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빛

레스트레이드가 가져온 정보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어서 우리는 깜짝 놀랐다. - P100

<손님께서 기다리던 분이 이제야 오셨군요.> 프런트 직원이 말했소이다. <손님께선 어떤 신사 분이 올 거라며 이틀내내 기다리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신가?> 나는 물었소.
<스탠거슨 씨는 지금 2층 객실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아홉시에 깨워달라고 하셨지요.>
<당장 올라가서 만나봐야겠네. > 나는 말했소. - P102

 그런데 그 순간, 경찰 경력 20년의 내가 보기에도 구역질 나는 뭔가가 눈에 띄었소이다. 방문 밑으로, 빨간 리본 같은 핏줄기가 꾸불꾸불 새어나와 복도 건너편에 자그마한 피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던 거요. 나는 소리를 질렀고, 구두닦이가 깜짝 놀라 돌아섰소. - P102

셜록 홈즈가 대답하기 전부터, 나는 어떤 끔찍한 것을 예감하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피로 쓴 <라헤>」홈즈가 말했다.
「바로 그거요」
레스트레이드는 몸을 움츠리며 말했고,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 P103

「그런데 범인을 목격한 사람이 있소」
레스트레이드는 말을 계속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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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가 정말 찾아오면 어떻게 하지요? 나한테는 반지가 없는데요」
「아, 여기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는 반지 하나를 내밀었다.
「이 정도면 될 겁니다. 거의 비슷하니까요」
「그런데 이 광고를 보고 누가 정말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P75

「그자가 오면 어떻게 하지요?」나는 물었다.
「아, 그 다음 일은 나에게 맡겨두십시오. 그런데 무기는갖고 계신가요?」
「오래된 군용 리볼버 하나와 탄약통이 몇 개 있습니다」 - P76

「권총은 주머니에 넣어두십시오. 그자가 왔을 때 낌새를채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얘기만 하세요.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두시고요. 그자를 너무 자세히 쳐다봐서 행여 놀래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 P77

「왓슨 박사님이 여기 사시오?」
또렷하지만 목쉰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녀의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문이 닫혔고, 누군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략).
「들어오세요」
나는 소리쳤다.
방에 들어온 사람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기운찬 사내가아니라 발을 절룩거리는 주름투성이 노파였다. - P78

「이게 따님의 반지가 맞습니까?」
나는 물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노파는 호들갑을 떨었다.
「샐리란 년은 복도 많지. 바로 이게 그 반지라우」 - P79

「하운즈디치 던컨가, 13번지. 여기서는 하품이 나올 만큼멀다우」
「서커스가 벌어지는 곳 어디에서도 하운즈디치로 이어지는길 중에 브릭스턴로는 없습니다」
셜록 홈즈가 날카롭게 말했다.
노파는 고개를 돌리고 눈자위가 불그스레한 작은 눈으로홈즈를 노려보았다. - P80

「저 할멈의 뒤를 쫓아야겠습니다」
홈즈는 급하게 말을 이었다.
「할멈은 같은 패거리임에 틀림없어요. 뒤를 따라가면 놈을잡을 수 있을 겁니다. 갔다 올 테니 기다려주십시오」일층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을 때 홈즈는 벌써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노파는 길 건너편을 힘없이 걷고 있었고, 홈즈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그 뒤를 쫓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 P81

「할머니는 무슨 얼어죽을 할머니!」
셜록 홈즈는 날카롭게 말했다.
「속아 넘어간 할머니는 바로 우리였지요. 그자는 젊은  놈이었을 겁니다. 그것도 아주 힘이 좋은 치였어요. 그뿐입니까? 전문 배우 뺨치는 연기력에, 분장은 가히 최고의 솜씨였지요. 그자는 자기가 미행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를 따돌리기 위해 그런 수를 쓴 게 분명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쫓는자는, 우리 생각과 달리 혼자가 아닌 것이 틀림없어요. 그자에겐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 친구들이 많은 겁니다. 그런데 아주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어서 들어가서 주무십시오」 - P83

토비아스 그렉슨, 능력을 과시하다


다음날 신문에는 <브릭스턴 수수께끼>라고 명명된 사건에관한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 어느 신문에나 장문의 사건 기사가 실렸고, 일부 신문에선 그에 관한 사설까지 덧붙였다. - P84

셜록 홈즈와 나는 아침 밥상머리에서 같이 이런 기사들을읽어내렸다. 그는 이 기사들을 상당히 재미있어 하는 듯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일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점수를 따는 쪽은 레스트레이드와 그렉슨이라고요」
「그건 일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 P86

바로 그때 아래층 홀에서 어지럽게 들려오는 여러 사람의발자국 소리를 듣고 나는 외쳤다. 여럿이서 우당탕퉁탕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하숙집 주인이 질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베이커가 특공대입니다」
(중략).
「차렷!」홈즈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어린 양아치 여섯 명이 더러운 조각상처럼 일렬로 서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 P87

