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가 가고 있다.
아까워서 곱게 모셔 놓았던 시간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 기분이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곱게 모셔 두기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올해는 뭔가 시간들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이것저것 궁리했던 한해였는데 말이다. 


 

 

 

 헬로우 고스트
감독 : 김영탁
주연 : 차태현, 강예원 
제작/배급사 : 워터 앤 트리




한해를 마감하며 이 영화를 보았다.
개연성의 잣대를 들이대면 한없이 찌질해져 버리지만,
가족에 코드를 맞추면 얼마든지 따뜻해질 수 있는 영화이다. 

"몸에 힘을 빼. 그러면 자연히 떠오르게 돼 있어." 

힘들고 지칠 때, 또는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겠을 때...차라리 힘을 빼고 내려 놓으면 삶이 한결 가벼워 질 것 같다. 

난 좀 찌질한 게 맞나 보다.
이상한데 필이 꽂혀 연연했었는데, 뽑기 트럭에서 왕 큰 물고기를 뽑은 것과 관련해서 이다.
"내가 뽑기 장사 40년 하면서 이건 처음 꺼내 보네."
라고 하며 물고기를 내어 주는 데 말이다.
그럼 그 물고기는 40년 전에 만든 거란 얘기다.
그걸 어쩜 천연덕스럽게 맛있게 먹어댈 수 있을까?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
 신정근 지음 
 21세기북스(북이십일) 
 



 
책은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을 마침내 다 읽었다. 
음,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도덕 교과서를 읽는 기분이었다. 

얘기의 주제는 고생 왜 하나? 가족이 있으니까.
가족이 있으니까 고생도 행복하다. 이 정도... 

공자, 맹자가 자주 등장하는 걸로 미루어 입신양명의 색채를 지울 수 없지만,
저자 또한 이 땅의 남자인 걸 어쩌랴.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커다란 임무를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들의 심지를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힘들게 하고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몸을 헐벗게 하여, 그들이 하는 것이 해야 하는 것과 어긋나도록 한다. 왜냐하면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움직이고 성질을 참고 견뎌서 그들이 '할 수 없다' 또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제로 잘 해낼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맹자,고자 하편>에 나오는 말, 170쪽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개고'는 단순히 삶이 괴롭다는 뜻에 한정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내'가 없는데도 더 많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면 만족할 수도 없고 충분하지도 않고 괴롭기만 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물건을 놓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모아서 세게 움켜쥔다. 움켜려고 하는 만큼 힘도 든다. 하지만 손바닥을 올려 놓아보라. 쥐지 않아도 손바닥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 이처럼 되지 않는 것을 하려고 하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이런 점에서 불교는 사람이 근원적으로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있다는 것을 일체개고라고 말하는 것이다. 괴로우니까 사람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보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은 괴로움의 저편에 넘어서려는 바람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것이리라. 즉, 영원히 괴로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우울하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우니까 한시바삐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186쪽) 움켜지려고->움켜쥐려고 

부자를 목표로 삼을 수 있다면 차를 모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부자가 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려고 한다. '술이'중에서(262쪽) 

이 쯤의 예문으로 알 수 있듯이, 원전을 우리말로 해석해 놓는 품이 훌륭하다.
그리고 어려운 불교 용어도 쉽게 설명해 놓는다. 

저자의 해석은 우리에게 지친 서로를 부퉁켜안을 힘을 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라스트 코요테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년 12월



끝으로 영혼이 외로운 남자, 해리보슈 아저씨가 올해를 마감하며 등장하셨다.
사실 콘크리트 블론드 이후, 해리보슈 시리즈는 잠깐 쉬어가려 했었다.
그런데, 역자 이창식 님의 평이 너무 멋지구리 하여...장바구니에 홀라당~
1월4일 배송 예정이다.
해리보슈로 한해를 마감하고, 해리보슈로 한해를 시작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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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2-31 09:24   좋아요 0 | URL
순전히 늑대를 보고 싶은 마음에 친구를 불러서 서울대공원에 갔던 적이 있어요. 저는 맹수가 좋거든요. 사자, 호랑이, 늑대. 그런데 마지막, 마이클 코넬리 책의 표지를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저 표지속 맹수는 코요테겠죠?

