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미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위험하다.

겉표지의 과장이야 오래된 관례이니 '그냥 넘어가야지'하며 눈 한번 질끈 감으려 해도,
띠지의 '어둠을 걷어내는 사랑','끝없는 순간에 찾아온 구원'에 관한 이야기라는 데 고개를 끄덕여 줄 수가 없다.
기준을 어떻게 정하고 보느냐에 따라서 선악에 대한 판단력을 잃게 되어 기괴하고 섬뜩한 소설이 될 수도 있다.

처음 이 책의 제목만 보고,사랑이나 의사소통에 관한 소설쯤으로 생각했었다.
열두살 소년과 열두살의 뱀파이어 소녀가 펼치는,이루어질 수 없는,그래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짐작했었다. 
뭐,'황순원'의 '소나기'나 '알퐁스 도데'의 '별'을 연상했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읽기 시작한 이 책은 기괴하고 끔찍하여 욕지기가 나는 게 전에 읽었던 <검은 선>에 비견할 만 하다.
<검은 선>때에는 읽으며 문장을 이미지화 한다는 것 자체가 끔찍하였는데,이 책은 먼저 영화로 알려졌단다.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기괴하고 끔찍함이 많이 희석되고 생략되어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재포장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것 또한 재포장 되었지 싶다.
따라서,이 책은 내게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인간의 치열한 삶'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책은,
인간이 얼만큼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그 잔인함이 인간의 또 다른 일면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게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이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라는 조용한 깨달음을 준다.
하지만,이것도 한걸음 떨어져 이 책을 보는 나의 시각일 뿐이고, 
작가는 선악에 대해 편가르지도 판단하려 들지도 않는다.

선한 사람,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어 악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가지고 있는 악이란 감정이 어떤 기회를 통해 표출되게 되면
그때부터는 점점 견고하게 단련되는 것이라고나 할까?

오스카르는 아이들에게 놀림과 폭행을 당할때마다 감정적으로 살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나무에게 해코지를 한다.
엘리라는 벰파이어가 살인을 하는 것도 살기위해서 라고 담담한 어조로 얘기한다.

그래도,한가지 감사한 것은,'과거'와 '교회'가 없다는 걸 이야기의 초입에 밝힘으로써,
우리의 현실에는 '과거'와 '교회(로 뭉퉁그려질 수 있는 종교시설)'가 있다는 두드러진 대비가 되어,과거를 돌이키고 반성하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이 책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러가지 형태의 이야기 들이 나오지만,사랑이라는 이름을 차용한 해악 들이다.

그래서인지,이 책에 나오는 살인의 경우 뱀파이어 엘리가 저지르는 것 보다 아동성애자로 나오는 호칸이 저지르는 것들이 더 끔찍하다.
호칸은,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발 밑에 내려놓는 것이지만,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인간들은 불능이다.'
라고 생각은 하지만,
현실에서의 그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건 간에,당신을 사랑합니다.'
는 광고 문구에서나 가능한 거고,
엘리를 향하여는,
"내가 널 살 수 있게 도와주는 만큼만 날 사랑할 뿐이야."
라고 한다.
돈을 지불하고 산 아이의 앞이빨이 빠진 것을 보고 이빨을 해 넣으라고 큰돈을 줄 정도로 죄의식을 느끼지만,
이빨을 뾰족하게 키운 뱀파이어 엘리에게 피를 제공하기 위해 또 다른 어린 아이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자신이 저지르는 행위들이 끔찍하다는 걸 알지만,더 큰사랑을 위해서라고 정당화한다.
아동성애자 호칸에게 열두살의 나이로 200년을 산 엘리는 호칸의 성적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존재다.

성인인 호칸은 엘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사랑한 만큼,엘리에게도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반면,오스카르는 엘리를 열두살의 소녀로 생각하고 대하게 되고,엘리는 오랫만에 열두살의 나이로 행세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행복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오스카르가 엘리를 향해 마음을 열고 다른사람에게는 하지 않는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엘리가 열두살의 소녀여서는 아니었다.