「저런 어린 거지 하나가 경찰 대여섯 명보다 더 많은 일을할 수 있답니다」홈즈는 말했다.
「사람들은 대개 제복 입은 사람만 봐도 입을 다뭅니다. 하지만 저런 아이들은 안 가는 데가 없고 못 듣는 얘기가 없습니다. 게다가 눈치 하나는 비상하지요. 저런 아이들을 조직해 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저절로 알아서 굴러갑니다」 - P88

그렉슨은 큰 소리로 외치며 홈즈에게 달려들어 손을 덥석잡았다.
「축하해 주시구려! 내가 모든 것을 깨끗이 밝혀냈소」
(중략).
「가닥을 제대로 잡았느냐고? 아니오, 선생, 우린 범인을체포했소이다」
「범인의 이름은?」
「아서 챠펜티어, 대영제국 해군 중사요」 - P89

그가 외쳤다.
「저 바보 같은 레스트레이드 일이오. 그 친구는 자기가 굉장히 똑똑한 줄 아는데, 지금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소이다. 그 친구는 사건과 아무 상관없는 비서 스탠거슨을 뒤쫓고 있소. 아마 지금쯤은 틀림없이 그를 잡았을 거요」
그렉슨은 생각만 해도 우스운지 숨이 막히도록 웃어댔다. - P90

(전략). <비서인 스탠거슨 씨는 저녁 아홉시 15분 기차와 열한시기차가 있다고 했지요. 그런데 아홉시 15분 기차를 타겠다고하더군요.> 
<그러면 그분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그때였습니까?>  내가 그렇게 질문했을 때 부인의 얼굴이 무섭게 변했소. 얼굴이 완전히 납빛으로 되더군. 부인은 잠시 뜸들이다가 목이 쉰 듯 부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예>라는 한마디를 간신히 토해 냈소. - P92

 <형사님, 저는 형사님한테 이런 얘기를 다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엾은 딸이 말해 버렸으니할 수 없군요. 일단 말하기로 결심했으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다 말씀드리겠어요.>
<현명하십니다.> 나는 이렇게 말해 주었소. - P93

챠펜티어 부인은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자 얼굴을 붉혔소. <저는 그 인간이 여기 온 날부터 당장 쫓아내고 싶었습니다.> 부인은 말했소. <하지만 유혹이 너무 컸답니다. 하숙비가 1인당 하루 1파운드씩, 1주일이면 14파운드였지요. 그런데 요즘은 비수기잖아요. 과부의 몸으로 해군에 있는 아들 치다꺼리에 돈이 좀 많이 들어야지요. 그놈의 돈이 원수지요. 저는 꾹 참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딸한테그러는 걸 보고 이제는 끝이다 싶어서 당장 나가달라고 했지요. 드리버 씨가 이 집을 나간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 P94

「정말 재미있는 얘기군요」
셜록 홈즈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지요?」
「챠펜티어 부인이 이야기를 끝냈을 때…………」
형사는 말을 계속했다. - P95

<아드님이 돌아온 건 부인이 잠자리에 든 다음이었나요?<(all.>
<부인이 자러 간 시간이 몇 시쯤이었지요?>
<열한시쯤.>
〈그러면 아드님은 적어도 두 시간은 밖에 나가 있었군요?>
<(a). >
<새벽 네시나 다섯시쯤에 들어왔나요?>
<예>(all.)
<아드님은 그동안 무엇을 했지요?>
<모르겠어요.> 부인은 입술까지 하얗게 질린 채 대답했소이다.. - P96

그것은 정말 레스트레이드였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동안 그는 계단을 올라와서 방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평소의그 경쾌하고 확신에 넘치는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중략).
그렉슨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난 자네가 그런 결론을 내릴 줄 알았네. 그래, 조셉 스탠거슨 비서는 찾았나?」
「조셉 스탠거슨 씨는……………」
레스트레이드는 침통하게 말했다.
「오늘 아침 여섯시경에 핼리데이 프라이빗 호텔에서 살해당했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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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번스의 역설

Jevons paradox


에너지 효율 개선이 에너지 소비의 축소가 아닌 확대로 이어지는 현상.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 진보가 오히려 자원 소비를 늘리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논리학자인 윌리엄 제번스가 1865년에 『석탄 문제The Coal Question』를 통해 주장했다. - P205

태양이 경기순환의 원인이라고?

(전략). 민주주의사회의 언론이라면 사회의 걱정거리와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기 마련이니, 경기가 좋다는 말보다는경기가 나쁘다는 말이 더 많이 들리는 것도 당연하다.  - P206

국가통계포털이라는 웹사이트에는 ‘경기순환시계‘라는것이 있는데, 이것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경기가 좋고 나쁨이 어떻게 반복되어 왔는지를 몇 가지 경제지표를 이용해 말 그대로 시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 주는 프로그램이다. - P207

현대 경제 이론에서는 경기순환이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에 따라 매우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일어난다고 보고있다. 쉽게 돈을 버는 비법 같은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 - P207

