넘는 남성들(15세 이상 남성 인구의 80% 정도)이 인터넷상에서 포르노를 찾아보는것으로 나타난다²¹. 포르노그래피가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려던 캐나다 몬트리올대학교 University of Montreal의 연구자들은 연구를 취소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포르노를 본 적이 없는 20대 남성을 구할 수 없어 실험상 통제 집단을 구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²²! - P34

21. Ogas, O. & Gaddam, S. (2012). A Billion Wicked Thoughts: What the Internet Tells Usabout Sexual Relationships. New York: Penguin Group.
22. McCormack, D. (2013). "Porn study had to be scrapped after researchers failed to findany 20-something males who hadn‘t watched it." Daily Mail. Retrieved from https://www.
dailymail.co.uk/news/article-2261377/Porn-study-scrapped-researchers-failed-ANY-20-males-hadn-t-watched-it.html - P253

이와 같은 진화의 역사는 우리가 폭력성에 이끌리는 데에서도 비슷한 역할을수행했다. 우리는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이 책을 읽는 것(지금 이 책은 예외다. 꽤나흥미로운 책이니까!)에 비해 훨씬 재밌다고 느낀다. 이는 폭력이 하나의 종species으로서 우리를 특정하는 데 있어 늘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 P34

현실에서 폭력의 결과는 매우 끔찍해서, 우리는 폭력이나 폭력적인 위협에 불안을 느끼면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의 두뇌는 미디어 폭력은 다르다고 이해하는 듯하다.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은 어두운 골목을 걸을 때와 동일한 긴장과 자극을 제공하지만, 실제로 잔혹하게 살해될 가능성에 따른 불안감은 없다 - P35

40여년 전 작은 하얀 공 하나가 두 개의 선 사이에서 움직이는 것에서 비롯된 비디오게임이 사람들이 일제히 욕망하고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워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하룻밤 사이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 <데스레이스>에서 <건 파이트>, <모탈 컴뱃>에서 <맨헌트>로 이어지는 이 현상은, 수백만 년에 이르는 인류의 진화, 그리고 수십 년 간 이루어진 기술의 발전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 P35

이스터 에그

1. 앤디캡스 주점에 설치된 프로토타입 <퐁>이 성공한 이후 제작된 아케이드용 장치에는 3가지 기본 안내사항이 적혀있었다: 1) 동전을 넣으면, 2) 공은 자동으로제공됩니다. 3) 높은 점수를 얻으려면 공을 놓치지 마세요. - P36

4. 최초의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금 서글픈 일이다. 1987년 출시된 이 게임에서 향후 시리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주요 인물 류 Ryu 와 켄 Ken 이 처음 등장했다. 이 게임에 있어 가장독특한 점은 플레이어들이 상대를 공격할 때 누르는 압력 감지식 고무 버튼을 "펀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플레이어가 버튼을 세게 치면 칠수록, 켄이나류가 적을 더 세게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압력 감지 버튼이 후속 버전부터 사라지고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면서 이 첫번째 게임은 천천히 잊혀지게 되었다. - P37

5 <둠>의 숨겨진 레벨에 가려면 1) 엑셀 95에서 빈 워크시트를 연다. 2) 95번째 행전체를 선택한다. 3) B열을 선택한다. 4) 도움말 메뉴로 간다, 5) ctrl-alt-shift를 누른 채 "기술지원" 버튼을 클릭한다. 6) 창이 하나 열리면서 숨겨진 레벨이등장한다! - P37

네 번째 판:
그랜드 테프트 오류
(Grand Theft Fallacy)


십대 청소년 여섯 명이 야구방망이와 쇠지렛대를 들고 뉴욕 도심 한가운데를대범하게 걸어갔다. 그들은 지나가던 사람을 때려눕히고는 차량보관소에 침입했고, 2008년형 BMW를 훔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처음에는 흔한 폭력배거나 세상에 불만을 품고 막 나가는 청소년인걸로 여겼다. 그런데 경찰 조사에서 완전히 다른 결과가 발표됐다. 이들이 구제불능이거나 분노해서가 아니라, 비디오게임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¹⁰¹ - P93

