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도 그는 각별한 존재였다. 그 사람만큼 이상한 인물은 어지간해선 찾기 힘들다.
그날, 그는 말을 건넨 그녀한테 이렇게 물었다.
"죽고 싶은 계절 없어요?"
첫 대면 상대한테 이런 뜬금없는 첫마디를 날리는 사람은 그 말고는 없을 것이다. - P13

봄잠은 새벽을 모른다고 했다.
자취생활을 하는 사이케테이 리코가 자명종의 충고를 무시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당연히 리코가 일어난 시각은 정오가 되기 조금 전이었다. - P14

단정한 남학생 교복 차림인 걸 보니 신입생인가. 리코와 마찬가지로 지각임에 틀림없다. 당황한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걸 보아하니, 섬세한 겉모습하고는 다르게 의외로 담이센 녀석일 수도 있다. 뭐, 그건 상관없다. 주목할 대상은 남학생이 걸어가는 장소였다.
특이하게도 남학생은 인도가 아닌 다리 난간을 걸어가고 있었다.
폭이라 해봐야 20센티미터도 안 되는 난간 위를 아무렇지도않게 걸어간다. 발놀림에서 망설이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 P15

남학생은 리코를 한 번 슬쩍 보더니, 자기 주위로 시선을 천천히 돌려본다. 둘러봐도 참새들밖에 안 보일 텐데.
"자네 말이야, 소년. 나는 너한테 묻고 있어. 지금 이 장소에자네랑 나 말고 또 누가 있지? 아니면 내가 참새한테 말을 거는 기인으로 보이나?" - P16

이윽고 정말로 시시하다는 듯이 말했다.
"죽고 싶은 계절 없어요?"
리코는 몸을 오싹 떨었다.
"제 입장에서는 그게 봄이다, 얘기는 그뿐이에요."
겉모습대로의 담백한 어조였다. - P18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던 리코의 눈앞으로, 갑자기 남학생이 사뿐히 착지했다.
그 순간, 남학생이 대검을 자루에서 뽑듯 팔을 가로로 후렸다. 리코의 앞머리가 살랑살랑 흔들렸고, 정신이 들고 보니 자전거가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 성가신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곧바로 남학생이 난간을 강타한다. 금속이 휘는 듯한 소리가리코의 귓전을 때린다. 바로 앞에는 하얗고 단정한 얼굴이 있었으며, 그 두 눈은 리코를 멸시하듯이 내려다보고 있다. - P19

리코는 자전거를 힘차게 일으켜, 그대로 끌면서 남학생 바로옆을 따른다.
"나는 2학년, 사이케테이 리코야. 가까워진 기념으로 이 금화 초콜릿을 선물로 줄게. 금화를 다섯 개 모으면 빠짐없이 뜨거운 키스를 선물해주지. 참고로 지금 막 생각한 기획이야."
남학생은 초콜릿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리코는 개의치 않고말을 이었다. - P21

"뭐, 어느 쪽으로든 내 지적 호기심은 대부분 채워지겠지. 이것만은 책임을 가지고 말할 수 있거든?"
방긋 웃어 보이고 남학생의 얼굴을 슬쩍 엿본다. 남학생의미간은 한눈에도 불쾌감이 각인되어 있었다.
교문을 지나자 5교시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내에 울려퍼졌다.
"이런, 종이 울렸잖아. 서둘러야겠군." 리코는 그리 말하고남학생의 허리를 탁 친다.  - P22

그가 여섯 살이었을 때, 부모님들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을 대신하여 그의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은 여덟 살 연상이었던 누나였다.
이른 나이에 부모님을 떠나보낸 남매였으나, 부모님이 남긴유산과 보험금 덕분에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었다. - P23

당연히 HR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리코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엔마 사나는 황급히 리코를 쫓아가 뒷덜미를 잡는다.
"리코! 나한테 인사도 안 하고 어딜 가려고? 몇 번이나 전화한 줄 알아? ‘기인‘ 소리를 듣고 다니는 네 비상식적인 행동에는 이미 면역이 되었지만, 그래도 한마디라도 하고 가면 어디가 덧나?" - P25

사나는 보란 듯이 크게 한숨을 쉰다. 두 사람만 남은 교실에는 한숨의 메아리도 잘 퍼진다.
"......자신을 인간이라고 주장할 거면 적어도 몸단장에도 신경을 좀 쓰라니까. 너도 여고생이잖아?"
몸단장만 놓고 보면 사나가 압도적으로 깔끔하다. 교복에는다림선이 확실하게 들어가 있고 넥타이에서는 주름을 찾아볼수 없었으며, 와이셔츠도 깔끔했다. 앞머리는 다소 길었지만 머리카락 끝을 꼼꼼히 빗어 놓아서 청결함을 잃지 않았다. - P26

사나의 목소리는 어이없다 못해 자연히 거칠어졌다.
"보나마나 오늘은 길어진 머리가 거추장스러워서 때마침 근처에 있던 그 충전기 코드로 묶은 거다. 그런 거 같은데……??
"굵기하고 길이가 딱 맞더라고, 이거."
"알게 뭐야! 내 놔!"
재능을 썩힌다는 것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 P27

리코가 그렇게 표표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사나는 짧게 한숨을 내쉰다.
"뭐가 갇혀 있어주지.‘ 야. 감옥 안에서 가지가지 난리쳐 놓고도 그런 말을 해?"
"나는 내 미학에 순종하고 있어. 아니, 노예라 해도 과언이아니지."
리코는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허리에 손을 얹고 한숨을 내쉬면서 사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 P29

"지금 나는 완전히 소풍 전날의 어린애처럼 두근거리고 있어."
리코가 말하는 ‘귀엽다‘는 말은, 호의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재미있다‘거나 ‘흥미가 깊다‘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다시 말해서 리코는 ‘재미있는 사람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 남자를 보러 가려고?"
"글쎄. 저쪽이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을 감수하고 갈생각은 있어." - P30

리코는 전혀 주눅 든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다.
미안하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으니까.
사이케테이 리코의 최대 흥미거리는 ‘인간‘이자 ‘인간고찰‘ 이며, 사이케테이 리코에게 그 이외의 모든 사항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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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서 나는 소리

조기 매장과 대응

2005년 여름, 모노크롬Monochrom이라는 한 ‘예능 기술 철학 연구회(한때회원들 자신의 실제 혈액을 첨가해 블랙 푸딩을 만들어 먹기도 했던 오스트리아전위 단체)‘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시민을 대상으로 섬뜩한 광고를 내걸었다. 광고는 생매장을 체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중략)
이 광고는 허풍으로 끝나지 않았다. 단체 회원들은 화물 트럭으로 10톤에 달하는 흙더미를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한 미술관 옆으로 실어 나른다음, 흙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었다.  - P13

모노크롬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생매장에 대한 공포는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에 해당합니다. 산 채로 땅속에 묻히는 장면을 생각하기만 해도 오싹한 전율이 느껴지고 심장은 빨리 뛰지요. 고대의 여러 문서에서도 사망 선고가 내려지고 나서 소생한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며, 화장대에 뉘인 다음에야 의식이 돌아와 끔찍하게도 산 채로 화장되어야만 했던 사례를 담은 문건도 다수 존재합니다."⁷