그런데 경제학 발전의 초기였던 19세기 시절에는 영국의 위대한경제학자 윌리엄 제번스가 무척 기이한 방법으로 경기순환을 예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중략). 제번스는 지구에서 1억 5,000만 킬로미터 떨어진 머나먼우주 공간에서 수소 핵융합반응을 일으켜 열과 빛을 내뿜고있는 태양이 경기순환의 원인일 수 있다고 보았다. - P208

지금에 비하면 당시는 마땅한 장학 제도나 복지 제도도 부족했던 시대였다. 그래서 그는 학문에만 전념하는 삶은 더 이상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제번스는 일자리를 찾아영국과 거의 지구 반대편이라고 할 수 있는 머나먼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 P209

오스트레일리아에 간 제번스는 화학에 뛰어났던 특기를살려 돈을 만들어 내는 조폐국 산하기관에서 일을 했다. 당시만 해도 아직 금화, 은화, 동화 같은 금속으로 만든 돈이 중요하게 사용되던 시절이었다. - P210

석탄이 사라지면 경제가 무너진다

제번스는 자신의 가장 훌륭한 업적으로 평가받는 경제학이론을, 마치 과학처럼 수학과 계산식으로 표현한 것을 자랑거리로 여겼다.  - P211

제번스는 한계효용이론을 단순하고 막연하게 말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명확한 계산식으로 밝히고자 했다 - P211

잘 알려진 예를 하나 들어 보자면, 한창 그가 학자로 활동하던 1865년에 펴낸 『석탄 문제』라는 책을 꼽을 수 있다. - P213

(전략). 사람들은 언젠가 석탄이 떨어지거나 석탄값이 너무 비싸지면 모든 경제활동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걱정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석탄을 더 적게 쓰면서도 같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 P214

그런데 『석탄 문제』에서 제번스는 정확히 정반대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는 석탄을 덜 소비하는 기계를 개발하면 역으로 석탄의 소비는 더욱 늘어나고 석탄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다는 놀라운 주장을 펼쳤다. - P215

제번스의 역설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실제로 지난 200년동안 석탄을 사용하는 장비들의 효율이 좋아져서 더 적은 양으로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석탄 소비는 증가했다. - P216

기술 발전과 소득효과

(전략).
2020년대 한국은 전체 전기 생산의 30퍼센트를 석탄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적은 양의 석탄으로도 많은 전기를 만들 수 있는 고효율 기술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석탄을 많이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 P216

 1940년대에는 국가에서 무기 개발 등의 작업에 필요한 특수한 몇 가지 계산을 위해 가끔 컴퓨터를 사용할 뿐이었다. 요즘에는 집집마다, 사무실마다 책상 위에 고성능 컴퓨터를 설치해 두고업무를 하거나 게임을 하기 위해 누구나 컴퓨터를 사용하는세상이 되었다. 나아가 작은 배터리로도 충분한 성능을 낼 수있을 정도로 극히 적은 전기를 사용하는 반도체 칩이 개발된 요즘은 더 정도가 심해졌다. - P218

 제번스의 역설이 발생하는 데에는 조금 성격이 다른 원인도 있기 때문이다. 꼭 석탄을 사용하는 분야가 확대되지 않더라도 기술 발전으로 적은 석탄을 쓰게 되면 결국 석탄 소비는 늘어날 수 있다. - P219

그러다 보면 결국 사회 전체에 걸쳐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 쓸 수밖에 없고 결국 석탄을 이용해야 하는 일도 그만큼 더늘어나게 된다. (중략). 이것은 기술 개발로 인한 자원 절약이 소득 효과income effect를가져온다는 말과도 통한다. - P219

제번스의 역설을 경계하는 주장 중에는 결국 기술 발전이 자원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여, 역으로기술 개발에 집중하지 않고 절제, 검약을 강조하는 것들도 있다. - P220

제번스처럼 폭넓은 시선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제번스의 역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복잡한 방안을 제안했다 - P221

(전략). 나는 제번스의 역설에 대한 그런 사고방식이 우주를 올려다보며 시장통 불경기의 원인을 고민했던 제번스의 폭넓은 시선에도 어울린다고 본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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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왜 19세 판정을 안 받았을까?

등장인물 소개

오자서(?~BC 484)

중국 춘추시대의 초나라 사람. 초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태사 벼슬인 오사의 둘째아들로서 혼란스런 국정을 바로잡기 위해 헌신한다. - P12

손무


본시 제나라 명문 세도가인 전 씨 집안의 자손이었으나, 손씨 성을 하사받고오나라로 옮겨와 살았다. 오초의 국경지대 격전장을 살피고 분석하여 병법을 연구하였다. 그것이 바로 《손자병법≫이다. - P13

손빈

손무 후손이다. 혈기 왕성하여 사냥을 즐기는 가운데 방연과 함께 당대의 명장 오기의 문하門下에 들어가 병법의 대가가 되지만, 벼슬에는 뜻이 없고 가정에서 편안히 지내고자 한다. - P14

방연

가난한 가정 출신으로 출세 길을 위한야망을 불태우며 병법에 몰두한다. 손자의 병법을 배우기 위해 손빈의 집에 찾아들고 손빈과 동문수학한다. - P15