네번째 판

101. Crowley, K. (2008). "Video Villains Come to Life." New York Post. Retrieved from https://nypost.com/2008/06/26/video-villains-come-to-life/ - P258

물론 <그랜드 테프트 오토>가 폭력 행위와 연관된 것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 P94

그랜드 테프트 오류는 상상의 연관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인간이 그랜드 테프트 오류에 취약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사다리 아래를 걷거나 유리가 깨지면 운이 나쁘다고 믿거나, 13일의 금요일에는 나쁜 일이 생긴다는 미신을 믿는 이유와 같다. 두 개의 사건이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의 빈도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나쁜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 P97

. 이러한 경향은 "착각 상관illusory correlation"으로 이어진다. 착각 상관은 사실상 아무 관련이 없는 두 사건이 연결되어있다는 잘못된 감각을 만들어낸다¹⁰⁵. - P97

105. Chapman, L. J. & Chapman, J. P. (1967). "Genesis of popular but erroneouspsychodiagnostic observations." Journal of Abnormal Psychology, 72, 193-204. - P258

사실 열렬한 비디오게임 플레이어가 끔찍한 폭력 행위를 저지를 때면 언론은 항상 폭력적인 행위와살인자가 좋아한 비디오게임을 연결짓는다. 이때 생략된 것은 수많은 범죄가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발생하고,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는 수백만의 또 다른 사람들은 폭력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비-게이머에 의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비디오게임과 폭력 행위 간의 연관관계가 없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 P98

더 불편한 사실은 특별히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사건일수록 착각 상관이 형성되기가 더 쉽다는 것이다¹⁰⁶.  - P98

106. Hamilton, D. L., Dugan, P. M. & Trolier, T K. (1985). "The formation of stereotypic beliefs:Further evidence for distinctiveness-based illusory correlations." Journal of Personality andSocial Psychology, 48, 5-17. - P258

착각 상관을 깨닫고 극복하더라도 그랜드 테프트 오류는 존속한다. 과학적 연구의 한계점을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P99

그랜드 테프트 오류를 저지르는 과학자들은 종종 일종의 순환논법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곤 한다.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이 현실에서의 실제 폭력 행위의 원인인지여부를 탐구할 수 있는 실험연구는 설계가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사람들의 폭력적 성향을 증가시키리라 추측되는 상황에 사람들을 노출시킴으로써 그들이 타인에게 가해하는 상황을 관찰하는 것은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다. <콜 오브 듀티>의 데스매치를 플레이한 후 서로를 향해 폭력을 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연구를 승인해줄 대학은 없을 것이다. - P99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실험실에서 <그랜드 테프트 오토>를 플레이하도록 요구받은 피실험자가 타인을 핫소스병으로 악랄하게 공격하는 정도로 자제한 이유는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의 영향력이 이러한 상황의 행동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극복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P100

크게 보면 열 효과는 기후 변화에 따른 지구 온난화가 환경적 재앙일 뿐 아니라, 폭력성을 대규모로 유발할 수 있다고 호소한다.¹⁰¹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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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론

나는 소설이란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소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의 유물이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연장통 속의 연장들을 사용하여 각각의 유물을 최대한 온전하게 발굴하는 것이다.


잘팔리는 어느 애견 훈련 설명서의 제목에 의하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핏불이나 로트바일러에게 물려 크게 다친 아이의 부모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 P171

인간의 재능과 창의성이 드러나는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이 작가들의 양상도 피라미드 형태를 이룬다. 제일 밑바닥에는 형편없는작가들이 있다. 그 위에는 조금 적지만 아직 꽤 많은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데, 이들은 제법 괜찮은 작가들이다. - P172

나는 지금 간단한 두 가지 명제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의 중심부에 접근하려 한다. 첫째, 좋은 글을 쓰려면 기본을 (어휘력, 문법, 그리고 문체의 요소들을) 잘 익히고 연장통의 세 번째 층에 올바른 연장들을 마련해둬야 한다. 둘째, 형편없는 작가가 제법 괜찮은 작가로변하기란 불가능하고 또 훌륭한 작가가 위대한 작가로 탈바꿈하는것도 불가능하지만, 스스로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시의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그저 괜찮은 정도였던 작가도 훌륭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 - P172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Chandler: 1888~1959, 미국 추리 소설가-옮긴이]는 일찍이 전후시대의 삭막한 도시 생활을 잘 묘사한 작가로서 이제 20세기 미국문학에서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런 평가를 거부하는비평가들도 많다. 그들은 분연히 외친다. 그 자는 삼류야! - P173

