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자연철학


하나의 학문 분야로서 자연철학은 실제로 대학의 연구 활동에서 사라져 버렸다. - P11

우선 자연에 대한 철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철학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 자체가 철학의 중요한 주제이다.¹

1 이 책이 포함된 Darmstadt 과학 총서 중에서 H. Noack이 쓴 입문서, AllgemeineEinführung in die Philosophie』 참고. - P11

철학은 "계속적인 물음(Weitefragen)"을 제도적 특징으로 삼는다. (중략). 반면 철학은 고유한 과제 설정에 그치지 않고, 어떤 것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확히 특징지어진다. - P12

철학은 당대의 이론들에 대한 기초 보강작업(Unterfangen)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역사적-비판적 해석"이다. - P12

 자연철학의 형태를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자연과학의 전제들을 연구하는 다른두 학문 분야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 - P14

1. 과학학(Wissenschaftswissenschaft, science of science): (중략). 원래 "자연과학사"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이러한 종류의 매력적인 연구는 자연과학에 대한 체계적인 고찰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참고 Kuhn 또는 van den Daele 등).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자연철학이라고 부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 P14

2. 과학론(Wissenschaftstheorie, philosophy of science): 논리적 분석과 경험주의를 하나로 결합한 분석철학의 토대 위에서 자연과학의 ‘방법‘에만 치중하는 철학의 연구 경향이 폭넓게 발전했다. (후략).⁴


4 이것에 대한 설명은 무엇보다 참고문헌에 나오는 책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더 자세한 참고 자료는본 총서 중 E. Ströker가 쓴 입문서와 『W. Stegmüller 1969』에 있다. - P15

(전략). 오히려 우리는 자연과학의 ‘내용‘에 의존하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내용이 과학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제한을 두어야 할 것이다. (중략).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오늘날까지 주로 수리물리학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 P15

2장

무엇이 실재인가?


우리는 잡다한 현상의 배후에 숨어 있는 실재 "자체"라고 하는 고전물리학적 관념에 젖어 성장했다. 수많은 지각 가능한 속성(Eigenschaft)과 변화는 모두 물리학의 근본 법칙에 따른 극소 미립자의 운동에 환원된다. - P19

오늘날의 자연과학은, 그것이 설명하는 바가 플라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수리적인 과학이다. "바탕에 깔려 있는 실재(zugrundeliegende Wirklichkeit)"라는 것도근대 물리학에 의해 완전히 추상화되었으며 수학적 형식 체계를 통해서만 서술할 수 있다. - P21

근대 물리학에 대해서는 다음 장들에서 논할것이다. 그것은 여기서 시사한 것과는 세부적인 면에서 크게 다르고 더욱더 복잡하다. - P22

칸트는 실재를 또 다른 측면, 즉 인식하는 주관의 측면에서 고찰했다. 칸트의 사상을 다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무엇보다 오늘날의 경험주의적 발상들을 고려할 때 유익한 일이다.³

3 C.F.v.Weizsäcker 1977 a참고 - P22

흄은 인간의 인식 영역에는 두 가지, 즉 "사실에 대한(on matters offact)" 영역과 "관념의 관계에 대한(on relations of ideas)" 영역이 있다고 말했다. - P22

 즉, 과거의 사건에서 논리적으로 미래의 사건을 추론하는 일은 절대 가능하지 않다. - P22

그러나 흄은 이러한 귀납 원리의 증명이 이미 귀납 원리를 전제하고있다는 점을 정당하게 지적했다. 즉 우리가 과거로부터 미래를 추론할수 없다면, 과거에서 거둔 귀납 원리의 대성공도 미래에서 그 타당성에대한 추론을 불허할 것이다.⁵

5 오늘날의 논의에서 이에 대한 증인으로 불려 다니는, 칼 포퍼(K. Popper, 1935)의 정식은 이와 전적으로 일치한다. 일반적 법칙은 실증 사례들로 이루어진 자료에 의해 ‘검증(verifiziert)‘ 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법칙의 타당 범위가 수없이 많은 사례, 특히 미래의 사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포퍼의 타개책은, 법칙 가설(Gesetzeshypothesen)은 최소한 단 하나의 반례(Gegenbeispiel)에 의해 반증 가능(falsifizierbar)하며, 그것이 반증을 견뎌 낼수록 더욱더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퍼는 하나의 가설을 반증하는, 측정장치(Mäßgerät)에 대한 또 다른 가설은 이미 참인 것으로 가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했다. - P23

(전략).
이것을 또다시 동어반복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만큼만 경험할 수 있다. 칸트는 경험이 성립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고, 따라서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하면서 흄의 습관과 믿음으로부터의 설명을 강화했다. - P24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그가 사물을 그 자체(an sich selbst)로만 바라보려 했던 것이 아니라 - 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것은 인간의경험 외부에 존재하게 되므로 - ‘우리에 대한(für uns)‘ 경험이 가능해지기 위한 제반 조건을 고찰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실재는 실재 자체라기보다는 경험을 수행하는 우리의 능력에 의해 미리 각인된(vorgeprägt) 실재인 것이다. 지각하는(wahrnehmend) 생물의 "주관적" 조건이 지각 과정에서 결정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생물학적 사이버네틱스⁶의 인식은 이것과 같은 방향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6 K. Lorenz 1973, H.v.Ditfurth 1976, C.F.v. Weizsäcker 1977b - P25