말희의 주지육림


걸왕은 하 왕조의 17대째 천자였다. 걸왕은 지략과용력이 뛰어나 어릴 때부터 소년 호걸로 칭송받았는데, 천자에 오르면서부터 정사를 돌보지 않고 술과 여자에 빠져 황음무도한 생활을 지내면서 이웃 제후국들을 무차별 공격하여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다. - P27

간신들이 충동질을 하자 걸왕은 앙천대소仰天大笑했다.
"하하하! 유시국을 토벌하여 미인들을 모두 후비로 삼으리라."
걸왕은 10만 군사를 일으켰다. 군사를 일으킨 목적은오로지 재산 약탈과 미녀 공출이었다. 유시국의 영토는삽시간에 짓밟히고 도성은 포위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창졸간에 당한 유시국은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 P28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모는가."
유시국 왕이 비탄에 잠겨 울부짖었다. 유시국왕의 통곡에 중신들은 일제히 무릎 꿇고 울었다. 왕은 중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물을 준비하고 도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들을 선발했다. - P28

말희는 17, 18세의 앳된 나이였으나 복숭아 빛깔처럼고운 피부에 터질 듯 팽팽하게 솟아오른 젖가슴과 버드나무처럼 가는 허리, 풍만한 둔부는 가히 사내의 간장을녹이고도 남을 만큼 뇌쇄적이었다.
말희가 비단옷으로 단장을 하고 어전에 나타나자 왕과신하들이 그 찬연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모두들 왜진작에 말희와 같은 미인을 만나지 못했는지 후회가 될지경이었다. - P29

유시국 왕이 양 1백 마리를 끌고 나와 아홉 번의 절을 올리고 말희와 진기한 공물이 적힌 물목을 걸왕에게공손히 바쳤다.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던가?‘
걸왕은 말희를 보자 세뇌된 듯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말희의 살결은 빙기옥골처럼 맑고 깨끗하다 못해 하얗게 빛나 보였고, 눈은 깊고 물기에 젖어 촉촉했다. 뭐라 한 마디라도 큰소리친다면 금방 눈물이 쏟아질 듯했다. - P30

걸왕은 이제 말이 필요 없었다. 진기한 천하제일의 구슬이 닳아 없어질까봐 말희를 침상에 앉히고 옷을 한 겹한 겹 조심스레 벗겨갔다. (중략), 걸왕은 완전히 매료되었다.
‘아아,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일 줄이야.‘
걸왕은 조심스럽게 말희를 안아 눕혔다. 말희의 몸은자신을 위한 맞춤이듯 따뜻하고 부드러웠으며 모든 걸포용하고 있었다. - P31

그날 이후 걸왕은 말희의 치마폭에 휩싸여 한시도 말희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술과 가무에 빠져 지냈다. 매일같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어화원에서 말희와 함께 주연을 즐기는 것에 탐닉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으니 대소신료들의 품신조차 귀찮게 여겨졌다. - P33

"폐하, 대궐의 궁녀들은 한결같이 볼품이 없고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전국에 영을 내려 3천 명의 미인들을 뽑고 그들에게 비단옷을 입혀 춤추고 노래 부르게 하소서."
말희가 온갖 교태를 부려가며 눈웃음을 치고 앵두 같은 입술로 말을 하니 걸왕은 즉시 영을 내렸다.
"너의 말이 옳도다. 지금 즉시 전국에서 미인 3천 명을가려 뽑아 대궐로 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또 백성들에게3천 벌의 비단옷을 바치게 하라. 영을 어기는 자는 가차없이 목을 베어 죽여라." - P34

(전략). 이때 말희가 살며시 눈을 감으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눈을 반짝 떴다.
"폐하, 궁녀들에게 술을 따라주는 데 시간이 지체되어재미가 시들어집니다. 이곳에 연못을 만들어 술을 채우십시오. 그리고 배를 타고 다니면서 술을 마시고 나뭇가지에 고기를 매달아놓으면 주야장천 미인들과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사옵니까?" - P36

말희와 함께 황에 빠져든 걸왕은 이제 정사와는 거리가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하루가 멀다고 주지육림을 위해 새 술을 빚고 새 고기를 만들라는 왕명만이백성들에게 내려졌다.
이로써 하나라는 많은 인력과 재물이 탕진되고 국력은날로 쇠퇴해져 갔다. 뜻있는 대신들이 더 이상 보다 못해걸왕 앞에 엎드려 죽기를 각오하고 충성으로 간諫했다. - P38

태사령太史 종고가 먼저 간했다.
"폐하, 말희는 천하의 음탕한 계집이오니 참수하십시오. 천자께서 말희를 얻은 후부터 정사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만 빠져 있으니 옛 성현들에게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번에는 중신 관용봉이 충간을 했다.
"뭣이! 네가 입이 있다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느냐?
네가 정녕 죽어야 입을 다물겠느냐?" - P39