7 모노크롬 홈페이지 www.monochrom.at/experiences/alive.htm - P14

생매장 공포증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시점은 18세기에서 19세기이며, 특히 19세기에 크게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다. 과학의 새로운 분야로 부상한 통계학과 빅토리아 시대의 살육 열풍(대도시를 중심으로 비정상적이고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난무한 시대), 판매 부수 증대를 겨냥한 각 신문사의 선정적 보도, 정확한 사망 진단의 어려움, 에드거 A. 포Edgar Allen Poe의 단편 「섣부른 장례식 The PrematureBurial」 등 당시 사회에 부유하던 여러 요소가 한꺼번에 뭉쳐져 유럽과 미국의 무지한 대중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당시 가족 납골당에 안치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통상적 장례방식을 고수하던 이들에게는 매장과 연계된 다음의 통계 수치가 큰 설득력을발휘하지 못했을 법하다. 성직자였던 J. G. 우슬리. Ouseley는 1895년 간행물 <탄생과 죽음 Earth to Earth Burial>에서 잉글랜드 및 웨일스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 중 적어도 2,700명이 "매년 생매장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는 가장 끔찍한 형태의 고통이다."라고 기술했다. - P15

 볼룸은 1천 명 중 1명은 완전히 사망하지 않은 상태로 매장된다고 추정하여 발표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일각에서는 바이에른 주 이민자 하트만Franz Hartmann이 생매장에 대한 미국 대중의 공포심 조장에 가담했다. 유럽과 더불어 19세기의 미국 신문들은 하나같이 생매장당한 사람들의 여러 ‘실화‘로 넘쳐났다. - P14

때 이르게 매장된 임신부가 관 속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식의 기담이난무하던 시기에 무덤에서 사람 목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 역시 생매장과 관련된 여러 일화에 흔히 등장하는 소재였다. 또 당시 신문에 소개된수많은 섬뜩한 기사에 따르면, 발굴된 사체에서는 거의 하나같이 살아나가려 발버둥친 처절한 몸부림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 P17

다행히 대처 방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 전반을 뒤덮은 소름끼치는 조기 매장 관련 소식에 시달리던 많은 사람이 자신은 땅속 1.8미터 아래서 깨어나는 일이 없도록 아예 유언장에 별도 지령을 써넣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유언장에는 사망한 지 6일이 지나기 전 혹은 주요 동맥이 절단되기 전까지는 매장할 수 없다는 조항이 흔히 명기되었다. - P18

이처럼 유언장에 사후 처리와 관련한 구체적 지시 사항을 남긴 이는 불워 리튼에 그치지 않는다. 20세기에 이르러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후에 의사들이 자신의 시신을 절단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1915년 8월 3일판 <타임스>의 부고란에는 베이스워터 Bayswater에 거주하는 에밀리 해리엇Emily Harriet이 한쪽 귀에서 반대 귀까지 자신의 목을 베어 가른 다음 사망을 확인하도록 하는 대가로 스탠리 보스필드Stanle Bousfild 박사에게 20파운드(현재 기준으로 4,000달러 상당)를 지급했다는 기사가 소개되었다. - P18

어쨌거나 더욱 독창적인 방안이 계속해서 등장했으며, 조기 매장된 이들이 관 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었다. 일례로 1868년 뉴저지 주 뉴어크 출신의 프란츠 베스터 Franz Vester는 ‘매장 케이스burialcase‘를 고안해냈다. 이 기묘한 고안물에는 사다리가 장착되어 조기 매장의 희생자가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종을 함께 넣어무덤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종을 흔들어 도움을 요청할 수있게 했다. - P19

한편 1893년 프로이센 출신 아달베르트 키아트코프스키AdalbertKwiatkowski는 다소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장치를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이장치는 시신을 일종의 허리 벨트로 둘러싼 다음, 지상으로 연결된 튜브를 관통하는 실을 벨트에 부착하는 시스템이다. - P20

한 세기가 지난 다음에도 발명가들은 여전히 비상 장치가 장착된 관을꾸준히 계발하고 있어 21세기형 생매장 공포증에 힘을 싣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시계공이자 금세공 기술자, 모조석 브랜드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이탈리아 출신의 파브리치오 카셀리 Fabrizio Caselli는 조기 매장과 관련한 여러 보도를 접하고 크게 동요되어 일명 ‘구명 관bara salvavita 이라고 불리는 장치를 발명해 특허를 얻었다. - P20

망인(亡人)의 쉼터

독일에서는 거의 백 년 전에 소수의 조기 매장 반대 운동가들이 기발한 장치를 갖춘 관에 그치지 않고 규모가 좀더 큰 대비책을 강구한 바 있다. 이들은 ‘시체 대기 안치소(독일어로는 Leichenhausers)‘라는 공간을 마련하고, 이러한 방식을 통해 ‘생매장‘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이운동가들은 사망을 확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확실한 표시가 바로 사체의부패라고 간주하고, 사체가 부패하기 전까지는 매장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 P21

. 그러나 실제로 시체 대기 안치소를 처음 시도한 사람은내과의이자 자선가로 활동했던 크리스토프 빌헬름 후펠란트Christoph Wilhelm Hufeland이다. 그는 1791년에 자신의 고향 독일 바이마르에 최초의 시체 대기 안치소를 건립했다. 이 공간에는 고인을 위한 침대 여덟 개가 갖춰진망자의 방이 있었고, 경비는 창문을 통해 시신의 부패 여부를 관찰했다.
부엌에는 항상 불을 피워 물이 끓을 때 발생하는 수증기가 지하 관을 통해 망자의 방으로 유입되어 방을 덥힐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난방 조치는안락한 환경을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신의 부패를 촉진하려는 절차였다. - P21

1795년에서 1828년 사이에 ‘시체 대기 안치소‘는 독일 전역으로 번져나갔으며, 이전보다 더욱 정교한 구조를 갖추기에 이르렀다. 후기의 시체 대기 안치소에서는 흔히 남성과 여성의 공간이 분리되는데, 망자들의예절과 사생활까지 존중해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1808년 뮌헨에 세워진 시체 대기 안치소는 부자와 빈민의 방을 따로 구분하여 죽은 후에도 사회 계층 간 구분이 중요했음을 시사한다.

당시의 모든 시체 대기 안치소는 전염병이나 재난으로 사망한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컸으며, 부엌과 열탕 욕조 및 소생 기구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안치소 내에 거주하는 문지기까지 두었다. 일단 시체 대기 안치소로 이송된 시신에는 종을 달고 손과 발에 전선을 부착하여 문지기가 되살아난 사체의 호출에 즉각 응할 수 있게 했다. 홀로 외롭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부패의 시작을 알리는 악취나 섬뜩하게 울리는 방울소리를 기다려야 하는 문지기의 고충에 대해서는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것이다. - P22

‘관 속에서난 휴대전화를 꺼주세요.‘

런던 조기 매장 예방 협회는 윌리엄 팁이 진행했던 대다수 캠페인과마찬가지로 오래가지 못했다. 20세기로 접어든 전환기에 꽤 많은 이목을끌었던 런던 조기 매장 예방 협회는 의학 지식의 진보와 함께 1910년경에 걷잡을 수 없는 쇠퇴기로 접어들었고, 사람들의 관심이 끊기자 1936년 해체되었다. 이때는 이미 텝이 사망한 지 18년, 볼룸이 사망한 지 34년째 되는 시점이었다. - P24

오늘날 인터넷 검색 엔진에 생매장 공포증이라는 말을 입력하면, 검색결과로 웹사이트 1만 4천여 개가 나타난다. 소정의 수수료를 받기는 하지만 이중 다수의 웹사이트에서 생매장 공포증 극복을 위한 지원과 어드바이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 광고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처방으로는최면 요법에서부터 다소 애매하게 들리는 에너지 심리학 해법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 P25

