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르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찍어선 안될 게 있단다.
봄의 꽃,
여름의 비키니,(여름 바다,ㅋ~.)
가을의 단풍,
겨울의 눈이 그것이다.
얼마전 성묘를 다녀오는 길에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더없이 좋아서 디카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툴툴거리자,
아빠가 "넌 아직 젊었구나..."로 시작하는 좀 슬픈 말을 하셨다.
"사진을 찍는 건 순간을 포착해서 두고두고 간직하겠다는 건데,
이 나이가 되면 앨범을 다시 들춰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따위는 안해.
그냥 이 순간을 즐기고 감동하면 그만이야..."
그리고 이런 말들도 생략됐을지 모르겠다.
'죽은 다음엔 아무 소용 없어.
장례를 치르고, 제사나 차례를 지내고...다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거야.
사진도 마찬가지지... 남아있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세상 모든 것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아빠에게 필요한 건 '또, 나중에, 다음에...' 따위의 말이 아니라...지금 이 순간의 허름한 실천, 소박한 공감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봤다.
영화는 예상대로 꿀꿀했다.
파지를 줍는 할머니, 우유를 배달하는 할아버지, 주차요원인 할아버지,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등장하고,
이 꿀꿀함에 약방의 감초역할을 하는 웃음 만발 조연들도 등장한다.
(영화의 흐름상으론 등장하지 않아도 그만이었을 것 같다,이 웃음 조연들 때문에 슬픔에 침잠할 수가 없었다~ㅠ.ㅠ)
한쌍의 부부와, 한쌍의 연인이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이 부부와 연인에 공통의 수식어를 달자면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는 정도가 될까?
반면, 어떤 대비를 통해서 부부와 연인의 차를 극명하게 한다.
아내와 부부가 됐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가족'이 됐지만, 그 아이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이제 다시 '부부'가 됐다는 말이 참 씁쓸했다.
부부의 그것과 달리, 만석과 이쁜의 그것이 애틋하고 아름답지만 로맨스로 끝나는 것은, 서로의 죽음을 지켜볼 용기가 없어서 였으리라.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그때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다'는 군봉의 말에 조순이 할머니는'당신은 주고 난 받기만 했는데 어떻게 또?'라고 대답한다.
부부는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 만이 아니고, 상대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객관화한다는 것은 남의 얘기가 됐을땐 쿨하고 멋질 수 있지만,
당사자의 현실이 됐을 때는 참 모진 얘기이기도 하다.
인생이란, 나이듦이란...때론 사진찍기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듯이,
나이가 들수록 삶에 적당한 거리두기 - 관조가 필요해 진다.
나는 이 적당한 거리두기, 이른바 관조를 참 매력적인거라고 생각하여 자꾸 삶에 적용하려고 했었다.
그런 나를 향하여 아빠는 "넌 매사를 뒷짐지고 바라보려 하지, 흠뻑 발 담그려 들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하신다.
"나이를 먹으면 싫어도 별 수 없이 실컷하게 되니 서둘 게 없다."는 말씀을 하실 땐 씁쓸하게 웃으셨던 것도 같다.
뒤로 한걸음 물러나 바라봐야 할 시간, 허우적거리면서라도 뛰어들어 몸으로 태우며 살아야 할 시간이 따로 있나보다.
강풀의 감동적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담게 어록을 만들어야 할 만큼 멋진 대사들이 등장한다.
멋진 대사들이지만 곱씹어야 할 대사들이기도 했다.
"우리 나이쯤엔 여자한테 '당신'이라는 말은 말야, 여보 당신 할때 당신이야. 당신이라는 말은 못 쓰지. 내 먼저 간 당신에게 예의를 지켜야지...그대...그대를 사랑합니다..."
"우리나이 때는 죽는 게 어색하지 않을 나이야."
"호상 호상하지말란 말야 이 새끼들아...사람이 늙었다고 죽으면 다 호상이야?늙어서 죽으면 다 호상이냐구! 군봉이 자네보고 호상이래...자네 보고 호상이래..."
"익숙해질거야, 산다는 게 익숙해지는 일이지 않나?"
사랑을 한다는 것과 살아낸다는 것은 어쩜 또 다른 얘기리라.
뭔 놈의 봄날이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다.
뭔 놈의 봄비가 맨날 이렇게 추적거리는지 모르겠다~...라고 쓸려고 보니까 구름 사이로 내비친 햇살 한줄기에 가슴 벅차다.
이젠 더 없이 좋은 풍경을 만나면 사진기를 들이댈게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즐겨야 겠다.
내게 일출보다 황혼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나도 일출보다는 황혼에 이미 가까워져서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