심지어는 소설 문학의 셰익스피어라고 할 수 있는 찰스 디킨스조차도 종종 선정적인 내용을 다루고 신나게 아이들을 낳고(소설을 쓰지 않을 때 그는 주로 아이들을 만들었다) 당대와 우리 시대의 저급독자층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비평가들의 공격을받았다. - P174

한편 뮤즈는 편안히 앉아 시가를 피우고 자신의 볼링 트로피들을 흐뭇하게 감상하면서 여러분을 싹 무시하는 척한다. 이런 상황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다고 본다. 물론 이 뮤즈라는 작자는 겉으로 보기에도 별 볼일 없고 대화 상대로서도 빵점이다(내 뮤즈는 근무중이 아닐 때는 대개 툴툴거리는 소리로 대답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감을 주는 능력이 있다. - P175

1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 P176

한편, 좋은 책은 한창 배움의 길을 걷는 작가들에게 문체와 우아한 서술과 짜임새 있는 플롯을 가르쳐주며, 언제나 생생한 등장인물들을 창조하고 진실만을 말하라고 가르친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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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정신의학자는 대개 정신질환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이해하고자 했다. 정신질환이라고 알려진 것은 가족 내부 또는/그리고 외부에서 사회적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일부 저자는 바로 이 특징을 반정신의학의 본질로 보았다. - P50

이런 사회적 분석은 정신보건 서비스를 관장하는 체제 전체로 확장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권력구조와 ‘일탈 억제‘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 방향의 급진적 정신의학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예컨대 서양판 문화혁명인 권력구조 쟁론에서 나타난 여러 형태의 마오쩌둥주의, 그리고 1968년 운동에서 생겨난 새로운 반권위주의관념을 하나로 아울렀다. 이처럼 반정신의학은 비판적인(또한 자기비판적인) 동시에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이었다. - P51

이 용어 내지 꼬리표를 좀더 깊이 살펴보면 유용하다. D. B. 더블은 정신의학의 다양한 ‘지도자‘가 취했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여러 갈래로 세분한다.²⁴ - P51

24 D. B. Double ed., Critical Psychiatry. The Limits of Madness, London:Palgrave, 2006, p.31D. B. Double, ‘Historical Perspectiveson Anti-psychiatry‘. - P503

우리는 또 반정신의학이 무엇에 반대했는지에 따라 그것을 이해할수 있다. 더블을 다시 인용하면 "반정신의학의 본질은 정신의학 자체를 문제의 일부로 간주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한다."²⁶ - P52

26 D. B. Double, The History of Anti-psychiatry: An Essay Review‘,
History of Psychiatry 13, 2002, p.235. 콜린 존스는 "[반정신의학] 운동의 핵심에 있는 거부하고 뒤엎는 행동", 다시 말해 "반정신의학 안에 있는 ‘반(反)‘이라는 요소"에 강조점을 두었다. Gijswijt-Hofstra and Porter,
Cultures of Psychiatry, p.285에 수록된 Colin Jones, Raising the Anti.
Jan Foudraine, Ronald Laing and Anti-psychiatry‘. - P503

반정신의학은 좀더 일반적인 형태의 방법론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당시에는 기존 지식의 권력구조 (그리고 이 경우 의료의 권력구조)를 뒤엎고 부정하려는 전반적인 시도가 있었다. 이 ‘반(反)‘이라는 요소가 이 운동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했다.²⁹ - P53

29 Jones, ‘Raising the Anti‘, p.285. - P503

오늘날 이탈리아에서는 대체로 바잘리아 자신은 반정신의학자가 아니었다고 본다.³⁷ 종종 되풀이되는 이 진술은 ‘반정신의학‘을 정신질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평이 나쁘거나 극단적인) 운동이나 사조로 비꼬고단순화하는 관점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어쩌면 뜻밖에도 극소수의 반정신의학자는 실제로 정신질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P55

37 역으로, 이탈리아 밖에서는 (특히 영어권에서는) 그를 반정신의학자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 P505

