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맨은 여자처럼 비명을 지르며 찢긴 바바리를 붙들고 줄행랑을 놓았다. 초아는 그런 바바리맨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보고 서 있었다. 건방이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검법을 배운 애였구나. 어쩐지 분위기가 살벌하더라니." - P62
그때였다. 초아가 얼음처럼 차갑게 소리쳤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거니?" - P63
건방이는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이제와 굽힐 수도 없었다. "흥, 누가 할 소릴? 그까짓 검법 좀 쓴다고 내가 무서워할 줄알아?" ‘그까짓‘이라는 말에 초아는 정말로 화난 듯했다. "감히 내 검법을 모욕해?" - P64
자칭 권법 천재 건방이였지만 기본기를 마스터하기까지 꼬박 이 년이 걸렸다. 오방도사는 "보통 정도의 자질만 있어도 일 년이면 되었을 것을, 쯧쯧쯧." 한탄하고는 했다. 자신의 검을 맨손으로 받아내자 초아의 얼굴색이 살짝 변했다. - P65
6. 대도(大盜) 도꼬마리
"검법을 배운 애가 전학을 왔다고?" 오방도사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한 점 집어 들며물었다. "네. 기다란 연검을 쓰는데, 완전 포악한 기집애예요." - P66
건방이는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오방도사를 바라보았다. "나도 옛날에 검법을 익힌 소저를 사랑한 적이 있었더랬지. 그녀의 이름은 꽃님, 이름처럼 청초하고 아리따운 소저였지. 하지만 검을 휘두를 때만큼은 한겨울 눈보라처럼 매서웠던 꽃잎소저! 그녀와의 첫 만남은 이랬느니라...……." 오방도사는 눈을 갸름하게 뜨며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하기시작했다. - P67
오방도시는 상추쌈을 볼이 미어터지게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대답했다. "간겨그 주디 마" "간격을 주지 말라면, 바짝 붙어서 싸우라고요?" 웅얼거리는 소리로밖에 안 들리는 오방도사의 말을 건방이는 정확히 알아들었다. - P68
한참 먹는 데에 집중하던 오방도사가 건방이의 손목을 가리키며 물었다. "손목은 왜 또 그러느냐?" 건방이는 발갛게 부어오른 손목을 힐끗 내려다보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아까 걔가 내리친 검을 막았더니 이래요. 별로 안 아파요." - P69
오방도사가 뭐가 생각났는지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열었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다만, 널 처음 만났을 때 네가 수검술을익힌 줄 알고 깜짝 놀랐었지." - P69
오방도사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쫙 깔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네 녀석은 분명····." 건방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나 무술에 천부적인 자질을타고 났다. 뭐 그런 말을 하려는 걸까? "이미 금이 가 있었던 벽돌을 깬 게 분명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건방이에게 찬물이 확 끼얹어졌다. - P70
건방이도 지지 않고 말대답을 했다. "나도 사부처럼 못 가르치는 스승은 처음이거든요? 사부 때문에 내 천재성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거라고요." "으이구, 그놈의 건방만 하늘을 찔러 가지고는…………. 그래도 가르치기는 그놈이 재미났었는데" 평상시처럼 건방이를 타박하던 오방도사가 문득 묘한 말을했다. "그놈이요?" - P71
이런 미련하기가 곰 같은 놈, 하는 얼굴로 오방도사가 말을덧붙였다. "상대를 맨손으로 만들란 말이다." 복잡했던 건방이의 머릿속이 단번에 맑아졌다. 역시 사부는사부였다. - P71
안방에서 오방도사의 시조 읊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방이는 미리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캔 식혜를 꺼냈다. 흔들어 보니 사그락사그락 얼음 소리가 들렸다. "오, 퍼펙트!" 건방이는 대접에 식혜를 담아 안방으로 갔다. - P72
"사부, 식혜" 건방이의 말을 못 들었는지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던 오방도사가 평소와 달리 꽤 심각한 표정이었다.