앞서 말한 대로 칸트는 만약 우리가 사물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그대로 우리에게 나타난다고 인정한다면, 객관성에 대한 인간의 능력을 과도하게 요구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 P26

우리는 우리 능력의 본질을 실재의 분석에 포함하는 또 다른 이론을 마흐(Ernst Mach, 1838~1916)에게서 볼 수 있다.⁷



7 예를 들어 E. Mach 1933 IV4와 그곳에서 인용된 논문들. - P26

물리학은 마흐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원자나 소립자의 특성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근대에 이르러 오히려 플라톤보다 더 순진하게 실재의 단순 요소를 탐구하려 했다. 흥미롭게도, 마흐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원자 가설을 자신의 감각 요소와 비교하며 터무니없이 위험한 사고라며 단호히 거부했다.  - P28

(전략). 이 논증은 물질의 어떤 부분들은 분명인간이 더 나눌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인간이 결코 ‘배제‘할 수도 없다는 것, 인간이 그 시대에 그 부분들의 어떤 것도 인식할 수 없을 때조차 그러한 부분이 여전히 그것의 부분들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심장하게 말하고 있다.  - P30

내가 보기에 이러한 결론은 부분들을 전체와 같은 종류로 여기는 한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 P30

근대 물리학은 부분과 전체의 동질성을 지양하며, 이율배반의 또 다른 해결책을 제시했다. (중략). 여기서는 하이젠베르크(Heisenberg)의 가분성의 명제(These zur Teilbarkeit)를 설명하고자 한다.  - P31

(전략), 원자는 핵과 전자껍질로 이루어지고, 그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것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그러나 양성자, 중성자, 전자 그리고 약 200가지 이상의 소립자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⁸®



8 Particle Data Group 참고.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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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저키스트가 우연히 새디스트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변태성의 각 주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상반되는 변태성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같은 변태성을 가진 사람의 어떤 특정한 "요소"인 것이다. - P49

새도매저키즘이라는 용어는 단지 두 사람의 실제적인 만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만남의 주제는 무의식의 세계에 떠도는 "익살"의 형태이긴 하나 항상 계속해서 발견되고있다. - P50

변태성의 능동적 측면과 수동적 측면 중 어느 한 측면이 더 집중적으로 발전하여 개인의 지배적인 성적 활동을 대표하게 되지만, 기본적으로 새디스트는 동시에 매저키스트이기도 하다.⁸ - P50

세 번째 논의는 변형과 관련되어 있다. 이 논의는 목적과 그 대상에 따라 (반대성향으로의 역전, 자신으로의 회귀) 성본능들이 서로 합치거나 변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의 역시 대단히 이상하다. 변형이론에 대한 프로이트의 태도가 완전히 뒤바뀌어져 있기 때문이다. - P51

사실 프로이트는 다윈보다는 조프루아 생틸레르(Geoffroy Saint-Hilaire)와 더 많은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변태가 된다기보다는 단지 유아기의 변태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설명할 때의 프로이트의 공식은 조프루아가 기형성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공식과 매우 유사하다.  - P52

두 가지 유형의 본능들이 서로 복잡하게 결합하여 전체적인 어떤 형태들의 계층을 이루어내며, 개인들은 이 중 어느 한 계층에서 고착되거나 퇴행한다. - P52

변태성의 문제에 있어서 그 변태성의형성과 구체적이고 특수한 표현을 추상적인 "연도관(管)"처럼, 마치 공통적인 리비도 물질이 여기저기 형태를 바꾸며 흘러다니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 P53

 쾌감-고통 콤플렉스는 새디즘과 매저키즘 모두에 공통적인 일종의 중립적 물질로 생각된다. 또한 그 연관성은특정한 주체에 적용되어 더 구체화되며, 각각의 경우에 그것들이발생하는 구체적인 형태와는 상관없이 새디스트와 매저키스트 모두가 동일하게 경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 P53

(전략). 거의 연속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서로 상이한 요소들로 구성된 단일한 일련의 연속적 결과들을 연결시킴으로써 "진화론"에 빠지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눈이라는 것은 상이한 연속적 상관성의 결과로서, 또는 유사해 보이지만 전적으로 상이한 메커니즘에서 형성된 결과로서 등 몇 가지의 독립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P54

나는 새디즘과 매저키즘, 그리고 이들 간의 공통분모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쾌감-고통 콤플렉스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새디즘과 매저키즘이 같은 기원을 가지며 동시에 병존한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유추에 근거한 것일 뿐이다. - P54

8. 『성의 이론에 대한 세 가지 에세이』, 심리학 전집 (호가스, 1955-65), VII권, p.159. - P162

4

마조흐 작품에 나타난 세 명의 여성

바흐의 여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잘 발달된 신체에 자신만만한 성격, 친절함과 순진성이 강조되는 순간에도 오만한 의지와 잔인한 성향을 잃지 않는 인물들이다. - P55

(전략). 그러나 옴팔레 (Omphale)가 헤르클레스(Hercules)에게 여성의 옷을 입혀 그의 남성다움을 빼앗듯이 결국 승자는 여성원리인 아프로디테이다. 남녀 간의 동등성은 여성이 남성에 대한 지배력을 얻게 되는바로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 왜냐하면 "남성은 여성이 자신과동등해지자마자 불안감에 떨게 되기 때문"이다. - P56