반정신의학을 실천한 사람들은 (기자나 이 운동의 추종자들과는 별개로)대개 정신질환의 존재를 부정하기는커녕 정신질환을 대단히 심각하게받아들였으며 그 근원과 그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려 했다.³⁸ - P56

38 토머스 사스는 이와는 다른 입장을 취했는데, 본인이 이를 거부하고 그래서반정신의학 이면에 있는 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그의 연구를 널리 읽었다. 사스가 쓴 글 한 편이 프랑코 및 프랑카 바잘리아가 1975년에 엮은 문집에 다음과 같이 포함돼 있다.
Crimini di pace. Ricerche sugli intellettuali e sui tecnici come addettiall oppressione, Milan: Baldini Castoldi Dalai, 2009 (원래의 판본은Einaudi, 1975), PP.385-98에 수록된 ‘La psichiatria a chi giova?" - P505

반정신의학의 근원이자 거기에 대중적 기반을 부여한 저 운동이 종언을 고하면서 전통적 정신의학자는 권력의 고삐를 다시 쥐고자 했고(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반정신의학을 생각에서 떨쳐내거나 아예 무시하고자 했다. 그 결과 반정신의학은 오늘날 대단히 단순하게 ‘정신질환의 부정‘으로 묘사되는 때가 많고 아예 언급조차 안 되기도 한다. 급진적 정신의학자(또는 그 지지자)와 반(反)반정신의학자가 사용했던 담론이 하나로 수렴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정신보건 체제 전반에 나타난 일련의 실패를 모두 반정신의학 탓으로 돌리는 전술도 가능하다. 이런 방향에서 전개된 것이 ‘반(反)반정신의학 운동 이론이다.⁴³ - P57

43 Crossley, Contesting Psychiatry, p.241. - P506

반정신의학은 오늘날의 세계에선 이해하기도 연구하기도 어려운 대상이다. 전성기일 때 그것은 시대 분위기와 매우 잘 맞는 절충주의적 운동이자 시대정신이었다. 그것은 또 파악하기 어려운 대상이자 구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어구였으며, 한계를 넓혀가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 P58

반정신의학은 오늘날의 세계에선 이해하기도 연구하기도 어려운 대상이다. 전성기일 때 그것은 시대 분위기와 매우 잘 맞는 절충주의적 운동이자 시대정신이었다. 그것은 또 파악하기 어려운 대상이자 구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어구였으며, 한계를 넓혀가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한편으로는 끔찍한 체제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기도 했다. - P58

그러면 우리는 반정신의학이라는 용어를 이런 잘못된 설명과 부정적 의미로부터 구해낼 수 있을까? 이런 시도를 한 사람이 몇몇 있다. - P60

공공시설과 제도-정신질환자 보호소와 가족


비판적 정신의학의 옹호자들은 대개 전통적 정신의학 시설과 관련하여 대단히 명확하게 급진적인 태도를 취했다. 많은 사람이 정신질환자 보호소를 모두 폐지하거나 폐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부르짖었고(바잘리아가 1960년대 초반 이후 공개적으로 취한 입장이다)그와 동시에 정신질환자 보호소 내부에서 그것을 개혁하거나 인도적으로 바꾸고자, 또는 그곳을 생지옥 아니면 ‘실용적 유토피아‘의 사례로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 P62

비판적 정신의학은 1960년대 말 전세계에서 집중포화를 받은 또 하나의 제도인 가족에 대한 급진적 비판과도 관계가 깊었다. 가족은 정신질환이 생성되는 장소, 정신질환이 설명될 수 있는 유일한 배경이라는 관점을 지닌 사람이 많았다. 랭의 연구에서는 조현병자 본인만큼이나 그 가족을 깊이 조사했다. - P63

비판적 정신의학에서는 자아의 해방이 가능하다고 보았는데, 이 또한 1968년 철학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정신질환이 있다고 묘사되는 사람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 사람들은 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자기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 P64

사회와 정치


정신질환과 자본주의가 서로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인과관계에서도 그렇고 정신질환자 보호소 체제의 존재 이유로서도 그렇다는사실이 이 운동의 여러 갈래를 통해 그 윤곽을 드러냈다. 바잘리아 자신이 정신질환자 보호소에 대한 한 가지 사회적 분석을 내놓으면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 배척되기 때문에 ‘앓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⁶⁰ - P65

