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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코카콜라 회사에 인수된 형제 제품이지만, 본래 환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코카콜라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음료였다. 전쟁 중에 개발된 음료이다 보니 재료 또한 범상치 않았다. - P76

 여러 나라에 세워진 코카콜라 지사 중 특히 독일 지사는 1929년 부임한 미국 태생의 레이 리빙톤 파워스의 뛰어난 사업 능력 덕분에 승승장구했다. - P77

1938년 코카콜라 독일지사의 사장이던 레이가 세상을 떠나자막스는 바로 회사를 인수했다. 당시 독일에서의 코카콜라 판매량은 400만 병에 이르렀다. 10년 만에 미국 다음으로 매출이 높은 나라가 된 상황이었다. - P78

다음 해인 1939년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지만, 미국은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 미국 기업인 코카콜라 본사는 독일지사에 원액 공급을 끊지 않았다.  - P78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며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이때부터 코카콜라 유통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미군에게는 5센트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공급된 반면, 적군인 독일에는 공급이 전면 중단되었다. - P79

수년간의 전쟁으로 식재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치즈나 버터 등을 만들고 남은 액체인 유장, 사과주를 만들고 남은 사과 섬유질, 그밖에도 과일부스러기와 사탕 무 등 다른 식품을 만들고 남은 음식 찌꺼기들을 모았다. - P79

"상상력 좀 발휘해보게."
이 말에 어떤 직원이 ‘상상력‘ 자체가 좋은이름이 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독일어로 ‘상상력‘은 ‘판타지 Fantasie‘ 였는데, 이 단어를 줄여서 ‘환타FANTA‘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 P80

 코카콜라 본사는 막스가 나치에 음료를 공급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나치가 아닌 코카콜라에 충성했다고 판단했다. 그 증거로 막스는 본사와 연락이 끊어진 동안 벌어들인 수익금을 전쟁이 끝난 뒤 본사로 보냈다. - P81

이후 1955년 이탈리아나폴리에서 새로운 레시피로 환타가 부활했다. 나폴리 현지의 감귤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환타 오렌지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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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보성 개념을 제안했던 보어는 1937년 중국을 방문한다. 거기서 그는 태극문양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양자역학을 이해할 사고의 틀이 서양에는 없었지만, 동양에는 있었던 것이다. - P136

하지만 위치와 속도, 둘을 동시에 정확히 안다면 상보성에 위배된다.
이게 말이 되나? 상보성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자나 원자와 같은 기본입자들이다. - P137

 불확정성의 원리가 옳다면 우리는 원자에 대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한마디로 모른다는 거다. 불확정성의 원리가 말하는 무지는 우리의 실험장비나 감각기관의 부정확성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상보성, 그러니까 자연의 근본원리로서의 무지, 본질적인 무지다. - P137

 양자역학이 발견한 물리, 즉 사물의 이치는 결국 불가지론이란 말일까. 아니다. 양자역학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과학이론 가운데 가장 정밀한 결과를 준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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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립되는 두개념이 사실 하나의 개념이라는 생각은 동양인들에게 익숙한 철학이다. 음양의 조화라든가 중용 같은 것도 대립하는 개념 사이에서 옳은 쪽을 찾기보다 둘을 조화시키는 동양의 지혜다. 논리적으로만 보자면 대립되는 두 명제 가운데 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다. - P128

 물리학에서는 이것을처음에 ‘이중성 duality‘ 이라고 불렀고, 나중에는 ‘상보성complementarity"
이라는 용어로 공식화시켰다. 상보성의 중요한 예는 하이젠베르크가 찾아낸 ‘불확정성의 원리‘다. - P129

이런 유사성은 그 자체로 흥미롭지만 과학적으로 의미가 크지는 않다. 과학은 실험적 증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은 생각의 틀을 제공하는 법이다. - P129

정확하게 말하면 ‘입자‘의 대립물이
‘파동‘이라는 뜻이다. 당구공과 같은 입자는 무게를 가지고 있지만,
소리와 같은 파동은 무게가 없다. 당구공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소리는 어디 있다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다. - P130

19세기 물리학의 주인공은 전기다. 1860년대 전기와 자기를 기술하는 맥스웰 방정식이 완성되고, ‘빛‘이 맥스웰 방정식의 수학적 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 P130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이 확립된 바로 그때 빛이 입자라는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P132

첫 번째 증거는 ‘흑체복사‘라는 현상이다.
(중략)
흑체복사이론은 막스플랑크(1918년 노벨물리학상)가 제안한 것이다. 이 이론에는 기묘한 가정이 하나 필요했다. 빛의 에너지가 특정한 값의 정수 배로만 존재한다는 가정이다.  - P132

 하지만 빛은 파동이다! 플랑크는 보수적인 사람이라 차마 빛이 입자라고 말할 수 없었다. - P132

빛이 입자라는 두 정쨔 증거는 ‘광전효과‘다.
(중략) 하지만 찍어준 빛과 튀어나온 전자의 에너지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흑체복사 때와 같이 빛의 에너지가 띄엄띄엄하다는 가정을 해야 했다.
1905 년 아인슈타인이 빚은 입사라고 용감하게 주장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빛은 파동이니까. - P133