 실제로 마조흐는 그가 그리스인 또는 아폴로라고 부르는 제3의 인물을 등장시켜 그에게 여성의 새디스틱한 욕망을 부추기는 역할을 맡기고 있다. - P57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자웅동체 유형도 새디스틱한 유형도 마조흐의 이상을 대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 P58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창녀의 주제로 시작하여 새디스틱한 주제로 끝난다. 그러나 그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이 양 극단 사이, 즉 또다른 제3의 요소에서 전개된다. (중략). 매저키즘은 한쪽의 극점에서는 아직 작동을 못하고 있고, 다른 쪽의 극점에서는 이미 그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 - P59

그렇다면 그 중대한 행위가 발생하는 두 영역 사이의 장소, 그 기본적인 매저키즘의 요소는 무엇인가? 창녀와 새디스트 사이를 잇는 제3의 여성의 유형은 과연 무엇인가? - P60

 매저키즘의 이상은 냉정함-모성-엄격함-차가움-감성-잔인성이라는 말들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특성들은 박해자 여성과 그 "상반되는 짝"의 차이, 창녀와 새디스트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 P61

새디스트의 "냉담성"은 근본적으로 감정에 대한 냉담성이다. 모든 감정들, 특히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한 감정까지도 비난을 면치 못한다. - P61

사드의 소설에 등장하는 진짜 난봉꾼들은 쉽게 격정적인 감정에 휘말리며, 순수히 악 자체를 위한 행위 도중에조차 "첫 번째 불행으로 전향하기 쉬운" 그런 인물들을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 P61

마조흐는 당시의 저명한 민족학자이며 헤겔파 법학자인 바호펜(Bachofen)의 저서를 잘 알고 있었다. 헤겔뿐만 아니라 바호펜 역시 그에 못지않게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꿈 이야기에 영감을 제공해 주고 있는 인물이 아닐까?  - P62

(전략).
그런데 창녀 시대의 난잡한 육감성인 그리스적 이상이 어떻게해서 여성정치적 감성에 의한 새로운 질서라는 매저키즘의 이상으로 변형되는 것일까? 이것은 간단하다. - P63

매저키즘의 환상 속에서 모피는 실용적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모피는 장식이 아니라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입는 옷일 뿐이다.  - P64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꿈속의 여인은 잃어버린 그리스 세계에 대한 낭만적인 향수를 이야기한다 : (후략). - P64

사드와 마찬가지로 마조흐 역시 자연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으나 사드와는 다른 방식을 따르고 있다. 조야한 자연은 임의적이고 개별적인 것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어디서나 교활함과 폭력, 미움과 파괴, 무질서와 육감성이 난립한다. - P65

마조흐가 보여주는 세 명의 여성들은 세 명의 근원적인 어머니의 이미지와 일치한다. 첫 번째는 자궁의 이미지를 가진 원시적이고 창녀와 같은 어머니이며, 배설과 늪의 어머니이다. 두 번째는 연인의 이미지를 간직한 오이디푸스적인 어머니로서 피해자나 공조자의 모습으로 새디스틱한 아버지와 연결된다. 이 사이에 양육과 죽음을 모두 관장하는 대초원의 어머니인 구강적인 이미지의 어머니가 있다. - P66

매저키즘 특유의 요소는 바로 자궁의 어머니와 오이디푸스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차가움, 고독, 죽음의 이상을 의미하는 구강적인 어머니인 것이다.¹³ - P67

13. E. 베르글러, 「근본적인 신경증」 (뉴욕: 그륜, 1949). - P162

5


부모

어머니와의 명백한 갈등과 모든 원인을 어머니 탓으로만 돌리려는 매저키스트의 태도를 생각해 볼 때, 매저키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주장이 있다. - P68

"아버지"에 대한 가설에는 진지한 현상학적 · 중후학적 증거가 필요하며, 이미 병인학(病因學)을 전제로 하고 있는 추론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 P68

(전략). 그러나 죄의식의 새로운 형성과 수동적 역할에서 발생하는 거세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매저키스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처벌받고자 하는 욕망으로 대체시키는데, 이는 약화된 형태의 처벌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의 애정관계 그 자체로 대체하는 것이기도 하다. - P69

확실히 새디즘에는 부계적 가부장적 주제가 지배적이다. - P71

 사드는 어머니를 "부드러운 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창조· 보호·재생산의 법칙에 종속되어 있는 이차적 자연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아버지는 사회의 보수주의라는 점에 있어서만 이차적 자연에 속할 뿐이며, 본질적으로는 기존의 모든 질서를 초월하며 무질서와 혼란을 퍼뜨리는 거친 분열성의 분자들로 구성된 일차적 자연을 대표한다. 아버지는 곧 일차적 자연인 것이다. - P71

새디스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생산적인 것들에 대해 완벽한 종지부를 찍는 일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일차적 자연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 P72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지나서 (The Passing of the Oedipus Complex)"에서 프로이트는 두 가지 경우를 그 가능한 결과로 보고 있다. 즉 어린이가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적극적이고 새디스틱한 경우가 있고,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수동적이고 매저키스틱한 경우가 그것이다. - P72

