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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자치
자치라는 이상
현대 대의제의 창설은 ‘인민의 자치‘라는 이상에 따라 정당화됐다. 루소가 제기한 것처럼,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공동의 힘을 다해 각 회합원asso-Cie의 인격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하며, 각자가 모두와 결합함에도 오직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기에 전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회합 형식을 찾는 것"이었다.¹ - P53
2. 인민의 자치
1 Rousseau (1964 [1762], 182 [국역본, 24쪽]). - P341
"독재라는 대안과 달리, 민주주의는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권한을 부여하려고 한다. [실제] 민주주의가 이 주장에 못 미칠지언정, 이 같은 목표, 곧 자율이 규범적 경험적 관점에서민주주의의 가장 중심적인 특징이다."³ - P53
3 Lakoff (1996, 155). - P341
(전략). 그러나 자치의 원래 이상이 실현될 수 없다면 가능한 최선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대략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 자치라는개념이 나타났을 때, 그 논리적 전제는 각자 그리고 모두가 자신이 그 아래에서 살고 싶어 하는 동일한 법적 질서를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질성에 대한 이 같은 가정은 무너졌다. 가치, 이해관계, 규범을 둘러싼 갈등이 만연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 P54
이를 좀 다르게 표현해 보자. 아마존 스튜어트 밀은 모든 이가 동시에 통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아챈 인물일 것이다.⁴ 켈젠이 발전시킨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⁵ - P54
4 Mill (1989[1859], 7, 8). 5 Kelsen (1988 [1929]). - P341
‘인민의 자치‘
자치라는 이상은 점진적으로 나타났다. - P55
1. 인민, 또는 그 당시 표현으로 ‘인간‘man은 결코 사회 밖에서, 즉 ‘자연상태‘에서 살 수 없다. (전략). 즉, 사람들은 재산을뺏으려고 서로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다. - P55
2. 이 같은 자연적인 자유는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법 아래에서 사는 것이다. "오직 국가의 힘이 그 구성원의 자유를 만든다."⁶ 유일한 논점은 과연 사회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지의 여부다. 모든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는질서가 있는가? - P56
3. 질서는 강제를 수반한다. 즉, 사람들은 원하는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원하지 않는 무언가를 하게끔 강요받는다. - P56
4. (전략). 즉, 인민의 손에 권위를 두는 것이다. - P56
6 Derathé (1964, 48). - P341
그러나 ‘인민이 스스로를 통치한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재귀적 명제reflexive proposition, 즉 "나는 스스로를 ( )한다."라는 형식의 문장에서 동사 자리에는 ‘명령하다‘, ‘복종하다‘ 혹은 더욱 일반적으로 ‘통치하다‘가 오는 게 정치적으로 적합하다는 분석이 있다. 이에 대해 훌륭한 언어학적 분석을 보려면 뱅상 데콩브(Descombes 2004)를 참조하라. - P56
몽테스키외는 이렇게 말했다. "인민만이 입법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것은 민주정체의 기본법이다."⁸ 루소는 달랑베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민주주의에서 "주권자와 신민은 동일한 사람들을 다른 관계에서 고찰한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⁹ 분명 모든 명령이 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 P57
8 Montesquieu (1995 [1748], 104 [국역본, 36쪽]). 9 Derethé (1964, 47). - P341
분명, 모든 개인들이 서로 충분히 닮았다면 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신이 복종해야 할 질서를 선택하는 주체들이 그저 하나의 종을 복제해 놓은 것처럼 똑같다면 말이다. - P58
칸트의 관점에 따르면, 보편 이성의 인도에 따라 각각의 그리고 모든 개인들이 동일한 법 아래에서 살 것이다. "이성 그 자체가 이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법질서가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각자는 다른 모두와 동일하게 결정할 것이다. - P58