·다이아몬드가 사라진 시각, 전시장에는 백 명이 넘는 어린이 관광객이 몰려 대혼잡을 이루었습니다. 경찰에서는 도꼬마리가 아이로 변장할 수 있을 정도로 몸집이 작을 가능성이있다고 발표했습니다. - P73
7. 한밤의 무술 대결
건방이가 학교 강당 뒤편에 있는 공터에 도착한 시각은 밤12시 정각이었다. 초아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선홍색 무사복을 차려입은 초아는 꼭 영화에 나오는 여검객처럼보였다. - P75
‘상대의 검으로 큰 원을 그린다고 생각해라. 칼에 맞기 싫으면 그 원에서 멀찍이 떨어져 아니면 원의 정중앙으로 파고들어가든지 모 아니면 도, 둘 중 하나야‘
오방도사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울렸다. ‘그래, 모 아니면 도야!‘ 건방이 갑자기 초아의 뒤편을 바라보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 선생님!" - P76
뒤늦게야 건방이에게 속은 것을 안 초아가 서둘러 칼을 휘두르려 했지만 건방이가 한발 빨랐다. 건방이는 초아의 오른쪽손목을 꽉 붙드는 동시에 손에 수석술의 기운을 씌웠다. "이 이거 안 놔?" 초아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용을 썼지만 돌처럼 굳어진 건방이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P77
"야! 내 검 당장 안 내놔?" 초아는 씩씩대며 발을 굴렀다. "괜히 돌려줬다가 또 칼에 맞으라고?" 건방이는 칼날을 매만지며 초아더러 들으란 듯이 혼잣말을했다. "오, 제법 값나가 보이는데? 고물상에 팔면 얼마나 주려나?" - P79
건방이는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오르며 킥킥 웃었다. "우리가 같은 반인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네. 히히, 애간장 좀타게 일주일쯤 갖고 있다가 돌려줘야겠다." 집으로 돌아온 건방이는 연검을 창고에 아무렇게나 던져 둔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방도사는 깊이 잠들었는지 건방이가나갔다 들어왔는데도 기척이 없었다. - P80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오방도사와 건방이는 모처럼 함께 외출했다. 행선지는 점박이 약재상. (중략). 오방도사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잖게 인사를 받았다. 먹는것만 밝히는 푼수 도사가 밖에만 나오면 위엄이 철철 넘치는원로 고수로 탈바꿈했다. 건방이는 오방도사의 이런 이중생활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제자님도 안녕하시고?" "아, 네. 안녕하세요." - P81
누가 보면 평범한 동네 약재상인 줄 알겠지만, 사실 이건 다 위장이었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진짜 품목은 가게 깊숙한 곳에모두 숨겨져 있다. - P81
"이걸 좀 처분하려고요." 건방이는 보자기에 둘둘 말아 온 신통풀 뭉치를 내밀었다. 점박이 아저씨는 반색을 하며 두 손으로 신통풀을 받아 들었다. "아휴, 요즘은 신통풀을 찾는 사람만 많고 들어오는 물량은그에 반에도 못 미쳐서 큰일입니다. 짝퉁 신통풀까지 나돌아 다닌다니까요." - P82
점박이 아저씨는 돋보기를 꺼내 신통풀을 꼼꼼히 살펴보며대답했다. "이 동네일이야, 늘 그렇죠 뭐. 도꼬마리 얘기는 아시죠? 들리는 소문에 도꼬마리가 전설의 ‘팔팔동자(八八童子)라는 말이있어요. 워낙에 신출귀몰한 데다 아이처럼 몸집이 작다는 말도있고 하니까요." "팔팔동자가 뭐예요?" 건방이가 눈을 말똥말똥 뜨며 물었다. 점박이 아저씨는 ‘그것도 모르시오?‘ 하는 얼굴로 조근조근 설명해 주었다. - P83
킁킁거리며 천하장사의 냄새를 맡던 점박이 아저씨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참! 아침에 설화당주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녀갔어요.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설화당주 막내 제자의 검을 훔쳐 갔다고하네요. 누군지 몰라도 그놈은 이제 끝난 거죠." 점박이 아저씨는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오방도사도 ‘허, 그런 일이?‘라는 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맞장구를 쳤다. - P83
"아까 그놈의 인상착의를 그린 초상화를 한 장 두고 갔는데, 그게 어디 있더라?" 점박이 아저씨는 서랍장을 뒤적여 돌돌 말린 종이 한 장을꺼냈다. "아! 여기 있네요." 건방이는 점박이 아저씨가 건네준 종이를 펴 보고 기절할 만큼 놀랐다. 그 종이에는 야구 모자를 꾹 눌러써서 코와 입만 보이는 소년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 P84
오방도사는 할 말을 잃었는지 푹푹 한숨만 쉬었다. "설화당주가 그렇게 세요? 사부도 못 이길 정도로?" 건방이는 스승의 눈치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 P85
"내가 누구냐?권법의 일인자 오방도사가 아니냐? 사실 나도 설화당주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에잇! 모르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걱정 마라 제자야" 건방이는 오방도사의 장담과는 달리 앞으로의 일이 매우 걱정되었다. - P86
8. 오라버니, 아니세요?