양철나무꾼님.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유로 찌질한것 같아요. 우리는 찌질하고, 그 찌질함을 알고 있죠. 그런데 그 찌질함을 보이는것이 싫어서, 누군가 내가 찌질한 걸 알게 되는게 싫어서 감추려고 하는거죠. 찌질하지 않은척. 그러나 타인에게 아무리 감춰도 본인은 알고 있잖아요.
저 역시 어제 나는 왜이렇게 찌질한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침대에 누웠어요. 그러나 내가 왜 찌질한지 오랜 시간 고민해봐도 답이 안나와요. 생각해봤자 찌질이 안찌질이 되지는 않더라구요.

해리보슈로 한해를 시작하게 될 양철나무꾼님,
저도 오늘은 누구의 책으로 한해를 시작하게 될지 조금 고민해봐야 겠어요.

양철나무꾼 2011-01-05 03:06   좋아요 0 | URL
너무 늦게 댓글을 달려니, 거시기 한걸요~

저는 찌질한 제 삶 또한 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삶의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이 맘에 들 때도 있지만,
찌질한 제 삶이 엄원태의 '아픈 무릎'인 듯 하여 어루만져 줄 때도 있어요.

각자 다른 삶들을 살아가고,
그 각자의 삶도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기도 할 거예요.

예전엔 나의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만을 내보이고 싶어 했는데,
이젠 찌질한 제 삶도 내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내어놓아야 뽀송뽀송 반짝반짝하게 만들 수 있을 텐까요~

다락방님은 한해를 어떤 책으로 시작하셨을까요?^^

마녀고양이 2010-12-31 09:41   좋아요 0 | URL
좋은 말이네.. 몸에 힘을 빼.
마지막 날이당.. 그져. 신기하다. 2010년 마지막 날이라는 곳에 도달했다니. 그져.

양철나무꾼 2011-01-05 03:07   좋아요 0 | URL
마지막 날 댓글에, 새해를 닷새나 지나서 댓글을 다네요~
새해를 멋지게 시작하셨겠죠, 마고님?^^

마노아 2010-12-31 10:42   좋아요 0 | URL
저도 40년된 잉어 생각했는데...ㅎㅎㅎ 실제로 저거 파사니는 분이 그렇게 큰 잉어가 있나 막 궁금하고요. 영화를 위해서 특별제작했나 싶은 사이즈였어요.
한 해를 마감하는 담담한 얼굴이 보여요. 왠지 찐하게 포옹을 하고 싶어지는 걸요.
양철나무꾼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

양철나무꾼 2011-01-05 03:11   좋아요 0 | URL
저는 그 큰 잉어 아니고도...
길거리 초등학교 앞 가끔 지나다가 그 트럭 볼 때 있었거든요.
그럼 거기 커다란 용이나 칼, 이딴 것들 만들어진지 얼마나 됐을까 궁금했었어요.(울 아들 초등학교 때)
저 근데,뽑기 엄청 좋아해서...한창 유행할때 세트로 구매했었어요.

우리 함 찐하게 포옹해 보지구요.
한 해를 담담하게 마감하고 또 한 해를 담담하게 맞이하는 사람들 끼리~^^

stella.K 2010-12-31 10:57   좋아요 0 | URL
요즘 저 영화가 재밌는가 본데 날씨도 춥고,
길도 미끄러울 것 같아 모든 게 스톱된 상태입니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먼 것을 생각하면 좌절입니다.
저 고생학은 책이 잘 나왔다는 느낌인데 생각보다 별로인가 봅니다.
저는 요즘 <식품주식회사>를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아마도 새해 첫 완독책이 될듯 싶어요.
그리고 올해 마지막 완독책은 <독고존>이고.
마무리 잘하라는 말보다 새해를 잘 맞이하란 말씀을 드리는 게
지금으로선 나을 것 같군요.
새해 복 많아 받아요.^^

양철나무꾼 2011-01-05 03:14   좋아요 0 | URL
눈도 좀 녹고...이젠 보셨으려나?^^

저 고생학 책은 잘 나왔는데...도덕 교과서 같아요.
옷으로 치자면,목 위까지 단추 꼭꼭 채워 입은 단정한 윗도리 같은 느낌이요.