매저키즘의 주체가 속죄하고자 하는것은 바로 자신과 아버지의 유사성, 자신 내부에 숨어 있는 아버지와의 닮은 모습이다. 매저키즘의 공식은 바로 굴욕을 당하는 아버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매질을 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매질을 당하는 사람이다. - P73

매저키스트의 이상적인 여성이 곰이나 늑대를 사냥하고 그 털가죽을 벗긴다. (중략). 매저키즘의 시작은 여성이 이미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곰과 털가죽에는 독자적인 여성적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 P73

그러나 아버지의 기능을 세 명의 어머니들의 이미지로 전이시키는 것은 매저키즘의 환상이 보여주는 한 가지 측면일 뿐이다. - P74

사드의 "범죄동료들의 사회"에서 보이는 보편적 매춘이라는 꿈은 어머니를 파괴하고 딸에게 우선권을 주기 위한 객관적 제도에서 구체화된다(어머니는 추방되고 대신 딸이 협력자로 등장한다). 반대로 마조흐의 경우, 매춘의 이상적인 형태는 사적인 계약에 근거하며, 이를 통해 매저키스트는 선한 어머니로서의 능력을 갖춘 자신의 아내를 다른 남성에게 제공한다.¹⁶ - P75

구강적 이미지의 선한 어머니에게 모든 기능들을 집중시키는것은 아버지의 모습을 지우고 아버지의 자질과 기능을 세 명의 여성에게 분배시키기 위한 방법의 하나이며, 이러한 사실은 종국에가서는 구강적 이미지를 가진 어머니의 승리로 끝나는 세 여성의 투쟁과 현현(顯現)에 의해 더욱 명확해진다. - P76

세 명의 어머니들은 매저키즘의 세계에서 문자 그대로 아버지를 쫓아낸다. - P76

자끄 라깡(Jacque Lacan)이 최초로 공식화시킨 근본적인 법칙에 따르면, 상징적 차원에서 폐기되었던 대상은 환각의 형태로서 "실제"적 차원으로 복귀한다.¹⁸ - P78

텍스트의 모든 묘사들은 그 장면의 완전한 "실제성"이 환각의 형태로만 경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있는데, 이때 환각은 환상의 추구나 지속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 P78

테오도르 라이크는 자신을 막 때리려는 여성에게서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흔적을 주체가 인식하자마자 모든 "마술적" 효과가 사라져 버리고 마는 매저키즘의 한 장면을 인용하고 있다.¹⁹ - P78

그렇다면 현실과 공격적인 아버지의 복귀라는 환각에 대한 매저키스트의 방어책은 무엇인가? - P79

. 우리는 여기에서 매를 맞고 굴욕과 조롱을 당하는 것이 매저키스트의 내부에 숨어 있는 아버지의 이미지, 아버지와 닮은 어떤 것, 아버지의 공격적인 복귀 가능성이라는 것을보았다. 맞고 있는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라 바로 아버지인 것이다. - P79

 이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매저키즘의 결과에 대한 전조이며 새로운 인간을 나타내지만, 반면에 새디스틱한 역할에 의해 그는 매저키즘이라는 실험을 방해하고 그 결과에 제동을 거는 거칠고 위험한 아버지를 대표하기도 한다.  - P80

그러나 사실 (아버지가 환각적 형태로 복귀하는 최악의 결과로접어들지 않는 한) 제3자는 자궁의 이미지를 가진 어머니와 오이디푸스적인 어머니를 선한 어머니로 대체함으로써 두 양 극단의 어머니들을 중화시키기 위한 것일 뿐, 제3자 자체를 위한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 P81

매저키즘이 반드시 여성적이고 수동적이며 새디즘은 남성적이고 적극적인가 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 P81

여성성은 완전무결한 것으로 간주되며, 부인에 의해 정지(페니스의 부재가 반드시 남근의 부재를 의미해야 할 필요가 없듯이 페니스의 존재가 반드시 남근의 소유를 의미할 필요도 없다) 된 남성 옆에나란히 위치한다. 그러므로 매저키즘의 경우 이상적인 남근과 재생의 능력을 소유한 매질하는 어머니와 관련하여 소녀도 아들의 역할을 별 어려움 없이 수행할 수 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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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드와 마조흐의 언어


"그것은 너무나 이상적이기에 … 그토록 잔인하다."
도스토예프스키, 『학대받은 사람들』


문학의 용도는 무엇인가?  - P17

질병의 이름이 특정 환자의 이름에서 유래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의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로저스씨병, 파킨슨씨병 등), 우리는 질병의 이름을 붙이는 원리에 대해서 세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 P17

(전략). 의사가 어떤 질병에 자신의 이름을 부여할 경우 증상들의 집단에 고유명사가 연결되는, 즉 고유명사가 증상들을 의미하게 된다는 점에서 언어학적으로나 기호학적으로나 대단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 P18

매저키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던 크라프트-에빙은 마조흐가 고통과 성적 쾌감의 관계뿐만 아니라 포박과 굴욕에 관련된 더 근본적인 어떤 것을 통해 그 임상의학적 실체를 재정의한 공을 인정했다[제한된 경우이기는 하지만 기통애(愛)가 없는 매저키즘이 있으며, 매저키즘 없이 기통애만 있는 경우도 있다.]¹ - P19