그러나 약 1미터 아래 땅속에 묻힌 상태에서 휴대전화의 안테나 신호가 잡히는지 시험해본 사람은 아직 없거니와 적어도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무덤에 묻힌사람에게서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는 제보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조기 매장이 행해져 온 점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며, 2장에서도 살펴보겠지만 사망 진단 과정이 허점투성이일 경우(심지어 현재까지도) 조기 매장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 그러나 18, 19세기 무렵 뚜렷한근거 없이 떠돌던 예측처럼 생매장이 실제로 그렇게 자주 행해졌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다. - P26

필사적으로 탈출을 기도한 생매장의 희생자가 자신의 손가락과 팔을 물어뜯어 놓은 듯 보이는 부분도 때에 따라서는 쥐나 기타 해충의 소행으로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1859년 폰 로제Von Rosser 박사가 시도한 한 실험에서는 관 속에 살아 있는 쥐 여러 마리를 넣고 관을 땅속에 묻었다. 이들후 관을 꺼냈을 때 일부 쥐는 다른 쥐의 살점을 먹으며 생존했으며, 또다른 쥐 무리는 관을 갉아먹고 지상으로 탈출했다.¹⁵

15 폰 로제 박사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묶어 1858년에 발행한 연구집 Sach‘s Medizinische Jahrbucher, - P26

. 1846년도 과학상Prix Manni 수상자 유진 부쉬EugeneBouchut는 1850년경 프랑스 전 지역 시장과 서기관들에게 서신을 보내 당시 사회에 떠돌던 생매장 관련 일화에 대한 검증을 요청했으나 사실로 확인된 일화는 단 한 건도 없었다.  - P27

(전략), 독일의 생리학자 에른스트 헤벤슈트라이트Ernst Hebenstreit의 연구 결과가 어느 정도 안도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헤벤슈트라이트의 1862년도 추정 수치를 보면 일반적으로 인간은 밀폐된 관 속에서 60분을 버티기가 어렵다고 한다.¹⁸ 앞서 소개된 폰 로제 박사는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유리 덮개로 밀폐된 관 속에 개 한 마리를 넣어두고 관찰했다. 실험 대상이었던 개가 3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자 로제 박사는 인간과 개의 체면적을 고려했을 때 헤벤슈트라이트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동의했다. - P28

생매장에 대한 공포는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에 해당합니다.
산채로 땅속에 묻히는 장면을 생각하기만 해도
오싹한 전율이 느껴지고 심장은 빨리 뛰지요.
고대의 여러 문서에서도 사망 선고가 내려지고 나서
소생한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며,
화장대에 뉘인 다음에야 의식이 돌아와 끔찍하게도
산채로 화장되어야만 했던 사례를 담은 문건도
다수 존재합니다. - P29

3. 휴식을 방해하는 자
도굴과 이장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죽은 이라고 해서 반드시 평온히 쉴 수 있는 것만은 아니며 종종 무덤이 최후의 안식처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각종 범죄 행위와 문화적 관습, 정치적 사건, 법정 판결, 그리고 흡혈귀와 관련된 온갖 미신 등으로 망자가 최후의 안식처에 머물지 못하고 묘지가 파헤쳐지거나 이장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후안 페론Juan Peron은두 번 도굴된 끝에 현재 세 번째 묘지에 안치되었으며,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17차례 이상 이장을 겪어야 했다. - P48

내쫓기는 유해

영국 성공회 측에서는 이장을 신청하는 유족들을 대상으로 사망자의 유해는 ‘교회 당국에서 보호 관리하며, 이 규정을 위배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²⁹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 측의 이러한 방침은 그다지 신뢰를 사지 못했다. 


29 2016년 12월 2일 관 (타임스), ‘아짐은 가능합니다.
Met Take Thur Dead Relatives)
"고인에게는 손대지 마세요(Move House. But Thou Shalt - P48

때때로 이장은 망자를 위해서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필요에 따라 진행되기도 한다. 대개 묘지는 고가의 부지에 마련되었는데,
훗날 해당 부지에서 개발이 진행될 경우 안타깝게도 유해는 처리하기 거추장스러운 대상으로 전락했다. 일례로 1860년대 미들랜드 철도MidlandRailway는 런던의 세인트 판크라스St. Pancras 묘지를 가로질러 건설되었는데,
이처럼 통근 수단의 개척과 함께 유해 수천 구가 자신들의 자리를 내어줘야 했다. 개중에는 갓 매장된 시신도 여러 구 있었다. - P49

2002년 CTRL(영국 고속철도) 당국은 세인트 판크라스에 건립될 예정인 유로스타 터미널 공사 현장을 신속히 정리하기 위해 불도저 여러 대로 해당 부지와 유해들을 갈아엎었다. 당시 고고학자들은 유해 발굴을 위해 단 3주 동안만 현장 출입이 허락된 상태였다. CTRL 측은 특별 의회법에 따라 묘지 해체 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는데, 당시 영국 문화재단에서는 모든 유해가 정중히 예를 갖추어 이장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해당 특별법에서 제외되었다고 주장한바 있다. - P50

죽은 자를 노리는 손길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를 보면 소년 제리 크런처 JerryCruncher가 어느 날 아버지에게 "도굴꾼이 뭐죠?"라고 묻자 아버지는 "장사치란다."라고 대답한다. 의문이 가시지 않은 소년이 "그럼 뭘 파는 거예요?"라고 되묻자 잠시 생각에 잠긴 크런처 씨는 "과학적으로 필요한 물건을 팔아."라고 말한다.³⁰ - P52

수많은 영국인과 미국인이 생매장을 두려워한 18~19세기에 일각에서는 상반되는 성격의 공포가 존재했다. 즉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시신이 도굴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번졌다. 당시에는 의료 과학의 진보와 더불어 실험에 필요한 시신의 지속적인 공급이 절실했다. - P53

의학적 연구를 위해 시체를 도굴하는 행위는 이전부터 자행되었다. 우선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1319년 이탈리아 몬디노에서 의학도 4명이 체포되었는데, 이들은 시체를 도굴하여 해부용 시신이 필요한의과 대학으로 이송한 혐의를 받았다.³¹ 중세 이탈리아에서는 의료 과학발전을 위한 해부용으로만 시신을 활용한 것은 아니다. 


31 해부의 역사에 관해서는 중세 후기의 장례와 사체의 처리(Death and the Human Body in the Later Middle Ages)엘리자베스 브라운 저와 인체 해부, 고군분투의 현장(Human Dissection: Its Drama and Struggle) A M. 라섹저를 참조 - P53

영국에서는 1565년 엘리자베스 1세가 교수형 당한 죄수의 시신 4구를의료 조합, 즉 내외과 의사 협회에 해부용으로 매년 기증하기로 했고, 훗날 1663년 찰스 2세는 기증 시신의 수를 6구로 늘렸다. 그러나 의료 과학의 발전을 꾀하기에는 시신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런던의 의대생이 200여 명에 달했으며, 한 세기가 지난 1823년경에는 그 수가 1천여 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 P54

따라서 18세기 말 무렵에는 송장 거래가 꽤 수지맞는 사업으로 여겨졌다. 이론으로 익힌 기술을 실제 인체에 적용해보아야 하는 의료 관계자들은 묘지 도굴범들과 손잡는 수밖에 없었고, 시신 한 구당 현재 가치로 1,800~3,200달러까지 지급했다. 이처럼 불법 시신 거래가 성행하는데도 당시 정부는 이를 확실히 제지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17~18세기영국 법은 시신 약탈에 대한 처벌을 징역형으로만 국한하고, 때때로 범인을 식민지로 추방하는 데 그쳤다. - P54

