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공정으로서의 정의
입문적인 이 장에서는 앞으로 전개하고자 하는 정의론의 기본 관념을 약술하고자 한다. 설명 방식을 갖추지 않은 것은 다음에 올 보다 상세한 논의를 위한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 P35
1절 정의의 역할
사상 체계의 제1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1덕목이다. 이론이 아무리 정치하고 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배척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듯이,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선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 P36
이러한 명제들은 정의의 우위성에 대한 직감적 신념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그것은 지나치게 강한 표현으로 되어 있기는 하다. 아무튼 나는 그러한 입장이나 그와 유사한 주장들이 타당한 것인지를 살피고, 타당할 경우 그 논거가 무엇인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 P36
나아가서 이러한 규칙은 그 성원들의 선을 증진하기 위해 마련된 협동 체제가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 P37
그러면 어떤 사회가 그 성원들의 선을 증진해줄 뿐만 아니라 공공적 정의관에 의해 효율적으로 규제되는 경우, 그 사회를 질서정연한well-ordered사회라 해보자. 즉 그것은 (1) 다른 사람도 모두 동일한 정의의 원칙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모든 이가 인정하고 있고, (2) 사회의 기본 제도가 일반적으로 이러한 원칙을 충족시키고 있으며, 그 사실 또한 널리 주지되어 있는 그러한 사회를 말한다. - P37
물론 기존 사회가 이런 식으로 질서정연한 경우는 드물다. 왜냐하면 정의와 부정의가 무엇인가조차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 P38
따라서 이러한 다양한 정의관들과 구별되면서 그 상이한 원칙과 견해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역할을 나타내주는 정의의 개념 concept of justice을 생각해본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¹
1) H. L. A. Hart, The Concept of Law (Oxford, The Clarendon Press, 1961), pp. 155~159. - P38
정의의 개념과 다양한 정의관을 이렇게 구분한다고 해서 어떤 중대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사회 정의의 원칙들이 하게 되는 역할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 P38
나아가서 이러한 계획의 실현은 효율적이면서 정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목적의 달성을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끝으로 사회 협동체제는 안정된 것이어야 하는데, 지속적인 호응을 받는 동시에 그 기본 규칙들은 기꺼이 준수되어야 한다. - P39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한 정의관의 역할이 정의의 개념을 확인하는데 아무리 쓸모 있는 것일지라도 분배적 역할 하나만으로 그것을 평가할수는 없다. 우리는 그것이 갖는 보다 광범위한 관련들을 고려해야 한다. - P39
2절 정의의 주제
(전략). 그러나 우리가논하려는 것은 사회 정의인 만큼, 우리에게 있어서 정의의 일차적 주제는사회의 기본 구조basic structure of society,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의 주요 제도가 권리와 의무를 배분하고 사회 협동체로부터 생긴 이익의 분배를정하는 방식이 된다. - P40
우리의 연구 범위는 두 가지 점에서 제한되어 있다. - P41
첫째로 나는 특수한경우의 정의만을 문제 삼고 있다. 나는 제도나 사회 체제 일반의 정의를 문제 삼거나 국제법이나 국가 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정의를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58절) - P41
나는 우선 다른 사회와 분리되어 폐쇄 체제로 생각되는 사회의 기본 구조에 합당한 정의관을 정식화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자한다. - P41
우리의 논의에 대한 또 하나의 제한은 우리의 논의의 대부분이 질서정연한 사회를 규제하는 정의의 원칙을 검토한다는 점이다. - P41
물론 기본 구조라는 개념이 다소 애매한 것은 사실이다. - P42
그런데 사회 정의관은 일차적으로 사회의 기본 구조가 갖는 분배적 측면distributive aspects을 평가할 기준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사회의 기본 구조나 사회 체제 일반이 갖는 다른 덕목들을 규정하는 원칙들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 P43
이상의 예비적인 이야기에서 나는 상충하는 요구들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의미하는 정의의 개념과 이러한 균형을 결정할 적합한 고려 사항들을 확인하기 위한 관련 원칙들의 체계로서의 정의관을 구별했다. - P43
이런 접근 방식은 전통과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부합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 P44
3절 정의론의 요지
나의 목적은 이를테면 로크, 루소 그리고 칸트에게서 흔히 알려져 있는 사회계약의 이론을 고도로 추상화함으로써 일반화된 정의관을 제시하는일이다.⁴