원래 폭력이라는 것은 말을 하지 않는 어떤 것이다. 또 말을 한다고 해도 아주 적게 한다. 반면에 성은 거의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어떤 것이다. 성적인 수줍음은 생물학적인 두려움과는 무관하다. - P19

그렇다면 우리는 마조흐의 경우 역시 스스로 박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인 그가 박해자의 그 위선적인 언어로 말한다고 할 수있으므로 마조흐의 언어 또한 사드와 마찬가지로 역설적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인가? - P20

포르노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몇 가지 명령문(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식의) 뒤에 외설적인 묘사가 뒤따르는 형태의 문학이다. 폭력과 에로티시즘은 분명히 만난다. - P20

사드에게서 우리는 고도로 정교한 논증적인 언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언어의 고차원적 기능으로서의 이러한 논증은 연속적인 묘사들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있다. - P21

(전략). 새디스트에게는 상대를 확신시키거나 설득시킨다는 것, 즉상대를 교육시킨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의 실제 관심은 전혀 다른 데 있다. - P22

바타이유는 다시 사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드의 언어는 화자와 청자 간의 관계를 부정하는 언어이다." (후략). - P22

마조흐의 작품에서도 명령의 초월성과 묘사의 고차원적 기능이라는 면에서 유사성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 경우 그의 언어는 매우 설득적이고 교육적이다. - P24

포르노 문학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한계, 즉 어떤 의미에서 비언어라 할 수 있는 상황과 대면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말하지 않는 폭력, 침묵을 지키고 있는 에로티시즘). 그러나 이러한 목적은 언어의 내적 분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 P27



1. 크라프트 예방이 자신의 매커니즘과 무관한 "매절당하기"를 지적하고 있다. CF 『성의 병리학』 ( 몰 개정판, 1963) - P161

2

묘사의 역할

사드의 경우 초월적 기능이 논증적이고 바흐의 경우 그것이 변증법적인 만큼 묘사의 역할과 중요성 또한 상당히 다르다. - P28

 사드의 묘사는 그 자체로서 외설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극적인 요소는 사드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마조흐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르다. - P28

(전략). 의심할 바 없이 이모든 경우들에 있어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굴욕적인 상황으로부터 이차적인 이익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이는 바로 매저키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 P29

마조흐의 묘사에서 보이는 이와 같은 두 종류의 ‘전이‘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 P30

사드 작품의 저변에는 넓고 깊은 의미에서의 부정 (否定, negation)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선 부정의 두 가지 수준을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 P30

파괴는 단지 창조와 변화의 역일 뿐이며, 무질서는 또다른 형태의 질서이고, 죽음에 의한 해체는 생명의 구성과 동일시된다. - P30

사드의 작품에는 이성주의가 접목될 수 없다. 사드가 이성 특유의 극단적 속성인 망상의 사상을 전개시키는 것은 특유의 내적 필연성 때문이다. - P31

「소돔 120일」에서 난봉꾼은 자신을 흥분시키는 것이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없는 것", 부재하는 대상, 즉 "악의 개념"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 P32

생 퐁(Saint-Fonal)은 자신의 이론적 제계(사드는 이 체계를 통해 이성의 순수한 망상이라는 개념을 전개시키고 있다)를 설명하면서 "이차적인 자연에서 발생한 B라고 하는 어떤 구체적인 고통"이 과연 어떤 조건 하에서, 일차적인 자연에서 필연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스스로를 영원히 재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 P32

즉 논증적 이성의 냉정함에 의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미 잘 알려진 난봉꾼 특유의 그 냉담성은 이렇게 해서 형성된 것이며, 사드가 보여주는 포르노 학자의 이와 같은 자제력은 보기에 딱할정도로 스스로 "열광"에 빠져버리는 일반적인 포르노 작가들과사드를 구별해 주는 요소이다. - P33

새디스트가 자신의 논증을 위해 이용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때, 논증적 기능이 묘사적 기능을 복종시키고 절제된 방식으로 그것을 확대·응축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34

『쾌락원리를 넘어서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에서 프로이트는 생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 즉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또는 파괴적 본능과 죽음의 본능 간의 차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P34

죽음의 본능과 에로스의 결합은 말하자면 타나토스의 "재현"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 P35

(전략), 이러한 의미에서 프로이트는 무의직속에는 노(No, 순수부정)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우리가 죽음의 본능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절대적 부정인 타나토스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때의 타나토스는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무의식에서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 P35

죽음 또는 파괴적 본능과 죽음의 본능 사이의 구별은 사드가 구별한 두 가지 요소, 두 가지 자연의 구별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 P35

프로이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부인 [否認: Vernenung. Verwerfung, Verleugung: 라깡(Lacan)은 각 용어들의 차이를 구분하고 있다]의 과정을 암시하는 저항의 형태들을 분석하고 있다. - P35

 프로이트가 보여준 가장 훌륭한 예는 바로 물신숭배이다. 물신은 여성남근 (fermale phalus)의 이미지 또는 그 대체물로서, 이를 통해 우리는 여성에게 페니스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다. - P36

부인과 믿음의 진행과정으로 정의된 물신숭배는 필연적으로매저키즘에 속한다. 새디즘에도 물신숭배가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물론 새디스트가 저지르는 살인에 의식(儀式)이 선행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 P37