또 최근까지만 해도 "시신에 대한 유일한 합법적 소유자는 대지뿐이다."라는 법령에 따라묘지 도굴범이라 해도 수의나 장신구 절도라는 명목으로 기소될 뿐 시신자체를 도굴한 행위는 고발 사유가 아니었다. - P54

갓 매장된 시신을 서로 차지하려는 갱단들이 묘지 주변에서 혈투를 벌일 때면 한밤중에라도 격렬히 치고받는소리가 들려왔다. 또 해부학자가 평상시 거래 노선을 벗어나 갱단을 통해서 시신을 확보하기라도 하면, 시체 도굴자가 이에 불만을 품고 해부실에난입해 시신을 도저히 연구에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난도질해 망가뜨리기도 했다. - P55

시체 도굴자의 생활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조슈아 네이플스JoshuaNapels는 1812년에 발표한 저서 『어느 도굴꾼의 일기 Diary of a resurrectionist』통해 시체 도굴자들이 겪어야 했던 직업적 고충을 소개했다. 우선 도굴자는 도굴에 앞서 시신이 완전히 매장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고, 도굴 현장이 적발될까 전전긍긍해야 했음은 물론자신들의 수고를 한입에 삼켜버리는 갱단에 시달려야 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야간 범죄가 발각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분노에 사로잡힌 군중이 어떠한 처벌을 내릴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 P55

따라서 묘지 도굴범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직업에 대한 철저한 기밀 유지였던 한편 시민들은 이들의 소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당시에는 관에 못질이 두 줄로 되어 있었는데 이는 매장된 희생자가 탈출하지 못하도록 방지함과 동시에 시신 약탈자에 의한 도굴을 예방하려는 조치였다. 그런가 하면 일부에서는 금속재 관을 고안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관은 1781년부터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 P56

.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브리지먼이 최신형 관을 발명한 그해 때마침 영국에서는 시신 약탈자를 다룬 소설류가 큰 인기몰이를 하며 독자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시신 약탈자에 대한 불안 심리는 메리 셸리 Mary Shelley가 1818년에 발표한 작품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을 통해 잘 드러난다. 작품 속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대담한 실험을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납골당과 자칭 ‘불온한 묘터‘에서 사체의 여러 부위를 거둬 들여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57

부유층은 나름의 기발한 고안물을 활용하여 도굴에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었으나 빈민층은 시신 약탈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취약한 대상이었다. 따라서 빈민들은 종종 힘을 모아 묘지에 초소를 세우거나 돈을 거두어 묘지 내에 체계적으로 램프를 여러 개 배치해 시신 약탈자가 어둠을틈타고 쉽게 도굴하지 못하게 했다(오늘날 주차장에 가로등과 CCTV를 설치해 자동차 도난을 방지하는 방식에 비유할 수 있겠다). - P57

스코틀랜드 지방 부유층은 일명 ‘안전한 죽음mortsate‘이라는 쇠 격자나틀을 사용했는데 이 장치는 관 위쪽 지상의 콘크리트에 세우거나 관과 함께 땅속에 묻었으며, 이중 몇 개는 오늘날까지 에든버러 프란체스코 수도회 교회 묘지에 남아 있다. - P58

이러한 공간을 제공하는 스코틀랜드 교회에서는 소정의 비용을 받았고, 그나마 그 금액을 감당할 여유가 있는 유족은 가족이 해부 실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심할 수있었다. 에든버러에서 북쪽으로 55마일 거리인 파이프 주 크레일Crail. Fife지방에는 이러한 형태의 시체 보관소가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두꺼운 담과 흉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시체 도굴자들을 물리칠 최후의 방패막이라도 되는 양, 흡사 미니어처 요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 P58

‘해골수프‘ 사건

당시 하층민들 사이에는 정부와 의료 관계자들이 모의하여 부족한 해부 실험용 시신을 ‘자신들의 시신‘으로 충당하려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러한 불안 심리가 만연한 가운데 영국 전역에 산재한 구빈원에서는 주기적으로 폭동이 일어났다. - P59

애버딘과 인버레스크, 헤리퍼드, 그리니치, 뎁포드 등지에서 연일 해부실험 반대 폭동이 일어났으나 의회에서는 1832년 해부법을 통과시켰다.
해부법 조항에는 구빈원에 있는 신원 미상 사체의 경우 48시간(종전 78시간)이 지나면 해부 실험용으로 기증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한편 구빈원 거주자는 본인의 시신을 해부용으로 이용하지 말도록 서면 요청할 수 있다는 예외 조건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윌리엄로버츠 William Roberts가 운동을 벌이기 전까지 이러한 조항을 전혀 알지 못했다. - P59

기증했다. 34 어쨌거나 로버츠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었다. 1832년에서1932년 사이 런던의 여러 의과 대학에서 해부용으로 사용한 시신 5만 7천여 구 가운데 구빈원 외에 다른 공급처에서 들여온 시신은 단 0.5%에지나지 않았다. 런던 빈민들은 ‘해골 수프‘의 재료로 전락하지 않았을지는몰라도 스스로 원했든 원치 않았든 죽은 후 시신으로 의료 과학 발전에 공현했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 P60

망자가 유명인이거나 부유층과 연고가 있을 경우라면 해당 시신의 살점과 유골까지도 상당한 돈벌이가 되었다.
알렉산더 T. 스튜어트Alexander T. Stewart는 미국에 최초의 백화점을 세우고1846년 노동자들을 위해 롱아일랜드에 그 유명한 전원도시 가든 시티Garden City‘를 설립한 인물로 유명하다. 1876년에 사망할 당시 그는 미국 최고 부자 중 하나였다. 그의 시신은 맨해튼 바워리가 세인트 마크 교회st.
Mark‘s-in-the-Bowery에 안치되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장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신이 도난당했고, 절도범들이 시신의 몸값을 요구했다 - P60

링컨의 유해는 유독 불안한 여정을 겪었다. 1865년 워싱턴에서 암살된후 방부 처리된 그의 시신은 일리노이에 안장되기 전까지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뉴욕, 올버니, 버펄로, 클리블랜드, 콜럼버스, 신시내티, 인디애나폴리스, 시카고를 비롯한 기타 여러 소도시로 약 2,700킬로미터를 떠돌며 국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링컨의 부검 담당 의사 중 한 명이 공개한 산산이 부서진 링컨의 두개골 중 작은 조각 7개와 상처를 감쌌던붕대, 그리고 피 묻은 소매는 워싱턴 소재 국립 의료 박물관에 기증되어 위인의 자취로 보존되었다. - P61

페론의 경우와 같이 모든 유족이 거액의 몸값 요구를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978년에 찰리 채플린 Charlie Chaplin이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위스 묘지에 안치되었던 그의 유해가 도굴되었고, 도굴범들은 몸값으로 65만 달러를 요구했다. 채플린의 아내 우나0ona는, 만약 남편이 그 소식을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액수라고 빈정댈 것이라며 몸값 지급을 거부했다. 시신은 결국 11주가 지나고 나서 발견되었고, (후략). - P62

몸값 착취를 목적으로 무덤을 파헤치고 유해를 훔쳐내는 장면은 단순히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불쾌감을 유발하지만, 도굴 행위의 동기가이보다 악랄하고 불량한 경우라면 과연 어떠할 것인가? 2006년 9월 5일21세의 알렉산더 그런크Alexander Grunke와 그의 쌍둥이 동생 니콜라스Nicholas, 그리고 니콜라스의 단짝 더스틴 라드케Dustin Radke는 삽을 차에 싣고 위스콘신 주 카스빌에 있는 세인트 찰스 묘지로 향했다.
(중략)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이 일당 중 누구도 숨진 여성과 안면이 없었다. 단지 지역 신문 부고란에서 그녀의 사진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사진 속 여성에게 반해버린 니콜라스는 도굴을 결심하고콘돔까지 준비해 간 것이었다. 다행히 이 일당의 도굴 행위는 관 뚜껑에삽이 닿는 정도에서 그쳤다. - P63