(전략). 건방이는 요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초아의 사부가 엄청난 검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건방이는 학교에서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돌아다녔다. 화장실에 갈 때도 보호색을 띈 나뭇잎 벌레처럼 언제나 아이들 사이에 끼어서 다녔다. - P88
건방이는 학교에서 절대로 모자를 쓰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머니맨이라는 걸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는 당황해서 서둘러 모자를 벗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런!‘ 막 교실로 들어오던 초아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 P89
다음 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건방이는 대문에 웬편지가 꽂혀 있는 걸 발견했다. 편지 겉봉에는 붓글씨로 ‘오방도사 귀하‘라고만 쓰여 있었다. 건방이에게 건네받은 편지를 뜯어 본 오방도사는 끙끙 앓으며 자리에 드러누웠다. "아이고 내가 제명에 못 살지, 못 살아! 바보 같은 제자 놈때문에......." - P90
내용은 정중했지만 속뜻은 분명했다. "윽, 한판 뜨자는 거네." - P91
"너무 일찍 왔나?" 건방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설화당주와 초아의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여자랑 만날 때는 원래 십 분 일찍 나오는 게 예의야" 티끌 하나 없는 흰색 명주에 검은 옷깃을 덧댄 학창의를 입은 오방도사는 오늘따라 멀쑥해 보였다. - P91
"이놈아! 지긴 누가 져? 너는 이 스승이 100대 1로 싸워서 이긴 적이 있다는 얘기도 못 들어 봤느냐?" (중략). "뻥이라니! 이 스승을 뭘로 보고. 한때는 나도 암흑가를 주름잡고 살던 시절이 있었더니라 돌아가신 스승님의 유언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신통풀이나 캐며 살진 않았을 게다. 싸움박질은 그만하고 수련이나 하면서 조용히 살라고 하셨지" - P92
"그동안 얼마나 심려가 크셨습니까? 이 몸의 제자가 아둔하여 벌인 일이니 너그러운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방도사는 건방이의 머리도 함께 찍어 누르면서 조그맣게소곤거렸다. (중략). "이 녀석아! 안 싸우고 이기는 게 제일 센 거야!" - P93
"호, 혹시..... 꽃님 소저?" 갑자기 오방도사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방도사의 눈은 너울 속에서 드러난 설화당주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설화당주도 오방도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크게 놀란 얼굴이 되었다. "아니..... 방이 오라버니 아니세요?" - P94
"이렇게 살아서... 소저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소저는예전 모습 그대로구려." 설화당주가 열아홉 소녀처럼 얼굴을 붉혔다. "오라버니야말로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건방이와 초아는 하도 기가 막혀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P94
9. 가면을 쓴 아이들
(전략). 어젯밤, 결국 날밤을 새 버렸다. 이십년 만에 재회한 오방도사와 설화당주는 체육관 근처의 벤치에 앉아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니까 일이 어떻게 된 거였냐면, 설화당주와 오방도사는 서로 죽은 줄 착각하고 이름도 바꾼 채 수련에만 몰두하여 각각 권법과 검법의 고수가 되었고 운명의 재회를 하게 되었다. 뭐 대충 그랬다. - P97
건방이와 초아의 눈이 딱 마주쳤다. 초아가 눈에 쌍심지를켜고 건방이를 노려보았다. 복수할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가그게 틀어지자 심사가 단단히 꼬인 것 같았다. 더욱이 설화당주는 전후 사정을 알고 도리어 초아를 꾸짖었다. "우리 초아가 먼저 시작한 줄도 모르고………… 미안하구나늘그막에 들인 제자라 너무 오냐오냐해서 버릇이 없단다. 건방이라고 했지? 다친 데는 괜찮으나?" - P97
그리고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 오방도사가 신신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자야, 그 초아란 애한테 무조건 잘못했다 빌고 화해하거라. 뭐? 이유? 그 애가 꽃님 소저 제자라는데 무슨 이유가 더필요하단 말이냐! 앞으로는 초아한테 잘해! 안 그러면 이번 금강산에 갈 때 떼어 놓고 갈 테다." 건방이는 어쨌거나 초아랑 화해하기로 마음먹었다. - P98
갑자기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뭔가 싶어 돌아보니 뒷문 쪽에앉은 호길이가 건방이를 잡아먹을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엥? 왜 저러지?‘ 건방이는 당황해서 자신이 호길이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일을 했는지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건방이는짐작조차 안 갔다. 하기야 둔해 빠진 건방이는 초아가 전학 온 첫날부터 호길이의 태도가 이상해졌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 P99