걸왕은 눈물로 호소하는 충신 관용봉을 참수했다. 미친듯이 날뛰는 걸왕 앞에 대신들은 하나둘 물러나기 시작했고 이제 하나라가 기필코 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하고 하남성에서 존경받는 제후의 한 사람인 탕湯을 섬기기도 했다.
탕은 매우 현명하고 덕이 많기에 다른 제후들이 탕의덕을 칭송하면서 그에게 몰려왔다. 탕은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어 군사를 일으켰다. - P39

하나라는 제후들의 맹주였다. 비록 걸왕이 폭정을하고 있었으나 그가 분개하여 영을 내리자 많은 제후들이 군사들을 이끌고 달려왔다.
탕왕 또한 여러 제후의 군사들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걸왕의 군사들을 공격했다. - P41

(전략).
이로써 4백 50여 년이나 이어 오던 하 왕조는 하루 아침에 멸망하고 새 나라가 탄생했으니, 바로 은殷나라였다.
탕왕은 온 천하 제후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고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릴 것을 약속하였다. 이에 모든 제후들이 감읍하였다. - P42

달기의 포락지형

탕왕은 천자로 즉위한 후에 명재상 이윤의 도움으로 어진 정치를 펼쳤다. 이윤은 걸왕에게 충간을 해도 듣지 않자 상나라로 망명하여 탕왕을 섬겼다. - P43

신辛은 27대 제乙의 세 번째 왕자로 태어나 미계자구라 불렸다. (중략).
미계자는 어릴 때부터 언변이 뛰어나고 두뇌가 명석했다. 뿐만 아니라 맨손으로 맹수를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로 효용勇을 지녔으며 신하들의 어떠한 간언에도말려들지 않았다. - P44

(전략). 주왕은 제위에 오르자 정사는 돌보지 않고 술과 여자에 빠져 지냈다. 물론 궁 안에 여자들이 지천으로 깔려있으니 젊은 혈기에 이를 마다할 리가 있었겠는가.
그는 특히 가무를 즐기고 발정發情난 말처럼 풍마지희風馬之喜의 열락悅樂에 빠졌다.  - P44

"호오! 소후의 딸이 그토록 절색이란 말이지."
주왕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소후를 불러들여 청을 넣었다.
"그대에게 어여쁜 딸이 있다고 들었소. 짐이 그대의 딸을 후궁으로 삼고자 하니 속히 보내시오."
소후에게는 생각지 못한 날벼락이었다. 주왕은 이미간신배들에게 둘러싸여 폭정을 일삼고 주색에 빠졌다는소문이 파다했다. - P45

주왕은 펄펄 뛰며 소후를 죽여버리고 그의 딸을 데려오라며 소리쳤다. 그러자 신하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후를 죽이면 안 된다고 간언했다. 그 대신 소후의 딸을 데려오기로 결정을 봤다. - P46

"폐하, 궁중음악이 마땅치 않사오니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도록 하옵소서."
그렇잖아도 주왕은 지금까지의 궁중음악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달기가 말을 대신 해준 셈이었다.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달기는 알아차리는구나.‘ - P48

"폐하, 환락의 극치가 어떤 것인지 맛보고 싶사옵니다.
걸왕의 왕비 말희가 어떻게 즐겼는지 우리도 그들처럼마음껏 즐기심이 어떻겠습니까?"
이것이 그녀의 본심이었고, 그녀의 본심대로 움직이는것은 당연히 주왕의 몫이었다.
"그래, 좋다. 이왕이면 철저히 즐겨보자꾸나."
주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6백 년 만에 하나라에서 있었던 주지육림을 만드는 대역사가 은나라에서도 벌어졌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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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이 어린이가 석류알처럼 톡톡 떨어져서 입가에 피깨좋은 모습을 봤을 때 요시로는 놀라서 잠시 아무런 의미도 없이 방 안을 빙빙 돌아다녔다. 아이의 이는 다시 새로 나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 P22

진찰실에 들어가서 치과 의사와 눈이 마주친 요시로는 아직 의사가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빠져 버렸어요.(ㅅㅎ)"라고 저절로 내뱉어 버렸다. 목소리가 떨리고 억양이 흔들려서 "쓸 수 있게 돼 버렸어요.⁵ 비슷하게 발음했음을깨닫고 요시로는 서둘러 "빠져서 떨어져 버렸어요."라고 고쳐말했다. 그러고는 "젖니입니다만"이라고 덧붙였다.