모오스부호로 대화를 하는 부분이나,
높이 타는 그네 묘기를 펼쳐보이고,
엘리가 먹지 못하는 특별한 사탕을 훔치지 않고 사주고 하는 부분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오스카르가 누구에게든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이고,
엘리는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지,
다시말해,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이 마음을 열고 눈높이를 맞추었기 때문이지,
여기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개입되기에는 성급한 것 같다.

그걸 알 수 있는 것이 엘리가 오스카르에게 다가갈 때,
"렛미인"하고 양해를 구하는 장면이다.
오스카르가 들어오라고 해야 들어갈 수 있는거다.

결국 오스카르는 아이들에게 점점 더 심한 폭행을 당하고,죽을 고비에서 엘리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오스카르가 엘리가 들어있는 듯한 무거운 가방을 들고 기차를 타는 장면이다.
이걸 놓고,둘이 서로 같이 있게 될테니 '해피앤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엘리가 오스카르를 죽음의 순간 구해낸 것은 맞지만,
엘리가 오스카르의 그 후의 삶들도 책임질 수 있을까?
또 엘리는 혼자서는 힘이 약해 살아있는 자의 피를 구하기 힘이 든데,
성인인 호칸도 어려워하던 산 자의 피를 오스카르가 대신 구해줄 수 있을까?
차차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로 하는 것들이 더 많이 생기게 될텐데,그 때도 이들은 '순수한 사랑(?)'이란 것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슬프지만,난 비르기니아의 얘기에서 해답을 엿보게 된다.

'사람을 가슴에 품으면 상처를 입게 되는 법.
비르기니아가 관계를 길게 이어가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었다.사람을 가슴에 품지마.그들이 들어오면 상처받을 일도 많아져.너 자신 외에 너를 위로해 줄 사람은 없어.너 자신만의 문제라면 고통스러워도 그럭저럭 살 수 있을거야.희망을 품지않는 한 괜찮을거야.'

보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은데,'렛미인'까지 가세한다.
새로 만들어진 영화는 슬퍼서 아름답기만 했으면 좋겠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0-11-25 08:49   좋아요 0 | URL
제가 본 영화에서는 아동성애자 이야기는 빠져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헐리우드 리메이크판 말고, 스웨덴(?)영화로 봤습니다), 책에서는 그런 내용이 있군요. 전 영화를 먼저 보면 책 읽을때 몹시 방해가 되서 영화 먼저 본 건 책으로 읽지 않게 되던데, 이 책은 읽어봐야 겠어요, 양철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0-11-30 01:04   좋아요 0 | URL
저도 책으로 보고 스웨덴 영화로도 봤었습니다.
영화에선 결말도 '해피엔딩'인 것 같죠~^^

책으로 읽으면 적당히 욕지기가 나지만,
그래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전 '비르기니아'의 사랑이 좋았어요.

stella.K 2010-11-25 13:06   좋아요 0 | URL
말에 의하면, 허리우드판은 스웨덴판 보다 더 피튀긴다는데요?
그런데 좋았다는 말도 덧붙이더군요.
저도 읽으려고 책을 사긴했는데 잘 읽을 수 있으려나 보르겠어요.
영화 보고 약간 속이 매슥거리리고 했는데...ㅜ

양철나무꾼 2010-11-30 01:06   좋아요 0 | URL
이미지를 시각화하고 책을 보게 되면,좀 힘들어요.
전 영화에는 약한 데,상상력이 부족한지 책은 좀 읽어줘요.