님도 새해를 멋지게 시작하셨겠죠?^^

프레이야 2010-12-31 12:20   좋아요 0 | URL
몸에도 감정에도 힘을 좀 빼고 느슨하게 살고 싶어요.
완충지대도 스스로 만들어서요.
양철나무꾼님 한 해 동안 좋은 글 참 좋았어요.
고마워요.^^

양철나무꾼 2011-01-05 03:15   좋아요 0 | URL
완충지대를 스스로 만들라는 말, 교훈처럼 새겨 가질려구요.
제가 오히려 감사드려야죠~^^

저절로 2010-12-31 14:10   좋아요 0 | URL
저는 몸에 힘도 빼고 살도 빼야해요!

양철나무꾼 2011-01-05 03:17   좋아요 0 | URL
저는 전부 다 빼고 줄여야 해요!
좀 가뿐하고 간소하고 좀 부족하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왜 움켜쥐고 놓지를 못하는 것인지, 원~ㅠ.ㅠ

cyrus 2010-12-31 18:51   좋아요 0 | URL
다른 알라디너분들 서재에 들리고 있는데 다들 마무리 글들
다 멋있게 쓰시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고 건강한 새해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1-01-05 03:19   좋아요 0 | URL
바지런 하신 cyrus님~
새해를 벌써 멋지게 시작하셨겠죠~^^

새해 원하는 모든 일들 이루시는 한해 되세요~

2010-12-31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5 0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1-05 03:24   좋아요 0 | URL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죠~!!!

비로그인 2011-01-01 14:59   좋아요 0 | URL
지난해는 그야말로 양철나무꾼님의 해였네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좋은 글도 많이 올리시고 이렇듯 친구분들도 많이 사귀셨으니 말예요 ㅎㅎ
새해에도 늘 건강한 하루하루 보내시고 이곳 서재에서도 여전히 맹활약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1-05 03:29   좋아요 0 | URL
저의 해라니...좀 쑥스럽기도 하지만,
이렇게 많은 좋은 친구분들을 사귀었다니...신나는 일이기도 해요.

후와님도 늘 건강한 하루하루 보내시고요.
후와님도 저도...한밤중에 이렇게 불침번 노릇 하지 말아야 할텐데 말예요~^^

비로그인 2011-01-01 21:00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첫날인데 벌써 스트레스 받을 일들이 생기는군요.저도 [시코쿠를 걷다]를 읽고파요. 마음이라도 걷기 여행을 떠나고 싶은.. ㅜㅜ

2011-01-01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5 0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1-01 23:48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 님...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시고, 마음이 따뜻해 지는 글을 많이 읽게 해 주시길...
그리고... 아프지 마세요.
이제 나이가 슬슬 여기저기 아프고, 몸살 날 연배가 되어가시니까 말이죠. ^^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

양철나무꾼 2011-01-05 03: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님도 새해 건필하시고, 멜랑꼬리한 글도 가끔 읽게 해 주시고요.
그리고 건강하시구요.
시특강을 하시는 막중한 사명을 갖고 계시는 분이잖아요.
뜸하면 걱정 돼요~^^

감은빛 2011-01-04 20:58   좋아요 0 | URL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시간들
한웅큼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손은 비어있네요.
몸은 분주하나 마음은 텅 비어있는 것 같은 요즘입니다.
그래도 남들 다하는 새해 인사는 한번 할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양철나무꾼 2011-01-05 03:39   좋아요 0 | URL
전 나이 한살 더 먹기 싫어서 떡국도 아직 안 먹은 사람이예요.
새해 인사는 다 반사해 버리고,ㅋ~.

텅 비어서...샛털처럼 가벼워서...함 날아봤으면 좋겠어요.
님도 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 또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