반면에 일차적인 의미에서 물신숭배 없는 매저키즘이란 있을수 없다. 마조흐가 자신의 이상주의, 즉 "극도의 감각주의"를 정의하는 방식은 보기에 오히려 하찮은 것처럼 보인다. - P37

마조흐의 소설에서 그가 의도한 효과가 정점을 이루는 순간은 바로 긴장감이 극대화되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마조흐를 긴장감을 낭만적 소설의 필수요소로 이용한 최초의 소설가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 P38

 마조흐의 미학적이고 드라마틱한 긴장감은 사드의 기계적이고 절정을 지향하는 반복과 확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 P39

이제 마조흐의 작품에 외설적인 묘사가 부재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물론 묘사의 기능은 남아 있다. 그러나 묘사에 따르는 잠재적인 외설성은 부인되거나 정지된다. - P39

 사드 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성(城)은 잔인한 박해자들의 움직임을 극대화시키는 빛과 어둠이라는 잔악한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 반면 마조흐의 배경을 이루는 무거운 태피스트리 장식, 떠들썩한 친교관계, 여성의 침실과 벽장은 정지된 움직임과 정지된 고통만이 눈에 드러나도록 하는 명암의 대조를 형성하고 있다. - P40

새디즘과 매저키즘의 근본적인 차이는 부정적인 것과 부정, 부인과 긴장감이라는 상반된 과정들로 요약될 수 있다. - P40

3


사드와 마조흐는 상호 보완관계인가?


사드와 마조흐에게 문학의 기능은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이미 묘사되어 있다. - P42

흔히 일정한 한새를 넘어서는 지나가아이에서는애로틱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에로티시즘은 독단적싼 것을환영하고 거기에서 폭력을 이끌어내며 그 목적이 다시 책임것을 감각에 연결시킨다는 의미에서 여기에 ‘정성적 가지를 채여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세계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침실의 철학에서 사드는 사악함의 종류를 두 가지로 구분하고다. 하나는 무미건조하고 흔해빠진 사악함이고 또 하나는 순수하고어제 감각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지적인 사이다.) - P42

결국 사드는 뒤집어진 거울을들고 태초로부터 1789년 대혁명까지의 자연과 역사 전체를 새롭게 반영하고 있다. - P43

마조흐에게서도 역시 유사한 야망을 엿볼 수 있다. - P43

과연 사드와 마조흐를 어느 정도까지 동반자로, 또는 보완관계로 보아야 할 것인가?  - P44

새도매저키즘이라는 실체는 프로이트의 발명품이 아니다. 그것은 크라프트-에빙, 하벨록 엘리스(HavelockEllis), 페레(Féré)의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 P44

세베린의 새디즘이 보여주는 그 절정은 속죄와 속죄의 필요성에서 오는 만족감으로 인해 가끔 차별을 통해 얻을 수 없었던 것이 드디어 허용되는 의미한다. - P45

고통과 모욕 속에서 그가 느끼는 것은 속죄가 아니라, 사드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마음 속 깊이그런 대가를 치를 정도로 충분히 극단적인 행위를 실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 P45

결국 새디즘과 매저키즘이 서로 모습을 바꾸며 공존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 P46

우리의 가정은 마조흐가 새도매저키즘이라는 엉터리 실체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해석과직관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사드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임상의학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P46

새도매저키즘의 실체에 대한 믿음은 대체로 오해와 부주의한 추론의 결과이다. 언뜻 보기에 새디스트와 매저키스트는 당연히 서로 어울릴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 - P46

진짜 새디스트는 결코 매저키즘적인 피해자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쥐스틴느』에 등장하는 한 수도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해자가 고통의 눈물을 흘리기를 원한다. 그들은 제 발로 이곳에 걸어들어 오는 소녀들은 모두 돌려보냈다.") 매저키스트 역시 새디스틱한 박해자를 원하지 않는다. - P47

새디즘과 매저키즘을 그 고유한 세계에서 분리하여 추상적한 실체로만 다루게 되면 혼동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일단 그들은 그것들을 둘러싼 고유의 환경에서 분리하여 살과 뼈를 제거하고 나면 서로 잘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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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프랭크는 르마의 상자를 열기 위한퍼즐을 푸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그래서 커다란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 P11

 상자의 여섯 면은 검은 래커로 칠해져 있었는데, 이 3차원퍼즐을 해체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 P11

르마샹이라는 이 프랑스인은, 중국인들의 정확하고 천재적인 기술력에 자신만의 기이한 논리를 덧대었다. - P12

첫 성공에 용기를 얻은 프랭크는 열정적으로 퍼즐을 풀어나갔다.  - P12

프랭크는 퍼즐에서 눈을 떼고 시선을들었다. 잠시 동안 그는 종소리가 바깥거리 어딘가에서 들려 온다고 생각했다. 곧 프랭크는 그 생각을 떨쳐냈다.  - P13

그 생각에 호흡이 가빠졌다.
프랭크는 이 순간을 너무도 간절히기다려왔다. 그의 모든 지혜를 동원해 현실에 장막이 이처럼 찢겨 나가는 순간이하기를 계획했다. - P14

키르허가 ‘세노바이트¹‘라고 부르던 사람들,
파열의 교단에 속한 신학자들이 신학자들은최고의 쾌락의 영역에서 실험하던 도중 소환되어, 시공간을 초월한 자신들의 머리를 실패와 빗줄기로 얼룩진 세상에 들이밀것이다.