 1920년대 초아서 콤프턴(1927년 노벨 물리학상)이 빛으로 당구공 실험을 하여 빛이 입자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당구공을 서로 충돌시키면 어떻게 행동할지 뉴턴역학으로 완전히 기술할 수 있다. 콤프턴은 빛이 당구공같이 행동한다는 사실을 보인 것이다. - P133

흥미로운 일이지만 물리학에 이중성이라는 개념이 탄생하던 1920년대, 예술에서는 ‘초현실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는 인간의 무의식을 예술로 표현하는 것으로, 프로이트의 심리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 P134

파동인 줄 알았던 빛이 입자의 성질을 갖는다. 그렇다면 입자인줄 알았던 ‘것‘이 파동의 성질을 가질 수는 없을까? 당시 물리학자들은 원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 P134

빛과 전자는 왜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갖는 것일까? 이두 성질은 물리적으로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무선 통신할 때 빛은파동으로 행동하지만, 광전효과실험에서 빛은 입자로 행동한다.
이 두 실험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둘중에 하나의 실험을 하면 빛은 입자와 파동, 둘 중 하나로 결정된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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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지만 끝으로 갈수록 왜인지 흥미가 떨어진다.
유투브에서 단편으로 했을 때가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다.

다음은 요시에 씨의 이야기에서 출판이 가능한 부분만 정리한 내용이다. - P188

가에이는 담대한 성격과 뛰어난 경영 능력으로 사업을 크게 성장시켰다. 하지만 쉰 살을 맞았을 무렵, 지병이 악화된 걸계기로 일선에서 물러나 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가에이에게는 소이치로와 세이키치라는 아들과 지즈루라는 딸이 있었다. - P189

하지만 가에이가 후계자로 선택한 건 첫째 소이치로였다.
그 이유는 세이키치의 출생이다.
사실 세이키치는 본처 소생이 아니라 가에이가 가타후치가문에 고용된 하녀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이, 이른바 ‘첩의 자식‘이었다.  - P189

세이키치는 소이치로의 뒤치다꺼리하기를 거부하고, 집을나가서 독립한다. 세이키치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아버지가
"넌 첩의 아들이니까 집안을 물려받을 수 없다."라고 단언한셈이다. 아주 속상했으리라. - P190

하루하루 쇠약해져 가는 아버지의 모습에, 언젠가는 자기 혼자 가타후치 가문을 통솔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일을 배우기 위해 매일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 소이치로를 가에이도 든든하게 여겼다.
하지만 가에이에게는 걱정거리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소이치로의 결혼 문제였다. - P191

가에이가 소이치로의 결혼 상대로 고른 여자는 저택에서 일하던 고용인 다카마 우시오였다.  - P192

다카마 우시오……………. (중략) 가타후치 가문에 고용된 후로도, 하녀 신세로 아침부터 밤까지 허드렛일에 시달렸다.
그런 우시오에게 인생 최대의 전환기가 찾아왔다. - P192

살면서 갖은 고생을 맛본 우시오로서는 거부하기 힘든 쾌락으로 가득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 속에서도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바로남편 소이치로의 태도였다. 소이치로는 우시오에게 다성했지만, 결코 아내로서 대하지는 않았다. 결혼한 후로 단 한 번도 부부 관계를 가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 P193

결국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우수한 인재들이 차례차례 떠나자 사업 실적은 점차 악화됐다. 그리고 몇 년 후, 엎친데 덮친 격인 일이 발생한다.

지즈루가 소이치로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 P194

그런데 이 일이 우연히 어떤 인물의 귀에 들어간다. 소이치로의 남동생 세이키치의 귀에.
세이키치는 의외의 행동에 나선다. 본가로 찾아와 관계자일동 앞에서 소이치로를 질책한 것이다. - P194

가타후치 가문의 약점을 쥔 세이키치는 그 후, 당근과 채찍을 섞어 가며 본가의 주요 인물을 차례차례 분가로 포섭한다.
그에 대항할 힘이 소이치로에게는 없었으므로, 가타후치 본가가 소유하고 있던 재산과 사업 경영권은 부당하게도 대부분 분가에 흡수됐다. - P195

몰락한 집안의 산속 저택에서 사랑이 없는 남편, 그리고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시누이와 함께 살아간다. 그 지옥 같은 삶 속에서 우시오는 서서히 정신이 병들었다. - P196

이 죽음이 자살인지, 자해 행위가 과했던 결과인지는 알 수없다. 어쨌든 소이치로는 자기 때문에 우시오가 죽었다고 생각해 큰 충격을 받는다. - P197

 즉, 원래부터 이따금 손에 문제가 있는 아이가 태어나는 혈통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이 없었던 소이치로는 왼쪽 손목을 자르고 죽은 우시오를 떠올리고, 이 현상이 우시오의 저주라고 믿는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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