60 Basaglia, L‘istituzione negata (1968), p.33 - P508

그러나 정신질환자 보호소 내 사람들에 대한 바잘리아의 사회적 분석은 어떤 직접적 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고리치아에서 (그리고 그 밖의 정신질환자 보호소에서) 그가 실제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⁶¹ - P65

61 아울러 예컨데 August Hollingshead and Fredrick Redlich, Classi socialie malattie mentali, Turin: Einaudi, 1965 (1958)E - P508

반대하는 운동인가, 지지하는 운동인가?

이것은 어떤 종류의 운동이었고,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이것은 전문가의 운동, 정신의학자와 간호사의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는 환자의 운동이었다. - P66

이것은 사회적 운동이고 정치적 운동이었을까? 어느 정도는 특히 1968년 이후에는 그랬다. 1968년 이전에는 지식인, 정신의학자, 일부행정가와 정치가, 일부 학자, 그리고 몇몇 외진 곳에서는 소수의 간호사와 환자에 국한된 운동이었다. 1968년 이후 이 운동은 크게 확장하여 학생, 노동자, 기자, 그리고 비판적 정신의학의 이념과 실제에 매력을 느낀 각양각색의 사람을 끌어들였다. - P67

한편으로 보면 이 운동은 반대하는 운동이었다. 추종자들은 정신병원에 반대했다(때로는 원칙적으로 정신병원 전반에 반대했고 때로는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구체적인 방식에 반대했다). 이 운동은 정신의학 체제에 반대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신의학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흐르는 때도 많았다.  - P68

실용적 또는 실제적 유토피아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 운동에서는 일련의 ‘실용적인‘ ‘살아 있는‘, 또는 ‘실제적인‘ 유토피아를 만들어 환자를 보살피는 대안적 형태를 실험하고 세상에 급진적 변화를 알리고자 했다. - P70

비판적 정신의학에서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러 가지 생각과 구호를 중심으로 해서 어렵사리 운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은 국제적이었지만 운동이 뿌리내린 각국에서는 자국 특유의 성격뿐 아니라 지방색과 지역색을 띠고 있었다. - P71

제11장


『부정되는 공공시설』의 기원

당신의 책・・・・・・ 은 그 자체로 전개되는 책의 보기 드문 예입니다. 당신의 책은 내부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긴장 상태를 통해 생명을 이어가고, 자신의 자기파괴적 성향을 통해 자신을 지탱합니다.
줄리오 볼라티가 프랑코 바잘리아에게(1968년 1월 26일지)

조반니 제르비스와 에이나우디

『부정되는 공공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의 기원과 제작과 탄생에 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그렇지만 고리치아 사람들과 이 책의출판사인 에이나우디를 연결한 사람이 조반니 제르비스였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한다.¹ - P197

제11장 『부정되는 공공시설』의 기원


1 그렇지만 이 연결고리는 가볍게 처리되는 때가 많고 일부 설명에서는 완전히 무시되기도 하는데, 이는 필시 제르비스와 나머지 고리치아 사람들, 또 고리치아 이후의 바잘리아 사람들 사이에 오랫동안 이어진 다툼과 앙금 때문일것이다. - P537

에이나우디와 고리치아는 여러 경로를 통해 관계를 맺었는데, 처음에는 제르비스를 통해서였다. - P199

1967년 2월에 제르비스는 『부정되는 공공시설』로 출간될 책을 "우리가 고리치아에서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⁵ 또 이때 이 책이누오보 폴리테크니코 시리즈의 한 권으로 정해진 것이 분명하다. - P199

5 1967년 2월 1일자, 편집위원회, 메모. - P137

「정신의학이란 무엇인가?』는 임시로 만든 작은 출판사를 통해 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부정되는 공공시설』은 사정이 그와는 완전히 달라질 참이었다. 고리치아는 대성공을 앞두고 있었다. - P204

