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은 : 시간 - 프루스트의 서재, 그 일년의 기록을 통해 되찾은 시간
박성민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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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좀 가볍게 시작해 보고자 집어든 책이었다.

예상하시는 대로 뭐 그닥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남편을 베고 누워 이 책을 읽던 나는 갑자기 속수무책으로 밀려오는 눈물을 참으려고 '흡~!'하고는 숨도 같이 참다가는,

얼마 참지 못하고 이내 '꺼이 꺼이~'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나의 베개가 된 채로 남편은 '생활의 달인'이라는 텔레비전 프로를 시청 중이었는데 연말 대상을 뽑고 있었다.

 

맨손으로 구두를 닦는, 인쇄소에서 달력을 만드는, 이삿짐을 나르는 달인 따위가 나오는데도 남편은 무덤덤하게 보고 있었는데,

평범해보이는 책을 읽던 내가, 그것도 책을 집어들어 시작하자마자 대성통곡을 하니,

남편은 놀란 토끼눈이 되어서 벌떡 일어난다.

내가 선견지명이 있어 쇼파 위에 누웠으니 망정이지,

마룻마닥에서 그리 되었다면 뒷머리가 깨지던지, 혹이라도 났을 상황이다~--;

"너어무 감동적이어서...으허억~ㅠ.ㅠ"

내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빼앗아 들춰보던 남편은,

"뭐 하나 울만한 내용이 없구만~(,.)"

하고는, 나를 향하여 '그럼 그렇지' 하며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해보인다.

 

책을 펼치자마자 눈물을 흘린게 좀 민망하긴 하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슬프거나 아픈 내용을 만났을때만 눈물을 흘린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힘주어 얘기하겠다.

다른 사람이 봤을때는 별것 아닌 내용이어도, 감동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수도 있는 것이고,

감동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데, 맹숭거리는 무덤덤한 영혼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내가 감동의 눈물을 흘린 까닭을 굳이 설명해 보자면 이렇다.

 

'이천십오년 일월 이일'날의 일기로 이 책은 시작한다.

그날의 일기 제목은 '생존 일기'인데,

첫날의 느낌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갔다.

'간판을 달지 않아서 사람들이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12쪽)' 라는 말이 눈에, 그리고 마음에 콕 들어와 박혔었는데,

15쪽의 사진에 간판이 보였다.

다음장으로 책장을 넘기자마자 이런 일기가 나오는데,

무심코 책장을 넘겨 아래 일기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그리되었던 것이다.

내용을 옮겨보자면 아래와 같은데, '양철나무꾼'이라는 단어 때문은 결코 아니다, ㅋ~.

 

이천십오년 일월 칠일

간판

 

간판을 달았다. 양철나무꾼이 심장을 단 기분이랄까. 아

버지가 만들어주신 간판이라 더 마음에 든다. 내가 코흘

리개일 때부터 간판 일을 해오셨던 아버지가 훗날 제 자

식의 간판을 달 줄 알았을까.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나셨

지만 대충 만든 것 같아도 달고 보면 멋지다. 장인의 손

길은 쉽게 녹슬지 않는다.ㆍㆍㆍㆍㆍㆍ(이하 생략)

 

적절한 설명이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

난 저 짧은 문장들로미루어, 그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읽을 수 있었고,

저런 사람이라면 책도, 고객도 어떻게 대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이자 '프루스트의 서재' 주인장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군대 제대 후 헌책방에서 온라인화 작업을 하고,

대형 서점에 취직도 하지만,

정작 자신이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자,

자신이 쭈욱 살아온 동네에 작은 책방을 냈다.

 

책 날개 안쪽 지은이 소개에 '때로는 아껴 읽은 책이 팔릴까 살짝 눕혀놓기도 한다.'는데, 귀엽다.

 

서점을 낸지 25일 후의 일기 제목은 '제자리'이다.