5) 書けでしまったんです 앞의 "欠けてしまったんです"와 발음은 같으나 억양이 다르다. - P23

명하는 동안, 요시로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치과 의사는 네모진 얼굴을 들며 "젖니가 약하면 영구치도 약해지죠." 하고 냉정하게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요시로는 가슴에 돌을 묻고꿰맨 듯하였으나, 무메이는 "젖니는 뭐 때문에 있는 거예요? 어차피 빠지는데." 하고 명랑한 과학 소년의 얼굴로 물어본다. 치과 의사는 그 물음에 정중히 대답한 뒤, 무메이의 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 P24

요즘 시대의 어린이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무메이는 칼슘 섭취 능력이 부족하다. 요시로는 치과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대로 가다가는 바야흐로 인류는 이가 없는 생물이 되지 않을까, 하고 끙끙 앓으며 생각하는데, 무메이는 그 속을 바로 읽더니 "참새도 이빨 없는데 건강하고 아무렇지 않잖아요." 하고 말했다. 무메이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 - P24

"증조할아버지도 이 없는데 밥 잘 드시고 건강하시잖아요." 아직 번민의 밀물에 잠겨 있는 요시로를 무메이가 다시 격려한다. 요시로는 증손자의 상상력이 노인을 위로하는 방향으로만 발달하여 못내 마음이 무겁다. 자기만 생각하고, 무모한행동을 거듭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데. - P25

‘진단‘이라는 말이 ‘죽었다‘⁶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려서 ‘정기 진단‘이라는 단어를 언제부터인가 쓰지 않게 되었고, 차츰 의사들도 ‘달 감정하기‘⁷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6) 診断(しんだん)의 발음(신당)이 死んだ(しんだ)의 발음(신다)과 유사함을 이용한 언어유희다.

7) 月の見立て. 見立て라는 단어에는 견해나 감정(鑑定)이라는 뜻과 더불어 의사의 진단이라는 의미도 있다. - P26

이 소아과 의사는 사토리 선생인데, 오랜 옛날 요시로의 어머니를 진료했던 암 전문 의사 사토리 선생의 먼 친척쯤 된다고 한다. 그러나 두 선생은 목소리나 표정 어느 것 하나 닮은데가 조금도 없다. 암 전문 의사 사토리 선생은 환자를 아이대하듯이 얘기하는 사람이었다. - P27

어린이의 건강 상태가 담긴 원본 데이터는 전부 손으로 직접 작성하고, 의사 각자가 자기 판단에 따라 어딘가에 숨겨둔다고 한다. - P28

병원에서 의료 연구소로 보내는 데이터는 직접 쓴 것의 복사본이라, 누구든 그 대량의 데이터를 삽시간에 고쳐 쓰거나 없애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우수한 프로그래머가 오래전에 고안해 낸 보안 시스템보다 이 방법이 더 뛰어나다. - P28

 (전략), 라고 요시로가 은밀히 생각하는데 치과 의사는 다시 입을 크게 벌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칼슘은 생선이나 동물 뼈에서 섭취하는 것이 좋다는 설도있어요. 하지만 그건 지구가 복원 불가능할 정도로 오염되기이전에 살았던 동물의 뼈이어야만 하지요. 그래서 어이없을 정도로 땅속 깊은 곳에서 공룡의 뼈를 파내면 좋으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미 홋카이도엔 나우만코끼리의 뼈를 발굴해서 가루로 만들어 파는 가게도 있다고 하네요." - P30

나우만코끼리만이 아니다. 왜가리든 바다거북이든 무메이는 생물의 이름을 보거나 들으면 그 이름 속에서 생물이 튀어나오리라고 여기는지 눈을 떼지 않았다.
동물 이름뿐 아니라 살아 있는 동물이 그대로 눈앞에 나타난다면 무메이는 마음에 불이 붙은 듯 좋아할 텐데, 이 나라에서는 벌써 꽤 오래전부터 야생 동물을 볼 수 없게 됐다. - P31

요시로는 작은 여행 가방에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챙긴 다음,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향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 P32

요시로는 신주쿠에서 나리타 공항까지, 무인 익스프레스지하철을 타고 가는 자기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제 공항으로가는 전철은 사라졌고, 익스프레스라는 독특한 가타카나 발음으로 비싼 속도를 팔았던 지하철을 타는 승객도 없어졌으며,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 또한 보이지 않는다. 공항 터미널역 개찰구를 나와서 공항으로 들어간다. 공항 관문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여권을 보여 줄 필요도 없다. - P34

"무메이, 너는 동물학자가 될 거냐"
무메이가 동물도감을 보며 열심히 얼룩말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요시로는 이렇게 말한다. 무메이가 동물학 교수뿐 아니라, 여행을 하며 야생 동물을 관찰하는 에세이 작가로서 이름을 날리는 일까지 꿈꾸어 본다. 그러나 눈가를 풀리게 했던미소도 잠시 뒤에 굳어진다. - P35

어린이 건강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발견할 때마다 오려보관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만뒀다. 한번 읽은기사를 다시 읽는 일은 사실상 없었고, 철해 둔 파일이 점점책장을 차지하기 시작하자 벽에 중압이 갔다. 요시로는 오랫동안 ‘버릴 이유가 없는 것은 버리지 않는다.‘라는 규칙에 따라 살았다. - P36

오래된 신문 기사에 대한 미련을 버린 이유는 또 하나 있다. 어린이 건강 정보는 가을 날씨보다, 남자의 마음보다 더 변덕스럽게 바뀐다. ‘일찍 일어나는 건강 습관‘이라는 기사가 실리면, 며칠 뒤에 또 ‘낮잠 자는 어린이일수록 키가 큰다‘라는 커다란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간식을 먹는 어린이는 식욕이 없다‘라는 기사의 뒤를 쫓듯이 ‘과자를 원하는 어린이에게 단것을 주지 않으면 성격이 어두워진다.‘라는 내용의 칼럼이 나온다. - P36