흥미롭게도 이 편지는 부정되는 공공시설의 저자/편집자로 다른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보여준다. 이 책은 에퀴페의 전체 구성원과 기자, 환자,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든 집단 작업의 결과물임이 확실하다. 또 제르비스가 편집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이 분명하고, 볼라티, 바잘리아, 프랑카 옹가로를 비롯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 P205

『부정되는 공공시설』의 계약서에는 1968년 2월 제르비스와 바잘리아가 공동으로 서명했고, 저작권료는 모두 고리치아에 있는 환자들의 클럽 앞으로 돌아갔다. 책은 1968년 3월에 나왔다. 안토니오 슬라비치는 나중에 조반니 제르비스가 새로 나온 책을 한 무더기 가지고 고리치아로 돌아온 날에 대해 적었다. 책에서 잉크 냄새가 났다. - P206

바잘리아는 에퀴페와 환자들을 대신하여 그 과정에서 도움을 준 볼라티에게 직접 고마움을 표했다("저와 고리치아의 모든 사람을 위해 해주신모든 일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 책과 관련된 홍보 활동은 이탈리아 곳곳에서 청중이 가득 모이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렵고 힘든 일이기도 했다. - P207

책 자체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집필되었고, 고리치아에 있는 바잘리아의 아파트와 병원에서 논의되고 취합되었다. 에퀴페의 구성원 전원및 프랑카 옹가로, 미켈레 리소, 줄리오 볼라티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의견이 들어갔다. 이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글로 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작업은 목소리와 글, 토론으로 이루어진 그림 맞추기 퍼즐 같았다. - P209

『부정되는 공공시설』은 꼭 맞는 때에 나온 꼭 맞는 책, 시기가 딱 맞아떨어진 책이었다.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여덟 가지 판이 나왔는데 그중 두 가지가 1968년에 나왔고, 6만 권이 팔렸는데 그중 5만 권이 1968년부터 1972년까지 팔렸다."³⁵ - P209

35 Giannichedda, "Introduzione‘, p.xxv, 출판사는 1968년에 출간된 3판까지의 판매부수가 1만 2500 부라고 보고했다. 1972년 말에 이르러 이 숫자는 5판에 2만 7000부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에이나우디 기록보관소). 1975년 12월에는 2만 5000부 정도가 더 판매된 것으로 보고되어, 7년간 총 7판에 5만2000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1974년까지 8판에 걸쳐 총 6만 부가 팔렸다는 에이나우디의 공식 통계와도 비슷하다. - P541

『부정되는 공공시설』은 1968년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반영하기도 했다.³⁶ - P210

36 다음 장에서 다루는 1968년에 관한 부분과 Robert Gildea, James Mark andAnette Warring, eds, Europe‘s 1968. Voices of Revolt, Oxford: OxfordUniversity Press, 2013 - P541

『부정되는 공공시설』 이후 에이나우디에게 바잘리아는 흥행 보증수표였다. 그는 남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그곳의 반공공시설 운동에 관한 연구를 수행할 목적으로 250만 리라라는 거액의 선금을 받았다. 이 여행과 관련하여 약속된 책은 결국 출간되지 않았다.³⁷ - P210

37 다만 바잘리아가 미국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한 짤막한 글이 1969년에 에이나우디에서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Lettera da New York. Il malatoartificiale (Franco Basaglia. L‘utopia della realta, p.323에 있는 참고문헌 목록 참조). 나는 이 책의 실물을 찾아낼 수 없었다. - P541

제14장
사건


어쨌든 미클루스 사건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조르조 베르비¹ - P246

제14장 사건


1 Giorgio Verbi, ‘Superato il clima di paura rimangono gli interrogativi, Il Piccolo, 1968년 9월 30일자 - P549

바잘리아 부부는 환자와 관련하여 정신질환자 보호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과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대해 명료하면서도 독창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정신의학 시설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은 대개병 때문으로 치부되며, 환자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유일한 설명으로 병이 지목된다."⁷ - P247

7Basaglia and Ongaro, ‘Il problema dell‘incidente‘, p.363. - P549

개방된 시설에서 정신의학자는 하나의 모순에 갇혀 있었다. "현재 우리 사회 체제의 강요에 의해 질서를 보장하는 사람을 자처해야 하는 동시에 그 질서의 파괴를 꾀하고 있다"는 모순이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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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사람들을 서로 떼어 놓기 때문에 모여서 함께 불안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불안은 공동체를, 우리를 만들지 못하게 한다. 불안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고립된다. - P38