난 '은교'를 책으로 읽다가 던져버린 이력이 있는지라, 영화로는 보지 않았다.

이천십오년 일월 이십칠일의 일기에 보면,

'은교'라는 영화를 보면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은 그것의 고유한 자리이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장면이 있단다.

이 글을 보니 읽던지 보고 싶어진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류의 책은 아니었다.

타인의 독서 일기를 즐겨읽고,

거기에 소개된 책들로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즐기는지라,

작은 동네 책방 사장님의 독서일기인줄 알았다.

작은 동네 책방 사장님의 일기는 맞는데, 독서일기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독서일기보다는 훨씬 힘이 세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라니까 말이다.

 

이 책의 초반부를 읽을 즈음만 해도, 나도 이런 작은 책방을 해볼까 하는 욕심이 있었는데,

이 책을 다 읽은 후 욕심을 접었다.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원하는 대로 의욕적으로 활동해 나갈 수 있게끔 건강하시라.

그럼 번성은 더딜지 몰라도 당연한 수순일게다.

 

책방 사장님이라고 하여, 전문 작가가 아니라고 하여,가볍게 생각할 건 아니다.

글이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 간결할 뿐더러,

특유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알라딘 서재, 이 동네에 그런 문체를 구사하시는 매일 단문의 일기를 쓰시는 누군가를 닮았다.

누가 누구를 닮은 건지는 내겐 중요치 않은 일,

당신들의 상상과 판단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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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7-01-02 18:50   좋아요 1 | URL
언니 이름만으로도 넘 반가워요

양철나무꾼 2017-01-03 18:56   좋아요 2 | URL
저도 님 이름만으로도 방가와요~^^
잘 지내시죠?
새해 인사가 늦었네요, 꾸벅~(__)
요즘은 좀 게을러져서 말예요,
제 서재에 들리시는 분들 위주로 답방을 다니다보니, 비껴가게 되네요~--;
남매 많이 컸겠네요~^^

하늘바람 2017-01-02 18:50   좋아요 1 | URL
새해엔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셔요

프레이야 2017-01-02 19:17   좋아요 1 | URL
간판 아주 멋집니다. 책도 소개 페이퍼도요. 담아가요. 나에게 안부를 묻는 일을 한동안 소홀히 한 것 같아요. 새해 벌써 둘째날이 저물어 갑니다.

양철나무꾼 2017-01-03 19:01   좋아요 1 | URL
살아가면서 한숨 쉬어 갈 수 있는 것도, 내 자신의 안부를 묻는 것도...꼭 필요한 일인데,
저는 저 나이때는 생각 못했던 것 같아요.
저렇게 착실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부자되는 일은 당연한 일인데,
밥벌이의 지난함을 자꾸 얘기하게 하는게 안타까웠어요.

님은 새해 일기 쓰셨나요?
자신의 안부를 묻는...

저 실은 님의 글이 고파요~(속닥~``)

푸른희망 2017-01-02 19:57   좋아요 1 | URL
일기란 스스로에게 안부를 묻는 일
참 좋은 말이네요
올해는 부지런히 기록을 남겨야지 하는데 벌써 둘째날이 지나고 있네요~~

양철나무꾼 2017-01-04 09:56   좋아요 1 | URL
스스로에게 안부를 묻는다는 것
그게 글이 됐든 그림이 됐든 음악이 됐든 어떤 형태를 띠더라도,
좀 번거롭긴 한데, 효과는 참 큰것 같아요.