1 Cenobite, 수도원에서 공동 생활을 하는 수도사라는 뜻을 담고 있다. - P15

그러나 지금, 종소리가 점점 더 커져상자에서 울리는 음악 소리를 압도하자 두려움에 휩싸였다.
너무 늦었어, 그는 중얼거렸다.  - P16

방 한가운데에 있는 알전구는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전구는 종이 울릴 때마다 같은 리듬으로 뜨겁게타올랐다. - P17

마침내 벽은 다시 실체를 갖췄고, 종소리는그쳤다. 전구가 깜빡거리다 꺼졌다. 이번에는 다시 켜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프랭크는 어둠 속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못했다. 미리 준비해둔 환영의 말을 떠올렸지만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 P18

그리고, 빛이 있었다.
빛은 그들에게서 새어 나왔다. 네 명의 세노바이트. 그들의 등 뒤로 벽은 봉인되었다. - P18

지금 세노바이트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왜이렇게 괴로운 걸까? 흉터가 그들의 몸을 빽빽하게 뒤덮었기 때문일까? 살점을 표면부터 죄다 뚫고 베고 봉합한 다음, 재를뿌려 덮고 있어서? 그들에게서 풍기는 바닐라 냄새가 그 단내가 악취를 가리는 데 별다른역할을 하지 못해서?  - P19

"내가 물었다."
그 존재가 말했다. 프랭크는 대답하지않았다. 이 상황에서 도시의 이름 따위가 생각날 리 없었다.
"내 말을 이해하는가?" - P20

"우리가 누구인지는 아는가?"
그 존재가 물었다.
"그래."
마침내 프랭크가 말했다.
"알아."
당연히 알았다.  - P21

하지만 아니었다. 이곳에는 여자도, 나른한 숨소리도 없었다. 그저 살에 고랑이 파인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어떤 존재만 있을 뿐이었다.
그때 세 번째 존재가 입을 열었다. - P22

"원하는 게 무엇인가?"
그 존재가 프랭크에게 물었다.
프랭크는 방금 질문한 존재를, 다른둘보다는 더 자신감 있게 살펴보았다. 1초, 1초가 지날수록 두려움은 사라져갔다. - P23

"키르허는 당신들이 다섯이라고 했는데."
프랭크가 말했다.
"때가 되면 엔지니어가 도착할 것이다."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묻는다. 원하는 게 무엇인가?" - P23

"이 세상이... 실망스러운가?"
"상당히."
프랭크가 대답했다.
"이 세상의 진부함에 질린 건 네가 처음이아니다." - P24

프랭크가 입을 열었다.
"네가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안다."
첫 번째 세노바이트가 대답했다.
"우리는 네 광기의 속성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대단히 익숙한것이니까."
프랭크가 끙 소리를 내며 말했다. - P25

"너 같은 자의 상상력으로는 아무리 원해도 감히 불러일으킬 수 없는 가장 말초적인 상태가 있지."
(중략).
"받아들이겠나?"
두 번째 세노바이트가 말했다. - P26

"보여줘."
프랭크가 말했다.
"돌아갈 수는 없다. 알고 있나?"
"보여줘."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었다. 세노바이트가 장막을 걷었다. - P27

"보여줘."
프랭크가 말했다.
"돌아갈 수는 없다. 알고 있나?"
"보여줘."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었다. 세노바이트가 장막을 걷었다.  - P27

그러나 타는 냄새는 시작에 불과했다.
냄새를 인식하자마자 대여섯 가지 다른 냄새가 머릿속을 채웠다. - P28

귀도 못지않게 예민해졌다. 머리에 수천가지 소음이 가득 찼다. 그중 일부는 스스로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고막에부딪히는 공기가 허리케인처럼 굉음을 냈고,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천둥처럼울렸다. 하지만 다른 소리도 있었다.  - P29

평범하게 흰색으로 칠한 천장이 화가의 붓질로 이루어진 놀라운 지도처럼 보였다. - P30

프랭크는 터져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의 머리 바깥에 있는 세상이 그의 방, 문너머의 새들이) 아무리 비명을 지르며 과도하게 다가오더라도, 그의 기억이 괴롭히는 감각처럼 압도적이지는 못했다.  - P31

프랭크는 미칠까 봐 두려워 그들에게 말을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지 확신할 수없었다.
"어째서?"
그가 물었다. - P31

더 많은 감각적 인상이 그를 괴롭히기 위해 과거에서부터 허우적거리며다가왔다. 어린 시절이 프랭크의 혀에 남아있었으나, (우유의 매캐한 맛이 느껴졌다.) 점차 성인이 되면서 경험한 감각이 섞여 들었다. - P32

이런 상황에서도 프랭크는 떼거리로 나타나는 여자들에 대한 감각에 흥분했다. - P33

프랭크는 돌아누워서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르며 이제 끝내달라고 애걸했다. - P33

애원은 한 줄기 비명으로 바뀌었다. 공황에 빠져 단어와 의미가 증발했다. - P34

그는 방 한구석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방금까지만 해도 텅 비었던 자리에, 한형체가 서 있었다. 세노바이트 중 네 번째, 한번도 말하거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존재가 이제 그 존재는 그저 하나의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 그 존재는 여자의 형상이었다. - P35