우울하고 탈진한 미래는 동일한 것의 무한한 반복이다. 아무것도 열어 내지 못한다. 어떠한 새로운 것도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다. 살아 움직이고 자극과 영감을 주는미래, 즉 ‘Avenir‘는 완전히 사라진다. - P41

희망과 행위


희망은 예전부터 행위와는 반대 선상에 있는 것으로 다루어지곤 했다. 희망에는 행위의 결단이 부족하다는 것이 전통적 비판의 초점이었다. 무언가를 희망하는 이는 행위하지 않는다고, 현실을 직시할 눈을 감아 버린다고 말이다. - P43

그러나 카뮈의 주장을 달리 보면 희망은 판도라의 상자 안에 어쨌든 끝까지 남아 있었다. 희망은 상자를 벗어나지 않았다. (중략). 이렇게 희망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악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해 준다. 니체는 희망을 삶에 대한 단호한 긍정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정의한다. - P44

그렇다면 도대체 희망이 소위 ‘회피‘하는, 심지어는 ‘배신‘한다고들 말하는 ‘삶 자체‘ 또는 ‘그 자체로서의 삶la vie méme‘이란 무엇인가? - P45

희망은 자본주의적 용어에 속하는 말이 아니다.
희망하는 이는 소비하지 않는다. - P48

꿈 없는 현재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거기에는 새로운 것을 향한 열정, 가능한 것에대한 열정, 새로운 시작을 향한 열정이 없기 때문이다. 미래 없이 열정은 불가능하다. 내일 없이, 미래없이 자기 자신으로만 축소된 현재는 새로운 시작을결의하는 행위가 지닌 시간성이라고 할 수 없다. - P50

카뮈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자신의 이론과는관계없는 발언을 할 때, 이전에 본인의 철학 지론에서는 다룬 적 없던 희망의 개념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중략). 그가 말한 희망은 포기도, 회피도, 삶의 거부도 아닌 ‘그 자체로서의 삶‘이었다. 삶과 희망은 하나로 표현되었다. 살아감이 곧 희망함이라고. - P51

희망에 대한 기존의 비판들은 희망이 지닌 복잡성과 내적 긴장을 간과했다. 희망은 수동적인 기대나 바람을 훨씬 넘어선다. 감동한 열정과 약동함이희망의 본질이다. 희망은 ‘호전적 정서‘이며 ‘기치를 세운다‘.²⁹ - P53

29Bloch, Das Prinzip Hoffnung, a. a. O., p. 127. - P164

희망하는 이에게는 세상이 마치 다른 빛 안에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세상은 희망을 통해 특별한 광채를 지닌다. 희망은 세상을 밝게 만든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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폄하와
인간성 말살


우리와 현실 개념이 다른 사람에 대한 가장 중요한 심리적 방어법은 그들을 폄하하거나 비하하는 것이다.  - P208

여러 연구들을 보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한 후 기독교인은 유대인을 폄하하고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를 비난하며, 이탈리아인은 독일인을 경멸하고 이스라엘 어린이는 러시아 아이를 싫어하고, 모든 곳에서 이민자를 조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죽음을 상기한 이후 외부 집단 사람을 덜 인간적이고 더 동물적이라고보게 된다. - P209

문화 동화와
조정


우리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법으로 폄하나 비하 외에도 이렇게 무지하거나 그릇되거나 사악한 사람들을 우리 세계관에 동화시키는방법도 있다. - P209

 신념이 실존적 공포에 대항하는 데 효과가 있으려면 사람들이 그 신념이 맞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 의존하는 핵심 믿음 대부분이 사실보다는 신념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명확히 증명될 수 없다. 따라서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그 신념이 옳다고 더 확신하게 된다. - P211

인간은 타인에게 자기 관습과 신념을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한편, 위협적이라고 생각하는 관점 중 끌리는 측면을 자신의 문화적 세계관에 통합시킴으로써 그 관점을 ‘길들이려고 하기도 한다. (중략). 이를 가리켜 ‘문화 조정cultural accommodation‘이라고 한다. - P212