4) 본문에도 나타나 있듯이 나는 Locke의 Second Treatise of Government, Rousseau의 TheSocial Contract, 그리고 The Foundations of the Metaphysics of Morals를 필두로 하는Kant의 윤리서들을 계약론적 전통을 결정짓는 것으로 간주하려 한다. Hobbes의Leviathan은 위대한 것이긴 하나 몇 가지 특수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개괄적인 역사적 조망을 제공하는 책으로는 J. W. Gough, The Social Contract. 2nd ed.(Oxford. TheClarendon Press, 1957); Otto Gierke, Natural Law and the Theory of Society. trans. Emest Barker(Cambridge, The University Press, 1934)가 있다. 계약론적인 입장을 일차적으로 하나의 윤리론으로 제시한 것은 G. R. Grice, The Grounds of MoralJudgement(Cambridge, The University Press, 1967)이다. 또한 19절의 주석 29 참조. - P45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있어서의 평등한 원초적 입장 original position이라는것은 전통적인 사회계약론에 있어서의 자연 상태 state of nature에 해당한다. - P46
(전략). 심지어 당사자들 parties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특수한 심리적 성향까지도 모른다고 가정된다. 정의의 원칙들은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속에서 선택된다. - P46
이미 말했듯이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사람들이 함께 선택하게 될 가장 일반적인 것들 중의 하나로 시작된다. 즉 그것은 제도들에 관한 그후의 모든비판과 개혁을 규제하게 될 정의관의 제1원칙들을 선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 P47
그러나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칙을 실현하는 사회는 가장 자발적인 체제에 가까이 접근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사회는 공정한 여건 아래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합의하게 될 원칙들을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P48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갖는 하나의 특징은 최초의 상황의 당사자들을 합리적이고 상호 무관심한mutually disinterested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 P48
공정으로서의 정의관을 전개하는 데 있어 분명히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원초적 입장에서 어떠한 정의의 원칙들이 채택될 것인가를 결정하는일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이 상황을 보다 상세히 기술하고 그것이 보여줄 선택의 문제를 주의 깊게 정리해야 한다. - P48
그와는 달리 내가 주장하려는 것은, 원초적 입장에서 사람들은 다음과같은 상이한 두 원칙을 채택하리라는 것이다. 즉 첫 번째 원칙은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의 할당에 있어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며, 반면에 두 번째 것은사회적·경제적 불평등, 예를 들면 재산과 권력의 불평등을 허용하되 그것이 모든 사람,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그 불평등을 보상할 만한 이득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정당한 것임을 내세우는 것이다. - P49
그런데 원칙의 선택 문제는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내가 제시하는 해답이 모든 사람에게 설득력을 가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 P50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가장 적절한 구상이 이루어진다면 확실히 공리주의나 완전설 perfectionism과는 전혀 다른 정의의 원칙들에 이르게 될 것이며, 따라서 계약설은 이러한 견해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 - P50
계약론적 설명 방식이 갖는 장점은 그것이 정의의 원칙들은 합리적인 사람들에 의해 선택되는 원칙들로 생각될 수 있고, 그런 식으로 정의관들이 설명되고 정당화될 수 있다는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 P51
결론적으로 한마디 덧붙일 것은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완전한 계약론은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계약론적인 사상은 어느 정도 전체적인 윤리체계의 선택에까지. 다시 말하면 단지 정의뿐만 아니라 모든 덕목들에 관한 원칙도 포함하는 체계에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P52
4절 원초적 입장과 정당화
(전략). 정당화의 문제에 대한 이러한 관점이 성공적이기 위해서, 물론 우리는이러한 선택의 문제가 갖는 성격을 보다 자세히 서술해야만 한다. 합리적 결정의 문제가 확실한 해결을 보기 위해서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당사자들의 소견과 관심, 그들의 상호 관계, 그들이 선택하게 될 여러 대안들, 그들이 결정짓게 될 절차 등등이다. - P53
그런데 우리는 가장 유력한 해석이 무엇인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 P53
. 여기서 생각나는 것은 단지 정의의 원칙들에 대한 논증에 가해져야 할, 그럼으로써 이 원칙들 자체에도 당연히 가해져야 할제한 조건들을 생생하게 떠오르도록 하는 일이다. - P54
. 우리는 사람들을 불화하게 하고 편견에 의해 인도되게 하는 이러한 우연적 여건들에 관한 지식을 배제한다. 이리하여 무지의 베일이라는 것에 자연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 P54
그런데 원초적 입장에 대한 특정한 규정을 하는 데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이는 선택되어질 원칙이 정의에 대한 우리의 숙고된 신념과 합치하는것인지 혹은 그것을 제대로 확대한 것인지의 여부를 살피는 일이다. - P55