따라서 복수형으로서 인민들이 스스로를 통치하며 자유로울 수 있는 조건, 즉 집단적으로 자율적일 수 있는 조건은 각자가 그리고 모두가동일한 법 아래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대의제 정부는 이처럼 사회의 이해관계가 조화롭다고 상정하는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태어났다. - P58
콩도르세는 이렇게 지적했다. "법률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인민들로 하여금 자신과 다른 견해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어긋날 것으로생각되는 결정에 따르도록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¹⁷ 이처럼 고전적인 사상가들은 사람들이 많은 쟁점에서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했다. - P59
17 Condorcet (1986 [1785], 22). - P341
그러나 사회적 분열이 불가피하다고 인정한 이들조차, 파당이나 파벌은 자연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몸[공동체]body을 허위로 분열시키는, 정치인들의 야심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봤다. 정치 이전에 존재하는 차이나 갈등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 낸시 로젠블럼 (Rosenblum 2008, 1부)은 반정당주의antipartyism의 두 가지 전통을구분한다. 하나는 전체론holyism으로, 이해관계의 조화를 가정한다. 다른 하나는다원론적 pluralist 반정당주의로, 분열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본다. 로젠블럼은 반정당주의적 견해에 대한 광범위한 증거를 제시한다. - P59
심지어 계약론적인 관점이 유기체적 관점을 대체한 이후에도, 신약covenant 혹은 계약의 당사자들은전체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여겨졌지, 일종의 분열로 간주되지 않았다. 대의 정부의 창설자들은 인민이 자연적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오직 인위적으로만 분열될 수 있다고 보았다. - P60
조지 워싱턴은 [1796년 9월 17일] 고별21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²¹ 즉, "파당주의spirit of party는 항상 연방의회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고 연방 행정부를 약화합니다. 파당주의는 근거 없는 시기와 그릇된 경계심으로 공동체를 동요시키고, 다른 파당을 향한 한파당의 적개심에 불을 붙이며, 때로 폭동과 반란도 조장합니다. 파당주의는 외세의 영향력과 부패에 문을 열어 줍니다." - P60
21 Washington (2002 [1796],48); 네이버 지식백과 조지 워싱턴 대통령 고별사.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과 제공. - P341
프랑스인은 자유에 대한 관심이 덜했다. 1791년 프랑스 제헌의회는 마지막 명령에서 이렇게 선포했다. "어떤 협회, 클럽, 결사체도, 그 어떤형태로든 정치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또 이런 단체는 헌법 제정 권력 및입법 권위체의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도 감시할 수 없다. 어떤 구실로도집단의 이름으로 청원하거나, 대표단을 꾸리거나, 공적 행사에 참여하거나, 어떤 다른 목표도 추구할 수 없다."²⁵ - P62
25 Rosanvallon (2004, 59) - P341
1770년 에드먼드 버크가 다음과 같이 정당을 옹호했을 때, 그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꿈같은 소리라고 생각한 것으로 되돌아가는 셈이었다. "정당은 그들 모두가 동의하는 원칙에 따라 공동으로 국익을 증진하기위해 모인 사람들의 집합체다."²⁷ *
* 호프스태터 (Hofstadter 1969, 34)가 봤듯이, 미국에서 이 견해는 고작해야 미미한반향만 일으켰다. - P63
대의제 정부에서는 인민들이 선거를 통해 현 정부를 몰아낼 수 있도록 단결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선거와 선거 사이 기간에 인민의 적절한 역할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 P64
선호가 이질적일 때의 자치
1. 갈등 처리 방식으로서의 민주주의
존 스튜어트 밀은 이미 모든 시민이 동시에 통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알았다.³⁵ 한스 켈젠은 이 사실이 민주주의 이론의 출발점이 됐다고 주장했다.³⁶ - P65
35 Mill (1989[1859]). 36 Kelsen (1988[1929], 27). - P341
여기서 정당이란 "동일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공적 사안의 관리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뭉친 집"³⁷ 혹은 "정치권력을 얻기 위한 경쟁적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 구성원들이 합심하여 행동하기로 한"³⁸ 집단, 혹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시행되는 선거를 통해 공직을 얻음으로써 통치 기구의 통제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하나의여기서 정당이란 "동일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공적 사안의 관리팀"³⁹이다. - P66