정치적 음해와 망자의 수난

(전략) 그래서 베드로는 라망 후 곧바로 진행된 종교 재판의 결과에 따라 무덤 속에서 고이 잠들지 못하고 유해가 파헤쳐지기에 이르렀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드로는 나사로와 같이 무덤에서 부활하지 못했고, 유해 발굴역시 나사로의 그것과 달리 유쾌한 의식이 아니었다. 그의 유골은 종교재판 후 불태워졌다. - P64

(전략),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이 정치적 우위에서 밀려난시점과 맞물린다. 1658년 사망한 크롬웰은 한때 그가 몰아낸 귀족들과마찬가지로 방부 처리되어 국장을 거치고 선대 왕족들과 나란히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왕정복고가 일어난 후 1661년 크롬웰은 대역 죄인으로 매도되었고, 청교도 열풍이 영국 사회를 휘감았다.
마침내 크롬웰과 측근들의 시신이 발굴되어 런던 거리를 끌려 다니다가 범죄자들의 교수형이 집행되던 사형장에 다다랐다. - P65

(전략). 이러한 움직임은 해당농장을 폐쇄하게 하려던 시위대 내 과격파 동물 보호 운동가들이 2004년10월에 크리스의 장모인 글래디스 해먼드Gladys Hammond 여사의 유해를 도굴해 빼돌린 사건을 계기로 최악의 정점으로 치달았고, 마침내 반대 운동은 결실을 보았다. 10개월 후인 2005년 8월 마침내 크리스는 기니피그 농장 폐쇄를 발표했다. 그러나 2006년 5월 도굴범 일당 네 명이 체포되고 해먼드 여사의 유해 행방이 드러낸 다음에야 농장은 완전히 폐쇄되었다(도굴범들은 스태퍼드셔 케녹체이스 지역에 해먼드 여사의 유해를 묻어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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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돌봄의 시작, 바라보기 1

돌봄을 위한 채비

돌봄을 위한 채비돌봄은 간호의 본질이다. 돌봄의 첫 단추는 바라보기다. 간호사는대상자를 대상자는 간호사를 바라보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바라보기는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까지를 포함한다. - P91

간호의 가치는 인간학적 관점에서 시작된다.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면서부터 말이다. 인간학은 간호사가, 대상자가 한 인간으로서 지닌 역사, 사회,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며 인간의 존재 바탕을 찬찬히 살피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 P92

돌봄은 간호사나 대상자 모두에게 속한다. 간호의 본질을 대상자도 충분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간호사는 대상자에게 그 점을 충분히 이해시켜야 한다. 대상자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은 채 간호를 시작할 수는 없다. 돌봄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 P92

간호는 인간을 치유하는 일이다. 치유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해 알아야 하고 인간의 삶에 대해서도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 간호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간호는 인간을, 인간의 마음을 여는 것이다. - P93

어려울 때가 더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두자. 다소 해결될 수 없어 보였던 문제도 이러한 과정이 반복됨으로써 새로운 일이 생기게된다. - P93

대상자의 삶의 꾸러미를 풀어놓되 큰 고통은 떠내려 보내 마음을 버리는 미학도 익혀야 한다. 간호 대상자는 의학적 진단에 얼마나 불안해하고 방황하는가. 대상자의 몸은 수술이 성공했다고 해서 또는약물을 투여한다고 해서 치유가 끝나는 게 아니다. - P94

간호는 인간의 마음을 여는 일이다. 인간의 마음을 연다는 것은 더큰 폭으로 인간에 접근하는 일이다. 열어가는 과정이 쉬울 때도 있다.  - P94

원하는 것은 질병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질병이 치유되기 위해 환자는 병원에 오기 전부터 여러 방법을 동원하기 마련이지만 더 나은 치료법을 찾아 현대식 병원에까지 온 것이다. 어느덧 질병이 치유되고 건강해지면 개인의 행복은 더 커진다. - P94

간호사위 사명 다지기

건강의 배경에는 인간이 생활하며 살아가는 문화 전체가 있다. 접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서로 마음을 마주하고 머리를 맞대어 대안을찾아내야 한다. 고통의 강도, 질, 시간 등을 확인하고 그것을 건강으로 바꿀 수 있는 통로를 찾아야 한다. - P95

돌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살펴보면서 더 나은 간호를 하기위해 어떤 것이 돌봄이고 환자가 원하는 돌봄의 형태는 무엇인지 돌이켜볼 때이다. 간호사는 간호 만족도가 높아지고 대상자는 건강을 되찾아 삶이 즐거워지는, 나아가 사회를 이롭게 하는 윤리를 그리는 일은 분명히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접근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 P96

3. 돌봄의 시작, 바라보기 2

간호는 양방향의 관계이다

간호란 간호사가 환자에게 주는 것, 환자는 간호를 받는 것이라고 알고 있으며 통상적으로 그렇게 해오고 있다. 그러나 간호란 상호간 주고받음의 관계이다. 주고 혹은 받는 행위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 P97

간호의 본질을 대상자도 알아야 한다. 두 사람의 관계와 소통을 통해서만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간호사는 대상자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을 갖도록 해야 한다. - P98

대상자의 건강책임은 강조되어야 한다. 그것은 인생 덕목 중 가장소중한 것이며 이것은 자기 몸의 주체로서 가져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건강에 대한 책임은 건강권의 하나다. - P98

간호사는 대상자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인식하게 하며질병이 생긴 원인을 스스로 찾고 그 대안을 만들어 선택할 수 있도록도와줄 수 있다. 간호사는 대상자로 하여금 몸과 건강관리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 P99

몸에 대하여서도 알리도록 한다. 몸의 호소, 몸의 반응, 몸에 대한 인식, 식습관이나 의복 착용, 주거환경에 대한 내용을 건강일지에 기록하게 한다.  - P99

병원에서 단순히 치료의 경과를 지켜보거나 결과만 전달받을 것이아니다. 더 나아가서 대상자는 앞으로의 방향과 실천에 대해서 사색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돌봄의 목표는 대상자 스스로 건강을 되찾도록 적극 돕는 것이다.
대상자는 어떤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하며 간호의 수준이 높아질 수 있음을 기대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 P101

 그리고 주도적으로 건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힘을 일구어내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참된 돌봄의 길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간호사에게 환자의 삶과 같이 동행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줄 알고 간호의 철학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사색하는 시간이될 것이다. - P102

현대의핫의 위기와 자연의학의 필요성

몸을 자연스럽게 해 주는 것이 건강의 관건이다. 몸은 자연적이고 싶어 한다. 인공적인 간섭이 없는 몸, 외부에서 인위적인 것을 투여하지 않는 몸이 되도록 자신의 몸을 탐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몸을 탐구한다고 해서 반드시 전문적인 지식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몸에 대한 꾸준한 관찰과 외부에 대한 몸의 반응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 P106

대상자의 삶을 재구성하는 간호

간호는 환자가 현재의 질병으로 얻은 깊은 좌절이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다시 찾아올 건강을 희망하도록 우주의 기본 원리를 깨닫도록 말이다. - P107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공경이야말로 생명 윤리의 핵심이다. - P109