죽음과 관능이 충돌하는 소름돋는 장면이었다. 그녀가 저 많은 희생자를 직접 죽였으리라는 걸 조금이라도 의심할 여지가있을까? - P35

르마샹의 상자를 연 것은 실수였다. 아주끔찍한 실수.
"아, 꿈은 다 꿨나 보구나."
세노바이트가 말했다. 그녀는 맨바닥에 누워서 헐떡거리는 프랭크를 살펴보았다.
"잘됐네." - P36

"이제 시작할 수 있겠어."
세노바이트가 말했다. - P36




"내가 기대했던 거랑은 좀 다른데."
줄리아가 말했다. 둘은 복도에 서 있었다.
(중략).
"손이야 좀 봐야겠지."
로리가 말했다. - P39

"나랑 프랭크 형의 집이지. 할머니가 유언으로 우리 둘에게 남겨주셨어. 하지만 몇 년째 형을 봤다는 사람이 없잖아?"
줄리아 역시 프랭크가 기억나지 않는다는듯 어깨를 으쓱했지만, 실은 아주 잘 기억하고있었다. - P40

로리가 줄리아의 얼굴을 훑었다. (중략).
"날 믿어."
로리가 단언했다.
"믿지."
"좋아, 그럼, 일요일부터 이사를 시작할까?" - P41

커피를 떠올리자 매우 목이 말랐다.
"그래."
줄리아가 납득했다.
"나쁘지 않네."
커피를 타는 일조차 순탄치 않았다. - P44

 줄리아는 상냥하고 아름다웠다. 누구라도 줄리아와 키스하고싶어 했으며, 어딜 가든 사람들은 줄리아를 쳐다봤다. 반면 커스티는 인사마저 소극적으로 나누는 부류였다. - P45

마침내 로리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머리에땀이 흘러내려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오후의 태양은 사나웠다. 그가 커스티를 보고씩 웃자 들쭉날쭉한 앞니가 드러났다. - P45

세 사람은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짐을옮기러 갔다. 줄리아는 짐을 풀다가 참을성을 잃고 말았다. 이건 재앙이라고, 그녀는 울부짖었다. - P48

줄리아는 4년 전을 마지막으로 교회에 가본 적이 없었다. 로리와 결혼식을 올린 후부터는 말이다. 그날을 회상하자, 약속받았던 결혼 생활과는 전혀 다른 신세에 기분이 씁쓸해졌다. - P49

창틀에 수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블라인드가 창틀에 못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창문 너머 햇살 가득한 거리로부터 어떤 생명체도 침입할 수 없도록 막혀 있었다. - P50

상관없었다. 로리에게 장도리를 가져와못을 뽑으라고 시키면 되니까. - P50

줄리아는 이 방이 몹시 꺼림칙했다. 공기가퀴퀴했고, 어둠에 젖은 벽은 축축했다. 로리가이 방이 넓으니 안방으로 쓰자고 우겨도 받아주지 않을 셈이었다. - P51

"하지만 그 방이 제일 넓은데...."
"난 마음에 안 들어, 로리, 방이 너무 축축해, 다른 방 쓰면 되잖아."
"저 망할 침대가 들어갈 수 있다면 말이지." - P52




계절은 남녀가 그러듯 서로를 열망한다.
그래야 과잉에서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55

로도비코 스트리트에서의 삶은 그들의노력에 따라 살만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웃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 P56

로리는 프랭크에 대해 길게주절거렸다. 우울한 내용이었다. 청소년기를 지나자 형제의 앞길이 크게 엇갈렸다며안타까워했다. 프랭크의 방탕한 생활이 부모님에게 안겨준 고통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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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클롭스키가 자유의 여신상의 소비에트 버전을 최초로묘사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 P48

시클롭스키의 묘사에서 차르의 기념비는 아직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고 자유의 기념비는 건설이 완결되지 않았다. - P51

 이 묘사에서 기념비는 내부를 얻게 되는데, 즉 공적공간이 피신처가 되는 것이다. 시클롭스키는 자신의 관점을 "차르와 혁명 사이에 숨는 거리의 아이들의 위험한 게임과동일시하면서 제3의 길, 일시적이고 유희적인 자유의 건축을위한 길을 찾고 있다.³² - P52

역사적인 전환의 국면에 포착된 기념비는 발터 벤야민이 "정지의 변증법dialectic at a standstill" 이라 부른 것을 체현한다. (중략). 즉 그것은 러시아 역사의 다양한 버전이 공존하며 부딪히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틈새를 점유했던 것이다.³³ - P52

시클롭스키의 경구에 담긴 양가성은 작가 자신의 위태로운 정치적 상황을 드러낸다. - P53

본인의 회상에 따르면 고통을 잊기 위해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앞에서 벨리미르 흘레브니코프Velimir Khlebnikov의 시를 암송했다고 한다. - P53

이렇게 해서 시클롭스키의 자유의 기념비는 그가 가장아끼는 장치인 오스트라네니예, 즉 낯설게하기에 바치는 기념비가 되었다. - P54

시클롭스키의 관점에서 낯설게하기는 경탄의 훈련, 세계를 거대한 답변의 무대화가 아니라 질문으로서 사유하기위한 연습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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