어찌되었건,충분히 일독의 값어치는 있습니다여~^^

lo초우ve 2010-11-25 21:10   좋아요 0 | URL
난 좌우지간.. 공포보다 액션이 더 좋구요
전설의고향보다 순정이 더 좋아요 쿡쿡.. ^^
잘 지내시죠?
올만에 다녀갑니다 ^^
늘 건강 잘 챙기시구요 ^^
예쁜미소~~ ^^
즐거운시간 되세요 ^^

양철나무꾼 2010-11-30 01:09   좋아요 0 | URL
와~반가워요~
님이야말로 잘 지내시는거죠?^^

저도 공포보다는 액션이 좋아요.
전설의 고향은 거의 보지 못했구요.
순정(로맨스물 말씀이시죠?^^)은 소싯적에 좀 봤어요.

2010-11-25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30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6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30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0-11-26 10:21   좋아요 0 | URL
영화를 참 인상적으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원작 소설은 영화랑은 좀 다른 모양이군요.
영화가 오히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로 포장된 거라니,
얼마나 위험한 소설일지 조금은 짐작이 갈 듯 하네요.

양철나무꾼 2010-11-30 01:17   좋아요 0 | URL
이 소설 충분히 괜찮지만,꼭 보시라고 권하진 않을래요.
차라리,김탁환을~~~ㅋ~.

반딧불이 2010-11-26 10:36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를 먼저 봤는데 책도 있군요. 저는 이영화를 뱀파이어 얘기줄 알고 브람 스토커가 어떻게 변주되나 기대를 갖고 봤었어요. 주인공이 싸늘하면서도 잔인한 아름다움을 전해주더군요. 만화 '기생수'가 얼핏 생각나면서 결국 작가가 하고싶었던 이야기는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처럼 인간에게 선악이 공존한다는 얘기가 아니었을까 싶더라구요.

양철나무꾼 2010-11-30 01:19   좋아요 0 | URL
저 고등학교때 독어 선생님이 그렇게 브람스토커 얘길 많이 해주셨어요.
참 재밌었는데...뭘 봐도,뭘 읽어도 그때만 못한 것 같아요~^^

근데,이 작가 재밌는 것이 '융'도 강요하진 않아요.
만화 기생수는 못 봤어요,불끈~!!!

비로그인 2010-11-27 23:00   좋아요 0 | URL
음.. 그 스웨덴 영화와는 좀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 원작이군요.

인간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래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악이 표출하고 동시에 단련된다는. 얘기하신 이 부분은 좀 섬뜩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우리 삶에서 영원히 그림자처럼 늘 곁에 있을 것 같고요.

양철나무꾼 2010-11-30 01:22   좋아요 0 | URL
어찌보면 순자 예찬론자 같기도 해요.
이 작가,우리나라 영화 '장화 홍련'인가도 감동적이었다고 열변을 토하더라구요.

악만 표출되고 단련되는 것이 아니고,
악을 잠재울 수 있는 선도 표출되고 단련되는 것이라고 믿고 싶어요~^^

cyrus 2010-11-29 18:54   좋아요 0 | URL
저는 이상하게도 스릴러나 판타지 분야 소설은 영화를 먼저 봐야 이해를
하는거 같습니다. 해리포터 같은 경우에는 베스트셀러가 된 책보다는
뒤에 나온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해리포터를 좋아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영화가 원작을 충실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면 내용을
바로 이해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을 글 잘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11-30 01:26   좋아요 0 | URL
글은 상상력 충만하여 쓰시면서...상상력이 부족하시군요,ㅋ~.

전 님과 반대로,
책은 상상하며 두루 섭렵하는데...
영화가 주는 각인에 약한고로,이런 류의 영화를 보면 밤잠을 설칩니다여~ㅠ.ㅠ

Grace 2010-12-01 10:02   좋아요 0 | URL
참 글을 잘 적습니다. 짧은 글인데도 잠시 흠뻑 빠져서 읽었고, 뭔가 상상이 되어지다니 놀라운데요! 저도 이런 후기가 적고 싶어지는군요. 얕은 머리와 가슴으로는 언제일까마는...^^

양철나무꾼 2010-12-02 02:21   좋아요 0 | URL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넘 기분 좋아요,헤헤~^^
책이 워낙 좋았고 인상 깊어서 이런 글이 나와주지 않았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