(전략). 예를 들어 우리는 종교적인 편견이나 인종 차별 등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조심스럽게 검토함으로써, 자신의 이해관계에 골몰한 나머지 왜곡되어서는 안 될 공평한 판단이라고 믿는 바에 도달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념은 어떤 정의관도 그것에 부합되어야 하리라고 생각되는 잠정적인 고정점 fixed points이다. - P55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명을 찾는 데 있어 우리는 양쪽 끝에서부터 작업을 하게 된다. 우선 그것이 일반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다소 미약한 조건을 나타내는 그러한 상황을 기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P56
물론 나는 이러한 과정을 실제로 거쳐서 작업을 진행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제시하게 될 원초적 입장에 대한 해석은 그러한 가상적인 반성 과정의 결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P57
끝으로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일정한 정의의 원칙들이 정당화되는 근거는 바로 그것들이 평등한 최초의 상황에서 합의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 P57
.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줄 하나의 관념을 필요로 하는데, 원초적 입장이라는 직관적 개념이 우리에게 바로 이러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⁶
8) Henri Poincare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목적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 능력이 바로 직관이다." La Valeur de la science(Paris, Flammanon1909), p.27. - P58
5절 고전적 공리주의
공리주의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으며 그 이론의 발전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왔다. 나는 여기에서 그 여러 형태를 살피지도 최근의 논의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세련된 이론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나의 목적은 공리주의 사상 일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그럼으로써 그 여러 가지 상이한 변형들 모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정의론을 전개하려는 데 있다. - P58
이러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여기에서 설명하려는 공리주의의 종류는 시즈위크sidgwick에 의해 가장 명료하고 접근하기 쉽게 정식화된 엄밀한 고전적classical 이론이다. - P59
우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장 합리적인 정의관은 공리주의적이라고 쉽사리 생각하게 하는 어떤 사회관이 있다는 점이다. - P60
나는 윤리학에 있어서 두 주요 개념은 옳음(정당성]the right과 좋음(선]the good며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인격이라는 개념도 이것들로부터 도출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윤리설의 구조는 대체로 이 두 가지 기본 개념을 규정하고 관련짓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 P61
목적론에서는 좋음이 옳음과 상관없이 규정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로 그 이론은 무엇이 선이냐에 대한 우리의 숙고된 판단(우리의 가치 판단)을 상식에 의해 직관적으로 분간될 수 있는 판단들의 독립된 집합으로 설명하며, 옳음이란 이같이 이미 명시된 선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라는 가설을 제안하고 있다. 둘째 로그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옳음이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사물의 좋음 여부를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62
전통적인 목적론이 갖는 간단명료함은 대체로 그것이 우리의 도덕 판단을 하나는 독립적인 규정을 갖는 것으로, 다른 하나는 극대화의 원칙maximizing principle에 의해 처음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구분하여 두 부분으로 나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 P62
공리주의 정의관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러한 만족의 총량이 개인들에게 어떻게 분배되는지에 대해 간접적으로만 문제 삼으며, 한 개인이 자신의 만족을 시간적으로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만 문제삼고 있다는 점이다. - P63
공리주의에 도달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물론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개인에 있어서의 합리적인 선택 원칙을 사회 전체에 대해서도 채택하는 일이다. 일단 이 사실만 수긍된다면 공리 사상사에 있어서 공평한 관망자impartial spectator의 지위와 동정심에 대한 강조를 저절로 이해하게 될것이다. - P64
(전략), 이상적인 입법자는 사회 체제의 규칙들을 조정하여 그 욕구 체계의 만족을 극대화하는 데 힘쓰게 된다. 이래한 사회관에 비추어볼 때 각 개인들이란 욕구의 최대 만족을 달성하기 위한 규칙에 따라서 권리와 의무가 할당되고, 부족한 욕구 충족의 수단들이 배분되는 상이한 계열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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