부엌에서는 냄비가 오만하게 번쩍거린다. 고급 냄비도 아닌 주제에 왜 이렇게 번쩍거릴까. 요시로는 틈틈이 곁눈으로 냄비를 노려보면서 큰 채소 칼로 오렌지를 싹둑 두 동강 냈다.칼도 번쩍거리긴 했으나 그 번쩍거림에는 오만한 구석이 조금도 없었다. - P37

칼을 사길 잘했다. 이 칼을 집으면 요시로 손안에서 두 번째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과일은 그렇게까지 힘주어 자르지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 요시로에게는 고기나 생선보다 이 오렌지야말로 칼이 얼마나 잘 드는지 시험해볼 수 있는 진검 승부 상대였다. 촘촘한 식이 섬유에 감싸인 안쪽 깊은 곳에서 귀한 과즙 한 방울을 찾아내 무메이에게 준다는 사명감에 취해, 요시로는 흥분감에 전율한다. - P39

과일만이 아니다. 양배추도, 우엉도 그렇게 쉽게 먹히겠느냐며 섬세한 섬유로 바리케이드를 친다. 식물은 아주 조용한 듯보이지만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완고함을 지녔다. 그것이밉다. 칼은 목적지를 향해서 망설이지 않고 멈추지 않고 싹싹자르며 나아간다. 강인해서가 아니다. - P39

"무메이, 괜찮으냐, 괴로우냐. 숨 쉴 수 있느냐." 하고 요시로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무메이의 등을 가볍게 다독이고, 머리를 팔로 감싸 가슴에 끌어안는다. 무메이는 괴로운 듯 보이면서도 어딘가 평온하다. 마치 바다가 태풍을 맞이하듯이 아무런 저항 없이 기침 발작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 P41

요즘 어린이의 90퍼센트는 미열을 반려 삼아 산다. 무메이도 늘 미열이 있다. 매일 체온을 재면 도리어 예민해지므로 학교에서는 열을 재지 말라고 지시한다. "오늘은 열이 있네." 하고 말하면 아이는 몸이 나른하다고 느낀다. 열이 날 때마다학교를 쉬면 대다수의 어린이는 학교에 다니지 못할 것이다. 어떤 학교에든 착실한 의사가 반드시 한 명은 있으니, 오히려아플 때 등교하는 편이 낫다.  - P42

요시로는 무메이와 함께 체온계를 모노노묘지¹⁴에 묻어버렸다.

14) ものの墓地. 물건의 묘지(墓地)라고도 읽힌다. - P42

새하얀 사기 날에 갈려서 주황색 즙이 흐른다. 피도 아니고 눈물도 아닌, 오렌지색 과즙을 매일 철철 흘리면서 살고 싶다. 주황색이 가진 명랑함, 따뜻함, 단맛과 몸을 옥죄는 듯한 신맛을 모두 받아들여 자신의 장으로 태양을 느끼고 싶다. - P44

딸 아마나는 무메이 정도 되는 나이였을 무렵에, 과자 상자를 자물쇠로 잠가 놓지 않으면 비스킷 한 통 혹은 초콜릿 한덩어리를 통째로 먹어 버리곤 했는데, 요시로가 혼내면 곧장 말싸움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안 되지."
"왜요?"
"몸에 나쁘니까."
"왜요?" - P45

요시로는 손자에게 준 가르침들이 틀렸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도쿄 일등 지역에 땅이 있으면 장래에 그 가치가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부동산처럼 믿을 만한 건 없어."라고 손자에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 P48

손자에게 재산이나 지혜를 물려주려고 했던 것은 자신의오만이었을 뿐이라고, 요시로는 생각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증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려면 유연한 머리와 몸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100년이 넘는 동안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의심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 P49

요시로는 선 채로 신문을 펼쳤다. 사실 젊었을 때는 신문을읽지 않았는데, 언젠가 한번 신문이라는 매체가 사라진 적이 있었다. - P50

신문을 현관에 놔두고 부엌으로 돌아와서 요시로는 막 짜낸 오렌지주스가 들어 있는, 입구가 작은 대나무 컵을 무메이에게 건넸다.
"오렌지는 오키나와에서 나지요?" 하고 무메이가 한 모금마신 뒤 묻는다.
"그렇지"
"오키나와보다 더 남쪽에서도 나요?"
요시로는 침을 삼켰다.
"글쎄, 잘 모르겠구나." - P50

"좋은지 어쩐지는 모른다. 하지만 쇄국을 하면, 적어도 일본기업이 다른 나라의 가난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위험은 줄어들겠지. 또 외국 기업이 일본의 위기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위험도 줄어들 거다."
무메이는 알쏭달쏭한 얼굴을 했다. - P51