간호사의 감각과직관력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간호 상황에서 자기유효적인 사고와 행위가 절실히 필요해졌다. 펼쳐진 삶의 세목을 재배열하고 정리해서건강한 삶을 다시 엮는 간호 디자인이 필요해진 것이다. 간호사의 이러한 예술적 능력은 다분히 창작적이다. 간호 창작은 관찰, 직관, 과학적 지식, 인문 등이 종합된 통섭적 사고로만이 가능하다. - P109

제 4부, 간호문화
1. 관계와 소통

소통의 창을 열자

 관계 맺기를 통해서 서로를 수용하고, 공유하고, 버리고, 새로움을 만드는 것, 즉 창작을 하는 것이관계 맺기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계 맺기를 통해서 삶과 건강, 학문은 성장할 수 있다. 소통이란 항상 열려있어야 하지만 닫아야 할 때 닫는 게 소통이기도 하다. - P153

우리가 간호를 통해 보아야 할 것은 인간의 내면,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환경의 ‘관계‘이다.  - P153

소통함으로써 관계를 맺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새로움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오늘날에도 중요시된다. 관계가 형성된 다음에도 우리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미 맺은 관계를 넘어 다시 다른 관계 맺기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변화하고 끊임없이 움직이게 된다. - P154

또 변화하기 위해 소통한다. 변화하기 위해 소통의 창을 열어 서로를 연결한다. - P154

다양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접목을 통해 소통은 보다 간결해지고 선명해진다. 소통은 공존하기 위한 것 이상의 변화를 위한 것이다. 자기변화를 통해 현실을 박차고 나아가는 힘과 희망,
꿈을 얻고 그것으로 질병을 치유하면 환자에게도 변화라는 경험을 선물할 수 있다. 간호사는 환자를 변화의 길로 안내해야 한다. - P155

관계와 소통의 예

저자는 소통의 중요성을 오래 전부터 감지하여 왔다. ‘소통‘ 개념은 삶에서나 학문에서 주요한 위치이며, 학술발표로도 연결되었다.
30여 년 전 대학 시절 충남대 학도호국단 주최 전국대학생 학술대회에서 「병원의 간호 역할 중 의사소통에 관한 조사 연구」(1978)라는 제목으로 단체 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다. - P156

또 다른 예로 몸과 마음의 관계이다. 몸과 마음은 서로 절제하며 돕는 상생관계에 놓여 있다. 몸의 피로는 마음이 위로를 해주며 몸과마음은 몸 상태를 함께 바라본다. 서로 협동하고 의논해서 주인의 전강을 위한 좋은 해결안을 내놓는다.  - P157

사람과 사물, 그리고 다른 세계와의 소통은 자연을 통해서 가능하다. (중략). 대자연은 인간의 몸이 드나드는 소통의 장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과의 관계를 열어주는 통로가 바로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 P158

간호 그리고 나와 너, 우리

인간에게 남아 중요시되는 관계라면 고작 기계와의 관계에 대해서 일 뿐이다. 어떤 것과의 관계가 중요한지 전혀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의 문제의식은 결국 삶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결국 인문학이란 삶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그렇다면 인문학을 하면서 일상적 삶과 간호와의 문제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 P159

소통을 위한 궁극적 바람은 우리가 무엇을 바라든 소통의 상호주체를 이롭게 하기 위함이다. 이 사실만 알아도 이미 과학의 영역에인문학이 발을 디딘 것과 마찬가지다. 만난 적 없는 세계와 교감을나누고 인간의 삶과 간호를 번갈아 성찰하면서 서로의 이로움을 위해 노력하자. - P159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우리‘가 되는 것이다. 관계에 중요성을 두는 순간 인문학은 관계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면 보기는 인문학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나와 이웃, 나와 세계의 바람직한 관계를 찾는 것이다. 이는 곧 나는 너이며, 너와 우리가 되는 지름길이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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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차창 뒤에는 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창문은 그의 겨드랑이까지 올려져 있었다. 젊은이는 흐트러진 하얀 꽃다발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젊은 여인이 겁먹은 아이를 안고 역을 나선다. 여인은 곱사등이였다.
기차는 전쟁을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꼈다. - P7

아버지가 울타리 앞에 꼿꼿이 서 있는 사진도 있었다. 굽 높은 아버지의 신발 아래 눈이 쌓여 있다. 새하얀 눈 때문에, 아버지는 마치 허공에 서 있는 듯 보였다. 아버지는 한 손을 머리 위로 올려 경례를 붙이고 있다. 윗옷 옷깃에 룬문자*가 보인다.


*고대 게르만 문자. 히틀러는 이 가운데 태양을 상징하는 갈고리십자가 모양을독일 나치의 공식 표징으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여기서 룬문자는 나치의 갈고리십자가를 가리킨다. - P8

모든 사진의 한가운데에서 아버지는 하나의 몸짓으로 굳어있었다. 하나같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언제나 아버지는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진들이 전부 엉터리였다. 이 많은 엉터리 사진들과 엉터리 표정들 탓에 방 안이 썰렁했다. - P9

눈길을 아래로 떨어뜨리자, 구두코가 들려 밑창이 살짝 드러나 있었다. 지금까지 내내 구두끈을 밟고 왔다. 굵은 구두끈이 뒤로 길게 늘어져 하나로 뒤엉켜 있었다. - P9

 남자들의 팔과 밧줄은 길어지고 또 길어졌다. 한참 가뭄인데도 무덤 속에는 물이 차 있었다.
네 아버지는 사람을 많이 죽여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어. 술취한 남자 중 하나가 말했다.
쉬지나는 말했다. 그땐 전쟁중이었잖아요. 아버지는 스물다섯 명을 무찔러 훈장을 받으셨어요. 여러 개의 훈장을 집으로 가져오셨어요. - P10

남자는 화주를 들이켰다. 그의 뱃속에서 쿨렁쿨렁 소리가 났다. 내 뱃속은 무덤 속 지하수처럼 화주로 그득하지, 남자가 말서했다.
그러고는 묵직한 돌 하나를 관 위에 내려놓았다.
흰색 대리석 십자가 옆에 서 있던 장례관리사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양손을 윗도리 호주머니에 찔러넣은 채로. - P11

쪼글쪼글 주름지고 비쩍 마른 노파가 가까이 오더니 땅바닥에 침을 탁 뱉고 나를 향해 욕을 한다.
조문객들이 반대편 무덤가에 서 있었다. 나는 내 몸을 훑어보다가 사람들이 내 가슴을 쳐다보고 있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몸이 으스스 떨렸다. - P12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눈이 목구멍을 타고 머릿속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손을 입으로 가져가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손등에 잇자국이 선명했다. 이가 뜨거웠다. 입가에서 흐른 피가 어깨로 흘러내렸다. - P12

나는 쓰러졌지만 내 몸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사람들의 머리 위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나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방들을 전부 깨끗이 치웠다.
시신이 안치되어 있던 방에는 이제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도살대였다. 그 위에 흐트러진 하얀 꽃다발을 꽂아둔 꽃병과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흰 접시 하나가 놓여 있었다. - P13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검은 옷을 입을 거야,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가 머리채 한쪽 끝에 불을 붙였다. 머리채는 도살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닿았다. 머리채가 화승처럼 타들어갔다.
불길이 너울거리며 활활 타올랐다. - P14

나는 어머니를 쳐다보지 않았다. 머리채는 계속 타들어갔다.
연기가 방 안에 자욱했다.
그들이 너를 죽였어. 어머니가 말했다.
방 안을 채운 연기가 너무 짙어 우리는 더이상 서로를 보지 못했다. - P14

눈을 크게 떴다. 방 안이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나는 흐트러진 하얀 꽃다발의 공 속에 누워 있었다. 그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집이 뒤집히고 모든 것이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지는게 느껴졌다.
자명종이 울렸다. 토요일 아침, 다섯시 반이었다. - P15