(전략).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레이건 Ronald Reagan은 "히피는 타잔 같이 생기고 제인처럼 걸으며 치타 같은 냄새를 풍기는 사람입니다"라고 빈정거렸다.
그러나 레이건이 대통령이 될 무렵 히피가 내세우는 ‘사랑과 평화‘의 기치는 무미건조한 코카콜라 광고 속으로 들어갔다. - P213

사실 이러한 고정관념은 문화적 사물 체계의 일부이다. 따라서 이고정관념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외부 집단은 지금 우리의 세계관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는 반면, 고정관념에 반하는 외부 집단은 우리의세계관을 위협한다. 한편, 자기 세계관을 믿고 싶은 욕구가 클 때 사람들은 내부 집단과 완전히 다른 외부 집단을 선호하는 경향을 띤다. - P214

악마화와
말살

폄하, 동화, 조정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 심리적 압박은 물리적 공격으로 이어진다. 위협이 되는 타인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무력‘이 ‘정당화‘된다. - P215

동서고금을 통틀어 특정 개인과 집단이 죽음 불안에 대비하는 심리적 피뢰침 역할을 담당했다. 대개 ‘악인들‘은 명확히 그런 역할에 들어맞는다.  - P216

기근, 전염병, 경제적 동요, 정치적 불안, 교육 부족, 정전, 문맹, 청년 반항, 무엇이든 ‘그들‘의 잘못이다. ‘우리‘는 선하고 순수하고 올바르며 하느님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진 반면 ‘그들‘은 골칫거리일뿐이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그들을 폄하하고 인간성을 말살하고 악마로 여기고 짓밟아야 한다. 악인을 근절하라. 세계를 정화하라. 하느님이 당신 편에 있음을 증명하라. 지구상의 삶을 천국의 삶으로만들어라. - P217

죽음 불안의 해결책으로 사악한 타인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이전략은 성공하지 못한다. 전략을 사용한 순간 사악한 타인이 가하는위협은 한층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사악한 타인을 근절하려고 할 때 사악한 타인으로 지목된 대상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되고 이는 갈등의 불꽃에 부채질하는 셈이 된다. - P217

모욕을 받을 때 인간은 자존감을 잃고 의미 있는 세계에 사는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미약한 생물로 전락한다. - P218

현대에도 모욕과 굴욕을 갚고 극복하기 위한 시도는 쉽게 찾아볼수 있다. 20세기에 히틀러는 ‘베르사유의 굴욕‘을 일소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지도자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는 적의 손에 패배하는 굴욕을 겪느니 차라리 스스로를 희생하는 쪽을 택했다. - P218

치명적인 폭력을 부르는 모욕 행위는 해결되지 않은 채 묻어버린오래된 갈등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이런 모욕은 희생당했다는 억울함과 영웅적인 구원을 바라는 욕구를 결집하는 계기가 된다. - P219

공격과 반격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가 미국의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과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한 후 뒤따른 사건들은 죽음의 공포가 어떻게 증오와 폭력의 상호 순환을 유발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P220

사람들은 조국의 가치는 물론 자기 자신의 가치를 단언함으로써 실존적 위협에 대응했다.
동시에 미국인들 사이에서 죽음의 공포는 상대를 폄하하고 인간성을 말살하고 악마로 만들고 동화하고 말살하려는 열의 또한 증폭시켰다. 기독교 전도사 프랭클린 그레이엄 Franklin Graham은 이슬람교를 ‘매우 악랄하고 사악한 종교‘라고 폄하했다. - P222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에는 많은 공화당 지지자들조차도 부시가 대통령으로서 능력이 부족하고 밋밋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9.11 테러 발생 이후 몇 주 동안 부시에 대한 지지율은 역사상 유례없이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 P223

9.11 공격 직후, 대부분의 이슬람교도들은 곧바로 테러리스트들을 이슬람교를 왜곡하는 종교적 열성분자 중 소수 과격파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나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미국인들이 이슬람을전면적으로 비난하고 종교 및 정치적 전향을 시도하는가 하면, 조지 부시 대통령이 악의 세계를 축출하기 위한 ‘십자군 전쟁‘을 선포하는 데 이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이슬람교도들은 굴욕감과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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