 시코쿠 지방은 농산물을 거의 다 자급자족하는 정책을 펴는 데다, 특허를 낸 사누키 우동 만드는 법, 독일 빵 만드는 법으로 돈을 번다.
한번은 요시로가 빵집에서 귤을 파는 모습을 발견하고 바로 두 개를 샀다. "시코쿠산"이라고 쓰여 있었다. 빵집은 역시시코쿠 지방과 뭔가 깊은 인연이 있는 듯했다. - P51

새로 생긴 휴일은 역대 천황의 생일이 아니라, 대부분 이름도 날짜도 국민 투표로 정한 민주주의에 따른 정식 휴일이었다.  - P52

 ‘경로의 날‘과 ‘어린이의 날‘은 이름을 바꿔 ‘노인 힘내라 날‘, ‘어린이에게사과하는 날‘이 됐고, ‘체육의 날‘은 몸이 뜻대로 자라지 않은 어린이가 슬프지 않도록 ‘몸의 날‘이 됐으며, ‘근로감사의 날‘은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젊은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날‘이 됐다. - P52

무메이는 귤을 손에 쥔 날이면 기분이 좋아서, 제 손가락끄트머리만큼이나 부드러운 귤의 살점을 누르며 놀았다. 요시로는 "먹을 것 가지고 장난하면 안 된다."라고 말할 뻔했으나, 귤로 자기 입을 틀어막고 아무 말 없이 침을 삼켰다. 먹을 것으로 장난해도 된다. - P53

증손자에게 먹일 과일을 사려고 혈안이 된 노인들은 시장에서 시장으로 유령처럼 떠돈다. 옛날에는 책 정도만 가격이 정해져 있었는데, 지금은 과일과 일부 채소가 전국에서 같은가격이다. 예컨대 오렌지는 부족하든 남든 한 개당 10만 원으로 정해졌다. - P54

혼슈 지방은 거칠고 변덕스러운 기후가 된 탓에 농사를 짓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동북 지방은 그나마 나아서 ‘신종 잡곡‘이라 불리는 영양가 높은 비싼 곡물을 생산했고, 그러한 혜택에 더해 기존의 쌀, 보리도 생산량은 줄었지만 여전히 출하했다. - P54

가뭄과 폭풍과 큰비에 쫓기다시피 하여, 혼슈에서 오키나와로 많은 남자와 여자가 이주했다. 농업으로 번성한 지역이라면 오키나와 외에 홋카이도를 들 수 있는데, 오키나와와 달리 홋카이도는 이주자에게 배타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 P55

오키나와는 애당초 혼슈에서 이주해 오는 사람들을 제한없이 받아들일 방침이었지만 남성 노동자만이 늘어날까 봐 우려했다. 그리하여 오키나와 농장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부부로 신청해야만 했다. - P55

 나이를 속이려고 얼굴에 주름을 그리고 머리를 탈색해 취직하려 한 여성이 신문에 실렸는데,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게하기는 의외로 어렵다. 오래된 농기구의 스위치에 적힌 영어ON, OFF를 이해하지 못해서 의심받았고, 결국 아직 젊은 나이임이 들통났다고 한다. 영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 P56

요시로의 외동딸 아마나와 그 신랑은 육십 대의 젊디젊은근육을, 특별히 주문한 파란색 무명 작업복으로 감싸고 힘차게 오키나와로 이주했다. - P56

오키나와의 여러 섬에서는 농장의 농산물을 ‘마차‘로 항구까지 운반하고, 거기서 규슈 운송 회사 소속의 배가 다시 신마쿠라자키 대항구까지 실어 나른다. 마차라고 해도 말은 한마리도 없다. 개, 여우, 멧돼지가 과일을 실은 수레를 끄는 풍자화가 가끔 신문에 실리는데, 어쩌면 풍자화가 아니라 현실묘사일지도 모른다. - P57

특산품을 만들어서 지역을 재생하려는 시도는 도쿄에도있었다. 산업화 이전 도쿄의 매력을 되살리기 위해 ‘에도‘라는 브랜드와 신제품을 개발한다는 프로젝트를 신문에서 읽었을때 요시로 역시 참가해 볼까 하고 고민했다. - P58

도쿄 ‘서역‘에서도 콩과 메밀, 신종 보리는 적잖이 재배하지만 다른 지방으로 수출할 만큼의 생산량은 아니어서, 이 지방고유의 특산품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 P58

 가설 주택은 걸레나 빗자루로 간단히 청소하게끔 고안되었기에, 우선 가설 주택에 사는 사람들부터 청소기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세탁기도 모습을감췄다. 무명 속옷을 문질러 빨아서 바깥에 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늘어난 곳도 가설 주택이다.  - P59

요시로는 젊었을 때 세탁기 소리를 듣기만 해도 기분이 처지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이 없다. - P59

전자 제품을 안 쓰기로 소문난 도쿄 가설 주택의 생활 방식이, 전국 라이프스타일의 첨단을 선도하는 모범이 됐다. 하지만 ‘있는 물건을 쓰지 않는다.‘라는 생활 방식을 특산품으로 팔기는 어렵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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