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슬픈 일인데, 우리가 상상력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나은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 믿음 같은 것이 적어요. 그래서 만날 '우리 현실에서 이것만 해도 어딘데'라는 생각이 지배해요. 개혁이라는 것이 진보의 기초적인 부분과 겹치기도 하지만, 개혁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진보를 가로막기 위해 사회를 좀더 합리화하는 데 있죠.상상력이 없으니 그 부분을 놓치게 되는 거죠.개혁이 갖는 소박하고 진보적인 경향에 너무 감사하는 거예요. '이것만 해도 어딘데'하면서.그것은 어리석은 게 아니라 착한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 착함 때문에 지금 된통 작살이 나는 거죠.누가 어떤 놈이 밟았는지도 모르는 채 삶이 너무 고달파지는 거예요.그래서 "에이,이제 진보고 개혁이고 뭐고 싫고 무슨 사회,이념도 다 싫다.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이야. 이명박이 제일이야"하는 식으로 가는거죠. 이명박은 디지털 시대를 토목건설로 해결하려는 몽상가인데 어떻게 된 게 이 사람이 가장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렸죠. 이것은 대단한 역사적 반동인데, 정말 슬픈 일입니다.
개혁이 실패했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그야말로 대성공을 한 셈이죠.개혁의 목적은 진보를 가로막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번 선거에도 벌써 정대화 같은 분들이 모여서 "그래도 수구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개혁 세력이 민주노동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제는 진보개혁세력이라는 말도 버려야죠.그 말 때문에 망했는데요.<한겨레>나 <경향신문>같은 데서 여전히 그 말 쓰는 걸 보면 정말 한심하죠.
<하나의 대한민국, 두개의 현실>135쪽 '김규항'편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한 <진보집권플랜>을 읽는 내내,
오지랖 넓은 아즘인 내가 고민한 건 '진보가 개혁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하는 문제였다.
'다시 불꽃을 피우기 위한 신명 프로젝트'라는데, 것도 좀 시큰둥하였다.
날 이 책으로 인도한건 '오연호'였지만,
가끔 아침 시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듣던 '조국'의 이상향에 대한 단호함도 한몫하였다.
오연호 결국"진보가 지금 나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줘야 한다는 말이군요. 그동안 진보ㆍ개혁 진영은 그런 질문을 하는 대중에게 "치사하게 지금 밥이야기나 하느냐"는 식으로 무시해버린 점도 없지 않죠.
조국 그렇죠.이명박 정권이 추구하는 정신을 풀어보자면 이런 겁니다."인권이 밥 먹여주냐, 민주화가 밥 먹여주냐, 진보가 밥 먹여주냐." 그에 대해서 진보ㆍ개혁 진영은 주로 "밥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라고 답해왔습니다.
맞습니다. 밥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런데 부족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한 게 아니에요. "진보는 밥 먹여줍니다" 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어떠한 방식으로 밥을 만들고,어떠한 방식으로 밥을 나눌 것인지를 얘기해야 한다는 겁니다.(37쪽)
조국 제 개인 경험을 들어 말씀드린다면, 제 친구, 지인들은 크게 네 가지 그룹으로 나뉩니다. 생각이 진보적이고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 생각은 진보적인데 인간적으로 싫은 사람, 생각은 보수적인데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 생각이 보수적이고 인안적으로도 싫은 사람입니다.이념, 가치의 문제와 인간의 문제는 항상 일치하지 않거든요. 과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도덕적 우월감을 내비치거나, 상대방과 소통하기보다 가르치고 지시하려 한다면 좋아하는 사람이 없겠죠.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그 사람의 고민과 처지를 인정하면서 조금씩 소통하게 되면 서로 인간적 신뢰가 쌓이게 됩니다.(42쪽)
그가 제안하는 '진보 집권 전략'은 어찌보면 멋진 프로포즈이다.
섬세하고 낭만적이며 학구적이거나 원대하고 담대하며 선동적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도 '진보가 개혁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나의 대답은 '글쎄올시다.'이다.
그가 말하는 신명이나 연대나 통합이라는 것이 그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고, 그는 어떤 의미에서든 이 나라 하나의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더 콘서트>, 영화를 보았다.
겨울에 듣는 차이코프스키라니,너무 좋았다.
내가 영화에 나오는 그처럼만 부자라면,
매일 영화관으로 출근해 <더 콘서트>를 한번씩 보고 퇴근했으면 딱 좋겠구만~ㅠ.ㅠ
예술이 수단이 아니라 도구였던 러시아 브레즈네프 시대에서 시작한다.
러시아 공산주의 이념이 유대인 음악가들을 박해하고 그들을 사경에 내몰았고,
그 과정에서 마에스트로 '안드레이'는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를 숨겨줬단 이유로 청소부로 전락하지만, 30년만에 다시 연주할 기회를 잡게 된다.
30년동안 각자 다른 일을 했던 이들이라 처음엔 불협화음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제 실력을 되찾게 되고 화음을 맞추고 조화를 이뤄가게 된다.
이것이 마에스트로 '안드레이'가 말하는 진정한 '공산주의'이다.
누군가 알콜리즘을 치료해 가는 과정,
누군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누군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삶을 되찾아가는 과정,
누군가 꿈을 꾸고 실현하는 과정.
"이반, 오케스트라는 세상과 같아.
각자 다른 악기를 들고 나와 연주회에서 만나곤 하지.
그리곤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마법의 소리를 내려는 희망으로 연주하는거지.
이게 바로 공산주의야..."
영화를 보고 든 생각.
진보가 개혁의 대안이 될 수는 없지만,예술은 이념을 초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