"어머, 네가 그렇게 태권도를 잘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호길이 정도는 일 분 안에 이길 수 있다니 믿기 어려운걸?" 초아는 말하는 도중 호길이에게 슬쩍 시선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호길이의 얼굴이 단숨에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뭐? 내가 언제......" 건방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뒤늦게야 도끼눈을뜨고 있는 호길이를 보고 상황 파악이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내가 저 백여우 함정에 걸려들었구나!‘ - P10
"그럼 나랑 맞짱 한번 뜨든가." 건방이는 좋은 말로 호길이를 진정시키려고 일단 자리에서일어섰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건방이의 웃음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 버렸다. "지금 비웃냐?" 호길이는 일그러진 얼굴로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렸다. 건방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피했다. 오랜 수련으로 몸에 익은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 P101
‘어쩔 수 없겠어. 그냥 맞아주는 수밖에건방이는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호길이가 다시 주먹을 날렸다. "으억" 건방이는 배를 움켜쥐고 최대한 과장하며 나가떨어지는 시늉을 했다. 보기에는 심하게 넘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바닥에 닿는 순간, 낙법을 살짝 응용해서 실제로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 P102
"우아, 책장이 찌그러졌어!" "건방아, 너 괜찮아? 피 안 나?"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건방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거 골치 아프게 됐네.‘ 건방이의 의도와는 달리 상황이 점점 더 난처해졌다. 그때 누군가 건방이를 부축해 일으켰다. "다행이다. 저게 원래 찌그러져 있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큰일날 뻔했어" - P103
건방이가 자신의 소매를 눈여겨보는 걸 느꼈는지 면상이가 부축했던 손을 휙 떼어 냈다. 그러고는 호길이를 향해 말했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폭력을 쓴 건 잘못된 거야 건방이에게 사과해" 면상이의 말에 호길이는 몸을 흠칫 떨더니 건방이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미, 미안하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 - P104
10. 숨겨진 과거
"제자야, 꽃님 저 집에 좀 다녀와야겠다." "거긴 왜요?" 건방이는 뜨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서찰을 전하고 오너라 - P106
오방도사가 그려 준 약도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샌가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들어섰다. 건방이는 설화당주의 집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우아아, 청와대가 따로 없네." - P107
"다시는 제자를 들이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설화당주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실은 전에 오라버니가 제자로 삼은 아이가 있었단다" "네?" 뜻밖의 말에 건방이는 눈을 크게 떴다. 설화당주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 P108
"벌써 이십 년 전의 일이란다. 너보다 한두 살 많은 사내아이였는데 하나를 알려 주면 열을 알 정도로 영민해서 방이 오라버니가 무척 아꼈단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어쩌다 변면술(變面術)이라는 잡술(雜術, 사람을 속이는 간사한 술법)에 빠지게 되면서......." " "변면술이요?" "그래. 얼굴 형태를 바꿔서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술법이란다. 그 아이는 변면술을 이용해 좀도둑질까지 했어. 방이 오라버니의 노여움은 말도 못할 정도였지. 그만큼 믿고 사랑한 제자였으니까" - P109
"건방아, 너는 어쩌다 방이 오라버니의 제자가 되었느냐?" 건방이는 설화당주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일, 보육원에 가기 전 비밀의 집에서 오방도사를 처음 만난 일, 그리고 수습 제자를 거쳐 오방도사와 함께 살게 된 사연까지 모두 다. 사실 그 얘기는 아무에게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설화당주 앞에서는 거침없이 술술 나왔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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