슈바벤 목욕

지난주에 두 살배기 아르니가 찬 바람을 쐰 탓에 코감기에 걸렸다. 어머니가 빛바랜 작은 바지로 어린 아르니의 등을 씻긴다. 어린 아르니는 버둥거린다. 어머니가 아르니를 욕조에서 들어올린다. 가엾은것, 할아버지가 말한다. 저렇게 어린 애들은 아직 목욕시키면 안 되는데, 할머니가 말한다. - P16

그러고는 물이 아직 뜨겁다고 할머니에게 소리친다. 할머니가 욕조에 들어간다. 물은 미지근하다. 비누거품이 인다. 할머니의 어깨에서 거무스름한 때가뭉클뭉클 일어난다. 할머니의 때가 어머니, 아버지의 때와 함께물 위에 둥둥 떠다닌다. 욕조 가장자리가 거무스름하다. 할머니가 욕조에서 나온다. 그러고는 물이 아직 뜨겁다고 할아버지에게 소리친다. 할아버지가 욕조에 들어간다. - P17

우리 가족

어머니는 가면을 쓴 여인이다.
할머니는 내장안으로, 앞을 보지 못한다. 한쪽 눈은 백내장이고 다른 한쪽 눈은 녹내장이다.
할아버지는 음낭수종*에 걸렸다.



*음낭의 막강 안에 담황색 액체가 고이는 질환. - P19

사람들은 할머니가 순전히 재산 때문에 할아버지와 결혼했으며 원래는 다른 남자를 사랑했다고 말한다. 할아버지와는 그야말로 근친결혼이나 다름없는 가까운 친척이어서 그 남자와 결혼했더라면 더 나았을 거라고 한다.
또 어머니가 다른 남자의 자식이고 외삼촌이 다른 남자의 자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 다른 남자가 한 사람이 아니라 각기 다른 두 사람이라는 것이다. - P20

증조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증조할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그 여자는 이미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 자식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다른 남자와는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으며 남편은 따로 있었다. 그 여자는 증조할아버지와 결혼한 후에 또 자식을얻었다. 사람들 말로는, 그 자식도 증조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의 자식이라고 한다. - P21

사람들은 마을 밖에 다른 여자와 다른 자식을 둔 남자는 경멸받아 마땅하며, 그것은 근친결혼에 버금가는 짓이라고 말한다.
아니 진짜 근친결혼보다 훨씬 나쁘고 그야말로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 P21

저지대

울타리 옆에 연보랏빛 꽃, 덩굴풀, 어린아이들의 젖니 사이에 낀 초록빛 열매.
할아버지는 그 덩굴풀을 먹으면 멍청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먹으면 안 돼. 너도 멍청이가 되고 싶지는 않지.
딱정벌레가 내 귓속으로 기어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딱정벌레가 더 깊이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귀에 에틸알코올을 들이부었다. 나는 울었다. - P22

 마을에는 아카시아 꽃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전부다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해마다 커다란 나무들이 줄줄이 꽃을피웠다.
아카시아 꽃은 먹으면 안 돼, 할아버지는 말했다. 꽃 속에 새까맣고 작은 파리들이 들어 있어, 그 파리들이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면 벙어리가 된단다. 너도 벙어리가 되고 싶진 않지. - P23

우리는 날마다 아이들을 낳는다. 닭장 안에서 옥수수 속대 아이들을 낳고, 닭장 사다리에서 인형 아이들을 낳는다. 판자 틈새로 바람이 새어 들어오면 아이들의 옷이 나부낀다.
새끼고양이들에게 인형 옷을 입히고 요람 안에 끈으로 묶어놓은 다음 요람을 흔들어 잠을 재운다. - P24

핀에 꽂힌 나비들이 파닥거리다가 죽어간다.
슈바벤에서는 동물의 시체를 썩은 고기라 부른다. 나비는 썩은 고기가 될 수 없다. 나비는 부패하지 않고 그냥 바스러진다.
세숫대야 속의 파리들. 발효유 통에 빠져 환풍기처럼 미친 듯이 윙윙거린다. 세숫대야의 잿빛 비눗물에 떠 있는 파리들. 초점잃은 눈, 침을 뻗어 물을 찌른다. 미친 듯이 버둥거리는 아주 가느다란 다리들. - P25

예전에 나비였던 애벌레들이 번데기에서 기어나온다. 포도굴 기둥에 쓸모없는 솜처럼 달라붙어 있는 번데기.
그런데 할아버지, 나비는 어디서 처음 생겨났어요? - P25

어머니의 신혼 첫날밤 이후로 그 침대에 누워 숨을 쉰 사람은아무도 없다.
그때 우리는 너무 피곤했고, 네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토하고서 금방 잠들어버렸어. 그날 밤 네 아버지는 내 몸에 손도 대지않았어.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킥킥거리더니 입을 다물었다.
5월이었는데, 그해에는 그때 벌써 버찌가 열렸어. 봄이 아주일찍 왔지. 네 아버지랑 나는 버찌를 따러 갔단다. - P26

어머니가 기침을 하자, 머리가 흔들렸다. 목에 자글자글 주름살이 잡혔다. 어머니의 목은 짧고 굵직했다. 그 목도 한때는 아름다웠을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언젠가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로 어머니의 젖가슴은 탄력 없이 처지고,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로 어머니의 다리는 성치 않고,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로 어머니는 뱃살이 늘어지고,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로 어머니는 치질 때문에 화장실에서 고통스럽게 끙끙거린다. - P27

 어머니의 손가락은 투박하고 거칠게 갈라졌다.
그 손가락은 오로지 돈을 셀 때만 거미줄을 치는 거미처럼 매끄럽고 유연하게 움직인다.
어머니는 침실의 벽난로 연통 안에 돈을 보관한다. - P27

어머니의 손은 거칠고, 여름에는 정원의 식물들처럼 초록색이다.
어머니는 엉겅퀴를 뽑으러 간 봄날 저녁에는 수영*을 호주머니에 넣어오고, 여름에는 아주 커다란 해바라기를 가져온다.
나는 뒷마당에서 닭들과 해바라기 씨를 나눠 먹는다. 


* 마디풀과의 식물, 간장 기능을 강화하고 소화를 돕는 효험이 있어 약용 및 식용으로 쓰인다. - P28

벌이 네 입으로 들어가면 넌 죽는단다. 벌이 입천장을 쏘거든.
입천장이 퉁퉁 부어서 숨을 쉴 수 없지, 할아버지는 말했다.
나는 꽃을 꺾으면서 절대 입을 벌리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따금 노래를 부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노래를 억눌렀다. 그러다 입술 사이로 흥얼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오면 그 소리를 듣고서 벌이 날아오지 않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방 어디서도 벌은 눈에 띄지 않았다. - P29

나는 그 가르마 탄 머리카락을 가지고 논다.
나는 옥수수 속대에서 옥수수 알 두 개를 떼어낸다. 눈구멍 두개가 멍하니 밖을 내다본다. 나는 옥수수 알을 옆으로 나란히 세 개, 또 위아래로 나란히 세 개 떼어낸다. 그 뻣뻣하게 굳은 입과 움푹 팬 코를 바라본다. - P30

마을 어귀에서 간간이 허공을 쪼아대는 까마귀들과 마주친다.
저 멀리 골짜기에, 뿌옇게 먼지 날리는 들길에 들장미가 피어있다. 들장미의 빨간 꽃머리는 일사병에 걸려 있다. 그 옆에는 파란 스피노자 자두나무가 쌀쌀맞게 서 있다. 곱게 노래하는 새들이 떨어뜨린 석회질 같은 새똥이 스피노자자두나무 이파리에 지저분하게 묻어 있다. - P31

