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좀 많다.
소장 욕심도 있고,
게다가 못 버리는 습성이 있어서,
일단 들이고 쌓아놓았었다.
그런데 근래 주변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연달아 접하고 겪으면서,
유품 정리의 어려움을 전해들었고 또 겪으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바뀐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질까,
급기야 읽은 책만이라도 정리하자는 기특한 실천으로 이어졌다.
동네에 알라딘중고서점이 생긴 것도 한몫한다.
그동안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기만 하였을땐 몰랐던,
알라딘 중고서점에 내가 가진 책들을 판매 하면서 몇 가지 에피소드를 겪었다.
에피소드 하나,
알라딘인터넷서점을 통하여 전날 들인 책을 다음날 알라딘 중고 서점을 통하여 판매하려고 하였더니 '중'등급이 책정되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겉표지가 세월에 바랜 자국이 미약하게 있고,
책 DB에는 없는 선이 실제 책표지에서 보이는데 오염 같다는 이유에서 였다.
말을 듣고보니 그런 것도 같아서 수긍은 하였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책을 내가 새책으로 받아봐선 안되는게 먼저가 아니었을까.
하루만에 중등급으로 평가받는 새 책이라니 아이러니 컬 하다.
두번째 에피소드.
내가 보기엔 새 책이랑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 책인데,
펼쳐진 사용감이 있다고 중등급으로 판정하였다.
펼쳐진 사용감이 싫어 조심조심하는 편인데 그 정도의 펼쳐진 사용감을 내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다.
세번째 에피소드.
마찬가지로 구매한지 얼마 안되는 책이었는데 중등급 판정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띠지를 고정하기 위해 붙여놓은 테이프 때문이었다.
테이프를 떼고 다음번에 가져갔더니 최상 등급 판정이었다.
이런 도서 판정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 다른 판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중고 매장 직원에게 컴플레인을 할 일은 아니다.
직원들은 중고 도서 매입 매뉴얼에 따라 움직일 뿐,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다른 판정이 계속 된다면,
야박한 판정의 사람보다는 후한 판정의 사람에게 매입을 의뢰할 것 같다.
그동안 알라딘 인터넷 서점 이곳을 애정했던지라, '할말이 많아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할.많.하.않'겠지만,
예전처럼 애정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알라딘도 이익기업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수익은 어떻게든 창출할 것이고 늘어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광팬 한 명을 잃어갈지도 모른다.
[수입] Green Book (그린 북) (2018) (한글무자막)(Blu-ray + DVD + Digital)
Universal Studios / 2019년 3월
얼마 전 '그린 북'이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는 감동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났는데,
실상 그들의 관계는 영화와는 다르게 지극히 비지니스적인 것이었다는 얘길 주워듣자,
영화에 대한 감동이 반감되었다.
영화 속 등장하는 편견과 선입견에 몸서리를 칠때쯤,
생각은 이리 저리 널을 뛰어 언젠가 보았던 에단호크와 기네스펠트로 주연의 영화 '위대한 유산'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 등장하던 아름다운 키스씬을 생각하며 책을 읽는데,
책은 또 영화와는 완전 다른 내용이었고 다른 감동을 주었다.
좀 더 찾아보니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46년판 '위대한 유산'이라는 영화가 따로 있었고,
이 영화가 원작에 근접하는 것 같다.
위대한 유산 1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위대한 유산 2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왜냐하면 비록 내가 앞으로 덧붙여 이야기하는 것이 거기에 포함되는 내용이라 할지라도, 내가 말하는 그 모든 것의 공로는 바로 조에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도망쳐 군인이나 선원이 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충실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조가 나를 충실하게 대해 줬기 때문이다. 또 전혀 마음이 내키지 않았어도 내가 그런대로 열심히 일을 했던 것은 나에게 강한 근면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조가 보여 준 강한 근면성 때문이다. 온화하고 심성이 정직하며,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어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미치는지를 아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람의 영향력이 바로 내 곁을 지나칠 때 나 자신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가를 아는 것은 아주 가능한 일이다. 내 도제 생활과 관련하여 뭔가 좋게 여길 만한 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순박하고 만족하며 사는 조에게서 비롯된 것이지, 갈망과 불만에 가득 차서 들떠 있기만 했던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분명히 잘 알고 있다.(1권 199쪽)
"내 너에게 말해 주마."그녀는 여전히 급하고 격정적인 속삭임으로 말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것은 맹목적인 헌신이고, 절대적인 겸손이며, 완전한 복종이고, 너 자신과 세상 전체를 거스르는 신뢰와 믿음이며, 네 온 마음과 영혼을 사랑하는 이에게 바치는 것이야. 내가 그랬듯이 말이야!"(1권, 441쪽)
사실 '위대한 유산'의 설정이 백퍼센트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위대한 유산은 역사적 유구함이나 전통, 부 같은 것이 아니라,
조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근면하고 충실함, 온화하고 정직한 심성 따위의 영향을 어떻게 주고 받는가 하는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고나서,
모두에게 그럴 순 없더라도,
사람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전으로 불리우는 책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구나 싶더라.
알라딘에 뜨문뜨문한 사이에 켄폴릿의 이런 책이 나왔다.
켄폴릿만으로도 설레발을 치기에 충분한데,
'대지의 기둥' 후속작이라고 하니 안 들일 이유가 없다.
[세트] 끝없는 세상 1~3 세트 - 전3권
켄 폴릿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