37 Kelsen (1988 [1929], 28). 38 Schumpeter (1942, 283 [396쪽]). - P341
1929년 무렵 켈젠은 "현대 민주주의는 전적으로 정당에 기초한다."라고 전망했다.⁴⁵ 1945년 이후 제정된 몇몇 헌법은 정당을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제도로 간주했다.⁴⁶ * - P68
* 1947년 제정된 이탈리아 헌법은 최초로 "국가정책 결정" (2조)에서 정당의 역할을 언급했다. 1949년 제정된 구서독 헌법 (21조)과 1978년 제정된 스페인 헌법은 정당에 헌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1974년 제정된 스웨덴 헌법은 민주적 의사형성 과정에서 정당이 하는 중요한 역할을 언급했다. - P68
45 Kelsen (1988 [1929], 29). 46 Lavaux (1998, 67, 68). - P341
정당에는 평당원과 지도자가 있다. 지도자는 선거로 [인민의] 대표자가 된다. 이들이 인민을 위해 일한다. 켈젠은 이렇게 말했다. "의회제란인민이 선출한 합의제 기구[의회]를 통해 국가의 의지를 만드는 것이다. 의회가 만든 국가의 의지는 인민의 의지가 아니다."⁴⁷ 슘페터 역시 이런 생각에 동의했다. - P68
47 Kelsen (1988[1929], 38). - P341
이제까지 제시된 견해는 슘페터가 말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전적인 관점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매디슨이나시에예스가 비록 이해관계나정당을 강조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을 수는 있지만, 그들 역시 대표자의 역할이, 때로는 인민의 의지를 거스를지라도, 인민을 위해 무엇이 좋은지를 결정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했을 것이다. - P69
[모든 구성원의] 합의에 토대를 둔 자치에 대한 이론에 처음 체계적으로 도전한 사람은 아마 켈젠일 것이다. "인민은 민족적·종교적·경제적 차이로 나뉜다. 그래서 사회학자의 눈에 인민은 하나로 응집되어 있는 무리가 아니라 다수의 개별적인 집단으로 보인다."⁵¹ - P69
51 Kelsen (1988 [1929], 25, 26). - P341
슘페터는 네 가지를 지적하며, 공동선 혹은 일반의지라는 개념을 체계적으로 비판한다.⁵³ - P70
53 Schumpeter (1942, 250 이하[국역본355쪽 이하]). - P341
① "모든 인민이 동의할 수 있거나,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하게 결정된 공동선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⁵⁴ ② 공리주의자는 자신의 공동선 개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개인 선호[라는 개념]를 채택한다. 그런데 개인 선호는 자율적이지 않고 설득을 거쳐 만들어진다. 즉, "진정한 의지가 아니라 만들어진 의지인 것이다."⁵⁵ ③ 민주적 과정을 통해 공동 의지가 도출된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공동선을 찾아냈음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 심리의 병폐를 고려해 보면, 인민이 자신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알아낸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④ 우리가 공동선을 알 수 있다고 해도 어떻게 그것을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남아 있다. - P70
54 Schumpeter (1942 [국역본, 357]). 55 Schumpeter (1942[국역본, 371]). - P341
* 슘페터가 그의 책 [자본주의 사회주의·민주주의]]을 쓰고 단 9년이 지난 뒤, 케네스 애로는 공동 의지를 식별하는 데 따르는 난제를 발견했다(Arrow 1951). - P70
켈젠은 정당 간 타협이라는 한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⁵⁸ - P71
58 Kelsen (1988 [1929], 34). - P341
유권자가 주기적으로 정당 지도자들 간의 타협을 비준하는 것, 이것이 켈젠과 보비오가 자치에 대한 고전적 관념에서 가져올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 오늘날 자치는 의회에 진출한 정당들의 통치를 의미한다. 정당들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에 갈등하는 이해관계들 사이의 타협을 추구한다. 협상이 숙의deliberation를 대체한다. - P72
다수가 원하면 정부는 바뀐다. 그렇게 되면 대다수는 어느 시점엔가는 대표된다. 비록 인민이 스스로 통치하지는 않지만, 서로 다른 이가 번갈아 그들을 통치한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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