작심3일의 마법이 풀리는 1월4일입니다, ㅋ~.

cyrus 2017-01-02 20:10   좋아요 3 | URL
아무래도 일기는 꾸준히 쓰지 못할 것 같지만, 알라딘이 망할 때까지 책과 관련된 독서일기는 계속 쓸 수 있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7-01-04 09:59   좋아요 1 | URL
네, 님의 꾸준함은 제가 책임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님과 저는 2010년에 알라딘 서재를 시작했죠?
알라딘 서재 동창생입니다, 2010학번, ㅋㅋㅋ~.
이곳 서재에 님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해피북 2017-01-02 21:17   좋아요 2 | URL
‘일기를 쓴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에게 안부를 묻는 것‘이란 표현이 좋아서 몇번씩 읽었어요. 남편분을 베개삼아 꺼이꺼이 우셨던 일, 잠깐이나마 책방의 주인을 꿈꾸셨다가 살짝 포기하신 일화등.. 양철나무꾼님의 글은 설명 할길없이 다 공감가고 글자마다 다 느껴지는 그런 글들이 많아서 자주 들여다보고 싶어집니다. 으흐흐~ 진심도 너무 드러내면 느글느글 느끼해지는데... 오늘 너무 느끼한 댓글을 달았어요 ㅋㅋ 그래도 참아주실꺼죠?(아! 그리고 저는 심지어 나루토 보고도 눈물을 뚝뚝 흘려서 신랑한테 혼이난기도 한답니다. 혼난다기보다는 ‘그러면 그렇지~‘ 그 표정으로다가요^~^)

양철나무꾼 2017-01-04 10:12   좋아요 1 | URL
어렸을때 장래희망이 되게 여러개였는데, 그 중 책방주인이 꼭 들어갔습니다.
좀더 커선 북카페 같은 거.
로망이긴 하지만, 그 꿈을 자주 포기하는건 제가 세파에 물들고 찌들었다는 얘기기도 하죠.
이리저리 재고 가늠해보고 하는거죠~^^

저 니글니글 좋아요, 제이슨 데룰로 같은 거, ㅋ~.
마이 사랑합니다~♥

blanca 2017-01-02 21:44   좋아요 2 | URL
저도 이 책 참 담백하니 좋았어요. 밥벌이와 희망과 소망을 나란히 한데 녹이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고독한 것인지가 와닿았던 책이고요. 집에서 아주 멀지는 않은 것 같아 딸과 함께 가보려고 마음만 계속 먹고 있는 중이랍니다.


양철나무꾼 2017-01-04 10:15   좋아요 1 | URL
우와~^^
저는 장황하게 설명한걸,
‘희망과 소망을 나란히 한데 녹이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고독한 것인지가 와닿았던 책이고요.‘라고,
책처럼 담백하게 한 마디로 끝내주시는 님 좀 멋지십니다~^^

저는 야나 님의 ‘야나문‘도 아직입니다.
프루스트의 서재도 마이 궁금하지만, 야나문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ㅠ.ㅠ

AgalmA 2017-01-03 19:21   좋아요 2 | URL
20대 초반에 친구 두 명이랑 셋이서 방 한 칸짜리 옥탑에서 살 때 나만의 공간이 없어서 그게 제일 스트레스였죠. 폐쇄공포증도 있고 답답한 걸 못 참는 성격이어도 사정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있나요. 주말에 옥상에 간이 탁자 내다놓고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보는 게 낙이었죠.
지금은 내 책, 내 컴퓨터 책상, 내 물건으로 가득한 집에 살지만 물건들이 점거했다는 기분^^; 특별한 나만의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늘 들어요. 2017년엔 고심 좀 해봐야겠어요.

양철나무꾼 2017-01-04 10:40   좋아요 1 | URL
저는 신혼 초기부터 남편이 사업을 세번 말아잡수셔서, ㅋ~.
반지하랑 옥탑방은 아니어도 단칸방에서도 살아보고 월세에서도 살아봤습니다.
단칸방은 말은 좋아서 원룸이었지만, 문만 열면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열린 구조였죠.
결혼하면서 해간 살림살이가 들어가지않아서 이삿짐센터에 보관하기도 해봤어요.
이제는 돌아보고 추억이라고 웃을 수 있는 걸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는 물건들이 가득 들어찬 집에서 살지만,
버리고 비우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