. 새들이 집 가까이 날아오지 않는 것은 마을에 고양이가 많아서이다. 대부분 근처를 떠돌다가 마을로 모여든 고양이들이었다. 마을에는 고양이 못지않게 개도 많다. - P31

남자들은 굽이 높고 딱딱한 신발을 신고 다닌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신발에는 거칠고 굵은 신발 끈이 단단히 묶여 있다.
개들이 이 신발에 걷어차이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 그리고 몸을 고부리거나 쭉 뻗은 채로 며칠씩 길가에 방치된다. 파리 떼가 우글우글 모여들고 악취가 진동한다. - P32

우리가 키우는 젖소 한 마리가 언젠가 나를 뿔로 들이받은 채도랑을 뛰어넘었다. 젖소는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느라 움푹 팬고랑에 나를 떨어뜨리고는 나를 타넘고 멀리 달아났다. 흙탕물이 튄 젖통이 떨어져나갈 듯 흔들거렸다. - P33

나는 털이 나고 불룩한 젖소의 배를 눈으로 찌르고, 손을 뱃속 깊숙이 팔꿈치까지 집어넣어 그 뜨거운 내장을 헤집고 싶었다.
어제 내린 빗물이 꺼칠꺼칠한 황새풀 잎에 고여 있었다. 나는그 갈색 물로 얼굴을 씻었고, 저녁에는 볼이 정말로 빨개졌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점점 예뻐 보였다. - P34

때로는 꼼짝 않고 누워 있는데도 바스락거렸다. 우리 마을 변두리에 어떤 남자가 집을 한 채 샀는데, 꼭 그 키 크고 뼈대 굵은남자가 방 안에 있는 것 같아 무서웠다. 그 남자가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그가 엄청나게 큰 해골을 박물관에 팔아서 다달이 그 돈을 받기 때문에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 P35

나는 나방들을 손으로 집어들었다. 손가락에 갈색 가루가 묻어났다. 나방 날개를 만지고 나면 내 손이 닿은 날개 부분이 투명해졌다. 내가 놓아주어도 나방들은 내 무릎 아래서 한동안 파닥거릴 뿐, 더 높이 날지는 못했다.  - P35

두건을 꽉 묶은 늙은 여인들의 턱이 떨렸다. 나는 눈물 젖은 듬성듬성한 속눈썹에 붙은 눈곱을 보았고, 그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그 침대가 관이고 그 안에 누워 있는 사람들은 죽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내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는데도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그 말이 며칠 동안이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P36

죽음은 언제나 벽 뒤에 있는데도 어째서 눈에 보이지 않는지,
또는 평생을 죽음 곁에서 사는데도 어째서 모든 것이 끝난 후에야 눈에 보이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 P36

나중에 도시로 나가 살면서, 나는 거리에서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이 아스팔트 위에 나동그라져 부르르 떨며 신음하는데도누구 하나 돌봐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가와 그의 손이 뻣뻣해지기 전에 반지와 시계를 빼갔다. 여자들의 목에서 금목걸이를 잡아채고 귀에서 귀고리를 떼갔다. 귓불이 떨어져나갔고 피는 금방 멎었다. - P37

나는 마치 골짜기 아래서 올려다보듯 그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우리 마을에서는 시신들이 거리가 아니라 뚜껑 달린 침대에 누워 있고 사람들은 그 앞에 앉아기도한다고.
그리고 사람들은 시신을 오랫동안 집 안에 둔다. 귓불이 푸르스름하게 부패하기 시작해야 비로소 울음을 그치고 시신을 마을밖으로 내간다. - P38

먼지가 손에 뿌옇게 묻어나고 얼굴에도 내려앉아서, 내가 마치바싹 말라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양쪽으로 손잡이가 달린 버드나무 광주리에 손바닥을 베인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고 물집이 커지면서 열이 나다가 딱딱해진다. 욱신욱신 쑤시고 아리다. - P38

늙은 잿빛 쥐들은 평생 누가 쓰다듬어주기라도 한 듯 푹신해보인다. 소리 없이 쪼르르 내달리며 요리조리 길게 곡선을 그린다. 머리통이 어찌나 작은지, 그런 두개골 아래서는 모든 것이뾰족하고 가느다랗고 납작해 보일 것만 같다.
저것들이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 보렴, 어머니가 말한다. - P39

고양이가 다가와 쥐가 꼼짝도 하지 않을 때까지 이리 벌렁 저리 벌렁 뒤집는다.
그러다 재미가 없는지 쥐의 머리통을 물어뜯는다. 고양이의이빨 아래 우두둑 으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고양이는 이따금 우두둑 씹어대며 이빨을 드러낸다. - P39

광주리에 옥수수가 수북이 쌓인다. 곳간이 점점 커진다. 아마도 텅 비고 나면 가장 커 보일 것이다.
옥수수들이 저절로 내 손으로 굴러와서, 저절로 광주리 안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손바닥에 아무것도 없을 때만 통증이 느껴진다. - P40

10월이다. 10월에는 교회 축성일이 있다.
오락사격장에서 옆집 소년이 나 대신 총을 쏘았다.
함석판에는 닭, 고양이, 호랑이, 난쟁이, 소녀가 그려져 있었다. 수염 난 난쟁이는 산타할아버지처럼 보였다.
오락사격장의 남자는 외팔이였다. 나는 발돋움하고 서서 남자에게 돈을 건넸다. 남자는 한 손과 무릎으로 총알을 장전했다.
그러고는 내 사수인 소년에게 총을 내밀었다. - P41

선글라스, 목걸이, 뻣뻣한 고무옷을 입은 인형, 벌거벗은 여자들이 그려진 지갑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탁자 위에는 오뚝이와 쥐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쥐 한 마리가 유난히 어설퍼 보였다. 나는 그 쥐를 골랐다. - P41

쥐는 암회색이었으며 네모난 머리에 헝겊 귀, 가죽 꼬리가 달려 있었다. 흰 실이 감긴 실패가 배 밑에 붙어 있고, 실 끝에는번쩍거리는 쇠고리가 달려 있었다.
나는 쥐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고리에 손가락을 걸었다가 손을 떼었다. - P42

그러다 서리가 내리면, 초록색 얼굴들에 투명한 점들이 박히고 능금 껍질에서는 높이 자란 무성한 풀냄새가 물씬 풍긴다. 골짜기가 얼마나 깊은지 절로 실감난다.
겨울이면 나는 그 야생 능금을 먹었다.
어머니는 오븐팬에 능금을 담아 뜨거운 오븐 안으로 밀어넣었다.  - P43

아버지는 늘 나보다 더 많이 먹었다. 능금 속까지 통째로 먹는데도 한 번도 배가 아픈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능금을 먹고 나서 씨를 털이 덥수룩한 손에 뱉었고,
기다란 갈색 꼭지 끄트머리가 빗자루처럼 보일 때까지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고 나서야 능금 씨와 너덜너덜해진 능금 꼭지를 불 속에 집어던졌다. - P44

집배원의 늘어진 커다란 외투 칼라가 마치 눈 덮인 갈색 수렁처럼 보였다.
집배원의 모자 속에도, 외투 호주머니 속에도, 장화 속에도,
커다란 우편가방 속에도 눈이 내렸다.
어느 날 아침, 펑펑 내리는 눈을 뚫고 텅 빈 바람을 가르고 간신히 날이 밝았다. 신문은 오지 않았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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